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16. 얽히는 양극(3)
푸셰는 장자도에서 약간 떨어진 용천부 바닷가에서 간신히 고개를 쳐들었다.
소금기가 말라붙은 목 뒤가 견딜 수 없이 쓰리고 머리는 돛줄처럼 푸석푸석했다.
교활한 영국놈들은 해로를 속였다. 뱃사람들끼리의 국적을 초월한 최소한의
의리도 저버린 배덕자들에게 푸셰는 분노가 치밀었다.
전혀 다른 방향의 조류에 당황하고 다시 불어 닥친 파도에 휩쓸린 함대는 추
풍낙엽이 되었고, 그 재앙은 선원들의 정신마저 낙엽처럼 찢어놓았다.
푸셰는 망연자실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저기서 통곡하고 있는 그레테 자작은
살아 있는 것 같았지만, 5척에 달하는 함대는 온데간데없었다.
진수된 지 얼마 안 된 새 기함 아우스터리츠(Austerlitz)만이 간신히 살아서
모래톱에 뱃전을 처박은 상태였다. 오세앙(Océan)급 전열함의 무식한 덩치가
제값은 했는지 이 배는 그래도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푸셰는 나폴레옹에게 떼를 썼던 보람이 있다는 허탈한 생각마저 들었다.
‘신을 극동의 변방으로 내칠 양이면 그 영광된 이름, 아우스터리츠의 가호를
받으며 항해하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오세앙급 전열함은 목조선의 한계에 달한 거선이다. 당연히 비싸고 귀중하다.
사실상 날 보내지 말라는 말이었으나, 나폴레옹은 못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안
알아들었는지 그냥 배를 내주었다.
어차피 원양 항해에는 큰 배가 좋기도 하였거니와 프랑스 해군은 군함이 갑자
기 3배쯤 늘어나지 않는 이상 영국 해군에 대적할 수 없으므로 치명적 손실이
라고 할 수도 없었다.
푸셰로서는 그냥 원한에 찬 심술과 어깃장에 가까운 일이었다. 허나 그 만재
배수량 5천 톤의 118문 전열함은 길을 모르는 선원과 자비를 모르는 자연 사
이에서 굳건하게 버텨 주었다.
하지만 조선인들이 이것을 보고 대프랑스 제국의 위엄을 깨닫게 하기에는 조
금 어려워 보였다.
돛은 다 찢어지고 삭구는 태반이 사라졌으며 선원들은 반쯤 시체가 되었다.
대포는 대대적 수리가 동반되지 않는 이상 아마 한 개도 쓸 수 없을 것이다.
폐허의 분위기가 그 비장미를 더하는 유적도 있기는 하지만 지금 아우스터리
츠에게는 해당이 안 되었다.
실제로, 지금 해변에 모여든 조선인들의 표정은 웅대한 전열함의 크기에 감탄
하는 것이라기보다 우리 땅에 웬 대형 쓰레기를 투기했냐는 쪽에 가까웠다.
영길리인들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고 나와 본 용천부 양이별장(洋夷別將) 백
인철(白仁哲)은 불쌍하다는 듯이 푸셰와 그 일행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원래 평안도 향토 무관으로 홍경래에게 포섭되어 반란군에 들어야 할 사
람이나, 지금은 통무아문 생기면서 같이 생긴 양이별장 자리 하나 얻어 걸려
불만이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이름만 거창하지 기실 장자도에서 술이나 약 빨고 싸우는 놈들 두드려 패는
역할이긴 해도 벼슬은 벼슬이다.
그래서 양이별장의 책무를 다하는 백인철은 선원들에게 영학(영어)도 열심히
배워 한두 마디 할 줄 알았다. 그는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물어보는 말’
을 머릿속에서 떠올린 후 친절하게 물어보았다.
“What the fuck are you[너 뭐야, 이 새끼야]?”
순간 끈 풀어진 정신을 현실에 도로 붙들어 매느라고 잠깐 심력을 소모한 푸
셰는 간신히 영어로 대답할 수 있었다.
