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17. 합종연횡(2)
아낙네들 편에 딸려 지유를 보내고 나자 시준의 머리도 조금 돌아가기 시작했
다. 압록강가에서 근문소는 조금 거리가 있기에 생각할 시간은 많았다.
‘김조순이? 조정의 파발과 같이? 왜?’
정부의 용건과 같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기발(騎撥) 하나로도 충분하니까.
아마 뭔가 비공식적으로 덧붙일 것이 있거나, 최악의 경우 왕의 입장과 김조
순의 입장이 상충될 수도 있다.
시준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꼬였다. 왕과 김조순의 지시가 충돌할 경우, 누구
의 말을 더 우선해야 하는가? 왕의 말인가, 아니면 김조순의 말인가?
시준도 세도 정치라는 말은 알고 있다. 김조순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시준이
한국에서의 역사 교육을 통해 가지게 된 이미지로써 논하자면 김조순은 존재
감도 희미한 순조보다 훨씬 더 조선의 실제 권력자에 가까웠다.
그러나 시준이 조선에서 20년 가까이 살아 본 결과는 또 달랐다. 아무리 허수
아비라고 후대에 조롱받는다 한들 왕은 왕이었으며, 왕과 신하 사이에는 그
신하가 아무리 권신이라도 넘을 수 없는 격차가 있다.
시준은 공무원 시절 과장과 국장이 갈등을 일으켰을 때의 경험을 되살려 보았다.
‘이럴 땐 보통 오래 같이 일할 쪽을 골라야 한다.’
실제로 시준은 김조순을 만나 보기도 하고 그에게 요리 품평을 듣기까지 했지
만 왕은 전혀 본 적이 없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군대도 맞선임이 무섭고 회사도 직속상관이 중요하다. 심정적으로는 김조순이
더 싫었지만 실제로 빼앗아간 건 왕이 더 많기도 하다.
게다가 시준의 지식 내에서 김조순이 살아생전 권력을 잃고 축출되었다는 정
보는 없다. 그러면 적어도 김조순이 죽기 전까지는 김조순 편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런데 얘 언제 죽어?’
시준은 순조나 김조순이 언제 죽는지 모른다. 먹고 살기 바빠 죽겠는데 누가
그런 걸 외우고 다니겠는가. 시준은 진작 환생을 대비해 역사책 좀 열심히 읽
어 둘걸 하고 말도 안 되는 후회를 했다.
시준은 모자란 재료로 열심히 추리했다. 안동 김문이 그 후로도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집권 전까지 권세를 휘둘렀던 것을 감안하면 시준의 시대는 안동 김
문, 정확히는 그 분파인 장동(壯洞) 김문의 시대라고 봐도 무방하다.
만약 김조순이 장수하지 못하고 순조보다 훨씬 일찍 죽었다면 외척이라는 결
정적 약점을 가진 장동 김문은 반남 박문이나 풍양 조문에게 철저하게 공격당
했을 터요, 장동 김문의 세도 정치가 오래 이어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설마 사위가 장인보다 먼저 갔을 것 같지야 않지만, 김조순은 충분히 오래 산
다고 가정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김조순이 1832년에, 순조가 1834년에 사
망하니 통밥으로 때려 맞춘 것치고 꽤 정확한 추리였다.
시준은 결정했다.
“좋아, 닭다리의 원한은 내가 잠시 참는다.”
“뭐?”
“아냐, 어서 가자.”
올해 봄 임명되어 왔다는 의주 부윤 조흥진(趙興鎭)은 이래 봬도 능력 있는
수령이다.
그는 흉년 대책으로 위화도를 개간하는 사업에 착수함은 물론, 홍경래의 난
당시 사람들을 격동시키는 거짓 연설로 모병과 승리에 기여하는 등 유연한 사
람이었고 그래서 근문소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 중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지금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애초에 2품관이 상인과 마주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체모를 많이 잃는 일이다.
일을 부탁하는 입장이라고 해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달갑잖은 상황
이었다.
시준도 충분히 이해했다.
