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17. 합종연횡(3)
왕의 하사품이라 하지만 교지를 받든 관헌에 의해 전달된 것은 아니었다. 우
군칙은 떨떠름하게 말했다.
“통무아문에서 요즈음 무역에 힘쓰는 상인들을 독려한다며 가져다주었네.”
홍경래 휘하의 대영 무역상들은 밀무역을 감추기 위해 공무역도 하고 있었다.
이들이 다루는 것은 주로 소가죽이었다. 원 역사의 조선도 개화기 당시 수출
하던 물품이며, 은근슬쩍 갑옷 만드는 것도 숨길 수 있어서 일석이조였다.
그러므로 ‘무역에 힘쓰는 상인’이라는 말이 틀린 건 아니다. 허나 여기에서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나라 사백 년 역사에 장사를 우대하는 일이 있었던가? 그건 21세기 한국
정부가 경기 활성화를 위해 도박을 장려한다는 말과 같다. 게다가 왕이 홍경
래의 이름을 알 까닭이 없다. 마음먹고 조사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홍경래 일당에게 이 ‘하사’가 기괴한 협박으로 들린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우군칙이 낮게 말했다.
“더 기다릴 수는 없네.”
“군칙, 말을 삼가게.”
“영길리인 때문이야. 섣불리 총포를 탐내다가 이 사달이 난 거야. 이 일이 퍼
져 나가면 이제 손쓸 수 없네. 거병해야 해!”
“닥치지 못하겠나! 욕속부달(欲速不達)이라. 그거야말로 지리멸렬하는 첩경이
야. 일단 숨겨진 뜻을 알아야 해. 그냥 하사품만 내리지는 않았을 거야. 같이
온 서신이라든가 무슨 다른 말은 없었던가?”
반란군 내에서 일종의 군사 담당자라 할 수 있는 김사룡(金士龍)이 대신 대답
했다.
“다른 건 없었습니다. 오직 그 옥 허리띠[玉帶] 하나뿐이었지요. 값져 보이기
는 했소이다마는.”
“옥대라고?”
잠시 생각하던 홍경래는 곧 지시를 내렸다.
“그 허리띠 이리 가져와 보게. 그리고 영길리초(양초)……. 아니, 그냥 누구 작
은 칼 하나 있으면 좀 줘 봐.”
외교적 문제 때문에 프랑스인 사절이 서울에 올 수는 없었지만 서신 교환 정
도는 가능했다. 특히 이공은 요즘 복씨(푸셰)라는 자의 파격적 혜안에 푹 빠
져 있었다.
눈치도 없이 ‘사사로운 총애로 나라의 기발을 쓰는 것은 미편합니다’ 했다가
대간 세 명이 줄줄이 책상 뺀 이후로 신하들도 그냥 모른 척했다.
이공의 근위대 구상이 구체화된 것도 푸셰가 도착한 이후였다. 건장하고 노련
한 병사들로만 구성되어, 전쟁에 임하면 물러남이 없고 쳐서 빼앗지 못함이
없었다는 나폴레옹의 최고 측근 ‘오래된 근위대(Vieille Garde)’에 대한 푸셰
의 설명은 이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공의 생각에, 정말이지 조선 사람들은 우물 안 개구리였다. 정약용을 기용
하고 영길리인에게 개항한 이 흐름을 타서 자신이 조선을 바꿔야 했다.
이공이 모범으로 삼은 군주는 요순우탕도 아니요, 한경제나 당현종도 아니었
다. 그처럼 다른 신하들도 다 알고 있는 명군은 별로 만족스럽지 못했다. 튀
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로지 이공 혼자만이 발굴해 낸 사람이어야 했다.
그것은 푸셰나 정약용에게 물어보니 어렵잖게 찾을 수 있었다. 보로사국(普魯
斯國, 프로이센) 불씨왕(弗氏王, 弗里德里希 = 프리드리히)은 백성들을 가르
치는 교화의 임무를 다해 옛 순(舜)의 치적을 근세에 되살린 사람이었다.
계몽군주를 자임한 이공은 일단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프리드리히를 본받았다.
