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8. 바뀌는 물살(4)
영‧정조 시기가 조선 중흥기로 인식되었던 것에는 물론 두 군주의 준수한 능
력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농업국가인 조선에서 무엇보다 국가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농
사, 그중에서도 벼농사의 풍흉이다.
실제로 영조 중반기부터 정조 치세는 크게 보자면 대체로 풍년이 계속되었다.
조선의 상업 발달과 사회 발전의 기반에는 안정적으로 지속된 농업 생산력이
필수적이었다.
그리고 지금 국왕 순조, 그러니까 이공의 치세 초기까지도 그 흐름은 이어졌
다. 정순왕후 수렴청정기에는 재난이 종종 있었지만 농사의 흉년이라기보다는
화재와 우박 등 일시적 재해일 뿐이었다.
그것은 오히려 국왕 이공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일단 농사가 그럭저럭 돌아가니 사소한 말썽은 그리 큰 문제로 번지지 않았으
며, 평안도에서도 연일 유민의 정착으로 호구가 늘어나고 둔전이 정비되어 관
고가 찼다는 보고뿐이었다.
괘씸하게도 김조순의 말이 맞은 것이다.
물론 불과 이태만 지나면 대흉년이 들어 홍경래의 난을 촉발시키는 원인이 된
다. 이공의 짜증은 말 그대로 배부른 생각이라 할 수 있을 터이다.
허나 미래인인 시준도 모르는 일을 조선 국왕이 알 리가 없다.
안다고 또 어쩌겠는가. 이 시대에 곡식을 대량으로 장기간 무사히 저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설사 풍년이라 한들 그럴 만큼 수확이 남아도는 것도 아닌
데 말이다.
일단 이공은 세모법 건에서의 패배 이후 어리석게 계속 평안도에 집착하지는
않았다.
이공은 난언자(亂言者) 이경신(李敬臣)을 신하들의 요청에 따라 처형했다. 원
래 역사와 다른 점은 김조순이 건의한 ‘괘씸하지만 연좌는 법대로만 하고 억
울한 사람이 죽게 하지는 말라’는 청을 일부러 정면으로 묵살하고 거병(擧兵)
한 반란자에 준해 한바탕 피바람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그저 청탁 실패한 모리배가 잠깐 돌아서 모함 상소 날려댄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기회에 왕권을 더욱 강화하고 싶은 이공
에게는 지나치지 않은 일이었다.
이공은 다음 수를 두었다. 과거 대사간을 하다가 공충도(公忠道, 충청도) 관
찰사로 나가 있던 박윤수(朴崙壽)를 이조 참판에 임해 서울로 불러들인 것이다.
박윤수의 엎드린 머리 위로 젊은 국왕의 옥음이 들렸다.
“그대의 조부(박성원)는 충헌공(忠獻公, 순조의 외조부인 금석 박준원)과 같
은 항렬의 형제이며, 부친 금은군(錦恩君, 박종규) 또한 선대왕의 가까운 공
신이므로 가문이 실로 왕실의 고굉(股肱, 팔다리)이라 아니할 수 없는데, 부
득불 잠시 외지에 둔 것은 편벽됨을 없이 하려는[蕩平] 사체가 중한 탓이다.
과거 소진(蘇秦) 또한 여섯 나라 재상의 인을 차고 천하를 종횡하였으니 경은
도중에 나를 버리지 말고 곁에서 함께 하라.”
뜬금없이 튀어나온 소진의 암시를 알아듣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에게 앞으로
조정의 고위직을 두루 맡기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박윤수는 이후 육조의 판서를 전부 역임하는 기염을 토하며 조선 관리
로서는 이례적이게도 한 번도 사직해서 쉬거나 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봉사한다.
“미천한 신이 성은을 입으매 다만 진췌(盡瘁, 기력을 다함) 두 글자가 있을
뿐입니다. 어찌 사사로운 일을 돌아봄이 있겠습니까?”
반남 박씨 중용, 그리고 안동 김씨 견제의 신호탄이었다.
인사권에 관여하는 이조 참판인 박윤수는 그해 섣달 도정(都政, 관리 인사평
정)에서 김조순에게 약간의 불협화음을 선물했다. 그리고 다음 해 초에는 비
변사 제조 중 하나로 임명됨으로써 왕의 의지를 확실하게 드러내게 된다.
