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15. 골든 트라이앵글(2)
홍경래의 행동은 명료한 사고의 결과였다.
영길리인이 무슨 신묘한 재주를 가졌건 아편은 양귀비에서 나오고, 양귀비는
땅에서 나온다. 이 사실은 변할 리 없다. 그리고 영길리국 사람들은 중국이나
조선에 크게 농사지을 땅을 가지고 있지 않다.
월국(베트남)이나 남만 제국(諸國)에 대해서는 홍경래가 잘 모르지만, 조선
사람인 홍경래는 중국이 천자의 은혜가 미치는 그 땅에 영길리국의 점탈을 허
용할 확률이 적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영길리국이 중국에 아편을 판다고 했을 때는 필연적으로 먼 곳에서
실어와야 한다. 홍경래가 아편이 인도에서 생산된다는 사실을 몰라도 그 정도
까지는 추리할 수 있었다.
따라서 가까운 곳에서 실어나를 수 있다면 배와 사람에 드는 비용을 획기적으
로 아낄 수 있다.
홍경래는 영국인들이 처음에 생각했던 조선의 아편생산 기지화를 거꾸로 나서
서 추진한 것이다.
홍경래는 누가 이 말을 들을 걱정은 하지 않았다. 서북통상사무아문은 임시로
용천부 관사를 쓰고 있어서 여기에는 관리가 없고, 양귀자(洋鬼子)가 쇠를 씹
어 먹고 사람 혼백을 빼다 삼킨다는 소문 때문에 꺼림칙한 관리들은 여기에
하인이나 보내고 있다.
권위에 기반한 통제가 없는 이 장자도는 그야말로 악머구리 끓는 장터 같았
다. 영국인과 조선인, 상인과 깡패, 도매업자와 사채업자가 어울려 춤을 추는
이 장자도에서 홍경래와 할리버튼 선장의 대화 따위에 신경쓰는 사람은 없었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겨야 하는 법. 홍경래는 할리버튼 선장을 끌고 으슥
한 곳에 간다거나 하는 멍청한 짓은 삼갔다. 그러면 더욱 눈에 띈다.
그래서 홍경래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패수(浿水, 압록강) 서쪽의 청인들은 서양 물건을 안 사갈
텐데.”
물론 영국은 아직 중국 북부의 항구를 개항시키지 못했다. 따라서 홍경래의
말은 오류다. 애초부터 거기에는 뭘 팔고 있지도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할리버튼 선장은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홍경래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 아니다.
‘조선놈들이 벌써 중국 북부에 아편을 팔고 있다는 건가?’
여기에서 놀라는 반응을 보여서는 안 된다. 할리버튼 선장은 자신을 다잡았
다. 이건 허세일 확률이 더 높다.
만약 조선인이 영국 레벨로 아편을 대량 재배해 중국에 밀수출하고 있었다면,
아무리 북방이라도 아편 전문가인 영국인과 동인도 회사가 그 냄새를 못 맡았
을 리 없다. 당연히 중국 남부의 아편 시세가 영향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이 그저 허세를 부리기 위해 홍경래가 목숨 걸고 밀수 접
촉을 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중국에 대한 정보망은 조선만큼이나 동인
도 회사도 가지고 있으며 조사하면 금방 드러날 일이다. 아마 홍경래의 말이
아주 거짓은 아닐 터.
합리적인 결론은, 조선이 청에 아편을 팔기는 하지만 그 규모는 대단하지 않
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인도 회사는 장차 중국 전역을 개항시킬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리
고 그 시장을 다른 나라 사람과 나눠 가질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아시아는 동인도 회사의 것이니까.
이번 사건으로 원래 좋다고 할 수 없는 청과 영국의 관계는 더 나빠졌다. 추
가적인 개항으로 미개인에게 문명을 전파하려면 눈물을 흘리며 대포를 써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하느님을 섬기고 문명을 실천하는 영국이 설마 아편 팔자고 전쟁을 할
일이야 없을 터이니 – 할리버튼 선장은 진짜 그렇게 생각했다 – 형식은 중국
의 도발에 영국이 대응하는 형태가 되겠으나, 차후 기껏 피 흘려 개항시켜 놓
은 항구를 다른 자들이 가로챈다는 것은 참기 힘든 일이다.