그는 환관들에게 구해오라 명한 삶은 감자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까 섣불리
손대었다가 큰일 날 뻔했기 때문에 눈으로만 보고 있었다.
“백 일이면 캐어다 먹을 수 있는 것이나 추운 곳에서도 실하게 결실 맺는 것
은 저 제갈 무후도 장려한 순무[蔓菁]에 뒤처지지 않고, 든든하게 굶주림을
면하면서도 달고 넉넉한 맛은 신농(神農)도 알지 못했을 놀라움이다. 농사의
이치가 어찌 이(夷)에는 없겠느냐?”
이공은 혼잣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방 한쪽에서 고개 숙인 채 바느질을 하고
있던 궁인 박씨(朴氏)가 얌전히 고개를 들었다.
“성상의 하교가 지당하십니다. 아녀자의 좁은 소견에도 나랏일에 농사 중함은
알고 있으니, 어찌 성군이 아니시겠습니까?”
더없이 진지한 대답이었다. 왕이 저토록 국정에 진중한데 어찌 화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조금 전 이공이 앗 뜨거 하면서 감자를 놓친 일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
다. 패역자가 아니라면 그런 참람한 망상을 입에 담지 않는다.
그래서 박씨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아까의 다소 격렬했던 활동 끝에 솔기가
터져 버린 왕의 옷을 꿰매었다.
이공도 아직 젊어 맨몸에 겉옷 하나만 걸쳐도 감기를 걱정할 만큼은 아니었으
므로, 어깨 위에 느슨하게 옷 얹어 놓은 방만한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본래 이건 침방나인의 역할이지, 승은을 입어 상궁의 품계를 받은 궁녀의 역
할은 아니다. 허나 이공은 세 번째로 밤을 같이 보내고 났을 때 그녀에게 웬
서신 하나를 옥대에 넣고 꿰매라 명했다.
그 이후로 박씨는 왕의 마음에 들기 위해 기회가 있으면 바느질을 스스로 맡
았다. 시준의 사업을 이어받은 이강회가 바늘을 싸게 유통시키고 있어서 가문
한미한 박씨도 어디 액정서 같은 데에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왕 앞에서 솜씨
를 뽐낼 수 있었다.
그때는 이미 왕비 김씨에게 발길을 줄이고 박씨를 더 찾기 시작했을 때쯤이었
다. 이 시점에서 권문 벌열과는 거리가 먼 나인 박씨도 뭔가를 느꼈다.
박씨가 승은을 입은 지도 좀 지났기 때문에 이제 그녀 주변에도 새로운 권력
의 기미를 감지한 사람들이 조촐하게나마 있었다. 그들은 최근 있었던 왕과
영안부원군의 대립을 부지런히 귀띔해 주었다.
왕이 김조순의 세도를 탐탁잖게 여긴다는 거야 도성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일
이다. 그래서 부자연스럽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박씨는 출신이 높지 않을지언정 머리가 나쁜 건 아니었다.
차라리 승은을 입지 않았다면 모르되, 이미 왕의 총애가 잠깐이나마 자기에게
로 향한 이상 왕비가 자신을 좋게 볼 리는 없다.
영안부원군 김조순은 천하가 다 아는 세도가다. 왕비가 그렇게 잔인하거나 욕
심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나인 하나를 짓눌러 버리는 데에 특별히 독하고 견
고한 결심까지는 필요 없다.
권력에 대한 갈증에는 의외로 수동적인 부분이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박씨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왕의 관심을 자기에게로 붙들어 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 희망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조선 여인의 방식이 아
니다. 오히려 반대여야 했다.
주의해야 할 것 중 하나는 여기에서 절대로 왕비 김씨를 언급하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박씨는 고개 숙인 채로 왕에게 집중하다가,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들리자 대단히 송구스럽다는 어투로 말했다.
“근래에 자전(紫殿, 정조의 왕비 효의선왕후 김씨)의 성려가 우심하시니, 하
찮은 신첩(臣妾)이 어찌 저의 소망대로 전하를 오래 모실 수 있겠습니까. 신
첩의 손길이 민활하지 못하나, 이제 옷솔기 꿰매는 일이 거의 다 되었습니다.