“우리는 대프랑스 제국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든 사절이오. 조선 국왕 폐하(His
Majesty)를 만나 뵙고 양국의 화호와 몇 가지 외교적으로 중요한 사안을 의논
하러 왔소. 그런데 지금 풍랑을 만나 표류해서…….”
양이별장이라곤 해도 그렇게 긴 말은 알아듣기 어려웠는지, 백인철은 모인 사
람들 중 통변할 만한 자를 소리쳐 불렀다.
영국 선원이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눈치 빠른 자들은 괜히 친한 척하며 그들에
게 말 걸어 영어를 배웠다. 영어만 알면 통변해 주는 삯 버는 것은 물론이요,
장사하는 중간에서 통역을 살짝 꼬아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것도 가능했기 때
문이다.
방법은 인류의 전통을 충실히 이어받는 것이었다. 조선인들은 선물을 마련했
다. 그러고는 영국인에게 어슬렁어슬렁 가서 친절하게 말하곤 했다.
‘자네들이 이걸 그렇게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영국인 선원들은 그 말과 함께 건네진 양귀비꽃에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허나 조선인들은 조상의 얼을 잊지 않았다. 영국 선원들은 조선인들이 양귀비
와 같이 내미는 떡이며 과자며 이런저런 먹을 것을 환영했다.
어쨌든 그래서 불과 일 년 만에 이 용천부에는 나 영길리국 말 할 수 있노라
장담하는 자들이 꽤 많아졌다. 그래 봐야 기초 회화겠지만 이 시대의 지식 수
준상 그 정도면 유창하게 하는 거다.
본래 남쪽 사람이고 반가의 후예이나, 서자인 탓에 내내 서러움만 받다가 젊
은 혈기 이기지 못하고 뛰쳐나와 평안도까지 흘러온 김희용(金熙鏞)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가 앞으로 썩 나섰다.
“별장 나리. 아문까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니, 이 사람이 비록 부족하나
한번 해보겠소.”
김희용은 한 15년쯤 뒤에 서얼 차별 철폐를 위한 육도(六道) 유생 일만 명의
연명 상소를 주도할 사람이다. 당시 ‘기세가 사백 년 조종을 뒤집어엎을 것
같다’고까지 평해졌다. 그만큼 재주 있고 용기도 있어서, 여기 와서도 금세
영어 배워 호구 마련한 것이다.
김희용은 과연 어중이떠중이 통변들과는 많이 달랐다. 곧 백인철은 어려움 없
이 푸셰와 이야기할 수 있었다.
“표류했다고? 영길리국 사람들은 왜 이리 표류를 좋아한다는 말이냐.”
“아니, 우리는 영국인이 아니오. 프랑스인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저 영국놈
들이 가짜 항로를 흘려서 배가 난파하고 사고를 당해 여기까지 흘러왔소.”
모든 사람들이 시준의 강의를 들은 건 아니어서, 서양에 대한 이해는 사람마
다 천차만별이었다. 표준화된 지식이 없다 보니 사람들은 자기 머릿속 상상과
추론으로 지식을 완성하곤 했는데 백인철의 경우 프랑스가 영국의 한 지방 이
름이라는 이론을 고수하는 상태였다.
“그 프랑스란 불랑국을 말하는 것이렷다. 안다, 알아. 쯧쯧. 신참들이 애 많
이 썼구먼. 그냥 장자도에 오면 되지 표류 핑계 만들어 장사하려고 이렇게까
지 하나? 그래, 가져온 게 뭔가?”
양이별감이고 홍경래와의 개인적 친분도 있는 백인철은 영국인이 말하는 표류
가 사실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이야 공무역을 텄으니 별로
중대한 정보도 아니지만 말이다.
허나 푸셰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영국인이 아니니까. 푸셰는 그냥 신
기한 물건 몇 개로 구슬리면 다 끝날 줄 알았던 이 동방의 야만족들에게서 심
상찮은 기운을 느꼈다.
