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64화 (64/284)

64화

20. 기사지변(己巳之變)(1)

순조 이공이 비밀히 지중추원사 조제프 푸셰를 불렀을 때, 그는 장지문을 닫

고 단정히 앉아 – 그림자만 보면 제법 선비의 품이었다 – 조선 치안의 조언자

로서 프랑스에서와 비슷한 일을 하는 중이었다.

온건하게 말하자면 문서 정리였다.

불랑국의 공작과 사귀고 싶은 호기심 많은 선비, 혹은 그의 마음을 떠 보려는

관리, 또는 그를 준엄하게 꾸짖고자 하는 지사(志士)들은 그 마음을 다양한

서신으로 표현했다.

그에게 올라오지는 않지만 사본이 배달되는 수경포도청의 보고서라든가 조선

에서 쌓아 둔 사소한 친분을 기반으로 ‘벗’들이 알려주는 소식도 있었다. 사

실상 누구나 볼 수 있는 기별(奇別)도 물론 마찬가지다.

조제프 푸셰에게는 그 모든 것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이었다.

푸셰에게 정보의 가치란 그것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의 수에 정비례하고 실제

로 아는 사람 수에 반비례했다. 또한 정보를 가진 자는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

운 정보를 만들거나 이끌어 낼 수도 있다.

‘혹은, 있던 사실을 없던 것으로 해 버릴 수도 있다.’

푸셰는 나폴레옹에 의해 축출될 당시 정국을 흔들 여러 기밀 문서를 ‘파기했

다’고 주장했다. 물론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고 그 의심대로 푸셰는 그 서

류를 고스란히 갖고 있다. 표류와 타국 눈칫밥 생활에도 그것만은 놓지 않았다.

그리고 조선에서 얻은 이 서류도 그가 유럽에 돌아갈 때쯤에는 그렇게 ‘파기

될’ 것이다.

푸셰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이공의 사자가 도착했다. 오스만 투르크처럼 거

세된 사람으로 이루어진 하렘 관리관(내시)들은 꽤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들이

었다.

그는 굳이 못하는 프랑스어나 영어로 우물거리지는 않았다. 내시는 요즘 왕이

신뢰하는 신하에게만 하사한다는 허리띠를 내밀고 나서 자기를 따라오라는 몸

짓을 해 보였다.

푸셰는 왕과의 독대를 기대해 보았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여기가 조선인데

그건 무리였다.

편전에는 요즘 조정에서 귀하게 쓰이는 인재인 김시택이 우선 눈에 띄었다.

그리고 좌우에 김조순, 박윤수, 이시수, 김재찬 등 당대의 고관들이 모두 자

리했다. 물론 사관들도 입시해 있었다.

왕은 푸셰를 보고 부드럽게 말했다.

“영길리국의 이야기는 들었겠지?”

통역을 들은 푸셰가 대답했다.

“듣지 못했습니다. 제가 외국인으로서 어찌 폐하의 정부에서 일어나는 내밀한

일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영국인이 온 것입니까?”

김조순의 얼굴이 찌푸려지고 이공은 의기양양했다. 과연 복공은 신뢰할 만한

자였다. 김조순은 복공이 이 짧은 순간에 함정을 간파하고 피해 버릴 정도로

만만찮은 자라고 여겼지만 말이다.

이공은 대강의 사정을 설명하고 운을 떼었다.

“그래서 그대를 보내자는 말에 신하들의 반대가 많았으나, 어차피 더 이상 적

격인 자가 없으니 그대가 가서 우리 사정을 설유하여 주었으면 한다. 오직 천

하 모든 나라와 우의로써 사귀는 것이 나의 뜻이지 다른 흉계는 전혀 없다.

잠상들의 일은 본래 교유하다 보면 범죄가 있을 수도 있는 것으로써 그때그때

잡아 징치하면 그만인데 왜 저리 난리인지 모르겠구나.”

모든 대신들은 왕이 뻔뻔하기 짝이 없다 여겼지만 여기 모인 사람들은 그 정

도 속마음쯤 능숙하게 숨길 줄 아는 자들이다. 그래서 홍경래 일을 모르는 푸

셰도 속을 수밖에 없었다.

