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12. Free for all(2)
이것은 밀무역이 아니라 국가의 외교 접촉이다. 가는 사람도 당연히 정약용
혼자뿐이 아니며, 통역만 해도 4명이나 된다. 물론 이 통역에 시준은 포함되
지 않는다.
다만 고위 관리는 정약용 혼자였다. 왜냐하면 접촉은 접촉이되 ‘공식’ 접촉이
라기에는 애매해서였다.
원칙적으로 조선은 청 외에는 어떤 나라와도 외교 관계를 수립할 자유가 없
다. 일본과의 관계 역시 중국이 묵인해 주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 이것은 어디까지나 영국인들을 달래어 물러가게 하기 위한 사절이다.
나중에 청을 적당히 뭉개는 말로 속여먹으려면 고관이 우르르 몰려가지는 않
는 게 좋다.
이를테면 윤서동이 파직되고 온 강화 유수 김선(金銑)이나 당장 저놈들을 깨
칠 선조 충무공의 영령이 임하기를 기원하는 총융사 이인수는 모두 여기 올
만했으나, 둘 다 강화도에서 이제나저제나 초조하게 좋은 소식 기다리는 상태
였다.
두 사람 다 종2품으로 정약용보다 품계가 높지만 이 건의 책임자는 정약용이
고, 이 상황에서 두 사람이 끼어드는 것은 걸리적거릴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주위의 억센 수부들이며 총 들고 담배 씹는 영국 병사, 거대하다는 말로는 한
참 부족할 돛대와 엄청난 대포까지 조선 사람들이라면 모두 처음 보는 것들이
었다.
하지만 시준은 정말 그 모든 것에 눈길 하나 안 주고 대수롭잖다는 듯이 갑판
을 거니는 정약용에게 감탄하고 말았다.
고대부터 내려온 예법대로, 갑판에 병사들을 정렬시킨 존 로크 선장이 모자를
벗었다.
“본인이 바로 영국 동인도 회사의 위임을 받은 이 데이비드 스콧의 선장, 존
로크입니다. 이쪽은 일찍이 귀국에 표류했다가 조선 정부와 신민에게 은혜를
입었던 존 레디 소령이지요.”
존 레디와 시준 모두 이 상황에서 서로를 아는 척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
다. 윌리엄 자딘이 시준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지를 수도 있겠으나,
그는 지금 자의와 관계없이 선창에 있다.
시준은 예의상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의 위치는 어디까지나 시동이기 때
문이다. 하지만 사역원 관리들에게는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라는 동작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이런 역할 맡을 줄 알았기에 사역원의 정식 관리는 아무도 안 왔다.
그런 이유로 최근 부친의 상벌에 대해 주청을 올렸다가 찍혀서 대신 떠밀린
생도(生徒) 김시택(金時澤)이 침을 뱉었다. 배 위에서 금기시되는 행위에 선
원들의 안색이 불편해졌다.
“여기까지 와서 건방지게 알아먹지도 못할 짐승 소리로 지껄이느냐. 우린 더
러워서 그 말 못 하겠으니 저 평안도 장사치 놈과 놀아라.”
시준이 깔보이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그를 데려온 정약용 면전에서 이
런 얘기를 하다니, 기강이 어지간히 무너진 모양이었다.
‘허허, 요즘 젊은 관헌들이란! 나 때는 저런 오만한 녀석은…….’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머리를 흔든 정약용은, 그렇다면 이제부터 자기도 사역
원의 체면을 세워 주지 않기로 했다. 정약용은 시준을 앞에 내세우고 본인이
직접 말했다.
“본관이 조선국 예조 참의 정약용이다.”
시준도 냉큼 받아서 통역했다.
“조선 왕국 외무성(예조)의 차관(次官, Under-Secretary of State)께서 여러
분에게 이름을 밝혀 인사하셨습니다. 성명은 정약용이라고 하나, 조선에서는
본명을 부르는 것이 금기시되어 있으므로 중국의 예법을 지켜 주시면 됩니다.”
