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42화 (42/284)

42화

14. Gangs of seoul(1)

이득을 바라며 권력자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일을 뇌물이라고 부른다. 그 뇌물

에 상응하는 보답을 권력자가 내려준다면 이는 명백한 부정행위이다.

탕왕 이래로 어떤 군주도 공식적으로는 이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수

뢰하여 군주의 위엄을 해치고 나라를 어지럽히는 일을 할 수 없다.

그러니까, 군주 자신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뇌물은 더 높은 권력자에게 바칠수록 효과가 있다. 조선의 경우 최고 권력자

는 당연히 왕이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왕에게 뇌물을 바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래서 조선의 왕들은 대개 뇌물을 받았다. 비밀스러워야 할 부정행위가 어떻

게 후대에 알려졌는가? 그것은 목숨을 아끼지 않는 절개의 사관들이 기록했기

때문이다.

물론 절개와 눈치는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상호 배타적인 개념은 아니다. 조

선의 사관쯤 되면 뇌물 공여 행위를 ‘왕에게 진상’한 것으로, 수뢰와 부당 이

득 제공 행위를 ‘왕의 은혜로 하사’했다는 것으로 솜씨 있게 붓질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이 뻔뻔한 작태에 의문을 가진 신하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어차

피 나라의 모든 것은 왕의 것이니, 자기 것을 자기가 받는데 어찌 뇌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논리로 왕을 변호해 주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수뢰에 대한 정당성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왕도 뇌물 받

으면서 신하들의 부정을 단속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한나라 영제(靈

帝)급 매관매직을 기본적으로 다들 탑재한 유럽의 군주들만큼은 아니었으나,

동아시아라고 근본적으로 다를 것은 없었다.

그런데 이공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그 무적의 논리가 적용되지 않았다. 이공이

받은 옥양목 수백 필은 조선의 것이 아니라 영길리국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공은 그것을 재빨리 흩어 내려주었다. 한편으로는 개항에 대한 여론

을 제어하면서, 한편으로는 ‘왕이 서양인에게 뇌물 받고 군관 죽은 거 묵인한

채 항구 열어준 거 아니냐?’는 중상모략을 일찌감치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수상할 정도로 개항에 적극적인 왕의 교지가 다시 내려왔다.

“저번 설명회 이후로 서북통상사무아문에 들기를 자임한 관리가 있으면 속히

아뢰라. 급제(及第, 대과에 합격하고 벼슬하지 못한 사람)나 성균관 관생도

마찬가지다. 녹사(錄事, 상급 서리의 통칭)로서 자원하는 자는 그 체직 연한

에 대해 특별한 상은을 내려 장려한다.”

임용 적체가 심했던 조선에서 바로 벼슬자리 주는 것은 무시하기 힘든 특혜

다. 또한 본래 고위직으로 올라갈 수 없고, 일정 기간 이상 복무하면 퇴직해

야 하는 경아전 녹사도 그 전례를 깨겠다는 과감한 명령이었다.

예조 참의로서 왕의 일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정약용은 짧게 평했다.

“사대부들이 아전이라 깔보지만, 국초에는 녹사 또한 사대부가의 자제들이 맡

았다. 이제 주상께서 녹사도 품관으로 오를 길을 터 주시면 자원하는 사람 또

한 많겠지.”

그리고 벼슬아치가 아닌 시준은 조금 더 솔직하게 말했다.

“벌열의 자손이나 당상관들은 굳이 욕됨을 무릅쓰고 오랑캐와 이야기하지 않

겠으나, 청운의 뜻이 있고 하좌에서라도 사직에 봉대(奉戴)하고 싶은 사람들

은 많이 자원하겠군요.”

이쪽이 더 이공의 심중을 정확히 짚어낸 것이었다. 이공은 자기와 동세대의

젊은 사대부들을 친위세력으로 길러낼 생각을 한 것이다.

왕이 아무리 신경 써 봐야 사장보다는 부장이 더 사원들과 접촉할 기회도 많

고 잘 아는 것이 당연하다. 김조순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가문의 자제를 뽑

는 것도 힘들거니와 그렇게 했다 해도 곧 그는 김조순의 그늘 아래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설명회로 일단 분위기를 잡고, 서울에서 먼 변경의 관청에서 키워 중

앙 정계로 입문시킨다는 것이 시준이 짐작하는 이공의 계획이었다. 시준은 나

쁘지 않은 감각이라고 생각했다.

