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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38화 (38/284)
  • 38화

    12. free for all(3)

    사람이 자기 얘기 할 때면 보통 자신에게 유리한 말만 한다는 인류 불변의 법

    칙은 대청국의 공문에서도 적용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맞는 말이 하나도 없는 그 공문은 너무한

    것이었다. 엄밀히 말해 영국은 청의 지경을 침범한 적이 없다. 그리고 양광총

    독 오능광은 아직 ‘대병’을 모으지 못했다.

    정약용과 시준이 벽제역에서 처음 교지를 받아들고 서로를 경악하여 쳐다보고

    있었을 무렵, 포르투갈령 마카오 양안에는 드루리 제독 휘하의 영국군이 상륙

    했다.

    한편으로는 세포이를 동원해 막사를 짓고 한 무리는 참호를 파며 나머지는 어

    디 겁탈할 여자나 약탈할 재물이 없나 쑤시고 있었다.

    다시 말해 모범적인 영국군의 작전 수행 중이었다. 윌리엄 드루리는 항의하러

    온 마카오 총독에게 오만한 태도로 말했다.

    “포르투갈 마카오 총독부가 프랑스와 내통하지 않는다는 사실 확인을 할 때까

    지 경계 태세를 늦출 수는 없소이다.”

    총독 베르나르도 알렉시오는 입만 뻐끔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이 떠돌았다.

    ‘왜 우 총독은 병사를 보내지 않는 거지?’

    그가 지금까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온 양광총독 오능광은 정말이지 병사를

    보내고 싶었다. 마카오가 청의 땅은 아니라 해도, 청이 허락해 준 포르투갈의

    영토인 만큼 영국군의 침공은 명백히 청의 주권 침해다.

    하지만 북경의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다. 원 역사에서 오능광이 ‘훨씬 엄정한

    대처’를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처벌받는 것을 감안하면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원래 역사에서, 윌리엄 드루리 제독의 1808년 마카오 점령을 마주한 청국은

    무려 8만에 달하는 대군세를 동원하고 주강을 함대로 틀어막아 대응한다. 결

    국 전투병이 300명 정도밖에 없던 영국군은 철수하게 된다.

    비록 중간에 중국 함대를 없던 것처럼 뚫어버리고 들어온 영국 군함 3척 등의

    사소한 과실이 있어 오능광이 날아가기는 하지만 어쨌든 거시적으로 보면 청

    이 영국을 쫓아낸 것이다.

    사태는 깔끔했고, 대응은 단순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정말 영국 같은 막무

    가내 침공이 있었기에 청 조정도 쉬운 결심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선이 이 일에 얽혀듦으로써 조금 사정이 복잡해졌다.

    이 복잡하기 짝이 없는 상황을 시간 순서로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다.

    영국인은 조선에 개항을 요구했고, 조선은 청에 도움을 청하였으며, 청은 영

    국인에게 조선에서 물러나라 명하며 사업 활동에 제약을 가했다.

    그래서 윌리엄 드루리 제독은 ‘정당한 상업에 대한 방해 및 베트남 해적과의

    결탁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마카오에 대한 ‘군사권 행사’를 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청이 군사적 대응을 하게 되면 일이 애매해진다. 원래 역사에서는

    영국이 그냥 마카오를 침공했지만, 지금은 조선 무역 방해에 대한 항의 표시

    가 중점 사안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경 황제는 대군을 내기가 어려웠다. 당장 여기저기서 빈발하

    는 반란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은 과거에 조선과 관련하여 상당히 중대한 트

    라우마가 있다.

    “천자께서 번방을 아끼시는 마음이 지극하여 신등은 황망함을 이길 수 없사오

    나, 인민이 곤고하고 국고가 탕진되는 병무(兵務)는 거듭 생각해야 합니다.”

