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52화 (52/284)

52화

16. 얽히는 양극(4)

시준이 서울 사업을 정리하고 인계하면서 평안도에 보낸 편지는 빠르게 가 닿

았다. 만득이가 길을 익숙히 해서는 아니었다.

귀양살이 선비 종놈에서 참판 댁 종놈으로 극적인 신분 상승을 이룬 만큼 만

득이 역시 이제 그 지위를 존중해 줄 필요가 있었다.

이미 자기 밑에 후배 노비 여럿 거느리고 집사를 자칭하며 거들먹대는 만득이

를 그 권력의 핵심, 즉 정약용과 부인 홍혜완(洪惠婉)이 사는 안방에서 떼어

놓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시준은 돈도 많은 김에 발 빠른 심부름꾼을 사서 보냈다. 서울에서 안

면 익힌 보부상(褓負商)들은 이런 일에 최적이었다.

요 몇 달간 시준이 개입한 서울 시장의 상황은, 길게 말하자면 끝도 없지만

간략하게 정리하라면 다음과 같다.

왕이 시전과 경상 일부를 박살 낸 뒤 야장과 소매상 및 화를 피한 경상 일부,

그리고 송상이 그 빈틈을 치고 들어가며 만상이 마약이랑 주먹 좀 써 주고 숟

가락 얹는 형태였다.

그래서 시준은 송상과의 앙금을 상당 부분 청산하고 개인적 사무를 부탁할 수

도 있었다.

전국에 퍼진 보부상은 각자 이런 대형 상인들과 협력하거나 적대하면서 유통

을 담당하였고, 그중에는 시준의 편지 하나쯤 의주로 날라 줄 사람이야 얼마

든지 있었다.

그런 사정은 의주에 있는 사람들도 충분히 짐작할 만한 일이었다.

이제 시집간 지도 꽤 되어, 아이 하나 업고 냇가에서 거품 이는 빨래를 몽둥

이로 퍽퍽 치던 완순이는 저편에서 바구니 이고 오는 동무를 보고 흥 하며 콧

김을 뿜었다.

“어이구, 어깨가 축 늘어져서 빨랫방망이만 쥐어도 팔이 빠져버리겠구나. 그

래, 오늘도 그 낭군에게서 편지가 오지 않았니? 근문소며 희만당이나 매일 왔

다 갔다 해서 일은 언제 할래.”

지유는 입술을 삐죽이며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남이사 무슨 상관이야? 시집간다고 저 혼자 쏙 나가서 네 일도 내 몫이 되었

잖아.”

“넌 대체 언제적 일을 말하는 거니? 야, 외지 나간 남자 기다리지 말구 그냥

여기서 골라 살어. 요즘에 무역인지 뭔지 해서 벼락부자 된 사람이 의주에도

대여섯은 되겠다. 시집이 뭐 별다른 게 있어? 내가 가 봐서 아는데 시부모 수

발에 남편 수발에 그냥 애 여럿 키우는 꼴밖에 안 되더라. 그러느니 생구(머

슴)라도 여럿 거느릴 부잣집에 가는 게 몸이라도 편하지.”

지유는 방망이 휘두르며 열변을 토하는 완순이의 우악스런 팔을 피해 약간 물

러나야 했다.

“잠깐 스승 따라 서울 간 거지 뭐 기약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괜스레 야단이

니, 야단은?”

“어머? 네가 정말 처녀라서 모르는구나. 사내는 밖으로 내돌리면 그걸로 끝이

란다. 그 애가 똑똑하고 돈도 많잖아. 낯도 허여멀건하니 계집애들이 좋아하

게 생겼지. 쯧쯧. 사내는 위쪽이 중요한 게 아닌데. 하여튼 고향은 이제 새까

맣게 잊어버렸을걸.”

“장사꾼 상놈한테 누가 딸을 보내?”

