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54화 (54/284)

54화

17. 합종연횡(1)

시준은 홍경래에 대한 떨떠름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아니, 행수(홍경래)께서는 왜 여기 나와 계십니까?”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우군칙 같은 부하들이거나 금점 주인들이었는데, 대부

분은 의주 사람도 아니다. 이런 낯선 분위기의 험악한 사람들이 고갯길을 점

거하고 있으니 지유는 설사 나왔더라도 황급히 다시 들어가 봐야 했으리라.

“왜긴, 무사히 고향 돌아왔으니 우리 사이에 나와 보지 않는 게 말이 되나?

이 사람, 우리 인연이 몇 년인데 그리 데면데면하게 구는가. 섭섭하게시리.”

시준은 언제부터 자기가 홍경래와 그렇게 친했는지 알 수 없었다. 서울에서

사업상 이유로 몇 번 서신을 주고받은 게 다고, 그것도 솔직히 반은 시준 자

신이 홍경래를 감시하기 위해서이지 그와 친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어쨌든 시준은 건전한 인격을 가진 사내였다. 남자 따윈 사교에서 항상 후순

위로 미뤄 놨다는 뜻이다.

지금은 지유를 보러 가야 한다. 시준은 손을 내저었다.

“이 어린 사람을 이리 환대해 주셔서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허나 양부(養父, 홍득주)께 먼저 돌아왔음을 고하는 것이 마땅한 예절이라.

나중에 제가 찾아뵙고 인사하겠습니다.”

그러나 홍경래는 놔주지 않았다. 그는 숫제 시준의 소매를 잡아끌기까지 하며

말했다.

“홍 장주와 이 사람은 의로 맺은 숙질간이 되니, 자네와 나도 어찌 형제라 아

니할 수 있겠는가. 뒤퉁스런 소리 그만하고 이리로 오게.”

기랑이 묻는 눈으로 시준을 쳐다보았으나 시준은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서울 검계와는 사정이 다르다. 홍경래가 무슨 해코지를 한 것도 아닌데 대낮

의 동리 입구에서 대학살을 일으킬 수는 없다.

‘기랑이 이 녀석 너무 위험한데. 누구든지 치킨만 주면 왕 모가지 따오라고

시켜도 별로 고민 안 하고 수락할 것 같아. 내가 데리고 있어야겠어. 저 총은

나중에 뺏어야겠다.’

결국 시준은 소매 만지작대는 기랑을 단속하고 홍경래를 따라갔다.

홍경래는 시준의 생각과 달리 반란군이 도열한 벌판이라던가, 강철과 화약 냄

새가 떠도는 무기고 같은 곳으로 시준을 데려가지는 않았다.

그곳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강가 공터였다. 올여름 의주에는 크게 홍수가 나서

압록강이 넘쳤는데, 무너진 민가가 천여 채라고 할 정도의 재앙이었다. 어디

는 가뭄이고 어디는 홍수이니 하늘이 조선에게 상당히 유효타를 세게 넣고 있

었다.

그러나 바뀐 역사에서는 조금 달랐다. 홍수야 그대로 났지만 근문소 초창기

임상옥이 공사비 횡령하려고 과도하게 벌였었던 제방 공사가 전화위복이 되

어, 순조가 직접 위로 전문을 보내진 않아도 될 정도에서 그쳤다.

그래서 사람들도 별다르게 우울한 빛 없이 여기 모여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의주천이 수입된 지 오래되어 이제 그 천 본래의 용도, 그러니까 천막으로도

꽤 쓰이고 있었는데 여기에도 볕을 가리기 위해 꽤 큰 규모의 유막이 가설되

어 있었다.

그리고 거기 모인 건 여남은 명의 남녀노소였다. 밭일하다 나온 사람도 있고,

곰방대나 궐련을 빼어 문 사람도 보였다.

‘잠깐, 남녀노소라고?’

비록 가운데 장막을 치고 나누기는 했으나, 시준은 조선에 온 뒤 남녀가 밖에

서 모여 있는 것을 실제로 처음 보았다.