    “조선은 예로부터 창칼은 남의 것 쓰기를 좋아했습니다. 조선이 천병의 위엄

    을 빌려 영길리인을 쫓아낸 다음에, 그들이 줄 것은 압록강가의 쓸모없는 섬

    하나뿐인데 과연 이득을 보는 쪽은 누구이겠습니까?”

    말은 공손했지만 가경제가 그 사이 숨겨진 압박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

    석지는 않았다. 이해하기도 쉽다. 각종 암시와 비유로 점철되었다 뿐 그 속뜻

    은 갑자기 이웃 사람 보증 서주겠다는 부친에게 보내는 가족들의 질타와 비슷

    하다.

    ‘성군인 줄 알았던 우리 황제가 설마 만력제?’

    요약하자면 그런 말이었다. 그래서 가경제는 결국 안휘성(安徽省)과 강소성의

    군을 일으키려는 계획을 포기했다.

    청 황제의 전제군주권이 조선보다 훨씬 강력하다 하여도, 신하들의 근거는 더

    강력했던 탓이다. 고려천자(高麗天子) 만력제가 조선을 돕고 나서 명의 상태

    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영국은 중국에 정면으로 도전하지 않았다. 어쨌든 겉으로는 그랬다. 그러므로

    중국도 대군을 내어 치기가 부담스러웠다.

    다만 조선에 그렇게 했다는 공문을 보내고, 조선이 어떻게 나오는지 봐서 차

    후 행보를 결정하자는 상당히 대국스럽지 못한 타협안이 한계였다.

    결국 가장 불쌍한 사람은 포르투갈령 마카오 총독 알렉시오였다. 그는 가발을

    벗어던지고 머리칼을 쥐어뜯으면서 항의했다.

    “조선의 문을 열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 그 빌어도 못 처먹고 뱉어야 할 아편

    팔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라고. 왜 우리한테 시비야? 이 일은 그냥 못 넘어갈

    줄 아시오!”

    자기가 강할 때의 윌리엄 드루리 제독은 실로 여유롭게 사람 복장 뒤집는 재

    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거만하게 말했다.

    “그래요?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관대하게 넘어가 왔는데 이러면 섭섭하지.”

    “뭐야?”

    “중국 지방정부가 자꾸 묵인하는 베트남 해적과 관련하여, 동아시아에서의 동

    인도 회사 독점권 침해에 대한 중국 정부의 물밑 조장이 강력하게 의심된 지

    오래요. 마카오 총독께서 모른다고는 못 하시겠지? 당신네 본국이 이제 황제

    로 모셔야 할 독재자 보나파르트가 지시한 일일 테니. 하지만 우리는 중국 황

    제와 포르투갈 정부를 존중해 왔소. 그러나 그 인내심도 여기서 끝이야.”

    겉보기로는 그럴싸했다. 프랑스와 베트남은 오랜 교유가 있고, 실제로 현 시

    점에서 이베리아반도는 나폴레옹의 영향하에 들어갔으니 말이다.

    물론 있지도 않은 전화선이 갑자기 생긴 건 아니다. 해군 제독인 윌리엄 드루

    리는 영국군의 기밀 첩보도 알고 있었고 나폴레옹의 침공 계획도 인지한 상태

    였으니 지금쯤 이베리아가 박살 났을 거라는 확신에 기반하여 떠들어댈 수 있

    었다.

    다만 알렉시오 총독은 그렇지 않았다. 유럽 상황을 전혀 모르는 그는 기가 막

    혔다.

    “아니, 포르투갈에 무슨 일이 있소? 우리는 아무 관련도 없다니까!”

    “그러시겠지. 얘들아. 총독 각하를 모셔라.”

    1808년 늦여름, 영국 해군은 포르투갈령 마카오에 주둔하고 총독을 유폐시켰

    다. 공식적인 이유는 베트남 해적과 중국, 그리고 프랑스의 결탁을 분쇄하기

    위한 치중(置中)이었다.