“허이구. 서울은 뭐 상놈이 없다더냐? 그리고 상놈들이 무슨 매파 보내고 사

주단자 바꾼다니. 그냥 붙어먹으면 그걸로 인연인 게지. 너 말이다, 계집이

살살 바지춤 쓰다듬으면서 꼬드기면 옷끈 안 풀어 제칠 사내는 천하에 하나도

없단다.”

지유는 일부러 빨래를 냇물에 패대기쳐 물을 완순이에게 튀겼다. 완순이가 짜

증을 부리거나 말거나 지유는 묵묵히 물에 비누를 풀었다.

지금까지 드문드문이나마 편지 보낸 시준이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완순이의 말이 옳다고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멀리 찾을 필요도 없다. 당장 지유네 집주인 홍 장주도 그 점잖은 체모에도

불구하고 살림이 여럿 되는데, 집에 며칠 안 들어올 때마다 노마님의 등쌀이

심해서 아랫사람들이 고생깨나 하였다.

더군다나 지유와 시준은 무슨 가례를 올린 것도 아니요, 한 일이라고는 싸리

나무 울타리 뒤에서 입 맞춘 게 전부다.

어쩌면 시준은 가끔가다 번드르르한 편지나 보내면서, 서울에서 더 얼굴도 곱

고 지유는 발라 본 적도 없는 분칠 예쁘게 한 다른 여자와 나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얘, 얘!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어머머. 얘가 아주 빨래를 걸레로 만들어 놨네.”

퍼뜩 아래를 내려다 본 지유는 울상이 되었다. 이상한 생각을 떠올릴 때마다

힘이 들어간 지유의 빨랫방망이는 끝내 누구 것인지 모를 바지를 처참하게 살

해하고 말았다. 의주바지는 아니고 그냥 무명옷이라 해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때 멀리서 지유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지유가 흠칫해서 돌아보니 같은 집에 있던 늙은 찬모 족고만이었다. 옛날 시

준이 강제로 먹고 여기가 어느 시대인지 깨달은 담뱃재 물의 원료를 제공했던

그 사람이다.

총총걸음으로 달려온 족고만은 숨을 몰아쉬다가 말했다.

“너 여기 있었구나. 장주님이 불러오라고 하셨다. 서울에서 편지가 왔대. 그

애가 곧 돌아올 것 같던데?”

지유는 찢어진 빨래는 물론, 자신이 소리 지르며 놓쳐버린 빨랫방망이가 완순

이의 머리를 때리는 것마저도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

그때쯤 평양 가까이까지 온 시준은 옆을 돌아보았다.

“의주 출신 오죽당 청년들이야 고향 돌아가 봐야 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렇다

쳐도 기랑이 너는 왜 따라오느냐? 일감이야 서울에 더 많을 것인데.”

시준은 원래 기랑을 서울에 남기려 했다. 박득출이야 폭력에 익숙하니 능란하

게 대처하겠지만 이강회가 걱정이었다.

그 서생은 순진하게 바늘 장사한다고 어디 영업하러 다니다가 어이를 상실한

깡패들의 손에 작히 두들겨 맞을 꼴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시준은

기랑에게 총 하나 쥐여 주고 호위로 붙이려 했는데, 기랑이 그것을 거부했다.

기랑은 시준을 잠깐 쳐다보고 간단히 대답했다.

“나도 고향.”

하긴 틀린 말은 아니다. 기랑이 의주에서 태어난 건 아니지만, 지인이나 생활

기반이 모두 거기 있으니 의주가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시준은 기랑이 이제까지 목소리 때문에 말을 별로 안 한 건가 싶어서 더 캐묻

지는 않았다.

“에고고. 그래도 이제 사내놈들 무리에서 좀 벗어날 수도 있겠구나.”

기랑은 고개를 갸웃했다.

“기생집 가?”

“야, 인마. 너 절대로 의주에서 그런 소리 하지 마라. 특히 지유한테는. 그리

고 상놈이 무슨 기생집이야. 거기 있는 양반 나리들에게 건방지다고 뺨 맞는다.”

기랑은 대답하지 않고 뚱하게 고개를 돌렸다.