푸셰는 보나 마나 영국인들이 그들의 주특기를 발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엉

뚱한 누명 씌워서 미개국을 잡아먹는 수법은 인도에서 질리도록 한 짓이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러시아와 영국이 조선을 징검다리처럼 밟고 손잡게

할 수는 없다. 푸셰가 제안했다.

“폐하의 결단이 영용하시나, 현명한 대신들의 충언도 유념할 만한 것입니다.

제가 나가면 조선 국내로는 믿지 못하는 자가 많을 것이요, 영국으로서는 조

선과 프랑스의 관계를 의심할 것입니다. 제가 조선을 대표하여 협상에 나서는

것은 마땅한 일이 아닙니다.”

차라리 왕의 딸랑이 노릇 한다면 공박할 수 있을 터인데, 이리 빈틈없이 이야

기하니 천하의 김조순이나 이시수도 어쩔 수 없을 지경이었다.

지금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들끼리 이루어지고 있는 견제와 기싸움을 전혀 모

르는 이공은 의외의 대답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어찌하는 것이 좋겠는가?”

원래 불확실한 일일수록 확고하게 호언장담하는 것이 외교 화술의 기본이다.

푸셰가 시원하게 대답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다만 조선 국왕 폐하의 고문(지중추원사)으로서 가는 것은

아니고, 대프랑스 제국의 오트란토 공으로서 영국 배를 방문하여 그들의 무례

함을 꾸짖어 물러가게 하겠습니다. 비록 프랑스와 영국이 전쟁 중이나 저들이

외국의 비무장 고관을 함부로 체포하거나 사살할 수는 없을 겁니다.”

푸셰는 만약 무도한 영국놈들이 그런 일을 시도하면 자신이 프랑스의 외교관

으로서 조선에 와 있다고 주장할 생각이었다. 파리의 영국인이 전부 학살당하

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영국인은 푸셰를 건드릴 수 없다.

그리고 그러려면 한 가지 조건이 더 필요하다.

푸셰는 조건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이공은 자기가 푸셰의 마음을 헤아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사실이었다. 이공은 푸셰가 참 좋아하는 사람 – 그러

니까 호구 – 답게 푸셰가 말하기 부담스러운 건을 먼저 꺼내 주었다.

“만약 말한 대로 일이 성사되고 영길리국이 흉계를 가졌음이 백일하에 밝혀지

거든 조선과 불랑국 양국의 우의는 더욱 굳건해질 것이다.”

네르친스크 조약의 내부용 한문본에서도 그러했지만, 동아시아의 조약에서는

‘양국’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대등한 나라라는 건 같은 번국끼리밖에 없

고, 번국끼리는 조약을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공은 영국 일을 해결해 주면 프랑스와 독립국으로서 수교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한 셈이다.

김조순은 이제 사위의 돌출 행동을 제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

오려는 신음을 겨우 참아낸 김조순은 왕의 미친 짓을 정면에서 말리기보다 앞

서 감자 때처럼 뒤에서 무력화하려는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푸셰는 진심을 담아 인사했다.

“폐하의 황공한 배려에 무한한 감사를 표합니다.”

여러 가지 원인 때문에 넘쳐나는 생산량을 근대적 의미의 ‘국력’으로 표출하

지 못했을 뿐, 청은 이견 없이 당시 세계 최대의 GDP를 자랑하는 나라였다.

아직 증기 철갑선이나 전신이 없는 영국에서 청을 본격적으로 침공하지 못한

것도 당연했다. 요동에 200리 나무길을 까는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북경에 입성한 시준은 그것을 아주 잘 느낄 수 있었다.

의주나 평양, 한성이 다큐멘터리에 나올 법하다면 이 북경 시가지는 관광 홍

보 방송에 나올 법했다. 현대인이라 어차피 이 시대 건축이 다 하찮아 보일

수밖에 없는 시준의 눈에도 북경의 반듯한 집들은 높이나 모양부터가 달랐다.

박지원이 북경 갔다가 벽돌에 꽂혀 와서 벽돌집을 주장한 이유도 알 것 같았

다. 잘 구획된 시가지 사이에는 소설 읊어 주는 이야기꾼이며 양금(洋琴)과

비파 타는 사람, 자박자박 걸으며 강아지 쫓는 어린아이들이 풍경처럼 펼쳐져

있었다.

