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19. 북경 가는 길(2)
시준은 눈과 함께 머리를 같이 굴렸다.
아무래도 길이 급하다 보니 전체적인 분위기는 살벌했다. 저편에서는 압록강
건널 나룻배가 늦는다며 애먼 의주 군뢰를 잡아 형틀도 없이 선 채로 바지 벗
겨 채찍으로 후려치고 있었다. 얼마나 마음이 바쁜지 알 만했다.
한 관속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시준도 예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는 양이별장
백인철이었다.
그는 과거 세운 공 때문에 서양 오랑캐 잘 알기로 이름났다. 불랑국 사절을
조선에서 가장 처음으로 어루만져 맞아들인 따뜻한 평안도 남자 백인철은, 용
천부에서 아우스터리츠의 해체에 참여하다가 사람 손 모자란다고 여기로 끌려
온 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관대한 양이별장이라도 바쁘다 보니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백인철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태도로 기랑을 가리켰다.
“너는 뭔데 그리 멀뚱히 서 있느냐. 급히 출발해야 하니 어서 옷을 죄다 까뒤
집지 못할까!”
기랑은 안절부절못하면서 자기 옷소매를 붙잡았다. 시준이 보기에는 옷을 벗
으려는 동작이라기보다 소매 속에 있는 권총과 비수를 꺼내 백인철을 쓱싹해
버리고 도망치려는 것처럼 보였다.
덩달아 마음이 급해진 시준은 반쯤 벗은 차림으로 백인철에게 다가갔다. 그의
손에 들린 웃옷에는 들켜도 괜찮은 물목이 있었다. 시준은 걸으면서 급히 주
머니를 뒤져 담배 쌈지를 꺼냈다.
“잠깐, 별장 나리. 얼굴 좀 봅시다. 나 그 의주 홍씨네 사람이오. 저번에 한
번 뵈었지요?”
시준이 꺼낸 마리화나는 과연 향정신성 약물답게 백인철의 정신에 깊은 영향
을 끼쳤다. 백인철은 시준의 용건이 매우 중요한 것이리라고 판단했다.
“이거 만상 서장관 아닌가. 무슨 일인가? 자네라면 굳이 이런 데에서 있지 않
아도 되는데.”
“우리 선생님이 법을 엄정히 지키시는데 제자가 하찮은 위세를 부릴 수야 있
겠습니까. 잠깐 저쪽으로.”
시준이 그러면서 그 비싼 ‘평안도 담배’를 흔들자 백인철은 등불에 이끌리는
부나방처럼 흐느적거리며 따라왔다. 시준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일전 불랑국 사람 일로 뵈었을 때 인사드렸어야 하는데 그때는 워낙 경황이
없었소이다. 용서하시지요. 우리 선생님께서 그 일을 맡았던 것은 기억하시죠?”
“그야 그렇지.”
“그런데, 외국 사절을 지혜롭게 맞이할 만큼 사세에 밝고 민첩하신 양이별장
께서는 금방 아시겠지만, 그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소이다. 하필 불랑국 사람
들이 서울 들어간 지금 진하사가 출발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소이까?”
‘이유가 뭐긴 뭐야, 황제 생일이 지금이니까 그렇지.’라는 말은 백인철이 할
수 없었다. 시준이 던진 미끼를 거하게 물어버린 그의 머릿속에서 오만가지
비논리적인 국제적 음모가 창조되었다.
“함부로 혀를 놀렸다가는 바로 삼족이 멸해질 일이라 별장께 아뢰지 못하는
것은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저 아이는 우리 선생님께서 마음으로 믿는 제자인
데, 국가의 대사에 긴한 심부름을 하러 왔습니다. 상놈으로 꾸민 것도 그것
때문이지요. 지금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그 일’이 백일하에 드러났다가는 큰
일이 납니다. 별장께서는 무식한 백성이 아니니 다 알아들으시겠지요?”
백인철은 그림자 속에서 사직을 위해 봉사하는 비밀스러운 충신의 역할에 취
해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 이런 말을 듣고도 사정을 다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양이별장의 자격이
없다. 백인철은 본인은 진심으로 참말이라고 믿는 종류의 거짓말을 하며 고개
를 끄덕였다.
