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36화 (36/284)

36화

12. Free for all(1)

1854년, 거문도에서 조선인과 교류를 나누었던 러시아 함대제독 푸차틴

(Putyatin)은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다가 함경도 영흥부(永興府)에서 함포를

쏘아 어민을 살상한다. 조선 정부는 이에 대해서 책임자를 논죄하였을 뿐 러

시아에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

특별히 대응할 방법도 없기는 했지만, 죽은 사람의 신분이 ‘큰일’로 발전시킬

필요까지는 없을 만큼 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얘기가 달랐다. 병사들은 그렇다고 쳐도 엄연히 조정의

벼슬아치인 군관 황선문이 포탄에 맞아 죽은 일은 작지 않은 무게로 다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선 정부가 발칵 뒤집혔다고 하기에는 좀 부족했다.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인정하지 않을 사실이지만, 사람의 목숨에는 가격차가

있다. 그것도 아주 세세하게. 황선문의 경우 어민 몇 명보다야 중한 목숨이었

으나 그의 죽음에서 인간적인 상실을 논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더 충족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황선문의 죽음은 이조 참판이자 비변사 제조 박윤수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정도의 무게로 딱 알맞았다.

“이박(異舶, 이양선)의 출몰이 근래 나라의 깊숙한 곳까지 빈발하여 여러 차

례 논의가 있었는데, 어지러운 말로 성총을 흐려 실기(失期)하게 한 자가 있

습니다. 결국 저들의 흉악한 성정이 이제야말로 백일하에 드러났으니, 바라건

대 전하께오서는 안으로 강기숙정(綱紀肅正)하시고 바깥으로 굳셈을 보여 적

을 물리치소서.”

김조순은 침묵했다. 파멸적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는 그의 심기를 감추려면 무

표정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분명 어제까지 김조순은 묘당의 논의에서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근거와 군대

가 모두 빈약한 상태에서 결사 항전을 주장하는 박윤수와 벽파에 맞서, 시파

와 남인 잔존세력(안타깝게도 이때 이서구는 탄핵받아 집에 있었다)은 이성적

인 태도를 강조하며 저들을 물러가게 할 평화적 방안을 상주했다.

물론 전면 개항은 아니었다. 시준은 자기가 미래인만이 발휘할 수 있는 시대

를 꿰뚫는 명철로 김조순을 놀라게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말 몇 마디

로 쇄국을 뿌리째 벗어던질 만큼 조선의 의사 결정 체계는 허술하지 않다.

김조순이 여러 정황과 의견을 종합한 차후 대책의 대강은 다음과 같았다.

일단 청에 아뢴 뒤 통상하겠다고 약조하고 돌려보낸 다음 황제의 힘에 의지한

다. 대국은 체면상 조선을 도와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요, 혹시 그러지 못하

더라도 이 기회에 저들과 말을 주고받아 허실을 탐지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청이 요구한 장자도 할양 건은 영국을 상대할 때와 본질적으로 같은 방식을

써서 방어한다. 조선 스스로 영국인을 물러나게 한다면 황제의 명분도 약해진

다. 그렇게 이 핑계 저 핑계로 시간만 끄는 것이다. 그거라면 조선의 주특기다.

분명히 어제까지만 해도, 김조순은 이 논리를 사용하여 박윤수를 생각 없는

전쟁광으로 몰아붙일 수 있었다.

그것을 뒷받침한 것은 김조순이 ‘충정으로 깊이 헤아려서 조사한’ 여러 서양

국의 사정이었다. 시준이 이야기해 준 것들은 당연하게도 정약용의 헌책과 비

슷했고, 그래서 국왕 이공 역시 김조순과 비슷한 생각이었기에 박윤수는 홀로

싸워야 했다.

하지만 미친 영길리인들이 대포를 쏴서 군관을 참살함으로써 사세는 역전되었

다. 김조순은 패를 너무 일찍 꺼내든 것에 대해 땅을 치고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국왕 이공 역시 복잡한 심정이었다.