엄밀히 말해 예조의 2인자는 참의가 아니라 참판이지만, 끼워 맞춰 보자면 참
판과 참의는 정무차관(Parliamentary secretary)과 사무차관(Permanent
secretary)의 업무 분담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원래 외부에 소개할 때에는 자기 내부 직급보다 더 높게 부르는 것이
이 바닥의 암묵적 규칙이다. 과거 업무상 정보기관의 직원들을 만날 때 그들
이 주무관은 사무관으로, 사무관은 과장으로 명함 파는 것을 보았던 시준은
부담 없이 정약용을 차관이라 말했다.
레디 소령 또한 그에 대해 별 이의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소원대로 고관을
보내 준 조선의 성의에 보답하기 위해, 그는 중국식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차관 각하(Your excellency). 동인도 회사군 소령 존 레디
입니다. 시기가 좋지 않아 배 위에서 뵙는 것은 유감스럽게 생각하나, 각하를
최고의 예우로 모시기 위해 선장실에 자리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드시죠.”
정약용은 시선을 존 레디에게 고정한 채 시준에게 물었다.
“뭐라고 했지?”
시준은 부루퉁한 표정의 사역원 생도들을 보고 간단히 말했다.
“밥 먹고 얘기하잡니다.”
“그거 예를 아는 오랑캐들이로구나.”
조선 사절단은 데이비드 스콧호의 선장실로 걸어들어갔다.
그간 왐포아에서 불안하게나마 보급이 왔고, 원체 큰 배라서 데이비드 스콧의
선장실에는 육지 부럽지 않은 식사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유럽에서는 식사 자리가 사교의 무대이며 회의의 산실이고 논쟁과 토론의 장
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약간 달랐기에 정약용 이하 사절단은 시준을
제외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존 로크 선장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가볍게 농담을 던졌다.
“선박이라는 여인은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질투가 심하지요. 배에 여자가 탈
수 없으니, 불가피하게 제가 파티의 여주인(hostess)이 되겠습니다. 차관 각
하께서는 이쪽으로.”
유학 경험이 있는 시준은 영국식의 고풍스러운 식사 예절도 피상적으로나마
알았다.
“선생님께서 저자의 옆자리에 앉으셔야겠습니다. 서양국 사람들은 주인의 옆
자리를 상석이라고 여깁니다.”
“그리하겠다.”
시준은 영국에서 식사에 대한 좋은 기억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이 시점의 영
국은 그런 평가까지는 받고 있지 않았다. 특히 지금 존 로크 선장이 식탁 중
앙에 자랑스럽게 내어놓은 로스트 비프는 프랑스인을 제외한 온 유럽인의 찬
사를 받는 영국의 자부심이었다.
“네게 이야기는 들었다만, 칼을 식탁 위에 두고 고기를 잘라서 먹는다니 실로
호인(胡人)의 풍속이로다.”
로크 선장과 레디 소령은 정약용이 별다른 질문이나 웃기는 실수 없이 능숙하
게 칼질을 하는 모습에 감명받았다. 그리고 자신의 과외가 잘 먹힌 모습을 본
시준도 감명받았다.
사역원 생도나 예조의 하급 관원들 역시 멍청하기만 한 자들은 아니었다. 그
들은 정약용의 모습을 모범으로 삼거나, 그도 여의치 않으면 자신은 원래 소
식을 한다는 태도를 취했다.
식전주로 나온 와인 – 원양 항해선 위에서는 귀한 물건이다 –의 맛에도 별로
놀라지 않은 채 코로 길게 숨을 내쉬어 향을 음미하는 정약용의 모습은 옷만
다르다면 유럽 상류층 신사라고 해도 믿을 만했다.
존 레디 소령은 새로운 경의를 느끼며 용건을 꺼냈다. 저 멍청한 선장이 아까
의 조언을 망각했는지 싱글벙글하며 고기나 처먹고 있으니 자기가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우선 일전의 사고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조선군이 적대적인 행동을
취하자 민간인인 우리들로서는 놀라서 자위권을 행사하려 했고, 그 와중 발생
한 의사소통의 실수가 이런 결과를 초래하였으나 이는 결코 우리의 본뜻이 아
닙니다. 우리 국왕과 동인도 회사의 의지는 일관되게 우정과 친교에 있습니
다. 외교와는 절대 무관한, 불운한 사고임을 아무쪼록 알아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정약용은 시준이 말한 대로, 심지어 어구까지 거의 틀리지 않고 진행되는 이
들의 논변에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조선 사람의 상식과는 달랐다. 만약 정약용이 저들의 입장이라면, 자기들이
잘못한 이런 일은 아예 말하지 않거나 나오더라도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없는
것처럼 뭉개버렸을 터. 상대가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말을 꺼낼 때 조선인들
의 상투적 수단은 못 들은 것처럼 무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준은 영국인들이 그 일을 바로 꺼내되 말을 교묘하게 틀어 자기들은
여전히 우호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리라 말했다.