사실 의주에는 기생집이라고 쳐 줄 만한 게 있지도 않다. 의주에 돈은 많지만

그건 요 몇 년 사이에 벌어들인 것이고, 돈을 따라 자연스럽게 들어올 여러

부수적 시설은 아직 나타날 때가 안 됐다.

그런 건, 굳이 말한다면야 지금 그들의 일차 목적지인 평양에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준이 거길 갈 생각은 아니었지만.

도덕적 문제 이전에 실질적 문제가 있다. 시준은 지금 프랑스인에 대한 대책

을 마련하고 통변 역할을 하기 위해 평양에 가는 중이다.

시준에게 어둠의 대사 역할을 기대하는 왕과 정약용의 의지로 보았을 때 반드

시 평안 감사 이서구부터 먼저 만나 보아야 한다.

상놈이 감사 뵈러 가는데 일단 질펀하게 유흥부터 먼저 즐긴다면 목숨이 아깝

지 않다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시준은 기랑의 말을 깔끔하게 잊어버리고 오죽당 청년들에게 말했다.

“평양성에 도달하면 좀 쉬었다가 먼저들 의주로 가서 소식 전하시오. 각자 임

행수랑 홍 장주님께 드릴 물건이며 서찰 잘 간수하고.”

“아무렴요, 동지 영감…… 아니, 서장관. 송구하오이다. 헤헤. 그렇게 노려보지

마시지요.”

“그리고 기랑이 너도 그 편에 따라가거라. 좀 긴한 일이 될 것 같기도 하고

너도 좀 쉬어야지.”

평안도 안이라면 지금은 시준의 끈이 안 닿은 유지가 별로 없다. 이제 크게

확대된 만상의 ‘나와바리’에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호위는 필요 없겠다고 판

단한 시준은 기랑에게 다시 얘기해 보았다.

“싫어.”

“……왜? 이유나 듣자.”

“높은 사람 만날 거지? 나도 닭.”

“…….”

시준은 말을 잇지 못했다. 파블로프의 개가 이런 것인가 싶었다. 이제 기랑은

시준을 대충 어디 따라다니면 닭이 같이 떨어지는 녀석 정도로 여기는 듯했다.

기랑은 다시 시준을 무시하고 짐을 뒤졌다. 이제 평양성이 보이니 슬슬 기름

통 꺼내 놓고 닭 마련하는 게 맞긴 했다.

하지만 시준은 그 행동의 합리성을 인정하기 싫었다. 기랑의 말대로 이번에도

닭을 튀겨야 한다는 사실 또한 마찬가지였다.

2회차 평안 감사 이서구는 그간 마음고생이 좀 심했던 모양이었다.

그는 시준을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많은 술을 눈앞에 두고 훨씬 많은 치킨

을 뜯고 있었다. 대간에서 알았다면 목민관이 미주와 고량(膏粱)을 지나치게

탐한다며 당장 논핵(論劾)하였겠지만 시준의 눈에는 그냥 스트레스가 꼭뒤까

지 차오른 직장인으로 보였다.

오자마자 평안 감영 불려와 치킨 튀겨야 했던 시준도 그 희생자라고 할 수 있

었다.

시준은 평안 감사가 닭가슴살을 부모의 원수 씹듯 질겅거리는 모습을 물끄러

미 바라보았다.

“감사께서 천한 사람을 앞에 두고 겸상하는 것이 예에 맞으시겠습니까?”

“양추(洋醜)가 기자의 묘 앞을 활보하는 건 뭐 예에 맞느냐. 괘념하지 말거

라. 그리고 너도 이제 엄연히 양반인데 누가 천하다 하겠느냐?”

말이라도 그렇게 하는 건 평안 감사 정도일 거라고 시준은 생각했다. 공명첩

이란 건 현대인의 관념으로는 이해하기 참 힘든 물건이다.

분명히 법적으로 벼슬한 양반이며, 사적인 생활에서 양반만이 할 수 있는 여

러 공식적인 의전이 용납된다. 예를 들어 옥관자를 한다거나(이건 좀 비싼 공

명첩이어야 한다) 큰갓을 쓴다거나 하는 것이 그렇다.

