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58화 (58/284)

58화

18. 강철의 군주(1)

할리버튼 선장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 허풍이야 누구라도 칠 수 있지. 의심할 수 없는 증거를 내놓기 전에는

어림도 없소. 그런 중장비와 화기를 준비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아,

그리고 미리 말하지만 무조건 선금입니다.”

당연히 그 말 할 줄 알았던 홍경래는 품속에서 왕의 밀지를 꺼냈다. 할리버튼

이 거기서 복잡한 예법과 동양식 불문율, 그리고 시대적 맥락에 기반한 ‘필자

가 왕임을 확신하게 하는 표현’까지 모두 알아볼 만큼 한학에 밝지는 않았으

나 그 내용 자체는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최고급의 흰 비단이라는 사실 역시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

적어도 할리버튼의 눈에는 일개 밀매상 따위가 종이 대신으로 쓸 수 있는 물

건이 아니었다.

홍경래는 건조하게 말했다.

“그대들은 내가 오랫동안 무기를 사들이는 것을 보고 여러 가지 꿍꿍이를 가

졌겠지. 아마 내가 찬역하는 자라고 여겼을 터. 하지만 이제는 말할 때가 됐

소. 나의 모든 일은 오로지 우리 주상 전하의 어명으로 도모한 것이외다.”

“위조가 틀림없는…….”

“이 글은 내어줄 수 없지만, 이 도장 그림은 그대로 베껴가도 좋소. 어디 한

번 그대보다 더 잘 아는 사람에게 가서 밝혀 보시지. 이게 가짜인지 아닌지.

그리고 이건 여기에서 나온 거요. 이 허리띠 역시 가져가서 같이 살피시오.

선금에 포함해도 좋고.”

그 허리띠 역시 옥(jade)으로 장식된 귀중품이었다. 거기에는 작은 틈이 나

있었는데 아마 허리띠를 칼로 타고 비단을 끄집어낸 듯했다.

그것도 얼마든지 가짜로 만들 수 있는 물건이라 하려던 할리버튼 선장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조선은 중국처럼 아편의 흡연을 금하는 나라이며 조약 이후로 그건 더 심해졌

다. 무역 규모가 작고 나올 구멍이 뻔한 조선은 중국보다 훨씬 아편이 들키기

쉽고, 그래서 영국도 굳이 아편을 밀수출하려 애쓰는 대신 조선에서 수입하는

편을 택했다.

그런데 홍경래는 한 번도 발각되지 않았다.

이것은 홍경래가 주의 깊고 신중하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조선 수사기관이 적

발하지 ‘않았다’는 증거일까?

할리버튼 선장은 그제야 정신을 좀 차렸다.

동인도 회사는 홍경래의 반란을 물밑 지원하여 조선왕을 압박할 패로 사용하

려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정책의 변경이 필요하다.

회사가 잘못 판단했는지 아니면 홍경래가 회유되어 노선을 바꾸었는지는 알

수 없다. 둘 중 어느 것이 진실인가보다는 이 문서가 진실인지 아닌지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문서가 진짜일 경우 시사하는 바는 크다. 이는 동인도 회사의 무기 밀

매가 조선 국왕에게 들켰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어쩌면 아편도 들켰을지 모른다. 아니, 조선 국왕이 중국을 참고해 아편 재

배를 기획한 건가?’

동인도 회사는 국왕에게 ‘당신의 비밀 무장세력을 우리가 지원했으니 서로 좋

은 걸로 하고 타협합시다’라고 말할 것인지, 아니면 이 사람 – 회사에서는 난

쟁이 존(John the Dwarf)이란 코드네임으로 통하는 반역자와 조선 정부를 한

꺼번에 없애버릴 것인지 선택이 필요하다.

할리버튼 선장은 정보의 부족을 느꼈다. 그래서 홍경래가 자기 배에 와 있는

틈을 타서 억류하려는 아이디어는 척수반사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허나 그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최악의 경우, 난쟁이 존은 이 노루섬 근처에 그의 병력을 숨겨놓았을 가능성

이 있다. 물론 영국인이 야만족 반란군 따위에게 패배할 거라는 생각은 안 들

지만 그들이 돌입한다면 장자도의 무역은 확실하게 붕괴한다. 그건 동인도 회

사에게 있어 전쟁보다 두려운 것이었다.