왕은 친정 이후 첫 사업에서 김조순에게 패배했다. 이것을 회복하려면 똑같이
갚아 주는 수밖에 없다. 사실은 왕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지금 이공이 친히 다시 나서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박윤수는
자기 역할을 잘 알고 있었다.
박윤수는 비변사의 제조로서 변경 방비에 대해 무겁게 발언했다.
“용천부에 수군 전선을 파견해야 하겠습니다. 표류선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자
주 떠내려와서야 백성이 불안하고, 서양국의 간자가 숨어드는 일을 막기도 어
렵소이다.”
이 시기 조선은 통상 수영(水營)급 요충지에는 3~4척, 그 이하 거진(巨鎭)에
는 1~2척 정도의 전선(戰船)을 두었다.
물론 이것만 덜렁 있는 건 아니고, 주력 전투함인 전선 외에 방패선(防牌船)
이나 특수목적함인 귀선(龜船, 거북선) 및 기타 여러 보조함도 있다. 물론 싸
울 수 있는지는 묻지 않는 것이 예의이긴 하다.
여기서 문제 되는 용천부 장자도는 미관 첨사가 지키는 관할이다. 이미 전선
이 있긴 하나, 박윤수는 여기에 평안도나 황해 수영의 전선을 올려 보내자는
말을 꺼낸 것이다.
속셈이야 뻔하다. 바다의 흐름상 영길리국 배가 언젠가는 다시 표류할 것이
고, 다 망가진 표류선 따위 수군 전선 몇 대면 잡을 수 있다. 그러면 아무 놈
이나 하나 족쳐서 사교도를 중국으로 건네주고 잠통하러 왔다는 자백을 받아
내면 그만이다.
왕의 예지는 그야말로 청천백일처럼 빛날 것이다. 김조순은 어두운 헤아림으
로 왕을 보좌하지 못하여 외환(外患)을 초래할 뻔한 책임을 져야 하리라.
“…….”
그러나 비변사의 실질적 수장 김조순은 눈을 감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그는 일전 이경신 건으로 자기가 성총을 흐트러뜨렸다며 왕에
게 정사장을 낸 상태이니 발언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왕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 사직서를 수리할 리 없고, 그건 김조순을 포함해
모든 신하들이 알고 있다.
지금 김조순이 침묵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박윤수 정도로는 나와 맞서볼 급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직급상 훈련대장인 김조순보다 분명히 높지만 진짜로 그러냐고 물으면 아리송
할 수밖에 없는 좌의정 이시수가 나선 것도 당연한 일이다.
“각지 수영의 배가 다 썩어버린 지 오래되어 움직일 수 있는 전선이 있는지도
의문이거니와 그렇다 하더라도 갑자기 늘어난 수졸은 다스리기 어렵네. 또 그
들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은 미관 첨사 하나가 감당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민폐
가 심할 것이고, 그곳은 상국과도 가까이 있는데 말썽이 일어나면 어찌하시려고?”
김조순은 그냥 신음을 흘리고 싶었다. 이시수가 자기 편들어준답시고 말하기
는 했는데 지금 얘기는 패착이다. 과연 박윤수는 여전히 김조순을 보며 말했다.
“나라의 병권(兵權)은 상께서 신임하시는 신하인 영안부원군의 손에 있소이
다. 후진(後進, 후배)이 감히 말씀드리건대 좌상께서 군비에 대해 폄하하시는
말씀은 부원군에 대한 예의라고 하기 힘듭니다. 어떻습니까, 전하께서도 세종
대왕과 세조대왕을 본받아 북방의 방비에 항상 유의하시는데, 그 정도 준비쯤
이야 신하된 자로서 어렵지는 않겠지요?”
김조순은 속으로 혀를 차고 눈을 떴다. 결국 자기가 나서야 할 모양이었다.
하지만 노론 시파에 그리 인재가 없지는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김조순보다 상
위의 병권을 보유한 사람, 병조 판서 김이익(金履翼)이 은은하게 말했다.
“인군의 신하는 다만 한마음으로 충심 다해 섬길 뿐이요, 누가 신임을 더 받
고 덜 받고 하는 둥의 의론은 작당(作黨)하는 소인의 일. 군병의 일이라면 본
관에게 물으시게.”
박윤수는 한발 물러났다.
