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19. 북경 가는 길(3)
이미 의주에서부터 누군가 한 번은 이 일로 시비 걸 것을 예상했던 정사 남공
철이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상국의 예충친왕(睿忠親王, 아이신기오로 도르곤)께서 열 가지 따르고 또 열
가지 따르지 않는[十從十不從] 법을 엄정히 세우셨으니 이로 본다면 중국 안
에서도 양(陽)은 (만주족의) 법도를 따르고 음(陰)은 따르지 않아도 되며, 귀
한 자는 따르고 천한 자는 따르지 않아도 되며, 선비는 따르되 도사와 중은
따르지 않아도 되오. 저들은 모두 상민으로서 사람[人]이라고 칭할 것이 아니
라 다만 백성[民]일 뿐인데, 장군께서 과히 개의할 것이 없소.”
남공철이 당장 의주에서부터 하인들더러 옷 갈아입으라고 호령하지 못한 이유
는 이공의 뜻 때문이었다.
왕은 청에 뭔가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굳이 싸운다는 생각까지는 이
공도 아직 하지 않았으나, 서양과 오가는 일로 뭐라 하거든 겁먹고 떨 필요가
없다는 것이 왕의 교시였다.
남공철이 하인들더러 옷 갈아입으라 하면 마두며 군교들이 눈치 못 챌 리가
없다. 하민들이야 무슨 생각이 있겠는가. 일껏 옷 한 벌 더 마련하는 것이 귀
찮고 비싸니 불평만 가득할 터이다.
그렇다면 이 일은 반드시 왕에게 들어간다. 그래서 남공철도 의주 옷 걸친 하
인들에게 아무 말 하지 못한 것이다.
다만 남공철은 쓸데없는 만용이라고 생각했다. 겁먹고 먹지 않고는 자신의 마
음에 달린 것이지, 남과 굳이 애써서 버성기려 대드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오
히려 공포의 증거다. 무서워하지 않으면 신경 쓸 필요도 없으니까.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청에게 작은 꼬투리 하나도 주지 않는 게 맞다. 조선 사
신단은 시작도 하기 전부터 외교적 부채를 안게 되었다. 남공철은 골치깨나
아프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지금은 잘 달래어 변명해야 한다. 성경 장군 정도면 일종의 전초전.
조선이 강경하게 나오는지 고개를 숙일 것인지 떠보려는 생각이리라.
부사 정약용도 옆에서 거들었다.
“중국에서도 촉(蜀) 땅 사람과 제(齊) 땅 사람의 옷 입는 법이 다릅니다. 북
경에는 비단 중국 사람뿐 아니라 이미 몽고 사십팔부(四十八部)와 토번(吐蕃)
이며 아라사의 사신들이 각자 기기묘묘한 옷을 입고 모였을 터인데 걸친 입성
은 다를지언정 천자의 만수를 경축하는 마음이야 어찌 다르겠습니까. 이 모든
것을 감싸 안은 하늘에 태양이 천자 하나뿐인 것이야말로 대국의 아량인가 하
오이다.”
화녕은 자신이 예상한 세 가지 종류 반응 중 조선 사신단이 중간 정도의 온도
를 보여주었다고 판단했다. 당장 사죄하며 하인들에게 옷차림을 바로하라 하
지는 않았지만 네가 무슨 상관이냐고 뻣뻣하게 굴지도 않았다.
굳이 적극적으로 비굴하지는 않으나 으레 그렇듯 천자와 대국을 추키고 죄 지
은 쪽을 낮추어 위기를 모면하려는 번국의 전형적인 태도다.
대충 자기라도 그랬을 것이라는 정도의 상식적 수준이었고, 그래서 화녕은 상
식적인 대응밖에 할 수 없었다.
“조선이 동방의 궁벽한 곳으로서 문예를 조금 안다고 하여 일 없는 선비들이
한인과 수작하며 기휘(忌諱)할 만한 소리를 쑥덕대는 경우가 많다고 아는데,
성경부에 들어오거든 밤출입이나 아문(衙門)에 일없이 드나드는 짓이 엄히 금
지된 바를 다시 일깨워 단속하십시오.”
남공철도 그러마고 약속했다. 어차피 부채 위에 청심환 얹어서 내밀면 황궁
문이라도 통과시켜 줄 것들이 말만 거창하다는 조롱은 물론 나오지 않았다.