공식적으로는 신분제가 없는 대한민국도, 부처 장관이 청사 앞 문방구 주인을
만나 이번 달 쓸 복사기 토너를 주문한다거나 행사용역 파견업체를 방문하여
하청 행사 감독하거나 하진 않는다. 만약 그런 일을 장관에게 요구하는 내각
이 있다면 바로 다음 주쯤 붕괴할 것이다.
하지만 조흥진은 작년 시준이 서울에 있을 당시 같은 한양도성에 살았으며,
거기서 승지를 거쳐 대사간까지 오른 사람이다. 시준이 어떤 암묵적 위치에
있는지 대강 안다는 얘기다.
조흥진은 적당히 타협했다. 그래서 그는 ‘내가 나온 이유는 너 때문이 아니라
문서가 왕의 교지이기 때문’이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 왕의 교지 자체는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용천부에 표류한 채 아직도 그대로 있는 서양 대박을 보러 가야 하는데, 비
변사 외교당상(정약용)의 제자로서 서양 말을 잘 하는 네가 가서 작은 소임이
나마 맡으라는 어명이시다. 일이야 공조(工曹) 사람들이나 여러 무관들이 올
것이고 근반(跟班, 종자) 노릇이나 잘하면 되리.”
종자 대우 해주면서 일은 전권대사급으로 시키고 책임까지 뒤집어씌우겠다는
악덕고용주는 산업혁명 시대의 흡혈귀 같은 공장주들 중에서도 잘 없을 것 같
았지만 시준은 일단 고개를 숙였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번 소동의 목적이 아우스터리츠를 공짜로 탈취하는 것이었으니 조정에서 그
배에 안 가볼 수는 없다. 아마 그 배의 주인인 프랑스인들을 데려가 이것저것
물어보고 슬쩍 다시 떼어놓은 다음 배를 모래톱에서 구출할 방도를 꾀하는 것
이리라.
실제 시준이 프랑스인들에게 대려던 핑계처럼, 조선은 현재 좌초한 5천 톤 전
열함을 쉽사리 어째 볼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게다가 현재의 조선은 국초와 달리 배를 만들거나 관리하는 전문 관청이 없
다. 선대왕 시절 전함사(典艦司)를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흥진이 말
한 것처럼 중앙의 배는 공조나 병조 관리가 적당히 맡고 해안의 배는 지방 수
영에서 적당히 맡는 식이었다.
영국인들에게 부탁하면 예인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프랑스 해군을 영국의
전함 생산 외주업체쯤으로 취급하는 영국인들이 그걸 가만 조선에 넘겨줄 턱
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일단 이 일은 절대 비밀이었다.
조흥진은 별로 탐탁잖은 태도로 문서 하나를 더 내주었다.
“그 외에 예조에서 내려온 문서가 있다. 국가의 비밀이니 읽고 이 자리에서
태우거라. 이는 옛날 관의 노비를 해방한 때와 같이 모든 백성을 적자처럼 균
등히 여겨 상한조차 들어 쓰시는 주상 전하의 지극한 뜻이므로 무슨 비밀한
총애 같은 것은 아니다. 괜히 엉뚱한 생각이나 교만을 품지 않도록 하라.”
시준은 그것을 펴 보고서야 조흥진이 왜 이리 까칠한지 알게 되었다. 그건 영
어로 적혀 있었다. 김시택 같은 중인이면 모를까, 사대부 출신인 조정 중신들
은 체면 깎으면서 영어를 배우는 자가 거의 없다.
필체를 볼 것도 없이 정약용이 쓴 것이었다. 시준은 그 내용을 대강 암기하기
위해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었다.
‘으음…….’
예상대로였다. 정약용의 말을 정리하자면 배를 널름 먹는 것까지는 조정의 합
의가 된 것 같았다. 푸셰는 배에 큰 미련이 없는 것처럼 보였으니 그것까지는
어떻게 입을 잘 털어서 조제프 푸셰를 한 번만 속이면 가능할 듯도 했다.
