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53화 (53/284)

53화

16. 얽히는 양극(5)

프랑스가 낳은 최고의 모략가 조제프 푸셰는 못해도 시준의 10배 이상 외교와

정치를 다룬 경력이 있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시준이 가르쳐준 대로, 닭과 같이 나온 돼지고기 슬라이스 구이(삼겹살)를 소

스 없는 생야채(상추)에 우아하게 싸서 품위 있게 삼킨 푸셰는 천천히 말했다.

“글쎄, 이게 언제부터 공식적 외교로 오해할 행사였지? 우리는 식사를 하고

있을 뿐이고, 자네는 요리와 통역을 하러 온 사람이 아닌가. 말은 비공식적이

니 뭐니 했지만 내게는 제발 자네가 조선을 대표한다고 생각해 달라는 것처럼

들리는데. 게다가 책임을 회피하는 전형적인 문구도 마련하는군. 전형적인 교

본대로의 외교지. 막후의 실력자? 글쎄, 그럴 나이로는 안 보이는걸.”

시준은 감탄했다. 푸셰는 이쪽의 생각을 꿰뚫고 있었다. 책임 없는 권한을 십

분 활용하며 여러 가지로 해석되는 말을 떨어뜨려 조선의 의도를 숨기려 했던

시준은 결국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각하. 하지만 당신들은 조선에서 공식적 사절로 대우받기 어렵

습니다.”

“왜지? 내가 가진 황제 폐하의 신임장을 다시 보여줄까?”

“아니오. 오트란토 공작 각하나 프랑스 제국 황제 폐하의 진정성을 의심해서

가 아닙니다. 공식 사절과 외교 문건을 접수하려면 외교권이 있어야 합니다.

조선은 외교에 있어 자주권이 없습니다.”

푸셰는 눈앞의 젊다 못해 어린 요리사가 나폴레옹이나 자신에 대해 동양에서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던 유럽식 정식 호칭을 써 주었다는 사실을 일단 기억

해 두었다.

이는 조선이 유럽식 외교를 이해하고 있으며, 열강의 군주를 중국인들이 취급

하는 것처럼 변방의 야만족 추장 – 푸셰의 생각에는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

장이 없었다 – 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신호일 수 있다.

푸셰는 속으로 천천히 셋을 세고 나서 말했다.

“중국의 속국이기 때문인가? 하지만 조선이 영국과 수호통상조약을 맺었다는

것은 지금 온 유럽인이 알고 있는데.”

모국어로 말해서 그런지 청산유수가 따로 없는 푸셰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군주의 신임도 없는 자네가 나와 이야기한다는 상황 자체를 나와 대프랑스

제국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할 수도 있지만 그러지는 않겠네. 우선 서로에게

지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대화하도록 하지. 외방전교회 신부들은 벌써 두

세기 전부터 중국과 안남에 있었어. 아시아 국가들의 특수 관계는 우리도 충

분히 알고 있다는 말이야. 조선은 사실상 자주권을 행사하는 명목상의 속국이

아닌가?”

사실 시준도 한국에서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조선은 조공이란 명목의 외교와

무역을 할 뿐 사실상 거의 완전한 자주권을 가진 실질적 독립국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조선에서 살아 본 뒤 그 생각은 상당히 수정되었다.

현대인의 눈으로 봤을 때, 중국에 대해 조선이 누리는 자주권은 매우 불완전

했다. 솔직히 시준은 한국 교과서이기 때문에 ‘실질적 독립국’이라는 말을 그

토록 강조한 것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였다.

국왕의 결정이나 세자 책봉의 승인, 외교권, 군사권(조선은 당시 국내의 성채

수축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등 국가로서 인정받을 필수적인 많은 권리가

제약당한다. 앞의 두 개는 명목상이라고 하지만 명목이 가지고 있는 힘은 생

각보다 크다.

속방(屬邦)이라는 말은 정확한 표현이었다. 명이든 청이든 중국 황제는 조선

왕에게 ‘(자기 것인) 동방을 맡겨 두었을’ 뿐 그 땅의 주인임을 인정한 적은

없다.

하지만 프랑스 사람 앞에서 ‘아뇨. 우린 그냥 중국 부하 맞는데요. 삼전도에

가서 비석 구경 좀 하실래요?’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시준은 교묘하게 말을 틀었다.

