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35화 (35/284)

35화

11.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3)

‘이놈, 보통이 아니다! 정약용이 호랑이 새끼를 키우고 있었나!’

“그러므로 대감께서는 잘 생각하십시오. 두 마리 호랑이가 사냥감을 두고 다

투는[二虎競食] 동안에는 그 사냥감이 재빨리 도망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

러려면 호랑이 하나만 있는 산에서 다른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것도 쓸 만한

계책이지요.”

“허허, 네가 정말로 목이 열 개 정도는 있는 모양이구나.”

김조순은 소매를 떨치고 일어났다. 이제 들을 것 다 들었으니, 볼일은 끝났

다. 이 아이와 더 입씨름해 봐야 잃을 것이 많은 자기만 손해다.

“너처럼 건방진 아이에게 어찌 따끔한 교훈이 필요하다 하지 않으리. 내가 네

스승과 교분 나눈 지가 적어도 네 인생보다는 오래되었으니, 그도 나를 심하

게 탄하지는 않을게다. 유근아!”

“예. 아버님.”

역시 당돌한 아이가 기이한 재주로 인정받는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시준은 김유근의 호령을 받은 하인들이 자기 어깨를 양쪽에서 움켜쥐었을 때

3초 정도 고민했다.

‘영안부원군과 그 아들내미의 턱주가리를 날려 버리고 도망치면 무사할 수 있

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김조순의 뒤에는 시준이 싸움 좀 잘 하는 정도로는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힘이 있다.

말로 보아 죽이기까지는 안 할 것 같아서 시준도 포기했다. 호사가들의 이야

기가 되었을지도 모를 ‘김 대감집 난동 사건’은 결국 일어나지 않았다.

“많이 맞았느냐?”

정약용이 걱정스럽게 묻자 시준은 상처에 고약을 붙이며 투덜거렸다.

“그래도 이름 높으신 스승님 덕에 맞아 죽지는 않은 게 다행이지요. 아이고,

이거 볼기짝은 붙이기가 힘드네. 기랑아! 좀 도와다오. 이거 나눠 줄게. 비싼

약이다.”

정약횡 집에 와서 빈둥거리던 기랑은 명백히 싫은 표정이 되었으나, 시준이

내민 물건은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지유(地楡), 즉 밭두둑에서 볼 수 있는 속명 오이풀을 중심으로 다양한 지혈

약초를 기름과 함께 잘 개어다가 현대인인 시준이 쓰기 편하게 습포에 발라

처리한 것으로 의주에서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는 휴대식 금창약(金瘡藥)이었다.

딱히 칼에 찔리기까지 한 건 아니지만 출혈과 찢어진 상처 전반에 효과가 있

었다. 산 타는 게 본업인 기랑으로서는 탐나지 않을 수 없는 물건이다.

“아야야. 야, 제대로 좀 붙여라. 그렇게 눈을 질끈 감으면 뭐가 보여? 상처에

벌레 슨 것도 아닌데 고작 피 좀 터진 것 갖고…….”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정약용이 자기가 손수 하겠노라고 말하고 기랑

을 내보냈다. 시준은 제대로 한 것도 없으면서 약만 챙겨가는 기랑의 뒷모습

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시준으로서는 정약용의 심계도 헤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정약용은 뭔

가 단둘이 할 말이 있어서 자기가 손수 하겠다고 나선 것일 테니 말이다.

진실이야 어쨌든, 곧 대충 고약을 붙이고 나자 시준은 무엄하게도 스승의 앞

에서 엎드린 채 물었다.

“그래서, 갔던 일은 잘 되셨습니까?”

“나의 어리석은 글을 상께서 가납하여 주셨으니 잘 되었다고 말해도 되겠구

나. 하지만 네가 걱정이다. 온화한 풍고(楓皐, 김조순) 대감의 면전에서 어떻

게 대들었기에 너처럼 반지빠르고 눈치 잘 살피는 자가 그리되었느냐? 그러잖

아도 내가 사진하면 재신(宰臣)들을 한 번 찾아뵙기는 해야 할 터이니, 그때

대신 내가 용서를 빌어 보마.”

정작 당사자인 시준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불초한 제자 때문에 선생님께서 수고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아마 영안부원군

이 제 말을 듣지 않으려거든 그냥 내쫓았겠지요.”

“뭐라고?”