“물론 다 알아들었네. 좋아. 내게 맡기게.”
시준은 마침 그 말 잘했다는 듯 궐련 한 움큼을 내밀었다. 서울에서는 같은
무게의 은으로 쳐 준다는 ‘평안도 담배’다. 백인철도 입 무겁고 노련한 달인
답게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 넣었다.
돌아가 보니 그사이 짐 검사하던 또 다른 군졸들이 기랑이를 닦달하려 뛰어오
는 게 보였다. 시준이 백인철에게 눈짓하자 백인철은 급히 가서 호통쳤다.
“너희는 어서 달려가서 나룻배에 삿대나 제대로 되어 있는가 보거라! 이쪽은
내가 다 끝내 놓았다. 어이! 거기 있는 놈들 다 옷 입어! 이 굼벵이 같은 놈
들. 빨리빨리 가서 어른들 업어다가 뱃전에 태워 드리라는 말이야!”
‘쟤는 왜 안 벗겨?’ 하며 항의하는 하인들은 없었다. 보나 마나 초짜 녀석이
괜히 옷에 뭐 숨겨 왔다가 당황하여 뇌물이나 찔러 줬으리라는 거야 누구의
눈에도 명약관화했다. 굳이 말채찍에 맞을 각오로 나서서 사내 벗은 몸뚱이
따위 보고 싶어 하는 자도 있을 리 만무했다.
시준은 재빨리 기랑에게 눈짓했다. 시준을 보고 있던 기랑은 고개를 끄덕였
다. 기랑도 말이 없을 뿐이지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스르륵 빠져나가 다시 정약용에게 무리 없이 합류할 수 있었다.
백인철이 호통친 것처럼 하인들에게는 중요한 역할이 있다. 자기가 모시는 상
전들을 업어다가 배에 태워주는 일이다. 하인이 없는 가난한 관리는 중국인
뱃사공의 투덜거림을 들으면서 업혀야 한다.
직접 배를 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다면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배에 타는 일
은 쉽지 않다. 배가 일정 거리 이상 육지에 가까이 다가오면 경사면에 닿아
좌초되므로 어느 정도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그 사이는 물이기 때문이다.
게임처럼 편하게 군함에서 바로 병사를 내려놓지 못하고 보트나 상륙정을 써
야 하는 이유다. 바로 그래서 나루와 부두가 있는 것이지만 대규모의 사신단
이 이용할 만한 나루터는 여기 존재하지 않았다.
보트 수준밖에 안 되는 나룻배이긴 하나, 물 또한 바다와 비교할 수 없이 작
은 강이기에 그 애로는 똑같이 작용했다.
시준은 먼저 정약용을 업어다 배로 건네주었다. 아까 혼자서도 잘해요 타령
하던 정약용이 당연하다는 듯이 업히는 게 열 받았다. 하기야 당연하기는 하다.
가을도 깊어서 그런지 물이 제법 찼다. 돌아온 시준은 종아리가 뜨끔한 것을
느끼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걷어붙인 다리에 진흙인 척하며 들러붙은 거머
리가 꿈틀댔다.
전생이었다면 비명이라도 질렀을 터이나 지금은 모기를 본 정도의 귀찮음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시준은 보통 궐련을 꺼내 한 모금 불붙여 빨고는 그것을 거
머리 위에 내리눌렀다. 곧 벌레는 떨어져 나갔다.
시준은 아까 사람 고생시킨 기랑이에게 툴툴거렸다.
“넌 뭐 하냐. 빨리 짐말 데리고 강 건너야지. 배가 모자란 모양이니 그냥 말
에 올라 건너라.”
말은 헤엄을 아주 잘 치는 동물이다. 그래서 말에 의지하면 배 없이도 강을
건널 수 있다.
단지 얼른 떠오르는 것처럼 우아하게 똑바로 헤엄치는 건 아무 짐도 없을 경
우고, 거추장스러운 게 많이 달려 있는 이런 경우에는 보통 자꾸 옆으로 기울
어지기에 수마술(水馬術)에 익숙하지 않다면 옆에서 안장을 잡고 있는 게 낫다.