그 앞에는 커다란 나무판에 먹을 칠한 칠판을 두었다. 희만당에서도 자주 쓰

던 흑판(黑板)이었다.

그리고 시준은 그 앞에 백묵(白墨)이 가득 쌓여 있는 것도 금방 알아볼 수 있

었다. 시준이 이것저것 만들어서 팔아먹던 물건 중 하나였으니까.

거기 사람들은 시준을 보고 서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거나 손가락질을 하며

유심히 바라보았다. 시준은 구경 좋아하는 조선 사람들의 습관에 대해 논평하

는 대신 자신의 추측을 확인해 보았다.

“학교를 세우신 겁니까?”

“학교라고 해 주면 내 기분은 좋겠으나 아직 그럴 정도는 못 되네. 희만당이

야 자네 빼고는 거의 사족들이라 상한이 발 디디기 어려웠지마는, 천하다고

하여 어찌 무식한 게 마음에 기쁘겠는가. 나름대로 배움 원하는 자들을 모아

봤네. 지금은 낮이라 다 일하러 간 것뿐 저녁때 되면 사람들이 꽤나 모이지.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시준은 홍경래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뻔히 알았지만 그것을 입 밖에 내지

는 않았다. 시준은 말해 보라는 표정으로 홍경래를 쳐다보았다.

잠시 기다리던 홍경래는 곧 포기하고 자기 용건을 말했다.

“……교습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게지. 옛 희만당 제자들은 각자 자기 학문을 궁

구하거나, 서울로 스승 따라 올라갔거나, 상놈과 어울리기 부끄러워하여 도저

히 초빙할 수가 없었네. 자네야 이 서러움을 잘 알 테니, 귀찮다 하지 말고

며칠에 한 번이라도 와서 강의를 해 주면 고맙겠어.”

시준은 일언지하에 거절하려 했다. 그러나 다음 말이 시준의 발목을 잡았다.

“상놈이 무식하기까지 하면 매번 빼앗기고 학대만 받지 않겠는가. 똑똑한 자

네도 서울 가서 익히 서러운 일 겪었을 줄로 믿네. 다들 일부러 배우러 올 만

큼 눈치도 있고 살림이 긴절(緊切)한 사람들이라 영학 몇 마디만 배워도 나중

에 사례는 톡톡히 할 수 있을 걸세.”

홍경래가 김조순 닭다리 사건을 듣지야 못했겠지만 그 정도 되는 사람이면 능

히 짐작할 수 있을 터이다. 시준은 홍경래의 말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 뼈

아팠다.

시준은 모인 사람들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홍경래야 죄가 있을 예정이라

고 쳐도 이 사람들에게는 죄가 없다.

그저 길가에서 눈에 띄었다고 분풀이로 걷어채고 맞는 게 서러워서, 있지도

않은 빚 대신이라며 딸을 노리개로 끌고 가는 꼴이 원통해서, 한 마디 대들라

치면 평생 듣도 보도 못한 무시무시한 혐의를 씌워다가 허벅지에 흰 뼈가 드

러날 때까지 살 발라내어 죽이는 게 두려워서 배우기로 한 자들일 터다.

시준은 서울에서 난잡한 잔치 즐기는 양반들에게 대마초 팔던 때를 떠올렸다.

이상하게도 흉년이 들수록 양반들은 더 부자가 되었으며, 시준은 대마 하나만

으로도 여태까지의 모든 수익을 능가하는 수익을 올렸다.

그리고 그것은 원래 이들의 것이다. 시준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그 일을 수락했느냐?”

홍득주가 그 전보다 약간 작아진 목소리로 묻자 시준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허나 홍경래 그자의 논변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홍경래가

그저 사람들을 가르치기만 하려고 학당을 세웠을 리 없습니다.”

혁명이든 반란이든 정치적 변혁은 동지를 필요로 한다. 동조자가 아니라 동지다.

설사 그 겉모습이 너른 광장에서 수십만 인민을 역사에 남을 연설로써 진감케

하여 파도처럼 일어나는 민중과 함께 쟁취하는 것이었다 해도, 그 이면에는

그러한 무대를 준비할 여러 동지와 지하 조직이 있다.