심양에서는 별일이 없었다. 상대의 헛소리가 정말 헛소리일 경우라도 그 사실
을 면전에서 보여주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태도다.
조선 사신단은 알아서 조금 더 조심했고, 시준 또한 심양에는 북경에서 도태
된 상인이나 유리창에서 속여먹지 못할 하급의 가짜 골동품이 주로 온다는 사
실을 반나절 만에 파악한 다음 얌전히 담배나 팔았다. 여기서는 큰 거래를 할
것이 별로 없었다.
심양에서 요동을 통과해 산해관, 그러니까 장성을 지나면 북경이다. 요동은
고조선부터 시작해 한나라 공손씨, 고구려 등 독립 세력이 다스릴 수밖에 없
는 험한 변방으로 여겨져 왔다.
이곳을 안정적으로 정복한 왕조는 고대에 한과 당 정도뿐이다. 이유야 여러
가지 있지만 지형적 측면에서 말하자면 워낙 진군과 주둔이 불편해서가 컸다.
이 요동은 ‘한쪽 발이 빠져서 빼내려 다른 발을 디디면 그 발이 빠지고 마침
내 몸 전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시체도 못 찾게 되는’ 뻘밭으로 악명이 높
다. 힘센 노새며 말을 끌고 와도 짐승과 사람이 같이 버둥거리다 죽는 일이
허다했다.
당태종이 고구려를 칠 때 친히 나뭇짐을 져 날랐다는 게 허튼소리가 아닌 것
이다. 물론 지금은 그럴 계절이 아니지만, 시준 역시 청이 막대한 국력을 아
낌없이 퍼부어서 이 요동에 장대한 나무다리를 놓은 이유를 알 만했다.
정약용이 말채찍으로 지금 지나가고 있는 다리 난간을 가리켰다.
“과연 홍담헌(홍대용) 선생의 말대로다. 이리 반듯한 나무판자를 한 치의 어
긋남 없이 이백 리나 쌓아대어 위로 황제의 성경부 행차를 잘 모시고 아래로
조공 행렬도 편리하게 하였으니 정말로 대국의 틀거지는 당해 내기가 어렵구나.”
그러고는 시준을 돌아보았다.
“네가 일전에 말하기로 좋은 나무를 베어대는 산업은 아라사에 있다 하였는데
중국과 비교하여 어떨 만하냐?”
시준은 무슨 소리인가 하다가 일전 아우스터리츠의 일을 떠올렸다. 이강회가
말했던 삼나무 밧줄은 러시아의 주요 수출품이다.
“아라사는 그 땅을 차지한 지 얼마 안 되어 인민이 그렇게 많이 살지 않는데,
나무야 사람에 개의하지 않고 옛날부터 있었으므로 중국보다 훨씬 광대한 땅
전부가 논밭이고 가옥이고 없이 죄 나무뿐입니다. 그래서 나무가 많은 것이지
요. 그렇다 하더라도 이렇게 장인과 목수를 동원하여 길을 쌓는 솜씨와 여력
은 아라사가 중국에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서양인들은 쇠로 길을 깐다고 네게 들었는데?”
시준은 성문종합영어 핑계 대고 아무거나 아는 척 떠들어댔던 과거를 후회했다.
“제가 영길리국 사람들에게 듣자 하니 이제 경도(京都) 난돈(런던) 부근에서
시험해 보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보다 뒤처지는 아라사국이 쇠로 나라의 서쪽
끝과 동쪽 끝 수만 리를 연결하려면 아마 백 년은 지나야 할 겝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완전 개통이 1916년이니 백 년도 더 걸리는 셈이다. 정
약용에게는 백 년 만에 수만 리의 길을 깔 쇠를 캘 수 있다는 것이 더 놀랍기
는 했지만.
“아마 10년 전만 같았어도 그 많은 돈을 들일 일이 무엇이냐고 탄했을 터이
나, 나도 요사이 영길리국을 보고 알게 되었다. 교통을 편리하게 하면 필경은
그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오기 때문일 테지. 돈을 벌자고 하면 사람은 못 할
일이 없구나.”
사람이 꼭 자본의 논리로만 행동하는 건 아니어서 개척이 반드시 부를 가져다
준다고 하기에는 반례가 많았다. 특히 가끔가다 이성이 있는지 의심스러워지
는 러시아인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시준이라면 바이칼호 위에다 철도를 깔자
는 안을 제출한 놈을 호수 밑에 묻어 버렸으리라.
