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14. Gangs of seoul(4)
자기 집으로 옮겨진 지 하루하고 반나절 후, 기절에서 깨어난 김시택은 시준
의 천연덕스러운 설명을 들었다.
“이거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놈들은 필시 검계 명화적(明火賊) 패거리들인
데, 저와 기랑이가 재빨리 어른을 업고 빠져나와 큰길로 나오니 그놈들도 더
따라오진 못했습지요. 천운이올시다.”
“그, 그런가? 그 참 다행이군.”
일부러 이때를 노린 시준의 의도대로, 그의 말은 이해되기보다 그냥 수용되었
다. 김시택은 멍하니 있다가 퍼뜩 말했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닐세. 그 불측한 놈들을 어서 잡아들여야지!”
“아이고, 생도 어른. 분속(分屬)된 관의 일이 다 있는데 어찌 그 흉참한 데에
고개를 디밀려 하십니까. 이는 포도청의 일입니다. 그저 몸이나 보전하며 쉬
십시오. 이제 나랏일 하셔야 될 분이 심신을 상하시면 아니 되지요.”
그 황망 중에도 김시택이 시준의 암시를 알아듣기는 어렵지 않았다. 번역서
편찬을 통해 출셋길을 모색해야 할 김시택이 깡패들의 싸움질, 그것도 사람이
여럿 죽어 나간 싸움질 뒤처리에 끼어들었다가는 필시 나쁜 일은 많고 좋은
일은 적으리라는 얘기다.
시준이 은근하게 말했다.
“제가 선생님께 다 아뢰어 놓았으니 이제 포교들이 나갈 겁니다. 누가 와서
묻거든 나리께서는 그저 당한 대로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김시택은 자신이 할 일을 명확하게 제시해 주는 시준의 말에 안도감을 느꼈다.
관에서 박동윤과의 관계를 캐묻기는 하겠으나 시준의 말마따나 김시택은 친구
집 갔다가 얻어맞고 혼절한 죄밖에 없다.
뒤통수를 만졌다가 선뜻한 아픔에 신음을 내지른 김시택은 시준이 내어놓는
여러 가지 ‘위문품’에 또 정신이 흩어졌다. 성균관에 모인 선비들이나 받았다
는 옥양목에다가 값 높게 쳐 주는 서초(西草, 평안도 담배) 등 귀물이라고는
못해도 정성이 보이는 것들이었다.
“제가 괜히 소개를 부탁드려서 이리되었군요. 부족하지만 거두어서 보양하는
데에 써 주십시오.”
그렇게 김시택을 구워삶아 놓은 시준은 밖으로 나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거
기에는 기랑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준은 기랑을 힐끔 쳐다보았다.
‘여자 같아 보이진 않는데…….’
기랑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시준은 그 목소리가 남자의 것인지 여자의 것인지 고민했다. 기랑이 애초에
말을 많이 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더 애매했다.
일전 멱 감자고 했을 때 거절한 일이나 볼기짝에 고약 좀 붙이라고 할 때 몸
서리를 쳤던 일, 그리고 그저께 시준의 손길에 과도하게 반응한 일 등등 몇
가지 짚이는 것은 있었다.
하지만 시준은 그냥 이 일을 가슴속에 묻어두기로 결정했다. 기랑이 자란 환
경상 남장을 하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힘들었을 터. 어차피 시준에게는 기랑의
성별이 중요한 게 아니었거니와, 함부로 묻기도 꺼림칙했다.
기랑은 산짐승의 목숨이나 사람의 목숨이나 똑같이 귀중하다는 일종의 평등사
상을 견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필요하면 둘 다 간편하게 죽였으니까.
그리고 시준은 어느 날 자면서 칼침 맞고 싶진 않았다.
“아냐. 가자.”
기랑은 순순히 따라왔다. 어제 시준이 먹여 놓은 은자는 가난한 시골 포수로
서는 정말 막대한 것이었다. 물론 기랑의 역할을 생각하면 그 돈이 아깝지는
않았다.
그래서 기랑은 근로 의욕을 드러내며 물었다.
“오늘도 누구 죽여?”
“어허, 기랑아.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하느냐. 우리는 아무도 안 죽였다.