구락부, 살롱, 연구회, 소설 창작회 등 이름은 다양하나 본질은 같다. 당국의

감시에 걸리지 않을 규모와 성질의 조직 안에서 찬찬히 준비하여, 나중에는

걸려도 그들이 감히 어찌할 수 없을 만큼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이것이 꼭 굶주려 핼쑥한 얼굴에서 눈만은 열정으로 빛나는 지식인 계층과 학

생들에 의해서만 조직되는 건 아니다. 한국의 군사 쿠데타 역시 군내 사조직

에서 비롯되었다. 조선에 아직 인텔리 계층은 없으나 대체할 만한 것은 얼마

든지 있다.

홍경래는 그런 것을 만들려 한 것이다.

강의를 수락한 시준은 평안도에 벌써 이런 모임이 여러 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산과 운산, 단천, 용천 등 평안도 곳곳에서 홍경래는 마을 단위의

사조직을 만들고 있었다.

오가작통(五家作統)이 법전에 엄연히 있는 조선으로서 이게 쉬웠을까 싶지만,

양계는 본래 조선적 질서와는 약간 이질적인 곳인 데다 이러한 질서를 무너뜨

린 게 바로 근문소다. 인과응보라고 할 수 있었다.

의주 근문소의 성공은 다른 고을 사람들로 하여금 초보적인 자치회 조직과 향

촌 이익 보호에 나서게 만들었다. 홍경래도 거기서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아전들과 합세하여 수령에게 ‘이 방법이 최선’이라고 아뢰면 물정 모르는 수

령들이야 별수가 없다.

근문소와 비슷한 사조직은 수령에게도 반갑다. 송사를 줄여 줄 뿐만 아니라

학교를 흥성케 하고 호구를 늘리는 등 수령칠사를 간편하게 만들어 주는 이점

도 있다.

한마디로 자기 일을 하청 주는 대신 다소의 이권 획득을 묵과하면 되는 문제

다. 공무원이라면 넘어가지 않기 힘든 유혹이다.

그렇다고 해도 꽤 놀라웠다. 군대를 유지하는 것만 해도 보통 사람으로서는

죽을 정도의 일이었을 텐데, 민간 부문에서 이 정도로 영향력을 확대했다니

말이다.

홍경래가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세운 이 체제는, 시준에게 아주 맛있어

보이는 먹잇감이었다.

“따라서 그 학당에 드나들고 여러 협동회(協同會)에 물건을 팔며, 사람들과

친교를 맺어 두면 나중에 긴히 쓰일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금점 만들 때 제

가 활(猾)의 이야기를 말씀드렸지요? 어차피 이미 얽혀서 죄를 피할 수 없다

면, 죄가 일어나기 전에 먹어 버려야 합니다.”

홍경래가 만든 네트워크를 내부에서 삼켜서 반란을 무력화하자는 그 계획이

다. 덤으로 돈도 얻고. 홍득주는 담배 연기가 독한지 기침을 좀 하고 답했다.

“그래. 기억한다. 그간 나도 청맹과니처럼 손 놓고 있지는 않았느니라. 지금

산남이 그 친구 위세가 대단한 것 같지만 실제 장사꾼들 사이에서는 호령 소

리가 높질 않아. 아마 네가 보았다는 그 덕대 몇이며 도고 몇이 산남의 명을

직접 따르는 전부일 게다. 다만 영길리국과의 일은 내가 손을 쓸 수 없지만.”

시준은 이어진 홍득주의 설명을 듣고 인상을 찌푸렸다. 홍경래가 아편을 직접

재배해서 어딘가에 팔고 있는데, 그건 영길리국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

었다.

‘설마 홍경래가 아편장인 영국놈들보다 더 잘 만들 수 있을 리야 없고, 운송

비 절감이 미끼겠군. 미치겠네. 잡초(weed, 대마초의 은어. 여기서는 마약)

시장은 내가 선점하려고 했는데. 어째 예상했던 것보다 불티나게 팔리질 않는

다 했어.’

