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14. Gangs of seoul(3)
흉배 수놓은 관복 입고 사모관대 정히 쓴 채 묘당에 출입하는 고위 조신들의
항쟁은 현대에도 누구에게나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은 붕당, 사화, 참소, 고
발, 탄핵 등 다종다양한 전략전술을 구사하여 수 세기 동안 근사한 정치투쟁
을 벌여 왔다.
반면 액례(掖隷, 액정서(掖庭署)의 이속), 금례(禁隷, 형조 하급 경찰인 금리
(禁吏)의 보조원), 별장, 나장 등 사실상 서울의 사무를 움직이던 아랫사람들
의 세계는 조금 달랐다.
그들은 배신이나 중립자가 잦았던 조선의 붕당정치보다 더 확고한 의리를 지
켰으며, 그 의리의 표현은 일개 붓장난보다 직접적이고 강렬했다.
안 그래도 관속들은 싸울 일이 많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적어도 조정의 문관
들보다는 합리적이었다.
조선의 관청은 명목상으로야 업무에 필요한 물건을 나라에서 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컴퓨터도 자기가 알아서 구해 와야 하는 북한 공무원들처럼 각
자도생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지방에서 올라오는 땔감, 곡식, 돈, 기녀(가장 중요하다. 조선의 하급
관속들은 대규모 유흥 알선 산업의 주체였다) 등의 자원을 차지하는 데에는
따로 원칙이 없었다. 결국 주먹 센 놈이 임자였다.
그 과정에서 다른 소속의 관원들이 이쪽 사람을 구타하거나 하면 수십 명은
우스울 무리가 뭉쳐서 몰려가서라도 반드시 보복했다. 그런 때는 도성 규찰의
엄중함이고 구중궁궐의 지엄함이고 개뼈다귀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
19세기 초 한양 도성에서는 다른 사람도 아닌 관속 자신들에 의한 납치, 린
치, 살인, 폭행이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꼭 관헌들끼리만 싸운 건 아니고 도
성의 암흑경제 전반에 이들은 골고루 개입했다.
다시 말해 한성부 하급 관속들은 현대 조직폭력배와 유사한 정도가 아니라 거
의 똑같았다.
그러므로 조선의 실무 관청을 현대인이 상상해 보려면 동사무소라던가 청사
사무실은 별로 적합하지 않다. 오히려 조직폭력배 사무실이 가장 흡사하다.
다른 점은 조폭과 달리 진짜 공권력이 그들에게 있다는 것뿐이다. 19세기 초
한성부 사람들은 이를테면 조직폭력배가 검사, 경찰서장, 동장 등을 하고 있
는 사회에서 살았던 셈이다.
그런 사정은 서울에 오래 산 김시택과 몇 달 정도 산 시준 모두 잘 알고 있으
므로 아무도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시준과 함께 칠패시장 쪽으로 걸어가던 김시택은 서울 암흑가의 세력구도에
대해 설명하는 대신 이제 곧 만날 사람에 대해 설명했다.
“영묘조 때 나라가 오랫동안 술을 금했지. 그래서 도성에 물장수들이 없어졌
는데, 이제 경강의 상인들 중에는 거기에 다시 뛰어든 자들이 많네. 그러려면
액례나 금례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는 없지. 그 액례 중 하나가 내 오래된
지우일세.”
마찬가지로 신디케이트 출신이고 다른 지식도 있는 시준은 그 말이 무엇을 의
미하는지 간단히 깨달았다.
금주령이 지켜진 나라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김시택은 일부러 영조 때 주류
산업이 위축되었다는 듯이 말했지만 실상은 그 반대일 것이다.
영조 자신도 신민들에게는 금주령 내려놓고서, 소주의 이름을 오미자차라고
바꿔 놓고 혼자 먹었는데 아랫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알 카포네가 등장하기
100년도 훨씬 더 전, 한성의 뒷세계는 오히려 금주령 때문에 번성했다.
경강 상인들은 이 시기 유행하던 각종 퇴폐적 잔치에 술을 대고, 경아전과 녹
사들은 눈감아주거나 중간 유통에 뛰어들어 치부하였으며, 검계는 직접 궂은
일을 맡거나 감히 자기 술을 사지 않는 자들을 겁박하여 질서를 유지했다.
한성부는 반란 위협 때문에 야간통행을 엄격히 금지해 왔다. 그러나 이건 거
꾸로 말해 밤에는 무슨 짓을 하든 볼 사람이 드물다는 뜻도 된다. 그래서 이
들의 사업은 주로 밤에 이루어졌다.
