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13. 풀리는 빗장(1)
협상 나흘째 밤, 시준은 왕이 예부에 보냈다는 문서를 세 번째 읽었다.
조선에서 산 지는 15년이요, 학문을 배운 지는 4년이 넘었다. 그도 이제 이
글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시준은 이공에 대해 이공 자신보다 대단한 평가를 내렸다. 이건 조선의 왕으
로서 결심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솔직히 시준은 영국놈들이 마카오를 침공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철렁했고,
협상이고 뭐고 다 나가리 났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조선은 대노하여 당장 영
국 함대를 쫓아버리려 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왕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사실상 청을 무시하고 영국을 끌
어들이려 시도했다.
‘김조순이 나를 불러야만 했던 이유가 관련되어 있겠지.’
물론 장자도의 요구 및 인사 간섭을 비롯한 몇몇 빈정 상하는 일이 그 근본적
인 원인이다. 그러나 시준과 정약용이 불어넣은 영국에 대한 여러 새로운 인
식이 없었다면 이런 식으로 일이 격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준은 스승을 돌아보았다.
“일이 조금 더 쉽게 되었군요. 뒤꽁무니에서 청군을 상대하게 되었으니 저 영
길리인들은 다급할 겝니다. 그러면 우리가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네가 말한 대로라면 청국은 패하지 않겠느냐?”
“그건 영길리국이 작정하고 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서양국에는 한 사
람 패왕이 날뛰고 있어 영길리국은 여기에 군대를 보내기 힘듭니다. 결국 저
상행(동인도 회사)이 가지고 있는 군병만을 쓸 수 있을 텐데 그것으로는 반드
시 청이 진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만약 영국이 정말 국가 단위로 조선에 유의하고 있었다면 동인도 회사가 아니
라 해군 소속 선박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이 그럴 리는 없다.
시준은 상식적으로 이해했다. 지금은 나폴레옹의 최전성기다. 영국은 지금 온
힘을 기울여 ‘유럽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골몰해야 할 때지 아시아 구석의
가난한 나라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
그리고 시준의 시선에서 봤을 때, 영국이 청에 이길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은
근대 무기이다. 그러나 여태 동인도 회사와 무기 밀무역을 하며 시준은 영국
이 아직 기관총은커녕 퍼커션 캡 격발 소총조차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청나라도 사정이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다. 시준이 ‘청은 영국을 절
대 이길 수 없다’라고 한 것은 가성비의 얘기지 가능성의 문제는 아니다.
일단 어떤 서양 나라보다 청에 큰 피해를 입힌 태평천국의 난이 아직 발발하
지 않았으며, 만주 권귀의 본격적 타락과 국가 체제의 해체 문제도 지금은 겉
으로 드러날 때가 아니다.
물론 시준이라고 태평천국의 난이 언제 발발했는지 아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19세기에 있었다는 점, 그리고 청과 연결고리가 있던 만상이 그 소문
을 못 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청의 국력은 아직 대부분이 온존 상태. 청이 엄청난 희생을 각오하
고 군대를 집중시킨다면 마카오와 광저우의 영국인을 모조리 쓸어버릴 수도 있다.
물론 그다음에 몰아닥칠 영국의 보복 함대를 막을 수가 없고, 영국이 황제와
동격의 강대한 적이라는 것을 인정해 버리는 일은 청 입장에서 전쟁에 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러진 않겠지만 말이다.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청은 영국인의 마카오 점령에 대해 해상 봉쇄 이상의
작전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 해도 동인도 회사로서는 심대한 압박. 결국 교착 상태가 지속
되고 조선 개항도 빨리 마무리 지으려 할 것이라고 시준은 예측했다.
시준이 정약용의 보좌로서 해야 할 몫은 여기까지. 그다음은 책임자인 정약용
의 일이다. 그리고 정약용은 시준의 세 배 가까이 조선에서 살았고 더하여 관
료 경험이 있는 선비답게 시준이 찾아내지 못한 행간도 읽어내었다.
“그래. 그러면 저들이 그토록 원하는 장자도를 미끼로 다른 것도 받아낼 수
있겠구나. 어심을 헤아려 보자면…… 역시 영길리인들의 화포와 대선을 좀 우려
내야겠다.”