어지간하면 박윤수를 두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정약용의 헌책에서 야심

의 가닥을 잡아냈다. 조선의 왕이라면 다 한 번쯤은 해 본 생각. 바로 자주독

립(自主獨立)이었다.

영국을 이용해 청의 간섭에서 벗어날 방도를 찾는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공은

나름대로의 각본을 다 짜 둔 상태였다.

이공 또한 청이 조선을 위해 대병을 일으켜 영길리국과 전면전쟁을 일으키는

위험을 감수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청은 칙서와 허세로 점철된

몇 가지 삽질을 한 뒤에 저절로 해결되기를 바라며 주저앉아 있을 터요, 그러

면 조선으로서도 명분이 선다.

청에는 ‘영길리인의 대박이 강대하여 우리로서는 대적할 수 없었다. 평안도의

항구를 열겠다.’고 말하여 보호의 의무를 저버린 종주국에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영향력을 약화시킨다.

가경 황제가 이미 영국인들에게 물러나라고 명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건

청 입장에서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개망신이다.

청은 조선에게 불충의 죄를 묻겠지만, 그다음부터는 ‘그러면 영국인을 너희가

쫓아내 보시든지’ 하며 드러누울 생각이었다.

그러고 나서 저들이 바라는 대로 장자도 부근에 작은 상관이나 열게 하여 주

면 몇 년 전 어쩔 수 없이 허락했던 평안도 경내의 청 관리 출입도 무력화시

킬 수 있다.

한마디로, 옛 여진족처럼 영국인을 번리(藩籬, 울타리)로 삼아 청을 견제해

보겠다는 구상이었다.

조선 국왕이 이 정도의 원한을 쟁여두고 있을 줄은 몰랐던 청국의 실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부는 괜히 남의 나라 인사권에 참견하지 않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영길리인들이 조선인을 살상한 이 상황에서, 만약 김조순을 편들었다

가는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

첫 번째는 이공이 청국과 같은 짓을 한다는 문제였다. 자기 나라 백성을 보호

하지 않는 군주에게 충성을 바칠 가치가 있는가 하는 단순한 물음은, 꼭 조선

국왕만 가질 수 있는 의문은 아니다. 최악의 경우 청나라처럼 반란에 시달려

야 할지도 모른다.

두 번째는 박윤수가 갑자기 눈치를 상실한 것 같다는 점이었다. 이공은 정약

용을 인견할 때 박윤수도 같이 부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지금 이공의 마음 자체는 그래도 어떻게든 영국인을 포섭하려는 쪽으로 기울

어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필 박윤수가 물러날 곳 없는 결사항전을 주장

하고 있어서 곤란해졌다.

박윤수를 버린다면 이공은 간신히 만들어 낸 친위세력을 잃게 된다. 박윤수가

명백히 잘못된 의견을 주장한다면 또 모르겠는데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 이공

을 골치 아프게 했다.

국왕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봉례랑을 돌아보았다.

“예조에서는 아뢸 말이 없는가. 형세가 화급하니, 묘계가 있는 자는 재신뿐만

아니라 누구든 나와서 아뢰라 일러라.”

‘야. 담당자 누구야? 나와 봐.’라는 말에 당황하지 않는 사람은 두 부류다.

생각이 없거나, 아니면 준비가 되었거나. 정약용은 당연히 후자였다.

여기에서 왕이 예조 판서 김이도(金履度)를 찾았다고 생각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봉례랑이 다시 한 번 각사에서 아뢸 말이 있는 자는 나오라고 외치자

조선국 예조 참의 정약용은 경력직다운 침착한 자세로 왕 앞에 엎드렸다.

“과거 이제(夷齊, 백이와 숙제)가 충효를 설하였어도 주 무왕(武王)을 막지

못했고, 동공(董公)이 명분으로써 간하였어도 한 고조(高祖)의 군사들이 그저

흰 상복을 입게 하는 데 그쳤을 뿐 결국 군사들이 무기를 버리고 흩어지게 하

였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다만 우리 동방에는 그 사적이 있으니, 옛

일을 돌아보건대 여조(麗朝, 고려) 때 내사령(內史令, 서희)은 대요(大遼)의

강대한 군세가 스스로 깃발을 말고 진채를 거두어 물러가게 하였는데 이는 창

검과 군병이 아닌 의리와 득실로 행한 일이었습니다.”