시준이 만약 과거로 온 지 얼마 안 되었다면 여전히 지저분한 바닥이나 온 도

시에 들어차 있는 듯한 썩는 냄새, 질서 없는 고함소리와 싸움질 같은 것도

지적할 수 있었겠지만 그러기에 시준은 너무 조선에 오래 살았다.

정약용이 한가롭게 말했다.

“그래도 무사히 경사에 들어와서 다행이구나. 사신행을 가볍게 한 일은 실로

성상의 용단이셨다.”

시준이야 그간 만리장성에 박지원이 해 놓은 낙서 구경하고, 청나라 사람들에

게 가짜 청심환 주고 귀이개나 비녀 등 여러 잡물 사들이는 등 바빠서 관심이

없었지만 관리들에게 이 여정은 험난한 것이었다.

청조의 한이 서린 산해관(山海關)이나 영원성(寧遠城)을 말하지 않더라도 그

간 지나쳐 온 성과 관문만 몇 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마다 써야 하는 문서

가 있고 받아야 하는 도장이 있었으며 만나 봐야 하는 사람만도 두 손에 차고

넘쳤다.

본래 조선의 사신은 그런 절차가 간략화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 분위기가

좀 안 좋았다.

지현(知縣)이며 참장(參將) 같은 사람들은 눈을 홉뜨고 그 악명 높은 의주 장

사꾼들이 없나 살폈다. 원래 조선에서 오는 의주 장사꾼들은 사신행 중에 조

선 돈이고 청나라 돈이고 가리지 않고 훔쳐대기로 유명했다.

영조의 사망 소식을 전하러 청에 왔다 돌아가는 길에 조선 사신이 돈 천 냥을

잃어버린 적이 있는데, 조선을 제법 아끼던 건륭제는 조선 사신이 심양에 도

착하기도 전에 이 일을 보고받고 주변 청인들을 엄혹히 심문하여 몇이나 물고

를 내었다.

물론 돈도 관아에서 물어주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조선 사신들마저 같이 가던

의주 놈들이 훔친 것 아닌가 하고 의심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관리들도 어쩔 수 없었다. 의주 상인이 없으니까.

정약용은 쓸데없이 만상들이 많이 따라오지 않았으니 아무 시끄러운 일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한 셈이었다. 덤으로 하인을 둘밖에 안 데려와서 제자 고생시

키는 자기 소행도 변명하고 말이다.

바로 그 악독한 의주 장사치인 시준은 골이 나서 말했다.

“사신행이 무겁더라도, 단지 백지 예순 권(券) 외에 좀 돈 같은 료(料)도 주

었더라면 언제나 무사히 들어왔을 겝니다.”

의주 상인들에게 여비 하라고 주는 게 기껏 종이묶음 60권이니 도둑질이 아니

고서야 먼 길 갈 방도가 없었다.

시준이야 돈이 많아서 멀쑥한 입성을 유지하는 것이지 보통 의주 상인들이 정

직하게 북경까지 오면 이게 장사꾼인지 거지 대왕인지 알아볼 수 없는 꼬라지

가 된다.

체제는 사람을 도적으로 만들고, 도적 취급 받은 사람은 기꺼이 도적질을 해

주는 것이다.

정약용은 헛기침을 하며 부채를 폈다.

“어흠. 그래서 내가 거짓 글씨 파는 치욕도 허락하지 않았느냐. 그 말은 더

이상 하지 말거라.”

시준도 나름대로 방책을 내었다. 조정에서 내어준 백지에다가 성현의 글귀나

시구 멋들어지게 써서, 낙인을 아무렇게나 만든 다음 해동(海東) 선비 누구의

것이라며 오는 길에 있는 시골 선비들 집에 팔아먹은 것이 그 한 예다.

사자관 김정희는 서예가로서의 자부심으로 그것을 꾸짖기는커녕 시시덕거리며

적극적으로 찬동했다. 옛 명필의 거의 모든 서체를 모방할 수 있는 김정희는

수입의 반을 갈라 가지기로 하고 범죄에 가담했다.