할리버튼 선장은 동인도 회사에 두 가지 과제가 생겼음을 이해했다. 첫 번째
는 조선에서 아편을 수입해서라도 강남 아편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이
며, 두 번째는 조속히 천진을 비롯한 여러 북부 항구를 열어젖혀 청 시장을
조선보다 빠르게 선점하는 일이다.
홍경래는 어떻게 할 거냐는 표정으로 여유 있게 서 있었다. 할리버튼 선장은
그런 홍경래를 찬찬히 관찰했다.
‘이자는 아마 조선 내 아편 밀수출 시장에서 떨려난 자일 터. 조선과 중국의
특수한 관계를 생각하면 아편 거래 이상으로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주 틀렸다고 보기도 힘든 분석이다.
특히 이자를 통해서 조선 정부가 대청 아편 수출을 묵인하거나 혹은 지원했다
는 증거라도 잡을 수 있다면, 동인도 회사는 조선을 협박하여 조선 내 아편
수출을 허가받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 가능하다.
어차피 장사는 공식적인 면과 비공식적인 면이 모두 갖춰져야 원활하게 진행
되는 법. 조선 암흑가에 선을 마련해 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할리버튼 선
장은 상대를 예우하는 의미에서 모자를 벗었다.
조선 사람인 홍경래는 뜬금없이 모자를 손에 든 이 오랑캐에게 당황했지만 –
현대로 치면 점잖은 자리에서 갑자기 양말을 벗는 일이다 – 그것을 드러내지
는 않았다.
“어디 보자…… 그래. 이름 없는 신사분. 이쪽으로 오시겠소? 여기는 조용히 얘
기하기가 어렵군. 당신을 우리 배에 초대하지.”
“그거 고마운 말이군.”
동인도 회사 배에 보트를 타고 오가는 조선인들은 홍경래 말고도 많았기에 그
다지 눈에 띄지는 않았다.
홍경래는 나룻배 위에서 고민에 잠겼다.
이번 개항으로 만상이 조금씩 수입하던 무기 밀거래선도 끊겼다. 구사대원들
이야 무기를 위협용으로만 가지고 있었기에 만상들은 별 미련이 없었지만, 홍
경래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홍경래의 이번 아편 수출은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반란을 위한 재원
확보,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그 무기 거래선의 부활이다.
병사가 정예하지 못하면 총포라도 강해야 하는 법. 홍경래는 영국으로부터 무
기를 사들이고, 가능하다면 영국군의 지원도 얻어 볼 생각이었다. 그 생각에
골몰하느라 홍경래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린 채로 영국 배에 올랐다.
바로 자기가 ‘왜’ 반란을 일으키려 했는지에 대한 사실이었다.
시준 같은 뒷세계 인간들이야 개뼈다귀 보듯 하지만, 실제로 마주친다면 포도
청 군관의 위세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들이 국가의 명령을 나타내는 통부(通符)를 차고 있는 한 포도군관은 왕 앞
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을 권한을 가진다.
악소배(惡少輩)들이 나라의 관헌을 굼뜨다고 비웃으며 뒤에서 온갖 비리와 범
죄를 저지른다 해도 그건 방어적인 조소에 불과하다. 결국 음(陰)이 양(陽)을
내리누를 수는 없으며, 깡패와 협잡배들이 아무리 교활함을 자랑한들 공권력
이 체면을 벗어던지는 순간 그들은 무력해진다.
적어도 낮의 한성부에서 포도군의 권력을 거스를 자는 없다. 그리고 폭력도
마찬가지다.
“어명이오!”
우지끈우지끈 기둥이 내려앉고 천막이 부서진다. 급하게 손을 내밀었던 자는
머리가 터져 쓰러지고 고함치는 자는 이빨이 부서진다. 도망가는 자는 소리개
가 병아리 잡아채듯 덮쳐누르고 육모방망이가 사정없이 춤을 춘다.
몸소 나선 우포도대장 이요헌의 호령이 시전을 치달렸다.
“어명이다! 국헌을 문란케 한 장사치 놈들을 사정없이 추포하렷다!”
“어명이오!”
발길질에 문짝이 날아가고 달걀 바구니가 뒤집힌다. 오늘 아니면 내일 백정의
망치에 머리 맞고 죽을 운명을 받아들인 채 장터에 나와 눈물 흘리던 소는 뭔
가 기적적으로 바뀐 팔자에 놀라 울부짖으며 내달린다.