모두 저 검계 부랑패들이 감히 관헌을 참살하고 몇 푼 돈을 다투다가 서로 죽
인 게지.”
그게 공식적인 이 사건의 진상이었다. 김시택이 기절해 있는 하루 사이 양지
의 일은 거의 마무리되었다. 물론 시준이 정약용에게 잘 설명한 덕이다.
도성 내에서 사람이 대여섯이나 참살당했고 그중 하나는 관헌. 응당 위의 독
촉이 심할 수밖에 없고, 시장에서 자릿세 뜯는 것밖에 재주가 없는 포교들은
매우 난감했다.
그래서 시준은 그저께 새벽이 올 때까지 우포청(右捕廳) 포교들의 쉬운 수사
를 위해 적극 협조했다.
대장이 가지고 있던 우도로(삼척검은 군에서 유출된 물건임에 분명하므로 시
끄러워질까 봐 시준이 숨겨 놓았다) 시체를 찍어대는 그 일은 시준 정도의 인
물에게도 정신적 트라우마를 남길 만한 짓이었다.
‘으으. 두 번 다시는 하기 싫어. 하지만 이걸로 걔네도 보고서에 쓸 말이 생
겼겠지. 절대로 그 이상 수사하려고 들진 않을 거다.’
어느 나라 경찰이 안 그렇겠냐마는, 조선 포도청도 범인을 알고 잡아오는 데
에 익숙했지 범인을 모르는 상태에서 탐문하는 일은 전문이 아니다.
권세가에서 죄인이라 규정한 사람을 잡아서 위에서 내려 준 대로 공초(供招,
진술서) 만드는 게 이 시기 포도청의 일이다.
죄인이 만약 그 죄를 부정한다면? 긍정할 때까지 패면 된다. 진실은 원래 알
아내는 게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며 정보 창출 수단으로서의 신장(訊杖)은 항
상 뛰어나다.
그러나 조선이 무조건 그런 수사 방법론만을 고수한 것은 아니다. 치안 담당
자들에게 최소한의 직업적 자부심을 주고, 피지배자들에게는 그래도 나랏일이
그 정도는 아니라는 기만적 신뢰를 주기 위해 조선은 꽤나 공정해 보이는 수
사 절차를 명문화해놓고 있었다.
권력 있는 자가 관련되지 않을 경우, 포도청이나 지방 관아도 나름대로 증거
를 찾아 수사한다. 그러다 잘 얻어걸리면 조선 시대에 있기 힘든 명판결로 현
대에도 회자되는 여러 사례들이 나오는 것이다.
바꿔 말해, 증거만 마련해 주면 수사는 원하는 방향으로 굴릴 수 있다.
시준이 내어 놓은 상처 자국과 닭똥이의 손에 쥐어준 칼의 모양이 일치하니
우포청에서는 몇 번 서로 눈짓하고 이걸로 끝내자는 합의가 완성될 것이다.
검계가 관헌을 죽이는 일은 전혀 신기할 것도 없다. 원래 검계는 양반을 죽이
고 부녀를 겁간하자는 모임이었으니까.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죽었다. 게다가 ‘억울한’ 액례 한 명만 빼면 죽은 녀석
들은 인면수심의 검계 패거리. 천 갈래로 찢어 죽인들 누가 안타까워하랴. 수
사 당국에게 있어 이보다 편안하고 깔끔한 수사 종결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고로 양지의 일은 이제 마무리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목격자인 시준
은 앞으로 몇 번 불려가서 조사 정돈 받아야 하겠으나, 정약용의 제자이자 성
균관에서 선비들 사이에 얼굴이 알려진 시준을 다짜고짜 고문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시준은 음지의 일에 다시 눈을 돌렸다.
기랑을 데리고 가는 그의 다음 목적지는 의주 만상들이 머무르고 있는 객줏집
이었다. 박득출이 그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어디를 그리 바쁘게 돌아다니는가?”
“저 의주천 팔 데 알아보고 있었죠, 뭐.”
박득출이 좀 유쾌해 보이기는 해도 그 역시 의주 만상이었다. 그는 깊고 교활
하게 웃었다.
“어제 아침에 우리 방에 모신 손님이 바로 장쾌(중개인)이시구먼?”
“암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올시다.”