시준의 생각엔 그 배를 조선이 가져서 어디다 쓰겠다는 건지 여전히 알 수 없
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왕이 바라는 것은 한발 더 나아간 곳에 있었다.
한마디로, 프랑스인에게 마치 조건에 따라선 영국 버리고 너희랑 손잡을 수도
있다는 기운을 풍겨 많은 것 – 주로 무기 공방 근무 같은 – 을 뜯어내라는 주
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기만책이 성공하려면 순조 이공이 조제프 푸셰보다 똑똑하다는
가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시준이 보기에 그 가정은 틀렸다.
‘배를 먹겠다는 근거가, 이 근처에 프랑스 근거지가 없으니 뒤탈 없을 거라는
심보였지. 그러면 조정에서도 프랑스가 영국처럼 빠른 무기 공급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 터. 그래서 그다음 대책이 벨테브레 5백 명의 양산
인가? 아니, 지금이 무슨 도망도 못 간 그 왕이나 키보드 북벌하던 걔 아들
시절도 아니고 서양인만 있으면 서양 무기가 막 튀어나와? 진짜 그렇게 생각해?’
그래도 이공의 입장에선 많이 양보한 것이다. 원래는 프랑스와 정식 무역을
트려고 했는데 정약용을 위시한 신하들이 결사적으로 말려서 여기에서 끝난
것이니 말이다.
시준이 서신을 찢어 화로에 던져 넣자 조흥진이 말했다.
“그리고 너의 작은 공을 헤아려 영안부원군 댁에서 치하하신다 하니, 어서 돌
아가 보거라.”
그럴 것 같았다. 김조순의 사절이 어깨 위에 머리를 얹고 다닌다면 왕의 파발
이 용천부 관아에 온 것을 알아챈 시점에서 방향을 틀었을 것이다.
왕명이 도착했는데 그와 관련된 얘기를 김조순의 개인적 수단으로 또 전달한
다면 누가 봐도 왕의 지시를 농단한다는 그림이 나오지 않겠는가. 아마 그 사
절도 왕의 파발이 자기와 거의 동시에 도달한 일에는 당혹했으리라.
시준은 별 놀라움 없이 절하고 물러나왔다. 하지만 밤이 되어서 홍득주 집에
들어갔을 때 그 ‘사절’로 와 있던 사람에게는 놀라고 말았다. 손님의 사랑방
으로 들어간 시준은 눈을 크게 떴다.
“아니, 공자(公子)께서 이 먼 변방까지는 어쩐 일로…….”
그건 김조순의 아들 김유근이었다. 옛날 김조순 집에서 그에게 빈정대다 시원
하게 두들겨 맞은 경험이 있는 시준으로서는 반가울 수가 없었다.
김유근이 여기 와 있는 것도 이상했지만, 더 이상한 것은 그의 태도였다. 김
유근의 신분이라면 지금 당장 안방과 대청마루를 차지하고 홍득주를 비롯한
집안 식구들을 줄줄이 마당에 무릎 꿇려 재워도 이상하지 않다.
아니, 그 전에 천한 상한의 집에는 들지도 않았으리라. 동헌이야 티가 너무
나서 못 간다 해도 다른 향토 사족 또한 의주에 적지는 않다. 거기서 시준을
부르면 그만이다.
김유근은 이를 드러내었다.
“자발없는 놈. 부원군의 명을 받들어 비밀히 밤낮으로 달려온 것이니 입을 단
속하거라. 내가 친히 왔다는 것을 의주 부윤이 귀띔해주지 않더냐?”
맹세코 시준은 못 들었다. 조흥진은 비밀을 지키려면 비밀이 있다는 것조차
비밀이어야 한다는 철칙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다.
시준은 옷을 털고 털썩 주저앉았다. 김유근의 눈썹이 치켜올라 갔지만 시준은
태연히 말했다.
“제가 무릎 꿇고 엎드려 있으면 공자의 신분이 금세 탄로 나지 않겠소이까?
어서 부원군의 가르침을 전해 주시지요.”
