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57화 (57/284)

57화

17. 합종연횡(4)

정약용과 조제프 푸셰의 만남에서는 서로의 마음을 떠보려는 현란한 암시나

치밀한 정치적 대화가 오가지는 않았다. 그런 건 높은 사람들의 일이 아니다.

정약용은 공작에게 합당한 예로 정중하게 읍하였고, 푸셰도 능숙하게 답례했

다. 그 둘은 고생이 참 많았다느니, 조선의 환대에 감사한다느니 하는 의례적

대화로 아랫사람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최고 책임자의 본분을 다하였다.

대강 분위기가 무르익자, 푸셰는 평양에서 데려온 프랑스 선원들을 시켜 이

배를 어떻게 끌어내야 하는지에 대해 조선 관리들과 기술적 의논을 하러 보냈

다. 시준은 이강회도 예조 참판의 근반(종자) 자격으로 거기 끼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시준도 당연히 통역으로 따라가려 했다. 그가 온 표면적 목적은 그것

이었으니까. 허나 푸셰는 시준을 불러 세웠다.

“아직 아냐. 어차피 주위 지형과 배의 상태를 관찰하려면 한참 걸리니 지금

통역은 필요 없네. 결과를 종합하기 전에는 우리 선원들끼리 떠드는 말이 조

선인 귀에 들어가게 하고 싶지도 않고. 간단한 의사 교환이야 영어면 충분하

겠지. 조선 관리들은 ‘영어에 능통한’ 것 같으니까.”

시준은 푸셰의 솔직한 태도를 존중했다. 시준으로서는 그가 나폴레옹의 배신

자라는 정도밖에 모르지만 그래도 대화를 하는 법은 아는 것 같았다. 영어에

능통하다는 말에 왜 이 악물고 강세를 넣는지는 짐작이 잘 안 갔지만.

시준은 빈정거리듯이 말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리고 푸셰는 영향을 받지 않았다.

“조선 정부가 원하는 게 뭔가? 계절이 바뀔 때까지 기다렸으니 이젠 대답을

들어도 되겠지. 국왕 폐하께서는 우리에게 뭘 바라지? 저 공전절후(空前絶後)

의 장대한 전함 아우스터리츠? 아니면 저 배와 유럽 군사체계를 다룰 수 있는

선원이나 병사들? 혹은 프랑스 제국과의 수교를 위한 다리?”

설마 이렇게 직설적으로 물을 줄은 몰랐던 시준은 잠시 고민하다가 되물었다.

“제 대답이 그중 하나 이상에 대한 긍정이라면 어떻게 됩니까?”

“이보게. 내가 선배로서 한 수 가르쳐 줘야겠군. 상대방의 질문에 대답할 말

이 궁하다고 해서 되물음으로 받아치는 것은, 그래, 얼핏 재치 있는 행동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상대로 하여금 자네가 가지고 있는 재료가

별로 없다는 확신을 주거든.”

시준도 이번엔 자기가 졌다고 생각했다. 푸셰는 배부르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자격지심이 없고, 원래 자부심 높은 대프랑스 제국은 남을

속여 이득을 취하지 않지. 그러므로 난 솔직하게 말하겠네. 조선 국왕께서 우

리 프랑스 인민의 황제 나폴레옹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우정으로 사귀신다면,

그래. 전함 한 척 빌려주거나 매각하는 정도야 동맹으로써 어찌 못 하겠는가?”

시준도 이 정도 되자 좀 심술이 났다. 생각해 보니 조선의 외교와 정치 따위

어떻게 되든 그가 알 게 뭔가. 왕에게 대한 원한으로 김조순 쪽에 기울었으

나, 김조순의 사과로 아주 손톱만큼 생겼던 호감마저 김유근 때문에 사라져

버렸다.

지금 시준은 모범적 공무원으로서의 감각을 거의 되살렸다. 국가의 앞날 따위

아무 관심도 두지 않았다는 뜻이다.

지금의 시준에게는 오로지 면피만이 중요했다. 부국강병이고 사대교린이고 알

바 아니었다. 왕도, 김조순도 함부로 자기에게 화내거나 보복하기 어려운 상

황을 만드는 게 시준의 목표였다.

그래서 시준은 세련되게 협상해야 할 요구 사항을 그냥 말해 버렸다.

“만약 배와 사람은 원하지만 동맹은 필요 없다고 한다면?”