시준은 웃기다 못해 슬프다고 생각해서 그런 자존심 없는 짓은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군포도 내지 않고, 환곡을 좀 안 갚고 옆집 백성에게 전가하거나 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한에서 슬쩍슬쩍 신분 내세워 잘 모르는 사람들 상대로 행패

부리는 것도 어느 정도는 묵인한다.

그러나 적어도 동네 사람들은 그래 봐야 그자가 공명첩만 있을 뿐 부조 대대

로 이어져 내려온 양반가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조선은 대부분의

인간이 죽을 때까지 고향을 안 떠난다.

면전에서 구박 놓진 않아도 “양반?(웃음)” 정도인 취급이라고 보면 적당하다.

시준은 현대 한국에서 ‘이 양반아’가 왜 반하대가 되었는지 알 것 같다고 생

각했다.

딱히 재산 모을 수단이 되는 것도 아니다. 비단옷만 치렁치렁 늘어뜨린 채로

원래 하던 대로 수레 끌거나 똥거름 나르는 사람들이 조선 후기에는 적지 않았다.

진짜 양반들은 동렬에 끼워 주지도 않는다. 단지 원래처럼 길가에서 마주쳤을

때 자기 기분 나쁘다고 불러다 뺨을 갈기거나 하지는 않을 뿐이다.

전향적인 편인 이서구도 결국 거기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순수하게 공명첩대

로만 따지면 시준은 이서구와 같은 종2품이지만 이서구가 시준을 대하는 태도

는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서구는 청주 한 잔으로 기름기를 씻어내고 날숨을 토하며 잔을 내려놓았다.

먹는 게 비싼 술만 아니었으면 이게 평안 감사인지 오죽당 패거리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거친 동작이었다.

“여전히 솜씨는 좋구나. 내가 평안 감사 한 보람이 오로지 여기에만 있도다.”

관찰사의 임기는 1년이고 이서구는 이미 그걸 넘겼다. 그래서 사직서도 몇 번

이나 냈지만 임금이 안 받아주니 아예 막나가는 모양이었다. 관인 내팽개치고

도망치지 않은 것은 이제 백탑파 동료들이 조정에 말직으로나마 몇몇 출사해

있어 후배들을 생각해 참은 것이었다.

“저의 하찮은 재주가 아니라도 평안 감사께서 설마 입이 심심하실 일이야 있

으시겠습니까.”

“글쎄. 요즘은 평안도도 형편이 썩 좋지 않아. 작년에 양호에 대기근이 들었

다면 올해는 양계(평안도, 함경도)야. 벌써 여러 군데나 농사를 망쳤어. 영길

리인들이 바치는 세수가 없었다면, 아마 올가을에는 나도 조밥에 간장이나 뜨

고 있어야 했을 거야.”

동인도 회사에서는 관세를 은으로 꼬박꼬박 냈다. 조정에서는 다들 의외라고

생각했으나 시준은 아마 밀무역으로 얻는 이득을 감추기 위한 비용 지불 정도

일 거라 여겼다. 어쨌든 공무역이 존재해야 밀무역도 살아남을 수 있는 법이니까.

그 공무역 쪽에서 영국은 주로 조선에서 도자기, 녹차, 홍삼 등을 수입하고

옥양목이나 안경, 가위라던가 쇠붙이 집기류 등을 팔았다.

런던에서 의원들이 불평한 대로 옥양목 정도 빼면 사실 이문이 크게 남을 만

한 건 별로 없다.

관세도 내야 하는데다가, 영국이라면 무릇 아편을 팔아야 하는데 조선에서는

거꾸로 수입하는 처지다.

그래도 동인도 회사는 나름대로 대책을 강구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조선 도

자기를 중국에 비해 저렴하게 매입한 뒤, 중국산이라고 다시 포장하여 유럽으

로 운반했다.