곧 물러가겠사오니 만기친재에 다시 힘쓰도록 하소서.”
바느질하는 박씨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다시 동하여, 어깨에서 옷을 잡아 내
리려던 참이었던 젊은 군주 이공은 박씨가 자기 마음을 몰라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거꾸로였다. 알기 때문에 박씨는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이다.
겸손함을 드러내면서 왕을 애태우고, 그 와중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왕이 대
신 말해 줄 만한 재료도 던져 주는 화법이었다.
이 시대 궁궐에서 살아남으려면 당연히 갖춰 줘야 하는 소양 중 하나에 지나
지 않았으나, 이공은 여지없이 걸려들었다. 그는 매우 대범한 척하며 콧방귀
를 뀌었다.
“구기(拘忌, 무속적 금기) 두 글자를 거론하시는 자전께서도 상례를 벗어나시
긴 하였으나, 신하 된 자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것도 옳지 않다. 그저 한 번
잠깐 옮겨 늙으신 자전의 심기를 족히 해 드렸다가 적당히 다시 오면 될 것을
왜 난리들인지 모르겠다. 너는 그저 안심하고 나만 믿거라.”
두 사람의 이야기는 다른 게 아니라 정조의 부인 왕대비 김씨가 일으키는 작
은 소란이었다.
순조 10년(1810년) 6월, 왕대비는 왕에게 하교하여 경희궁으로 이어하길 재촉
한다. 무당 말 들어 보니 뭔가 꺼림칙하다는 것이다.
원래 역사에서는 순조가 미적거리니까 불러다가 꾸짖고 내일 당장 이어하라고
호령하여 결국 옮긴다. 신하들은 극력 반발했다.
그 이유라는 것도 공자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쫓아올 소리였다. 점괘가 불
길하다느니 어쩌니 하는 무식한 말은 신하들의 말마따나 ‘감히 왕궁에서 거론
될 말이 아니’었다.
이시수, 김재찬 등 당대의 중신들은 네 어머니 빨리 설득해서 철회 선언 받아
오라고 매일같이 찾아왔다. 어머니 명령을 내가 어쩌겠냐고 뭉개려는 순조에
게 문서로 보장 안 해주면 안 물러간다고 드러누워 꼬장 부리는 중신들이 실
록이며 일기에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조선의 제일 가치는 효도다. 김씨는 명백히 순조의 윗사람이며, 순조도 이 일
에 대해서는 ‘아뢰어 윤허를 받아야’ 했다. 실록의 ‘(내가 너네 시키는 대로
가서 아뢰었는데) 거북한 하교마저 있었다’는 기록을 보면 어머니한테 욕을
한 바가지 먹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니까 사실 지금 이공은 박씨한테 나만 믿으라느니 하는 허세를 부릴 입장
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이 박씨는 원 역사보다 몇 년이나 일찍 승은
을 입었으며, 그것은 이공이 김씨를 멀리하며 신하와 외척을 견제하려는 한
방편이었다.
그러한 맥락 안에서, 이공은 신하들이 거품 무는 꼴이 바로 왕가에 대한 신권
의 우위를 재확인하려는 수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존귀한 왕족이 다시 한 번 신하들 손에 쌀자루 꼴이 나도록 둘 순 없었다. 노
론이 참소로써 영종대왕의 성총을 흐리게 하여 그 같은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임오화변 때 노론이건 소론이건 신하 전부가 영조를 말렸다는 사실은
잘 기억이 안 났다.
이미 이공은 대응 방침을 결정한 상태였다. 조선에는 오로지 존왕(尊王) 두
글자밖에 없다. 그리고 박씨는 그런 이공의 마음을 한 번 더 흔들었다.
“원자궁(元子宮, 효명세자)이 바야흐로 하늘에서 내린 천품인데, 막 커가는
때를 당하여 마땅히 전하께서 친히 보호하여야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신료들
도 그러한 충정에서 만류한 것일 터입니다. 효도하는 도리가 비록 중하나, 지
혜로운 대신들의 충언을 부디 따르십시오.”