    솔직히 나폴레옹의 침공이 아니더라도, 이제 포르투갈은 고려해야 할 외교 상

    대로 취급되지도 않았다. 브라질 밀림으로 튀어서 커피나 심든지 알아서 하라

    는 심정이었다.

    그쯤 되어서야 모이기 시작한 동인도 회사군 함대는 원 역사와 달리 중국 해

    안을 유유히 통과하여 마카오로 들어왔다.

    육상 전투병력이 300여 명밖에 없었던 원래 역사와 비교하면 영국의 압도적

    우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인도 회사군이 정예 병력이라고는 하기 힘들지

    만 중국군에 비하면 훨씬 낫다.

    물론 그들은 동인도 회사군이지 영국군이 아니다. 그러나 윌리엄 드루리 제독

    은 유연한 사람이었다. 드루리는 별 무리 없이 그들을 영국군이라고 생각했으

    며, 마땅히 자신의 지휘를 따라야 한다고 여겼다.

    결과적으로, 파워풀호를 기함으로 하는 해군 제독 윌리엄 드루리는 실로 파워

    풀한 규모의 병력을 거느린 채 마카오와 황푸 일대에 주둔하게 되었다.

    시준은 정약용이 내민 교지를 전권 위임장이라고 설명했다. 레디 소령이 예상

    외의 상황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동안 그는 전생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대부분 부처의 고위 행정관료는 기술적 실무, 예를 들어 전산직 공무원이 보

    고하는 홈페이지 구축 체계나 ISP, 용역 타당성 조사 등의 세부 내용을 이해

    할 수 없다.

    전문성이 없으면 이해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고위 관료들은 그보다 훨씬 중

    요한 일 – 무슨 행사에 참석한다거나, 거드름 피우는 기자들 상대로 비위를

    맞춰 준다거나 – 이 많다.

    물론 시준 역시 기술직 동료들의 일은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몰랐다. 그

    래서 그들이 예산이 10억이 필요하다고 하면 10억으로, 100억이 필요하다고

    하면 100억으로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자기 돈도 아니다.

    조선에도 그 역할을 맡은 집단이 있으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역관이다.

    가문의 폐쇄적 승계로 보호되는 지식의 이권은 그들로 하여금 국부 따윈 우습

    게 볼 정도의 치부를 가능케 했다.

    고위직은 되기 힘드나, 전문성으로 뒷받침되는 나름대로의 자리를 단단히 구

    축했다는 점에서 시준에게도 역관의 조정 내 위치는 이해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시준은 이 시점에서 그 역관들이 직업적 자부심에 참으로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했다.

    김시택을 비롯한 사역원 훈도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낱낱이 보고하라는 그

    쉬운 임무도 하지 못할 지경에 빠져 있었다. 시준이 하는 말의 의미를 도통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약용이 자기의 권한을 밝혀 레디 소령과 로크 선장의 기를 꺾어 놓자 본격

    적인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협상의 주체는 정약용이 아니라 시준 쪽

    으로 시나브로 옮겨가는 듯했다.

    시준은 명백하게 정약용이 하는 말보다 훨씬 많은 말을 하고 있었고, 영어 못

    하는 김시택은 거기에 골몰하여 의심하느라 또 다음 말을 놓치는 식으로 업무

    를 파탄 내는 중이었다.

    “……해서, 자꾸 실수인 것처럼 조약(Treaty)이라는 말을 쓰시는데, 우리가 유

    럽식 외교 관례를 모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일은

    협상에 방해만 될 뿐입니다.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한계선은 외무성(예조) 명

    의의 각서(Memorandum) 정도입니다.”

    “아, 알겠소. 그런데 정말 차관 각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소?”

    시준은 정약용을 힐끗 보았다. 사역원의 첩자들이 있기에 시준은 그런 눈치

    정도만 보내었으나 영국인들의 손짓은 조선인에 비해 역동적이었고, 그래서

    정약용은 어렵잖게 시준의 뜻을 알아챘다.