“천한 것이 윗사람을 능멸할 기화(奇貨) 한 번 제대로 잡고 날뛰는구나. 뭐,
좋다. 그 정도 굴욕은 각오한 바. 오히려 범용한 자였다면 부친께서 굳이 나
를 보내실 이유가 없지.”
안타깝게도 시준은 몰랐지만 – 알았다면 더 놀렸을 것이다 – 사실 김조순이
아들을 보낸 이유는 김유근이 중임을 맡을 명철함을 가져서가 아니다. 아들이
라면 아비와 운명공동체니 배신할 확률이 적고, 무엇보다 김유근이 한가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아버지 뒷배로 제술(製述) 1등에 낙점되어 직부전시(直赴殿試, 전
시를 볼 자격을 얻음)에 머무른 상태. 다시 말해 공적 직위는 아직 진사다.
임용 안 된 백수라는 뜻이다.
돈 많아서 살림 걱정 없는 집이라 해도, 다 큰 아들놈이 집에서 뒹구는 꼴은
고대 메소포타미아부터 현대 한국까지 부모라면 똑같이 속 터지는 광경이다.
김유근이 그리 무능한 자는 아니지만, 아버지로선 이 기회에 조정 들기 전 정
무 감각을 좀 키워 보라는 심산도 있으리라.
그런데 김유근은 아직 관록을 더 쌓아야 할 듯했다. 시준은 부원군께서 황공
하옵게도 하사하는 물목이라고 말하며 상자를 쾅 내려놓는 김유근을 보면서
저게 지금 선물을 가져온 자의 태도인지 의심했다.
사약 싸와서 먹고 뒈지라고 닦달하는 금부도사도 저거보단 친절할 것 같았다.
김유근의 입장에서는 하인 하나 없이 짐 들고 오는 것이 더할 나위 없는 치욕
이었겠지만.
어쨌든 시준은 기대하면서 풀었다. 상인인 자기에게 주는 선물이라면 싼 물건
은 아닐 터요, 김유근이 가볍게 들어올린 것으로 보아 금이나 은 혹은 엽전
꿰미는 아니다.
보자기를 풀어헤치고 나무 상자를 열어 본 시준은 잠깐 말을 잊었다.
“……지금 공자께서 반찬 하시려던 봇짐과 헷갈리신 건 아니시오이까?”
거기에는 황당하게도 눈깔 뒤룩뒤룩하는 암탉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한동안 시준은 ‘기랑이가 좋아하겠네.’ 정도의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김유근
이 고압적으로 말했다.
“이놈, 무엄하다. 네 아무리 무식하다 하나 생각을 하고 주둥이를 놀려라. 거
기에 담긴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겠느냐?”
시준도 조선에서 살 만큼 살았지만 가끔 가다 이 시대 사람들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치킨 던지고 매 때려서 미안하다고 한마디 적어 보내면 될
걸 가지고 이 짓거리를 왜 한단 말인가. 사과하기에는 도저히 체면이 안 서니
이거 보고 알아서 헤아리라는 얘기인가?
시준은 자신을 다스렸다. 순조보단 낫다, 순조보단 낫다 하는 자기 암시가 시
준의 뇌에서 메아리쳤다.
“……제가 더할 나위 없이 감격하였으며 주시는 뜻을 잘 알아들었다고 아뢰어
주십시오.”
“넌 내가 닭 한 마리 전하러 여기까지 온 줄 아느냐. 지금부터 이야기할 테니
잘 들어라.”
“알았다고 아뢴 건 정말로 다 알았기 때문입니다. 영안부원군 대감의 뜻은 이
런 것이 아닙니까? 영길리국이야 시운이 맞았고 명분에 저어함이 없어 용납할
만하나 불랑국 사람들은 사교에 물든 무리이고 흉참한 뜻을 품고 있으니, 이
번 불랑국 사람들이 함부로 교역이 어떻고 하는 말을 제가 갔을 때 잘 막아
나라에 보탬이 되도록 힘쓰라는 말씀이시겠지요.”