“동맹이 선결 조건이라고 답하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솔직히 너무 날강도

같은 생각 아닌가? 우리를 억류하여 군사 기술을 캐내겠다는 건 상당히 빈곤

한 발상이라고밖에 할 수 없어. 왜 그런지는 말 안 해도 알겠지?”

시준은 하마터면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강제로 차출된, 게다가 벨테브레처럼

오도 가도 못하는 외로운 처지도 아니고 수백 명이나 동포가 있는 유럽인이

순순히 조선에 첨단 기술을 제공할 리 만무했다.

태업이나 도주 정도면 차라리 다행이다. 시준은 만약 자기가 프랑스인이라면

국왕이 무기를 친람하는 자리에 폭탄을 설치하거나 배에 구조적 결함을 만들

어 조선 수병을 떼로 황천에 보내 주었으리라 생각했다.

‘사실 그 전에 선원이나 수병에게 배 다루는 것 이상의 기술이 있는지나 의문

이기도 하고. 전투기 조종사가 전투기나 미사일 만드는 법을 아는 건 아니잖아?’

그뿐만이 아니다. 프랑스에서 혁명을 빼면 중국밖에 안 남는다. 이들이 폭동

을 일으킬 가능성도 결코 적지 않다.

시준도 서울에 있어 봐서 알지만, 지금 경군(京軍)은 도성 내부에서 일어나는

서양식 군대 수백 명의 폭동을 진압할 수 없다.

이 조제프 푸셰가 그것을 주도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시준은 어떻게든 결정을 조정으로 떠넘기기 위해 다시 한 번 확인차 물어보았다.

“수교나 동맹은 전에 말씀드렸듯이 군주라 할지라도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각하께서는 외교 관계가 수립되기 전에는 조선군이나 당

국에 대한 어떤 협조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이렇게 전해 주면 김조순은 큰 명분을 얻게 된다. ‘(표류해서 얻어먹기나 한

주제에) 감히 건방진 조건을 내세운 불랑국 놈들’을 즉시 청으로 쫓아내 버리

자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왕이 이를 거절한다면, 이공은 불확실한 이득 때문에 청이나 영길리와의

위험한 대립을 감수하는 군주가 되어 버린다. 김조순과 시준은 행복하고 왕은

약간 불행한 최고의 길이다.

그러나 조제프 푸셰는 시준이 그런 편한 길을 택하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그

는 껄껄 웃었다.

“이거 기시감이 느껴지는군. 내가 지금까진 순순히 말해 줬지만 그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네. 비공식적인 우리의 환담은 여기까지. 자, 이제 가 보게. 해

석을 덧붙이는 건 자네 자유지만, 내가 한 말은 되도록 ‘비공식적으로’ 모두

전해지길 바라지. 핫핫!”

푸셰는 그렇게 말하고 휘적휘적 걸어가 버렸다. 시준은 조제프 푸셰를 임청처

럼 멍석말이해 버리면 자기가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만 아직은 시준이 한국인으로 산 세월이 더 길기에, 시준은 자기 안의 난폭

한 조선인을 내리누를 수 있었다.

시준은 자기가 들은 것에 ‘해석을 덧붙여’ 정약용에게 말해주러 갔다. 시준이

김조순에게 무슨 협박을 받았는지 모르는 정약용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차라리 잘 된 것일 수도 있지 않느냐. 주상 전하께서는 불랑국과 우의를 나

누는 것도 마음에 두고 계시다.”

“선생님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청이나 영길리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영길리국은 우리 상국이 아니니 인신무외교라는 말을 할 수 없다. 불평이야

있겠으나, 그때는 장자도에 들어와 무역할 수 있는 너희가 불랑국보다 특혜를

받는 것이라고 둘러대면 되겠지. 청의 경우는…… 나도 별다른 좋은 수가 안 떠

오르는구나. 어차피 당장 그들이 청으로 갈 방도는 없으니 천천히 생각해 봐

야 하겠다.”

“저들이 이 배를 고쳐서 타고 떠나면 어찌합니까? 그들은 북경의 교사(사제)

들을 본다는 핑계로 천진에 들를 수도 있습니다.”

“아마 그건 힘들 게다.”

“예?”

그때 옆에 있던 이강회가 나섰다.

지금이야 서울에서 스트레스 많은 부녀자들 상대로 바늘 사면 대마 끼워 주는

장사나 하고 있지만, 생각해 보니 애초에 미래 운곡선설의 저자 이강회를 의

주로 부른 이유가 서양 배에 대한 전문가를 기르기 위해서였다.