이 수단의 장점은 얘기가 빠르다는 것이다. 먼저 인정하는 척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조금 부드럽게 포장하여 내놓음으로써 상대가 화낼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말에 휩쓸리면 이 외교적 부채에 대해 아주 값싼 이자만을
치르게 하는 손해가 발생한다.
당시 시준은 이를 알려주며 그 대처법 또한 간략하게 말했다.
‘그러므로 선생님. 그들에게 똑같이 되돌려주면 됩니다.’
그래서 정약용은 남은 식전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로크 선장이 큰마음 먹고
내놓은 이 아몬틸라도(Amontillado)는 셰리 술이라 도수가 높은 편이다.
하지만 정약용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붓통에 가득 담긴 정조의 갑질
도 견뎌낸 인간이며, 그의 선배라고 할 수 있는 연암 박지원 또한 연경에서
‘종지만 한 술잔’에 마시던 중국인들을 비웃으며 ‘조선 사람의 술 마시는 법
을 보여’ 청나라 애주가들의 경의를 받은 적이 있다.
두 영국인이 눈을 둥그렇게 뜨는 동안, 정약용은 독한 셰리주를 물 마시듯 하
고 잔을 탕 내려놓았다.
“저 드넓은 영종도 바닷가와 망망대해를 놔두고 하필 사람을 맞춘 일이 빗나
간 것이라니 삼척동자도 믿지 않을 소리다. 외교라는 것은 대관절 무엇이냐?
우리는 지금까지 큰 나라를 성심으로 섬기고 작은 나라는 이웃의 정으로 교통
했다[事大交隣]. 북쪽에 소금을 주고 남쪽에 서책을 주어 어루만지며, 표류한
자가 있으면 따뜻한 국과 방을 내어주고 터럭 하나 상하지 않게 하여 돌려보
내는 구례가 이미 사백 년이다. 포를 쏘아 사람을 죽이고 우애를 논한다는 가
소로운 일은 어느 서책에도 없었다!”
그렇게 훈계한 정약용은 시준이 알려준 말을 읊었다.
“이 일을 빼놓고 너희가 바라는 소위 통상이니 개항이니 하는 일을 논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심대하게 잘못된 심산[serious and far-reaching
miscalculation]이다. 너희는 이 쟁단에 대해 마땅한 값[cost of military
conflict]을 치러야 할 터이다.”
시준의 통역을 들은 두 영국인은 긴장했다. 동양에서 들을 일이 없을 거라 생
각했던 유럽식 외교 용어였다.
생각지 못한 답변에, 동인도 회사의 전권을 위임받은 레디 소령은 조금 다른
방향에서 기선을 제압해 보기로 했다.
“물론 저희는 실수에 대해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저는 동인도 회
사로부터 모든 권한을 위임받았으며, 이 특허장의 집행인으로 지정된 사람이
니 저의 말은 곧 영국 정부의 대조선 외교정책을 대변합니다. 그리고 차관 각
하께서도 같은 자격을 갖추어 저희의 사과를 받아들이실 준비가 되신 것을 믿
어 의심치 않습니다.”
레디 소령은 동양의 외교 관례를 안다. 이 동아시아에서 외교 사절은 말 그대
로 군주의 심부름꾼. 전제 군주국에서 최고지도자 외의 다른 신민은 모두 노
예일 뿐이며, 아무리 신분이 높다 해도 그는 군주의 의사를 그대로 받아 읊는
것 외에 어떤 권한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레디 소령은, 정약용 역시 자기가 약간만 이야기를 다변화시키면 돌
아가서 확인해야겠다는 말밖에 할 수 없을 것이고 그 사이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정약용에게 지금 당신의 권한이 대체 얼마냐는 질문을 한 것이다.