이공은 희망을 가졌다. 정약용 역시 예상하던 대로 화평을 주장하는 것 같아

서였다.

“그러나 중화의 덕이 어찌 동쪽 땅만 못하겠습니까? 옛 현인들이 결국 전쟁을

막는 데에 실패 본 것은 의리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실안(實案)의 이야기를 하

지 못해서입니다. 백이와 숙제는 다만 둘이서 무왕의 수레 앞에 무릎을 꿇었

을 뿐이지만, 서희의 뒤에는 동방의 수백만 백성이 있었습니다. 소손녕(蕭遜

寧)으로서는 고려의 병사를 다 죽일 수도 없었던 처지에 허풍을 친 것이므로,

서희가 그의 황제에게 아뢸 말을 주자 곧 물러갔던 것입니다.”

서희가 강경 일변도로 대들었다면 요나라는 체면 때문에라도 군사 행동을 하

지 않을 수 없었을 터요, 만약 고려가 아무 힘 없이 옛 고구려의 땅을 주장하

였다면 소손녕도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명분과 실력은 둘 모두가 양립할 때 최대의 효과를 발휘한다.

가장 먼저 김조순이, 그리고 그다음으로 국왕 이공이 깨달았다. 조선에게 영

국에 맞설 실력이 있는지는 불확실하여도 최소한 무장 상선단에 멸망할 정도

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명분은 저들 영길리국 사람들이 주었다. 다들 골치 아픈 일이라고 생

각했지만 오히려 이것은 기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제한적 개항을 한다고 치면 정약용의 사불가론을 지켜야 하는데 이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당시 영국인은 말하자면 제국주의적 약탈의 스페셜리스트. 이런

협상에는 이골이 났다. 아무리 정약용이 똑똑해도 경험이 없는 조선인들로서

는 쉽지 않다.

허나 먼저 까닭 없이 대포를 쏘아 사람을 살상한 저 영국인들은 한 발 양보해

야만 하는 처지에 빠졌다.

당연하지만 영국인이 도덕을 안다는 말이 아니다. 영국인들은 그런 것 모른

다. 다만, 명분에다가 조선의 결사 항전 의지까지 더해지면 계산기를 다시 두

드려 볼 것이라는 의미다.

잠시 생각해 본 이공은 잘만 되면 조선에 손해가 없게 하면서도 청에 대한 견

제라는 목적은 달성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다. 그는 이 상참에서 자신의 역

할을 수행했다.

“우리에게는 열성조께서 물려주신 수많은 병선과 수군, 그리고 숙묘조(肅廟

朝) 때 선견지명으로써 지은 여러 돈대가 있다. 그렇다면 누가 서희의 일을

다시 할 수 있겠는가?”

정약용도 묘당이라는 무대에서는 능숙한 배우였다.

“신이 재주 없으나 해관(該官, 담당관원)으로서 어찌 감히 몸을 사릴 수 있겠

습니까? 바라건대 신을 보내주시면 그들을 명분과 이해로써 설복시키도록 하

겠습니다.”

김조순도 여기서부터가 자신의 배역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어차피 자신이 협

상을 주장했다는 사실을 주워담을 수는 없으니, 이제 정약용을 믿고 도박을

해야 한다.

‘그 제자를 키워 낸 것이 정약용이라면, 기이한 수가 있을 터이다!’

김조순도 나아와서 정약용의 말에 찬동했다.