경쾌하기까지 한 빠직, 빡 하는 소리와 함께 궤짝이 끌려 나온다. 평생 끌어
모은 재산을 포기할 수 없어 거기에 매달려 울부짖는 상인들은 몽둥이와 발길
질 몇 번에 가장 중요한 재산, 생명이 빠르게 감액된다.
혼절한 채 피 흘리는 그들의 얼굴 위로 부서진 북어 가루가 제수(祭需)처럼
흩날려 떨어진다. 포도군관이나 포졸들은 순박한 웃음과 함께 돈꿰미나 비단
옷, 유기 방짜그릇을 둘러메고 행복해했다.
가경 13년(1808년) 섣달, 국초 이래로 한 번도 없었던 시전 상인들에 대한 대
탄압이 개시되었다. 연말연시 대목을 기대하던 시전은 풍비박산이라는 말이
온건해 보일 정도로 뭉그러졌다.
죄목은 장사치들이 검계 무뢰배와 작당하여 조정의 관헌을 해했다는 것이다.
물론 사실이기는 하나, 시전 상인들은 어이가 없었다. 그런 일이 어디 한두
번 있었던가 말이다.
그 죄로 따지자면 지금 조정의 녹사와 경아전은 전부 다 남대문에 효수되어야
한다. 시전 상인들이 아는 것만 해도 두 손으로 다 셀 수가 없다.
상인들도 선은 알기에 죽어도 되는 하급 서리만 처리했는데, 그걸 무마해 줘
야 할 정부가 먼저 선을 넘어버렸다는 것은 경악스러울 일이었다.
뭔가 권력층과의 연락 체계에 문제가 생긴 것이 확실했다. 상인들은 다급하게
서로 눈짓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제발 나에게 설명해 달라는 유서 깊은 제스
처였다. 하지만 설명 대신 날아오는 건 주먹질과 채찍과 박달나무 몽둥이였다.
본래 뇌물을 바치는 쪽과 받는 쪽은 대등한 관계일 수 없는 법이다. 대한민국
의 조폭들도 검사며 지역 국회의원을 비롯한 오만 곳에 돈가방 건네러 돌아다
니지만 그들이 돈 받고 나서 외면하면 그걸로 끝이다. 누가 돌려 달라 할 수
있겠는가.
결국 주도권을 가진 쪽은 권력자다. 그리고 조선의 모든 권력자는 왕의 아래
다. 왕이 시전 상인들의 재산을 전부 갈취하기로 결정한 이 상황에서, 상인들
이 정보나 보호를 받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쥐도 몰리면 이빨 드러낸다 하였던가. 사람이 악에 받치면 못 할 짓이
없다. 시전 상인들의 호의로 먹고 살던 검계 패거리가 나섰다.
“이 새끼들이 관모 차고 나오면 다인 줄 아냐!”
약관도 안 되어 보이는 남자는 대담하게도 대낮 서울 시전 거리에서 칼을 휘
둘렀다. 압도적이고 일방적인 기세에 방심하고 있던 포졸 한 명의 뱃가죽이
푹 꿰뚫리고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저놈이 칼을 들었다!”
“뭐, 뭐라고!”
당황하는 포졸들 앞에서 검계 대원은 기세가 만장이나 치솟았다.
“이 어르신이 바로 인달방 개고기 김가이시다. 어디 양반놈들은 죄다 와 보거라!”
물론 검계라고 해도 좀 똑똑한 간부들은 죄다 내뺀 지 오래다. 여기 있는 자
들은 어설픈 폭력에 도취되어 자기가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 흔한 젊은이
들이었다. 21세기에도 많이 볼 수 있는 부류다.
다른 점이라면, 그들은 공화국 시민이 아니고 전제 군주국의 최하층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21세기처럼 마음 편히 범죄 저지르고 교도관과 경찰들의 정중
한 수발을 받으며 팔자 좋게 집행유예가 뻔한 재판을 받거나 하는 행운을 누
릴 수는 없었다.
이요헌의 명이 즉각 떨어졌다.
“살수(殺手)들은 어서 저 건방진 대역죄인 놈의 목을 본관에게 갖고 오라!”