“그 말씀이 틀리지 않습니다만, 각하께서는 외교에 있어 공식적 사항이, 심지

어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명목뿐이라도 그것은 때로 실질적 사항에 영향을 끼

칠 수도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가졌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시겠지요? 바로 그

렇기 때문에 조선과 수호통상을 맺은 주체는 영국 정부가 아닙니다. 영국 동

인도 회사지요.”

푸셰는 주춤하다가 반박했다.

“동인도 회사는 영국 왕을 대표해서 조약을 맺었을 텐데.”

“예. 하지만 영국 정부는 전권공사나 그에 준하는 어떠한 외교관도 파견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조선이 국가가 아닌 회사와 협상한 이유이며, 시준이 이 사항을 성균

관 앞에서 설명했던 이유다. 이것을 비공식적 경로로 전해 들은 청이 양해해

준 사유이기도 하다.

조선 왕국과 브리튼 연합왕국은 사실상의 교류를 지속할 뿐 공식적 국교가 없다.

이미 이 자리에서 시준의 낮은 지위를 되새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레

테 자작도 치킨을 까맣게 잊은 채 시준에게 집중했다.

시준은 고민하는 듯한 푸셰를 향해 계속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프랑스 제국의 인사 또한 형평성 차원에서 국가 사절로

대우할 수 없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정부의 고관 대신 제가 온

것입니다. 제안이나 요청하실 것이 있으면 전달하겠습니다만 어떠한 답변도

약속드릴 수 없습니다.”

푸셰는 설마 조선인들이 자기를 억류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있겠지

만, 사실 이 ‘답변할 수 없는 요청’에는 프랑스 사람들을 언제 돌려보내 줄

것이냐는 사항도 포함된다.

시준은 마음속으로 아직 용천부에 쓸쓸히 남아 있는 아우스터리츠에 대한 대

사를 준비했다. 시준이 정약용과 논의해 마련한 핑계는 이러했다.

‘조선의 역량으로는 그 배를 바다로 끌어내거나 수리할 기술이 없다. 그리고

아까 말한 사유 때문에, 너희가 가서 무슨 말을 떠들지 모르니 너희를 청이나

일본에 보내줄 수도 없다. 너희가 알아서 해보든지, 아니면 영국 사람 배 타

고 가라. 장담컨대 그것보단 바다를 헤엄쳐서 가는 게 안전하겠지만.’

그 대사를 되뇌면서 시준은 선비의 나라, 동방예의지국 조선이 원래 이런 양

아치 국가였나 하는 자괴감에 빠졌다. 하층민이나 상인들이야 그렇다 쳐도 윗

대가리까지 저럴 줄은 몰랐다.

그 생각을 하느라 시준은 푸셰의 말을 잠깐 놓쳤다.

“죄송합니다. 각하. 저의 프랑스어가 그렇게 유창하지 못해 잘 이해할 수 없

었습니다.”

푸셰는 별로 탄하지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게 비공식적인 대화라면, 이건 조선 국왕 폐하께 전달되기는 하겠지만 다

른 어떤 곳에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좋아. 그럼 직설적으로 말하는 무례를 용서하게. 우리와 조선의 교우를 방해

하는 것은 조선 쪽에서는 중국이요, 우리 쪽에서는 영국이지. 그리고 영국은

조선에 대해 원하는 교역을 텄고 중국은 그걸 양해했어. 맞지?”

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푸셰는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그럼 중국 황제가 왜 그랬을까? 영국군에게 굴복해서? 그러나 영국은 우리

위대하신 나폴레옹 황제 폐하에게 다섯 차례에 걸쳐 연전연패해서 나라가 쇠

락 직전이며, 중국군이 아무리 후진적이라고 해도 청은 세계 최대의 제국이며

여기는 그들의 안방이야. 그 개떼 같은 수억 중국인이 몸으로만 부딪쳐도 광

저우의 영국 장사꾼들 따위는 밟은 흔적도 안 남아.”

시준은 푸셰가 본격적 공격에 나섰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한 번 제동을 걸었다.