그 옛날, 로베스피에르 혁명정부 치하의 정치깡패들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조영수호통상장정에 있어 무기 수입은 엄금이다. 그러나 홍경래가 그랬듯이
누구도 이걸 무기 거래에 손대면 안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 시대에서 ‘금지’라고 하는 간단한 단어에는 보이지 않
는 주석이 붙어 있다.
충실히 부연한다면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거나, 들켜도 무마할 수 있는 권력
이나 재산이 있는 녀석 빼고 금지’가 맞다. 따라서 어떤 자들에겐 금지령이
오히려 독점의 기회다.
대표적으로 왕 같은 자들이 그렇다.
강병 육성의 기회를 노리던 순조 이공은 서양인이 이제껏 보지 못한 대박을
타고 떠내려왔다는 치계를 받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옛날 황사영이 소환하여 이 나라 사직을 깨부수고 그 사교의 신을 해방하려
했을 만큼 강대한 불랑국의 배인 것이다. 잘만 하면 자신이 그 힘을 써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영길리국에서는 무기를 공식적으로 대량 수입하기가 곤란했다. 물론 장정은
민간 무역에 있어 무기 거래를 금지한 것이니 국가 간에 새로운 약속을 한다
면 못 할 것도 없긴 하나, 조선의 없는 살림에 영길리에서 요구하는 값을 댈
수 있을 리가 없다.
이공은 근래 장사치의 일을 많이 다루면서 상도를 제법 익혔다 자부하고 있었
다. 값을 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간단하다. 여러 명을 경쟁시키면 된다.
서양인이 항구 열어젖히기 좋아하므로 영길리국이 조선에 들어왔다는 이야기
를 들으면 불랑국도 반드시 애가 달아 어떤 식으로든 배를 보낼 터. 그것은
이번에도 멋지게 들어맞았다.
냉정하게 보면 그냥 돈 없어서 못 사고 있다가 좀 싸게 줄 것 같은 놈들이 나
타나니 결과를 원인에 꿰어 맞춘 일에 지나지 않아 보였으나, 이공은 자신이
처음부터 그 계략을 구상했다고 믿어버린 상태였다.
그리고 다른 몇몇 신뢰하는 신하들에게도 그 말을 믿도록 했다.
이공이 예조 판서로 올려놓은 박윤수가 힘있게 주청했다.
“이 일은 오래전부터 잦았던 표착선의 건이므로 영길리국에게 해 주었던 것처
럼 어루만져 돌려보내는 것이 도리에 합당합니다. 허나, 불랑국은 예전 임술
년(1803년) 장자도에서 청인을 많이 해친 죄과가 있고 본래 요사한 사교를 퍼
뜨리는 무리라. 장자도에 두기는 피국(청)의 오해가 있을까 두렵습니다. 기왕
에 저들이 사절이라 칭했다 하니, 평양이나 강화도에 머물게 한 뒤 이들의 사
정과 선악을 면밀히 따지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이공과 논의한 대본대로였다.
영길리국 때처럼 상황이 잘 맞아떨어진 것도 아닌데 청이 불랑국과 통교하는
것을 허락할 리 없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오해’하기 전에 불랑국 사람들을
잽싸게 불러들인다. 조정에서는 ‘이들의 사정과 선악’을 충분한 시간을 들여
‘면밀히 따져’ 볼 것이다.
그리고 그게 끝났을 무렵엔 이미 불랑국 사절들은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포기
할 지경일 터요, 그 태산만 하다는 대박은 은근슬쩍 왕의 것이 되어 있을 것
이다. 잘 설득하면 그들도 조선의 군, 정확히는 왕의 군을 위해 봉사하게 할
수 있다.
딱히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벨테브레나 하멜이 저승에서 보다가 트
라우마에 몸서리칠 조선식 야바위일 뿐이다. 원래 조선의 왕들은 열성조의 지
혜를 힘써 본받는 것에 게으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지혜를 발휘하려면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영안부원군 김조순은
일 년 사이에 서양인에 물들어 날강도가 되어버린 것 같은 군신(君臣)에게 경
악하다가 간신히 반박했다.