그렇다면 더더욱 홍경래의 조직에 침투할 필요가 있다. 영국산 무기로 무장

한, 그리고 동인도 회사의 지원을 업은 반란군이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왕의 그 말도 안 되는 프랑스 무기 매입 의지를 지원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사람 잡는 아편을 도대체 한 푼 양심의 가책도 없이 팔아대다니 홍경래가

아까 말한 민중의 대의가 다 퇴색될 지경이었다. 그러고서야 무슨 명분이 있

다고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영국에 팔면 조선에 역으로 침투하는 것도 시간

문제다.

반면, 자신이 파는 친환경 웰빙 담배야말로 아편을 대체할 안전한 기호식품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서울에서도 성공했는데 인맥과 기반이 다 있는 이 의주에서 못할 게 무엇이

랴. 영국인과 중국인이, 나아가 조선인이 아편에 중독될지도 모르는 사태는

세계시민적 윤리로써 막아야 했다.

이강회도 말했지만 원래 평안도와 함경도의 삼베는 북포라 하여 예부터 품질

좋은 것으로 알아주었다. 그러면 이파리의 품질도 좋을 게 분명하다고 생각한

시준은 곧 머릿속에서 사업 구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시준을 물끄러미 보던 홍득주가 말했다.

“그래, 이젠 네가 내 문상(도제)이라 말하기도 어렵구나. 아마 네가 서울에서

벌여 놓은 판이 나보다도 클 테니.”

“제가 어찌 아버님께 비교되겠습니까. 이 의주부와 평안도에서 홍 장주님 이

름이라면 다 몇 수는 접어 주는걸요. 제가 문상으로서 애썼으니 나중에 진짜

로 한 재산 갈라 주셔야 합니다.”

실제로 재산 – 약 팔아 번 것까지 포함한 - 규모라면 이제 홍득주에 필적하겠

지만 아직 홍득주의 기반이 필요했던 시준은 그렇게 아부해 두었다. 홍득주도

양아들의 귀여운 말에 기분이 나쁘지 않았던지 허허 웃고 그러마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다음에 나온 말은 시준의 웃음기를 싹 날아가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유는 언제 데려갈 거냐, 대체?”

이제 김조순이나 정약용 앞이 아닌 시준은 억눌러 왔던 분방함을 터뜨렸다.

“전 그 말 처음 듣는 날 의주를 떠나 지금 돌아왔는데, 왜 그게 움직일 수 없

는 사실이 되어 있는 겁니까? 제가 뭘 어쨌다고요? 누가 들으면 하룻밤 새 만

리장성 쌓고 가시버시라도 된 줄 알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조금 전 홍경래에게서 풀려나고 지유를 만났을 때, 거의 장성 쌓

을 뻔하긴 했기에 말하면서도 좀 켕겼다. 완순이의 조언이 좀 적절했던 탓이다.

시준은 홍득주가 싸리나무 울타리 어쩌고 하면 반박할 말 몇 개를 생각해 보

았다. 하지만 홍득주는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는 사람의 말[言]을 다루

는 데 있어 시준보다 훨씬 노련했다.

“그래서 안 데려간다고? 진짜 서울에서 색시 생긴 거냐? 벌써부터 난봉질하고

다니면 못쓴다.”

도저히 양부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기에, 시준은 당신 작은집들이나 정

리하라는 얘기는 하지 못했다.

“그게 아니고, 일전에 한 번 말씀드렸을 텐데요. 조만간 홍경래 그자 때문에

이 북변이 크게 어지러워질 겁니다. 앞으로 몇 년…… 적어도 제가 관 얹기 전

까지는(스무 살) 조정 일이며 장사며 이리저리 나돌아다니는 저보다는 지유를

장주님께서 보호하시는 게 더 낫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삼사 년 안에 데려가긴 한다는 거지? 알겠다.”

홍득주는 배부르게 웃었다. 시준은 그제야 자기가 함정에 걸려들었음을 알아

챘다. 왠지 장지문 밖에서 치맛자락 급히 스치는 소리도 들린 것 같았다.