대부분 비살상 무기만을 들고 있었던 포졸들과 달리 창과 칼을 든 병사들이
나섰다. 김조순이 왕에 대한 항복의 의미로 협조한 훈련도감 병사들이었다.
포도군관이 아니라 군대. 외적에 대응하기 위한 관군이 백성에게 칼날을 돌린
다는 말의 의미에 아직 살아남은 상인들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인달방 개고기 김가가 들고 있는 것은 기껏해야 지팡이 칼. 살상력보다는 은
닉성에 중점을 둔 무기다. 왜장도(倭長刀)며 장창 같은 본격 군사무기와는 비
교할 수가 없다.
물론 조선군이므로 개중에는 칼날의 시퍼런 빛보다는 시뻘건 녹을 뿌려대는
무기가 더 많긴 하였으나, 몇 명만 제대로 달라붙어도 그깟 부랑패 하나는 순
식간에 처리된다.
김가는 별명대로 복날 개고기처럼 다져져서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생선 썩
은 진물과 똥구덩이 오물이 합쳐져서 흐르는 시전 길가 바닥에 피가 지저분하
게 섞이며 번져갔다.
어쨌든, 그가 그날 죽은 유일한 검계원은 아니었다.
광공해가 일상인 현대인은 웬만해서 체감하기 힘들지만 달빛은 이 시대에 결
코 무시할 수 없는 조명을 제공한다.
특히 보름달은 반달보다 열 배 이상 밝으며, 이때 구름 같은 게 없다면 인간
이 아무리 밤눈 어두운 영장류에 속한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물을 낮과 큰
차이 없이 식별할 수 있다.
거꾸로 말한다면, 이 섣달 그믐의 밤에는 올빼미가 아닌 이상에야 시준 일행
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래서 시준도 옆을 돌아보지는 않았다. 그래 봐야 보이지도 않으니까. 어차
피 긴장한 용만 충의신민 연락사 청년들의 풍기는 냄새가 굉장해서 그들이 모
인 것은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시준은 개나 곰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이런 일은 시준의 취향이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원래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는 법. 시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이런 게 왕의 격이라는 건가. 병신같이 장인에게 휘둘리기만 하는 녀석
인 줄 알았는데 제법이네. 이거 단단히 물렸어.’
원래 욕설도 고함도 거의 입에 안 담던 견실한 공무원 시준을, 조선은 15년
만에 타락시켜 버렸다.
물론 의주의 험악한 풍토 탓도 있으나 결국 백성의 교화는 왕의 책임. 시준이
야밤에 복면 쓰고 청계천 가에서 작당을 하는 이유는 전적으로 국왕 이공의
탓이다.
조선의 지배층은 4백 년 동안 꾸준히 평안도를 천시했다. 이건 홍경래의 반란
사유이기도 하다. 워낙 박해의 세월이 긴 탓에 사대부라 칭하는 자들은 평안
도에 가족이나 친구는커녕 지인도 거의 없다.
이 말은 곧 평안도를 기반으로 하는 세력이 조정 내에 없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공은 이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예니체리부터 세쿠리타트까지, 다른
곳에 의지하기 힘들 만큼 고립된 계층을 친위대로 선택하는 방식은 전통적 제
왕학 중 하나다. 그리고 왕이 선택한 패는 만상이었다.
이공은 왕권 강화를 위해 친위군과 왕 직속 조직을 마련할 생각이었고 여기에
는 돈이 많이 든다. 시전을 박살 내고 돈을 빼앗는다 한들 그건 일회용이며,
이공이 구상하는 원대한 사업에는 턱도 없었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한양 상권을 장악할 수단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미 왕실에
필적하는 역사를 가지고 뿌리내린 경상 및 육의전이나 조선 왕국보다도 더 오
래된 송상은 이공의 입장에서 선택하기 부담스러운 파트너다.
첫째로 이미 세력이 큰 그들은 왕의 은혜에 특별히 큰 감사를 표하지 않을 것
이요, 둘째로 이용가치가 떨어졌을 때 쉽게 잘라내 버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공도 통무아문의 장계를 계속 받아보고 있었으므로 만상이 대영 무
역에서 활개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러모로 적합한 선택이었다.