시준은 정약용이 만상처럼 말하는 것에 놀랐고, 문서에는 한 마디도 적혀 있
지 않은 말을 정약용이 하는 것에 다시 놀랐다.
“예? 그래도 될까요?”
“조정이 예부에 보낸 글을 숙고해 보아라. 우리가 항구를 열겠다는 약속을 하
고 저들이 돌아가 청과 싸우게 되면, 우리는 천자를 무슨 낯으로 뵙겠느냐?
붙들어 둔다는 말을 하였지만 실상은 우리가 무기며 선박을 사들여야 한다.”
시준은 감탄했다. 하긴 이미 영국이 청과 전쟁을 개시했다는데, 조선이 영국
을 그냥 보내 주면 그것은 이적행위나 다름없다. 중립 외교가 말이 쉽지 이리
도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시준은 정약용이 도대체 현실을 알고 말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동인도 회사가 그 배를 팔지도 않겠지만, 데이비드 스콧을 사려면 내일부터
임금이 밥을 굶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군함이라는 물건은 숙련된 수병이 없
으면 같은 부피의 쓰레기에 불과하다.
그런 이유로 반대하려던 시준은, 정약용이 그 정도도 생각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짜 사겠다는 말은 아니군!’
정약용은 항구 이곳저곳의 개항과 다양한 이권, 그리고 무기 매입 등 여러 가
지 현안을 제시하여 저들을 정신없게 만들어 줄 심산이다.
어차피 국왕의 어심이 자주독립에 있다면 조선으로서도 무장을 갖춰야 하니
무기 매입의 의사 자체는 거짓말이 아니다. 다만 그게 지금은 아닐 뿐.
영길리국 사람들의 정신은 이미 반쯤 마카오에 가 있을 터. 협상이 길어질수
록 초조해진다. 저들이 정약용이 일으키는 폭풍 속을 허우적대는 틈을 타 정
약용은 사불가론을 관철시키고 조선의 부담을 최소화할 것이다.
정약용은 팔짱을 낀 채로 흩어진 문서를 내려다보며 목을 좌우로 우둑우둑 꺾
었다. 어디서 배웠는지 모를 동작이었다.
“내가 내일은 좀 말을 많이 해야겠구나. 네가 수고해 다오.”
시준은 영국인들을 동정했다. 그리고 자신도.
마찬가지로 마카오의 소식을 배편에 받았지만,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쓴
채 협상장에 나온 레디 소령과 로크 선장은 점점 얼굴이 시커멓게 죽어갔다.
그들은 하루빨리 왐포아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조선을 개항시키느냐 그
렇지 않느냐에 따라 드루리 제독의 작전은 큰 영향을 받으므로 두 사람은 점
점 더 정신적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정약용은 그들이 한 마디 하면 오십 마디로 답변하는 방
식으로 초조함을 더했다. 시준조차 정약용의 필리버스터 뺨치는 짓거리에 뭘
더 붙일 창의력까지는 발휘하지 못한 채 그대로 통역할 뿐이었다.
“너희들이 말하는 관세라는 것의 연원을 보자면 그것을 너희가 정한다는 말은
못 할 것이다. 관세(customs, 습관)는 곧 구습(舊習)이라는 뜻인데, 서양국에
는 예부터 남의 나라가 자기 나라 세금을 정해 주는 법이라도 있었느냐? 우리
에게도 『통편(通編)』에 시장(市場)의 물건값을 움직여 올리거나 내리는 율
(律)이 밝게 있고, 『대명률』에도 또한 같은 물건이라도 때에 따라 값의 귀
천을 다르게 하는 예(例)가 있다. 숫자로 재고 이재를 주무르는 것이 너희만
가지고 있는 재주는 아니다. 그런 말류는 대본을 익숙히 하면 모두 저절로 알
수 있는 것으로서…….”
“아, 알겠습니다. 차관 각하. 조선의 관세자주권은 청의 예처럼 인정하는 것
으로 하지요. 다만 상한선을 문건에 명시해 주시면 됩니다.”
레디 소령은 무례인 줄 알면서도 그렇게 말을 끊었다. 그리고 정약용이 다른
말을 폭포처럼 쏟아낼 채비를 갖추자 냉큼 다른 화제를 덧붙였다.