환자가 있으니 방 하나를 깨끗이 치워달라는 요청은 객주에게 어려운 일이 아
니었다. 의주천과 옥양목을 몇 필이나 나누어주자 객주는 아예 외따로 떨어진
문간방 하나를 통째로 내주었다. 그녀 역시 이 한양바닥에서 객주까지 한 수
완인 만큼 일을 대강 짐작한 것도 이유가 되었다.
그래서 시준은 다른 사람의 방해 없이 그저께의 검계 대장을 만날 수 있게 되
었다.
박득출과 함께 방 안에 들어선 시준은 누더기가 된 대장 양옆에서 작대기를
들고 있는 청년대원 두 명을 보고 물었다.
“아직도 안 말했소?”
“아이고, 서장관 오셨습니까. 저희도 서울 검계 소문은 들었습니다마는 이놈
이 아주 독살스럽네요.”
구사대원들은 본래 차형기나 홍총각이면 몰라도 시준과는 그다지 접점이 없었
다. 그러나 대장을 날라 오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충 짐작하고
시준을 조금 더 존중하게 되었다.
청년은 무안하다는 듯이 막대기로 대장의 턱을 쿡 찍어 들어올렸다. 거기에는
재갈이 물려 있었다.
“자기 팔목을 물어뜯으려고 하기에 동여매 놓았습니다. 얘기 들으실 양이면
좀 풀어줄깝쇼? 갈빗대가 다 부서졌으니 비명은 못 지를 겝니다.”
심문하려고 하면 오히려 칼로 자기 가슴이나 팔을 베며 더욱 표독스럽게 굴었
다는 – 도대체 체포된 녀석이 왜 칼을 가지고 있는지는 둘째치더라도 – 검계
의 위명은 죽지 않은 모양이다.
시준도 난감했다. 더 이상 때리거나 하면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시준보다
더 오래된 의주 사람인 박득출은 혀를 끌끌 찼다.
“너희들 아직 멀었구나. 팔을 물어뜯는다고 얌전히 천으로 싸매 주었다는 말
이냐? 내가 뭐라고 일렀느냐. 타향에서 깔보이면 그걸로 끝이다. 석정(石丁)
이 너는 저어기 잡철전(雜鐵廛, 야장들이 철물을 직접 판매하는 소매전) 가서
쇠집게랑…… 큰 대못이나 한 줌 얻어오너라. 모지리(毛知里) 너는 짐에서 그
영길리초(英吉利燭) 가져오고.”
얼마 안 가 청년들이 돌아오자 박득출은 대장간에서 쇠 두드릴 때 쓰는 큰 집
게를 대장의 주둥이에 들이대었다.
“어디, 물어뜯는 거 가지고 아프기나 하겠어? 그따위 빙퉁그러진 애새끼 같은
짓거리는 서울에서나 통했지 평안도 어르신들 앞에서도 통하는지 보자고.”
우지직!
사람의 생니가 마취 따위 전혀 없이 그냥 뽑혀 나왔다. 세심한 손길은 당연히
아니라서 조각나고 부러진 이뿌리가 신경을 찔러대는 격통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시준마저 얼굴을 찡그릴 정도였다.
재갈 사이로 핏줄기와 함께 구슬픈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대장의 눈꺼풀이 파
들파들 떨었다. 박득출은 상냥하게 말했다.
“너도 죽고 싶진 않으니 혀까지 깨물지는 않은 것이렷다? 그런데 상관없어.
혀 끊고 싶으면 해도 돼. 내가 얼간이 놈들 혓바닥 한두 번 뽑아 본 줄 아느
냐. 더럽게 아프기만 하지 웬만하면 안 죽는다. 지금도 의주에서 멀쩡히 살아
시궁창 기어다니면서 빌어먹고 있지. 어디, 네가 못 하겠으면 내가 해주랴?”
대장의 눈에 처음으로 독기가 아닌 공포가 어리기 시작했다. 시준은 어디쯤에
서 박득출을 말려야 할지 고민에 들어갔다.
액례가 하급 관헌이라 하나, 액정서의 관속이 죽은 사건은 사실 역사 지식이
없는 시준의 예상보다 훨씬 큰일이었다.