“불랑국이 이 멀리까지 그 큰 배를 보낸 것을 보면 필시 그런 대박을 많이 가
지고 있을 터입니다. 영길리국이 오문(마카오)을 점거하자 피국에서도 교역을
허하여야 했는데, 불랑국 또한 그러한 괴력을 부리지 못할 까닭이 없습니다.
만약 그들이 자기네 사절을 돌려보내지 않는다 하여 전조 때 저고여(著古與)
의 일처럼 트집을 잡아 병화를 일으키면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영길리국 사람들은 일 년 정도 평안도를 드나들면서 종교에 대해 일절 말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사교의 방지를 서양인 퇴거의 명분으로 내밀 수가 없
기에 김조순도 이리 말한 것이었다.
허나 치밀한 군주 이공은 그런 말에 대한 대응 논리도 이미 마련해 두었다.
“그 일에 대해선 서양국의 사정에 능통한 예조 참판(정약용)이 나와 아뢰도록
하라.”
이공은 정약용이 자기 선을 탔다고 여기고 많은 은혜를 베풀었다. 예조 참판
에 비변사 외교당상, 통무아문 부제조로서 사실상 대영 무역의 모든 권한을
한 손에 쥔 정약용은 대(對)서양 정책에 빠질 수 없었다.
게다가 예조 판서까지 박윤수이니 조선의 외교는 사실상 이공의 마음대로라고
할 수 있었다. 이것이 친정하는 왕의 정치가 아니겠는가.
다만 그건 이공의 생각이고 정약용은 딱히 자기가 왕의 계파라고 여기지는 않
았기에 좀 떨떠름해하면서 나왔다.
“영안부원군의 말이 비록 충정으로 널리 살폈다고 할 수 있겠으나, 성상의 천
안과 예지는 그것을 이미 초월하셨습니다. 불랑국은 오문과 광동에 있는 영길
리국 및 포도아국이나 저 일본국 장기(長崎, 나가사키)에 있는 화란(和蘭, 네
덜란드) 사람과 달리 여기에서 흔도사단(忻都斯担, 힌두스탄, 즉 인도)까지
점포며 땅을 일절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들은 십이만 리 떨어진 본국에서 치
중과 병사를 실어와야 합니다.”
엄밀히 말해 그 말은 다 틀렸다. 이공은 초월적 예지를 발휘한 게 아니라 정
약용과 미리 작당한 것이고 프랑스는 정말 마음먹는다면 아시아에 쓸 만한 거
점이 있다.
프랑스는 베트남과 특히 군사 쪽에서 깊은 친분을 맺고 있다. 자롱 황제 또한
나폴레옹 황제와 동맹이라고까지는 못 하여도 자기 나라 항구를 조선 침공의
전진기지로 쓰게 하는 협상이 불가능할 정도의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정약용의 정보가 최선이었다. 그간 통무아문에 뻔질나게
드나들던 동인도 회사 사람들이 조선에 고해바친 최신 서양국 동향은 이러했다.
“프랑스는 아시아에 쥐뿔도 없습니다. 그러니 허구한 날 해적선을 보내 약탈
이나 하는 것입니다. 나가사키의 네덜란드인은 죄다 갈 데까지 간 범죄자, 사
기꾼 집단인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 잔당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이젠 프랑
스의 괴뢰이올시다. 우리들만이 유럽에서 유일한 아시아 무역자이며 문명 개
화인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정약용 정도 되는 자가 그런 말을 전적으로 믿고 묘당에서 말할 만큼 허
술하진 않다. 그는 제자에게도 물어보았다.
그러나 시준 역시 프랑스의 아시아 식민지 확장은 프랑스 제2제국, 그러니까
나폴레옹 3세쯤부터라는 거시적인 지식만 알고 있었기에 프랑스는 아시아 식
민지가 아직 없다고 - 그러니까 성문종합영어에 그렇게 써 있다고 – 확인해
주었다.
