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67화 (67/284)

67화

21. 흔들리는 균형(1)

자금성 주위에서 벌어진 전투는 오래잖아 종료되었다. 면녕이나 시준의 예상

대로 진국공(鎮國公) 혁호(奕顥) 등 황제의 인척들이 손 닿는 범위의 관군을

모조리 끌어모아 달려왔고 성벽을 지키던 관군도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남공철이 북위문에 보낸 전갈은 꽤 큰 효과를 발휘했다. 보군통령 길륜은 자

신이 늦게 움직이지 않았음을 증언해 달라고 남공철에게 부탁한 뒤 마치 야반

도주하는 사람 장롱 뒤지는 기세로 군을 몰아댔다.

“역도들을 모조리 죽여라!”

“대가리에 하얀 띠 맨 자가 역적이다!”

물론 그 시점에 시준 일행은 그 위장을 벗고 다시 말쑥한 조선인으로 되돌아

와 있었다.

시준이 이문성의 목을 친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황자가 직접 봤으니 – 시

준은 나중에야 그의 신분을 알고 꽤 당혹해했다 – 굳이 수급이나 전공에 욕심

낼 건 없고, 러시아인들이 마치 사냥한 호랑이나 표범 쌓듯 자랑스레 늘어놓

은 사교도의 시체도 면녕은 기쁘게 받아주었다.

그 시점에서 더 나서는 건 월권이다. 나머지는 북경성의 청군이 할 일이다.

그리고 청군은 자기들의 체면을 똥물에 처박은 이 반란군에게 응당한 복수를

할 작정이었다.

그래서 그때, 반란군이 흔히 하는 실수인 ‘때를 놓치는 일’을 저지르지 않은

채 용케도 시간 맞춰 북경성을 들이치러 온 우량신(牛亮臣)의 군대는 기이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저 표지가 맞긴 한 것 같은데…….”

틀림없었다. 성벽에는 ‘대명천순(大明天順)’ 네 글자 적힌 백포가 분명히 걸

려 있었다. 미리 약속된 호응의 기치였다.

단지 거기에 사람 모가지 수십 개가 주렁주렁 매달린 채 백포를 홍포가 아닌

가 싶게 적시고 있는 게 문제였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우량신은 아무 의심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호적이라고 보기 힘든 분위기에 우량신은 척후를 보내 보았다.

곧 눈 밝은 사람 하나가 뛰어갔다 오더니 찢어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이 진주(이문성)가 유주(청 황제)의 손에 사로잡혀 목이 내걸렸소이다! 저기

있는 목은 모두 동지들의 목입니다!”

우량신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북경 성문에서

청이 자랑하는 금려팔기(禁旅八旗)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가경제는 한창 열하에서 색다른 생일잔치를 즐기던 도중이었다.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조선과 서양 세력에게도 세련된 경고를 보내어 천하

가 태평하니 도무지 걱정거리가 없었다.

황제가 만족한 덕에 조선 가서 아무것도 못 하고 온 실책을 대충 넘어갈 수

있게 된 부찰복장안이 열심히 아뢰었다.

“제가 일전 왕도를 아뢴 일이 부끄럽습니다. 폐하께서는 다만 저 오만한 서양

국과 조선의 사신에게 알현을 허락지 않으신 것만으로도 스스로 죄를 깨닫게

하셨으니, 어찌 천신의 하찮은 말 몇 마디가 폐하의 천안에 만분의 일이라도

미칠 수 있었겠습니까?”

“일전에 경이 영길리군을 칙서 한 장으로 물러가게 하는 방도를 아뢰었는데,

그 일에서 내가 이번에 지혜를 얻은 바이니 겸손할 것이 없다. 경은 내가 마

음으로 믿는 신하이다. 다만 그 일 때문에 이 열하 행궁까지 고량진미와 광대

며 음악하는 사람을 불러 온 일은 마음이 편치 않구나. 그래서 이번에는 검소

하게 넘기자고 했는데…….”