“러시아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해가 빠르군. 교역 건은 중국이 양보한 거야. 그럼 영국은 무엇을

양보했을까? 마카오 점령 해제? 마카오가 애초에 중국 땅이 아니라는 점을 감

안하면 그건 얼간이들을 위한 설명 재료지 진짜가 아냐. 중국 황제의 진짜 목

적은 바로 영국의 힘을 빌려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는 것이다.”

시준은 다 알면서 짐짓 눙쳐 보았다.

“러시아는 지금 중국 북부에서 멈춰 있고, 중국에 정면으로 적대하지 않는 한

내려오지 못할 텐데요. 유럽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검은 용의 강[rivière du

dragon noir, 黑龍江] 남쪽(만주)은 중국인들이 종교적으로 신성하게 여기는

조상신이 봉인된 지역[封禁地]입니다.”

“과연 그럴까? 중국인들이 러시아를 저지할 수 있었다면 네르친스크에서 만났

을 때 국경선이 레나강으로 결정되었을 터이고, 이미 동(東)시베리아는 러시

아의 것이 아니게 되었겠지. 중국인들은 카자크 야만족 사냥꾼 몇 명조차 버

티지 못했어.”

조선도 잘 안다. 나선정벌이 그래서 일어난 것이었으니까. 조선이 파병했다는

사실까지는 푸셰가 모르겠지만 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런데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면 좋은 것 아닙니까? 조선의 국익

과도 일치하는데요.”

“하. 그야 영국놈들이 약속을 지킨다면 그렇겠지. 자네 유럽 역사를 아나? 영

국인들에게 신의가 있다고 보나? 결국 노르만 해적의 출신은 어쩔 수가 없지.

사람은 근본이 중요한 거야, 근본이.”

‘짝퉁 황제 모시는 너희가 그 말 할 처지가 아닐 텐데.’라는 말은 시준의 입

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사이 푸셰는 열정적으로 떠들었다.

“아까 말했지만 영국은 이미 괴멸 직전이다. 폐하께서는 대륙을 모두 정복하

셨고, 알량한 배 믿고 까부는 영국놈들에게 어떤 무역품도 유럽에서 들어갈

수 없도록 만드셨네. 그걸 감히 몰래몰래 어기고 있는 게 저 러시아야. 영국

입장에서도 반드시 붙잡고 싶겠지. 그런데 이 극동에서 영국이 러시아를 막는

다? 아냐. 청 황제는 속은 거다. 영국은 러시아와 동맹하여 중국 동북부를 내

주고 그걸 대가로 러시아가 이탈하게 만들어 대프랑스 제국에 다시 한 번 도

전하려는 속셈이지!”

푸셰는 목이 타는지 와인 병을 들었으나 그것은 비어 있었고, 이것이 아우스

터리츠에서 꺼내 온 마지막 술병이었다. 시준이 상 위에 있던 청주 병을 내어

주자 푸셰는 그것을 마셨다.

“제국 대육군[Grande Armée]은 이미 모든 준비가 되었어. 유럽에서 러시아를

깨부숨과 동시에 안남에 집결한 해군이 중국 황제의 착오를 바로잡아줄 수 있

다. 그리고 이 평양은 중국 수도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천진)로부터 배로 불

과 이틀 거리밖에 안 돼. 무슨 말인지 이해했나?”

시준은 물론 (되지도 않는 소리라는 것을) 이해했다.

실제로 나폴레옹이 왜 몰락했는지 잘 아는 시준으로서는 더욱 그렇다. 게다가

베트남 부근에 있다는 프랑스 배는 해군이 아니라 어중이떠중이 사략선단이다.

하지만 푸셰는 한 점 의혹도 없다는 태도였다. 좋은 태도다. 자신도 믿지 않

는 것을 남에게 납득시키기는 어려우니까.

“조선이 아시아 외교에서 주도권까지는 못 잡더라도 최소한 끌려다니지는 말

아야 해. 자네라면 이게 자존심과 상관없다는 것 정도는 알겠지. 자존심의 회

복 따위야 병사 모집할 때나 써먹을 구호이고, 사실 이건 실익의 문제야.”

“어떤 실익이죠? 프랑스의 힘을 빌려 중국에 적대하는 공상을 누가 받아들일

것 같습니까? 프랑스의 힘을 보여줄 확실한 증거가 있지 않으면 대단한 외교

적 문제가 될 겁니다.”