“제가 전하의 성려가 너무나 두렵다 보니 앞뒤 없는 무례를 범했습니다. 그렇
다면 병판 대감께서는 이 계책을 어찌 보십니까?”
왕이 시킨 일이라는 암시에도 김이익은 끄떡하지 않았다. 그는 왕 앞이라도
이렇게 대꾸했을 거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간단히 답했다.
“불가(不可).”
“삼가 사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아까 좌상께서 말씀하신 이유와 같지. 다시 짧게 말하는 게 낫겠나? 평안도
에는 돈이 없네.”
박윤수는 입을 다물고 김이익을 바라보았다. 김이익은 장죽을 한 번 빨고 나
서야 말을 이었다.
“일전의 대화재로 평양은 아직 반도 채 다시 지어지지 못했으며, 근래 세모법
이 혁파되어 사신들 가는 비용 대는 데에도 허리가 휠 지경. 평안도에서 세곡
아니 걷는 이유가 그것이니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전선 몇 척을 올려보내면
방비가 끝난다고 여기는 건 아니겠지. 좌상께서 말씀하신 대로 수졸들은 어찌
먹이고, 배는 무엇으로 수리하며 화포와 화약은 어디서 충당하겠나? 다 돈이
야. 그리고 평안도에는 돈이 없네.”
왕이 감정적으로 행해 버린 세모법 폐지가 이렇게 돌아올 줄 몰랐던 박윤수는
낭패한 심정이었다.
“그런 일쯤 각도에서 얼마간 십시일반으로 지출하여 쓰게 되면…….”
“평양의 관사를 다시 지었던 일처럼 말인가? 그러려면 그때의 화재처럼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지. 자, 보자고. 장자도에서 영길리국 사람들이 누구 하나
라도 다치게 했나? 아니면 사교도와 잠통했다는 문건이라도 나왔던가? 아무리
서양국 오랑캐가 무도하다 한들 분별은 있어야 하는 법일세. 참판은 일전 평
안 감사(이서구)의 장계를 보지 못했던가. 사교도는 불랑국의 것이고, 영길리
국 사람들은 그저 장사꾼일 뿐이야.”
박윤수는 이를 악물고 다시 반박했다.
“제가 듣기로는 영길리국 사람들이 표류할 때마다 물건을 내어놓고 간다던데,
이자들이 표류를 핑계하여 엄히 금지된 무역을 트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
소이다. 게다가 이상하게도 장사꾼들이 거기서 관의 심부름을 하고 있고…….”
“그럼 부사나 중군이 거기에서 쌀주머니 날라다가 오랑캐들에게 나눠 줄 텐
가? 그런 말을 할 거라면 유구나 남만에서 한 해에도 몇 명씩 표류하는 저 전
라도나 제주도에 더 병선을 많이 보내야지.”
김이익의 직설적인 어투에는 과거 벽파에게 몰려 조정에서 몰락하고 내쫓겼던
자의 원한도 조금은 담겨 있었다. 병조 판서는 차갑게 말했다.
“비변사는 젊은 치기로 위태한 계책을 내놓아 시험하는 곳이 아닐세. 그 논의
는 그만하지.”
내일모레 환갑인 박윤수를 젊다고 할 수는 없지만, 김이익은 박윤수보다 열
살이나 많으니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
박윤수는 아직 조정에서 왕의 세가 모자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나선 김조순의 뻔뻔한 제재는 박윤수로 하여금 어느 집 며느리가 된 듯한 기
분을 느끼게 했다.
“병판께서 후진에게 너무 엄하십니다. 충정이 넘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러나 노신(老臣)의 고언(苦言)이 실로 옳으니, 이제 다른 사무를 보도록 합
시다. 시간이 많이 지났어요.”
자기 때리는 김이익보다 말리는 김조순이 더 싫었다. 결국 비변사의 일반적인
다른 안건, 그러니까 핵심 국정 전반이 언제나처럼 처리되고 당상들의 회합은
평소처럼 끝났다.
비변사를 나서는 박윤수는 다른 신하들이 드러나지 않게 자기를 비웃는 소리
가 귓가에서 메아리치는 환상에 시달렸다. 그는 관복 소매를 고치며 이를 악
물었다.
‘아무 증거가 없으니 안 된다고? 좋다. 그러면 증거를 만들어 주면 되지.’