부찰복장안은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황제가 염려하는 두 가지 사항을 한꺼

번에 해결해 주었다.

“천하의 모든 것이 오로지 천자께 있사옵고, 천자의 만수는 만방의 백성이 지

극히 바라는 바인데 만수절의 오랜 관례를 갑자기 폐하심은 옳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오히려 사대부와 인민들이 놀라고 두려워할 것입니다. 또한 이

번 폐하의 영단으로, 신의 어리석은 계책과 달리 군병의 출진을 아니할 수 있

게 되었는데, 그 소비에 비하면 이러한 나라의 대사는 낭비라 할 수 없습니다.”

‘생일잔치 해도 된다. 아무도 구시렁대지 않을 거다. 그리고 ’나라의 일‘에

쓸 돈은 국고에서 뽑을 테니 염려하지 말아라.’라는 말에 가경제도 활짝 웃었다.

다른 신하들도 한목소리로 부찰복장안의 지혜로움을 칭찬했다. 어진 군신이

합심하여 태평성대를 이루니 경축할 일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황제는 분명 잔치 안 한다고 했다. 허나 신하들이 이리 강력하게 권한다면 또

수용할 수밖에 없다. 예로부터 간언하는 말을 듣지 않는 자 폭군이라고 하지

않던가. 가경제는 결코 폭군이 아니었다.

그래서 성군 가경제는 진짜 이럴 기분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팔일의 무용

과 각국 기생의 현란한 음악을 즐기고, 덕을 닦아야 해서 보기 싫었지만 야만

족들이 보낸 진귀한 짐승과 기이한 요술을 관람하며, 백성들은 굶어 죽어가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차려 놓은 거 버릴 수도 없기에 기름진 음식과 비싼 술을

억지로 먹었다.

그렇게 생일을 흠뻑 만끽하던 가경제가 보고를 받은 것은 시준이 이문성의 목

을 날리던 시점으로부터 사흘 뒤였다. 북경성에서 열하까지의 거리를 감안하

면 정말 귓가에서 휘파람 소리 나도록 말을 달린 것이었다.

“황제 폐하. 하남 사람 이문성 등 오백여 인의 간민(奸民)이 망극한 마음을

품고 작변하여 황성에 들어왔사온데, 대내(大內, 자금성)까지 범하였다가 제

이황자(第二皇子, 면녕) 등의 분전으로 격퇴되었다 하옵니다!”

가경제의 붉은 술 달린 하조관(夏朝冠)이 매끄러운 머리를 따라 툭 떨어졌다.

이 일은 물론 청조 최대의 금기가 되어 아무도 발설하지 않았다.

가경제는 바람같이 북경으로 돌아왔다. 정확히는 혹시 성이 떨어지거나 전쟁

터가 되어 있을까 봐 바로 돌아오지는 못하고 계주(薊州, 현대의 계현. 천진

인근)에서 머물렀다.

날벼락 맞은 황제의 엄명은 벌써 가마 안에서 분노로 작성되어 벼락보다 더한

기세로 뿌려졌다. 오랜만의 좋은 분위기 다 망쳤다고 이를 갈던 고북구제독

부찰복장안도 어명을 힘써 전했다.

“궁궐 아홉 문을 경비하는 통령들은 물론이요, 순천 부윤과 직예 총독, 그리

고 휘하의 모든 수비(守備)와 지현 및 장군들은 이 일을 두 눈 뻔히 뜨고도

방치하였으므로 하나같이 사죄를 면할 수 없다. 허나 자비로써 그 목을 붙여

두되, 한 번의 죄 씻을 기회를 준다. 지금 당장 하남의 반적들을 토벌하라!”

다행히 그때쯤에는 북경성과 주변에 있던 황실의 인척 및 고위 장수들이 움직

여 대부분의 주동자를 체포한 뒤였다.