“그리고 영사재판권 문제입니다만, 자유무역에 치외법권은 불가피합니다. 조
선국의 재판 절차가 공정한 사법 체계에 기반한다는 확신이 있기 전까지 영국
인이 조선의 법으로 재판을 받을 수는…….”
최소한의 협의가 필요한 안건들은 마무리 짓고 돌아가야 했기에 레디 소령은
다음 목록에 있는 건을 바로 꺼냈고, 그래서 그 발언은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그리고 정약용은 그것을 잡아챘다.
“어허! 그것은 또 무슨 말인가. 너희가 기해(祁奚, 춘추전국시대 자기 원수를
천거한 사람)와 포증(包拯, 포청천)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는가. 탕탕평평
(蕩蕩平平)은 치도의 근본이고 우리 금상으로부터 3대째 최고의 국시로 삼는
금과옥조이다. 얼마나 방자하면 이 땅에 공평무사함이 없다 깔보는 것인가?
도대체 너희의 그 자랑하는 법이 무엇인지 내가 한번 보아야겠다. 너희에게
조종조로부터 내려오는 법전이 있느냐?”
배에 그런 게 있을 리 없는 영국인들은 급하게 다시 몇 마디 해 보았지만 정
약용에게 모조리 반박당하고 말았다.
실제로 거의 지켜지지 않아서 문제지 조선의 사법체계와 세부규정은 대단히
정교했다. 죄수들에 대한 인권적 처우도 당대 국가 중에서는 그리 뒤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정약용은 전직 형조 참의다. 흠흠신서까지 쓴 사람에게 형법으로 시비
를 걸었던 게 실수였다.
휴식 시간이 되어 선미로 나온 로크 선장은 파이프를 부러뜨리고 말았다.
“젠장할, 저놈들이 다 알고 저러는 게 틀림없어. 이제라도 저 섬(강화도)을
포격하는 게 어떻소? 내 경험상 야만족들의 지혜를 가장 단시간에 일깨우는
방법은 대포요.”
레디 소령도 잠시 유혹을 느꼈다. 어차피 드루리 제독이 마카오를 점령하기로
결정한 이상 – 군의 결정이라 동인도 회사는 막을 수 없었다 – 영국이 평소
별로 있지도 않았던 평화적인 태도를 집어치우고 하던 대로 나간다는 노선의
보조를 맞출 필요도 있다.
하지만 지금 데이비드 스콧의 영국인들은 그렇게 강자의 입장에서 선택지를
고를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은 열강이 포함 외교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았을 때이며, 19세기 중후
반이나 가야 군함과 대포를 통상의 기본 도구로 쓰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습니까, 선장. 조선 해군은 격멸할 수 있습니다. 하지
만 그다음엔? 우리에게는 함포 외의 중화기가 별로 없고, 소형 야포 정도가
전부인 병사들로는 동아시아의 전통 성곽조차 뚫기 힘듭니다. 어떻게 그들의
왕에게 조약을 강요할 겁니까?”
“한니발이 그랬듯이, 무차별 약탈로 보급을 채우면서 민심의 이반을 기다리는
건 어떻소?”
레디 소령은 로크 선장이 왜 군에 입대하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웅대한 구상
하나는 대제독급이었다. 물론 다음 순간 엉덩이가 걷어차일 아이디어였지만.
“로마와 달리 여기는 전제군주국. 왕 외에는 모두 노예예요. 노예의 민심 따
위는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니발은 로마인들과 같은 것
을 먹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겁니다. 백번 양보해서 쌀을 씹어먹는다고
쳐도 화약과 총탄은 어떻게 할 겁니까? 제가 이런 기초적인 얘기까지 해야 합
니까?”
그 반박에 로크 선장은 입을 다물었다. 레디 소령이 달래듯이 말했다.
“물러날 곳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최소 조건은 어차피 개항과
자유 무역이었어요. 그것만 지킵시다. 평안도의 매입이나 강화도의 개항은 포
기하더라도, 조선에 우호적인 인상을 심어 줘야 하니까요.”
“그렇게 숙이고 들어갈 필요가 과연 있소? 조선에 그 정도 가치가 있느냐는
말이오.”