‘단, 전화기가 조선에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이지.’

그럴 것이었다면 이공은 서북통상사무아문을 왕의 직속기구로 설치했어야 했

다. 하지만 그건 왕이라도 무리였기에 비변사의 휘하에 둘 수밖에 없었으며,

그렇다면 김조순의 영향력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탁상공론이다.

게다가 이 시대의 거리는 현대와 완전히 다르다. 서울에서 의주를 가는 것보

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아르헨티나를 가는 것이 단연코 쉽다. 왕의 파발이

있으니 연락 자체는 며칠 안 걸리겠지만, 초고속 통신이 일상인 현대에도 세

력 형성에 있어 물리적 거리는 여전히 중요하다.

조선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장담컨대, 서북통상사무아문 – 약칭 통무아문(通

務衙門)의 관리들은 까마득한 왕에게 충정을 바치기보다 없는 것이나 다름없

는 녹봉을 보전하기 위해 영국인 또는 평안도 사람들과 결탁할 확률이 훨씬 높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대차게 맞기 전까지는. 김조순 덕에 공화국 정

신을 다시 일깨운 시준은 왕의 턱주가리가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왕의 계획에도 찬성하는 편이었다.

그래야 시준이 돈을 벌 수 있으니까 말이다.

정약용은 정약횡 집 사랑방, 그러니까 시준의 몫으로 배정된 서울 숙소에 들

어와 있었다. 오래간만에 복귀하여 바쁜 나날을 보내다 보니 제자를 잘 챙기

지 못한 듯해서였다.

방은 말끔했지만 탁상 위에 종이가 하나 있었다. 긴한 것은 아닌 모양인지 시

준은 그것을 그대로 둔 채 스승을 맞아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의 자연스러운 휴지기가 오자, 제자가 습자(習字)라도 하고 있었는가 하

여 그것을 힐끗 쳐다본 정약용은 곧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흐뭇하게 웃었다.

“춘정(春情)이라 하지만 어찌 봄만의 일이리. 과연 너도 사람이었구나. 이 찬

계절이 훈훈하게 데워지는 듯하다.”

시준은 무안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서신을 치웠다. 언서(한글)로 된 이

글은 지유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시준은 지유에게 한글을 가르쳐 두기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원래, 어젯밤의 시준은 전생의 연애 시절을 떠올리며 편지를 썼다. 하지만 오

늘 아침 조선 사람으로 돌아온 시준은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 없는 문란함을

견디지 못하고 그것을 버렸다. 원래 연애편지는 정신 멀쩡할 때 검토하면 안

된다.

그래서 내용은 조선 기준으로도 여상한 수준이었다. 제자가 또 이상한 음란서

적 쓰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정약용도 안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정약용은

제자의 요청도 선선히 수락했다.

“사람을 사서 보내고 싶지만 그러려면 돈이 꽤 들고, 제가 연치 어려 서울에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감히 나라의 파발을 쓰지는 못하겠지만 만득이 편에

같이 올려보내도 되겠습니까?”

“그래라. 나도 그 김에 아우에게 보낼 서간을 써야겠구나.”

이 시대 글 배운 자들이 주고받는 간찰은 현대로 말하자면 무슨무슨 톡이니

하는 메신저와 거의 동일한 위상을 차지했다.

비밀스러운 내용을 썼을 때는 정조나 뒷날의 순원왕후처럼 소각하라고 명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친구가 애원한다 하여 그의 흑역사를 메신저에서 지우는 사

람이 현대에 별로 없듯이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간찰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이것은 동서양을 막론하는 일이었

고, 그래서 현대의 역사학자들은 역사적 인물의 개인 편지로 그의 사상과 인

생을 더듬어 보는 것이다.