시준의 딴지에도 푸셰는 바로 그런 말이 나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웃었다. 그

는 팔꿈치를 소반에 올려놓고 양손을 깍지 껴서 턱에 받쳤다.

“그렇지 않을걸. 이건 ‘비공식적인 대화’니까. 수용할지 말지의 여부도 자네

가 결정하는 건 아니잖나? 내가 할 말은 이상일세. 가능하다면 다음에도 자네

를 또 보길 바라지. 아시아에서 대화가 통하는 지적 즐거움은 오랜만에 느껴

보는군. 물론 혀의 즐거움도 말이야.”

대프랑스 제국 오트란토 공 조제프 푸셰는 그들을 적당히 조선에 가둔 채 시

간만 끌어볼까 하는 엉성한 계획을 가졌던 조선 정부에게 선택지를 내밀었다.

푸셰는 사실 아우스터리츠를 돌려받니 어쩌니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조

선이 영국 편을 든다면 아우스터리츠가 만전의 상태라도 결국 무사하기 어렵

고, 프랑스와 동맹을 한다면 당연히 내어줄 테니까.

이것이 푸셰가 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이유다.

배를 못 돌려주는 핑계만 잔뜩 연습해 왔던 시준으로서는 한 방 먹은 셈이었다.

그러나 시준도 만만하지는 않았다. 그는 푸셰와 같은 천재는 아니었으나 기초

적 역사 지식과 공무원으로서의 협상 경험, 그리고 상인으로서의 협잡질 경험

에 힘입어 대화를 정확하게 살피고 이면을 꿰뚫어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평양 감사 이서구와 예조 참판 정약용에게 각자 구두와 문서로

자세하게 설명했다.

‘프랑스는 지금 되도 않는 블러핑을 치고 있으며, 말재주야 화려하였으나 푸

셰가 말한 영국-러시아 만주 분할론은 아무 증거도 없는 추측에 불과하다.

아시아에 별다른 해군이 없는 프랑스와 동맹하여 중국에 적대하는 짓은 자살

행위 이상은 아니고 이하는 될 수 있는 어리석은 짓이니 숙고하라’는 얘기였다.

거기에 도움이 될 만한 추가적인 해석도 덧붙였다. 이 정도면 시준이 정말 조

선을 위해 눈물 나는 공무원적 봉사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연금

은커녕 월급도 못 받고 있었지만.

‘저쪽은 지금 배를 날로 먹으려는 우리 수작을 눈치챘을 수 있다. 베트남의

해군을 언급한 것이 이와 연결된다고 판단된다. 공작을 사절로 보내면서 황제

가 아무런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조선의 능력으로는 전열함 하나 덜렁 있다고 프랑스 사략선이 조선을 유린하

는 상황을 막을 수는 없다. 웬만하면 관둬라’는 내용이 그 골자였다.

이서구와 정약용도 시준의 분석에 동의했다.

그런데 이런 보고를 종합한 국왕 이공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원래 비범한 자

의 생각은 평범한 자와 다르기에 비범하다 하는 것이다.

이공은 전열함 날로 먹기 프로젝트를 그만두기는커녕 오히려 한 발 더 진보한

계획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과거 내가 영길리국에게 은혜를 허락하여 상국의 근심을 없애고 우

리도 장자도를 지켜내었듯이, 이번에도 불랑국 사람들에게 권도를 행하여 일

단 우의로 교통하겠노라 하는 것은 어떠한가? 그리한다면 필시 그자들은 감격

하여 총포 쏘는 법이나 그 대박을 다루는 법을 배우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김조순은 혹시 사위가 미친 게 아닌지 의심했다.

영안부원군의 의심은 일견 타당했다. 지금 이공은 크고 아름다운 서양식 군대

를 만들 생각에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비자금이 꽤 늘어난 상태라서 자신만을 위한 충용한 군대가 창설된다면 후한

은급과 장비를 지급할 각오도 만전이었다.

나름대로는 계산도 했다. 영길리국에 너무 의존하면 그 힘을 감당할 수 없을

텐데, 지금 외로이 평양에서 왕의 자비만을 바라는 프랑스인을 끌어들인다면

이공은 패를 하나 더 쥠과 동시에 필요할 때 손쉽게 제거할 수 있는 기술 수

입처를 얻게 된다.