기랑은 머뭇대다가 자기 바지를 가리켜 보였다. 시준은 다 지겹다는 표정이
되었다. 하긴 지금이 여름도 아니고 옷이 물에 심하게 젖으면 갈아입어야 하
는데, 이 사람 많은 행렬에선 쉽지 않을 게 분명했다.
“에휴. 그래. 내가 하마. 넌 배에 타서 선생님 모시고 와라. 진짜 누가 견마
꾼인지, 원.”
시준은 그러면서 담배를 버리고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기랑은 그 손에서 부
드럽게 담배를 낚아챘다.
시준이 만든 궐련은 담배 오래 피우는 조선인들에게 맞추어 현대보다 굉장히
길고, 담배 또한 한국처럼 피우다가 생각 없이 꺼서 버릴 만큼 싼 물건이 아니다.
그러므로 기랑이 그런 행동을 한 것은 나름대로 시준에게 끼친 폐에 대한 배
려였다. 허나 시준은 기랑이 그 담배를 자기가 입에 문 채 양팔을 내밀자 어
이가 승천하는 기분이었다.
“네가 내 상전이냐? 내가 어? 창피해 갖고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이래 봬도 종
이품 영감…….”
“미안, 업어 줘.”
조선 시대에 여자아이 혼자서 남장하고 살아야 했을 그 삶이 얼마나 참혹했을
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래서 시준이 아는 기랑은 대단히 자존심이
높고 오기가 있는 친구였다.
정신력이 강하다는 평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다. 그보다는 가진 게 그것밖에
없었던 탓이 크다. 기랑은 치킨 외에 무엇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기랑이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더 시간낭비 하기 힘들었던 시준은 등을 돌려 대었다. 기랑이 업히자 긴장으
로 딱딱해진 몸의 감촉이 느껴졌다.
기랑은 정약용보다 훨씬 가벼웠다. 시준은 귀 옆에서 타오르는 담뱃불에 데지
않도록 주의하며 기랑을 업어다 주었다.
정약용이 의아하게 바라보았으나 시준이 알아서 하는 일이겠거니 싶어서 별다
른 참견은 하지 않았다. 그는 같이 배에 탄 다른 관리들과 논의할 일이 많았다.
기랑은 내리자마자 옷섶을 꽉 움켜쥐더니 생각났다는 듯 담배를 돌려주었다.
허나 시준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남령초 안 태운다. 그건 원래 팔려던 거야. 너 다 먹거라.”
전생에서는 그도 담배를 피웠지만 조선 담배는 입맛에 영 맞지 않아 지금은
청정한 상태였다. 반면 이 당시 조선은 거의 전 인구가 흡연자다.
의외로 지금 왕 이공은 담배를 싫어했는데, 그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아이들도 젖만 떼면 담뱃대부터 무는’ 세태를 한탄한 바 있다. ‘이거 진짜 약
맞긴 하냐?’라는 정확한 의심을 제기하기도 했다. 과연 계몽군주의 이름이 아
깝지 않았다.
그런 세상이라 기랑도 담배가 처음은 아니었다. 사냥하는 데에 냄새가 방해되
어서 평소에는 잘 안 피우기는 했지만.
기랑은 담배에 참 안 어울리는 얼굴로 시준을 바라보았다. 시준은 그 표정이
혼난 강아지 같다고 생각했다. 시준은 고향에 있는 – 그러니까 바로 코앞에
있는 – 지유를 생각하며 애써서 몸을 돌렸다.
“중국에서 만나자.”
그렇게 정약용과 제자들은 조선 국경을 넘었다. 전생에서는 절대로 갈 수 없
었던 방향으로의 중국 입국에 기묘한 감회를 느낄 법도 하건만, 워낙 험하게
구른 탓에 그런 일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현대 한국의 공무원은 대개 2년에 한 번씩 자리를 바꾼다. 그리고 그 업무 사
이에는 연관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
조선도 예를 들어 박윤수 같은 사람이 육조 판서를 다 한 번씩 하듯, 행정직
이란 게 그런 것이다. 중요한 건 전문성보다 유틸성이었다.