어쨌든 제임스 할리버튼은 아직 동인도 회사의 이사가 아니다. 그는 중국에서

수없이 들었고 그때마다 분통 터뜨렸던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일을 판단할 권한이 없소. 위에 보고하고 알려주도록 하지.”

“그러시오. 이쪽도 당장의 일은 아니니.”

영국인의 배에서 내린 홍경래는 굳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과연 할리버튼의 예

상대로 홍경래는 주변에 거의 백 명 가까운 장정들을 숨겨놓고 있었다.

그들은 나룻배를 저어 이쪽 연안에 상륙하는 홍경래를 보고 목마른 눈빛을 보

냈다.

“얘기는 어떻게 됐소이까?”

“잘 됐어.”

홍경래는 짧게 대답했다. 길게 설명할 시간 없다는 태도였다. 대신 홍경래는

다른 말을 시작했다.

“들어라. 이제 임금께서 우리에게 밀지를 내렸으니, 우리가 곧 나라의 동량

(棟梁)이고 조정의 중신이다. 묘당과 대청을 차고앉았다는 자들은 단지 어미

가 척족(戚族)이며 아비가 벌열(閥閱)일 뿐 스스로는 아무것도 없다. 기자가

터 잡은 이 풍패고향(豊沛故鄕, 황제의 고장), 평안도 충의지사들만이 진짜

신하이며 역적을 쳐 없앨 나라의 충장(忠壯)한 인재다.”

요즘 수도 없이 들어 귀에 못이 박일 지경이라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대단한 집중력으로 홍경래를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자들에게 전해라. 어린 임금께서 구중궁궐 외로

운 곳에서 오직 우리만을 의지하신다. 소열황제(유비)는 부끄럽게도 도망쳤지

만 우리는 도망치지 않는다. 이제부터 우리가 관헌이다. 우리의 말이 관명(官

命)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돈을 털어오는 일은 강도질이 아니라 세금 징수다.

홍경래의 그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음에도 거의 형체가 되어 보이는 것

같았다.

“나라의 창고와 군정을 모두 김조순 이하 간신배들이 쥐고 있으니 이 나라의

주인께서는 병사 한 사람 부릴 수가 없다. 영길리인과는 얘기가 됐어. 국가가

누란에 처했는데 사소한 재산 털어 조연(助緣, 의연금)할 자가 어찌 하나도

없겠느냐? 되도록 칼은 쓰지 말고 잘 설복시키도록 해라.”

사람들은 우렁찬 목소리로 화답하지는 않았다. 그저 조용히 흩어졌을 뿐이다.

그리고 홍경래 또한 그 무리에 섞여 의주 방향으로 사라졌다.

시준의 강의는 어디까지나 영어 교습이 중점이었다. 허나 언어라는 것은 사회

와 문화를 크게 반영하는 법. 어느새 강의는 역사, 수학, 법학, 신학까지 아

우르는 범위로 확대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분야는 서양인들의 기기괴괴한 역사였다. 시준은 조

악한 칠판과 백묵의 품질 탓에 잘 안 지워지는 글자를 손으로 쓱쓱 문대며 말

했다.

“그래서 존이라 하는 그 왕은 만인적(萬人敵)의 무사인 형을 동쪽으로 보내버

리고, 비열한 술수로 최후의 협객 노씨(로빈 후드)를 죽이게 된 겁니다. 돈을

탐하며 잔폭하게 세금을 거두다가 결국 칼 들고 쳐들어온 신하들 앞에서 약조

하는 문서를 쓰게 되었으니, 이를 마그나 카르타라고 합니다. 마그나는 크다

는 뜻이요, 카르타는 문건이라는 뜻입니다. 큰 뜻이 담긴 서류라는 거지요.”

약장수가 이런 기분일까. 어차피 자기밖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시준은 어릴

때 본 세계사 만화책 등지의 내용을 생각나는 대로 읊어댔다. 전설과 역사가

제멋대로 뒤섞이고 인물의 전후가 난장판이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엉터리 강의도 진지하게 들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양반이다. 동시기에 일본에 있던 난학 사숙도 딱히 엄정한

교차검증을 해서 가르치는 건 아니었다.