“천자는 천하 만방을 다스리고 왕후는 번방의 일을 보살핍니다. 이번 서양국

오랑캐의 소요[洋擾]는 하찮은 일이라 할 수 있으므로, 다만 전하께오서 성총

으로 결단하시고 동지사에 즈음해서 아뢰면 되는 것입니다. 새삼 천자의 칙이

실행되기를 재촉하여 천심(天心)을 언짢게 하고 대국 관헌을 수고롭게 할 필

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조선 역시 장자도를 청에 내어줄 필요가 없다. 우리가 알아서 해결하

고, ‘재촉하지 않으면 실행되지도 않을 천자의 칙’ 따위 종이호랑이라는 것을

보여주면 그만이다.

그러려면 청이 갑자기 조선에 대한 사랑에 넘쳐서 본격적인 군사행동에 나서

기 전에 이 일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왕이 화친으로 기울 줄은 몰랐던 박윤

수가 당황하여 지금까지의 전개를 되짚어 보는 동안 어명은 즉시 실행되었다.

수많은 암투와 모색, 이해관계의 교차 끝에 확정된 조선 정부의 방침은 영국

에 대한 제한적 개항이었다.

그러므로 상황은 일단 김조순의 신승(辛勝). 전쟁을 막고 조정 관헌들의 스트

레스도 막은 김조순은 간신히 비국과 대외 정책의 주도권을 지킬 수 있었다.

그렇다고 왕이 박윤수를 무시한 것은 아니다. 국내 정치상 이공은 박윤수에게

아직 더 무게를 실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런 결과로, 동인도 회사 사람들은 강화도 앞바다에서 요란하게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며 가끔 대포를 쏘아대는 4척의 조선 대전선을 마주해야 했다. 황해

과 공충 수영에서 급파된 2척과 경기수영의 2척을 모두 합한 것이다.

대포가 빗나간 이후로 윌리엄 자딘을 비롯한 대조선 유화파의 공격에 시달리

던 존 로크 선장은 다른 사람의 조언을 열린 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인생의

교훈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로크 선장은 존 레디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건…… 레디 소령, 어떻게 보시오? 특별한 종류의 주술 의식인가?”

“선장. 지금 상황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갑니다만, 저건 누가 보아

도 무력시위 아닙니까.”

데이비드 스콧호에 비하면 여전히 초라하지만, 대전선이라는 이름을 달려면

그래도 저판이 50척 이상은 되어야 한다. 의외로 이 나라에도 포함(gunboat)

정도는 있었던 것이다.

레디 소령은 한 달간 진행된 왐포아의 긴장 상태와 지금 상황을 가늠해 보았

다. 결론은 어렵지 않았다.

‘전면전으로 나올 만큼 저들이 바보는 아니겠지. 왜냐하면 저걸로 충분하니까.’

레디 소령은 조선군이 청과 연합하여 저들의 해군으로 영국인을 양쪽에서 봉

쇄한다면 영국 함대는 전투력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퇴각해야 할 거라 예상

했다.

물론 영국이 작정하면 조선과 청의 함대는 끔찍한 피해를 입을 것이다. 허나

그런 건 이쪽에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고, 동인도 회사의 취향도 아니다. 지

금 안남에서 깨지고 마카오에다 화풀이하려 한다는 그 드루리인가 뭔가 하는

얼간이와 마찬가지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초래한 책임은 거의 절반 이상 로크

선장에게 있었다. 그래서 레디 소령의 표정은 싸늘했다.

그것을 읽었는지 로크 선장도 헛기침을 했다.

“어흠. 배가 너무 작아서 내가 미처 그 생각을 못 했군. 허나 왜 거의 한 달

은 지난 이제 와서? 무력을 과시할 것이면 더 큰 배로, 우리가 오자마자 했어

야 할 것이 아닌가.”

“조선 정부의 방침이 정해졌다는 것이겠지요.”

“그 방침이라는 게 전쟁이라면, 저들은 후회하게 될 텐데.”

허세가 애잔했다. 레디 소령은 말도 하기 싫다는 표정으로 턱을 괴었다.

“그리고 당신도 후회하게 될 겁니다, 선장. 저들은 그런 머저리가 아니에요.”