“제 말을 따를 셈이지만, 사람들 눈도 있는데다 새파란 놈 지껄이는 소리에

대꾸하지 못한 분함도 어찌할 수 없어 흠씬 두들긴 겝니다. 결국 부원군은 아

마 제 말대로 아뢸 겁니다. 제자의 추측입니다만 필시 청이 무언가 감당 못

할 것을 달라고 하였을 게 틀림없습니다.”

시준은 자기 예측이 맞았다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으면 김조순이 체모 손상을

감수하며 일개 장사치 어린아이를 몰매 쳤을 리가 없으니까. 원래 아픈 데를

찔리면 사람은 더 사납게 날뛰는 법이다.

그리고 시준보다 정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정약용도 거기에 동의했다.

예조 참의로서 정약용은 임금 앞을 물러나와 현안을 보고받았고, 청의 장자도

요구에 대해서 제자의 예측이 맞은 것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정약용은 제

자의 위험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시준에게 이야기해 주지는 않았지

만 말이다.

다만 정약용의 경우, 천하의 김조순이 찔끔했다고 애를 팰 정도로 졸렬한 인

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는 아마도 정치적 노림수이리라.

정약용이 생각하건대, 지금 청의 요구를 허락하면 그렇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척신이라는 도의적 약점에다가 최근 평안도를 방치하게 한 실책을 안고 있는

김조순은 위태해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공격의 첨병은 당연히 박윤수일 터. 김조순이 보신주의자라면 패배

를 인정하고 박윤수와 협조하여 쇄국할 것이요, 야심가라면 한 발짝 더 치고

나가 아예 대청 강경책을 주장하며 박윤수의 ‘단견’을 깔아뭉갤 터이다.

그리고 김조순은 이론을 제기할 수 없는 야심가다.

야심가답게 김조순은 지금까지 뒤에서 주로 조정을 제어해 왔으나, 때로는 깜

짝 놀라게 하는 것도 전술로써 유용하다. 상대가 대비할 시간을 빼앗기 때문이다.

오늘 시준을 두들겨 패 쫓아낸 일은 곧 항간에 퍼질 터. 김조순이 묘당에서

박윤수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당당히 말하기 전까지, 아무도 그가 개항을

주장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게 분명하다. 실로 불의의 일격이다.

그런데 청에게 강하게 나가려면 우선 조선이 자신의 힘으로 영국을 물러가게

한다는 실적이 필요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영국에

대한 통상 허가 약속이다.

그리고 정약용이 예조 참의로서 가장 첫 번째로 착수해야 하는 사업이 바로

그 대영 협상. 다시 말해, 정약용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조정의 판세가

크게 바뀔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거기까지 헤아린 정약용은 한탄했다.

“이거, 내가 다시 유배를 가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그 말을 오해한 시준은 황급히 말했다.

“예에? 아니, 한낱 어린아이의 일로 선생님에게까지 폐가 가겠습니까. 만약

그러하시다면 그놈은 파문했다 하시고 모른 척하셔도 좋습니다.”

그러면 의주에 돌아가서 재산 다시 잘 챙겨 이번에야말로 아무도 모르는 곳으

로 튀어버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정약용은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이 아니다. 아주 생각하는 게 훤히 보이는구나. 시준아. 너는 고향 가

서 편하게 살 궁리만 골몰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사직을 보우하고 외환을 잠

재울 수 있을까 고민하여라. 그것이 글 읽은 자의 책무니라.”

‘내가 글 읽고 싶어서 읽었냐고.’라는 말은 시준의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

다. 정약용의 말에 함의된 더 무시무시한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서, 설마. 선생님. 일개 장사치에 평안도 놈에 부모도 없는 이 천한 자를 설

마…….”

“나도 다 알고 있으니 그렇게 줄줄이 늘어놓을 필요 없다. 네 스승이 의주에

서야 빈궁하였다 해도 지금은 명색이 정삼품 예조 참의인데 심부름꾼 하나 마

음대로 못 고를까. 너는 내 시자(侍者)로서 강화도에 가야 할 것이야.”

시준은 비명을 질렀다. 상처가 아파서는 아니었다.

현대에야 산소와도 같이 당연한 가치기에 간과하기 쉽지만, 사유 재산권과 거

주 이전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는 이 시대에 없었다. 왕조차도 예외는 아니다.

정약용이 당연하다는 듯이 시준에게 통역관 겸 조언자 겸 심부름꾼이라는 복

잡한 의무를 부여한 것도 그 때문이다. 업은 본래 선택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된 지는 백 년도 되지 않았다.