당시 남공철과 정약용 등이 뛰어다니며 시준이 할 수 없는 일이자 원래 청 정

부에서 했어야 할 일, 그러니까 북경의 여러 고위 관리들에게 적절하게 소식

전하고 경거망동 단속하는 일을 대신해 준 덕에 연계는 꽤나 부드럽고 신속했다.

특히 가경제에게는 조카가 되는 다라의순군왕(多羅儀順郡王) 민지[綿志, 면

지]는 적잖은 나이에도 반적 두목 풍극선을 손수 때려죽였다. 황제에게도 좀

안심할 만한 보고가 도달했다.

“내전에는 다치거나 상한 사람이 없는데 이는 황성에 있다가 반도를 보고 의

기로써 떨쳐 일어난 조선과 아라사 사람들의 도움이 컸다 합니다. 또한 하남

성에서 일어난 반적의 후군(後軍) 2천여가 간민들을 도우러 황성 성벽까지 나

아온바 이 또한 진국공 혁호 및 아홉 문의 통령들이 힘껏 싸워 흩어버렸습니

다. 이제 황성에는 티끌만 한 위험도 없사오니, 어서 환궁하시어 궁을 힘써

지키지 못한 죄를 내려주시고 아울러 놀란 조신과 인민들을 위로해주시길 바

란다는 제이황자의 주청입니다.”

가경제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이틀 뒤, 가경제는 면녕에게 지친왕(智親王)

작호를 내리고 그에게 성 밖으로 나와서 황제를 맞이할 필요가 없는 특권을

주었다. 사실상의 황태자 책봉이었다.

그러고는 그만한 공을 세우지 못해 성 밖에서 대죄하는 조신들에게 싸늘한 눈

빛을 보내며 황성으로 입궁했다.

여기에서 고개 들고 황제의 행차를 쳐다보도록 허가받은 자들은 러시아와 조

선의 사신들뿐이었다. 조선뿐이라면야 건륭제도 허락한 적이 있으니 그렇다고

치지만, 러시아와 조선이 한목으로 묶여 우대를 받은 사실은 그들이 박대 받

았던 사실만큼이나 많은 것을 시사했다.

원 역사의 가경제는 계유지변 직후 현대의 눈으로 봐도 상당히 공정하고 꼼꼼

한 후속 처리를 진행했다. 그리고 이번의 처결 방식도 역사와 별로 다르지 않

았다.

고위 관리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황제의 눈은 궁내의 병사들에게까지 미쳤

다. 가경제는 당시 맞서 싸운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구분하고, 사망자와 부

상자, 무사한 자를 모두 구분하여 상벌을 내렸다.

게다가 관대하기까지 했다. 반란자들이야 당연히 사형이고 주동자는 대륙의

능지처참이 무엇인지 보여주었긴 하지만, 난을 막지 못한 관리들에 대한 처벌

은 꽤나 너그러웠다.

시준은 당연히 북경성이 피바다가 될 것을 예상했다. 허나 그건 보기 좋게 빗

나갔다.

중국이라면 무릇 이런 일의 관련자는 모조리 주원장 스타일로 해체해 줬을 거

라는 시준의 편견과 다르게, 총독급의 사실상 직접 책임자도 해고하는 선에서

그친 게 많았다.

자애심의 발로는 아니었다. 이런 난이 일어나게 한 자신의 실덕을 반성한답시

고 가경제가 써대어 뿌린 죄기조(罪己詔)는 순조가 흉년 때 발표한 것과 발상

은 비슷했다. 군주도 면피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회동관에 있는 조선 사신들도 당연히 그것을 볼 수 있었다. 시준은 그 긴 글

을 간단하게 평했다.

“그러니까 자기가 덕이 없는 것은 인정하지만 모든 것은 신하들이 게으른 탓

이었다는 말씀이군요. 신하들은 이번에 혹형을 받은 자가 많지 않으니 황제의

자비와 꾸짖음을 모두 달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무엄한 소릴 한다고 꾸짖기도 뭐했다. 지금 시준의 평가는 조선 사신단이 한

마음으로 중얼거리는 조소 중 가장 부드러운 축에 속했기 때문이다. 정약용은

한숨을 쉬고 뒤탈이 없게 보충했다.