김유근은 다시 한 번 무례를 꾸짖는 대신 놀란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이미 닭이 선물일 때부터 알아봤다. 아마 영안부원군 김조순은 굴욕 때문에
덜덜 떨리는 마음으로 아들에게 지시하였을 것이다. 시준에게 굉장한 부담이
가는 일을 시킬 게 아니라면 김조순이 그 희생을 감내할 이유가 없다.
예를 들어, 왕의 지시를 어기는 일 같은 것 말이다.
이미 아까 의주부 동헌으로 가면서 다 예상한 일이다. 시준은 대응 방침도 이
미 정해 두었다.
그러나 더 큰 목적을 위해 원한도 잊고 심지어 군주를 버린다는 참람한 각오
까지 마친 시준의 결심은 그다지 빛을 발하지 못했다.
김유근에게 한 잘난 척도 잠시, 정약용의 서신을 보낸 왕의 뜻이 조금 늦게
시준의 머리를 때렸기 때문이다.
왕이 시준에게 직통으로 지시하고 싶었다면 다른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김유근처럼 드러나지 않은 직신을 보낸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이건 만약 실패하면 정약용을 가만 놔두지 않겠다는 왕의 암시다. 시준이 생
각했던 것처럼 ‘아쉽게 됐습니다! 노력은 해봤는데 벨테브레 꼴 되기 싫다고
하네요!’ 같은 속 편한 상황은 꿈도 꾸지 말라는 얘기다.
애초에 시준에게는 선택권 자체가 없었다. 이 사회를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이
다. 왕과 권신 사이에서 어느 편을 들까 하는 고상한 정치적 기로의 고뇌는
시준 따위 상놈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윗분들의 지시는 상충하든 말든 둘 다 해야 한다. 절대관통의 창으로 금강불
괴의 방패를 찌르라면 찔러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세계선 논리 오류
를 마구 굴러다니며 수정하는 게 아랫것들의 일이다.
‘와, 다 때려 엎어버리고 싶다.’
시준의 고뇌를 모르는 김유근은 시준을 재평가한 모양이었다. 건방진 천것인
줄로만 알았더니 꽤 재지가 있었다.
김유근은 시준에게 자꾸 뭔가 더 다른 용건으로 말을 걸어보려 했다. 그리고
시준은 그게 매우 귀찮았다. 지금 그 부잣집 도련님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
니었다.
적당히 예를 표하고 물러난 시준은 밤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우선 떠오
른 생각은 실로 서울을 주름잡는 정치깡패다운 것이었다.
‘그냥 정약용을 버릴까? 뭐 또 짤려서 다시 귀양 가는 정도겠지 설마 죽이기
야 하겠어? 의주에서 보니까 잘 먹고 잘사는 것 같던데 귀양이 체질에 맞을
수도…….’
하지만 시준은 곧 포기했다. 정약용을 귀양 애호가로 만들어 버리는 도의적
문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득의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이미 시준의 장사 인맥, 그중에서도 서울 인맥은 정약용과 희만당 제자들이
적지 않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정약용이 몰락해 버리면 역관과의 커넥션으
로 만든 책 장사와 바늘 장사가 결딴나고, 양반가와의 선도 끊어진다.
거기에 만약 화가 오죽당에까지 미치게 되면 가장 귀중한 대마 장사도 존치를
장담할 수 없다. 아편 추방의 원대한 대의로써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저편에서 흔들리는 그림자가 보였다. 시준은 그
것만 보고도 그림자의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지유야, 왜 거기 있냐? 해도 졌으니 어서 들어가라. 이제 처서도 머지않아서
밤이슬 맞으면 감기 걸린다.”
“걱정돼서 그랬지.”
지유는 숨어 있는 곳을 들킨 아이처럼 입술을 삐죽대며 나왔다.
“보기에 좀 이상하던데, 누구였어?”
“서울에서 심부름하러 온 아랫사람이다. 내일 아침 일찍 갈 테니 잊어버려도 돼.”
시준은 그렇게 김유근에 대한 작은 복수를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침 아
무도 없었다. 지유는 시준이 잡는 손을 거부하지 않았다.
“장주님이 아시면 꾸짖을 테니 방에 급히 데려다주마.”