물론 걸리면 무사히 지나가지는 못한다. 공식적으로 통금 위반의 처벌은 신분
고하에 따른 차별이 없었을 정도였다. 신분제 사회에서 이것은 대단히 중대한
특징이다.
허나 역사가 증명하는바 강력한 치안권력이 철저한 치안을 보장한 적은 한 번
도 없다.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치안 담당자들도 강력한 권력이 주어
지면 그 즉시 부패하기 때문이다.
김시택이 지금 만나러 간다는 액례는 치안과 직접 연관된 직종은 아니지만 시
준은 그 과정이 눈에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액례는 액정서의 관속이며 액정서는 주로 왕실에 필요한 여러 잡다한 물건들
을 공급하고 건물을 관리하며 뜰을 수선하는 등의 잡무를 보는 관청이다. 그
책임을 체아직 환관들이 맡는 곳이라 경원시당하기는 하지만 이래 봬도 고려
조부터 내려오는 유서 깊은 부서다.
높으신 분들이 야밤에 갑자기 곶감이 먹고 싶다거나 새벽 별빛을 보고 시를
짓고 싶어졌다거나 하는 일로 밤에도 나올 일이 잦았던 액례들은 물금첩(勿禁
帖, 야간 통행증)에 대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시준도 송상과의 인삼 건 때 이용한 황첩의 부패가 그러했듯, 이들도 물금첩
을 반납하지 않거나 베껴 위조해서 자유로운 유통망을 확보했으리라.
관인은 물론 옥새마저 막도장 파듯 제멋대로 찍어내는 자들이 조선의 아전들
이니 놀랄 일도 아니다. 그래서 시준은 그에 대해 개탄하는 대신 술을 무엇으
로 만드는지 떠올려 보았다.
“과연 술 빚는 데 경상이 빠질 수는 없겠군요. 곡식이 그들에게 있으니.”
“그래. 지금의 사세가 한 번 놀음판을 벌리면 열 집의 재산이 하룻밤에 날아
갈 정도로 성한데 그래서 액례들도 돈을 많이 모았지. 장사판의 일을 다 꿰뚫
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근래에는 송상과 목면 거래도 텄다 자랑하더구먼. 내가
소개한다면 의주의 물건도 충분히 사 줄 수 있을 거야.”
목면 얘기는 김시택도 영길리인들이 들여왔다는 상목을 알기 때문에 한 소리
였다. 시준은 꽤나 협조적인 김시택의 태도에 만족했다.
‘흠. 놀음판이라.’
의주도 큰 동네이긴 하지만 서울에 비하면 목가적이라 할 수 있다. 시준도 도
성에 오고 나서야 서울에서 가지각색으로 벌어지는 광란의 파티와 도박판을
알게 되었다. 여기만 보면 조선이 왜 가난한 나라인지 의심될 지경이었다.
‘경강 상인의 영역인 술을 건드릴 생각은 없다. 관청과 경상에게 한꺼번에 두
들겨 맞게 될 테니까. 상관없어. 다른 걸 팔면 되지.’
놀음판에 술이 많이 팔리는 이유는 현재 조선에서 향정신성 약물이라고 할 만
한 게 술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학 경험자답게 시준은 각종 파티용 약
물에 조예가 깊었으며, 조선 사람들에게 색다른 쾌락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말하거나 제안할 단계가 아니다. 시준이 지금 가진 마
약은 아편뿐인데 아편은 파티에는 적합하지 않다. 일단은 정상적인 상품으로
유통을 뚫어야 한다. 그래서 시준은 간단히 말했다.
“나리의 인덕만을 크게 믿겠습니다.”
곧 그들은 칠패시장 뒤쪽에 있는 액례 박동윤(朴東允)의 집 앞까지 오게 되었다.
이 박동윤은 평소 성질이 거칠고 흉폭하기로 유명했으며, 지금은 시준도 모르
지만 바로 내년에 부리는 사람을 때려죽인 죄로 처벌받게 된다. 윗사람이 아
니라 아랫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사형까지는 아니고 유배 정도였다.
그리고 조폭과 다름없는 한성부 하급 관속의 풍토상 그런 박동윤이 꽤 많은
돈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시준이 김시택을 잡은 것은 바로 이런 사람을 찾기 위해서였다. 역관과 교우
를 트고 있다면 반드시 역관들의 대청 밀무역에 관여하는 사람일 테니 말이다.