그리고 공부하는 자라면 자기 생각이나 일상을 글로 정리해 보며 반성하고 검

토하는 일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많은 선비들이 편지 자주 쓰기

를 권했고(연락 없는 자식들에 대한 원망도 약간 섞여 있을 것이다), 이는 정

약용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어여쁜 처녀에 정신이 팔려 도리를 잊으면 안 되느니라. 홍 장주님께

바칠 서찰은 다 썼겠지? 어른에게 보내는 글은 아침 깨끗한 정신으로 세수한

뒤 마음을 가다듬고 정서해야 한다.”

시준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정약용을 만족시켰다.

“예. 써 두었습니다. 가르치신 대로 아침에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그럼 만득이에게 내일 일찍 네게 들르도록 일러두마.”

이제 유배도 풀렸으니 강진의 본가로 돌아갈 만도 하건만, 만득이는 요새 자

기가 정 참의 댁 하인이노라고 거들먹대며 서울 바닥을 누비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그래도 발 빠르고 손이 야무져서 타향에서도 걱실걱실 일은 잘 했다. 사람이

경망스럽다는 게 단점이지만 종놈 사람됨이 진중하고 묵직하면 그건 그것대로

좀 곤란하다. 그간 미운정 고운정 든 정약용도 만득이가 편했는지 굳이 쫓아

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강진의 정약용 외가에 기쁜 소식을 전할 사람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이미 그쪽이 고향인 이유회, 이강회 형제가 글월 들고 내려갔으니까. 그래서

시준도 별다른 말 없이 감사를 표했다.

정약용이 가벼운 마음으로 나가자, 시준은 방구석의 뒤주를 열어 보았다. 거

기에는 편지가 몇 통 더 있었다.

하나는 실제로 홍득주에게 쓰는 편지였다. 그리고 시준은 아직 이용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홍경래와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기에 그에게 보내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시준의 관심은 그것이 아니었다. 시준은 피봉에 친전(親展)이라고 적

힌 편지를 집어 들었다.

조선 시대 통신보안의 수준이야 말할 것도 없으니 그것은 예의상의 의미 이상

은 아니다. 정부 기밀문서를 전달하는 기발(騎撥)이며 보발(步撥)꾼들조차 국

가 문서를 제멋대로 펴 봤다가 파직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던 때가 지금이다.

하지만 만득이가 그것을 펴 본다고 하더라도 읽을 수 없을 것이다. 문맹자라

서가 아니다. 이것은 영어도 조금이나마 하는 정약용조차 읽을 수 없다.

그 편지의 수신인은 홍득주도, 지유도 아니었다. 현재 어딘가에서 암약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조선 천주교도 잔당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어쨌든 만득이는 편지 내용 따윈 관심도 없었다. 다음 날, 만득이는 주인의

명을 따라 시준의 편지를 받고도 얼른 떠나지 않은 채 만면 가득히 미소를 지

어 보였다.

시준은 잠시 기다렸지만 만득이의 표정이 변하지 않는 것을 보고 넌더리를 내

며 돈냥이나 조금 쥐여 주었다.

“그 사람 참. 답신은 꼭 받아 오시오.”

“예에. 아무렴요. 헤헤. 이 만득이로 말할 것 같으면 또 처녀총각 중신 잘 서

기로 강진 바닥에서 다들 알아주었지. 걱정 붙들어 매쇼.”

사실 지유에게 보내는 편지보다는 다른 서신들이 훨씬 중요했던 시준으로서는

찜찜했지만 일단 보내 주기로 했다.

“의주로 바로 갈 거지요?”

시준이 다짐을 받듯 묻자, 만득이는 손뼉을 딱 쳤다.

“아, 내 정신 좀 봐. 어젯밤에 의주에서 사람이 왔었는데 깜박했네.”

“의주라고?”

시준은 자기가 떠나기 전 주문한 것이 왔다는 사실을 대번에 깨달았다. 여유

가 많이 있다면 그편에 서신을 주어 보내어도 되겠으나, 어차피 그 사람들은

당분간 서울에 머무를 것이었으므로 시준은 일단 만득이를 북쪽으로 쫓아 보냈다.

그러고는 약속 장소인 객줏집으로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얼마 전 병아리

잃은 그 집이었다. 나가면서 훔쳐보니 정약용은 이미 출근한 뒤였다. 이제 아

무도 그를 방해할 자는 없다.