이런 경향은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특히 심했지만, 조선도 마찬가지다. 향임이

나 역졸, 옹기장이, 대장장이 등 조선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직업은 ‘직업’이

아니라 ‘부역’이었다. 대대로 핏줄을 따라 내려오는 의무이며 벗어나는 것은

범죄다.

그렇다면 시준이 종사하고 있는 상업은 어떤가? 그에 대한 답은, 현대 누구도

조직 폭력배나 사기꾼을 직업이라 여기지 않는다는 말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

다. 상인은 사회 구조 바깥에 있는 사람이었으며, 항시 의심받고 천대받고 괄

시받았다.

높은 신분인 사대부 관료라고 사정이 낫지는 않다. 왕에게 정사장(呈辭狀) 한

다는 것은 현대처럼 나 때려치울 테니 건드리지 말라는 순진한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이 의무에서 ‘해방’시켜 주시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오죽하면

해골을[骸] 구걸한다[乞] 하겠는가. 그리고 구걸이 대개 그렇듯 대부분은 거

절당한다.

그런 유식한 상소문도 쓸 수 없는 사람들은 그저 팔자려니 하고 주어진 일만

하다 생을 마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적어도 자기 죽을 때까지는 한 번도 없을 줄 알았던 소집에 날벼락

맞은 기분으로 끌려와 있는 총융청 소속 속오군 초병(哨兵) 같은 사람들에게

직업 선택의 자유가 얼마나 절실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총융청의 장부상 병력은 2만을 호언하나, 실제로는 수천 명 정도이고 그중에

서 대부분이 조선 기준에서도 병사라고 불러 주기 힘든 속오군(束伍軍)이었다.

그래도 북방 반란에 대비해 만든 수도 방위군이니만큼 총융청에 군관이 적지

는 않았다. 하지만 그 군관들은 이미 출정 소식 들리자마자 오만가지 연줄과

핑계를 동원하여 빠진 뒤였다.

아마 이달 총융청 군관으로서 부모상을 당한 사람의 숫자를 모아 본다면 갑자

기 한성부에 역병이라도 돌았는지 의심될 정도였다. 아쉽게도 조실부모한 사

람들은 왜 사람이 두 번 죽을 수는 없는지 한탄하며 발병이 났네 종기가 터졌

네 하며 드러누웠다.

그런 수단을 쓸 수 없었던 불운한 군관 중 하나인 초관 황선문(黃錫聞)은 퉁

방울 같은 눈깔만 두릿두릿하는 병사들을 앞에 두고 우러러 한숨을 내쉬었다.

“내 너희들 모가지는 보존하도록 애써 볼 터이니, 너희들은 총이며 활을 대체

어디다가 팽개치고 왔는지 말이나 한번 해봐라.”

군사들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아예 도망해 버린 여남은 명의 군

사에 비교하면 그들은 충의가 있고 군기를 엄히 지킨다 할 수 있을 것이기 때

문이었다.

“지변(地變)입죠. 여름 장마에 온통 뻘밭이 되어 총은커녕 지금 신발과 바지

도 남아나는 녀석이 없습니다요. 군관 나리께선 우리만 가지고 자꾸 들볶지

마십쇼.”

“옳소. 어디 팔아먹은 것도 아닌데 모가지가 어쩌니 하시면 무서워서 어디 군

사 노릇 하겠소이까?”

그 자신도 일전 전강(殿講)에 멋대로 안 나갔다가 화끈하게 장 맞고 찍혀서

여기 영종도(永宗島)에 파견된 처지이니만큼 황선문이 기강을 바로잡겠다는

생각까진 안 했다.

하지만 이 백성놈들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했다. 지쳐 뵈는 표정에 후줄근한

수염, 진흙이 덕지덕지 묻은 하반신은 정말 바지 없이 맨다리인 자도 많았다.

군사는커녕 어디 짐 나르려도 못 써먹을 것 같았다.

황선문이 호령했다.

“네 이놈들! 외구(外寇)가 바로 여기 도성의 목전까지 들이닥쳐, 종묘와 사직

이 바야흐로 바람 앞의 촛불이거늘 너희가 변란을 막는 총융군(揔戎軍)으로서

어찌 이리 해이하다는 말이냐!”

병사들은 서로를 돌아볼 뿐이었다. 총융이라는 말조차 난생처음 들어본 것이

분명했다.