대하처럼 도도하게 한 방향으로 흐르는 줄 알았던 조정의 흐름은 박윤수라는
하나의 수차와, 그것을 힘써 움직이려는 국왕에 의해 약간의 역류를 일으키게
되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가경 12년(1807년) 9월에도 장자도가 관련된 조선과 청 사이
의 외교 건이 발생한다.
조선 상인들이 중국 변경에서 쌀을 비싸게 사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장자도에
싣고 와 청국 상인들과 만나서 은이며 거울 등 여러 물건과 바꾼 다음, 조선
에서 못 쓰는 중국 동전을 평양에 싣고 와 녹여다가 쇠로 쓰려고 시도하다 조
선 당국에 체포되는 것이다.
당시 용천 부사부터 시작해서 의주 부윤, 선천 부사, 평안도 절도사까지 줄줄
이 파직되고 조선은 청에 공문을 보내 사죄하며 가경 황제는 ‘너그러이 용서
하고 물목을 하사하여 특별한 은혜를 베푼’다.
그 배경 상황 자체는 지금도 비슷하다. 다만 다른 점은, 이번에는 국법을 감
히 범하는 밀매 따윈 장자도의 의로운 백성들이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조선인과 밀무역하고 싶어 장자도로 건너오는 청인들은 먼저 만상의 엄한 심
의를 통과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밀무역 자체는 겉보기에 굉장히 위축된 것처럼 보였다. 조정이
김조순 세도시대가 되면서 마치 탕평이 실현된 것처럼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의주 상인 백대현(白大賢) 역시 원래 역사보다 몇 달이나 늦게 밀무역
을 시도해야 했다. 장자도에 홍득주 패거리가 없을 때를 노려야 했기 때문이다.
밀매로 한몫 잡아서 홍득주의 위치를 위협해 보겠다는 장한 결심과 함께 배
타고 온 백대현은 약속 장소에 나오기로 한 청인들을 틀림없이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몇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원래 나오기로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매우 많았으며, 청국 상인 주씨(朱氏)는 백대현이 알던 얼굴과 상당히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너무 맞아서 눈이 잘 떠지지 않는 주씨를 굴비처럼 엮어놓은 채, 이제 총각은
아닌 홍총각이 이를 드러내었다. 헛상투 풀고 진짜 상투 튼 것 자랑하려는지
패랭이 하나 쓰지 않은 차림이었다.
“늦게 오셨군. 조선에서 쌀 갖고 올 자라는 게 백가 네놈이었냐? 어이, 이놈
에게 물어봐!”
물어볼 것도 없이 주씨는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중국말을 몰라도 다 알아들을 만한 절절함이었다.
백대현은 경악했다.
“어, 어, 어떻게! 네놈은 분명히 지금 선천부에 가 있다고…….”
백대현은 자기의 개인적인 첩보와 달리 장자도에 여전히 사람들이 있다는 것
에 하늘이 노래지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여기 모인 장정들은 기존처럼 홍총각과 주먹패들이 돗자리 깔아 놓고
술 마시며 노는 무리가 아니었다. 한눈에 보아도 용맹스러운 장정들 백여 명
이 대오를 가지런히 맞추고 서 있는 것이다.
아래에는 의주바지요, 위에는 각자 저고리 위에 푸른색 의주포(義州布, 데님
천)로 만든 민소매 겉옷을 덧입었다. 조끼(jaque)라는 말은 아직 없어도 편리
한 옷이라는 거야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겉옷의 의의는 바로 한복에 통상 없는 ‘주머니’다. 시준은 총알과 화약 넣는
용도로 만들었지만, 이 중인환시리에 총 메고 나올 수는 없으므로 취향껏 단
검이나 수건 등을 꽂아넣고 있었다. 가끔 비범한 자들은 의주감자 한두 개로
불룩해진 주머니를 소중히 끌어안고 있기도 했다.
백대현은 그 무리 중 익숙한 얼굴 몇몇을 찾아낼 수 있었다. 백대현이 고향에
서 콧물 마실 때부터 알아 왔던 개망나니들이 어느새 정예한 병사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깃발까지 두세 군데 서 있는데, ‘가산 용맹청년 구사대(嘉山勇猛靑年
求社隊)’, ‘용만 충의신민 연락사(龍彎忠義臣民連絡社)’ 등 문구도 거창하였다.
다만 비웃을 수 없는 것은, 그 문구에 부끄럽지 않을 만한 기세와 무장이 있
기 때문이었다.