그러니까 이공의 생각이 그렇다는 말이다.

배 한 척 얻겠다는 정도라면 협조할 수 있었지만 이건 정말 선을 넘은 일이

다. 김조순은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기분을 참으며 말했다.

“병기는 상서롭지 못한 물건으로 군자의 것이 아니다[兵者不祥之器 非君子之

器, 『도덕경(道德經)』]라는 노자(老子)의 말은, 단지 창칼로 사람 다치게

하는 일이 나쁘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충격을 좀 받아서 왕 상대로 훈계하듯이 말한 김조순도 잘한 건 아니라 하나,

지금 김조순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는 왕의 행동도 사위의 올바른 처신이라 보

긴 어렵다.

외교적 성공을 몇 번 거두더니 왕이 거의 폭주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청의

간섭이 덜해졌건 어쨌건 조선이 작고 가난한 나라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으

며 요사이의 흉년으로 사정은 더 안 좋다.

흔히 조선을 덕 타령만 하던 나라라 매도하나, 사실 조선이 덕치를 강조한 이

유는 현대인이 공중윤리를 지키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김조순이 그것을 머저리 사위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최대한 풀어 설명했다.

“아무리 날카로운 명검을 가졌어도 백 명의 사람과 원수를 쌓는다면 필시 야

밤에 목숨 잃는 일을 피할 수 없는 것이요, 병기는 계속하여 닦고 기름칠하며

고장 나면 수리하고 잃으면 채워야 하는데 이것은 모두 굶주리는 백성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곡식과 포입니다. 백성이 다 굶어 죽는다면 정예한 강병이 십

만이라 한들 그것으로 도대체 무엇을 지키시렵니까? 성상께서는 성현들이 덕

을 말했지 힘을 말하지 않았음을 부디 기억하시고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심지어 김조순이 하는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이의를 제기할 준비가

되어 있던 예조 판서 박윤수조차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김조순이 백

명의 원수 운운하며 암시한 사항을 더 직설적으로 진언했다.

“많은 사람들의 입은 막기 어렵습니다. 가까이는 장자도에 있는 영길리국 사

람들이 알아챌 것이고, 그러면 광동과 왕래하는 동인도양행의 배를 타고 반드

시 청국에도 말이 들어갑니다. 영길리국과의 일은 피국에서 허여하였다 하나,

청인을 많이 살상한 사교도의 무리인 불랑국 사람들을 끌어들인 일은 변명할

수 없습니다.”

부찰복장안에게 마음고생이 심하기도 했고, 요즘 조정 돌아가는 꼬라지가 심

상치 않아 칭병하여 일곱 차례나 사직서를 냈던 좌의정 김재찬도 다 때려치우

고 싶다는 심산으로 한마디 보탰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이어진 흉년은 가볍게 볼 것이 아닙니다. 총포와 대박은

당장 긴한 것이 아니므로, 오로지 덕을 닦아 백성들에게 실효가 돌아가는 사

업을 일으켜야 마땅합니다. 이미 군자창(軍資倉, 여기서는 환곡)에서 적어도

오십만 석의 곡식을 내주어야 백성의 몰살을 막을 수 있을 텐데,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지금 만금이 들어갈 군사의 계책을 논하십니까?”

다들 말투만 들어 봐도 왕에게 하는 말로서는 극언에 가깝다. 이제까지 왕이

좀 이상한 짓 해도 참고 넘어갔던 신하들의 분노가 폭발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공은 이미 그런 충격요법으로 제어할 단계를 넘어섰다. 이공은 분노

하지 않았다. 그저 어리석은 신하들의 단견에 탄식할 뿐이었다.

이런 구태를 고집하여서야 도대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이공은 새로운 시대

의 길을 자신이 제시한다는 자부심에 벅차 힘있게 말했다.

“그대들은 일전 성균관의 사업설명회를 듣지 못하였는가. 영길리국이나 불랑

국이 십이만 리 떨어진 곳까지 대박을 보낼 만큼 부유하고 강성했던 것은 오

로지 강병으로서 다른 나라와 안심하고 장사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국

은 오문에서 영길리인이 작변하였어도 장사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불랑국

교사(사제)들이 사교를 퍼뜨려도 차마 죽이지는 못했던 것이다.”