정약용처럼 미래인을 제자로 두지 못한 김조순은 그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
았다. 이공은 이제 침묵하는 김조순을 여유 있게 바라보았다. 처음에야 장인
에게 휘둘렸지만, 이제 장인도 총기가 지난날만 못해 보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은 아직 내칠 때가 아니다.’
이공은 그렇게 생각했다. 정책적인 면에서 자신의 뜻을 몇 번 관철시켰을 뿐
이지, 여전히 조정 신하들은 대부분 왕보다는 김조순을 따른다.
김조순은 이 일로 성총을 어지럽혔다며 또 사직서를 냈으나, 이공은 다들 예
상하는 대로 그것을 점잖게 물리쳤다. 아직은 조정이 완전히 자기 손에 들어
오지 않은 만큼 김조순과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자신의 손에 서양국의 총포로 무장한 강력한 군대가 들어오게
되면 바뀔 것이다. 이공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도덕적 문제나 실현 가능성을 두고 설왕설래가 조금 더 오갔을 뿐, 이공의 뜻
자체에 거부감을 가진 신하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화약, 조총, 편곤 등 조선
은 좋아 보이는 무기가 있으면 항상 큰 저항 없이 도입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5천 톤 전열함을 ‘도입’하려는 조선의 작전은 개시되었다.
푸셰 장관과 그레테 자작은 일단 평양성으로 들어가 몸조리를 하게 했다. 왕
은 서울로 불러오고 싶어했지만 그건 박윤수마저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서양국의 자칭 사신이 사대문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의 입은
단속하기 어려우며, 나중에 반드시 상국에 책을 잡히게 될 것입니다.”
그 말도 옳다. 현재 이공이 해 줄 수 있는 최선책은 그나마 평양 감사 이서구
에게 특별한 교지를 내려 불랑국 사람을 신경 써서 보호하도록 해주는 것뿐이
었다.
아우 뭣인가 하는 그 배는 밀물이 크게 들어오는 때를 기다리지 않으면 별 도
리가 없어서 일단 용천부에 그대로 놔두었다. 어차피 누가 훔쳐갈 수 있는 물
건도 아니다.
뭐 기름칠할 것 없을까 생각하던 이공은 그들에게 신분에 걸맞은 대접을 해주
기로 했다. 그는 정약용에게 두 사람이 말한 관위(官位)의 해석을 물었고, 정
약용은 책을 찾아보겠다고 말한 뒤 시준에게 갔다.
시준은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흉년이라 매상 격감을 각오했지만, 관리나 양
반들은 어디서 착복한 돈이 썩어나는 모양인지 옥양목이며 대마가 여전히 잘
팔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준은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두크(duc)란 곧 공작(公爵)을 말하고 미니스트레 드 라 폴리스(Ministre de
la Police)는 음…… 조선에 같은 관직이 없지만 좌우 포도대장과 판의금부사를
겸하는 직위라고 하면 대강 비슷합니다. 비콩트(vicomte)는 자작(子爵)을 일
컫습니다.”
기실 시준이 말한 것은 일본을 거쳐 한국에 널리 퍼진 번역을 따른 것이다.
유럽의 귀족 작위와 주(周)의 오등작은 실제로는 별로 비슷한 점이 없다.
많이 양보해서 봉건귀족 사회 내에서의 서열 순서만 참고할 것이라면 큰 문제
는 없으나 이런 외교적 사안에서는 약간 문제가 된다. 과연 정약용은 놀라서
말했다.
“그렇다면 일개 재자관 정도가 아니라 각기 나라의 군주들을 보낸 것 아닌가.
이는 만왕(蠻王)이 입조(入朝)할 때의 예절로써 아뢰어야만 하겠다. 그러지
않아도 불랑국은 일전 영길리국이 오문을 침범했을 때 포도아국을 진멸시켰
고, 이제 얘기를 들어 보니 오래전 화란국도 평정하여 그 기세가 대단하다 하
던데?”
시준은 잠깐 고민했다. 그의 생각에 프랑스와 친해서 좋을 일은 영국만큼이나
별로 없었다.