조선인들의 외국에 대한 무지와 두려움은 크다. 한양 성저십리에서 평생 벗어
나지 않은 채 쌀자루나 나르던 사람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영길리국 건에 대
해서 대화가 안 된다.
그런저런 얘기를 하며 걷자 해도 이제 거의 완전히 기울고 김시택과 시준, 기
랑도 박동윤의 집에 다다랐다.
지우라더니 정말 꽤 친한 모양이었다. 김시택은 싸리문을 앞에서 당당하게 소
리쳤다.
“박가 어디 갔는가? 나 왔네!”
하지만 그 작지 않은 집에서는 아무도 나와 보지 않았다. 김시택은 고개를 갸
웃했다.
“아까 사람 보내 보니 오늘은 등청하지 않는 날이라 하였는데…….”
“그사이 어디 나갔을 수도 있겠군요.”
“그런가 보이. 나와는 허물없는 사이니 안에 들어가서 기다려도 되겠지. 하지
만 만나게 되거든 조심하게. 말보다 손부터 먼저 나가는 친구거든. 핫핫! 이
친구 발길질에 갈빗대며 등골이 부러져 나간 녀석만도 한둘이 아니야.”
김시택은 그러면서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가 마당을 몇 걸음
걸었을 때, 김시택은 멈춰서야 했다. 갑자기 등을 보인 채 앞을 막아선 기랑
때문이었다.
“뭐냐?”
기랑을 시준의 소지품 중 하나 정도로 인식하고 있던 김시택은 갑자기 드러난
그의 존재감에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하지만 기랑은 등을 보인 채 낮게 대답
할 뿐이었다.
“피 냄새.”
말이 길지도 않은데다 목소리까지 작아서 김시택과 시준은 둘 다 그 말을 이
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꽤나 어두워진 마당에 그림자 하나가 더 떨어졌기 때문이다. 거기서 나온 것
은 비척대는 사내 하나였다.
다리는 건들거리며 꺾어지고 숨은 고르지 않았다. 얼른 보자면 술에 취한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준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는 술에 취한 것이 아니었다.
취했다면, 피에 취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준은 급히 김시택을 돌아보았으나 김시택은 고개를 격하게 가로저으며 한
걸음 물러났다. 그자가 박동윤이 아니라는 점은 확실했다.
달빛에 드러난 그 사내의 몸은 피투성이였다. 사람 하나를 들어올려 갈가리
찢고 그 피를 뒤집어썼다고 말하면 어울릴 것 같았다. 그 사내는 여전히 불량
한 태도로 세 사람을 쓱 둘러보더니 침을 뱉었다.
“야. 이 개새끼들이 진짜 뒈질라고. 망 보던 닭똥이 새끼 어디 갔어?”
구름이 완전히 걷힌 모양이다. 남보다 눈이 더 좋은 시준은 그 사내의 벗은
웃통 곳곳에 끔찍하게 새겨진 흉터까지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에
들린 커다란 우도(牛刀) 역시도.
시준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거 집을 잘못 들어왔소이다. 하하. 이 집 주인장이 개라도 한 마리 잡느라
바쁘신 모양인데 그럼 이제 우리는 이만 갈까요?”
시준은 그러면서 기랑과 김시택을 잡아끌었다. 그러자 그 사내도 벌쭉 웃었
다. 시준이 마주 미소지어 주려 했을 때, 기랑의 바로 앞에 칼이 날아와 박혔다.
콰콱! 기랑은 지금 해보자는 거냐는 눈으로 사내를 마주 쏘아보았다. 사내는
여전히 비쭉하게 뒤튼 입꼬리를 교정하지 않은 채 말했다.
“이것도 인연인데 잡은 개고기 맛이나 보고 가지.”
김시택은 대단한 용기를 냈다.
“너, 너희들이 미쳤느냐! 여기는 도성 한복판이고 관속의 집이다! 너희가 지
금 감히 나라의 관헌을 해하였다는 말이냐!”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야. 너 뭐냐? 개성 패거리냐? 장사 얘기 하려고 왔
어? 안 됐다. 이미 이 새끼는 뒈졌거든. 그러게 누울 자리 보고 발을 뻗어야
지 돈 된다고 화냥년 서방질 하듯이 아무 데서나 물건 떼다 돌리니까 이 꼴이
나는 거야.”
“이런 무도한…… 컥!”