그래서 시준도 민원 일이라거나 행사 일만 해 본 건 아니다. 그도 전생에 높
으신 분의 비서실에서 근무하며 변덕스러운 윗분들 보좌한 경험이 있다. 이번
일도 굳이 말하자면 상관의 해외 출장 보좌라고 할 수 있을 터이다.
물론, 일은 대한민국 시절보다 몇십 배는 더 힘들었다. 대부분의 난관은 휴대
폰이 없다는 사소한 문제에서 발생했다.
정약용이 하인에게 보고하고 다닐 리도 없었으므로 어딘가 급한 일 생기면 훌
쩍 없어지는 일이 잦았고, 그럴 때마다 시준과 기랑은 알 만한 사람에게 물어
물어 – 그것도 건방지단 소리 듣지 않게 물을 사람 잘 골라야 했다 – 부사를
찾아다녔다.
반대로 시준이나 기랑이 말먹이를 준비한다거나 무슨 소식을 후열에 전한다던
가 하여 자리를 비웠을 때 그냥 가버리는 일도 허다했다.
위에서도 어차피 천것들이야 이따 필요할 때 고함쳐 보고 없으면 돌아왔을 때
채찍으로 몇 대 갈기면 되는 일이니 별 신경도 안 썼다.
이러니 사람 명단이 안 맞는 건 물론이고, 시간 맞춰 일정을 진행한다거나 하
는 따위는 꿈도 꾸지 못했다.
뭘 두고 오거나 잃어버려도 어디서 어떻게 유실되었는지조차 찾을 길이 없었
다. 시준이 보기에는 사신단이 가진 여러 물목 중 한 2할 정도는 벌써 어디로
사라진 것 같았다.
21세기 사람으로서는 정신이 붕괴해 버릴 만한 업무 혼돈이었다. 슬기로운 조
선 생활도 나름대로 오래되었다 자부하던 시준 역시 그냥 품속에 있는 그거
꺼내서 피워 볼까 하는 생각이 간절해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시준은 좀 더 건전한 방법을 택했다. 지금 묵묵히 고삐 잡고 걷는 기
랑을 힐끗 본 시준은 친구를 모범 삼기로 했다.
시준은 보좌관이 마땅히 기억해야 할 여러 가지 사항들을 전부 잊어버렸다.
지금 그는 이따가 물건 안 맞는 것을 능란한 붓장난으로 다 보완해야 할 서리
며 관속이 아니라 그냥 심부름꾼이다.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 없다.
“연경에 들어가면 그곳 관헌이나 각국 사신들에게는 말을 걸지 말고, 네가 만
나도 흠 없을 장사꾼들이나 점방 주인들에게 사세를 좀 얻어 듣도록 해라. 필
시 조선국에 대해 도는 말이 있으리.”
어쩌고 하는 정약용의 당부도 그냥 무시할 뿐이었다.
지금 압록강에서 성경부(심양)까지 사람들 짐 날라다 주는 일로 먹고사는 중
국 사람들 역시 조선 사신단의 외교적 저의나 정치적 목적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지금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것은 어떻게 좀 비위를 잘
맞춰서 청심환이나 우려내려는 생각뿐일 터이다.
좀 불법적인 짐이 많은 시준도 청심환을 세 알이나 주고 안전 택배를 다짐시
켜 놓았다. 지금 한 쉰 걸음 뒤에서 시침 뚝 떼고 따라오고 있는 사람들은 만
상이 신뢰하는 유통업자다.
솔직히 청의 어떤 관리보다 저들이 더 약속을 잘 지켰다. 안 지키면 만상에게
매수된 뒷골목 황비홍들에 의해 자다가 칼침 맞을 테니 별수는 없었겠지만 어
쨌든 결과적으로는 엄정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시준은 잠시 뒤
에 행렬 앞이 소란스러워지자 배신감마저 느꼈다.
‘간신히 속세를 초탈한 참인데!’
하마터면 엎어질 뻔한 시준은 황급히 목을 빼어 내다보았다. 시준의 키가 웬
만한 사람보다 커서 곧 조선 사신단을 가로막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무기를 든 자는 없는 것 같은데. 혹시 황제가 조선의 서양 무역에 불만을 품
고 조용히 처리하라며 깡패들을 보낸 건가?’