영국은 미국과 캐나다 및 호주 등 잘 된 사례도 가뭄에 콩 나듯 있기나 하지,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나라들은 식민시대가 끝난 다음에도 추하게 미련 못 버
리는 프랑스에 의해 엄청난 고생을 해야 했다.
물론 그들 중 현재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나라는 없다.
병인양요를 알고, 유학 시절에는 이놈들이 나치랑 그냥 친하게 지내지 왜 싸
웠는지 모를 정도의 인종차별도 겪어 본 시준으로서는 프랑스에 대해 호감을
가지긴 힘들었다. 아편만 안 팔지 영국보다 더 독한 놈들이다.
머리 굴리던 시준은 그냥 상식적인 조언만 주기로 했다. 조정 일에는 얽히기
싫었다.
“그, 뭐, 틀린 말은 없습니다만……. 일전 선생님 말씀대로 그 패왕의 기세는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서양국 전부가 이를 갈며 와신상담하고 있으니까요.
상민으로서 국사에 대해 아는 척하지 않겠습니다만, 부디 심사숙고하시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러고 다시 장사나 보러 나가려던 시준이었으나 정약용은 그렇게 놔두지 않았다.
“아니, 이번에는 너도 개재(介在)해야만 하겠다.”
“……또 어명입니까?”
“또 어명이다. 불경한 말은 삼가거라. 묘당의 논의를 함부로 발설할 순 없지
만, 네게는 상감께서 특히 일을 맡기실 모양이므로 말해도 되겠지.”
정약용은 그간 논의되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시준은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약간 찌푸렸다.
‘외국인을 감금능욕조교해서 군함을 날로 처먹겠다고? 여기 조선 맞아? 어떤
미친놈이 이런 발상을 한 거야?’
정약용은 그런 제자에게 엄한 눈길을 보냈다. 제자가 머리는 좋은데, 옛날 박
제가나 이덕무처럼 그 재지를 숨기지 않고 얼굴에 지나치게 드러내는 바람에
경계 받거나 쓰이지 못할까 두려웠다.
“어차피 조종의 구례가 그러했다. 요사이 영길리인들 때문에 흐트러지긴 하였
으나 본래 외국인은 사사로이 나라에 들고날 수 없었다. 인묘(仁廟, 인조)께
서도 박연(朴燕)에게 하교하시기를 ‘날개가 등에 돋아 바다를 건너지 않는 이
상 너희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고 하셨느니라.”
과연 스스로도 감금플레이에 일가견이 있는 왕의 말이라 그런지 신빙성이 가
슴으로 팍팍 와 닿았다. 시준은 가슴을 퍽퍽 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물었다.
“그럼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일단 그들의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 영길리국 말로 대강 뜻은 통하는
데, 긴한 이야기를 나눌 일이 많아서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먼저 네가 가서
그들을 안심시키거라.”
“임 행수(임상옥) 같은 사람도 불랑국 말을 할 줄 아는데요.”
그리고 시준은 떠올리지 못했지만 지금 북경에 있는 프랑스 신부들도 중국어
를 능숙하게 한다. 허나 신부들은 예전 ‘프랑스인의 중국인 학살’ 사건으로
눈치 보는 처지인데다, 푸셰는 중국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북경보다 먼저 조
선으로 왔다. 그러다가 망했지만.
임상옥의 경우는 정약용이 설명해 주었다.
“그러잖아도 척재 대감(이서구)께서 수소문을 벌써 하셨다 하더라만, 그 임상
옥이라는 자는 비록 자기가 장사치라 하나 절대로 사교도와는 말 섞지 않는다
며 자못 절개를 뽐내고 거절한 모양이더구나. 그러고는 너를 추천했다. 하기
야 말을 할 줄 안다 해도 서양국 사정도 잘 아는 사람이 가야 하지 않겠느냐?”
시준은 세상 전부에 대한 증오가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느꼈다.
‘이 새끼 자기가 프랑스어 조금밖에 못하니까 빠졌구나. 절개는 얼어 죽을.’