‘적어도 당신보다는 똑똑하지.’라는 말까지는 예의상 도저히 할 수 없었지만

로크 선장은 그 말을 들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제부터 명분을 갖춘 조선 상대로 개항과 불공정 무역조약을 요구한다는, 아

주 어려운 처지에 빠져버린 레디 소령이 그 짜증을 담아 쏘아붙였다.

“무력시위라는 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싸울 뜻이 없다는 가장 강렬한 표현입

니다. 저와 내기하셔도 좋습니다만, 아마 저 배 중 하나에는 협상 사절이 타

고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뭐…… 좀 돌아오기는 했지만 계획대로 된 것 아닌가?”

“진지하게 조언하죠. 당신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의 기억이라도 떠올리는 게

좋을 거요. 억지로라도 애통한 표정을 만들라는 말이오. 난 준비하러 가보겠

습니다. 또 예포 같은 걸로 겁준다고 허세 떨다가 사고 치지 말고 그냥 조용

히 배로 초대하는 게 좋다고 생각됩니다. ‘선장’.”

로크 선장의 얼굴이 구겨지거나 말거나 레디 소령은 홱 돌아섰다.

레디 소령의 예측은 정확했다. 아주 이례적이지만, 조선국 예조 참의 정약용

은 직접 전선에 타고 나오는 멸사봉공의 정신을 보였다.

이 시대의 목조 선박이라는 게 그냥 수틀리면 아무 이유도 없이 ‘나 죽을게’

하며 침몰한다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영국인이 없더라도 이것은 멸사봉공이

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정약용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시준은 그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일반적인 현대인이라면 벌써 몇 번은 도주를 시도하거나 졸도했을 것이다. 복

지 혜택을 받았고 성격이 침착한 데다 자라면서 험한 꼴 많이 본 시준이라 그

런 추태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도 지난한 상황이었다.

진짜 군사적 긴장. 평소에는 이웃에게 주먹질하는 것도 삼갔을 선량한 사람들

이 아무렇지 않게 서로 무수한 목숨을 종말 처리할 수 있는 광기의 구역이다.

이 현장에 와 보니 그 무게의 차원이 달랐다. 역사상의 조선군이 창칼 번득이

며 달려오는 적군을 보았을 때 대부분의 경우 도주를 선택했던 일도 납득이

되었다.

화량진일전선(花梁鎭一戰船, 화량진은 경기 화성 인근의 옛 월곶진을 말한다)

에서, 옛 선현들의 자취를 살피며 마음을 가다듬던 정약용은 제자의 잔소리가

짜증스러웠다.

“선생님, 대포만이라도 그만 쏘면 안 되겠습니까? 저들이 만약 너희가 쏘았으

니 우리도 쏜다 하고 포를 놓았다가는 이런 쪽배 따윈 단 한 방에 나뭇조각과

살덩이밖에 남지 않을 겁니다.”

시준은 서양 군함이라면 당연히 작렬탄을 상비했을 거라 생각했으나, 펙상 대

포(paixhans gun)는 15년은 있어야 발명되는 최신 기술이다. 아무리 18파운드

대포가 무시무시해도 대전선을 일격에 가루내기에는 약간 모자라다.

그러나 일격에 전투 불능이 되는 것은 같았기에 시준의 염려도 아주 황당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약용은 그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영길리국 사람들이 바보라도 되느냐? 물보라 하나 치솟지 않았으니 저들도

우리가 탄환을 넣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터요, 그러면 우리 뜻을 헤아릴 게

다. 왜 이리 침착하질 못하고 야단이냐? 설마 이제 와서 목숨이 아깝기라도

한 것이냐?”

‘아니, 당연히 아깝지. 이 양반이 대체 무슨 소리야?’

마치 시준이 나라 위해 목숨 바치겠다는 맹세라도 한 것처럼 꾸짖는 정약용의

말은 시준을 벙찌게 만들었다. 정약용이 말했다.