“혼자 갈 수 있어.”
혼자 갈 수는 있지만 손을 놓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어쩌면 데려다준 후에도
시준을 혼자 보낼 생각이 없을지 모른다. 두 사람은 능숙하게 자기들만의 세
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꼭 눈치 없는 인간이 어디에나 있다.
시준과 지유는 헛기침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짐 다 챙겨서 나온 김
유근은 못 볼 꼴을 봤다는 듯이 혀를 차며 마당으로 내려와 편지를 내밀었다.
“국무에 한가로이 유숙하며 세월을 버릴 수야 없는 법. 더는 볼일이 없으니
나는 이제 돌아가 보겠다. 이걸 줘야 하는데 네가 먼저 떠들어대어서 깜박했
구나.”
김유근도 더 소란 일으키기는 싫은지 그대로 몸을 돌리려 했다. 그 와중 아직
도 미처 숨지 못한 지유의 눈과 김유근의 눈이 마주쳤다.
김유근은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지유는 화들짝 놀라 시준의 뒤로 숨었다. 그
래서 시준은 김유근의 얼굴을 잘 볼 수 있었다.
그건 드라마 2화 맨 끝부분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난 재벌 3세의 얼굴이었다.
시준의 머릿속에서 어떤 커피 가게 광고가 울리는 것 같았다.
시준은 영안부원군의 아들이 길거리에서 객사했다고 치고 압록강 어딘가에 묻
어 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평안도에 호랑이도 많고 하니 잘 둘
러대면 괜찮을 것 같았다.
홍경래의 반란 준비 기간은 약 10년으로 추정한다. 국가 간의 정규전도 준비
에 그 정도 시간을 끌면 사정 다 드러나서 실패할 확률이 높은데 반란처럼 속
도와 은밀성이 생명인 일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러다가 중간에 들켜서 시작도 못 해보고 끝난 반란이 무수하다는 것을 감안
하면 홍경래가 확실히 비범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시준의 개입은 홍경래에게 별로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왔다. 통무아문
때문에 왕의 눈이 서도에 집중된 이상 이런 거북이 같은 반란 준비는 들킬 확
률이 훨씬 높아졌다.
통무아문과 영길리인에게 상세한 보고를 받고, 그걸 정리해서 상상을 좀 가미
하여 웅혼한 계략 짜는 게 요즘 취미인 이공은 곧 무기 밀수의 움직임을 심증
으로나마 포착할 수 있었다.
홍경래에게 다행인 것은 이공이 자신의 능력을 여전히 과신한다는 점이었다.
원 역사에서 홍경래의 난은 자신감으로 무장된 이공의 정신도 파괴시켰지만,
아직은 아니다.
2년 전 단천 일도 그렇고 흉년으로 인한 각지의 소규모 소요 정도는 흔한 것
이었다. 흉년이다 보니 백성들이 배고파서 도덕과 충의를 먹어버렸는지 각지
에서 괘서며 벽서가 날아다니고 요참이 죽순처럼 돋아나며 패싸움이 빈발했다.
홍경래의 조직도 이공에게는 그중 하나로 보였다. 아직 그렇게 대규모 반란을
겪어보지 못했으니 무리도 아니다.
이공의 무리수를 굳이 꼽자면 자신이 능히 그것을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점이었다.
영국인을 능란하게 조종하고 청을 침묵시켰으며 장사꾼들을 손안에 쥐었듯이,
이공은 반란군도 자기가 물길을 어떻게 트느냐에 따라 ‘옳은 방향’으로 써먹
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이공은 곧 내수사와 액정서를 통해 조종할 수 있는 상인들을 시켜 거꾸로 자
취를 더듬었다.
물자 중에는 곡식이나 땔감처럼 사람들을 많이 모아 두려면 필연적으로 들어
가야 하는 것들이 있다. 곧 평안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
게 그에 걸맞은 활동을 하지 않는 조직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그들이 반란군이라는 증거는 없었지만, 이공은 그다운 논리의 비약으로
일을 추진했다.