아시아 의학계의 혁명인 『해체신서(解體新書)』는 네덜란드어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네덜란드 책을 대충 그림 보고 추론으로 번역했다. 사람이 원래 이

빨 없으면 잇몸으로 사는 법이다.

그렇다고 해체신서가 엉터리 돌팔이 책이라고 보면 오산이다. 이 시대 사람들

은 그런 열악한 환경을 보완할 만한 지혜가 있었다. 통밥도 아주 무식하면 못

굴린다. 이 시기, ‘서양 문물의 수용’은 대강 이런 식이었다.

현대인인 데다 정약용 제자라고 콧대가 높아진 시준 역시 은근히 조선 평민들

의 지적 수준을 깔보는 면이 있었으나 그건 오산이었다.

사람들은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이지 머리가 나쁜 게 아니었다. 현대 학교는

의무교육이다 보니까 그중에 공부하기 싫은 학생도 있는 것일 뿐, 애초에 일

도 잠시 접고 학당에 꾸준히 나올 정도면 모두가 모범생이다.

과연 수준 높은 질문들이 들어왔다. 서양에는 정말 사내끼리 흘레붙어 자식을

낳는 나라가 있는가 하는 따위 질문이나 대답해야 했던 초창기에 비하면 장족

의 발전이라는 말로도 모자랐다.

“내가 선생께 배운 바로 영길리 말에 크다는 것은 빅(big)이나 그레이트

(Great)라 일컬을 텐데 마그나라고 함은 무엇이오?”

“조선말과 중국말이 다르고 언문과 진서가 다르듯이, 저들도 점잖은 일에는

그들의 진서 비슷한 것을 씁니다. 그 말로 일컬으면 마그나가 크다는 뜻이외

다. 이것은 본래 영길리말이 아니라 로마라는 나라의 말인데 이 로마란 옛날

장건이 목적하였다는 대진(大秦)으로, 모든 서양국이 로마를 천조(天朝)로 섬

겼기 때문에 그러하오이다. 근래 강의했던 패왕 나파륜은 이 천조 로마를 군

병으로써 폐하고 신위를 훼손하였습니다.”

“그것은 마치 항적이 이세황제 자영을 죽이고 아방궁을 불사른 짓과 같은 것

인가?”

“바로 그렇습니다. 다만 로마는 시황이나 자영처럼 널리 천명과 인심을 잃지

는 않았기에 모든 서양국 사람의 원망이 그 패왕에게 한가지로 향하고 있습니다.”

또 모인 사람들 중 상한으로서 이 더러운 천것 신세 벗어 보겠다는 야망 가진

자가 많은 만큼, 다소 위험한 질문도 있었다.

“일전에 이야기를 듣자 하니 불랑국과 영길리국은 근세에 각자 왕의 목을 베

었다 하고, 오늘 들으니 그 전에는 신하들이 칼로 군왕을 협박한 것이 아닌

가. 들어 보니 군주가 잔폭하기는 하였다마는 어찌 그게 신민의 도리겠는가?

그 나라에서는 맹자의 설을 곡해하여 극도로 섬기는 것인가?”

시준은 잠깐 동작을 멈추었다. 말은 코쟁이들의 충의 없음을 비난하는 듯하

나, 조선식 은유의 껍질을 걷어내 본다면 ‘사실 왕이 뭣 같으면 죽여도 되는

거 아닐까? 서양은 하는 거 같은데?’라는 소리다.

이러한 투의 질문은 처음 받는 것이 아니다. 시준이 가르친 지식은 거기서 끝

나는 것이 아니라 홍경래가 만들어 놓은 소조 단위로 퍼져서 재해석되고 재생

산되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얼마 안 되는 지식을 활용해 이론을 세우고 토론을 진

행했다. 권력 없는 무학자, 역사의 물결일 뿐 선박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이

사람들은 활발하고 분방하게 자기들의 체계를 만들어 갔다.