시준은 야장과 송상이 액례 박동윤을 매개로 접촉하려던 사람이 누구인지 더
깊게 헤아렸어야 했다. 시전은 박살 냈지만 아직 육의전이라는 최후의 독점
상인들을 남겨둔 이공은 그것을 미끼로 야장이나 송상의 자유 경쟁을 확대 허
가해 주겠다는 냄새를 풍겼다.
그래서 만상이 서울에 침투하려던 사실은 당연하다는 듯 이공에게 흘러들어갔
다. 몇 차례의 성공으로 자신이 신산귀모를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이공
은 정약용을 불렀다.
의주의 풍속이 어떠냐는 둥, 고생이 심했다는 둥 이상한 말을 늘어놓는 임금
의 의중을 조심스럽게 살핀 정약용은 한참 뒤에야 왕의 용건을 들을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서도는 기자가 터를 닦은 곳이고 전조의 도읍(서경, 즉 평양을
말한다)이 있었으며 우리나라의 개국공신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 조준)의 고
장이기도 한데, 사백 년 사직이 서도의 인물에 힘입은 바가 큼에도 서러운 대
우를 한 것이 많다.”
바로 그것 때문에 십 년째 반란 준비하고 있는 홍경래가 들었으면 미치고 팔
짝 뛰었을 소리였다. 임금이 그런 생각을 가졌으면 반란할 이유가 없는 것인
데 왜 미치겠느냐 하면, 이렇게 오래 준비한 반란 세력을 다 흩어버리고 취소
하는 데에는 반란보다 더한 각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조 참의가 일개 장사꾼이라 할지라도 내치지 않고 힘써 가르쳐 강상과 윤
리를 알게 만들었으니 매우 장하다. 이는 바로 왕자(王者)가 백성에게 임하여
귀천이 없고 내외가 없이 고루 균등하게 적자(赤子)로 여기는 나의 뜻과 같
다. 자식들 사이에 차등을 둘 수야 없는 법이므로, 이번에 시전을 정돈하는
데에 있어 평안도 사람들도 마땅히 한자리를 주고자 한다.”
일개 장사꾼이라고 했다가 균등하다고 했다가 뭔가 말의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았지만 정약용은 의례적인 답만 하고 잠자코 들었다.
정약용의 생각대로 왕은 거래를 제시했다. 요약하자면 왕실과 조정이 만상의
서울 진출을 금하거나 방해하지 않고, 영국과의 사무역을 장자도에서 꽉 쥐고
있는 것도 용인하여 줄 테니 서울에서 왕 휘하의 조직으로 활동하라는 얘기였다.
당연하지만 정약용은 이것을 거래가 아닌 명령으로 인식했다. 그리고 정약용
에게 어명을 전해들은 시준 역시 거래라고 여기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실제로
왕이 새로 주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의주 만상의 대영 무역도, 서울 시장 진출도 시준이나 홍득주, 임상옥이 한
일이지 왕이 한 일은 아니다. 그저 네게 위해를 끼치지 않을 테니 내게 뭔가
를 달라는 그런 말은 보통 거래가 아니라 협박이라고 부른다.
물론, 왕의 협박이다.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공은 ‘그러지 않으면’이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왕이 바로 며칠 전 도
성 한복판에서 보여준 일은 ‘그러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무엇보다 확실하
게 인식시켜 주었으니까. 시준은 김조순에 이어 두 번째로 단두대에 대한 맹
렬한 희구에 사로잡혔다.
허나 현실적으로 시준은 반항할 방법이 없다. 설마 정대운의 무리가 박동윤
살인 사건의 진상까지 이야기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 자기들도 죄를 쓸 테니
까 – 왕이 머리가 있다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시준은 어명을 따르기로 했다. 그는 머리를 움직이지 않은 채 주위의
청년들에게 말했다.
“대답하지 말고 조용히 듣기만 하시오. 이는 감히 위로 나랏님을 욕보인 역적
들을 때려잡는 일이오. 실수가 있어선 안 돼. 명심하도록.”
“예. 서장관. ……아, 아차. 대답하지 말랬지요?”
꼭 마지막 반복구호 붙이는 사람이 어디에나 있다. 시준은 넌더리를 낼 뿐 고
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다른 청년들은 죽일 듯이 김모지리를 쏘아보았다.
왕이 ‘감히 왕의 근시를 죽인’ 시전 상인들을 때려잡았다고 해도, 검계는 의
외로 많이 체포하지 못했다. 인달방 개고기가 그런 것처럼 마구잡이로 날뛰다
가 죽은 사람이 많았고 그러지 않을 만큼 현명한 자들은 이미 튀었다.