‘조선인의 군주는 중국 황제이니 조선에서 만든 것은 곧 중국산이 맞다. 스코

틀랜드에서 만들면 영국산이 아니라고 할 거냐?’

대충 이런 논리였다. 어차피 유럽의 부유층들에게는 메이드 인 차이나 딱지가

중요하지 그 도자기가 실제로 어떤 품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새지만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조선의 산업역량 자체가 보잘것없어 기념품 교환보다 좀 많은 수준의 무역이

긴 했어도 그럭저럭 항로를 유지할 만큼은 되었다.

허나 그 관세는 엄밀히 말해 평안도의 것은 아니다. 평안도가 원래 전세를 자

체 소모하는 지역이라 해도, 관세는 통무아문에서 접수하고 통무아문은 비변

사 소속이니 평안도가 아니라 중앙에 올려보내야 한다.

물론 원칙적으로 봤을 땐 그렇다는 얘기였다.

평양이 불탔을 때 그러한 것처럼 조선의 지방이나 관청끼리는 돈을 빌려주고

꾸어오는 일이 잦았다. 통무아문 경영하는 데에 들어간 돈이 평안도 돈이었기

에 비변사에서도 그 돈을 갚아야 했다. 채권 채무 관계와는 다르지만 겉모양

만 보면 일단 그렇다.

일단 국왕은 임시로 평안도에서 변방 방비에 그 돈을 쓰도록 했다. 그리고 작

년 남쪽을 덮쳤던 흉년이 올해 북쪽에 들이닥치는 바람에 그 기간은 또 늘어

났다.

평안 감사 이서구가 지금 닭이나마 뜯을 수 있는 이유다.

“이번에 그 불랑국 사람들을 구휼하는 데에도 적지 않게 들어갔겠지요?”

“이를 말인가. 무슨 고기를 그렇게 많이 먹던지. 얻어먹는 주제에 또 맛이 있

네 없네 불평하지를 않나. 그냥 굶겨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괜한 소란을 일으

킬까 저어되고 조정의 영이 있어 그런대로 손님 대접은 해 주고 있지.”

아무리 선원들이 지치고 꺾였다 해도 전열함에는 대략 천 명이 탄다. 현재 조

선 수준에서 서양식 군대 천 명은 성안에 있을 경우 평양성을 떨어뜨릴 수도

있는 인원이다.

지금은 항해 중에 죽거나 실종된 사람과 조선에 와서 열악한 의료 환경 때문

에 또 죽은 사람들이 많고 무기도 거의 못 쓴다 해도 여전히 위협적이다.

또한 그들에게 들어가는 돈도 위협적이었다. 그리고 시준은 그들에게서 밥값

이상의 것을 뜯어내라는 명령을 받고 온 참이다.

“감사의 밝은 자비는 서양인에게도 미칠 것입니다. 이제 사방의 오랑캐가 덕

화를 숭상하여 우리나라로 찾아드니, 어찌 성조(聖祖)의 빛나는 문물이 이미

중화마저 앞지른 지 오래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됐네, 됐어. 어쨌든 대동관에 둘 수는 없어 관소나 민가 여기저기에 나누어

묵게 하였으니 곧 사람을 보내 그 복공(福公, 푸셰)인가 하는 자를 부르도록

하지. 이거나 한 마리 튀겨 주고 잘 얘기해 봐.”

감사는 그렇게 말하며 닭뼈다귀를 툭 던졌다.

‘만상 같은 거 하지 말고 서울에서 치킨집이나 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시준은 후회하며 프랑스인들에게 향했다. 바깥 안 보이는 곳에 숨어서 닭다리

빨고 있던 기랑 또한 시준의 신경질에 의아해하며 따라나섰다.

물론 시준은 정약용과 달리 조정의 어떤 책임 있는 직위도 맡고 있지 않으며

전권대사 따윈 더더욱 아니다. 푸셰가 받은 통고도 통역 겸 안내인이 한 명

수도에서 파견되었으니 만나 보라는 얘기였다.