시준이 의주에서 사업을 빠르게 정리할 수 있었던 데에는 굳이 모든 것을 현

금으로 바꾸려는 무리한 노력을 하지 않았던 덕도 있다.

그가 의주를 떠날 때, 모자 산업을 넘겨주는 대가로 임상옥에게 받았던 건 확

실히 적은 대금이었다. 임상옥은 당장의 이득만 보고 숨겨진 빚을 계산 못 하

는 멍청이가 아니었으며, 따라서 시준에게 뭘 바라느냐고 물었다.

시준은 그에게 만족하며 자기가 서울 갔을 때 해야 할 일을 상세히 일러 주었

다. 그중 하나가 지금 시준의 앞에 있었다.

그것은 엄청난 수량의 데님 천이었다.

영국이 수출한 물량 중 가장 많은 것은 면포였지만, 자기가 조선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레디 소령의 경우 조선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

은 이 데님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번의 초도물량은 예전 밀무역 때와 비교가 안 되었다.

다만 아직 서북통상사무아문은 공식적으로 업무 개시를 하지 않았다. 좌의정

김재찬이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며 흠차대신 복장안을 설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도 밀무역이라고 우길 수는 있겠으나, 그러고 싶은 사람이 조선에

별로 없었다. 먼저 이미 용천부의 만상이나 동인도 회사는 자신들의 일을 정

부에서 허락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기실 레디 소령은 조약 체결 직후 기다렸다는 듯이 북상하여 장자도에 짐을

풀었으니 불법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좀 그렇다. 아무튼 조약은 맺지 않았

는가. 그리고 근문소가 지배하는 압록강가에서는 그 말에 반대할 사람도 없다.

또한 지금 평안도의 최고 권력자가 2회차 평안 감사 이서구라는 점도 큰 도움

이 되었다. 이서구는 정약용에게 근문소를 부탁받았고 왕의 의도도 잘 이해했

다. 왕이 바라는 일처리는 청의 공식 허락이 재차 있고 나서야 황공해하며 무

역을 시작하는 공순한 제후의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상은 조선에서 가장 최초로 데님 천을 대량 입수하여 여기까

지 갖고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기랑이 공짜 밥 먹는 게 마땅찮았던 시준은 늦잠 자느라 부스스한 기랑을 끌

고 객줏집까지 왔다. 그러고는 임상옥의 심부름꾼으로 온 재봉장 박득출에게

말했다.

“기다렸습니다. 임 행수께서는 일전에 부탁한 일을 어찌 처리하셨습니까?”

“아아, 그거 말이지.”

박득출은 자기가 의주에서 데려온 용만 충의신민 연락사 청년들에게 ‘야, 인

마! 그 비싼 걸 누가 진땅에 털썩털썩 던져놓으래!’, ‘이 느려터진 놈들. 기

껏 잘 처먹여 놨더니 일하는 품새 좀 보게!’ 등의 고함을 지르고 나서야 시준

의 질문에 대답했다.

“어이구, 말도 말게. 흠차대신인지 헛기침대신인지 온다고 압록강변이 죄 뒤

집혔어. 부사고 부윤이고 절도사고 갑자기 어? 그냥 아주 청백리에 만고충신

이 되셔 가지고 들들 볶더라니까. 근문소 인연도 입 싹 닦아버리데. 먹을 것

에 입을 것에 예물과 선물 바쳐대느라고 의주가 아주 쪽쪽 빨아먹혔지. 어디

그뿐인가. 우리 구사대 애들 없었으면 의주의 처녀는 남김없이 끌려갔을걸.

작정을 하고 온 모양이더라고.”

시준은 마지막 말에 유의했지만 곧 속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청나라 사신들

이 정말 의주를 쓸어버리기로 마음먹었다면 민병대 따위 있건 없건 아무 상관

이 없다.

청 사신을 오래 봤던 시준은 아마 마부나 심부름꾼쯤 되는 이들이 그 천박한

습성을 못 버리고 사람들을 함부로 때리거나 관기를 요구했을 거라 생각했다.

박득출의 말은 이런 일에서 당연하다는 듯 덧붙여지는 과장이다.