이강회는 아직 젊은 나이에도 그런 기대를 배신하지 않을 만큼 영민했다.

“시간을 많이 들여 살펴야 하겠지만, 배란 물건은 본래 조금만 놔두어도 밑창

에 따개비가 새카맣게 달라붙고 계속 퍼내 주지 않으면 물이 들어오네. 선창

아래쪽은 이미 진흙과 물로 꽉 차 있어서 땅과 분간이 안 가더군. 게다가 돛

줄이 끊어지고 돛이 상하였는데, 우리나라에는 저 큰 돛을 감당할 천도 없거

니와 저리 굵은 밧줄도 없지. 들으니 삼나무로 꼰다고 하는데 어디서 구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땅을 파서 물을 들이고 배를 띄우는 대역사를 굳이 한다 해

도, 저 배는 아마 뜨지 못할 공산이 커.”

정치적 암투에 시간을 너무 허비한 탓이다. 배를 구출할 양이면 표류한 즉시

시도했어야 했다. 반년 가까이 모래톱에 좌초해 있던 아우스터리츠는 배라기

보다는 유적 비슷한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시준은 조제프 푸셰가 왜 아우스터리츠를 기념품 정도로 취급했는지 깨달았

다. 이 망할 녀석은 이미 배를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기왕

버릴 것이면 생색이나 내자는 협상의 기본을 발휘한 것이다.

물론 시준이 ‘어차피 배는 망했으니 저 녀석의 수교 얘기는 들어줄 필요가 없

다’는 식으로 보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준도, 그리고 그와 같은 이유로 정약용도 그렇게 보고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배보다 더 큰 것을 보고 있는 왕의 뜻과 합치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자기 자신의 지혜를 좀 지나치게 신뢰하는 왕은 시준의 해석보다 푸셰

의 말(중 자기 마음에 드는 부분)을 듣고 판단할 테니 보고해 보아야 소용없

는 일이기도 했다.

‘흥, 뭐 그러라지. 나는 김조순에게 면피나 해야겠다.’

시준은 왕에게 보낼 보고를 만들면서, 김조순에게 보낼 것도 하나 만들었다.

왕이 의심이 많아서 대본처럼 각자 무슨 말을 했는지 다 써야 했다. 영국과

통상할 때 이공이 요구했던 ‘개좌(開坐)’가 바로 이것이다.

물론 시준은 양심의 거리낌 없이 하나하나 다 늘어놓았다. 그는 거짓말 따윈

전혀 하지 않았으니까.

공무원은 원래 거짓말 안 한다. 사실을 덜 말할 뿐이다.

시준은 왕의 주문대로 ‘대영·대러시아 동맹을 맺어 주면 우리 프랑스는 왕이

원하는 서양식 군대에 협조’하겠다는 말을 이끌어 냈지만, 김조순의 주문대로

조선이 수교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히 전달했다.

만약 여기서 왕이나 김조순이 더 강요한다면, 진짜 재산 다 처분해서 지유만

데리고 영국이나 인도로 날라 버릴 각오까지 마쳤다. (시준은 잠깐 생각하다

가 자기 없으면 사실상 의지가지없는 기랑도 거기 포함했다.)

어차피 ‘삼베’만 있으면 두려울 게 없다. 윌리엄 자딘은 시준과 동업할 기회

만 노리고 있으니 무슨 수를 쓰건 밀항시켜 줄 것이다. 사실 밀항이라고 하기

도 좀 그런 게, 시준이 당당하게 영국 배 타고 나가도 동인도 회사가 시준을

보호한다면 조선은 별다른 강제 수단이 없다.

시준은 조선 왕국을 위해 복잡하게 머리 쓸 이유가 없다. 머리를 쓴다면 이해

당사자인 왕이나 김조순이 써야 한다. 시준은 프랑스인과 조선인이 새카맣게

달라붙은 아우스터리츠를 향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게 수익자 부담의 원칙이라는 거다. 이 뻔뻔한 봉건주의자 놈들아.”

그 결과로, 시준에게 하청 줘서 일 좀 쉽게 해 보려던 왕과 김조순은 결국 당

사자들이 그 고민을 떠안고 격심한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배를 쓸 수 없다 하니 아쉽지만 예조와 공조에서 개좌한 바를 보니 이치에는

어긋나지 않다. 공연히 배 한 척 때문에 백성들을 고역스럽게 만들 수도 없는

노릇. 우선 돛 만든 포(布)며 여러 기기, 그리고 대포와 쇠붙이 등을 들어내

도록 하라.”