홍경래는 자기가 직접 학생들을 지도하지 않고 시준에게 부탁했다. 시준은 홍

경래가 워낙 반역질 하느라 바쁘니 그럴 여유가 없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는 좀 달랐다. 시준이 홍경래 학당에 가 본 결과 홍경래가 사람들

에게 유럽 학문을 가르치지 않은 이유는 그럴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준은 쏟아지는 질문에 당황했다. 개중에는 도저히 상민들이 생각해 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질문도 많았다.

“그 영길리문(英吉利文)의 자모(字母)는 스물여섯 자인데, 곧 소리를 적은 것

이니 이는 정음(正音)의 스물여덟 자와 통하는 글자라. 이것도 우리나라처럼

고대의 현군이 제정한 것이오? 그렇다면 천지인(天地人) 어느 이치를 본받은

바가 있습니까?”

“용천 사는 친구에게 들어 보니 영길리국에는 사람이 전혀 수고하지 않아도

솜만 넣어 주면 하루 열 필의 목면 피륙을 쩔커덕쩔커덕 짜내는 기기가 있다

하던데, 내가 그것을 좀 사 오고 싶다는 말은 어떻게 하면 되오?”

“내가 여기서만 말인데 노름빚이 좀 있어서 영길리국 배에 타갖고 바다에 나

가 살길을 찾고 싶소. 선생이 좀 소개해 주면 안 되겠소?”

“영길리국 사람들로 말하면 혹은 난돈(蘭墩, 런던) 사람이라고도 하고 혹은

흔도사단(힌두스탄) 사람이라고도 하니 그 출신이 어디요? 저 효종대왕 때의

나선(羅禪, 러시아)과 같은 종자입니까?”

뭔가 이상한 질문도 섞여 있고 해서 시준은 그것을 무시했다. 다 답하려면 끝

도 없다.

“자자, 일단 걸음마부터 해야 뛰는 것이 아니겠소이까. 열의는 갸륵하나 우선

말부터 배워야 통합니다. 진서를 공부하려면 먼저 『천자문』부터 해서 『소

학』과 『격몽요결(擊蒙要訣)』을 읽는 법. 먼저 오늘 가져온 이 종이 낱장을

보시오.”

그것은 정약용 저 『영학해설』의 초고였다. 물론 정약용은 이 일을 모른다.

시준은 일부러 한 장만 주었고, 사람들은 기초적인 영어 알파벳과 그 발음 및

간단한 인사말이 언서로 설명된 첫 장을 받아들었다.

“오늘은 이것을 강의하겠소. 다음에 또 오면 두 번째 장을 강의하지요. 책 전

부는 내게 있는데, 저어기 동구밖 정 의원(정약횡) 댁에서 단돈 한 냥에 팔고

있소. 내 장담하는데 이건 서울에도 없는 책이오.”

정말이었다. 이공은 영학해설을 받고 기뻐하며 관찬(官撰)을 지시했지만, 김

조순이 지휘하는 조신들이 격한 반대 상소를 올리는 중이어서 아직 출판되지

는 않았다.

오랑캐 말이라고 안 된다는 단순무식한 얘긴 아니다. 김조순이 제기한 문제는

돈이었다.

지금 흉년이 극심한데 장난질이나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농사에

도움이 되는 책을 찍는 것도 아니고, 그 돈이면 도대체 몇 집의 굶주림을 면

하게 해 줄 수 있겠느냐는 논리는 꽤 힘을 얻고 있었다.

그래서 시준은 의주에서 독점 장사가 가능했다. 서울이었다면 김조순이 가만

놔두지 않았을 테지만.

신난 시준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너무나 명석 총명하여서 한 장 정도는 툇마루에서 졸면서도 금세 외운

다! 혹은 너무나 학문에 대한 열의가 드높아서 도저히 뒷장을 기다리지 못하

겠다! 하시는 분들은 정 의원 댁으로 오시오. 그간 마비산이 다 떨어졌었는데

영길리에서 귀한 물건을 사들여서 그것도 채워 놨소이다.”

사실 시준이 말한 이유보다는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까 이 교습에 매번 참가하

지 못한다는 이유가 컸지만, 아무튼 자신들의 학구열을 과대평가하게 된 사람

들은 곧 책을 사 갈 것이다.