이 사실에서 특별히 청인들의 종족적 부도덕을 개탄하기도 힘들다. 조선 사신

단의 하인들도 연경에 가서 재미로, 혹은 사소한 시비로 청나라 백성이나 지

나가는 타국 사신을 폭행하곤 했다.

조선과 마찬가지로 청도 자기 나라의 신분 낮은 자들보다는 외국의 고관이 더

중요했을 뿐이다. 이 시대에서는 국적이나 민족보다 신분이 더 우선적으로 고

려되는 요소이다.

그리고 이제는 시준도 익힌 능력이지만, 전근대 사람들은 대개 상대방을 한

번 쓱 보는 것만으로도 그자의 사회적 권력과 자신과의 격차를 상당히 높은

정확도로 짐작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못 하는 녀석은 다 죽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준은 청나라 사신단의 부랑패들이 의주에서 이름난 부호인 홍득주

집은 건드리지 않았을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다 제쳐놓고라도 지유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면 박득출은 먼저 호들갑을 떨며

그 재변을 전했을 것이다. 그래서 시준은 그런 생각을 떨쳐내었다.

“그래서 실패했습니까? 아니면 미뤄 두기로 한 건가요?”

박득출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럴 리가 있겠나. 그저 고생했다는 게지. 오히려 난리 통에 슬쩍 빼돌리기

는 쉬웠어. 자네 말대로 그 임가놈은 영길리국 배에 태웠지.”

이미 음란소설 소스 다 뽑아먹은 임청은 평안도에 있을 때는 쓸모가 없다. 어

떤 면에서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임청은 공식적으로 죽은 사람이며 더하여 주의 깊은 성격도 아니었다. 그가

살아서 여기저기 설치고 다니면, 가능성은 낮지만 조정에서 당시 만상의 거짓

말을 눈치챌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으로 돌아가면 쓸모가 있을 일말의 가능성이 존재했다.

시준은 역사 속의 임청이 누군지 몰랐지만, 장자도에서의 멍석말이 끝에 그의

입에서 자금성 습격 계획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시준은 의주를 떠날 때부터 임청을 다시 청에 버려버릴 계획을 세웠다.

그때는 왕이 왜 부르는지도 몰랐을 때다. 그래서 동기도 단순했다. 밀무역으

로 돈깨나 만지는 의주 만상의 입장에서는 청이 혼란을 일으키면 일으킬수록

좋았다.

물론 시준이 아는 한 저 짝퉁 황비홍이 청을 무너뜨렸다는 얘기는 역사에 없

었다. 당연히 임청은 죽을 것이다.

그러면 뭐 어떤가 하는 심정이었다. 임청은, 시준과 마찬가지로 그 목숨이 귀

하다 하기에는 많이 망설여지는 뒷세계의 인간이다.

직접 살인을 한 적은 없어도 시준은 다년간 만상 신디케이트의 핵심이었다.

시준이 간접적으로 죽인 인간은 그 자신조차 수효를 모른다.

그리고 시준은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만약 망설였다면 죽는 쪽은 시준이

었을 것이므로.

시준은 복지 혜택을 고르던 까마득한 옛날 그 순간부터 폭력적 상황에서의 생

존을 상정했고, 따라서 누군가를 죽일 각오는 당연한 것이었다.

어쨌든 그래서 시준은 임청 불법투기 작전을 세웠다. 영국 배가 또 밀무역하

러 오면 거기 태워서 광저우에 팽개치는 것이 대강의 계획이었다.

홍삼 몇 상자 더 주면 동인도 회사도 받아들일 거래다. 임청도 고국의 혁명동

지들에게 돌아가고 싶을 테니 이상한 소린 안 할 것이라는 게 당시의 짐작이었다.

그런데 영국이 정식 조약을 요구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는 사정이 좀 달라졌

다. 시준은 벽제역에서 교지를 받자마자 사람을 사서 북쪽에 편지를 보냈다.

청이 조영 통상을 좌시하지 않으리라는 건 그 시점에서 확실해 보였다. 그래

서 임청을 버리는 것이 주 목적이었던 그 가벼운 일은 이제 청에 골칫거리를

던져 주는 쪽에 더 중점을 두어야 했다. 시준은 그때를 떠올리며 코끝을 찡그

렸다.