“며칠 전까지라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드루리인가 뭔가 하는 건방
진 애새끼가 마카오를 쳤지 않습니까. 청과 조선이 한꺼번에 우리를 봉쇄하면
어쩌겠습니까? 동아시아 무역을 다 포기하겠습니까? 아니면 보나파르트를 상
대할 본토 해군 전력을 여기로 빼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살기 위해
서라도, 조선이라는 카드는 우리 손에 남겨 둬야 합니다.”
로크 선장은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조선을 손패로 남겨 둔다고? 잠깐, 그 말은…….”
레디 소령은 푸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예. 웃기게 되었지만, 사실 지금 우리가 협상해야 할 대상은 조선이 아닙니
다. 중국이죠. 마카오에서 철수하는 대가로 조선과의 무역을 인정하라 압박해
야 합니다. 만약 그것에 성공한다면, 나는 드루리 제독에 대한 아까의 평을
전부 취소하고 그에게 경의를 바칠 용의가 있습니다.”
로크 선장은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레디 소령의 말투에서 그 역시
같은 생각임을 깨달았다.
데이비드 스콧에 있던 동인도 회사의 두 사람은, 민간인이 저지르는 전형적인
편견을 범하고 있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전통적인 영국 사람답게, 두 사람은 정해진 규칙과 고압적 권위에 의해 움직
이는 관청은 상황에 재빠르게 대처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대체로 탈중앙화와
조직 분권화에 기초한 동인도 회사 사람들로서는 더욱 그렇다.
한마디로 꽉 막힌 공무원들은 별수 없다는 편견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태도
에서 바로 관의 민에 대한 우위를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이 더 낫다면 굳이 조
롱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런 우위는 능력이라기보다 주로 환경에서 기인한다. 요즘의 아메리카 중서
부 같은 무법지대가 아니고서야 어느 시대든 관은 민간에 비해 더 많은 정보
와 힘을 보유한다.
드루리 제독이 베트남에서의 패배로 장재를 의심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그의 오만함에 비해 재주가 모자라다는 것이지 정말 그가 무능한 제독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에게는 나폴레옹 전쟁에 대한 최신 정보가 있었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머리도 있었다. 나폴레옹이 포르투갈을 사실상 멸망시킬 것임에 분명한 상황
에서, 드루리 제독이 마카오를 점령한 것은 대국적으로 봐도 반대할 사람이
없는 일이었다.
또 현장 상황에도 적절한 대처였다. 드루리가 패배한 베트남 해군의 소유자이
며 신황조의 개창자인 자롱 황제는 중국과 긴밀한 연결을 유지하며 가경제로
부터 자신의 반역을 묵인 및 지원받았다.
황제 응우옌푹아인이 아무리 한고조가 부럽잖은 불굴의 사나이라고 한들 청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의 부흥군은 실패했을 것이다. 따라서 베트남 해군이 중국
을 도와 왐포아를 들이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한 가능성이었다.
드루리 제독은 그 모든 것을 선제적으로 분쇄하는 한 수로 마카오 점령을 택
한 것이며, 이는 충동적인 결정이나 폭력 욕구의 발산이 아니라 면밀한 정치
군사적 고려였다.
그 결정의 합리성은 심지어 북경에 있는 가경제조차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
다. 가경제는 신뢰하는 측근이자 혈족인 위장총관(圍場總管) 부찰복장안(富察
福長安)과 의논했다.
“광동 오문(澚門, 마카오)에 흙발을 디딘 영길리인들은 한 가지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이건 자기들과 불랑국, 그리고 포도아국(葡萄牙國, 포르투갈)의
다툼이고 천조의 인민과 재산을 해할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가경제의 초기 통치의욕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는 건륭 말기 심각해져 가던
고위 관청, 특히 군기대신의 비대한 권한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고 철저한
규칙적 체계화를 통한 중앙집권을 추구했다.
그래서 이 시기 대신들은 황제에게 단독 상주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복
강안은 혼자서 황제를 알현하고 있다. 따라서 복강안은 지금 황제가 사태 심
각성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알 수 있었다.
복장안은 가경제에게 주살된 간신 화신과 별다를 것 없는 전횡을 일삼던 자였
지만, 화신은 죽고 그는 안 죽은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그는 황제의 혈족으
로서 지금 가경제와 이종사촌형제가 된다.