당장 저놈들을 잡아내려 호되게 장을 치라고 하고 싶었지만, 어쩌겠는가. 지

금 군관도 그 혼자뿐이요, 여기 있는 삼십여 명의 군사들은(나머지는 도망갔

거나 길을 못 찾아 헤매는 중이다) 거의 전원이 군법 위반자다.

장 쳐 줄 사람도 없거니와, 잘못하면 이 영종도 모래밭에 황선문 자신이 묻힐

판인 것이다.

황선문은 아무도 듣지 않는 고함만 버럭버럭 지르다가, 끝내 군사들이 한두

명씩 자리에 주저앉아 귀를 후비기 시작하자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조선군이 아무리 오합지졸이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좋게 말하면 총융사 이인수의 전략적 판단 때문이고 나

쁘게 말하면 조선 조정에서 아직 영길리국 배를 진지한 위협으로 생각하지 않

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준과 마찬가지로 조정에서도 영길리국 상자(商子)들이 군을 내

어 상륙하리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데이비드 스콧호가 그랬던 것처럼 조선도

동인도 회사 선단에 대한 위협과 경계용으로 군을 배치한 것이고 그렇다면 정

예군은 필요가 없다.

그래서 급히 모은 속오군과 안 그래도 근신 처분 받은 군관을 모아 배치하고,

이인수 자신은 총융청의 그나마 정예군인 별부료군관(別付料軍官, 총융청 경

상비 외의 별도 계정에서 급여가 지급되는 군관. 주로 평안도 사람이었다) 등

을 거느리고 도성 서쪽의 방비를 더욱 강화했다.

급히 모으는 데에 지체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응했다는 것으로 봐서 알 수 있

듯이, 그 속오군 병사들은 눈치도 없고 권력도 없으며 머리까지 없는 자들이었다.

군관도 황선문처럼 벼슬아치의 의무 게을리하다 귀양 보내듯이 내던져진 자

들. 그야말로 까마귀가 쥐새끼들을 이끄는 꼴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강화도와 영종도의 여러 요충지에 군사가 배치된 것은 사실이

었으며, 아무리 오합지졸이라도 군대는 군대다.

데이비드 스콧호의 선장 존 로크 주니어의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 저 작은 섬(영종도)의 해안가에서 뭔가 꾸물대고 있는 저들은 아무리 봐

도 군대였다. 로크 선장은 망원경을 눈에서 뗀 다음 멋들어지게 한 바퀴 돌리

며 말했다.

“레디 소령. 내 생각이 틀렸으면 말해 주시오.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우리,

평화와 우호를 위해 온 국왕의 통상 사절단이 폭력적인 야만족의 군사적 도발

에 직면한 것 같은데.”

로크 선장은 한쪽 눈을 감은 뒤, 그 감은 눈에 망원경을 갖다 대었다. 그 명

백한 제스처에 존 레디 소령은 아무래도 그냥 지역 방위대로밖에 안 보인다는

말을 삼켜야 했다.

지금은 장렬하게 산화한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이 코펜하겐에서 했던

일은 영국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눈이 하나밖에 없다 보니 신호를 미처 보지 못한’ 넬슨은 지휘관의 명령도

무시한 과감한 진격으로 대공을 올렸다. 로크 선장은 지금 이사회의 방침을

‘잠시 못 볼’ 셈인 것이다.

“……이 배의 지휘자는 선장이시니, 이견은 없습니다.”

로크 선장은 빙긋 웃었다.

“이렇게 버티기만 하면 우리가 물러갈 거라고 여겼나 본데, 그 생각이 착각이

라는 것을 보여 줘야지요. 나중에 이 일이 외교적 부채가 되지 않도록 잘 부

탁드리겠소. 어디까지나 우리는 무력 위협에 대해 대응한 것이니 말이오.”

“어렵겠군요. 그러면 사람은 다치지 않도록 신경 써 주셔야겠는데요.”

“하하! 그러도록 하지. 뭐, 결과는 하느님만이 아시겠지만 말이야.”

곧 갑판장과 포술장에게 지시가 전달되고, 데이비드 스콧 호가 자랑하는 18파

운드 함포가 장전되었다. 지금까지 엄한 규율로 환장(換裝)을 빼놓지 않은 보

람이 있어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전운이 감도는 왐포아를 떠나, 조선 사정도 좀 알아볼 겸 데이비드 스콧호에

대한 보급선에 타 말재주와 연줄로 여기 남아 있던 윌리엄 자딘은 크게 놀랐다.

“아니, 당신네들 지금 뭐 하는 거요?”