‘어휴. 진짜 그때 생각하면 내가 무슨 애국지사라고 그랬나 싶다. 물론 우리

동네가 바로 옆이라 청을 바쁘게 만들어주지 않으면 내가 손해 본다는 이유가

제일 크지만…….’

시준은 자기가 김조순을 며칠만 더 일찍 만났어도 굳이 그런 모험은 안 했을

거라 확신했다. 사실 임청이 처치곤란이면 그냥 쓱싹 해치워서 인삼밭 거름이

나 하는 게 속 편하다.

그러나 당시의 시준은 청의 혼란이 자기뿐만 아니라 조선에도 도움이 될 거라

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조순은 그 애정을 상당히 퇴색시켰다.

‘두고 보자. 치킨의 원한은 언젠가 갚는다.’

기왕 내친 김이어서 시준은 그대로 일을 진행했다. 조약 당시, 문서를 교환하

는 공식 행사가 끝나자 시준은 존 레디 소령과 윌리엄 자딘 박사 등을 비공식

적으로 만나는 개인적인 시간을 가졌다.

그때 시준의 요청을 레디 소령은 받아들여 주었다. 아무래도 레디 소령은 시

준이 차후 조선의 대영국 무역에서 뭔가 소임을 맡을 거라 여겼던 듯했다.

아니면, 둘 다 드러내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존 레디 역시 시준처럼 조선-영국

간 무역의 방해물인 청에 혼란을 일으키는 것에 동조한 것일 수도 있다.

시준이 레디에게 팔괘교의 계획을 알려준 건 아니다. 그보다는 시준의 요청

때문에 짐작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동인도 회사는 시준의 요구대로 애초에

임청이 조선에서 가져가려고 했던 것, 그러니까 다량의 총기를 함께 실어서

‘표류자’ 임청을 몰래 광저우에 내려 주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총을 확보하고 국내 관청의 눈을 감기는 일은 조약 전부터 편지 받고

준비하던 만상 임상옥이 맡아 주었다.

오늘 아침에 만득이에게 준 것을 포함해서, 시준이 프랑스어로 쓰는 편지는

임상옥과의 비밀 약속이었던 것이다. 밀무역에 꼬박꼬박 참여하던 임상옥은

뛰어난 재능으로 영어를 배웠을 뿐 아니라 프랑스어도 조금 했다.

이게 바로 국왕 이공과 김조순, 정약용이 장대한 국제 외교상의 계략을 짜고

실행하는 동안 시준이 뒤에서 했던 일이었다. 박득출의 설명을 들은 시준은

이 무리한 일이 그래도 차질 없이 마무리되었다는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잘해 주었군요. 그러면 이제 우리는 안심하고 여기서 돈만 벌면 됩니다.”

“그래. 안 그래도 그 말 하려고 했어. 임 행수는 의주에 올 생각 하지 말라던

데, 이게 그렇게 큰 벌이인가? 도성에는 금은갱 일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거

아냐.”

거기까지 말한 박득출은 주위를 좀 둘러보다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경강 장사꾼들은 조정 고관부터 검계(劍契), 그리고 그 밑의 구걸하는 아이

들까지 다 끈이 닿아 있네. 쌀이나 소금이며 어물 같은 것을 건드렸다가는 다

음 날로 시체도 못 찾아. 우리도 벌써 도성 들어오기도 전에 그거 무슨 짐이

냐고 껄렁대는 놈들과 시비가 붙었는데, 희만 선생(정약용) 이름 대어서 어찌

어찌 넘어갔지. 설마 여기에서 무턱대고 좌판 깔고 장사하려는 건 아니지?”

이 시절 검계는 조정 고관인 승지의 집까지 쳐들어가 사람을 폭행할 정도로

세가 강성했다. 그리고 신디케이트는 만상만 조직할 줄 아는 게 아니다.

도성의 생명줄인 한강을 꽉 잡은 경상(京商, 경강상인)들은 양지의 권력인 서

울 고관들에게 뇌물을 대고, 음지의 폭력인 검계와 돈으로 친교를 맺어 도성

과 경기에서는 왕도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세도를 자랑했다. 오히려 만상 따위

는 병아리에 불과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시준조차도 경상과 대립하는 것은 꺼림칙했다. 송상은 홍경래와 협상해서 그

럭저럭 타협했다고 쳐도, 기내에는 그런 연줄도 없다.