또한 만주 권귀 중에서도 핵심 이권집단인 팔기, 또 거기에서도 우두머리인
양황기(鑲黃旗) 출신이었는데, 이는 황제와 같은 곳에 호구를 등록한다는 의미다.
게다가 복장안은 고북구제독(古北口提督)으로서 열하를 비롯해 만주와 북경을
연결하는 핵심 지대의 군사권을 가진다. 한마디로 황제의 측근 중에서도 측근
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복장안이 단지 신분 때문에 황제와 밀담을 한다고는 볼 수 없다. 그는
대외 정책과 서양인에 대해서도 충분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
과거 매카트니 자작이 사절로 왔을 때 그에게 조선왕과 같은 후한 예우, 다시
말해 대가리 아홉 번 숙이라고 강요하며 위엄을 떨쳤던 부찰복강안(富察福康
安)이 바로 그의 형이다.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복장안이었기에 황제의 뜻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
다. 황제는 이 일을 최대한 조용하면서도 체면 깎이지 않는 방식으로 처리하
려 하는 것이다.
복장안은 과연 황제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대책을 내놓았다.
“당 태종이 일찍이 진부(秦府)의 옛 신료들에게 말하기를, ‘짐이 그 전에 하
나의 부주(府主)가 되었었지만 이제는 천하의 임금이 되었기에 사정(私情)을
둘 수 없다.’고 했습니다. 천하 만방은 모두 천자의 것이며, 이는 포도아국의
사람들에게 잠시 그 궁벽한 땅을 빌려주었다 해도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칙
명이 내려진 이상 영길리인들은 그 땅에서 나가야 합니다. 물론 조선국 강화
도에서도 마땅히 그러합니다.”
가경제는 이종형제의 상언에 주의했다. 얼핏 보면 그냥 영국인들 쫓아내자는
단순한 말로 보이지만, 복장안은 단어를 신중히 고르고 있었고 그 행간마다
비밀스러운 함의가 감춰져 있었다.
그 함의는 이어지는 말에서 조금 더 자세히 드러났다.
“이는 주인이 손에게 가르치는 것이므로 당연한 일. 서양국 사람들이 좋아하
는 대가니 조약이니 하는 것은 필요가 없습니다. 영길리인들이 오문과 강화도
에서 물러나는 대가로 천조의 쌀 한 톨이라도 준다면, 천하에 어찌 공의가 있
다 하겠습니까? 또, 그들이 칙서를 받들어 공손하게 자기 땅으로 돌아간다면,
어찌 군병을 휘몰아 애꿎은 목숨을 상하게 하고 인민을 곤고하게 하겠습니까?”
동아시아 사람들에게 국제 조약 같은 것은 중요치 않다. 원칙적으로 이 세상
의 모든 것은 황제의 것이다. 따라서 영국인들은 포르투갈과의 문제라느니 하
는 헛소리를 그만두고 나가야 한다.
그리고 영국이 요구할 대가가 전쟁 비용보다 작다는 것은 분명하다. 전쟁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천조가 그것을 재물이나 다른 땅으로 내어준다는
것은 약함을 인정하는 일.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가경제의 물음은 그것이었고, 복장안은 ‘그렇
다면 우리 것이 아닌 것으로 대가를 치르면 된다’고 대답한 셈이다.
복장안은 영길리인들이 조선에서 떠나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강화도에서
떠나야 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작고 가난한 조선은 영길리의 배 앞에 잠시도 버틸 수 없습니다. 폐하께서
저 영길리인이나 조선인들을 처벌하지 않는 자비를 보이신다면, 그들은 저마
다의 분수에서 번리의 할 바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로써 일은
큰 배와 대군이 아니라 다만 칙서 한 장으로 처치할 수 있으니 이것이 왕도입
니다.”
청도 조선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 김조순이 장자도를 청에게 주느니 개,
아니 영국인들에게 개항하자고 생각했듯이 청도 마찬가지다.
손에 다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는 평안도로의 발판을 내주는 것은 아쉽지만 청
이 그런 가난한 땅까지 체면 – 목숨보다 중한 것이다 – 걸고 탐낼 만큼 다급
하지는 않다.