“뭐 하긴? 선장의 명령을 따르는 중이지. 아, 거 비키쇼! 일도 없는 양반이

매일 빈둥빈둥 얼쩡대고 있어서 보기도 아니꼽구만.”

자딘은 말 안 통하는 수부들을 제쳐두고 선장에게 달려갔다.

“로크 선장, 지금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사회의 결정은 조선에 대한 무력 사

용을 배제하는 것이었을 텐데요?”

로크 선장이 만약 반박한다면 자딘은 할 말이 아주 많았다. 하지만 로크는 반

박하지 않았다. 그저 무시했을 뿐이다.

“내가 왜 동인도 회사 사람도 아닌 자에게 회사의 방침에 대한 훈계를 들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군. 자딘 박사. 당신의 존재는 여기에서 묵인되고 있는

것이지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시오.”

수부들의 핀잔과 같은 말을 조금 더 현학적으로 들은 자딘은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잠시 후 자딘은 로크 선장이 마치 자기에게

말리는 이유를 물었다는 듯이 말했다.

“조선은 청에 대해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소. 만약 폭력의 빌미

를 준다면 광저우와 왐포아의 우리 상인들이 위험해집니다. 어디까지나 중국

이나 조선이 먼저 쳐들어오지 않는다면…….”

그런 고려쯤 이미 아까 전에 완성되었다. 로크 선장은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

저었고, 곧 억센 수부 두 명이 자딘의 팔을 양쪽에서 잡았다.

자딘은 분명히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듣지 못했다. 18파운

드 함포 두 발이 데이비드 스콧 호로부터 발사되어 영종도 해안에 내리꽂혔기

때문이다.

무시무시한 폭음 때문에 멍멍해진 귀를 좀 두드리고 나서, 로크 선장이 퉁명

스럽게 말했다.

“땅에 쏴서 겁을 좀 주려는 것뿐이오. 폭력은 좋지 않다는 것을 저 야만족들

에게 깨우치기 위해서지. 뭘 그리 유난스럽게…….”

그렇게 말하던 로크 선장은 자기 뒤에서 어깨를 움켜잡는 손에 성질을 내야

했다. 그가 홱 돌아보자, 레디 소령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망원경을 건네주었다.

“서, 선장. 큰일났습니다.”

“뭐요?”

“빗나갔…… 빗나갔다고요! 사람이 맞았습니다! 오, 하느님!”

레디 소령은 절규하듯이 외쳤다. 로크 선장은 황급히 망원경을 빼앗아 들었

다. 터무니없이 빗나간 18파운드 포탄은 해안가에 큰 구덩이를 만들어 놓았

다. 그리고 그 주위로 거미새끼처럼 흩어지는 조선인들과 처참하게 널부러진

시체를 확인한 순간, 로크 선장의 입에서는 교양 있는 신사라면 해서는 안 될

쌍욕이 튀어나왔다.

작가의 말

1. 본작 처음부터 계속 보이는 세태입니다만.. 지금처럼 쉽게 소송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보니, 조선 시대에는 사적 폭력이 굉장히 흔하고 다양했습니다. 거의 사적제재로 사회 일반치안이 유지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리고 그런 치안이 공정할 리는 없겠죠.) 물론, 조선만 그런 건 아니지만요. 이 시대 유럽에서는 아직도 마녀재판이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2. 황선문은 실존 인물로, 작중 시점 당시 승정원일기 기록에 무신의 전강(일종의 관리들 능력 테스트)에 나가지 않아 대체 어디 있었는지 추고(추궁해서 잘못을 물음)하고 처벌하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때 승정원일기에 언급된 무관이 굉장히 많죠.

조선 시대에는 관청의 여러 가지 자잘한 행사며 참석해야 하는 여러 교육, 시험이 많았습니다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냥 무시하고 파직되었다가 며칠 뒤 다시 복직하고 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3. 총융청은 작중 언급된 별부료군관 외에 부료군관(총융청 회계에서 월급 주는 군관) 등등 군관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고, 그 외에는 속오군으로 일반병을 충당하는 체제였습니다.

원래는 이괄의 난 당시 뜨거운 맛을 본 조정이 북한산성을 거점으로 설립한 군대고, 여기저기 조직적 부침을 거치죠.

조선 후기의 군사체제는 대부분이 반란을 막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강화도의 포대 역시 대부분 서울 방향에서 들어오는 적을 상대하기 위해 구축된 것입니다. 특별히 대규모 외침을 경계할 정세가 아니었으니까요.

12. Free for al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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