아우스터리츠는 역사와 달리 먼 벽지까지 와서 알뜰살뜰한 최후를 맞게 되었

다. 어차피 버릴 배이기에 푸셰도 동의했다. 우물쭈물하다가 영국 놈들에게

주는 것보단 훨씬 낫다는 계산이었다.

그리고 요 몇 달 동안 왕과의 서신 교환이나 평양 감영에서의 소박한 활동으

로 조선 정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강 파악한 푸셰는 이공이 다음과 같이

말하리라는 것까지 짐작하고 있었다.

“불랑국 사람들이 배를 기꺼이 바친다니 기특하기 그지없다. 일전 예조 참판

이 아뢴 대로 그들은 모두 일국의 제후들인데, 평양성의 민가에 유숙하고 있

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우선 복공(푸셰)과 격립특자(格林特子, 그레테 자작)

같이 신분 높은 인사는 서울로 불러들이라.”

김조순은 호흡을 조금 가다듬었다.

왕이 지금 시준의 보고를 핑계로 수교를 추진하는 것처럼, 김조순 역시 시준

이 일을 잘 처리했다고 생각했다.

시준은 프랑스인들에게 시종일관 부정적 반응만 보여주었고 수교 없이는 어떤

봉사도 없다는, 다시 말해 수교만 안 하면 프랑스인에게 아무 빚질 게 없다는

좋은 구절도 이끌어 냈다. 바로 김조순이 바라던 바다.

하지만 왕이 그걸 이런 식으로 활용하니 미칠 지경이었다. 김조순은 절망스러

운 표정으로 주청했다.

“멀리 나온 사람이 항상 바라는 바는 오직 고향에 돌아가는 일밖에 없습니다.

전하께옵서 그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풀고자 하신다면, 마땅히 전례대로 자

관(咨官) 한 사람을 정하여 그들을 경사(북경)에 올려 보내셔야 합니다. 거기

에 그 사교의 본거지가 있으므로 그리하시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덕을 보일

수 있습니다.”

솔직히 정약용마저도 찬성했다. 배만 털고 중국으로 쫓아내어, 아무 탈 없이

프랑스 건을 끝내고 덤으로 부자재와 화포도 얻을 수 있는 완벽한 계획이다.

시준에게 한 말과 달리 이미 배를 받은 이상 굳이 못 보내 줄 이유도 없다.

청에 가서 기밀을 누설하면 안 되느니 하는 말은 감금조교를 위한 핑계에 지

나지 않았으니까.

허나 이공은 신하들과 달리 예가 뭔지 아는 군주였다.

“그 전례는 중국 사람들이 표류했을 때의 전례이다. 이제 불랑국 사람들이 군

왕의 보호를 애타게 찾으며 들어와 군함까지 바쳤는데, 내가 그들을 서울에

불러 따뜻한 밥과 술이라도 한 번 먹이지 않고 그 삼천리 고된 육로로 내치라

는 말이냐? 왕이기 이전에 책 읽은 자로서 그런 주인의 예를 잃는 짓은 할 수

없도다!”

안타깝게도 신하들 중 21세기의 스웨덴을 아는 자가 아무도 없었기에 원래 서

양국의 예는 그렇다는 반박도 할 수 있는 자가 없었다.

다시 좌의정으로 복귀해 있던 이시수는 별 고민 없이 돈 얘기를 꺼냈다. 왕도

예의를 제멋대로 주무르는데 뭐 어떠냐는 심정이었다. 군위신강이라, 군주는

신하의 본보기가 된다.

“불랑국 사람은 오백 명이 넘습니다. 서울이라고 하여 그들을 오래도록 기숙

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날이 갈수록 평안 감영의 창고가 빈궁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와서 각종 기기묘묘한 기계며 물화를 바치면 군왕이

반사(頒賜)하는 물목을 마주 내려주지 않을 수 없는데, 흉년이 그치지 않는

지금의 사세에 비추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네가 바라는 대로 프랑스 애들 불러다가 무기 뚝딱거리는 장난질 하면 그 돈

대느라 나라 망한다!’라는 이시수의 말은 누가 봐도 정론이었다.