하지만 시준도 역시 보통의 역사 교육을 받은 사람인지라 고개를 끄덕이고 말
았다. 철도 하면 산업 혁명의 상징이 아닌가.
시준은 정약용이 이공의 신하라는 점을 잊지 않고 적당히 호의적으로 들리는
대답을 해 주었다.
“우리 성상께서 이용후생(利用厚生) 하시려는 도가 지극하므로 곧 우리나라에
도 그런 것을 설치하라 명하실 수 있겠지요.”
그런데 정약용의 표정이 좀 이상했다. 그는 한동안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글쎄다. 나는 잘 모르겠다. 서양인들이라고 하여 처음부터 그 쇠길이 있지는
않았을 터. 길이란 것은 경(徑)·진(畛)·도(途)·도(道)·로(路)의 다섯 가지 단
계로 차차 넓어지는데 처음에는 짐승이 오가다 풀을 밟으며, 그 뒤로는 풀독
에 다리 쓸리지 않으니 사람이 다니고, 그러다가 고관의 수레가 있게 되거나
군량을 날라야 하면 역을 부려 판판하고 넓게 고르는 법이다. 그렇게 날라댈
것도 별로 없고 누가 조공하러 오지도 않는 우리나라 처지로야 탐낼 것이 아
니야. 기둥이 썩어가는 가난한 집에서 기왓장 수백 개를 준대야 무엇에 쓸 것
인가? 불러올 것이 기껏해야 도적밖에 더 있겠는가.”
정약용은 복잡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치 누가 듣는 사람 없나 살피
는 듯했다.
“대본을 외면하고 말류를 살찌우는 것은 결국 눈속임이다. 너도 이 다리를 지
금 걷고 있지만, 황제가 정말 칙명으로 모으고자 하면 어디 나무나 구리가 모
자라겠느냐? 그러나 청국은 영길리만 한 대박을 만들지 못했다. 눈으로 보이
는 대박거포는 그 끝으로 나타나는 외형일 뿐이요, 그 안의 정예한 수병과 배
다루는 법, 파도와 싸우는 법, 돛줄 당기고 푸는 법, 물길 잡는 법을 알기 전
에는 다 소용이 없다. 나는 그 불랑국 사람들의 큰 배를 못쓰게 된 것이 차라
리 다행이 아닌가 싶구나.”
시준도 동감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정약용은 지금 기초적 산업 역량 없이 보
이는 것만 따라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소곤거리던 정약용은 서둘러 말을 마무리했다.
“돌아가거든 즉시 그 차관 건은 취소하도록 진언해야겠다. 용병에 있어서 먼
저 해야 할 일은 군포의 유실이 없게 하고 있는 군정을 잘 조련하는 사업이지
당장 불랑국이나 영길리국의 붉고 푸른 옷 입고 서양총 멘 군사를 줄 세우는
일이 아닌 것이야. 하물며 나라에 빚이 생기는 바이겠느냐.”
시준이 슬쩍 물었다.
“조정의 중론이 다 그와 같습니까?”
“모르겠다. 허나 오기 전에 이판 대감(이서구)께도 인사 드리고 왔는데, 먼저
이용이 있고 그다음에 후생이 있으며 그런 연후에야 상감께서 바라시는 강대
한 군병과 하늘 같은 위엄도 있는 것이라는 점은 동감하였다.”
이공이 등용한 백탑파 신하들은 이공의 정책에 대해 부분적으로 찬성하였다.
노론이 전체적으로 반대하는 점을 고려하면 그나마 큰 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이공의 정책은 조선 신료들의 우려대로 근본이 아니라 말류를 베끼는 것
이라서 문제였다. 지금 조선이 마주한 당면 과제는 흉년 해결이지 군사력 보
충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 지금 왕이 한 것 중에 소 발에 쥐 잡는 꼴이나마 제대로 된 일은
의주감자 정도다.
왕의 감자 적극 장려를 신하들이 방해하는 바람에 알음알음 몰래 심는 형식으
로 퍼져 나가고 있는 감자는 세곡 제도를 엎어야 하지는 않을 정도로, 그러나
백성들이 허기는 약간 면할 정도로 전파되고 있었다.
나머지 일, 그러니까 전면 개항과 차관 도입 및 함선 수입 시도 등은 심지어
실학자들도 반대했다. 오히려 지금은 군사에 투자 안 해도 되는 사세를 감사
히 여기며 백성들 먹여서 목숨 붙여 놓는 일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이다.