“어허, 되놈들이 무얼 알아서 책 뒤져 고증하겠는가. 내 입으로 말하긴 뭣하

지만 이 글씨는 가짜라는 것만 빼고는 썩 훌륭하니 이 정도 값이면 속여 판다

고는 할 수 없으리.”

부사 정약용 역시 시준에게 여러 가지로 빚진 게 많아서 그걸 묵인해 줄 수밖

에 없었다. 시준은 교차 검증의 신뢰성을 위해 정약용에게 저자의 (조작된)

약력을 옆에 써달라고 청했고 정약용은 끔찍한 기분으로 응했다.

사신 일행은 숙소에 들어갔다. 청이 조선을 많이 우대하기는 하였으나 결국

국제 정치는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법이라, 원래 조선 사신의 숙소였던

회동관은 벌써 반세기 전부터 러시아인에게 반나마 내준 상태였다. 익숙한 일

이라 일행은 알아서 짐을 풀고 쉬었다.

다음 날 정약용은 아침 일찍 관아에 나아갔다. 시준과 기랑도 바빴는데, 정약

용이 조선에서 자기 친구들에게 부탁받은 여러 편지며 예물을 북경의 그들 지

인마다 전해주러 다녀야 했기 때문이었다.

삼사(정사, 부사, 서장관)급 고위 인사는 황제와 예부의 허가 없이 중국 인사

를 만나고 다닐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중국 선비들은 왜 이런 하인

들이 선비의 사귐에 심부름을 하는지 의아하게 여겼으나 굳이 화까지 내지는

않을 정도의 예의야 알고 있었다.

물론 그런 점잖은 지인들이 소소한 답례라도 하지 않을 턱은 없다. 똑같이 물

건 주고받는 일인데 왜 정약용이 하면 선비의 교우가 되고 자기가 하면 장사

치의 모리가 되는지 시준은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튼 그 일로 이 집 저 집 다니며 중국 과자 얻어먹고 심부름값도 챙기던

시준과 기랑은 곧 돌아온 정약용에게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황제가 여기 없다고요? 아니, 피서 끝났다고 하셨잖습니까?”

“목소리 낮추지 못할까. 북경에 조선말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으로 믿느냐.”

본래 칠월부터 구월까지 황제는 피서산장에 머물러야 한다. 지금은 구월 스무

이레이니 법도대로 하자면 아직 안 와도 되기는 하나, 만수절이 시월 초엿새

이므로 사실 날짜를 좀 줄여 그 전에 돌아오는 게 여러 가지로 좋다.

정약용이 시준에게 열하 뺑뺑이 안 돌아도 된다고 장담한 이유가 그것이었다.

그런데 황제는 이번 생일을 아예 피서산장에서 치르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황제의 신후가 미령하여 피서산장에서 돌아오지 않는 모양이다. 백성들이 흉

년에 시달리고 덕 없는 간민들이 도적이 되니 이는 황제에게 교화의 책임이

있다 하여 만수절도 성대하게 치르지 않기로 하였다는구나. 예물이며 표자(表

字)는 예부에서 접수하고 각국 사신들은 황자(후일의 도광제인 아이신기오로

민닝을 말한다)에게 숙배하면 될 것이라는 황제의 명이다.”

건륭제처럼 내가 조선 사신 오기를 학수고대하였으니 빨리 열하로 튀어오라는

개떡 같은 명령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건륭제는 조선을 우대하여 그랬다고

쳐도 가경제는…….

거기까지 생각하던 시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다행인 일이 절대 아니다.

“선생님, 설마…….”

정약용은 대답하지 않고 눈짓했다. 두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자리를 옮

겼다. 그런 얘기는 아예 안 듣는 게 좋다는 사실을 잘 아는 기랑 또한 조용히

자리를 피해 마구간에서 말이나 돌보는 척했다.

정약용이 침중하게 말했다.

“네 짐작대로다. 아마 몽고나 안남의 사신은 벌써 열하로 출발했고, 황제의

스승이라는 활불(活佛, 판첸 라마)의 행차도 아랫것들이 보았다 한다. 그러나

황명이 없고 보면 우리가 무턱대고 거기로 따라가거나 할 수는 없다.”