하지만 이공은 이번에도 어리석은 신하들이 자신의 재치에 걸려들었다고 생각

하며 웃었다.

“걸핏하면 흉년을 내세우는 경들의 뜻은 진휼이 아니라 나태에 있는 것이 아

닌가? 먹고사는 일에 대해서는 내가 다 생각해 두었다.”

이공이 그러면서 소리쳐 좌우의 근시를 부르자, 곧 감자가 담긴 쟁반이 내어

져 나왔다. 이공은 감자를 마치 자기가 최초로 수입한 것처럼 자랑스럽게 소

개했다.

“이것은 감자(고구마)와 비슷한데, 의주 사람들이 처음 심기 시작하여 의주감

자라고 불린다. 본래 영길리국의 물산으로서 영길리국의 한 지방인 애려(아일

랜드)라는 곳의 특산이다. 애려는 그 넓이가 삼남 모두를 합친 것과 같지만

이 의주감자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이 넉넉히 먹고산다 한다. 예조 참판이 의주

에서 기르는 법을 익혀 왔으니 이제 전국의 인민들이 굶주림을 면할 수 있다.”

시준이 감자를 들여온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알 사람은 다 알고, 양계에

서는 많이들 심고 있으나 조선 전체에 퍼지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우선 만상이 감자 육종법을 비밀로 하는 게 컸다. 그래도 조선 사람치고 농사

모르는 사람 별로 없으므로 이것저것 시험해 봐서 고을별로 요령들이 서서히

생기긴 하였으나 대놓고 공개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느렸다.

그래서 제대로 된 알감자는 만상의 주요 상품 중 하나였다. 정약용이 별생각

없이 애민애국의 마음으로 감자 농사법을 불어 버렸다는 사실을 시준이 알면

정약용 그냥 숙청하라며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두 번째는, 짧게 설명하자면 조선에 냉장고가 없기 때문이다.

우의정 김재찬은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 하는 이 상황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

다. 바보를 보는 눈길을 왕에게 향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것은 대체로 중국과 압록강 근처에서 옛날부터 있던 것이온데, 상의 뜻이

비록 지극하시나 도저히 벼를 기를 수 없는 폐전(廢田)이라면 모르되 전국에

장려하심은 미편합니다. 그리한다면 기르기 쉽고 세곡으로 거두지 않으므로

백성들이 모두 논을 뒤엎고 그것으로 농사를 갈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으로 세를 대신하면 되지 않는가. 어찌 벼만이 세가 될 수 있을

거라 여기는가?”

어차피 더 이상 사직서 내기도 지친 김재찬은 그냥 귀양 갈 각오하고 “야, 이

머저리야! 네가 그러고도 농업국가의 왕이냐?”라는 말을 좀 길게 했다.

“전하. 잘 말린 쌀도 두어 해면 쥐가 쏠거나 젖어 썩어서 못쓰게 됩니다. 태

종대왕께서 저화(楮貨)를 만드시고 세종대왕께서 동전을 힘써 권하시었으며

세조대왕께서 유엽전(楡葉錢)을 제정하신 이유가 그것입니다. 쌀조차 이럴진

대 하물며 석 달도 안 지나 거멓게 썩어 버리거나 혹은 싹이 나서 독을 머금

는 물건이 어찌 세곡이 될 수 있겠습니까? 나라에 급한 일이 생겨 창고를 열

었을 때는 이미 악취 나는 거름 덩어리만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역대 제왕이

주림을 면할 방편으로 순무를 장려하였지만 순무를 세곡으로 걷었다는 이야기

는 듣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대동법이나 영정법 시행 이전이면 해볼 만하다. 쌀이 재정에서 차지하

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고 환곡 체계도 지금처럼 완성되기 이전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쌀이 경제 그 자체가 되어 있는 지금 조선에서 쌀

의 완전한 대체 작물은 ‘있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조선 후기의 화폐경제의

활성화 운운해도 조선이 망할 때까지, 아니, 망한 후에도 쌀은 주요 교환수단

이었다.

하물며 그것이 한순간의 실수로 날아갈 수 있는 감자 같은 물건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시준이 있었다면 왜 제대로 된 나라에서는 암호화폐를 국가 통화로

만들지 않았는지 깨달았을 것이다.

자기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왕은 다시 김재찬의 말끝을 잡아챘다.