그렇다면 정면 대결을 할 것인가? 경강 상인들이 의주까지 와서 까분다면야

내선의 우위와 많은 병력으로 해 볼 만하겠지만 지금 여기 있는 구사대 청년

들은 서울 구경한다는 소리에 좋아라 따라온 여남은 명 정도다.

그러나 시준은 서울에서 한몫 잡겠다는 야망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근거도 있었다.

“면포라면 경강 애들이 아니라 송상이 주로 차지하는 물건들입니다. 송상과는

안면이 있으니 좀 더 쉽겠죠.”

일전 선죽교 17대1 전설의 사나이 박광유 건으로 송상을 싫어할 수밖에 없는

박득출은 인상을 찌푸렸다. 시준은 그것을 못 본 척하고 주먹을 꺾었다.

‘그래, 이제 알바 끝이다. 본업 해야지.’

시준은 잠깐 밝은 세상의 나랏일을 맡느라 외도하였던 자기의 두뇌와 신체를

다시 원래대로 되돌렸다. 그는 만상 홍득주 상단의 서장관. 평안도 북부를 지

배하는 불법 조직의 모주(謀主)다.

경강상인이나 송상이 뭐라고 짖든 시준은 청바지를, 그리고 공개적으로 말하

기는 힘든 몇 가지 물건들을 팔아 돈을 벌어야 했다.

그리고 그의 평온한 생활 – 그러니까 이제는 한 사람이 더 추가될 가능성이

높은 안정적 노후를 방해하는 자는 의주 스타일로 처리해 줄 작정이었다.

작가의 말

1. 못 그랬을 것 같지만 조선 사신단도 청나라 가서 행패를 부리곤 했습니다. '열하일기'에 언급된 것으로 얘기하자면 한 번은 청나라 민간 백성을 팼고 한 번은 몽골 사신단 하인을 팼죠. 외교문제로 비화했다는 묘사 따윈 어디에도 없습니다.;;; 청이 약할 때도 아니고 건륭제가 멀쩡히 업무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백성의 경우는 시비가 붙었다고 치더라도 몽골 사신단은 아무리 봐도 그냥 재미로 때렸습니다. 하인 하나가 명랑하게 쫓아가서 갑자기 사람을 넘어뜨리고 옆의 흙을 집어다가 입에 쑤셔넣었거든요. 당한 사람은 일 크게 만들지 말자고 판단했는지 그냥 웃으면서 옷 털고 다시 갈 길 갑니다.

그리고 박지원 본인도 애먼 청나라 아이 '효수'에게 시비를 걸었습니다. 애 갈 길을 쓱 막아서고 애가 어떻게 하는지 보며 재미있어 했죠. 아이가 똑똑히 처신해서 박지원 앞에 침착하게 절하여 박지원이 귀여워했습니다만... 당시 상황을 잘 읽어보면 애 할아버지가 외국 사신들을 무서워해서 박지원에게 함부로 항의하지 못한 정황이 드러납니다.

2. 경강상인은 송상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다루는 주요 상품, 그러니까 쌀, 어물, 소금 등에 관해서는 생산지부터 판매지까지 경로를 전부 꽉 쥐고 있었습니다. 유통해 주려면 나르는 사람이 필요한데, 주로 조운선 뱃사람들에게 빚을 뒤집어씌우고 노예로 부려먹는 방식을 썼습니다.

현대에도 아무데나 좌판 깔고 장사하면 너 누구 허락 받고 여기 있냐면서 무서운 아저씨들이 나타나죠. 이때도 같았습니다. 상대가 송상처럼 세력이 크면 나라에 고발했고(경상과 서울 시전상인의 전통적 이권은 조정에서도 보장해 주는 편이었습니다), 작으면 그냥 두들겨 쫓거나 죽였습니다.

3. 검계가 승지의 집에 쳐들어갔다는 건 1803년, 그러니까 작중 시점으로부터 5년 전인데 장붕익에 의해 토벌되었던 검계 세력이 이미 빠르게 다 회복되었음을 뜻합니다.

14. Gangs of seoul(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