여태 웬 빈민 계층 깡패 영어만 쓰는 조선인들이나 보다가 제대로 된 프랑스

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왔다는 것만 해도 푸셰는 진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푸셰는 능숙한 관료였으며, 이런 안 좋은 상황일수록 위엄을 잃어선

안 된다는 것도 잘 알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시준의 접견을 거부했다.

“나는 오트란토 공이며 황제 폐하의 직신으로서 어명을 받고 온 사절이다. 전

권대사가 오는 것도 아니고 일개 안내인을 내가 만날 이유가 있는가?”

도덕이나 절개 같이 귀찮은 건 모친의 태중에 두고 나왔다고 평가받는 조제프

푸셰가 겸손하다거나 지위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파리 시민들은 비웃을

것이다.

허나 적어도 이건 오만함이나 권위주의와는 상관없는 문제다. 여기에서 푸셰

가 무관무직의 일반인을 대등하게 만난다면 그건 곧 프랑스가 조선에 굴복하

는 일이 될 수 있다. 외교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고려는, 곧 들어와 비밀히 속삭이는 그레테 자작에 의해 깨지게

되었다.

“그런데 듣기로 지금 오는 조선인이 유럽 요리에 익숙한 뛰어난 요리사이기도

하답니다. 프랑스어를 할 줄 안다면 프랑스에 있었거나 프랑스인과 긴밀한 관

계가 있던 것일 테니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지요. 특히 닭을 잘 한다던데요.”

“뭐? 누가 그러던가?”

“시청 당국(평안 감영)의 우리 ‘친구들’이 긴히 전해 준 사실입니다.”

푸셰는 프랑스에서 하던 버릇을 조선에서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조선 사람들

과 최대한 친해지려고 노력했고, 돈이 없으면 옷 단추라도 뜯어 선물로 건네

면서 조악하나마 나름대로 자신만의 현지 정보망을 구축했다.

그 결과가 바로 그레테 자작이 가져온 쾌거였다.

과연 자작의 말대로 유럽의 요리라고 할 만한 것은 오직 프랑스 요리뿐이니,

그 사람은 아마도 북경교구의 가톨릭 신부 같은 사람에게서 요리와 말을 같이

배운 것임에 틀림없다.

조선에 와서 도대체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초췌해진 푸셰로서는 반가운 소식

이 아닐 수 없었다.

무슬림식 곡물 요리(밥)에 짜디짠 생선국물(젓갈)이나 콩 소스(간장)가 거의

대부분이고 고기는 아예 안 나올 때도 있었다. 게다가 요리법이 너무 형편없었다.

프랑스에서 한참 전부터 고관을 역임하며 사치스런 생활을 즐겼던 푸셰로선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다.

미각에 대한 모독에 참다못한 푸셰는 조선군이 옆에서 감시해도 좋으니 사냥

이라도 나가게 해 달라고 간청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포도주에 담근 멧새 요

리가 미치도록 먹고 싶었다.

물론 이서구의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는 공작에 걸맞은 대접을 하라는 지시 때문에 최선을 다해 없는 살림에 고

기도 주고 그랬는데 이 오랑캐들은 대체 예의를 몰랐다.

‘자꾸 이상한 소리 떠들어서 소란 피우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 전해라.’

이서구는 당시 분명 그리 점잖게 말했다. 그리고 선원들에게 영어 배운 관속

통변들은 먹을 갈아 정성스럽게 평안 감사의 답변을 작성했다. 종이품 수령의

문서는 그 격에 맞는 엄중한 절차와 양식대로 프랑스인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푸셰는 이상한 느낌의 중국 종이에 붓으로 적힌 ‘Shut the fuck up

and freeze still there’라는 글을 보고 이성을 잃어버릴 뻔했다.

그런 고생을 한 푸셰였으니 요리사라는 말에 눈이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살찐 멧새까지는 포기했지만 코코뱅(Coq au vin) 정도도 감지덕지다.

하지만 푸셰 자신이 해 놓은 말이 있으니 자기 합리화는 필요했다. 푸셰는 조

심스럽게 말했다.