허나 왕은 위태위태한 외교로 군사적 위기를 자초했고, 그것을 핑계로 또 강
병 타령을 하고 있다.
고래로 강력한 병사를 원한 군주는 많았지만 그게 정말로 외적 때문인 적은
별로 없었다. 있었다고 해도 외적이 물러간 다음에는 마찬가지다. 그 군대의
총칼은 반드시 신하들, 그러니까 자기 백성들을 향하리라.
그런 속뜻을 알아들은 시준은 아무래도 홍경래의 난이 더 큰 규모로 일어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홍경래가 가진 무력도 약간 상승되었지만, 왕이 진짜 프랑스인들을 구슬려 단
지 천여 명 규모의 서양식 군대라도 가진다면 왕은 반드시 그걸 시험해 보고
싶을 것이다. 평안도에는 홍경래의 난 당시 관군의 대학살에 비견할, 어쩌면
그것보다 더할 지옥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시준은 자신의 멍청함에 경악하고 말았다.
‘잠깐, 그렇다면 왕은 어쩌면 반란을 조장할 수도 있다! 왜 이걸 떠올리지 못
했지?’
자신의 힘을 보여주고 더 많은 군대를 보유하며 왕권을 집중시키는 명분으로
반란보다 더 적합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약용이 일러준 대로 만약 그 또
라이 같은 왕이 조선의 프로이센화를 결심했다면 못할 것도 없는 짓이다.
원 역사에서처럼 평안도에 대한 차별 대우와 학대를 반복하기만 하면 된다.
아니,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 이 흉년이 지속되면 반드시 어디에서인가 반란
이 난다.
서울에서 흉년에도 불구하고 시준의 장사가 잘 된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흉년
일수록 쌀값이 치솟으니 권력자들은 더욱 심하게 착취를 계속했고, 그래서 백
성들은 굶어 죽어도 서울 양반들은 더더욱 부유해졌기 때문이었다.
시준은 다급한 얼굴로 동쪽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21세기가 아니라서 집에 급
한 일 생겼다고 따로 비행기 표 끊어서 돌아갈 수도 없다.
돌아가면 재산 상당 부분을 잃는 무리수를 감행하더라도 도망쳐야 한다. 사태
는 시준이 여태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화급했다. 시준은 홍경래가 제발 영국
을 과소평가하지 않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시준의 생각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실보다 조금 더 비관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단 이공은 아직 반란을 인공적으로 일으켜서 제압하겠다는 생각까지는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려면 일단 서양식 군대를 완성해야 하는데 아직은 먼일이었
다. 게다가 시준이 반란군이라고 착각하는 군대는 어디까지나 이공 자신의 예
비 근위대였다.
또 영국으로 말하면, 영국은 이미 홍경래뿐만 아니라 조선 조정 전체의 열렬
한 관심을 받고 있었다. 시준이 바라는 대로 조선의 그 누구도 이제 영국의
군사력을 과소평가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암허스트 남작 윌리엄 피트의 함대가 강화도 앞바다에 나타났기 때
문이다.
동인도 회사의 필사적인 설득과 공작 덕분에 암허스트 남작이 ‘귀찮은 원주민
들의 쪽배’를 즉시 침몰시키지는 않았다. 그는 문명인다운 무한한 인내심을
발휘하여 조선에서 접촉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 흉흉한 분위기는 같은 인간이라면 모를 수 없었다. 정약용도 없고
시준도 없는 조정에서는 대체 사신으로 누가 가야 할지도 찾기 힘들었다.
지중추원사 조제프 푸셰는 즉시 떠오를 만한 인물 중 하나였으나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외국인이 조선을 대표해서 나간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조언자로서 포
함시키기에도 껄끄러웠다. 암허스트 남작은 ‘프랑스와 내통하여 영국의 우의
를 배반’한 혐의를 조선에 묻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 중요한 문제 때문에 사신단 인선이라거나 조제프 푸셰의 위치 따위
는 뒷전으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영안부원군 김조순은 이제야말로 자기가 홧병에 죽게 생겼구나 하며 비변사에
서 탁자를 내리쳤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서도의 간민(奸民) 도적 떼를 조정에서 돕고 잠상
을 통해 앵속(아편)을 몰래 팔아 동인도양행을 속였다니!”