이로써 영국은 청에게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물러난다. 가경제는 위대한 군주
가 될 것이 틀림없다.
또한 청은 영국보다 조선을 잘 이해했다. 전제군주국인 조선에게 있어 강화도
와 장자도는 비교할 수 없는 위치다. 천조는 또 한 번 번방에게 씻을 수 없는
은혜를 안겨주었으며, 동아시아의 외교적 부채는 서양의 것과 비교해 더 느리
지만 훨씬 끈질기고 음습하게 따라붙는다.
가경제는 어렵지 않게 납득했다. 그리고 영길리인들이 강화도와 오문에서 얌
전히 후퇴한다면 너그럽게 용서해 주기로 결정했다.
여기까지가 황제의 일이다. 그리고 황제의 칙에 담긴 복잡한 암시를 절대로
틀리지 않게 해석하여, 오해할 수 없도록 지방정부와 영국인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아랫사람들의 일이다.
그 결과로 드루리 제독은 자신의 선견지명을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흐흐. 예상대로다. 이제 뜨거운 맛을 보여 주었으니 포르투갈은 우리에게 다
시 대들기 힘들고, 안남 해적놈들도 우리가 마카오를 타고 앉아 있는 이상 별
수 없이 돌아갈 테지. 돈밖에 모르는 장사꾼 놈들이 수도 바로 코앞의 섬(강
화도)을 열어버리려고 무리할지도 모르니 어서 배를 보내라. 중국 황제가 노
루섬을 조선으로부터 얻어내는 일을 허락했다고! 이거 원, 동인도 회사가 시
원찮으니 군대가 일을 다 해 줘야 하는군.”
드루리에게 속한, 정확히는 드루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동인도 회사 해군의
총지휘자였던 밀리켄 크레이그(Miliken Craig) 대령은 몹시 아니꼬웠다. 저
건방진 젊은 놈에게 불행한 해난 사고를 일으켜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미 이 계획 자체가 위원회(Select committee)의 사발통문(Round
robin)으로 승인된 지 오래다. 그때까지만 해도 크레이그 대령은 위원회와 드
루리 제독을 한꺼번에 비웃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결국 동인도 회사는 불만스러운 대로 드루리의 말을 따랐다. 조선에서 장자도
를 열어 주고 개항과 무역을 보장한다면, 강화도 퇴거를 비롯해 나머지 조건
은 전향적일 수 있다는 내용의 새 협상안이 전달되었다.
물론 청이 자기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증거가 필요했던 조선도 환영했다. 그
와 함께 서양국 교류의 거점, 그러니까 한성부에서 가깝지는 않은 거점을 마
련하여 개항한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그해 가을, 양요처치사의 인장과 의무를 반납한 정약용은 이 지리한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정약용은 각서급의 독자적인 권한을 가진 처치사 대신 왕의 말을 전달하는 예
조 참의로 돌아가, 국왕의 명의로 정식 조약을 맺게 되었다. 청에 장자도를
뺏기지도 않고 영국인에게 병화를 입지도 않은 이공의 능력은 김조순조차 어
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시준이 씨부렁거린 “새끼 막타 감각 쩌네.”라는 말은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다. 어쨌든 전쟁까지는 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조영수호통상장정(朝英修好通商章程)의 정본이 청국에 보고되기도 전, 용천부
장자도에는 즉시 동인도 회사의 전문가들이 상륙하여 지형을 재고 상관 건설
의 기초지를 탐사하기 시작했다.
조선 역사상 최초의 대(對)서양 개항이었다.
작가의 말
1. 작중 나온 것처럼 양황기는 팔기의 최고수위로서 황제도 여기에 호구를 등록했습니다. 청의 팔기는 여진족의 전통대로 군대일 뿐만 아니라 민간 행정체계이며 권력 기관이기도 하죠. 황제의 호구는 <양황기 제1참령 제1좌령 상어명(上御名)> 입니다.
2. 셀렉트 커밋을 한국말로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어쨌든, 위원회는 사발통문과 같은 이유로(서명자의 순서를 알지 못하게 하는 이유로) 라운드 로빈이라는 의결 형식을 사용했지요. 조선 상인들의 사발통문과 다른 점은 범죄 모의가 아니라 정식 절차라는 점입니다.
13. 풀리는 빗장(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