“사실이 그렇지 않느냐. 아라사인들의 강폭(强暴)함과 너의 번개 같은 묘계가

없었다면 일은 실로 어찌 되었을지 알 수 없었다.”

시준은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청의 수도 경비가 그 정도로 막장은

아니다. 뭐 2황자 면녕 정도야 죽었을 수도 있지만, 결국 반란군은 제압된다.

물론 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북경 전체가 불타는 것보다 황자 하나의 목숨이

더 중요하지만 말이다.

정약용이 말했다.

“네 말대로 우리에게도 황은이 내렸다마는, 어사(御史)와 제독들의 조사가 끝

날 때까지는 아무래도 떠날 수 없겠다. 재자관을 통해 늦어진다고 아뢰어야

하겠구나.”

“그런 공무야 제가 알 필요가 있겠습니까?”

“허허. 이제 너도 황제로부터 임명받은 소신교위(昭信校尉, 정6품)가 아니냐.

상한에서 입신출세한 자로 너만 한 사례도 근세에 없었다.”

시준이 보여준 용맹을 평가해 가경제가 내린 벼슬이었다. 당연하지만 시준은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이 나라 왕이고 저 나라 황제고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무늬만 관직으로 생색내기만 바빴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대국 체면이 있는데 가경제가 어디 동쪽 나라 왕처럼 그

것만 주고 입 싹 씻은 건 아니었다.

시준에게는 마제은(馬蹄銀)으로 일천이백 냥이 하사되었다. 이는 조선 사신단

전체가 이번에 들고 온 공비(公費)의 2배에 가깝다. 쪼잔한 가경제도 아들은

아끼는지 정말 큰 인심 쓴 것이다.

여기에 부수적으로 내려진 비단옷이며 황금, 산호 담뱃갑과 녹주 지팡이, 많

은 고기와 술 등등은 목록을 만들기도 바쁠 지경이었다. 지친왕 면녕이 따로

또 감사를 표한 예물까지 하면 다 셀 수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보수는 청의 명사들에게 조선 땅에 의주 사람 정시준

이 있음을 알린 것이었다. 많은 선비들이 시준이나 그 스승 정약용과의 사귐

을 청하며 회동관에 찾아왔다.

러시아인과의 우정도 돈독히 했다. 우선 고위 귀족이자 야전 군인의 위엄을

상징하는 베니그센의 칼은 시준이 직접 많은 선물과 함께 그에게 돌려주었다.

허나 베니그센 역시 예의를 아는 사람이므로 그깟 머스킷 몇 정까지 돌려달라

고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랑도 좋은 워크스테이션 마련한 개발자처럼 좋아

했다.

유쾌한 부작용도 있기는 했다. 신묘한 동방의 검법을 익혔다는 시준의 위명은

덩달아 스승 정약용의 이름까지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했고, 부사 정약용

은 자신에게 그 『청구검법(靑丘劍法)』 비급을 얻어가려는 사람들 앞에서 꽤

난처하게 되었다.

또 시준은 약속한 ‘특별 상금’을 일시불로 지급했다. 그래서 칠복이나 장복이

등이 여기저기에서 돈을 뿌려대며 두 길 담벼락 위를 도술로 날아다녔다는 둥

떠들어대는 바람에 남공철이 엄히 단속해야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체

로 북경의 여러 양민은 조선인을 환영했다.

그러므로 지금 시준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이유는 포상이 부족해서가 아니

었다. 시준은 화장실 갔다가 그냥 나온 사람의 기분을 정확히 느끼고 있었다.

‘임청 이 새끼 어디로 튀었지? 분명히 같이 들어왔다고 했는데.’

시준이 죽인 것은 임청이 아니라 이문성이었다. 물론 이자가 명목상 수괴이니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이긴 하나, 진짜 주동자인 임청은 찾을 수 없었다.