시준이 왕이라면 관찬을 밀어붙여 싸게 보급하였을 수도 있었을 터. 허나 그

는 왕이 아니고 조선 인민 대중에 대한 교양 함양의 대의보다 돈이 더 중요했다.

한 냥이라면 공부 많이 한 선비들이 청에서 들여오는 서적 한 권 정도와 비슷

한 값이다. 시준은 벌써부터 서로 귀엣말로 소곤대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아마 푼돈 내어 『레 미제라블』 공동구매하고 돌려 보던 – 그리고 혁명 일으

켰던 – 파리의 노동자들처럼 계라도 꾸리려는 심산이리라.

‘그것도 나쁘지 않지.’

지금은 그 정도에서 만족해야 한다. 배부르게 주위를 둘러보던 시준의 눈에

장막 저쪽 편에 있던 여자 교습생들이 들어왔다. 예의상 되도록 쳐다보지 않

으려던 쪽이었다.

대부분은 이렇게 길거리에 나다녀도 되는 여자들, 그러니까 무당과 백정 등

상놈들도 마주치길 꺼려 하는 최하층 천민이었다.

시준의 조선적 상식으로는 여자를 밖에서 보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으나,

그가 몰라서 그렇지 당대 중국이나 조선의 민중 운동에서 여성의 참가는 희귀

하지 않다.

백련교의 지도자 왕총아도 19세의 여자였다. 억압된 자가 일으키는 것이 반란

이고 혁명이라면, 가장 억압된 계층이 동조하는 것은 당연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시준의 생각에는 홍경래에게 동조할 이유가 옅을 것 같은 사람이 그

앞에 앉아 있었다. 시준은 깜짝 놀랐다.

‘엥, 지유잖아?’

지유가 앞줄에 앉아서 시준을 보며 표시 안 나게 웃고 있었다.

강의가 끝나고, 결국 시준은 지유에게 영학해설 한 권을 통째로 뺏겼다.

시준은 쪼잔한 남자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호의적으로 해석하면 애인에

게 책 한 권 선물한 셈이니 아까워할 이유가 없다.

다만 다른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았다.

“너 그거 누구에게도 보여 주어선 안 된다. 누가 막 베껴다 팔면 내 장사는

망하는 거야.”

“설마 의주 바닥에서 누가 우리 서장관 장사를 침해하겠어? 안 보여 줄 테니

까 걱정 말아.”

그렇긴 하다. 시준이 거느리고 개선한 오죽당 청년들은 서울에서 가져온 재미

있는 이야기와 막대한 돈을 무기로 의주를 휘어잡고 있었다.

서울 따라가지 못한 용만 충의신민 연락사의 다른 청년들은 부러움에 몸살이

날 지경이었고, 재미없는 홍득주나 차형기 휘하의 깡패 노릇 대신 시준의 ‘오

죽당’에 들기를 원했다.

차형기도 시준의 휘하나 자기 휘하나 어차피 같은 식구라 생각해서인지 경계

를 소홀히 했다. 그 바람에 의주 돌아온 지 한 달이 자나자 시준이 직접 부릴

수 있는 무력의 규모는 꽤 거대해져 있었다.

따라서 시준이 “오호통재라, 어떤 무례한 녀석이 희만 선생이 저술하신 서적

을 멋대로 베껴다가 이름만 바꿔 파느냐? 용만 땅의 학풍이 부끄럽게 되었구

나!” 한마디만 혼잣말을 하면 그 청년들은 금세 범인을 찾아내 반 죽여 놓을

것이다.

어차피 이 좁은 동네서 몇 다리만 건너면 다 안다. 몇 년 전의 시준이 관의

힘을 빌려 로맨스 소설 불법 복제범을 처벌했다면 이제는 시준 자신의 힘으로

도 충분하다.

지유는 수줍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내가 왜 그러겠어? 네 장사 망하면 나는 어떡하니.”

시준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어 지유를 마주 보았다.