시준은 개화기 당시, 본래 상투에 흰옷 입고 곰방대 물던 조선 사람들이 어떻

게 20년도 안 되는 세월 만에 중절모 쓰고 양장으로 멋 낸 ‘경성 모던뽀이’를

탄생시킬 수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인간의 적응력은 자생적이며 거칠고 빠르다. 강철의 계몽군주를 꿈꾸는 순조

는 인정하지 않겠으나 이미 조선 사람들은 위에서 내려주는 가르침이 필요하

지 않다. 그들 스스로 보고 받아들일 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으로서는 이런 대화는 위험하다. 시준은 이럴 때 쓰는

전가의 보도를 꺼냈다. 아무튼 오랑캐 야만족이라서 그렇다고 하면 된다.

“서양국 사람들은 성현의 책을 읽지 않아 맹자를 모릅니다. 그 지방은 그저

옛날부터 힘센 자가 제일이었습니다. 소송의 판결도 전후와 사리를 듣기보다

는 서로 총칼 들고 싸워 이긴 자가 옳은 것이요, 저 왜국의 무사처럼 칼로 사

람 잘 베어 죽이는 자들이 노블(noble)이라 하여 귀사족을 칭합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죽고 죽이기만 하였으므로 지금 서양국은 싸움 잘하는 자들만이 남

아 그토록 난폭하고 강성한 것입니다.”

맹자가 멘치우스(Mencius)라는 이름으로 한참 전에 유럽에도 소개되었다는 사

실을 알 턱이 없는 시준은 그렇게 유럽인들을 까내렸다. 유럽인들이 들었다면

우리가 아직도 카롤루스 시절인 줄 아냐며 거품을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준에게는 일단 면피가 중요했다. 반란군에 어울려 줄 생각은 개미

뒷다리만큼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말을 돌려 다른 얘기를 꺼냈다.

“아, 그런데 저기 쌀가게 하는 김씨네 차남이 오늘 안 온 것 같은데, 어디 분

주한 일이라도 있던가요?”

바쁠 수도 있다. 아무리 감자가 있다 해도 흉년이라 쌀값이 치솟고 있었으니

까. 그러나 사람들은 서로 좀 불안하고 묘한 눈빛을 교환했다.

그 김씨네 쌀가게는 시준이 어릴 때도 많이 오가던 곳이다. 홍득주가 과거 가

산의 홍경래 일당 감시 건으로 임상옥에게 편지 전해 주라 하던 바로 그곳이

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임상옥과의 인연은 청바지를 거쳐 서울 평정까지 이어

졌다.

시준이 어릴 때는 세가 꽤 컸으나 독립한 임상옥이 공격적 확장을 하고 영길

리인과의 무역과 개항이라는 사세에 못 따라가면서 지금은 그냥저냥 간판이나

유지하는 싸전 정도였다.

그렇게 안면 있는 사람이라 시준도 차남에게 학당 나오길 권해 본 것이다. 살

림 넉넉하니 책도 많이 살 것 같아서였다.

장남은 ‘gh’가 어찌하여 끝에 붙으면 ‘F’가 되고 앞에 붙으면 ‘G’가 되지만

중간에서는 그냥 무시하느냐며 지조도 없는 문자라고 항의하다가 그만두었지

만 차남은 꽤 똘똘해서 잘 배우고 있었는데, 오늘은 쌀가게 일이 바빠서 못

나온 게 아닌 것 같았다.

미심쩍게 여긴 시준이 다시 묻자 사람들은 그제야 털어놓았다.

“으음, 사실은 어제 웬 녀석들에게 아버지가 몰매를 맞아 크게 다쳐서 병구완

을 하고 있다 하네. 아마 다른 고을 놈들이 아닌가 싶은데…….”

“예?”

시준은 그 일의 무도함보다는 불가능성 때문에 놀랐다. 의주의 폭력은 이미

오래전에 홍득주와 홍경래, 그리고 시준에 의해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마약 카르텔의 통치하에 있는 마을이나 도시는 의외로 안정적인 치안

을 구가한다.

치안 기구는 ‘여러 가지 사정’에 따라 범죄자를 쉽게 용납할 수 있고 어떤 면

에서는 공생하기까지 하지만, 범죄자는 절대로 다른 범죄자를 용납할 수 없

다. 같은 먹이를 먹는 짐승은 공존할 수 없는 법이니까.

서열 정리가 확고하게 된 이 의주에서 오래된 장사꾼인 김씨를 폭행하는 일이

일어났다면 보통은 아까 언급된 대로 외부의 뜨내기 양아치가 푼돈 탐낸 일일

가능성이 높다.