“하지만 경의 말대로 순무는 역대 제왕들이 장려하신 바고, 그렇다고 해서 백

성들이 논밭을 죄다 순무로 뒤덮었다는 이야기 또한 내가 듣지 못했소. 이것

도 마찬가지요. 백성도 의주감자가 금세 썩는 것은 알 테니 논을 전부 없애지

는 않겠지. 콩이나 남령초(담배), 고추처럼 텃밭과 돌밭에서 기르면 되는 일

인데, 왜 안 되는 쪽으로만 자꾸 아뢰어 국가의 대계를 지완(遲緩)시키는가?”

그러나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공동체적 미래를 내다보고 합리적으로 판단하지

않으니까 21세기 대한민국 정부도 여전히 쌀을 우선 수매해주는 것이다.

신하들이 힘써 말렸지만, 왕은 결국 정약용이 의주에서 쓴 감자 농서 『상기

신서(商棄新書)』를 널리 반포하라 명했다. 시준이 옛날 밀무역 따돌리는 바

람에 정약용이 소일거리로 썼었던 바로 그 책이다.

상기란 기(棄, 농업의 신 후직)를 헤아린다(商)는 뜻으로 이 감자농사를 후직

에 비견할 업적으로 남기고 싶은 이공이 친히 내린 제목이었다. 지금까지 불

씨왕(프리드리히)을 본받아 수라를 감자로 채우던 고된 나날이 며칠인데 여기

서 물러날 순 없었다.

하지만 조선 신하들이 누구인가, 목이 떨어져도 할 말은 하는 것이 충(忠)이

다. 그저 절대복종을 미덕으로 삼던 일본의 봉건 가신들이나 일찌감치 현실주

의 노선으로 틀어버린 중국 선비들과는 또 다르다.

그러므로 절대 목숨이 아까워서는 아니고, 왕을 신하 막 죽이는 폭군으로 만

드는 건 또 임금 섬기는 도리에 어긋나기 때문에 신하들은 다른 방식의 명령

거부를 실행했다.

곧 인쇄가 잘 안 되니 가다가 잃어버렸느니 더 급한 일이 생겼느니 하는 별의

별 핑계로 왕의 명령은 지체되기 시작했다. 이공은 감자를 씹으며 분노를 달

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쌀은 올리지 말라는 게 자기 명령이었으니 그것밖에 씹을 게 없다. 이

공은 얼마 전 고사를 본받아 내린 교서가 제대로 실행되기만 하면, 한나라 효

헌황제는 하지 못했던 역적의 심판을 자기가 반드시 하리라 다짐했다.

과거 조선과의 무역을 터서 역사의 전환점을 찍은 존 레디 소령은 일개 계약

직 선장으로 시작해 그 공으로 동인도 회사의 고위직까지 올라간 인물이었다.

당연히 그를 본받고 싶어 하는 자가 많았다. 홍경래가 처음 아편 수출을 제안

했을 때의 제임스 할리버튼 선장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래서 할리버튼은 동인도 회사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 애쓰며 – 동인도

회사군에서 무기 빼돌려야 하니까 – 자기를 계약직 선장에서 정규직 선장으로

올려놓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런 제임스 할리버튼조차 홍경래의 이번 요구에는 좀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보시오, 존 씨(Mr. John). 총이나 화약 정도라면 모를까, 함포와 군함은

지나칩니다. 그건 티가 안 날 수가 없어요. 게다가 총도 양이 엄청나게 많지

않소이까? 내 숨김없이 말하자면 그간 조선 아편을 수입해 준 것은 호의의 표

시이지, 그게 고품질이어서는 아니에요. 대금은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나 이제 저 고풍스러운 옛일처럼 옥대에 감춘 조서를 받은 홍경래는 어느

새 반란군 수괴에서 우국충정의 열사로 변신해 있었다.

‘나라가 어지러워질 때’ 평서대원수(平西大元帥) 직함 하사해 주겠다는 약속

뿐만이 아니다. 부하들도 빠짐없이 면천 혹은 벼슬을 제수하고 평안도 사람들

을 자손 대대로 우대하겠다는 파격적인 내용은 홍경래가 반란군을 설득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원래 조선에서 반란군이 왕을 죽이자며 들고일어난 적은 거의 없었다. 왕이

아무리 나라를 망쳤어도 마찬가지다.

조선 사람들이 능력 따라 군주를 갈아치우는 자들이었다면 애초에 조선이 봉

건국가가 아니다. 이건 유럽조차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왕 모가지 날려버린

프랑스가 전 유럽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한마디로 그건 ‘무엄한’ 일이었다.