그 사내가 자기 범행 동기를 친절히 설명해 주는 수다스러운 악당 연기를 한
이유가 있었다. 앞의 살인자에게 눈 튀어나오게 집중했던 시준이나 기랑이 미
처 알아채기도 전에, 김시택은 뒤에서 뻗어 나온 장대를 맞고 쓰러졌다.
목적을 달성한 사내는 김시택을 쓰러뜨린 자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야, 닭똥이 이 병신 같은 새끼야. 지금 일 다 어그러지면 어찌하려고 자리를
비운 거냐? 넌 나중에 죽었어.”
“너, 너무 그러지 마십쇼. 형님. 속이 부글부글 끓는데 어찌합니까. 제때 돌
아오긴 했잖수.”
그들이 들어온 문으로 황급히 뛰쳐 들어온 것은 아까 그 사내가 찾았던 닭똥
이였다. 사내는 닭똥이에게 칼을 주워오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닭똥이는 기랑
의 앞에 떨어진 칼을 뽑으면서 기랑을 쓱 한번 쳐다보았다.
“헤헤. 저것들은 팔아치우면 좀 되겠는데요. 앞에 있는 건 계집인지 사내인지
요상한데 그거야 끌고 가서 하룻밤 작히 돌려 보면 알 것이고. 아, 내가 앞에
서 있다가 그냥 쫓아 보냈으면 이 벌이도 없을 뻔했잖습니까.”
“지랄도 가지가지로 한다. 그 혓바닥 뽑아버리기 전에 주둥아리 닥쳐라.”
닭똥이가 퇴로를 막지 않고 들어온 이유가 있었다. 이미 그 말고도 한 서너
명의 남자들이 싸리문을 막거나 집 뒤 부엌에서 걸어나오면서 시준과 기랑을
포위했다.
닭똥이는 불법 사창가에 팔아치울 두 명분의 돈을 자기가 얻었다는 공을 자랑
하고 싶었는지, 얼른 돌아오지 않고 기랑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하, 계집애 냄새가 나는데 이거 수상하네. 형님. 이건 나 먼저 맛을 좀 봐도
되겠소? 아무래도…….”
닭똥이는 사내의 우도를 뒤집어 들더니 기랑에게 들이대었다. 이미 사방이 어
두워서, 칼끝으로 턱을 치켜올려 자세히 보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게 닭똥이의 마지막 동작이 되었다.
닭똥이가 무릎을 꿇을 때까지만 해도 우두머리는 닭똥이가 저 녀석 바지라도
벗기려나 하는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닭똥이는 그대로 쓰러졌다. 그
리고 기랑은 닭똥이의 목을 단번에 꿰뚫어버린 비수를 뽑아내어 시체의 옷에
피를 닦았다.
“!!”
우두머리 사내는 놀라서 다른 칼을 뽑았다. 어디서 났는지 몰라도 진짜 군용
삼척검이었다. 하기야 지금 시대의 조선 군관은 칼 무겁다고 칼날 없이 자루
만 칼집에 매달아 차고 다니니 쓸모없는 물건 얻어오기는 어렵지 않았을 터이다.
그리고 시준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 진짜……!”
시준은 사정을 짐작할 만했다. 아마 박동윤이 모종의 이유로 자기와 거래를
끊고 송상과 연결한 것에 앙심을 품고, 아마도 시전 상인들이 검계를 써서 자
객을 보낸 것이다.
송상과 직접 연결한다는 것은 시전 상인들을 무시하고 이익을 빼앗는 처사다.
영조 때 이미 고발이 오고간 사안이고, 음지에서는 고발보다 더 편리한 이런
수단이 성행했다.
현대의 상식대로라면 살인자가 앞에 있는 위급 상황이니 정상 참작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시준이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조선에서 옳고 그름과
실제 판결은 전혀 상관이 없다.
관에 끌려가는 대로 조선 고문 풀코스를 체험한 뒤 부랑패들의 싸움이라고 처
리하여 관련자 전부 처형. 싹 입 씻은 배후의 상인도 좋고 해당 상인에게 뇌
물 받았을 한성부 관리들도 좋다.
그래서 시준은 처음부터 도망치려 했지만 멍청한 두 동료 때문에 다 틀렸다.
결국 이제 수단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기랑은 그런 시준의 마음을 짐작이
라도 하듯이 태연하게 되물었다.
“다 죽여?”
시준은 그 제안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것이 슬펐다. 현대 지식을 가진 문명인
으로서 적어도 조선 사람들보다는 더 문화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하건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살인멸구 이외에 답이 없다.