조선에서 유일하게 서양 무기를 조금이나마 활용하고 있는 홍경래의 조직은
왕에게 충성하는 새로운 병사, 서양 말로 근위대(近衛隊, Garde)가 될 수 있
는 가능성이 있었다.
사실 처음 이공이 생각한 단체는 시준의 오죽당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냉철한
군주를 꿈꾸는 이공은 정치깡패와 친위군은 분리하는 것이 권력 견제에 좋겠
다고 판단했다.
이공은 그 누구도 믿지 않기 때문에 배신도 당하지 않는 치밀한 통치자로서의
자신에게 흡족한 치하를 보냈다.
오죽당을 제외한다 해도, 근위대 후보를 평안도에서 찾는 시도 자체는 충동적
인 게 아니다. 이공은 일전 정약용에게 하교하였듯이 차별받는 평안도를 따스
하게 감싸 안아 자신의 새 지지기반 삼기로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솔직히 평안도 사람들을 원숭이 수준으로 봤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허나 원
래 비범한 자는 평범한 자를 이해하기가 좀 힘들다.
그런 전차로, 홍경래는 그답지 않게도 갑자기 패닉에 빠져 대혼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홍경래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우군칙을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주위에 있었기에 ‘그 새끼 미친 거 아냐?’ 라는 말이 좀 안전
하게 번역되어 나왔다.
“주상 전하께서 내게 하사품을 내리셨다고?”
작가의 말
1. 조흥진의 거짓 연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난 평정 이후인 순조 18년의 기사입니다.
"고 참판인 조흥진은 그때 의주의 부윤으로서 군교와 이민(吏民)을 불러 모아 칼을 짚고서 여러 사람들에게 맹세하기를, ‘(전략) 본 고을은 예로부터 충의로운 선비가 많았으니, 의주라고 이름을 지은 것에 다 까닭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존망이 달린 위급한 때를 당하여 어찌 하나의 의사(義士)로 나라를 위하여 도적을 칠 자가 없겠는가?’ 하고는, 드디어 남쪽을 바라보고 통곡하자, 요새지를 지키는 장교와 성을 지키는 사졸들은 모두 눈물을 턱까지 흘리면서 죽음으로 보답하기를 원하였다고 합니다."
의주의 이름에 대해서는 작중에서도 나왔듯 고려 시절에 거란이 다 망하니까 의주(당시 보주) 성주가 물자를 고스란히 가지고 고려에 투항했기 때문에 너무 기뻐서 고려 예종이 의자 붙여주었다는 설이 있고, '화의' 라는 그쪽 동네 옛 지명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지만 어쨌든 의로운 선비가 많아서 붙은 건 아닙니다. 조흥진은 일종의 프로파간다를 한 거죠.
2. 전함사를 없애라는 식으로 정조가 명령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지만, '대전통편' 편찬부터 전함사가 법전에서 제외됩니다. 아마 그 전부터 무력화되어 있긴 했던 것 같습니다. 그와 별개로 해군 전력 자체는 계속 증강하지만... 내실은 장담할 수가 없었죠.
3. 근위대 표기가 프랑스어인 이유는 다음화에 나올 겁니다. 하하. 당시의 민란은 단천과 곡산의 난, 홍경래 난 등 굵직한 것이 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흉년 내내 시도때도 없이 소요가 빈발했습니다.
4. 시준의 생각이 아주 허무맹랑한 건 아닙니다. 김유근은 후일 평안도 관찰사가 된 적이 있는데, 예전 자신의 인사(기실 꼭 청탁이 아니라도 이 시대의 '인사 간다'는 의미가 꽤 크긴 합니다만...)를 거절당해 원한 가득한 하급 관헌에게 부임길에서 습격당해 일행 5명이 죽고 김유근 자신도 놀라서 부임을 거부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만 당대 최고의 권력자 일족에게, 인사 안 받아줬다고 5명이나 죽이는 대규모 습격을 저지른 겁니다. 원래 이 시대 사람들은 오늘만 사는 경향이 좀 강하긴 했습니다.
17. 합종연횡(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