뭐 눈에 뭐만 보인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시준의 지독한 편견과는 달리 대청
황제가 그렇게 막장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시준보다 이런 일을 더 잘 알고 있
는 정사 남공철이 혀를 찼다.
“청심환 하나 달라고 모인 사람들이로구나. 누구 가진 사람 있으면 대충 하나
던져 주고, 그래도 흩어지지 않거들랑 위엄으로 훈계하라.”
바로 이럴 때가 고단한 사행길에서 더욱 고단할 일 많은 하인들이 괜찮은 오
락 즐기는 순간이다. 조선 하인들은 어슬렁어슬렁 나가 중국 백성들을 마주했
다. 물론 받아온 청심환 주머니에서 잽싸게 한두 개 빼어 소매에 넣은 채였다.
그들은 대표격으로 보이는 자에게 청심환 주머니를 내밀었다가, 그가 손을 뻗
자 다시 주머니를 홱 잡아채며 놀렸다. 그 한인은 분개하였으나 조선 사람들
은 거꾸로 대어들며 한인의 뺨을 되게 쳐서 올려붙였다.
시준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상당히 다른 조청 관계에 딸꾹질을 했다. 만주
벌판에 조선 사람의 고함이 쩌렁쩌렁 울렸다.
“그래, 네 눈깔에는 지금 저 행렬에 걸어놓은 ‘황상어용(皇上御用)’ 깃발이
도대체 뵈지를 않느냐? 목이 몇 개면 감히 황제님 뵈러 가는 우리 어른들을
떡하니 가로막느냐. 그 쓸모도 없는 눈깔일랑 죄 뽑아서 국거리나 하여야 하
겠구나!”
조선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하인들에게는 더 좋은 의사소통
수단이 있었다. 그들이 소리 지르면서 무작스럽게 주먹과 발이며 말채찍을 휘
두르니 한인들은 전부 피해 버리거나 무릎 꿇고 빌 수밖에 없었다.
하인들은 저 간악한 놈들에게 청심환 한 알 손해 본 것 없이 왔노라며 자랑스
레 개선하였다. 비싼 청심환 강제 갹출의 위기를 피한 관리들 역시 하인들이
몇 개 빼돌린 정도야 너그럽게 용서해 주었다.
시준은 그 순간 일이 잘 처리되었다고 생각한 자신에게 문득 슬픈 감정이 들었다.
흔히 책문(柵門)이라 하는 압록강 북쪽 120리 지점의 이름은 그 유래가 담백
하다. 옛적 고구려의 산성이 있던 봉황산(鳳凰山) 부근에 울타리[柵]를 둘러
쳐 나라의 문(門)을 삼았는데, 여기서부터가 정말 청나라다.
아까처럼 짐 날라주는 사람이라던가 압록강 뱃사공이라던가 하는 특별한 경우
가 아니면 청나라 사람들도 이 책문부터 압록강까지의 구역은 함부로 넘어 다
니지 못한다. 일종의 완충지대인 셈이다.
여기서 조선 사신들은 예단이라 하여 일종의 관세라 할 수 있는 재물을 주고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봉성장군(鳳省將軍) 등 청의 지방 관리들은 당연히 정
해진 것보다 더 많이 받으려 한다.
물색 모르는 정사나 부사는 그냥 달라는 대로 주고 입경하려 하지만, 빨리 들
어가자고 한 번 많이 줘놓고 보면 이게 곧 전례가 되므로 첨예한 대립이 이루
어진다.
물론 고위 조신씩이나 되는 자들이 서로 흥정을 하는 건 아니고 그 마두(馬
頭)며 관속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보통은 더 상대방을 잘 을러대고
주먹 함부로 쓰는 자가 이긴다.
그리고 그런 협상은 시준의 일이 아니다. 시준은 만상의 행렬을 기대하며 우
글우글 몰려 있던 청나라 사람들을 쓱 훑어보았다.
시준은 직접 책문에 오는 게 처음이라 얼굴을 몰랐으나 애초에 그가 찾는 것
은 얼굴이 아니라 청인들이 다들 허리춤에 하나씩 꽂고 다니는 손칼의 칼집이
었다. 곧 원하던 사람을 찾은 시준은 가서 능숙한 관화로 말했다.