“무턱대고 악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좋지 않겠지. 우리가 한 고생을 알고 먼

저 요리사부터 보낸 걸지도 모르겠군. 조선인이 유럽식 외교 예법을 알지 못

하니, 어쩌면 이게 그들의 전통적 예의인지도 몰라. 유럽도 그렇지만 어디의

미개인이든 우선 손님 식사는 잘 대접한다고 하지 않는가.”

나중에 손님 대접을 안 해서 전 세계적으로 욕을 먹을 유럽 나라가 있기는 한

데 프랑스인은 다행히 로마 제국의 문명을 입어 접객의 문화를 아는 쪽이었

다. 그레테 자작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럼 만나겠다고 할까요?”

“그래. 다만 회담이라거나 그런 얘기는 일절 꺼내지 말게. 이건 외교 사안이

아닌 거야.”

“알겠습니다.”

사실 닭을 튀긴 요리는 기름만 있다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거라 독창적 발

상이 아니었다. 유럽에도 이미 비슷한 요리가 여럿 있다. 전문 요리사도 아닌

시준의 솜씨로는 본래 푸셰 정도의 인물을 만족시키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푸셰는 배가 많이 고팠다.

시준이 상대를 감안해서 평안 감사에게 간청해 귀한 돼지기름을 얻어다가 튀

겼고, 어쨌든 유럽인 입장에선 처음 보는 제대로 된 닭 요리이긴 해서 오랜

기간 굶주리다시피 했던 푸셰는 거의 눈물을 흘리며 그것을 뜯었다.

“Tres bon(맛있군)! 으음. 튀긴 닭을 처음 먹는 건 아니지만 기름에 통째로

튀기다니 아주 호쾌한 요리법이야. 내가 오늘 견식을 넓혔네.”

자기 요리 솜씨가 좋아서 프랑스인마저 감동했다고 착각한 시준도 오랜만에

이세계인의 쾌감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 김조순 이 자식이 이상한 거지 대충 치킨이면 통하는구나!’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판단되자, 시준은 프랑스인들이 답례로 내어놓

은 와인을 약간 마신 뒤 내려놓았다.

“먼저 말해 두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나누는 이야기는 전부 비공식적이며,

저의 존재는 조선 정부에서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제 신분을 알고 계실 테니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푸셰의 눈빛이 변했다.

작가의 말

1. 실제로 현대 한국어의 '이 양반아' 용법은 조선 후기 양반의 대량생산에서 유래된 가치 하락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의사 양반' '변호사 양반' '기자 양반' 처럼 원래 양반이 아니었던 직종에게만 적용되지, '총리 양반' '장관 양반' 같은 말은 잘 안 쓰거든요. (이보쇼, 공무원 양반. 같은 말은 가끔 쓰입니다만 현대 민원 담당 공무원은 조선 시대 기준으로도 양반 축에 못 들어가는, 이를테면 작중 관속과 유사한 위치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2. 프라이드 치킨은 별로 특별한 요리는 아닙니다. 닭을 한번 튀겨보자는 생각이야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사람이든 했을 테니.. 대량 생산 체제로 기름이 많이 쏟아지기 전까지는 가성비가 안 나오는 요리이긴 했죠.

3. 유럽에 쌀 요리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대부분 원조는 투르크 쪽입니다. 이게 유럽으로 유입된 거죠. 작중 나온 대로 닭튀김 자체는 유럽에도 몇 가지 형태가 있었는데, 대표적으로는 스코틀랜드식 튀김 요리가 있습니다.

4. 푸셰인데 왜 복공이냐면 일단 공은 공이고, 福자를 중국어로 읽으면 fu이기 때문입니다. 푸젠성(복건성)과 마찬가지. 음차는 조선식 한자 독음대로 하는 경우도 있기는 있었으나(예를 들어 중국에 참고할 서적이 없이 '조선에만' 들어온 외래문물 같은 경우), 대부분 중국어 발음을 차용했습니다.

16. 얽히는 양극(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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