    방금 전 사실 딱 두 마디만 했었던 정약용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서양인들이 글과 말의 자구(字句)로 교묘하게 사람을 속이는 일은 이미

    알고 있으니, 헛고생하지 말고 명명백백하게 논하자 전해라.”

    그러자 시준은 다시 유창하게 말했다.

    “원래 조선의 말은 옛 스파르타인들처럼 적은 말에 많은 함의를 담고 있습니

    다. 쓸데없는 시비 걸지 말고 계속하시죠, 라고 차관 각하께서 방금 말씀하셨

    습니다.”

    레디 소령은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뭐, 알겠소. 어쨌든 계속하지요. 조선 서북방, 평안도라고 부르는 그 지방의

    매입은 도저히 안 되겠습니까? 사실 노루섬(Deer Island, 장자도)의 개항 하

    나만 가지고는 안정적 상업 활동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평안도 매입이 불가

    능하다면 지금 여기 이 섬(강화도)이나 평양의 개항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인구 밀집지에서 너무 멀면 장사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정약용은 굳건히 버텼다. 지금 영국의 배는 운요호 때나 로드 암허스트 때와

    는 달리 조선에 아주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

    “국토는 사(社)와 직(稷)이 머물고 오곡을 키우는 곳으로서 모두가 우리 성상

    의 것. 돈을 받고 판다는 일은 들어보지 못했다. 하물며 기자(箕子)가 도읍한

    유서 깊은 고을이겠느냐? 또한 너희가 사악한 약을 팔아대니 사람 많은 곳에

    는 드나들게 할 수 없다. 어린아이는 마땅히 물가에서 떨어뜨려 놓는 법이다.”

    “아편은 엄금하기로 약조했지 않습니까.”

    “그 약조를 청국과는 하지 않아서 지금 강남 백성들이 모두 아편에 절어 있느

    냐? 장사치 놈들의 행태라더니! 너희에게 사단(四端)이 있느냐? 의(義)나 신

    (信)이 무엇인지 알기나 하느냐는 말이다.”

    무역은 영국의 정체성이며 아편은 영국 무역의 정수이다. 그것을 부정당한 로

    크 선장이 좀 불편한 기색으로 끼어들었다.

    “그, 너무 과장이시오. 우리 배도 먼 길 항해하는 것보다 가까운 데가 더 좋

    고요.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 북쪽까지 올라가려면 고생이…….”

    레디 소령이 손에 든 나이프로 선장의 주둥이를 찍어버리고 싶다는 눈빛을 보

    내고 나서야 로크 선장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정약용은 교활한 미소를

    지었다.

    “바다의 흐름이 장자도로 몰아쳐 그냥 키만 놓고 있으면 거기로 떠내려온다더

    니만, 그것 역시 거짓이었더냐? 이쯤 되면 나는 그냥 돌아가야겠구나. 도대체

    하는 말에 진실이 하나도 없으니 너희와 더불어 무엇을 논하겠느냐.”

    레디 소령이 얼른 수습했다.

    “표류가 편할 리 있습니까. 그 정도로 물살이 거세니 항해 중 많은 손실을 감

    수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우리들은 문명인이므로 절대 외교 회담에서 거

    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레디 소령이 ‘당신들 아시아인과 다르게 말이지.’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일단 유럽인들도 세계 각국에서 협잡과 사기를 밥 먹듯 하는 데다,

    지금은 영국이 조선에 내밀 카드가 많이 없었다.

    레디 소령은 정약용이 뭐라고 반박하기 전에 그 카드 중 하나를 내밀었다.

    “조선에서 이렇게 통상에 소극적이라면, 우리로서도 조선이 원하는 사항은 재

    고해 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건 우리로서도 대단한 모험을 감수하는 것

    입니다. 청과의 불편한 관계를 각오해야 하니까요. 조선에서도 그만한 성의를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레디 소령이 ‘조선이 원하는 것’이라는 표현으로 에두른 이유는 정약용이 조

    선의 조건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쪽 모두 알고 있었다. 조선이

    원하는 것은 청의 간섭에 대한 방패다.