이공은 박씨의 의도대로 그녀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기실 박씨가 무슨 짓을 하든, 원자가 요절하지 않는 이상에야 아들을 먼저 낳
아 준 왕비를 이길 수는 없다. 이공의 눈에는 박씨가 백기를 들고 항복하여
여생이라도 편히 보전케 해 달라고 애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공은 손을 뻗어 박씨가 가지고 있던 자기 옷을 치우고 그녀를 가만히 끌어
당겼다.
“자식은 모두 균등히 사랑하는 것인데, 내 아직 젊으니 자식이 어찌 원자 하
나뿐이겠는가. 너는 모르겠지만 그때 허리띠를 꿰매어 준 일은 바로 국가의
대계이니 네 공이 작지 않다. 차서의 상하만 어지럽히지 않는다면 궁이 소란
할 일은 결단코 없으리라.”
비슷한 상황의 많은 남자들이 그렇듯이 이공은 자신이 사내다운 결단을 주도
적으로 내렸다고 생각했다. 허나 비슷한 상황의 많은 여자들 또한 그렇듯이
사실 박씨는 조금 전부터 이공을 손발처럼 부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박씨도 이쯤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왕비의 지위에 바로 도전하겠
다는 것은 어리석은 욕심이다. 그래서 박씨는 바늘을 내려놓고 이공의 손길에
순응했다.
다음 날 신하들은 폭탄 같은 하교를 받게 되었다.
“아,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과인은 사도세자의 손자이다.”
일단 첫머리만 보고도 목덜미 잡고 쓰러질 신하들이 한가득이었다. 애비랑 같
은 소릴 한 걸 보니 뒷말이야 뻔했다.
“그러나 선대왕께서 효순왕후(孝純王后, 효장세자빈 조씨. 순조의 법적 조모)
께 후손의 예를 다하였듯이 근본을 둘로 하지 않는 것[不貳本]이 종통의 근본
이다. 어찌 자전의 뜻을 받들지 않을 수 있겠느냐? 허나 대소 신료들의 간언
이 지극함도 마땅히 취해야 하므로, 나는 창덕궁에 그대로 머물겠다. 자전과
가순궁(嘉順宮,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만이 즉시 옮길 것이니 그렇게 시행하라.”
여기에서 ‘오, 그것 참 좋은 생각입니다! 그냥 귀찮은 당신 어머니만 옮기게
하죠!’라고 하는 자는 그 놀랍고도 굉장한 멍청함에 대해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이공의 말은 어머니에 대해 매일 문안 인사를 가지 않겠다는 뜻이다. 조선의
사회 이념을 감안했을 때 이건 21세기의 “나 이번 명절엔 집에 안 내려갈래”
보다는 훨씬 충격적인 일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대소 신료들의 간언이 지극’하기 때문이다.
김조순은 사위의 장난질에 눈살을 찌푸렸다. 불효자가 되려면 저 혼자 하든
가, 신하 핑계 대서 조신들을 순식간에 패륜아로 만들고 무엇보다 자기 딸까
지 같이 불효의 반열에 끌어들였다. 왕이 안 가는데 왕비 김씨 혼자서 경희궁
에 터벅터벅 가서 문안할 수야 없지 않은가.
“성상의 지극한 효도에 누를 끼칠 수야 없는 노릇. 웃전의 강고한 뜻을 이리
거스르는 것도 신하 된 자들이 감히 할 바는 아니니, 이제는 자전의 하교대로
다른 말을 하지 말고 차후에 좋은 날을 택해 환궁하실 수 있도록 하는 편이
옳겠소.”
“부원군의 말씀이시라면야…….”
김재찬과 이시수도 마지못해 동의했다. 신하들은 김조순이 말한 대로 똥이 더
러워서 피하냐는 심정으로 왕의 이어를 묵과하고, 돌아올 때는 정부 조직의
정규 절차를 밟는다는 양보를 얻어냈다.
그날 퇴궐한 김조순은 아들 김유근을 불렀다.
시준은 걸어서 한 달 가까이를 잡아야 했던 여정이지만 김유근이 누구인가.
원래 천것과 귀하신 분은 시간의 가치부터가 다른 법이다.
영안부원군의 아들쯤 되면 얼굴이 곧 마패다. 역참의 말을 제 것처럼 써서 달
려온 김유근은 벌써 서울에 돌아와 있었다.