하지만 시준은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어차피 벗어날 수 없다면 화만 내 봐야
소용이 없다. 그는 이 시점부터 서울 사업을 박득출에게 맡길 계획을 머릿속
에서 구상했다.
박득출도 수완 괜찮은 사람이고, 그간 시준이 서울에서 하는 장사를 옆에서
보고 돕기도 하며 지금은 썩 익숙히 하였다. 이제 서울도 경쟁 조직이나 관내
서열을 대강 정리해서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다만 박득출은 임상옥의 아랫사람이니, 자신의 사업권 자체는 이강회에게 넘
겨야 할 듯했다.
이강회는 이제 역관을 통한 바늘 유통이 거의 끝나고 자체 생산을 위해 장인
들을 모아들였음에도 안 놓고 미적거리는 게 장사 좀 해보고 싶은 모양이었
다. 돈맛이란 게 이렇게 무섭다.
이전 과정에서 또 잡손실이 적지 않겠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제 정
치깡패 노릇 벗어날 좋은 기회다. 그런저런 일을 머릿속에서 대강 나누어 놓
은 시준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좋습니다. 이제 고향 돌아가 볼 때도 되었지요. 더 상세히 일러주십시오.”
“허허. 그래. 다음에 네게 받을 간찰에는 좋은 소식이 있겠구나. 내가 아무리
조정 일이 바빠도, 네 혼례에는 통무아문 시찰 건을 만들어서라도 꼭 가마.”
시준은 자기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정약용이 생각했다는 데에 놀라서 스승
을 잠깐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렇다. 지유가 거기에 있었다.
시준은 아까 별 감동 없이 말했던 귀향이란 단어에 전혀 다른 그리움을 새삼
느끼며 북쪽을 돌아보았다.
작가의 말
1. 서얼 얘기 잠깐 나왔는데, 나중에도 나올지 모르겠습니다만 조선의 가혹한 서얼 차별은 조선답지 않게 경전이나 고사 어디에도 근본이 없는;; 조선만의 풍습이었습니다. 다른 나라라고 서자나 얼자가 좋은 대접 받은 건 아니지만, 관직 등용 같은 부분에서 절대라고 할 정도로 꽉 막아놓은 건 동아시아에서도 조선뿐입니다.
작중 나온 것처럼 후기로 갈수록 유생들이 집단 시위도 하고 그러지요. 여섯 개 도에서 만 명의 유생을 모았다는 얘기는 사실상 안 들어주면 반란 걱정 좀 해야 될 거라는 암시입니다. 사직이 뒤집힌다는 표현은 그냥 나온 게 아닙니다. 하지만 결국, 조선에서 서얼 차별이 철폐된 건 신분제 자체가 사라진 갑오경장 때입니다.
2.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실제로 굉장히 고된 일이었고(식민개척의 선발주자인 네덜란드가 한창 아시아 진출할 땐 완전한 미개척지가 많았습니다. 후발주자인 영국 동인도 회사와는 또 다른 상황) 위험했기 때문에 선원들이 당연히 안 오려 해서, 갈 데까지 간 범죄자나 인생 막장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습니다. 영국인들의 모함도 아주 근거 없는 것까진 아니죠. 하하.
그리고 VOC는 이 시점 이미 없습니다. 네덜란드 본국이 망하고 프랑스 혁명정부가 괴뢰국 바타비아 공화국을 세운 뒤, 이 바타비아 공화국이 VOC를 국유화하면서 사라지는데 이게 1799년, 작중 시점에서 10년 전입니다.
3. 아우스터리츠는 프랑스의 대형함선 중 이 시기 영국에게 안 털린 몇 안 되는;; 배여서 조선에 올 수 있었습니다.
좀 다른 의미도 있는데, 조제프 푸셰는 나폴레옹이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승리했을 때 그에게 찬사를 바치며 "폐하. 아우스터리츠에서 옛 귀족(앙시앵 레짐과 유럽 구체제의 대유법인 것 같습니다)은 전부 패배하였습니다." 라고 합니다. 그래서 작중의 조제프 푸셰는 저런 대사를 한 것이죠.
16. 얽히는 양극(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