그리고 정약용은 미소를 애써 감추었다. 상황은 그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조선 역사상, 아니, 동아시아 역사상 최초일지도 모르는 전권
대사(全權大使)였기 때문이다.
이번에 조선 최초의 양요처치사(洋擾處置使)로 임명된 예조 참의 정약용은 다
음 순간 레디 소령의 표정이 어떻게 변할까 궁금해하며 식탁 위의 작은 쇠스
랑(포크)을 들었다.
그 시각, 훈련 대장 김조순과 이조 참판 박윤수는 국왕 이공과 마주앉아 있었
다. 아파서 집에 간 이시수 대신 좌의정이 된 작년 우의정 김재찬(金載瓚)도
자리했다.
직함으로만 보면 뭔가 이상한 조합이나, 사람으로 보면 당대 조선 최고 수뇌
부의 회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공이 말했다.
“내가 사적을 그윽이 살펴보건대, 외국에 사신으로 나가 기개를 떨친 자들은
모두 위로 군주가 치욕을 당하지 않게 하면서도 아래로 자기의 뜻을 펼치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소.”
신하들은 잠자코 엎드린 채 왕의 말을 들었다.
“과거 조송(趙宋) 진종(眞宗)이 백은과 견포 백만을 말하였으나 구래공(寇萊
公, 송의 명재상 구준)은 소매에 칼을 쥐고 을러대어 합쳐 삼십만의 세폐로
거란을 물러가게 하였소. 이로써 본다면 신하에게 크게 허락하고 그 방도는
제가끔 살피도록 하는 것이 나라에 유익하니, 장수가 밖에 나가 있을 때 군주
의 명령도 듣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이것을 말한 것이오. 과인(寡人)이 어찌
이를 본받지 않을 수 있으리?”
왕이 오랜만에 겸허한 호칭으로 자신을 일컬은 뜻을 김조순은 놓치지 않았다.
“원휴(元休, 송 진종의 이름 중 하나)는 선대의 뜻을 잇기에 부족하여 밝지
못한 군주인데 감히 어떻게 전하께 비하겠습니까? 회음후(淮陰侯)를 제왕(齊
王)에 임한 고조의 결단이 이것과 같으며, 우리 동방의 사적으로는 옛날 변란
때 졸오(卒伍)에서 단번에 충무공을 발탁하시고 삼도의 수군을 통제케 하신
선조대왕의 단안을 이어받은 것입니다.”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 중 왕의 뜻을 모를 사람은 없다. 이공은 정약용을 제
외하고 아무도 서양인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에게 이례적으로
많은 권한을 주어 파견하였다. 정약용이 옥새까지 들고 갈 수야 없었지만 그
는 이제 왕의 이름으로 영국과 협상할 수 있다.
요체는 영국과 화친하여 물러가게 하고, 청이 자기들 덕이라며 거들먹거리지
않도록 오랑캐의 소란을 가라앉혔다[洋擾處置]는 확실한 증거를 남기는 것이다.
다만 장자도를 못 얻은 청은 네가 감히 사사로이 외국과 교통했느냐며 시비를
걸 게 뻔하므로 이를 솜씨 있게 닦아서 포장하는 솜씨도 필요하다.
이러한 대강의 목표를 이룬다면 수단은 묻지 않는다. 조선사에 없었던 파격적
권한 위임이었으며, 그에 걸맞게 사상 초유의 직책도 만들어서 내려 주었다.
물론 왕이 지정한 한계선은 있다. 유럽식으로 말하면 방침이나 훈령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무엇을 더 얻어오고 더 잃는가는 정약용의
책임하에 진행된다.
이공이나 김조순이 현사(賢士)를 알아보고 전폭적으로 지지해 준 것이라면 참
아름다운 이야기겠지만, 당연히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해, 잘 모르는 일에 뛰어들다가 나중에 책임지기 싫은 왕과 대신
들이 정약용이라는 도마뱀 꼬리를 내민 것이다.