치안을 맡은 금례나 포졸, 내사 공안기관인 의금부의 나졸이라면 직무와 관련
하여 도성의 여러 경제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
러나 액례는 원칙적으로 어디까지나 잡무 심부름이나 소소한 비품 담당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 시기 관속 조직폭력 업계에서 항상 수위를 다투었다. 왜냐
하면, 이들이 잡무 담당이되 왕의 잡무 담당이기 때문이었다.
이들을 눈엣가시로 여기던 포교나 의금부 나장들은 행패부리는 액례를 심심찮
게 잡아다 법에 의거하여 혼쭐내었다. 하지만 영조는 왕부에 속한 사람을 왕
에게 아뢰지 않고 매질했다 하여 오히려 책임자를 처벌했다.
일개 관속을 왕에게 보고하고 처벌하라는 얘기는 처벌하지 말라는 얘기나 다
름없다. 액례들은 왕인(王人)이라 자처하며 더 오만방자하게 날뛰었으며 이는
사실상 조선이 망할 때까지 해결되지 않는다.
정조와 순조 역시 이러한 태도를 변함없이 고수했다. 따라서 순조 이공은 액
례가 검계 무리에 의해 살해당하고, 검계들은 그 값을 다투다 서로 찔러 죽였
다는 보고에 꽤 놀랐다.
“영묘조 때에는 장대장(張大將, 장붕익) 석 자만 들어도 그 완악한 무리가 서
로 조심하여 숨죽이기에 바빴다고 하는데, 실로 풍속과 교화가 흐트러졌다 아
니할 수 없도다. 이는 선대왕들의 덕에 미치지 못하는 나의 탓이다.”
너도 너지만 바로 그 너희 증조부가 이 사달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얘기를 아
무도 할 수 없는 신하들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의례적으로 검계의 소탕을 주
청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공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생각에 신하들은 문제의 뿌리를 보지 못
하고 있었다. 이럴 때 지혜로운 군주인 자신이 밝은 하교를 내려 줘야 마땅했다.
“대체로 그런 무리가 흉악해지는 근본은 돈이다. 강상(江商, 여기서는 경강상
인)이며 공시인(貢市人, 조정 관납 상인과 시전 상인)들은 하찮은 돈 몇 푼이
제 뜻대로 안 되면 무뢰배를 사서 사람을 폭행하는 일이 옛날부터 많았다. 발
본색원이라. 뿌리를 자르지 않으면 잡풀과 오훼(烏喙, 독초)는 계속 돋아나는
법. 지금 장대장의 뒤를 이어 이 일을 맡을 수 있는 자로서 오직 우포장(右捕
將, 우포도대장)이 있다.”
물론 사건이 일어난 곳이 도성 서쪽이니 우포장이 담당자이긴 하다. 하지만
신하들은 지금 우포도대장 이요헌(李堯憲)의 출신 성분에 더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이요헌은 현대에는 양서순무사(兩西巡撫使)로서 홍경래의 난을 진압한 명장으
로 알려져 있다. 아직 난이 일어나지 않은 지금도 그는 우수한 경력의 무장이
었다.
그러나 지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요헌이 왕실의 먼 말예이며 또한 충헌
공 박준원의 사위로서 왕의 이모부가 된다는 사실이다. 무과 출신인데도 순조
가 즉위하자마자 좌우 승지를 역임한 것은 그의 가계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김조순은 왕의 뜻을 알아챘다. 그간 검계의 뿌리를 뽑지 못한 것은 조신들이
멍청해서가 아니다. 검계의 뿌리는 서울의 대상부고들이요, 대상부고의 뒷배
는 조정의 중신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하의 장붕익조차 그냥 겉으로 드러난 검계 무리만을 소탕할 수밖에
없었다. 잘해 봐야 그와 직접 연결된 상인들을 숙청하는 정도가 한계였다. 미
래의 일이긴 하나, 1830년대 쌀 폭동 때도 조정은 일의 원인을 뻔히 알면서
싸전 장사꾼들이나 잡아 벌해야 했다.
하지만 이요헌이 나선다면 얘기가 다르다. 그는 무신답게 특별히 당론에 구애
되는 자는 아니었으니 김조순보다는 왕에게 가까울 수밖에 없고, 결코 무능하
지도 않다.