김조순은 아들을 앉혀 놓고 보고를 들었다.
“네가 보기에 그 아이가 능히 불랑국 사람들을 막아낼 수 있을 재주로 보이더냐.”
“아버님께서도 보셨듯이 시준이라 하는 그 아이에게 상민에게 어울리지 않는
재주가 있음은 분명합니다. 허나 원래 천한 뿌리는 바뀌기가 힘든 법. 윗사람
을 공경할 줄 모르고 예의를 차리지 못하는 그 천성으로는 한(漢)의 팽양(彭
羕)이나 우리나라의 허균(許筠)처럼 반드시 그 오만함으로 인해 목이 달아나
고야 말 것입니다. 예조 참판이 가르쳤다 하여도 근본이 우악(愚惡)하고 음란
한 천성은 쉬 바뀌지 않아…….”
아무리 아들이라지만 김조순은 짜증이 치미는 것을 억제할 수 없었다. 말에
정보가 하나도 담겨 있지 않았다.
“지금 내가 무얼 묻고 있느냐. 어딜 감히 아비 앞에서 술주정 같은 소릴 늘어
놓는 것이야.”
“소, 송구합니다. 그…… 시준은 제가 말하기도 전에 아버님의 뜻을 짐작하고
복종했습니다. 소자는 시준이 매나 개 같은 재주를 써서 일을 도모할 수 있으
리라고 여깁니다. 기실, 아버님의 말씀처럼 불랑국 사람들과 통교하는 것이
어디 쉽겠습니까?”
거기까지는 김조순도 동의했다. 그런데 이번 일로 보았을 때 왕이 거기서 물
러날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원래 저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영길리국과 통상이니 뭐니 하는 장난질이 좀
심하게 성공한 이후로 왕은 바뀌었다.
왕과 이상한 서신을 주고받는 복씨인지 뭔지 하는 자가 외부의 독이라면, 정
약용은 왕에게 이상한 바람을 불어넣는 내부의 독이었다. 애초에 영길리국과
의 무역도 정약용이 뛰어서 성사된 일 아닌가. 수상해도 너무 수상했다.
모험주의자가 되어 버린 왕은, 불랑국 사람들이 군대나 대박 같은 달콤한 조
건을 내세워 흔들면 정말 수교는 물론이고 소위 말하는 신교의 허통까지 고려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서양 무역을 전담하는 예조 참판은 사교도 정약전의 동생이다.
조정의 일부 절개 없는 자들이 정약용에게 붙어서 살살 꼬리를 흔들며 정약전
의 석방을 주청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됐다. 정약전의 죄야 사교를 섬겼다는 것
이니 신교 허통이 이루어지면 원인 무효, 풀려나게 될 수밖에 없다.
김조순이 알기로 조선의 천주교도는 숨은 것이지 멸절된 것이 아니다. 김조순
은 몇 년 전 처형된 이승훈의 일가와 정약용이 교유하는 것도 다 알고 있었다.
그런 정약용이라면 분명히 몰래 끈을 가지고 있을 것이요, 그 끈은 운신이 자
유로운 상인 제자와 닿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김유근을 보낸 것은 시준을 잘 살펴 바로 그런 이면의 사정까지 탐색하라는
뜻이었다. 알아듣게 설명해 주었는데도 이 불초한 자식은 조정에서 자기 자리
사라질까 두려워 허겁지겁 돌아오기나 했다.
애비가 부원군인데 그깟 말직 벼슬자리야 어련히 알아서 해 줄까. 기개를 꺾
지 않으려고 일부러 말 안 했더니만 아무래도 진짜 제 실력으로 식년시 급제
한 줄 아는 모양이었다.
김조순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좌근(左根)이를 보냈어야 했나.’
나이는 어리고 학문도 형들보다 못하나, 재치라던가 민첩함에서 오히려 김조
순이 눈여겨보고 있는 셋째아들 김좌근이라면 혹시 더 좋은 성과를 가져왔을
지도 모른다. 나이도 그 시준이라는 녀석과 비슷하니 말이다.