그래서 선비들의 반정이 아닌 백성들의 반란은 대부분 ‘왕의 총기를 흐리는

간신을 처단하자’는 것이었다. 홍경래의 난도 어쨌든 격문상으로는 ‘어린 임

금을 농락하는 김조순과 간신들’을 목표로 했다.

그러므로 어차피 홍경래가 할 일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이 있다면,

이제 당당히 무기를 대량 수입해도 된다는 것 정도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제 왕의 근위군이 될 것이었으니까.

이공이 밖으로는 중국과 서양을 종횡하며 안으로는 반란군과 깡패까지 주무르

는 신산귀모를 펼친 결과는 조선조 최악의 민란 수괴마저 감화시켰다.

충신의 길에 어찌 수단을 가릴쏘냐. 홍경래는 비장하게 말했다.

“반드시 지불하지. 당신들에게 미리 말한 이유는 그걸 준비해 올 시일을 주기

위해서요. 돈 나올 데는 다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작가의 말

1. 유엽전이란 화폐를 장려하긴 해야겠는데(화폐는 다른 것 제끼고 주조 차익만으로도 지배자에게 큰 이득이 됩니다) 뭔가 뾰족한 수가 없을까 고민하다가 화살 매니아 조선인들답게 "화살촉과 똑같이 생긴 화폐를 만들어, 평소엔 돈으로 쓰고 전시에는 이걸 화살로 만들어 쏘면 되겠다!" 는 비범한 사고로 만들어진 화폐입니다. 버드나무 잎처럼 생겼다 해서 유엽전이고, 같은 이름의 한자만 다른 화살도 있습니다.

물론 실패했습니다. 조선이 뭔 러시아 지하철 게임도 아니고 총알을 화폐로 써야 할 만큼 막장 세계는 아니었습니다.

2. 후직의 이름인 '기'는 버린다는 뜻입니다. 쓰레기 불법 '투기', 판결 '기각' 등의 말에 쓰입니다. 또 '상'은 장사한다는 뜻도 있지만 헤아린다는 뜻도 있습니다. '문헌을 상고하여 보면' 같은 표현에 쓰이죠.

후직의 어머니는 제곡 고신씨의 정비인 강원이라는 사람이었는데, 나가서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임신하자 자식을 여러 차례 내다'버렸지만' 여러 사정으로 못 버리자 할 수 없이 키웠다고 합니다. 고유명사가 버린다는 뜻으로 일반화된 건지, 하도 버려서 버린다는 게 이름이 된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발자국 운운은 혼외자 무마할 핑계를 그렇게 댔다는 뜻입니다. 주몽이라거나 뭐 비슷한 사례는 많습니다. 제가 유화 아빠 하백이라도 자칭 천제의 아들 해모수인지 뭔지 하는 놈팽이는 어디서 굴러먹던 혼인빙자간음 사기꾼이라고 생각하지 진지하게 믿지는 않았을 겁니다.

개인적인 뇌피셜입니다만, '거인'이라는 표현은 강원의 불륜 상대가 어쩌면 삼황오제 제곡조차 '그래 그냥 발자국인 걸로 하자' 라고 할 만큼 강대한 전사였다는 은유가 될 수도 있다고 추측합니다. 사서에는 버리니까 새가 덮어주고 어쩌고저쩌고 해서 데려왔다고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이때쯤 제곡이 상대의 정체를 눈치채고 '하 씨 전쟁하느니 그냥 뻐꾸기 알 키우고 말지' 라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명색이 삼황오제인데 이상하다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실존성을 차치하고 보더라도 저 시대의 군주는 촌장 비슷한 수준이었으며.. 상고시대에는 그냥 덩치와 근육이 곧 권력에 정비례했습니다. 뭐든지 그냥 패고 뺏으면 장땡인 시대였죠. 제곡도 눈치 좀 봐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건 인류공통으로,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제왕 명칭인 '루갈'은 '큰 남자'라는 뜻입니다.

3. 감자는 이공의 말과 달리 당연히 아메리카 원산입니다. 저 시대는 지식의 왜곡이 좀 흔했습니다. 확인할 방도가 잘 없다 보니...;; 그리고 작중 시점으로부터 20여년 뒤 아일랜드 대기근이 시작되죠.

18. 강철의 군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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