중신들 눈치 안 봐도 되는 이요헌은 철저하게 뿌리를 캘 것이다. 그리고 어느
뿌리를 캘 일인지는 왕에게 달려 있다. 김조순은 영길리국 건에서 힘써 조력
한 자신의 공도 모르고 이리 틈만 나면 박대하는 사위에게 울분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김조순에게 그 정도 자제력도 없었으면 세도 정치는 꿈도 못 꾸었을
것이다. 김조순은 차분하게 아뢰었다.
“영묘조부터 세밑이면 평시제조(平市提調)며 공시당상(貢市堂上) 등에게 명하
여 공시인에게 폐단을 묻고 그들의 간청을 들어 나라의 지극한 은혜를 내린
것이 근래의 관례가 되었습니다. 소위 검계라 하는 자들의 패악함은 주벌(誅
罰)이 마땅하나, 군병이 도성을 휩쓸게 되면 점포가 부서지고 사람이 억울하
게 매 맞으며 끌려올 것인데 열성조가 시민(市民, 여기서는 시장 백성들)을
어루만졌던 뜻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공시당상을 겸하고 있는 판의금부사 서영보(徐榮輔)가 속으로만 기겁했다. 김
조순이 자기에게 공을 넘긴 것이다.
서영보는 원래 지금 평안 감사를 하고 있어야 하지만, 영길리국 때문에 골치
아플까 봐 이서구를 대신 보내버리고 안심하던 중 최근에 경험자라는 이유로
재차 공시당상에 임명되었다.
고위직이 맡는 곳이긴 하나 시장을 감독하는 임무상 선비들이 썩 좋아하긴 힘
들다.
하지만 별 의욕 없는 보직이라 하더라도 여기에서는 김조순을 도와야 했다.
서영보는 집안이 소론으로 비록 김조순의 직속 계파라 할 수는 없었으나, 어
차피 지금 소론은 없는 거나 다름없고 노론과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솔직히 지금 왕의 의도가 너무 잘 보였다. 관속 따위 하나 죽은 것
으로 트집 잡아 거치적대는 신하들을 쓸어버리겠다는 얘긴데, 선비들에 대한
존중으로 보면 해도 너무한 일이다.
서영보는 8대 연속 대과 급제, 3대 연속 대제학이라는 영광에 빛나는 조선 최
고의 문사 집안 대구 서씨 출신이며 그 자신도 정약용을 제치고 과거에서 장
원을 한 천재다. 격하게 돌아간 그의 두뇌는 매끄러운 말을 금세 토해냈다.
“왕실과 조정에서 쓰는 물건이 모두 공시인을 시켜 사들이는 것인데, 무력으
로 압제하면 그들은 틀림없이 도망하여 흩어질 것이니 나라를 경영하는 도리
에 비추어 미편합니다. 청컨대 우선 검계의 무리를 단숨에 잡아들여 엄히 국
문하시되 그 이름이 나오는 자들만을 필벌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이요헌이 바로 검계와 서울 시전을 다 때려 부수면 아무것도 안 남지만, 먼저
검계를 잡아들여 수사한 결과가 왕에게 올라가려면 여러 사람을, 특히 비변사
를 거쳐야 한다. 그러면 김조순의 지휘하에 비변사 당상들이 적당히 보고를
만질 수가 있다.
하지만 이공이 바로 그 말을 기다렸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이공은 짐짓 성난
기색을 띠었다.
“그렇지 않아도 공시인들은 원래가 천한 장사치들이라. 어루만져 주는 세월이
오래 지나니 분수를 새까맣게 잊어버려, 매번 하는 말이라고는 돈을 더 달라
느니 난전을 다시 금하게 해 달라느니 그 방자함이 끝이 없었다. 그들이 여러
잡동사니 심부름을 한다고 하여 죄를 그냥 넘어가는 것은 고식(姑息)의 계책
으로 후환을 기르는 일이다.”
김조순은 패배를 직감했다. 도덕국가 조선에서는 왕의 저 말이 정론이라는 것
은 분명했다. 도대체 내일부터 조정에서 먹이나 벼루, 땔감이며 그릇이 모자
라면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물며 왕의 근시(近侍)가 도성 한가운데에서 생선처럼 토막이 났는데 그냥
덮어두자는 말은 해괴하기까지 하다. 영안부원군과 판의금부사는 내 말을 깊
이 생각하여 근신하고, 우포장에게 어서 입시하라 이르라!”