    청은 조선을 자기들에게서 떼어내려는 영국의 시도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레디 소령의 말은 일부 진실이었다.

    하지만 레디 소령은, 그렇게 되면 청의 보호를 상실하는 조선이 훨씬 불편해

    질 것이며 결국 영국에 귀속될 것이라는 뻔한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다.

    시준은 계획대로 진행되는 협상에 만족감을 느꼈다.

    ‘상황은 FFA(Free for all)다. 청은 조선에게 있어 또 하나의 팻감에 불과해.

    너희가 조선을 들이쳐 포함 외교를 할 수는 없을걸. 광저우가 초토화될 테니

    까. 청 역시 평안도에 대병을 주둔시키겠다거나 할 수는 없지. 여차하면 평양

    을 열어 버리면 그만이니까. 지금 왕…… 순조와 김조순을 비롯한 대신들도 딱

    이 생각이었을 거다. 이게 중립 외교라는 건가?’

    만약 지금의 천조가 명이었다면 조선은 중립 외교를 할 수 없다. 재조지은을

    입은 상국을 배반하는 짓은 충의에 가득한 조선 선비들이 찬성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지금의 상국은 2세기 전까지만 해도 조선에서 야만족이라고 깔보던 여

    진인의 제국. 왕의 결심에는 그런 이유도 들어가 있다. 오랑캐를 속이는 것은

    덕의 손상이라고 할 수 없다.

    물론 관계란 상호적인 법. 조선이 청에 존경을 바치지 않기 때문에 청도 조선

    을 사랑하지 않았다. 만약 지금의 북경에 만력제가 있었다면 진작 광저우의

    영국인은 진멸되고 벌써 명의 대군이 평양쯤에는 와 있을 터이다.

    백성들이 무지스럽게 약탈당할 테니 조선으로서는 사양하고 싶은 사랑이지만,

    아무튼 지금의 조선-중국 관계는 200년 전과 같다고 하기 어렵다.

    이 상황에서 매카트니 자작의 보고서로 인해 일어난 사소한 변화에 시준이라

    는 공무원 출신 사기꾼의 등장, 게다가 최근 영국을 경계한 청의 과도한 조선

    간섭까지 겹쳐 순조는 조선사에 발자국을 새길 만한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시준의 예측은 거의 틀리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히려 이공은 현대인인

    시준의 예측보다 더 급진적으로 행동했다.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서로의 입장 차만 재확인하고 일단 내일 얘기하자는

    말로 오늘의 협상을 끝낸 정약용 일행이 강화도에서 다시 쉬는 동안, 조선 국

    왕 이공은 청의 통보 – 영국의 마카오 침공에 대한 조선의 방침을 결정했다.

    이공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완성된 주문(奏聞)을 읽고 만족에 잠겼다.

    <신이 항상 대황제(大皇帝) 폐하의 지극하신 인덕과 후광 아래 하찮은 동방

    번국의 자그마한 백성들을 맡고 있사온데, 근간에 영길리국의 무리가 들어와

    물건을 사고파는 일을 청하였습니다. 이는 일전 급한 자문으로 아뢴 바와 같

    습니다. …… 하여 신은 그들을 충의로써 엄히 꾸짖고 내쫓으려 하였지만 그들

    은 큰 화포를 쏘아 군민을 살상하니 참혹하고 강성함이 이를 데 없습니다. ……

    이제 폐하의 성지에도 불구하고 영길리국 사람들이 작변하였다 하는 것은 놀

    랍고 두려워 몸이 떨리는 일입니다. 저 서양인들이 천위(天威)를 두려워하지

    않는 바는 고금에 전례가 없습니다. …… 마땅히 신도 약간의 병사나마 내어 저

    들을 진멸해야 할 것인데, 나라가 가난하고 힘이 없어 병선은 다 썩고 수졸은

    까마귀의 무리와 같습니다. …… 다만 힘이 없다고 하여 의를 잊은 것이 아니

    니, 어찌 가만히 있겠습니까? 청컨대 신이 저들의 대박 여러 척을 말로써 달

    래어 붙들어 두고, 나라의 포구를 여는 치욕이 있더라도 상국을 위해 감수하

    도록 하겠습니다.>

    기군망상이라고까지 할 건 아니다. 조정 대신들 중 청을 진정한 군주라 생각

    하는 자는 많이 없었으며, 실제로 그 상주문에도 거짓이 없었다.