“영묘조 때 황해도 오차포(吾叉浦)에 청인들이 몰래 고기 잡으러 들어와 노략

질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도 첨절제사 임정윤(林廷潤)이 이렇게 악기를 불

고 대포를 쏘아 그들을 쫓아내었다. 이 일은 엄정한 정의에 따른 것이라 대국

에서도 그 뒤 힐책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느니라. 조정의 일은 구례(舊例)

를 그 으뜸 되는 틀로 삼으니 너도 이 기회에 배워 두거라.”

시준이야 배울 것도 없이 안다. 원래 공무원의 일처리는 전례를 참조하는 것

이 가장 먼저다. 창의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전례대로 처리하지 않을 경우 그

이유를 대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로 민원인과 상관에게.

그건 매우 귀찮다. ‘관례대로 처리했을 뿐’이라는 말이 뉴스에서 종종 변명거

리로 불거져 나오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일처리를 20배는 빠르게 할 수

있는 마술 같은 단어이니 어쩔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문제도 있는데, ‘전에 이 일이 있었을 때’도 담당자

들은 충분한 고민을 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전례를 무시한 일처리는 자기 자신이 그때의 담당자들보다 모든 국면에서 더

자세히 알고 충분한 대비가 되어 있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

면 ‘왜 알지도 못하면서 네 멋대로 일하다가 사고 쳤어?’라는 가장 끔찍한 질

책을 피하기 힘들다.

따라서 전례가 있고, 그 전례에 문제가 없으면 거기서부터는 더 이상 생각하

지 않는 것이 올바른 공직자의 자세다.

하지만 상황이 아주 많이 바뀌었다면 또 얘기가 다르다. 시준은 은근슬쩍 청

나라 어민과 영국 함대를 같은 선상에 놓는 정약용의 화법에 기가 막혔다.

현대로 말하자면 중국 불법 조업 어민과 – 어쨌든 중국인들은 19세기에나 21

세기에나 꾸준하다 – 미 해군 항모전단에 대한 대응을 똑같이 하자는 꼴이다.

시준이 그에 대해서 막 반박하려던 순간, 정약용이 몸을 일으켰다.

“가자. 영길리국 배에 올라서는 결코 겁먹은 모습을 보여서는 아니 된다. 나

아가고 물러남을 오직 예로써 하며, 저들의 큰 배와 대포며 기묘한 기계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태연하면 함부로 우리를 깔볼 수 없느니라. 너는 인

상여(藺相如)가 민지(澠池)에서 강대한 진(秦)의 군신과 병사 보기를 지푸라

기 보듯 했음을 다시 되새기고 나를 따르거라.”

시준은 한숨을 쉬었다. 정약용은 옷소매를 다시 고치면서 지나가듯이 말했다.

“나의 기개와 너의 책략이 있으니 너무 걱정 말아라. 고향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는 처녀에게 반드시 돌려보내 주리라. 그 싸리 울타리 뒤의 정분을 시로 읊

기 전에는 나도, 그리고 너도 죽지 않는다.”

“선생님!”

껄껄 웃으며 나서는 정약용을 시준은 황급히 따라갔다. 정약용이 대체 그 일

을 어떻게 알았을까 고민하느라 공포도 잠시 잊어버린 채였다.

작가의 말

1.  작중 시점은 아닙니다만, 19세기 중반은 서양 각국의 함대가 개항 각을 재며 미친듯이 동아시아 여러 지점을 누비고 다닐 때였습니다. 푸차틴의 함대도 그 중 하나죠.

2. 정약용이 언급한 오차포는 임정윤의 대응 전에 몇 차례 청나라 사람들의 불법 조업으로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임정윤 시점에서 몇 년 전에 책임자가 파직된 적도 있죠. 그러니 저렇게 FM대로 함대 끌고 나가 대응한 것이겠지만요.

3. 조선에 서양처럼 배를 따로 의인화하여 이름을 부여하는 관습은 없었습니다만, 실무적으로 배 간의 구분은 필요하죠. 승정원일기 등의 기록에 보면 XX포 1전선, 2전선 하는 식으로 구분한 것으로 보입니다.

12. Free for al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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