물론 이공 역시 공시인들이 사라지면 자기부터가 불편할 것임은 안다. 하지만
역사에 이름을 남길 명군의 길에 그런 사소하고도 잠시의 불편함을 거리낄 수
는 없다. 요(堯)는 허름한 옷과 거친 밥을 마다하지 않았고 우(禹)는 일하느
라 손이 검게 일그러질 지경이었다지 않은가.
이는 모두 왕의 원대한 계획이었다.
지금 평안도에 흠차대신이 왔는데도 장자도에 영국 배가 계속 드나들자 복장
안은 충격을 받았다. 그의 눈에 조선은 이제 정말 방백의 지위를 포기하고 싶
은 것처럼 보였다.
물론 평양 가 있는 좌의정 김재찬은 복장안이 정말 황제에게 그런 파국적 보
고를 올리지 못하도록 열심히 기름칠 중이었다. 어딜 가나 아랫사람들만 불쌍
하다.
김재찬은 ‘사실 우리 왕은 정말 조칙이 내려올 때까지 막으려고 했다. 그런데
영길리인들이 그냥 무식하게 밀고 들어오는데 어떡하냐? 너희가 군함 보내 줄
거냐?’는 말만 반복했다.
이공이 바라는 대로의 대응이었다.
이공은 자기 위에 황제가 있다는 사실을 잠깐 잊을 수 있게 되었다. 조선 국
왕 누구도 이와 같은 독립을 누리지 못했다.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서 그런지, 위대한 정책이 자꾸자꾸 머리에 떠올랐다.
마치 태조의 영령이라도 임한 것 같았다.
이공은 이 기회에 독점의 폐단을 온몸으로 보이던 시전 상인을 해체한 다음
아예 영국과 연결된 만상을 심어 견제 구도를 만들자는 장대한 구상을 한 것
이다. 물론 그것을 조율하는 왕실은 엄청난 비자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 그
신호탄은 이번에 몰수할 시전 상인들의 돈이다.
시준이 통무아문을 이용할 생각을 한 것처럼 이공도 통무아문을 미끼로 만상
을 이용할 생각을 한 셈이다.
이공이 즉흥적으로 시전 상인들 얘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이공은 고상한 문
인들이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틈으로 정치세력을 확장했다. 자기 손아귀에
있는 액정서, 내수사 등을 겨쳐 뻗은 가느다란 뿌리는 그 전부터 암중모색하
며 도성 여기저기에 손을 두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사소한 의사소통의 오해로 액례 박동윤을 제때 구해내지 못한 것
은 어쩔 수 없다. 원래 큰일을 위해서는 희생이 따르는 법. 이공에게는 수염
한 가닥이 뽑힌 정도의 피해도 되지 않는다.
이제 서울 시장은 모두 뒤집힐 것이다. 이공은 전례에 구애받지 않고 서양인
에게 개항한 군주인 자신이야말로, 더벅머리 선비들의 단견을 감수하고라도
모두가 꺼리던 장사판에 손을 대어 존왕의 기치를 높이고 나라와 백성을 구할
유일한 현군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뭐, 대충 이런 게 위의 뜻일세. 알 만하겠지?”
시준은 자기 앞에서 곰방대를 뻑뻑 빨고 있는 노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의 이름은 정대운(鄭大云)으로 서울의 야장과 잡철장을 꽉 잡고 있는 사
람이라 하였다.
실제로 그는 선대왕 때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격쟁을 제기하여 시전 상인들이
독점하던 철물의 권리를 빼앗아 온 사람이다. 거의 100년간 매번 소송에서 패
배하며 왕실의 시전 비호에 눈물을 삼켜야 했던 야장들은 드디어 소매점을 열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서울의 소매 야장들은 시전 상인과 대척점에 있는 위치였다.
시준도 여러 암시로 이루어진 설명을 듣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왕이 서울 시
전을 박살 낸 다음 돈을 우려내기로 결심했으며, 그것으로 반사이익을 보는
야장들이 송상과 손잡고 액례 박동윤과 접촉했다가 이 사건이 터진 것이다.