암허스트 남작은 평안도의 무장 세력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조선이 동인도 회
사의 약점을 잡기 위해 마약을 수출하고 장자도 습격과 영국 재산의 탈취를
목적으로 군함 수입을 기도했으며 또한 프랑스와 협조 관계를 맺었다고 말하
고 있었다.
그 영국에게 마약 팔았다고 비난받는 신세가 된 조선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김조순과 신하들이 특히 주목한 부분은 ‘평안도의 무장 세력’이었다.
다른 건 그렇다 치고 그 부분은 도저히 누명이라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왕이
군대 군대 노래를 부른 게 대체 몇 달째던가. 조선 신하들이 친위 쿠데타라는
말은 몰랐지만 왕이 노리는 바는 뻔했다.
천하의 김조순도 이제 화를 억제하기 힘들었던지 왕에게 당장 달려갈 태세였
다. 비변사 당상들이 그를 억지로 말려 앉혀 놓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렸다.
심지어 박윤수마저도 이 일에 대해서는 왕을 변호하지 못했다.
비변사 당상들은 ‘설마 네가 그러지는 않았겠지만 영길리국 놈들이 이렇게 무
엄한 모함을 지껄이더라’라는 투로 보고서를 쓰기 시작했다. 상대가 자신을
족치려 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공손하게 섬겨야 하는 것이 군주라는 존재다.
신하들을 계몽하기는커녕 그들의 신뢰를 거의 완전히 잃어버린 이공이 비변사
의 보고를 받아든 때는, 시준이 드디어 북경에 입성했을 무렵과 일치했다.
말할 것도 없이 난쟁이 존의 일은 동인도 회사의 최고 기밀 정보다. 그리고
암허스트 남작은 그것을 정면으로 풀어 버렸다.
앞서 레디 소령은 암허스트 남작에게 경고했다.
“이 정보는 조선 정계에 큰 파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난쟁이 존이 반란군인
지, 아니면 왕의 측근인지, 혹은 조선왕의 의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황에
서 이런 도박은 위험합니다.”
남작은 코웃음을 쳤다.
“정계? 자네들은 아시아에 너무 오래 있었던 모양이군. 이것 봐. 시골에서 쥐
잡이를 할 때 쥐구멍에 대해 세밀한 정치 공작을 시도하던가? 야만족의 정치
체계는 극히 단순해. 야만스럽기로는 아시아인과 거기서 거기인 프랑스인들을
보자고. 전제 군주와 그에 알랑대는 귀족, 그리고 착취당하는 절대다수의 노
예. 이게 끝이야. 그리고 정책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신분 사이에서 결정되지.
우리는 그것만 흔들면 된다는 말이야.”
암허스트 남작은 배 위에 마련된 의자에 길게 누워 기지개를 켰다.
“조선 왕이 왜 허리띠에 문서를 감춰 보냈을까? 미개인들의 주술 의식인가?
하지만 내가 아는 바로는 그런 종류의 의식은 없어. 그건 비밀이 필요했기 때
문이야. 그렇다면 왜 비밀이 필요했는가?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귀족층
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는 증거야. 조선왕의 의도는 이만하면 명징하지 않은
가. 왜 판단을 여태 못 한 것인지 자네들 머리가 의심스럽군.”
선 채로 남작을 내려다보던 레디 소령의 얼굴이 굳어졌다. 남작은 나른하게
말을 이었다.
“참고할 사례는 역사에 차고 넘쳐. 당장 보나파르트도 의회에 병사들을 들여
보냈었지. 국왕이 하려는 것은 신하들에 대한 숙청이야. 국왕을 도울 수도 있
겠지만, 이렇게 쉽게 들킨 것으로 봐서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큼 현명하다고
보긴 힘들겠군. 하지만 미개인들에게 국왕은 신앙적 존재니 무시할 수도 없네.”
“그렇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지. 항상 약자를 도와 강자를 뒤엎는 게 통쾌하지 않겠나?
쥐구멍에 불을 던져 놓고, 혼란한 쥐새끼들이 어떻게 무리짓는지 보자고. 왕
이 성공적으로 신하들을 진압하는 것 같으면 귀족들과 손잡고 조선 정부를 뒤
엎어 버리고, 만약 혁명의 조짐이 있으면 불충한 역적들의 목을 베는 거지.
어느 쪽이든 군대가 저들의 수도에 입성할 좋은 기회야. 열세인 처지에서 간
절한 도움을 받게 될 세력은 그게 어느 쪽이든 우리를 무시하지 못할 테고.”