‘관군은 절대 아닌데…….’
정예한 관군이란 것은 일종의 모순 형용. 어두운 태양이란 게 있을 수 없듯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깃발만 없었다면 백대현은 이들이 혹시 말로만
듣던 청국의 팔기(八旗)가 아닌지 의심했을 것이다.
백대현의 짧은 지적 사치는 그 순간 끝났다. 홍총각은 자신이 선천이나 운산,
가산의 금광에 돌아다니느라 장자도에 갈 틈이 없다는 역정보를 퍼뜨린 시준
의 책략을 설명하는 대신 백대현의 어깨를 붙들었다.
백대현은 의미가 될 수 없는 고함을 내뱉었으나, 그의 주위에 있는 이사집(李
士楫) 등 동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까 깃발 들고 있던 용만 충의신
민 연락사, 다시 말해 홍득주 직속 민병대가 달려나와 그들을 복날 개 잡듯
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료들의 비명소리를 배경으로 홍총각의 은근한 목소리가 백대현의 귓가에 울
렸다.
“오호, 어떤 녀석이 내가 선천부에 갔다고 했을까? 그것까지 해서 곧 남김없
이 불어야 할 것이야. 나라의 금령을 어기고 네가 살기를 바랄 수는 없으렷
다. 곧 토포사(討捕使) 어른께서 왕림하시니 어서 무릎을 꿇어라!”
백대현은 무릎을 꿇을 정신도 없었다. 다행히 홍총각은 그런 백대현을 친절히
도와주었다. 역시 사람이 장가를 가더니 좀 유해진 모양이었다.
그 신부로 하여금 남편에게 반하게끔 한 홍총각의 굵은 팔에서 힘줄이 솟았
다. 그가 무서운 아귀힘으로 내리누르자 백대현의 발이 발목까지 모래밭에 파
묻히고, 곧이어 의지와 상관없이 무릎이 꺾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백대현은 고개만 들고 사정해 보았다.
“초, 총각이! 우리 모르던 사이도 아니지 않나. 이번 한 번만 봐주면 내 섭섭
지 않게 성의 보이고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꿈도 꾸지 않을 터이니 믿어 주
게! 자네들 밥그릇을 빼앗으려던 건 아냐. 지금 싣고 온 건 인삼도 모자도 아
니란 말일세! 지금 바로 줄 수도 있어. 내, 내 짐에 보면…….”
홍총각이 제대로 일하는지 보러 따라왔던 시준은 혹시 그가 넘어갈까 싶어 나
서려 했다. 하지만 홍총각은 귀를 후빌 뿐이었다.
“이게 무슨 소릴까? 잠매를 한 주제에 뇌물까지 바치겠다고 하는 천하에 불의
하고 불충한 놈의 소리가 들리는데? 이 홍총각이가 글은 못 읽었어도 하늘에
부끄러운 짓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이놈, 나랏님께서 다 내려다 보시느
니라! 내가 더러운 소릴 들었으니 네놈을 강에 처넣고 압록강 흐르는 물에 귀
를 씻어야 하겠다!”
의주 사람들이 왕 생각하는 마음은 기르는 개에 대한 애정과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그게 여태 ‘하늘에 부끄러운 짓’만 해서 먹고살던 홍총
각 그놈인 바에야 더욱 어처구니가 없다. 백대현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입만 뻐
끔거렸다.
반면 시준은 홍총각의 성장에 감탄했다. 어른이란 곧 ‘얼운 사람’, 즉 운우
(雲雨)를 아는 자라 하더니 역시 하룻밤 새에 어른이 된다는 게 진짜인 모양
이었다.
하지만 홍총각이 머리 쓰는 부류가 아닌 건 확실했다. 시준은 백대현의 말에
서 무언가를 놓치지 않고 나섰다.
“분명히 듣기로는 쌀이라고 했는데, 지금 바로 줄 수 있다고? 비밀히 가져갈
수 있는 물건이라면 쌀이 아니라 그보다 좀 더 가볍고 값어치 나가는 물건이
겠군. 한 번 볼까요.”
짐을 열어본 결과는 시준의 예상대로였다. 위장용으로 덮인 쌀의 아래에는 콩
알 같은 사금이며 은자가 약간 있었다. 요즘 금은점이 활황이라 마련할 수 있
었나 본데, 구리와 금은은 수출입 공히 금지 품목이다.