기절한 김시택이 깨어나기 전에 전부 죽이고 도망친다. 시준은 조선 수사기관
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증인만 없다면 안 잡히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잠깐, 증인?’
그 순간 시준은 더 좋은 방법을 떠올렸다. 시준은 앞에 놓인 우도를 집어들고
말했다. 그러고는 대장을 가리켰다.
“아니, 쟤만 빼놓고 다 죽여. 쟤는 내가 맡지.”
“알았어.”
우두머리 사내는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놀랐다고는 하지만 고작 열너댓 살짜
리 아이 둘이서 사람 죽이고 불 지르기로는 이골이 난 검계 패거리를 상대하
려 하다니 말이다.
그는 시대를 초월한 양아치들 특유의 동작을 취했다. 대담하게도 전투 중에
다른 곳을 보면서 피식 헛웃음을 뱉는 그 제스처는 시준에게도 친숙한 것이었다.
그래서 시준은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는 사내의 빈틈을 노려 우도를 냅다 집
어던질 수 있었다.
빡!
“크아악!”
물론 우도의 날이 사내의 이마에 멋지게 박힌다던가 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
려면 애초에 특별히 설계된 투검용 칼을 써야 한다.
시준으로서는 쇳덩이에 얻어맞고 비틀대는 남자가 칼을 놓치면 충분했다. 시
준은 태클에 맞먹는 속도로 다가들어 그 삼척검을 빼앗았다.
“이, 이 어린 새끼가……!”
깡패들은 항상 그런 쓸데없는 위협이나 허세 때문에 싸움에 쓸 귀중한 시간을
낭비한다. 그래서 그들은 사실 전투나 살인에는 전문가가 아니다.
그래서 우두머리 사내는 상대방이, 그러니까 시준이 자기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똑바로 검을 내려치자 당황하여 팔을 들었다.
아무리 이 시대 금속공업이 조악해도 칼은 칼이다. 시준이 복지 혜택으로 습
득하긴 했으나 한가할 때나 운동 삼아 연습해 보았던 검도의 머리치기 기술이
진검으로 발휘되었다.
사내의 왼팔이 단숨에 반쯤 떨어져 나갔다. 사내는 목구멍에서 피끓는 비명을
토해냈다.
“으악, 으아아악! 이, 이 새끼를…… 죽여!”
그러나 시준은 그가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 못하도록 침착하게 가슴을 밟았
다. 목소리는 폐가 밀어올리는 공기를 필요로 한다. 대장은 자는 사람들 깨울
고고성 대신 헛숨만 토해내며 꿈틀거렸다.
갑자기 가슴을 압박하느라 갈비뼈 서너 대가 한꺼번에 부러졌지만 어차피 오
래 살려 둘 놈은 아니니 이 정도면 됐다. 시준은 발을 뗀 다음 사내의 안면을
내리찍듯 밟아 기절시켰다. 전생의 그였다면 어림도 없었을 합리적 폭력이었다.
시준이 지나치게 빨리 끝내기도 했지만, 어차피 대장을 도우러 와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준이 다른 곳은 돌아보지도 않고 대장에게 돌격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기랑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닭똥이가 쓰러지자 놀랐다가 바로 기랑에게 덤벼든 한 놈이 몽둥이를 크게 횡
으로 휘둘렀다. 기운은 꽤 센 모양인지 바람 가르는 소리가 굉장했다.
하지만 기랑은 평안도 포수 출신. 호랑이가 바로 눈앞에 달려들 때까지 기다
렸다가 총을 쏘거나 창을 내질러야 하는 극한직업이다.
양요 당시 서양인들도 두려워했다는 한국 호랑이 사냥꾼(Korean tiger
hunters)에게 사람 따위는 하품이 나올 뿐이다.
기랑은 시준처럼 완력이 강하지는 않았고, 그래서 그저 다리를 내밀며 비수
또한 비스듬하게 앞으로 내뻗었다. 그러자 그자는 앞으로 넘어지면서 자기 체
중으로 자신을 죽이게 되었다. 이번에도 정확히 심장을 관통했다.
기랑에게 있어 제압이란 살해 이외에는 없었다. 상대는 지상 최강의 맹수들이
나 흉험하기로는 그들에 못지않게 거친 서도 인간들. 모두 자신보다 훨씬 강
한 상대였다. 어떤 자비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기랑이 비수로 노리는 곳은 목 아니면 배였다.
칼에 찔리고도 용감하게 일어서서 역전하는 것은 영화나 그렇고 보통 복강을
꿰뚫리면 급성 쇼크를 일으켜 움직일 수 없다. 목은 말할 것도 없이 즉사다.