그러나 김조순은 곧바로 그것을 부정했다. 계사를 잇고 가독을 맡는 것은 그
사람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적장(嫡長)이기 때문이다. 지위는 맡았기 때문에
적합한 것이지 적합한 자가 맡는 게 아니다.
왕처럼 유재시거(唯才是擧)의 철딱서니 없는 패도에 취해 옛 질서를 깨부수는
것은 어리석은 짓. 옛날 성현들이 그 정도도 헤아리지 못했겠는가. 무엇이 쓸
모 있고 없는지는 범용한 자라도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기풍이 소인배와 같지 않아 당장의 이득보
다 더 큰 것을 더 멀리 내다보았기에 그 가르침이 수천 년을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자신의 결심을 더욱 단단히 다지던 김조순은 문득 너무 오래
생각했다는 것을 깨닫고 앞을 바라보았다. 아들이 뭔가 말하고 싶은 표정으로
꿇어앉아 있었다.
“뭐냐?”
“아버님께 예도(禮道)를 삼가 여쭙고자 합니다.”
“말해 보아라.”
“『예기(禮記)』에 종자가 없으면 지자(支子)로서 그 뒤를 잇게 한다[宗子無
後 以支子後之]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서자나 얼자도 종자가 될 수 있는 것입
니까?”
“네가 소위 서얼 허통을 주장하는 무리의 설에 현혹되었느냐? 그렇지 않다.
만약 적자가 없다면, 형이나 동생의 아들을 양자로 들이는 법은 있어도 첩의
자식이 적통을 주장하는 법은 없다. 다만 천위(天位, 왕위)만이 다른데, 지존
의 위는 한시도 비워 둘 수 없는 것이기에 대의를 위해 왕실 어른의 추인을
받는 것이며 그때도 입적은 새로이 하는 것이 상례이다.”
김조순은 문득 아까의 일이 생각나 잠시 분통이 터졌다. 왕의 말은 맞다. 엄
중한 종법상 왕은 효장세자의 자손이지 사도세자의 손자가 아니다. 하지만 왕
은 그것을 자기 유리할 때만 쓰고 있었다.
착한 뜻은 오로지 마음의 단서에서 우러나는 것이므로 그것은 목적이지 도구
가 아니다. 그 마음에 어찌 진정코 효의(孝義)가 있다 하겠는가?
김유근은 그런 아비 마음을 모르는 채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자식이 없을 경우[無子] 부인을 보내고 새 적처(嫡妻)를 맞는 법은
어떠합니까? 『가어(家語, 공자가어)』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김조순의 눈썹이 꿈틀했다. 실제로 김유근은 혼인하고도 아직 자식이 없다.
그게 부인 민씨(閔氏)의 잘못인지는 불확실하다. 확실한 건, 거족 여흥(驪興)
민문과의 혼인은 그만한 이유로는 깰 수 없다는 것이다.
“생산은 음양의 조화이지 어느 하나의 죄가 아니다. 그래서 옛글에도 불구하
고 아들 없다 하여 적처를 내치는 일은 법전에조차 일부러 넣지 않았다. 내가
왜 양자를 이야기했겠느냐? 절개는 부부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아직
젊으니 쓸데없는 걱정은 사서 하지 말거라.”
“아버님. 의주에 다녀온 뒤로 제 마음이 들뜨고 갑갑하여 잠을 이룰 수 없습
니다. 안방에는 들어가 보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이리 급히 돌아온 것도 그
일로 의논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달을 보아도 그 얼굴이 보이고 세숫물에도 그
얼굴이 비칩니다. 이러다 끝내는 아주 말라 죽겠습니다. 대를 잇기 위해서라
도 저를 다시 한 번 의주에 보내 주시면…….”
김조순은 아들이 시준을 사랑한다고 오해하지는 않았다. 김유근이 애달픈 목
소리로 첫 마디 할 때부터 김조순의 손아귀에 단단히 잡혀 있던 벼루가 드디
어 강맹하게 날아가고 말았다.
당연하지만 시준도 김유근이 자기 얼굴을 떠올린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
무리 시준이 조선 남색문학계의 대부라고 한들 그건 상상의 범주를 벗어나는
일이었다.