본래 시준은 임청을 보면 그 자신의 손으로 확실히 죽이려고 했다. 만약 임청

이 산 채로 잡힌다면 조선 얘기가 나올지 모른다.

시준은 벼슬 받은 김에 여러 고관들에게 인사한다는 핑계로, 혹은 시준에게

인사 오는 사람들을 상대로 소식을 좀 알아보았으나 임청은 놀랍게도 무사히

달아난 모양이었다.

그래서 시준은 청의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적절한 말을 여기저기 떨어뜨려 주

었다.

“광동의 남쪽에 영길리국이 있는데 들어보셨소? 이자들은 오만하고 흉측하기

가 천하에 짝이 없어 일전 건륭 황제 때도 다시없는 무례를 일삼았던 것은 모

두 아시겠지요?”

“듣기로 이번 사교(천리교)의 무리 중에는 광동에서 짐을 져 날라다가 운하를

타고 하남까지 오는 장사치들이 많았다고 하던데.”

“영길리국은 본래 조상이 해적이라 약탈을 즐긴다고 하오. 그들이 슬금슬금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한 흔도사단(힌두스탄)은 끝내 망하고야 말았소이다.

우리 조선국도 그들에게 속지 않도록 애쓰고 있소만 서양국 사람들의 흉계는

다 알기가 어렵소.”

사실 시준이 그렇게 제 발 저린 공작을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일단 불굴의

사나이 임청이 그리 쉽게 잡히지 않았거니와, 무엇보다 천리교도가 가지고 있

는 총이 이 일의 배후를 웅변적으로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길리국이 감히 사교를 후원하여 반역케 하였다!>

청 조야의 여론은 악화되었다. 저번 조선 일처럼 부찰복장안이 다시 출병을

주장하였다.

황제의 내전이 침범당한 일은 어떤 사안보다 중대한 모욕. 이건 조선 때와는

차원이 다른 심각성이었다.

황제도 이번에는 바로 거절하는 대신 조금 고민해 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하

남성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토벌과 잔당 색출 때문에 어리석은 백성들의

불만이 치솟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내부의 일을 봉합하려면 역시 외정만 한 것이 없다.

그러나 가경제는 폭력을 싫어하고 인의를 사랑하는 성군이었다. 그러므로 이

번에도 성군답게 덜 폭력적인 안을 내놓았다. 절대 질 것 같아서는 아니었다.

“대개 형문(刑問)이란 양쪽의 말을 다 들어봐야 하는 것이지 한쪽의 일만 살

펴서는 공명정대하기 힘들다. 황포의 영길리인들에게 짐이 사정을 묻겠다. 온

승혜(溫承惠)를 흠차대신으로 삼으니 군을 이끌고 동인도양행을 조사하여 앞

뒤 사정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도록 하라.”

황제가 바로 황포를 쓸어버리고 그들의 배를 불사르며 사악한 아편 상자를 장

사꾼들과 한 번에 묶어서 바다에 처넣으라고 명령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조선이었다.

당장 이번에 황제가 열하에서 시위한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조선과 아라사가

영길리와 친해서였다. 그런데 그 두 나라 사신들은 그 푸대접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몸을 바쳐 역적을 막아내었다.

여기서 사교의 배후 영국을 묵인한다면 집 대문까지 따인 황제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고, 영국과 정면으로 싸운다면 적어도 지금까지는 청 황실에 호의적

이었던 것 같은 조선과 아라사가 등을 돌리는 일을 피할 수 없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사실 영길리국이 배후가 아닐 경우였다.

가경제도 동인도 회사의 통제를 벗어난 잠상들이 동남 바다에 많은 것쯤은 알

았다. 만약 영국 정부와의 관련성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가경제는 아라사-조선

-영길리 3국을 모두 적대하게 된다.

한마디로, 청으로서는 영길리국을 가만 놔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놓고 칠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초조한 마음은 수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지나친 대군으로 표현되었다. 곧

양광총독의 지휘하에 광동성 일대에서 5만에 달하는 녹영병과 팔기의 소집령

이 떨어졌다.