    영국이 영종도에 대포를 쏘아 군인을 살상한 것은 사실이고, 청이 도와주지

    않고서야 조선에게 영국 배를 쫓아버릴 수군 함대가 없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

    이다. 정확히는 쫓아버릴 수는 있지만 그다음엔 조선은 거의 망할 것이다.

    그리고 칙서 마지막 구절처럼, 솜씨 좋은 비변사 당상들은 거기에 ‘너희가 상

    국이라면서 태도를 확실히 하지 않아서 이 사달이 났으니 우리는 개항하련다.

    우리 책임 아님!’이라는 말을 포함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이공은 젊은이다운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드디어 역사에 기록될 위대한 군

    주로서의 결단을 내린 것 같았다. 사백 년의 해금을 제쳐버린 그 용단은 아직

    무모함과 용기를 구별하기 어려운 나이의 이공에게 아스라한 고양감을 가져다

    주었다.

    “예부에 보내는 자문을 양요처치사에게도 똑같이 보내라.”

    김조순은 그것으로 과연 충분하겠는지 생각했다. 하지만 이공은 무언가 왕의

    방침을 덧붙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정약용 정도면 조정의 방침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알아서 잘 대응해 줄 터요,

    그래야만이 나중에 이 일을 온전히 정약용의 책임으로 만들 수 있다.

    물론, 잘 되면 이공은 진심으로 정약용을 후대할 작정이었다. 김조순에게 툭

    하면 굴욕을 당하는 박윤수의 행보에서 익히 느낀 것이지만, 지금 이공은 박

    윤수 하나 가지고는 왕권 강화와 친위세력 육성에 영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절멸하다시피 한 남인 세력을 불러들여 키워 주면 그 당파 전체가 이공의 충

    복으로 될 수 있을 터이다.

    이공은 지금 탄핵받아 집에 있는 이서구를 비롯해 다른 남인이나 백탑파(실학

    자) 조력자의 명단도 떠올렸다.

    그 일이 잘 진행되면 노론 벽파는 이제 필요 없다. 생각해 보니 할아버지를

    뒤주에 처박아 굶겨 죽인 게 그들 아니던가. 효도하는 의리로 봐도 손잡는다

    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공은 한 번의 소동에서 국내와 국외 정치를 한꺼번에 조율할 기회를 잡아챈

    자신이 정말 기민하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말

    1. 장자도를 노루섬이라 부르는 이유는 장(獐)이 노루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2. 정약용이 말한 사는 토지의 신, 직은 오곡의 신입니다. 종묘사직 할때 그 사직입니다. 본래 조상신(종묘)을 모셨던 주나라의 신정일치 체제가 중화 개념의 확대에 따라 주변 이민족의 농경신을 받아들이면서 정립된 것이 바로 종묘사직이죠.

    3. 스파르타 사람은 당대 그리스인으로서는 이질적이게도 과묵함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가끔 하는 그들의 말은 많은 은유와 함의를 한꺼번에 담은 촌철살인이었다고 하지요. "와서 가져가 봐라." 라던가.

    4. 포르투갈은 실제로 작중 시점, 그러니까 1808년 나폴레옹에게 박살나고 브라질로 천도합니다. 확실하게 유럽 열강에서 탈락한 때라고 볼 수 있겠네요. 치중이라는 말은 바둑에서 급소를 끊는 수를 말합니다.

    13. 풀리는 빗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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