그는 의주를 떠나기 전 오죽당원들을 불러모아, 혹시 나중에 저번에 왔던 그
한량이 돌아와서 ‘허튼짓’을 하거든 아무도 모르게 쓱싹해서 산군(山君)님 공
양이나 하여 드리라고 지시했다.
오죽당원은 무식한 것이지 어리석은 게 아니다. 이 둘은 분명히 다르다. ‘허
튼짓’이 뭔지 되물을 정도로 멍청한 사람은 당원이 될 수 없다. 시준은 어느
정도 안심하고 용천부로 떠났다.
정약용은 통무아문 제조로서 이 일의 총책임자를 담당하고 있었다. 병조에서
도 좀 당상관급이 와 봐야겠지만 지금 왕이 병조 길들이느라고 판서가 달포마
다 바뀌는 형국이라 쉽지 않았다.
그는 감탄하며 말했다.
“참으로 크구나. 이것이 양선이라는 것인가. 내 눈으로 보는 것은 처음이로다.”
과거 밀무역하면서 정약용만 따돌린 일이 생각나 양심에 찔린 시준은 슬쩍 딴
데를 보았다.
지금 용천부에는 정약용을 비롯해 예조와 공조, 병조 및 평안 감영의 관헌들
이 나와 있었다. 시준이 보기에는 5천 톤 전열함의 공짜 획득에 눈을 빛내는
하이에나 같았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UFO를 주운 거나 다름없다. 프랑스인들이 공짜로 준대도
아무것도 못 할 것이다.
UFO로 뭔가 해보려면 외계인들이 도와줘야 한다. 그리고 그 외계인이 범우주
적 동포애를 발휘할 수 있도록 잘 달래보라는 게 임금의 뜻이요, 이놈 저놈
함부로 찌르며 깐죽대다가 우주전쟁의 희생자밖에 더 되겠느냐는 게 김조순의
뜻이다.
E.T.와 프레데터의 간극은 너무나도 멀어 보였다. 그러나 시준은 그 사이에서
둘 모두를 만족시켜야 했다.
혹은 둘 다 만족시키지 않거나.
작가의 말
1. 원래 이어 관련해서 자전이 혜경궁 홍씨라고 나왔으나, 효의선왕후 김씨가 맞습니다. Bertholdt 님이 지적해 주신 것처럼 효의선왕후 김씨 외에는 자전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인물이 현재 없습니다. 인물 혼동으로 인해 큰 실수를 한 점 사과드립니다. 작품 내용은 수정되었으나 전개에는 영향이 없습니다.
2. 순조의 후궁 숙의 박씨는 원래 저런 암투 캐릭터는 아니며 그 부분은 작중 창작입니다. 원 역사대로라면 6년 뒤 처음 순조의 눈에 띄어 딸을 낳으나, 장애를 가진 딸은 일찍 죽고 본인도 별다른 활동이나 특징 없이 1854년 사망합니다.
3. 천위라는 말은 원칙적으로 천자의 자리를 말하지만 조선은 은근슬쩍 황제국 용어를 왕에게 대입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천위, 천노, 천안 등의 말은 조선 왕에게도 많이 썼죠.
4. 조선엔 칠거지악을 범한 부인을 내쫓지 않을 경우 형벌에 처해지는 법이 있었습니다. 잘 지켜지진 않았고, 질투/아들 못 낳음 이 두 개는 조선 상식으로도 좀 말이 안 된다 생각했는지 이건 법전에서 빠졌죠. 공자가어 자체가 위서이기도 하고요.
김유근도 박씨처럼 캐릭터가 좀 이상하게 되었는데 원래는 그럭저럭한 인격자였습니다. 원 역사에서도 그냥 김병주(金炳㴤)를 양자로 들입니다. 조선 후기를 주름잡은 고위 관리인 그 김병주입니다. 지금은 어려서 그럴지도요. 하하.
5. 실제로 이 시기(1810년 하반기), 조선 병조 판서는 정말 계속해서 바뀝니다. 단 작중과 원래 역사는 이유가 딴판이죠. 원 역사에서는 앞다투어 사직서를 자꾸 내는 바람에..
17. 합종연횡(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