강력한 왕권에 예외 없이 필요한 것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정예 친위군이
고 나머지 하나는 그것을 뒷받침할 막대한 비자금이다. 시준은 즉위 8년 만에
참 일찍도 알았다고 생각했다.
“검계를 보낸 시전 상인들은 그 죗값을 치러야 마땅하지요. 송상과 경상의 여
러 명망 높은 좌주(座主, 길드의 대표자)들께서 그 일을 맡아 주신다면 실로
옳아 보이는 일이오이다.”
“우리끼리니까 편하게 얘기하지. 이런 귀한 선물도 가져다주었는데 내가 의주
사람들과 버성길 게 무에 있겠는가. 핫핫.”
정대운은 그러면서 곰방대로 가게 한편에 있는 관짝을 가리켜 보았다.
관의 널리 알려진 용도와 다르게 그 관에 누운 사람은 살아 있었다. 허나 살
아 있기만 할 뿐이었다. 이빨 대부분이 없고 왼팔 아랫부분은 산 채로 썩을
지경인 데다 몸 곳곳에 녹은 양초가 못으로 박혀 있기 때문에 시준은 별로 다
시 열어서 확인하고 싶진 않았다.
어쨌든 그 검계 대장, 덕순(德順)이라 하는 참 안 어울리는 이름의 – 그 이름
듣는 데도 고생 한번 작히 하였다 – 깡패 덕분에 이곳도 알아내었으니 박득출
을 탓할 마음까지는 안 들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정대운도 만상에게 빚을 졌다는 점이다.
강호의 도리대로라면 그들이 직접 덕순을 처단했어야 한다. 따라서 지금 정대
운의 말은 너희가 원하는 대가를 직설적으로 얘기해 보라는 뜻. 시준은 코로
길게 숨을 내쉬었다.
“좋소이다. 만상은 시전 좌판에 욕심내지는 않겠소. 잡철장은 성대하게 열 수
있겠고 경상과 송상도 직접 쌀과 어물이며 포목을 팔 수 있겠지. 우리는 건드
리지 않으리다. 대신 노인장께서 잘 말씀하여 도고(도매상)의 빈자리 중 몇
개만 주시오. 우리는 영길리국에서 들여온 진귀한 물화가 있으니 필히 도움이
될 겁니다.”
작가의 말
1. 장붕익은 검계와의 전쟁을 벌여 승리하고, 80세 노인 때도 집에 침입한 검계를 검술로 쫓아버린 그 전설적 포도대장 장붕익 맞습니다. 실제로 이 시기 검계의 대부이자 천하 무서운게 없었던 표철주(철주는 이름이 아니라 쇠지팡이라는 뜻입니다. 표 더 아이언스태프 같은 별칭입니다.)가 깨갱하고 쫓겨나기도 했죠.
2. 이 시기 서울 치안의 막장성은 영정조 시기에 왕들이 키워준 면도 있습니다. 본문에 나온 액례 건도 그렇거니와, 또 다른 예시로 위의 표철주는 왕세제 시절 영조와 친해서;;; 죽음을 면했죠. 도망가도록 놔주었고, 늙어서 서울 왔을 때도 그냥 눈감아 주었습니다.
3. 모지리는 멸칭이 아니라 주로 조선 초중기까지 절찬리에 사용되었던 것처럼 보이는 노비의 이름입니다.(멸칭에서 나온 게 그냥 이름이 되었을 법도 합니다) 김모지리, 최모지리 등 각종 모지리들이 범죄 저지르고 형 받은 기록이 있습니다.
4. 덕순은 원 역사에서 작중 시점으로 몇 년 뒤 윗사람을 죽인 죄로 처형되는 노비의 이름입니다만 검계라는 기록은 없습니다.
5. 이때 서울의 야장들은 금난전권과 여러 전통적 시전 상인의 이권에 의해 자기들이 철물을 만들고도 직접 판매하진 못하고 있었습니다. 거의 한 세기 가까운 격쟁, 소송 등등 오만가지 방법을 씁니다만 왕실은 꿋꿋이 시전 상인들을 보호합니다. 이게 해소된 게 정조 말기죠. 사실 그 전부터 몰래몰래 점포 열기도 하기는 했습니다.
15. 골든 트라이앵글(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