허나 시준은 그런 녀석을 오죽당이나 다른 민병대 집단이 가만 놔두었으리라

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조선은 외지인이 들어오면 금세 티가 나는 사회다.

시준이 애들 좀 풀어서 알아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끼어들었다.

“내가 그 집 마나님 통곡하는 것을 듣기로는, 임금님 뜻이니 쌀을 헐하게 내

놓으라는 말을 안 듣다가 그 꼴이 났다고 하던데.”

‘임금님? 순조? 관군이 그런 짓을 했다고? 왜?’

그럴 이유가 없다. 국가에서 의주 상인들에게 돈을 뜯어내기로 결심했다면 평

안 감사를 통해 명하면 그만이다.

근문소에서 다 알아서 수령들과 적당히 협상하고 에누리한 뒤, 가입한 부호들

에게 갹출해서 돈을 마련할 것이다. 그만한 이권은 또 받겠지만.

별다른 근거는 없지만 시준은 이들이 사칭범이라고 짐작했다. 그렇다면 조선

에서 감히 왕명을 사칭할 수 있을 만큼 간덩이 부은 놈이 누구일까.

‘반란군…… 홍경래!’

파리 외방전교회 장-조세프 드 그라몽(Jean-Joseph de Grammont,, 梁棟材) 신

부는 조선과 인연이 깊다. 이승훈에게 세례를 베푼 영세신부가 바로 이 사람이다.

그는 이승훈과 밀사를 주고받던 일 때문에 청 당국에 체포되어 많은 고초를

겪었다. 게다가 주님의 분노를 직격으로 맞아 마땅한 영국 놈들이 프랑스에

씌운 누명, 1803년 중국인 학살 사건은 그런 그라몽 신부를 더욱 괴롭혔다.

그래서 그라몽 신부는 프랑스 신부 다 쫓아내고 싶어 하던 황제의 의사에 편

승해 광둥으로 내려온 참이었다. 본래 선교사들과 함께 검박한 공동생활을 해

야 할 사제로서는 권할 일이 아니나, 건강이 워낙 안 좋기 때문에 교회의 허

가를 얻어 광저우 한편에서 따로 살았다.

지금 프랑스에 대한 중국의 감정이 별로 안 좋아서, 원래 역사와는 달리 가경

제가 연금을 내려주지도 않았다. 원래 돈 쓰기 싫어하는 가경제 성격에 좋은

핑계였다.

그런 전차로 그라몽 신부의 형편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저 그리스도의 청

빈을 실천하는 교우들이나 황제를 섬긴 궁정 수학자를 존경하는 지역 유지들

의 소소한 도움으로 건강을 보살피는 중이었다.

그러던 와중, 갑자기 들이닥친 영국군 병사들은 안 그래도 고령인 그라몽 신

부를 그대로 주님 곁에 보내버릴 뻔했다. 간신히 심장마비를 면한 그라몽은

헐떡거리며 왐포아로 끌려갔다.

왐포아의 동인도 회사 상관은 이미 브리스톨이 아닌가 싶게 변모한 상태였다.

런던에서의 논의에 따라 윌리엄 피트 암허스트가 끌고 온 HMS 알세스트와 휘

하 선단은 유사시 조선 정부를 전복시킬 수도 있는 병력이었다. (조선을 정복

할 수 있다는 얘긴 아니다.)

그리고 그라몽의 눈에는 중국도 엎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여, 영국…… 해군! 이것들이 설마 민간인을……!”

영국의 귀족이 프랑스어를 못할 리는 없다. 의자에 앉아 있던 로드 암허스트

는 빙긋 웃으며 일어나 가볍게 손뼉을 쳤다.

“저런, 정중히 모셔오라 했는데 무언가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군. 그저 천민들

이 못 배운 탓이니 용서하십시오, 신부님. 아시다시피 수병이라는 게 워낙 무

례천만한 자들이 되어 놔서.”

남작(로드)은 죄 없는 수병들만 꾸짖어 물리쳤다. 수병들이 지금은 우거지상

을 하고 나갔지만 어차피 로드 암허스트의 눈에는 오늘 저녁 고기와 럼주만

주면 다 풀릴 것들이라 전혀 마음에 버성기지는 않았다.