신하들이 자기 말에 담긴 설득력에 진감하여 대답 안 하는 줄 안 이공은 계속

하교를 내렸다.

“옛날에는 전쟁이 없으면 둔군(屯軍, 둔전병)이 아닌 바에야 영안부원군이 아

뢴 대로 필히 곡식만 허비하는 것이 군사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내가

요사이 통무아문에서 영길리인이 고하는 서양국 사정을 항상 보고 있는데, 서

양국 사이에는 옛 전국시대처럼 나라끼리 돈을 꾸어주는 법이 있어 이를 차관

(借款)이라 한다 들었다. 우리나라의 선비들은 대저 창고에 있는 곡식만 자기

것으로 아니 이는 참으로 재용(財用)을 알지 못한다 할 수 있도다.”

차마 ‘야, 걱정 마. 청은 서양식 군대 있는 나라는 못 건드려.’ 라거나 ‘돈은

일단 군대 만들면 따서 갚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소리까지는 못 했지만 그

얘기가 그 얘기였다.

왕의 말에 신하들은 예절도 잊고 다급히 눈빛을 교환했다.

원래 이 시대 사람들은 초보적 텔레파시 능력을 갖추고 있다. 말로 하면 안

되는 사안이나 장소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저 자식 안 되겠어.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에 해당하는 정신파가 신하들 사

이를 바쁘게 달렸다.

왕에게 바로 그 재용을 가르쳤던 서영보가 나서서 말리고, 그 뒤로 심지어 왕

의 계파로 알려진 정약용조차 직접 가서 보고 온 자기 제자 말 좀 들으라고

힘써 간언했다.

“저들 불랑국 사람들은 영길리국과 대적하는 사이입니다. 우리로서는 이간하

는 말을 물리치고 또 좋은 말로 달래어 돌려보내는 편이 가장 현명합니다. 섣

불리 두 나라의 의심을 한꺼번에 받기보다는 신의를 보여 주는 편이 낫습니다.”

지금 조선 뱃길을 훤히 꿰고 있는 영국에게 배반이 들키면 뒷감당이 안 된다

는 암시까지 나오자 다행히도 이공 역시 일단 물러났다.

그렇게 상참이 파하자 이공은 석강도 무르고 홀로 생각에 잠겼다.

150년 만에 왕비의 몸으로 원자를 낳아 온 나라의 경하를 받은 반려도 김조순

의 딸이라는 이유 때문에 갑자기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밤이 되자 이공은 교태전에 가거나 하는 대신 마당에 나와 달을 바라

보았다.

‘제왕의 정치란 참으로 어렵구나. 어떻게 저 어리석은 자들을 나의 마음과 같

도록 할 수 있다는 말이냐?’

이러한 동서의 복잡한 밀월관계를 조율하는 재미에 푹 빠진 왕이 세계 열강

건설의 야망을 불태우건 말건, 시준은 보고의 의무를 다했기 때문에 더 이상

상관할 바 아니다.

김조순이 고민에 빠졌을 무렵에는 시준과 기랑도 이미 평양을 떠나 의주에 도

착해 있었다.

평양 감사 말고 높으신 분을 더 이상 안 만난다는 데에 상심하던 기랑이 거의

반나절 만에 처음으로 말했다.

“저기 누가 모여 있어.”

“나도 봤어. 우리 동네 사람들이겠지, 뭐.”

이미 앞서서 오죽당 사람들을 보내었기 때문에 의주 고을 동구 밖 고갯길에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물론 시준이나 오죽당의 지체가 높아서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결혼한 여자 정

도가 아니면 조선 사람들은 생각보다는 여가 시간이 많은 편이었고, 항상 사

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꼬마 서장관이 서울 가서 출세해 돌아온다 하니 구

경하러 모이는 것도 좋은 소일거리다.

시준은 혹시 지유도 나와 있으려나 하며 사람들을 찬찬히 살폈다. 하지만 얼

굴이 구분될 거리는 아니었다. 기랑이 말없이 걷다가 손을 들었다.