“조선만 따돌렸군요.”

“그래. 어쩌면 나도 돌아가서 목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사신 안 보겠다고 열하에서 안 돌아오는 건 황제인데 왜 사신 모가지가 날아

가느냐 하면 이 시대가 원래 그렇다고밖에 대답할 수 없다. 황제 모가지를 칠

수는 없지 않은가.

잠시 생각하던 시준은 곧 다른 것을 물었다.

“요 옆 남관(南館) 사신들은 어쩌고 있습니까?”

본래 조선 사신들이 쓰던 회동관 남관은 아라사관(俄羅斯館)으로 바뀐 지 오

래였다.

카흐타 조약 이후 러시아 정교회 사제들이 북경에 주재해서 러시아 사람들도

여기 많이 오갔다. 당연히 황제 생일에도 한 번쯤 안 가볼 수는 없다.

시준이 이를 물은 이유는 간단했다. 조선을 왜 따돌리는지 알기 위해서다. 정

약용의 대답은 대략 시준의 예상대로였다.

“아라사 사람들도 지금 난리가 났다. 허나 거기야 조공이란 명목뿐이고, 그

차간 한(cagan han, 청에서 러시아 황제를 부르던 칭호)이 청국과 같은 황제

이니 우리만큼 걱정이야 하겠느냐.”

만약 조선만 따돌렸다면 조선이 뭔가 황제를 언짢게 하였다고 생각했겠지만

이런 경우라면 다르다. 청이 유럽 세력 전체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

이다.

게다가 청은, 적어도 이번 일에 한해서는 조선도 ‘유럽 세력’에 포함해서 인

식하고 있었다.

유럽화에 매진하였던 강철군주 이공의 비약적 성과라고도 할 수 있었다. 문명

이 아니라 원한만 유럽급으로 되어서 문제였지만.

시준은 드디어 정약용이 의주에서 말한 ‘할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시준은

한숨을 푹 쉬고 자기 인건비를 계산해 본 다음 말했다.

“일단 제자는 아라사관에 기웃거리며 하인놈이나 하나 붙들어다 사정을 좀 캐

보겠습니다. 그런데 나랏일은 어찌합니까? 이대로 황자에게 숙배하고 돌아가

는 겁니까?”

그런 일에 대해선 조선 사람인 정약용이 더 잘 알았다.

“그 무슨 해괴한 소리냐? 그야 당연히 황제가 돌아와서 용서의 윤음을 내릴

때까지 여기에서 대죄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자기 삐졌다고 사신들에게 무한정 대가리 박고 있으라니 쪼잔함이 이미 경지

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었다. 시준은 이마를 짚으며 대답했다.

“그러면 시간은 좀 있겠군요. 알겠습니다.”

시준은 기랑과 함께 남관으로 직행했다. 거기에는 여러 심부름하는 사람이 오

갔지만 무슨 함구령이라도 내렸는지 시준이 실실 쪼개면서 내미는 여러 선물

에도 시큰둥한 반응뿐이었다.

끝내 러시아인들이 풀어놓은 ‘당나귀만한 아라사 개’, 그러니까 거대한 코카

시안 오브차카(Овчарка)에게 물릴 뻔하며 쫓겨나온 시준은 이를 갈았다.

“좋아. 이렇게 되면 좀 거친 방도를 쓸 수밖에.”

“죽여? 납치?”

“기랑아. 제발. 절대 총칼 뽑지 말고 일단 나 하는 거 보고 있다가 적당히 거

들어라.”

그러고 나서 시준은 남관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여기 묵고 있는 러시아 사

람들도 적지 않은 이상 오가는 사람이 없을 수는 없다.

시준은 영원성 지날 때쯤 우연히 보았던 마두 칠복(七福)이의 절묘한 솜씨를

한 번 재연해 볼 생각이었다. 칠복이는 자기들을 둘러싼 채 통행료를 요구하

는 청인들을 그 계책 한 번으로 놀래켜 흩어 놓았다.

과연 오래잖아 다른 사람들과 뚝 떨어져서 혼자 회동관 앞 골목을 거니는 남

자가 눈에 들어왔다. 청국 방물장수들에게 이것저것 손짓 발짓하며 잡동사니

를 사고파는 게 누군가의 수행원 같았다.