그래서 남작은 우아한 태도를 유지한 채 그라몽 신부에게 다시 말했다.

“이 사람은 국왕 폐하를 섬길 뿐 바티칸을 섬기지 않지만, 다 같은 그리스도

의 자식들이 아니겠습니까. 부디 안심하시길. 우리는 그저 조선과 중국에 국

가 사절로 방문하려 하는데, 고명하신 신부님께 몇 마디 꼭 조언을 듣고 싶어

서 초대하였습니다.”

몸도 안 좋은데다 너무 놀란 그라몽 신부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자, 암허스

트 남작 윌리엄은 좌우에 명하여 우유에 브랜디 한 방울을 떨어뜨려 내오게 했다.

잠시 후에 정신을 차린 그라몽 신부는 한발 빼 보았다.

“세속의 일을 이 수도하는 승려가 어찌 안단 말인가?”

외방전교회에 국제 감각이 없다는 말은 농담일 뿐이다. 또 원래 영국인이 유

머를 좀 안다. 윌리엄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다가 그 점을 지적했다.

“외방전교회야말로 성서로써 이교도를 정복하는 세속 군주의 첨병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그중에서도 신부님만큼 아시아 국제 정치 편력이 화려

한 분은 없을 텐데요.”

과연 그 말대로 그라몽 신부는 조선에 손을 뻗친 최초의 성직자 중 하나이며

국제 정세에도 그리 어둡지 않았다. 밀입국 지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

니니까.

그리고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로 인맥 좀 있던 그라몽 신부는 이자가 캐나다의

학살자 제프리 암허스트의 조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라몽은 그 사실이

원망스러웠다.

틀림없이 아돌프 히틀러의 좋은 전범이 되었을 제프리 암허스트는 캐나다에서

모든 원주민을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열정적으로 살해했다. 그건 말 그대로

‘모든 수단’이었으며, 그의 불타는 열정이 이끌어 낸 혁신적 방안인 ‘천연두

담요’는 그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라몽은 예전 프랑스에서 생전의 암허스트 남작 제프리를 만난 적이 있다.

그리고 이제 마주한 그 조카는 로드 암허스트의 호칭을 잇기에 모자라 보이지

않았다. 양심과 도덕을 내다 버린 완벽한 호로자식이라는 뜻이다.

윌리엄 암허스트는 여전히 귀족적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우리는 프랑스의 거대 선단이 조선으로 향했다는 첩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난쟁이 존이라 부르는 조선의 반역자는 국왕과 공모하여 지금까지 동

인도 회사를 속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정보도 입수했죠. 이 두 가지 사실에서

저는 프랑스와 청, 조선의 밀약이라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그는 시준이나 박득출처럼 폭력을 과시하지는 않았다. 그런 건 천것들이나 하

는 행동이니까. 로드 암허스트는 그저 두 손을 깍지 낀 채 고개를 숙였다.

“마카오에서 예전 ‘사소한 충돌’이 있었죠. 드루리 제독이 쓸데없이 들쑤셔

놓는 바람에 중국군이 좀 들어와 있습니다만 뭐, 저희에게는 전혀 상관없습니

다. 중요한 것은 국왕 폐하의 군이 일개 열등한 아시아 인종 따위에게 물러나

도록 만든 굴욕을 갚아야 한다는 것이죠.”

“저, 전쟁을, 하려고!”

“설욕이라고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행동에 어떤 이름이 붙을지는 신

부님께 달려 있습니다. 난쟁이 존과 조선 정부의 의도, 그리고 프랑스 사절단

저의까지 전부 자세히 말씀해 주신다면 설욕을 뒤로 미룰 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의 기독교 신자로서, 저도 마카오의 외방전교회 대표부가 ‘불행한 사고’

를 당하는 일은 정말 보고 싶지 않군요. 전쟁이란 무슨 일이 날지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네. 오늘 아니면 내일이라도 주님 곁으로 갈지 모

르는 병든 늙은이일 뿐이야!”

그건 정말이었다. 그라몽 신부는 지금 현역이 아니고 북경과 만주의 인맥도

대부분 끊겼다. 그러나 윌리엄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유감입니다. 하지만 신부님께서는 그 사정을 잘 아는 신사들을

소개해주실 수는 있겠지요.”