게다가 몇몇 잡힌 자들에게서도 쓸 만한 정보를 건지기 힘들었다. 통일된 조
직이라 할 수 없는 검계의 특성상 한 명만 잡으면 줄줄이 엮을 수 있는 편리
한 핵심 인물이나 장소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검계와 훨씬 밀접한 백성과 상인들은 물론 검계 조직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
었다. 허나 그들 역시 머리가 있으므로 왕이 이 유례없는 네 번째 통공을 발
했다 해서 가진 걸 다 내놓지는 않았다. 상인들에게도 마지막에 협상할 패가
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이공은 시준에게 일종의 하청 용역을 준 것이다. 시준은 일전 덕순을
족쳐 알아낸 정보를 바탕으로 검계들의 몇몇 근거지를 특정할 수 있었고, 그
중 하나가 광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이 지저분한 움막 집락이었다.
검계 계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주하던 중, 아직 소식 모르던 백성들을 협박
하여 먹을 것이며 생필품을 갈취했다. 그건 시준이 이들의 꼬리를 잡을 수 있
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복수심 말고 다른 걸 갖고 있지 않은 검계들은 실현될 리 없는 폭력적 포부를
걸쭉한 욕설과 함께 내뱉으며 상처 입은 야수의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처지가 처지인지라 감히 불은 켜지 못했으나, 그건 시준이 갖고 있었기에 문
제는 없었다.
“계속 들으시오. 셋을 세면 발화철(라이터)로 횃대에 불을 붙이시오. 그리고
내가 신호하면 재빨리 달려가 전부 때려잡아야 하오. 정 위험하면 죽여도 되
지만 되도록 두드려서 잡읍시다. 시체 없애기도 귀찮고 들을 말도 많으니까.”
이번에는 김모지리도 대답하지 않았다. 청년들은 재빨리 뛰어나갈 수 있도록
다리와 팔, 허리의 무게 분포를 조절했다. 그러느라 새어나온 옷자락 스치는
소리를 들은 시준은 이들이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셋, 둘, 하나.”
검계들은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갑자기 저쪽에서 불이 희뜩희뜩 나타
나더니 뒤쪽에서도 예닐곱 개의 횃불이 확 타올랐기 때문이다.
미리 대비하고 있었던 시준은 그 놀란 표정을 똑똑히 보았다. 시준은 검계 무
리가 어디 모여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이번 탄압과 지속적 색출로 경황이
없어서인지 부녀자를 잡아다가 겁간하고 있거나 하진 않은 것 같았다.
시준은 술병 비슷한 물건의 주둥이를 김모지리의 횃불에 들이대어 불을 붙였
다. 그러고는 그곳으로 힘껏 던졌다.
퍽!
영국에서 수입한 고래기름과 유황, 기타 시준이 아는 온갖 인화성 물질을 다
때려 넣은 도자기 병이 검계 대원들의 한가운데에서 터졌다.
휘발유나 시너가 없는 시대라 20세기 서울처럼 확 타오르는 불꽃은 아니었다.
시준은 백린이라도 없는지 물어볼 걸 하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미친 듯이 치솟는 연기와 터지는 빛은 검계 깡패들을 당황하게 하기
충분했다. 시준은 무익한 생각을 하는 대신 큰 소리로 외쳤다.
“쳐!”
그 이름 그대로 왕에게 충의 다하는 신민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 용만 충의신
민 연락사 청년들이 포악스런 기세로 뛰쳐나갔다.
작가의 말
1. 이요헌은 홍경래의 난 진압의 총책임자로서, 기록으로 보면 책임감과 능력을 모두 갖춘 무장으로 보입니다. 평안도에 가서 직접 총칼을 휘두른 건 아니지만 서울 군영에서 반년간 잠시도 군복을 벗지 않고 일했으며 여러 차례 글을 지어 투항을 권했다고 하지요. 혼자서 정주성에 가서 반군을 설득하려고도 했다고 합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말렸습니다)
2. 다른 조명이 하나도 없는 때의 보름달은 '대낮으로 속는다' 라고 할 정도로 밝죠. 하하. 시골에서 어릴 때부터 사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15. 골든 트라이앵글(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