“그, 그래. 속여서 미안하이. 그걸 내어 줄 테니…….”
“흠. 너무 순순히 자복하는데.”
이상한 낌새를 느낀 것은 이런 일에 더욱 익숙한 홍총각 쪽이었다. 쌀에서 날
리 없는 금속성의 냄새를 감지한 홍총각이 자루를 맨손으로 찢고 손가락을 쿡
박았다. 곧 그의 손에 쌀을 줄줄 흘리는 조총 한 자루가 딸려 나왔다.
이들은 2차에 걸쳐 위장한 것이다. 미곡상으로 위장한 금은 밀수 정도면 그래
도 상식 범위 안이니까.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홍총각은 손에 느껴진 뜨끔한 감각을 놓치지 않
았다. 거기 맺힌 피를 보다가 상처를 핥은 홍총각은 다시 조심스럽게 손을 집
어넣었다.
곧 홍총각의 표정이 바뀌었다. 곧 팔을 치켜든 그가 부러뜨릴 듯 움켜쥐고 있
는 것은 총보다 조선 사람에게 더욱 직관적으로 익숙한 무력과 위협의 상징,
예리한 촉까지 달린 화살 여러 대였다.
“네놈들이 미쳤구나!”
작가의 말
1. 이경신은 원래 사헌부의 장령, 지평 등을 한 청요직 관원이었습니다. 본편에 몇 번 나왔던 실학자 이서구를 강하게 비난하는데, 이게 정론에 따른 비판이었으면 좋겠습니다만 정황상 (이조 고위직이었던) 이서구에게 인사청탁하고 실패한 뒤 원한이 쌓인 거라..
갑론을박이 오간 끝에 이경신과 부인은 처형, 자손들은 노비로 삼는 등의 강력한 처벌이 내려집니다. 본문에서는 바뀐 역사로 처벌이 더욱 업그레이드되어 모두 거병한, 즉 군사반란을 일으킨 역적에 준하여 처벌되는데 그 안 또한 '이괄의 예에 의거하여 처벌' 하도록 신하들이 건의했었던 내용입니다. 그땐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이번엔 받아들여진 거죠.
2. 박윤수의 경직 임관은 실제 역사와 비교했을 때 작중에서도 시점과 경로는 거의 같습니다. 다만 작중에서처럼 김조순과 저렇게 대놓고 격렬하게 대립하게 된 것은 역사와 조금 다른 순조의 임관 동기 때문입니다.
3. 당대의 군함은 '전쟁이 나면 건조하는 것' 이었지, '미리 만들어서 대비하는 것'이 아니었고 조선의 기괴하기까지 한 조수간만 때문에 큰 전선은 만들어 봐야 제때 출동하기도 어려워서.. 당시(순조 초) 경기수영 전체에 대전선이 단 4척, 황해수영 전체에 2척이었습니다.
그래도 사실 조선은 왜란 이후 수군을 꾸준히 늘렸습니다. 17~18세기에는 좀 뜬금없어 보이는 '청나라 중원 폐기 및 영고탑 도주(후 조선 재침공)설' 대만 정씨일족-일본 연합해적 남해안 상륙설' 등이 진지하게 논의되는 등 위기의식도 있었고요. 그땐 나름대로 근거가 있었겠죠.(예를 들어, 당대 대만 해적 정씨 일족에는 모계 쪽으로 일본인이 있었습니다)
4. 백대현, 이사집의 일은 시점만 다르고 거의 역사 그대로입니다. 단 무기를 밀매한 건 아니고 쌀이었습니다. 전부 다 처형되며, 조선은 청에 문서를 보내 사죄합니다.
또 백대현은 팔기군에 대해 옛날 소문을 들은 거라 저렇게 연출된 거지, 이때는 솔직히 팔기군도 맛이 가기 시작하는 상황이었습니다.
5. 조끼는 본문처럼 외래어(포르투갈어)에서 유래했으며, 한복에 원래 있던 양식은 아닙니다. 한복과의 변별점은 역시 '주머니가 있다' 는 점이죠.
6. '얼우다'는 고어로 성관계를 뜻하는 말입니다. 어른의 어원이 이것이라는 설이 있죠. 유명한 예시로는 서동요의 '선화 공주님은 맛둥방을 얼어 두고' 가 있습니다.
9. 걷히는 장막(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