“내가 임씨(임상옥) 소개 받고 온 정시준이오.”
그 상인, 시준이 들은 대로라면 이름을 마영(馬鑅)이라 하는 산해관 출신 장
사꾼은 시준의 손을 덥석 쥐었다. 척 봐도 환갑은 좋이 되어 보였으나 시준이
헛상투나마 틀어서 그런지, 아니면 임상옥이나 홍득주가 미리 전갈을 잘 보내
어 놓았는지 시준의 어린 얼굴을 보고도 말투가 꽤나 정중했다.
“처음 뵙겠소, 정 상공(上公). 내 그 높은 이름은 귀에 젖도록 들었소이다.
이번에 임 상공(임상옥)이나 홍 상공(홍득주)은 어이하여 못 오셨소?”
장사꾼들끼리는 서로 공대하는 말로 상공이라고 하나 선비들이 들으면 가장
호의적인 반응이 조소일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들과 마찬가지로 시준에
게도 봉성장군이니 문상어사(門上御史)니 따위보다 돈 될 사람들이 상공이고
나리님이다.
시준은 시침 뚝 떼고 말했다.
“금번에 나랏일이 뭔가 화급한 모양인지 소리개 병아리 낚아채듯 사행이 추진
되어, 으레 따라가던 의주 상인들은 소식도 못 듣고 아무런 준비를 못 했지
요. 다행히 우리 을대인(乙大人, 차석급 인사, 여기서는 부사 정약용)이 제
글공부 스승이 되셔서 저는 그 명목으로 따라왔소이다.”
“귀국은 장사하는 사람들을 박대한다 하던데 용케 고관의 제자가 되었으니 그
학문을 짐작할 만하오.”
학문은 없지만 돈이 많아서 정약용 제자 하고 있는 시준은 그 말을 흘려버린
다음 용건을 꺼내었다.
“아무튼 그래서 저도 이래저래 공무에 따라다녀야 하니 서둘러 끝내지요. 우
선 호표피며 홍삼 같은 다른 물목은 평소와 같고, 여기 평안도 담배 사백 묶
음과 영길리 납촉(蠟燭)은 이번에 새로 가져온 것이오.”
원래 책문 상인들의 제일 관심사는 조선 홍삼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만
상 무리가 따라오질 못해 시준이 가진 양이 평소에 비해 많지 않았고, 더욱이
잘 팔릴 게 분명한 신상품이 있어 청 상인들은 홍삼을 대충 헤아렸다.
시준은 남은 홍삼을 북경 가서 네가 따로 팔면 안 된다는 다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것에 흡족했다. 청 상인들은 말로만 듣던 기이한 약효의 ‘평안도 담배’
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내 일찍이 삼등초(三等草, 평안도 담배)가 좋다는 말은 들었는데, 지금까지
우리가 보던 것은 다 가짜였구려.”
“과연 조선은 옛 서복이 찾았던 봉래도라. 선약(仙藥)으로 이름난 고장이라
하더니만 그 말이 거짓이 아니었는가 보오.”
몇몇 상인들은 그것도 결국 담배 아니냐면서 청나라 코담배를 주고 바꾸어 가
려 하였으나 시준은 그런 가소로운 수작을 물리쳤다. 조선에서는 솔직히 코담
배가 별로 인기가 없다. 곧 불꽃 같은 흥정이 벌어졌다.
상품 중에는 아직 조선에 꽤 남아 있는 조선통보(朝鮮通寶)도 있었다. 화폐가
아니라 상품이다. 조선통보는 기자가 만든 것으로 한나라 오수전(五銖錢)보다
도 오래되었다 하여 중국에서 액막이 부적으로 높게 쳐 주었다.
시준이야 그 조선이 그 조선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지만 시준의 양심 같은 건
오래 전부터 돈만 주면 절찬리 판매 중이었다.
그러고 있는데 기랑이 쓱 와서 물었다.
“돈 많이 벌어?”
시준이 용돈 좀 주고 데려온 기랑도 정약용 견마잡이 노릇 대신 여기에서 시
준의 잡일을 돕거나 호위를 보고 있었다.