“영국은 대체 무얼 하려는 셈인가! 조선 국왕은 국제 정치를 아는 자라고 들

었어. 만약 함부로 불장난을 하면 중국과 싸워야 할 걸세!”

“못 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프랑스와도 싸우고 있는데요.”

남작은 활짝 웃었다.

“조선 국왕이 만약 은근한 위협과 외교적 부채, 얄팍한 예지와 서류 몇 장으

로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여겼다면 그건 대단한 착각입니다. 정치를

겉으로만 아는 자들의 어리석음이죠. 언제 어느 시대건 정치를 최후에 좌우하

는 것은 좀 더 단단한 것입니다. 종이보다는, 금속이라는 거지요.”

그라몽 신부는 그 금속이 틀림없이 포탄이라고 생각하고 긴장했다. 영국인의

널리 알려진 평판을 감안하면 무리는 아니다.

허나 남작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성급한 편견이었다. 남작의 고려에는 다

른 금속, 그러니까 화폐도 포함되어 있었다.

조선이 어찌 나오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두 금속에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영국인이 매우 좋아한다는 것이다.

작가의 말

1. 로빈 후드는 여러 모티브는 있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전설상의 인물입니다. 존이 마그나 카르타에 서명해야 했던 것은 리처드가 십자군 전쟁 가 있을 때가 아니라 그가 돌아와서 다시 대관하고 또 그가 죽어서 존이 도로 왕위 차지한 이후입니다.

그리고 마그나 카르타는 그 유명세에 비해 영국 민주주의에 끼친 영향이 생각보다 별로 크지 않습니다. 당장 존 왕도 목에서 칼 치워지니까 그 계약 안 지켰고 후대 왕들도 다 무시했죠. 작중 여러 차례 드러났습니다만 시준의 지식은 정확하지 않은 게 많습니다.

2. 윌리엄 피트 암허스트는 인도 총독에 중국 주재 영국 대사까지 지내었으며, 그간 국교가 사실상 없었던 중국과 공식 외교를 수립하러 대사로 임명됩니다. 1816년 그가 타고 간 배는 작중과 똑같이 알세스트였습니다.

작중에서 백작이라고 호칭되지 않는 이유는 그가 아직 백작이 아니어서입니다. 지금은 로드(남작) 암허스트를 계승하기는 했으나, 초대 암허스트 백작위는 작중 시점으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뒤 인도에서 받았습니다.

(헷갈리실 수 있는데 원 역사 조선에 최초로 공식 방문한 영국 배인 로드 암허스트 호는 이 가문의 이름을 따서 지은 배로, 암허스트 백작 윌리엄 본인은 그 배에 안 탔습니다.)

간 건 좋았는데 옛날 조지 매카트니의 일을 아는 스턴튼 경(작중 초반에 매카트니와 같이 나왔던 조지 레오나드 스턴튼의 아들입니다)의 이상한 조언을 받아 나도 무릎 안 꿇는다고 개기는 바람에 북경 입성이 거부되어 외교수립은 실패하고 별 수 없이 조선 해안을 따라 내려오다가 난파, 죽을 고생을 하고 살아납니다.

이 사람이 세인트헬레나에 닿은(작중 나왔지만 아시아에서 영국으로 돌아가는 항로였죠) 때는 나폴레옹이 거기 유폐되었던 1817년이어서 거기에서 나폴레옹을 인터뷰합니다.

중국에서 오는 마당이니 당연히 중국 얘길 했겠죠. 여기에서 바로 유명한 나폴레옹의 명대사 "중국, 잠자는 사자를 건드리지 마라" 가 기록됩니다만 이건 후대에 여러 가지 이유로 진위를 의심받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작중 나오는 윌리엄 암허스트 백작의 언행 등은 창작입니다. 다만, 그 숙부인 제프리 암허스트 남작은 작중 내용처럼 변명할 수 없는 인종청소 학살자가 맞습니다.

암허스트 남작의 서신을 보면, 히틀러가 유대인에게 품은 것 저리가라 할 정도의 집착적 증오를 불태우고 있죠. 현대 캐나다는 이 오욕의 역사를 인정하여, 제프리 암허스트의 이름이 붙은 거리며 시설의 명칭을 서서히 바꾸고 있습니다.

18. 강철의 군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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