그러다가 정약용이 감당 안 되는 조약 맺어 오면 어떻게 하느냐는 의문은 당
대 동아시아 문화권다운 방식으로 납득되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정약용의 목을 쳐버리고 조약을 무시하면 된다. 그 시점
에서 조약은 ‘권한 없는 자가 멋대로 한 일’로 바뀐다.
19세기 유럽인들이 치를 떨었던 동아시아식 외교전술의 정수가 젊은 국왕 이
공과 노련한 대신 김조순의 합작으로 발휘되었다.
이제 분위기 다 파악한 박윤수도 쐐기를 박았다.
“정약용은 서양인들에게 익숙하니, 그들과 친할지도 모릅니다. 돌아오거든 같
이 간 관헌들로 하여금 일을 개좌(開坐, 자세하게 조목조목 나열하여 보임)케
하여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을 자세히 살펴야 마땅합니다.”
굳이 쓸데도 없는 사역원 생도를 보낸 이유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김시택은
사행길에 제때 들어온 자기 아버지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할 상이 돌아가지 않
았다며 떼쓰다가 처벌을 받았는데, 김시택이 이 일을 잘 처리한다면 그도 원
하는 대로 그 아비에게 상 하나쯤 안겨줄 수 있을 터이다.
노론이기는 하나 남인에 관대한 편이었던 김재찬이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허나 정약용이 군주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최(最, 상위 고과)
로 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차후의 형세를 보고, 대국과의 일도 방도를 찾
게 한다면 성상의 명철한 안목은 더욱 빛날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치지 말고 골치 아픈 청과의 협상에도 정약용을 써먹자는 그 제안
에 왕도 찬성했다. 어차피 조선이 개항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은 근
본적으로 장자도를 요구한 청나라 때문이니 문제의 뿌리는 그곳에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줄기를 잘라내는 것보다는 뿌리를 제거하는 것이 어려운
법이다.
오해하기 쉽지만, 왕과 대신들이 정약용을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잘 되면 당
연히 그들도 좋다. 다만 그 일이 너무 어렵기에 자기들이 하기는 싫은 것뿐이다.
국왕 이공은 남의 돈으로 도박하는 자의 편안함을 느끼며 논의를 마무리했다.
“뭐…… 따라간 예조 관헌들이 아뢰는 바를 보고 다시 논하도록 하겠소. 늦어도
며칠 안으로 모든 일은 명백하게 밝혀지고, 마땅히 해야 할 바도 가려지겠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위험부담을 최소화한 이 곡예가 성공하면 오랑캐 여진
족의 간섭은 약화되고 이 조선 안에서 유일무이한 군주가 될 수 있다. 이공은
그렇게 생각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왕의 예상은 틀렸다. 정약용이 협상하러 강화도로 건너간
그다음 날, 성경부에서 화급한 공문이 도착했다.
황포(왐포아)의 영국군이 지경을 침범하여 작변하였기로, 황제가 양광총독 오
능광으로 하여금 대병을 일으켜 토벌케 하였다는 내용이었다.
작가의 말
1. 사무차관의 영어 이름이 '퍼머넌트(영속적인)'인 이유는 정계와 내각에 개편에 따라 바뀌지 않는 실무자였기 때문입니다.
2. 18세기경 영국의 식사 예절은 빅토리아 시기의 그것과는 약간 다르지만 기초를 쌓았다고는 할 수 있겠군요. 로스트 비프는 실제로 당대 유럽인들이 찬탄하는 영국 요리 중 하나였습니다.
3. 셰리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술의 종류 이름입니다. 대표적 식전주 중 하나로 도수가 와인 중에서는 높은 편인 것이 특징이죠.
아몬틸라도 술은 애드거 앨런 포의 '아몬틸라도 술통' 이나 카렌 블릭센의 '바베트의 만찬' 등 여러 매체에서 고급주로 등장하여 익숙하실 겁니다. 스페인 아몬티야도 지방의 술로, 이 시대에는 역사가 오래된 술이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18세기에 제법이 확립되었거든요.
4. 구준이 협박한 사람은 진종이나 요나라가 아니고 협상 사신으로 간 대신 조이용이었습니다. 30만 이상으로 체결해 오면 죽여버리겠다고 했죠. 실제로 칼을 들이댄 건 아니지만요.
12. free for all(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