‘걸친 꼴이야 꽤 고급이다마는 내 눈은 속일 수 없지. 척 보기에도 얼굴이 판

판하고 미간이 넓으며 턱이 두꺼운 게 일깨나 하게 생겼군. 바로 종놈 관상이

렷다.’

시준은 마치 무리에서 떨어진 약한 동물을 노리는 맹수처럼 그 녀석을 사냥감

으로 정했다. 갑자기 튀어나간 시준은 그 한 스무남은 살이나 되었을 법한 남

자의 멱살을 잡았다. 시준의 유창한 관화가 속사포처럼 튀어나왔다.

“이놈! 네놈을 이제야 만나는구나. 지난해 사행 때 이 회동관에서 휘항(揮項,

털모자)과 은을 도적질해 간 서양 코쟁이 마적놈이 바로 여기 있었어! 이 어

르신이 네놈의 얼굴을 기억 못 할 줄 알고 다시 뻔뻔하게 돌아왔느냐. 마침

여기가 지엄한 황성이니 네놈을 당장 잡아다가 압송해야만 하겠다!”

심지어 기랑조차도 좀 놀랐을 정도이니 당한 녀석이야 말해 무엇할까. 그 러

시아인은 어어 하며 손을 내젓고 얼굴에 당혹감을 가득 담아 보였다.

원래 사신 숙소에서는 세계 각국의 하인들이 서로 도적의 재주를 뽐내는 게

일상이다. 국제도시 북경의 상인으로서 이런 일에 익숙한 방물장수는 한숨을

한 번 쉬고 시준의 허리를 껴안아 말렸다.

“장형, 참으시오. 황성에서 주먹질이라니 어디 될 말이오?”

시준은 그 청인의 팔이 너무 억세어 뿌리치지 못하지만 – 실제로는 배에 둘러

만 놓은 정도였다 – 이것만 풀리면 단매에 때려죽이겠다는 기세로 주먹을 허

공에 쥐어질렀다. 그리고 그 소동에 놀라 다른 러시아인이 점방에서 뛰쳐나왔다.

시준이 보니 나이 지긋해 보이는 노인이었다. 그가 뭐라고 말하며 다가오려

하자 기랑이 잽싸게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우당탕!

노인은 늘어선 좌판을 다 엎으며 요란하게 굴렀다. 빗이 날고 거울이 춤을 추

었다. 그 틈을 타 시준은 재빨리 그 젊은이를 끌고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상놈 경력 화려한 시준이 보증하는 순도 100% 종놈 관상인 만큼 그도 체구가

작지 않았으나, 시준의 이상하기까지 한 힘에 속절없이 끌려갈 수밖에 없었

다. 시준은 헐떡거리는 러시아인을 벽에 밀어붙이고는 곧 손을 놔주었다.

“자, 너무 놀라지 마시오. 러시아에서 외국까지 온 마당이니 프랑스어는 할

줄 알지요? 나는 조선에서 왔소. 긴히 할 얘기가 있어서 부득불 이런 것이니

무례를 용서하시길 바라겠소.”

그런다고 무례가 용서되면 세계에 전쟁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준의 유창

한 프랑스어는 전통적으로 프랑스 문화를 존중하는 러시아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무엇보다 이 미친 타타르족의 옆에 와 있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리는 녀

석이 옷 틈으로 슬쩍 칼날을 내비치는 바람에 러시아인은 시준을 용서할 수밖

에 없었다. 어차피 이 시대는 깃털만 스쳐도 고소하는 현대보다 사람들의 신

체적 접촉이 좀 더 끈끈하긴 했다.

“나는 모스크바 외교기록보관소(Московский главный архив)에 소속된 관리인

드미트리 니콜라예비치 블루도프(Дмитрий Николаевич Блудов)요. 조선이라면

청의 속방이 아니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요? 나는 그렇다 치고, 우리 장

군님에 대한 무례는 어쩔 셈인가!”