물론 이 일은 그리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

는 저 먼 장강 너머 동인도 회사와 레디 소령은 암허스트 남작이 조선을 갑자

기 침공하지 않는지만 걱정하고 있었다.

이 시대 영국의 해상 지배는 19세기 후반처럼 촘촘한 것이 아니었다.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프랑스 해군이 엄청난 군함을 영국 해군에 갖다 바치는 동안 동

아시아에서는 프랑스 사략선이 꾸준히 영국 상선을 습격했다.

그래서 이번 암허스트 남작의 항해에는 프랑스 해적과 많이 싸워 본 백전의

노병들이 다수 함께했다. 나이는 비교적 젊지만 그 방면의 경험으로는 따를

자가 없다는 존 메이틀랜드(John Maitland) 소장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므로 메이틀랜드 소장이 저편에서 프랑스 깃발을 달고 오는 이상한 정크

선을 보자마자 포격 준비 명령을 내린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암허스트 남작은 메이틀랜드 소장을 제지했다. 프랑스가 조선과 교류

하고 있다는 것은 예상한 바요, 유럽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아시아 사람들이

유럽인을 내세울 것이라는 사실도 예측 범위 안이었다.

“우리가 명색이 문명 세계를 대표하여 왔는데 사절의 얘기는 들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암허스트 남작의 판단은 옳았다. 남작 자신의 지인이기도 하지만 스펜서 퍼시

벌 총리와도 친분이 있는 오트란토 공 조제프 푸셰는 그냥 무작정 대포 쏴서

바다 밑에 묻어 버릴 수 있는 인간은 아니었다.

남작은 이 사절단에 조선인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에 유의했다. 일부 뱃사공

이나 심부름할 사람을 빼면 사절단을 구성하는 여남은 명이 전원 프랑스인이었다.

선실로 푸셰를 초대한 남작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각하. 거짓 황제에게 버림받았단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

극변의 땅까지 오셨을 줄은 몰랐군요. 왕을 배신하고 로베스피에르를 배신하

였듯이 이번에는 유럽인을 배신하고 아시아인을 위해 유세하러 오신 겁니까?”

저 싸가지 없는 독설은 과연 변한 게 없다고 푸셰는 생각했다. 허나 오트란토

공 조제프 푸셰는 그만한 도발에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항상 정의의 편이고, 한 번도 정의를 배신한 적이 없지. 인류 문명을

모독하는 노르만인들의 배에 오르니 역시 불의한 악취가 코를 찌르는군. 간단

히 할 말만 하고 돌아가겠네.”

암허스트는 네 멋대로 돌아갈 수 있겠느냐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푸셰는 암

허스트가 그 말을 꺼내기도 전에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수행원이 나무로

된 함을 책상에 올려놓았다.

“버림받았다고 지껄였나? 말조심해, 애송이. 프랑스 인민의 황제 나폴레옹의

신임장이 여기 있다. 나는 영광스러운 배 아우스터리츠를 타고 조선에 프랑스

제국의 외교 사절 자격으로 온 거야. 허튼짓을 했다가는 조선국 평안도에 주

둔한 전열함 함대가 이 가소로운 프리깃 정도는 일격에 침몰시킬 거라는 사실

을 먼저 말해 두고 싶군.”

물론 아우스터리츠와 그에 딸린 함대는 틀림없이 평안도 근해에 있다. 단지

바다 위가 아니라 육지나 바다 밑에 있을 뿐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암허스트는 주의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끌고 온 함대나 병

력은 조선 해군을 상대하기에는 차고 넘치지만 프랑스의 오세앙급 전열함대라

면 얘기가 다르다.

실제로 동인도 회사는 왐포아 근해를 지나갔던 프랑스 해군의 함대를 증언했

고, 그 크기나 무장은 최소한 전열함급이었다.

로드 암허스트는 일단 배짱을 튕겨 보았다.