보통 남녀가 이렇게 오래 둘이 얘기하고 있으면 누군가 나서서 그 음란함을

꾸짖는 것이 마땅하지만, 완순이가 말했듯 상놈들은 그런 거 잘 모르고 어느

쪽이냐고 굳이 말한다면 음란한 쪽을 좋아하는 편이다.

게다가 동네 사람들이라 대충 사정도 알았기에 예의 바르게 그들을 모른 척해

주었다. 아마 그때 시준을 찾아다니던 기랑이 천막 아래 불쑥 얼굴 내밀지 않

았으면 큰일 났을지도 모른다.

“어, 야, 너 무슨 일이야?”

지유는 황급히 몸을 숨기고 시준은 그 앞에 나서서 그녀를 가리려 애써 보았

다. 기랑은 시뻐하는 표정으로 둘을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동헌에 말이 왔어. 너 데려오래.”

“말? 파발? 조정에서?”

“두 필. 조정에서도 왔고 다른 데서도.”

“다른 데서도? 누가 보냈지? 장자도의 통무아문인가?”

기랑의 출현에 놀라서 판단력이 짧아진 시준은 아무거나 주워섬겼다. 그런 시

준을 물끄러미 보던 기랑은 한숨 쉬듯이 말했다.

“영안부원군.”

작가의 말

1. 작중 허벅지에 뼈 운운한 말은 조선 후기의 고문 기록들을 근거로 한 표현입니다.

동학 농민운동 당시의 일본 공사관 기록에 따르면, 장흥 전투의 여성 지도자로서 조선군에 붙잡혀 고문당한 이조이(李召史, 이조사, 이두로 읽어 이조이)에 대한 묘사가 있는데 '양쪽 허벅지의 살을 뼈가 보이도록 (날붙이로) 도려내어' '송장과 같았다' 라고 합니다. '조선의 형벌이 엄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매우 놀랐다' 라고도 하죠.

일본 공사관 측은 이조이에 대해 '진료 결과 정신이상자였으며' 동학군이 면피를 위해 정신이상자를 속여다가 '신이부인' 호칭 줘서 지역 지도자로 내세워 봉기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 장흥 전투의 동학군은 현감을 죽이는 등 패배시 사죄를 면할 수 없는 실적을 올렸기에 그럴듯한 추측입니다.

다만 이때는 열강이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위해 '문명국이 아닌' 나라의 세태를 과장하여 잔혹하고 야만적으로 묘사하는 일이 흔했고, 일본은 동학군에 동조할 수 없는 입장이었기에 의혹은 있습니다. 또 앞뒤 맥락으로 보건대 정신이상자 진단은 일본 공사관이 이조이를 보호하기 위해 꾸며낸 말일 가능성도 있고요. 진실은 저 너머에.

(배항섭, 2019, '19세기 동아시아 민중운동과 여성의 참여' 를 참고하였습니다.)

여담이지만 이조이는 당시 일본 신문 '국민일보' 에도 '용모 빼어나기가 경성지색(傾城之色)과 같은' 여성 민중운동 지도자로 소개됩니다. 이 역시 미화가 많이 들어간 이야기겠죠. 잔 다르크가 금발벽안 미소녀로 알려진 것처럼...

2. 이 당시 조선 평민들이 나선=러시아를 알지는 못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네르친스크 조약 이전까지는 청나라와 조선의 수뇌부조차도 나선=러시아라는 걸 몰랐거든요;; 작중 시점에서는 수뇌부나 관리 정도야 그걸 알겠지만 일반 백성은 아니겠지요. 작중 표현은 '가장 최근에 만난 어디 사람인지 모를 외국인' 에 비교한 것으로 보아 주시면 되겠습니다.

3. 시준의 드립일 뿐 대마 줄기(삼베) 품질이 좋다고 환각 성분이 강한 건 아닙니다.

* 대댓 기능이 없어 제가 일일이 답변 드리려니 좀 부자연스러워서 못 하고 있지만, 주시는 댓글은 모두 감사히 몇 번씩이나 보고 있습니다. 작가의 말을 주석란으로만 활용하고 있었는데, 오늘 지면을 빌려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17. 합종연횡(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