“런던에서 군사 행동을 결의했습니까? 그러지 않았을 텐데요.”
레디 소령의 퉁기는 듯한 말은 남작을 불쾌하게 했다.
“일개 회사의 직원이 참견할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말해 두는 편이 옳겠
군. 그리고…… 그래, 자네 말대로 의회나 국왕 폐하께서 전쟁을 결심하지는 않
았어. 저 미개국을 상대로 전쟁 선포라니 그것도 웃기지 않는가? 사자는 토끼
를 잡는 데도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사자가 토끼 상대로 도전의 포효를 지르
겠는가? 우리가 하는 것은 어느 쪽이 됐건 치안 활동이야.”
“치안이요?”
“그래. 그 개항장, 노루섬이라고 하던가. 거기에 영국인들이 있잖아. 우리는
그들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지.”
레디 소령은 궤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영국군이 수도에 들어갈 이유가 전
혀 없다. 노루섬은 조선 수도에서 200마일이 넘게 떨어져 있으니까.
“만약 조선이 거부하면? 고래로 외세의 위협은 내부 단결의 좋은 수단이었습
니다. 그들은 뭉쳐서 저항할지도 모릅니다.”
“그래? 어디 저항해 보라지. 토끼가 이빨과 발톱을 세우면 과연 사자를 이길
수 있을지 난 그게 정말 궁금하군. 자, 소령. 할 말 다 했으면 이만 가 주겠
나? 이제부터 조선인들을 어떻게 어르고 겁줘서 목표를 성취해야 할지 생각
좀 하고 싶으니 말일세.”
남작은 싱긋 웃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 그리고 가는 길에 선실에 얘기해서 차도 한 잔 부탁하네. 중국 근처이니
좋은 차를 많이 구할 수 있겠지. 핫핫!”
레디 소령은 대답하지 않고 갑판을 짓밟듯 걸어갔다. 본국 정부는 지금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었다. 나폴레옹이 일으킨 전화는 아직 끝나지도 않았을뿐더
러, 지금 영국은 세계를 직접 지배할 역량이 아직 부족하다. 그래서 동인도
회사가 있는 것이다.
레디 소령은 이 얼간이들이 군대로 다 때려 부수면 그대로 모든 것을 빼앗아
오는 게 가능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지금 이 젊은 녀석은 마치 세심하게 설탕과 우유, 계란을 늘어놓은 부엌에 난
입하여 멋대로 그릇을 휘젓고 다니는 어린아이 같았다. 그래서는 가장 잘 되
어 보아야 맛이 끔찍한 케이크를 먹게 될 뿐이다.
혹은, 부엌에 불이 나서 다 망치게 될 수도 있다.
지금 암허스트 남작이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조선의 종주국
인 청이 바로 옆에 있다. 조제프 푸셰나 정약용이 평가한 것처럼 청의 저력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게다가 이곳은 그들의 앞마당이다.
레디 소령은 이번 일에서 좋은 예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작가의 말
1. 남공철의 말은 십종십부종이라고 해서 도르곤이 명 유민의 항복을 받을 때 약조했던 사항입니다. 강남 사람 김지준(조선인 아닙니다)이 제안했다고 전해지는데, 내용이야 인터넷에도 많이 있고... 작중에서 말한 바 그대로입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건, 여기에서 한족의 마지막 몸부림을 볼 수 있다는 겁니다.
대체로 국가 지배와 관련있는 상부/정규적 사항은 만주족화하고, 이차적이거나 하부층의 일은 한족의 습관 그대로 두게 합니다. 관직명이나 문자, 언어 같은 여진족 수준으로는 감당이 안 되어서 제외한 예외도 있었지만요.
이는 중요한 점을 시사하는데, 만주족은 한족의 상류층(만주족화하기로 규정된 남자/관리/유가 선비/성인 등)을 지배하고 한족 그대로 있는 하류층(여자/아이/노복/도사와 중 등)은 '(만주족의 습관을) 따르지 않게' 함으로써 한족이 그대로 지배한다는 점이죠.
만주족의 습관을 동일하게 따르면 이 두 계층을 동일하게 취급한다는 의미가 되며, 한족적 지배 질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한족들은 이를 용납할 수 없었겠죠. 일종의 봉건주의적인 의도가 엿보입니다. '네가 우리를 지배하는 건 수용하겠지만 내가 지배하는 재산을 강탈하지는 마라' 정도의 타협이겠죠.
20. 기사지변(己巳之變)(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