“그 허풍을 내가 믿게 하려면 지금 아우스터리츠를 타고 오는 게 좋았을 텐데요.”

바로 그 말을 기다리고 있던 푸셰는 배부르게 대답했다.

“그런 쓸데없는 허세는 부리지 않지. 아우스터리츠는 지금 바쁘네. 프랑스 해

군 사령관 그레테 자작의 지휘하에 언제든 출정할 준비를 해야 하니 말이야.

자네들이 노루섬이 아니라 이쪽으로 온 것은 큰 실수야. 나중에 ‘조약’의 장

자도 비무장지대에 관한 조항을 어기지 않았다고 우길 셈이었겠지? 얄팍해,

너무나도 얄팍해. 덕분에 프랑스 함대는 소식을 입수하고 평안도, 그러니까

장자도 남쪽에서 그곳을 봉쇄할 준비를 마칠 수 있었지.”

암허스트 남작은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남작은 다 계획이 있었다. 조선과의 협상이 파탄으로 치달으면 그사

이 장자도로 배를 보내 상관을 철수시키고 한성부를 강습하는 것이다.

허나 이대로 가면 외통수다. 저 해적놈들이 평화적인 민간인 피난 함선을 구

분해 가며 잡을 리 없다. 남작은 여태까지 한 푼 가치도 없이 취급했던 국제

규범을 내밀었다.

“이건 조약 위반이야! 무장 병력으로 민간 개항장을 위협하다니!”

“아, 그건 영국과 조선 사이에 맺어진 조약이지. 프랑스는 거기에 서명하지

않았네. 우리 프랑스 해군은 ‘독자적 기동’을 개시했을 뿐이야. 조선과는 전

혀 상관없어.”

“조선의 사주를 받았다는 것을 모를 줄 아는가!”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증거라도 있는가?”

로드 암허스트는 벌떡 일어나서 조제프 푸셰를 노려보았다. 푸셰는 여유롭게

웃었다.

“과한 욕심 부리지 말게, 젊은이. 우리가 뭐 노루섬을 빼앗겠다는 것도 아니

지 않는가. 조선은 영국의 보호국이 아니야. 누구든지 교류할 권리가 있단 말

이야. 괜히 깡패처럼 협박하지 말고 얌전히 왐포아로 꺼져. 본국에는 조선이

영국에 적대할 의사가 없었더라고 전해. 명백한 사실 아닌가? 조선 국왕은 유

럽에 대해 호의적이니 자네들이 경거망동하지만 않는다면 개항은 지속될 걸세.”

작가의 말

1. 진국공 혁호와 다라의순군왕 면지의 활약, 그리고 가경제의 상벌 등은 원 역사와 거의 같습니다. 여기에서는 직접 총을 쏘지 않았지만, 실제 역사의 면녕이 군공으로 지친왕 자리 임명된 것이나 황제를 마중 안 나와도 되는 특권을 받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2. 마제은이란 말굽은이라고도 불렸는데 같은 말입니다. 말굽 모양으로 가공된 은이죠. 당시 스페인 달러와 함께 청-유럽 교역의 국제 통화로 쓰였습니다. 대충 시세는... 작중 시점으로부터 30년 전, 박지원이 동의보감 전질을 중국에서 구하려 했는데(동의보감은 조선 책 중 중국에 역수입된 드문 도서 중 하나였습니다) 마제은 5냥이 없어서 못 구했다고 하죠.

3. 존 메이틀랜드 소장은 작중 언급된 대로 프랑스 사략선 및 해군과의 전투 경험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선상 반란이 일어났을 때 재빨리 장교와 해병대 정예 대원들을 모아 칼 빼들고 반란군을 급습하여 훌륭히 마무리한 일이 있는데, 이는 '메이틀랜드 박사의 처방' 이라 불리며 영국 해군 선상 반란 진압의 모범 사례가 됩니다.

4. 이제 판이 깔렸으니 다음주부터 스토리가 좀 빠르게 진행되겠군요. 지금까지 따라와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21. 흔들리는 균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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