시준은 이자가 종놈이 아니라 외교 쪽 공무원이라는 사실에도 놀랐지만 장군

어쩌고 하는 말에 더 놀라서 골목 입구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허리가 아픈지 손을 얹고 낑낑대는 아까 그 노인이 들어서고 있었

다. 블루도프가 준엄하게 말했다.

“저분은 리투아니아 대공, 러시아 제국 육군 사령관 레온티 레온티예비치 베

니그센(Лео́нтий Лео́нтьевич Бе́ннигсен) 각하이올시다. 당신이 청 황제의 직신

이라 할지라도 이 일은 그냥 넘어가기 힘들 것이오!”

시준의 표정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허나 시준의 마음속은 자기 눈을 뽑아

버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요동쳤다. 도대체 왜 이런 고위급 인사가 얻어먹을

것 없는 변방까지 왔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작가의 말

1. 네르친스크 조약에서의 (만주어)조약문은 '중국의 성스러운 황제' 와 '아라사국의 차간 한'을 동렬에 명시하여 두 나라 군주가 대등한 존재임을 분명히 합니다. 정약용의 말대로 조선과는 입장이 많이 다르죠. 다만, 한문본에서는 러시아가 중국의 하위국인 것처럼 표기하는 등 이중성이 있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일반 청 백성들 중에서는 그런 거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박지원의 사신행에도 "귀국의 황제는 연호를 어떻게 쓰는가?" "우리도 너희 황제 모시고 너희 연호 쓴다" "조선의 군주는 중국과 대등한 황제가 아닌가?" 등의 웃지 못할 대화가 오가기도 했습니다.

2. 건륭제가 조선 사신을 우대해 준 흔적은 여러 곳에서 보입니다. 작중 나왔던 신속한 범죄 처리라던가, 조선 사신들 원로에 피곤하니 규례보다 일찍 돌아가게 해 준다던가 하는 것들이죠. 이때 항상 따라나오는 문구가 '조선은 다른 나라와 달라 중국과 한 식구이니' 라는 것인데 여기에서 대강 청의 조선 인식을 알 수 있습니다.

3. 이때는 '아라사'가 좀 다른 의미로 쓰였습니다. 당대 조선인들은 지식인이라 할지라도 아라사=러시아=나선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있던 건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박지원은 아라사=흑룡강가의 수렵부족 일파 로 알고 있었죠.

'아라사 사람들이 당나귀만한 큰 개를 데리고 다닌다' 는 것은 박지원의 기록인데, 이것이 북만주의 수렵민족을 이야기한 것인지 러시아 제국 사람을 이야기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작중에서는 같은 것으로 취급하였습니다.

그래서 러시아의 대표적인 대형견인 코카시안 오브차카로 추정하였습니다. 러시아 정교회가 중국에서 '러시아인의 특성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혼혈이 진행된 지 오래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오브차카도 들어왔을 개연상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4. 블루도프는 후에 백작위를 받는 러시아의 고위 공무원이고, 베니그센은 쿠투조프와 대립하였던 신성 로마 제국 출신 러시아 장군입니다. 블루도프에 대한 시준의 평이 궁금하신 분은 초상화를 한 번 찾아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하하.

두 사람이 이때 중국에 있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블루도프는 아직 젊은데다 실제로 이 시기에 모스크바 외교기록보관소에 근무했으니 중국에 올 수도 있지만, 나폴레옹 전쟁에서 활약하는 베니그센이 온 것은 순수하게 창작입니다. 다만, 다음편에 나오겠지만 베니그센은 작중 시점인 1810년에는 원 역사에서도 별다른 롤이 없었습니다. 짤렸거든요.

5. 작중 많이도 나왔지만, 이 시대는 한번 깔보이면 그대로 호구잡혀 털 다 뽑히는 게 당연한 시대라, 상대가 공갈쳐서 뭔가 우려내려 하면 이쪽은 더 큰 공갈을 치고 목소리 높이는 게 올바른 대처법이었습니다. 시준이 한 짓은 원 역사에서도 조선 사신들이 주로 책문에서 관세 흥정할 때(일전에 한 번 나왔었죠) 청인들이 야유하거나 고함쳐서 기세를 꺾으려 하면 험악한 마두 한두 명이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치던 공갈 수법입니다.

20. 기사지변(己巳之變)(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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