“저 가운데 여자가 있는 것 같은데. 키가 작다.”

“뭐, 남편이나 오라비가 데리고 나왔을 수도 있겠지. 아직 집에서는 한 십여

리 되니, 홍 장주님께서 식구들 손에 찬이라도 들려 보내어 한 끼 자시고 오

라 하신 걸지도 모르고.”

시준은 애써서 평온한 목소리를 가장하며 말했지만 갑자기 말이 많아진 그 태

도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는 기랑의 눈에도 잘 보였다.

기랑이 그렇게 말해서 그런지, 시준의 눈에도 뜨인 그 키 작은 사람은 정말

지유와 비슷한 체구처럼 보였다. 시준의 발걸음이 심장 박동 소리와 함께 빨

라졌다.

하지만 그 기분은 뜨거운 차 한 잔 마실 시간도 되지 않아 산산이 부서졌다.

서로 얼굴이 식별될 거리까지 다가왔을 때, 그 키 작은 사람은 척척 걸어나와

손을 흔들었다. 지유는 도저히 낼 수 없는 우렁찬 목소리였다.

“어어이, 서장관, 기다렸네! 금의환향(錦衣還鄕)이란 게 이런 것인가. 서울

얘기 좀 해 보시게나!”

홍경래였다. 시준은 기랑을 홱 돌아보았지만 기랑은 시준을 외면하고 하늘을

쳐다볼 뿐이었다.

작가의 말

1. 흑룡강의 프랑스어 표기는 정식 표기나 통용 표기가 아닌, 시준이 이 자리에서 직역한 말입니다(정식으로는 그냥 헤이룽장이라고 부릅니다. 고유명사니까요). 마찬가지로, 만주의 봉금지는 엄밀히는 (조상신이 아니라) 발상지인 만주 땅이 봉인되었다는 뜻이지만 시준이 약간 잘못 알고 말한 것입니다.

2. 네르친스크 조약 당시 청은 러시아에 그렇게 크게 꿀릴 건 없는 상태였고, 그래서 레나 강(시베리아 동부를 종단하는 강입니다)을 경계로 삼자고 모욕이나 다름없는 뻥카를 칩니다. 그럴 리는 없지만 만약 그대로 되었다면 어림잡아 아시아 대륙의 1/3은 중국 것이 되었을 겁니다;;

더 이상의 충돌은 없이 우리가 아는 그 경계로 끝나기는 했는데, 러시아인들 입장에선 전쟁 해보자는 걸로 오해할 수도 있었을 상황이었죠. 실제로 분위기도 험악했고.

3. 사실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사례가 너무 유명해서 후일에 몽고메리 장군이 군사학의 제1법칙은 모스크바를 치지 않는 것이라는 말까지 했습니다만, 나폴레옹 이전의 모스크바는 종종 털리기도 했습니다. 일단 몽골이 털었고.. 그 다음엔 폴란드도 모스크바를 불지르고 약탈한 적이 있고요. 근대 이전의 모스크바는 딱히 난공불락의 이미지까진 아니었죠.

4. 김재찬의 대사와 관련하여, 조선은 실제로 1809년부터 시작된 흉년 때문에 1816년까지 총 약 141만 석의 곡식을 백급(무상환곡)으로 지출하며 그 중 이번화 시점인 1810년에는 54만 석의 지출이 있었습니다.

5. 순조는 1808년 만기요람(일종의 제왕 업무지침서)에서 중요한 절목을 신하들과 토의한 적이 있었는데, 서영보는 '군정과 재용이 가장 중요' 하다고 답합니다. 여러 대에 걸쳐 문필로 이름 날린 가문의 재상이 왕이 묻자마자 나라에서 첫손에 꼽을 일은 바로 군대와 돈이라고 답한 것이죠. 당대의 컨센서스가 그렇게 꽉 막히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순조도 군사에 관심이 많았던 왕으로서 조총 같은 화약 무기에 대해 신하들과 깊이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신하들이 조총은 주나라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등 약간 뭔가 이상한 얘기가 있습니다.) 또 관리들의 녹봉 지불에 대한 이야기 등.. 당시의 논의에는 의외로 조선에서 안 했을 것 같은 얘기가 많습니다.

17. 합종연횡(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