순식간에 세 명을 해치우자 나머지 한 놈은 겁에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하긴 이들이 무슨 신념에 찬 테러리스트도 아닌데 여기까지 싸운 것만 해도
용하다.
물론 시준은 그냥 곱게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낮고 힘있게 말했다.
“기랑아. 총을 소매로 감싸고 쏴라!”
총에 관한 한 어떤 조선 군관보다도 경험이 월등한 기랑은 시준의 의도를 알
아들었다. 천으로 총구를 칭칭 감아 두면 소음기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기랑의 시선이 탄도와 일치되어 정렬했다. 막 몸을 돌려 달아나려던 마지막
녀석의 뒤통수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며 풀썩 쓰러졌다.
총에 맞는 사람을 보는 건 시준도 처음이다. 공중에 팔 한번 휘젓지도 못하고
실 끊긴 인형처럼 즉각 엎드러져 버리는 그 장면은 영화와 명백하게 달랐다.
시준은 그 묵직한 현실에서 억지로 눈을 떼어 기랑을 바라보았다. 무슨 이유
가 있었다기보다는, 시선을 돌리다 보니 볼 게 기랑밖에 없어서였다.
기랑은 능숙하게 총을 다시 점검하고 안에 낀 찌꺼기를 털었다. 그리고 그 위
로 달빛이 떨어져 내렸다.
평소에 볼 일 없는 어두운 배경과 빛의 각도는 숨이 막힐 것 같은 피냄새와
어우러져 기랑을 조금 다르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아까 저놈들이 한 계집애니 뭐니 하는 소리를 진지하게 들은 건 아니지만, 시
준은 자기도 모르게 멍하니 서 있었다.
입으로는 말하기보다 뭘 먹기를 더 좋아하는 그의 순박한 친구 기랑은 그 순
간 신화에서 뛰쳐나온 전쟁의 여신 같았다.
작가의 말
1. 영조의 오미자차 얘기는 유명하죠. 실록에 따르면 아래와 같습니다.
영조 12년(1736년) 4월 24일 무자 4번째기사
검토관(檢討官) 조명겸(趙明謙)이 아뢰기를, "가만히 여항(閭巷)에 전해진 말을 들으니, 혹은 성상께서 술을 끊을 수 없다고들 한다는데, 신은 그 허실을 알지 못하겠지만 오직 바라건대, 조심하고 염려하며 경계함을 보존토록 하소서."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내가 목을 마를 때에 간혹 오미자차(五味子茶)를 마시는데, 남들이 간혹 소주(燒酒)인 줄 의심해서이다." 하였다.
영조는 치세 동안 오래 금주령을 유지했고 거역한 신하를 처형하면서까지 집요하게 매달렸습니다. 제사에도 술을 제한했을 정도. 그런데 알고보니 저 혼자 뒤로 술 먹고 있으니, 화가 안 날 수 없습니다. 이때의 검토관은 6품관으로서 고관도 아니었다는 점, 신하가 왕에게 진짜 풍문만으로는 저렇게 말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영조도 이미 증거 다 있다는 거 알고 흠칫해서 일개 홍문관 수찬에게 저렇게 구차한 변명을 했던 것 같습니다.
2. 조선은 병기의 사용에는 유연한 편이었습니다. 화약도 가능한 한 빨리 도입했고, 조선 국초에 군용으로 썼던 환도 역시 왜란을 전후하여 받아들인 일본도 양식을 많이 수용했죠. 하지만 실무자급에서는 좀 다른 방식으로 유연했던 게 문제인데;; 칼이란 게 꽤 무겁고 비싸기도 하고, 실제 싸움에 나설 일은 거의 없다 보니 그냥 짧은 날의 가짜 칼을 차고 다니다가 나중에는 그냥 칼자루만 칼집에 끼워서 들고 다니는 일이 만연했습니다.
3. 액례 박동윤은 실존 인물이고 언급된 행적도 사실입니다. 작중에서도 나오지만 이 시기 도성의 치안은 벌써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액례나 원례, 의금부 나장이나 금군까지 도성의 하급 군관과 군졸들이 소제목대로 갱스 오브 서울을 찍으면서 이권 다툼을 하죠. 처벌 기록만 해도 엄청납니다. 물론 이 시대 특성상 1이 처벌되었다면 사건은 100쯤 발생되었다고 보는 게 맞죠.
14. Gangs of seoul(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