기랑은 여기에서 자기도 좀 물건 바꿔 한몫 잡아 보면 어떨까 하는 표정이었
으나, 값 마음에 안 든다고 누구 푹 찌르는 일이 일어나선 안 되었기에 시준
은 돈 많이 주는 대신 그런 일을 금했다.
“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누가 끈 끊어다가 주머니 집어가지나 않는지 잘 보거라.”
기랑이 토라지는 일까지는 신경 써 줄 새가 없었다. 시준은 마영이 소개해 준
상인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북경 유리창의 상방(商房) 소개장을 받거나
거꾸로 만상 소개장을 써 주었다.
조정의 일에 못지않게 뜨거운 장사꾼들의 정치가 이 책문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시각, 정사 남공철과 부사 정약용은 성경 장군 화녕(和寧)의 서늘
한 말을 들어야 했다.
“책문에서 무역하도록 하는 것이 고래의 법이지만, 지금 조선에서 온 사람들
의 전날 없었던 기이한 복식을 보니 서양의 못된 풍습이 많이 들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의관 제도를 고대의 것과 같이 한다는 조선 사람들이 이게 웬일
입니까?”
패션이 마음에 안 든다는 소리로 알아들은 멍청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 사신단의 하인들은 편리한 의주식 복장을 많이 했는데, 이는 영길리포
(데님 천)가 많다. 화녕은 지금 조선의 서양 무역 얘기를 하려고 말 꺼낸 것이다.
지금 대놓고 영길리 양초에다가 마리화나까지 팔아 치우는 시준은 간담이 서
늘해야 마땅했다.
남공철과 정약용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작가의 말
1. 전에도 한 번 언급했지만, 지나가는 청나라 사람 잡아 때리고 진흙에 얼굴 박도록 강요하면서, 박지원이 꾸짖자(사실 박지원도 농짓거리가 좀 심하다고 가볍게 얘기한 정도) 이 정도 놀이도 없으면 어떡하느냐고 대꾸하던 조선 사람들의 모습은 실제 건륭제 당시 있었던 일입니다. 무슨 민족적/국가적 감정이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이 시대 사람들이 다 이렇게 놀았던 듯 합니다.
2. 鑅자는 본래 '종소리 횡' 이나, 사람의 인명으로 쓰였을 때는 '영'으로 읽기도 합니다.
3. 청나라도 당연히 선비와 농업을 우대하고 상업을 천시하기는 조선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단지 조선 정도로 극단적이지는 않았을 뿐이죠. 청 선비들도 장사꾼 집안과 통혼하거나 하는 일은 없어서, 정 그러고 싶은 사람은 (중국이 워낙 넓다 보니) 다른 동네로 가서 신분 세탁하여 새 가문 꾸리곤 했습니다.
사실 박지원도 실학자 이미지와는 다르게 결코 상인들을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의 여행기 곳곳에는 '간교한 상인들' 이라는 식으로 만상들에 대한 혐오감이 드러나죠.
4. 조선통보 얘기는 소설 창작이 아니라 진짜 당대 중국의 인식이었습니다. 전에 한 번 작가의 말로 조선 선비들 중 일부가 조총이 주나라 때 발명된 줄 알았다는 얘길 한 적이 있는데, 근대 역사학이나 일괄 공립교육이 없는 이 시대는 이런 식의 신기한 오류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 선비들은 조선에 없는 책을 중국에 구하러 가는데 정작 중국에서는 진시황의 분서갱유에서 살아남은 고대의 경전이 조선에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거나..
3백 년 전의 돈이 왜 아직도 남아 있느냐 하고 의아한 분이 계실 텐데, 조선통보 하면 흔히 세종 대 발행한 동전으로 인식되나 상평통보 이전 인조~효종 대에도 조선통보를 재발행한 적이 있습니다. (약간 모양이 다르긴 합니다.)
5. 화녕은 작중 시점으로부터 2년 뒤에 성경(심양) 장군이었던 사람입니다. 1810년의 성경장군이 누구였는지는 청실록에도 기록된 바가 없어 알 수 없지만, 이때도 근무하고 있었을 거라고 가정하고 서술되었습니다.
19. 북경 가는 길(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