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25화 (25/284)

25화

8. 바뀌는 물살(2)

질문이 있을 때 손을 드는 것도 시준이 가르친 방식이다. 가장 빨리 적응한

수재인 이강회가 단정히 꿇어앉아 질문했다.

“그렇게 한다면 나중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환히 알게 되겠으나, 다만

미편한 것은 값비싼 종이의 낭비가 심하고 또 사소한 일까지 일일이 적어 위

에 보이느라 일에 때를 맞추지 못하는 일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떤 방도가

옳겠습니까?”

시준은 이 정도 질문이 나온 것만 해도 감사했다. 적어도 자기 얘기를 진지하

게 들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문서로써 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미리 밝게 적어 나누어주어 모든 사람이

알고 지키게 하며, 결재할 사람이 없으면 그 아래 사람이 대신 하되 어떤 사

람이 언제 대신하는지도 미리 적어 책으로써 두어야 합니다. 이로써 누가 어

떠한 자리에 오더라도 다만 서안 옆의 책장만 한 차례 훑어보면 단 하루 만에

무슨 일이든 처리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한비(韓非)가 말한 술(術)로써

창과 방패[矛盾]의 다툼을 없이하고 한가지로 바로잡는 것입니다.”

한비자는 요가 밝게 다스렸다면 순이 황폐함을 바로잡을 필요가 없다면서, 그

둘이 동시에 칭송받을 수 없음을 변설했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창과 방패의

고사다. 정약용 제자 삼 년이면 현대인도 풍월을 읊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신작칙의 모범을 보이는 유가적 통치자의 자세는 물론 좋다. 하지만 비효율

적이다. 세상에는 모자란 사람과 사악한 사람도 있음을 인정해야 하며, 적절

한 시스템[法]과 기술[術]로써 그들을 일정한 틀 안에 집어넣어야 한다.

국가 경영의 여러 분야 중 행정이라는 면에서 볼 때, 이 일정한 틀이란 곧 명

문 규정으로 대표되는 사무처리 방식이다.

사람이 일하지 않는다. 규정이 일할 뿐이다. 한비자의 말은 사실 근대 관료제

에서 일정 부분 실현된 것이다.

“또 종이의 낭비를 말한다면, 조정에서도 창의문 밖에서 종이를 씻어다가 다

시 쓰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글은 오래도록 남기되, 사소한

일은 1년, 3년, 혹은 5년마다 씻어서 환지(還紙, 재생지)로 다시 쓰면 됩니다.”

세초는 빨래하듯이 씻어내는 것이라기보다 뜨거운 물에 두들겨 분해해서 다시

널어 말려 만드는 것에 가깝다. 중국은 사초를 씻는 게 아니라 불태웠고, 종

이의 체계적 재활용이라는 개념은 현대 이전에 잘 없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특이한 일이었다.

이러한 한지의 특성과 함께, 조선이 꽤나 가난한 나라였다는 특성도 있어 이

러한 재생지는 재상휴지(災傷休紙)라고 불리며 호조의 귀중한 비축지로 사용

되었다.

공정 자체가 대단한 기술을 요구하는 건 아니라서 종이 많이 쓰는 만상도 마

찬가지로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다.

마침 기회라고 생각한 시준은 거기에 한 마디 더 덧붙였다.

“대국에 올리는 글에는 자문지(咨文紙, 외교용의 두껍고 단단한 고급지)를 쓰

며 중하지 않은 일이나 무언가를 싸매는 일에는 피지(皮紙, 닥나무 껍질로 만

드는 저급지)를 씁니다. 일개 상방의 안에서 고하고 받아가는 일에 새삼 붉고

누른 종이를 쓸 일은 없고 싼 종이면 됩니다. 또한 여기에서 사람의 품까지

아낀다면 값싸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을 알 수 있겠습니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오늘 차강은 그로써 대신하지요. 여러 자제들께서 다

른 분주한 일이 없으시다면 저를 따라오십시오.”

정약용과 이강회, 그리고 제자의 대부분이 따라왔다. 학당 심부름꾼 겸 반 학

생이 되어 있는 기랑도 마찬가지였다.

의주는 압록강 바로 부근이다. 곧 강가에 도달한 시준 일행은 큰 물레방앗간

과 거기에 딸린 여러 부속 시설을 보게 되었다.

“허어, 물레방아가 돌아가면 그것이 바퀴를 돌리는데, 거기 막대기를 잇대는

것만으로도 돌아가는 수고를 때리는 수고로 바꿀 수 있구나. 실로 오묘하다.

네가 이것을 언제 만들었느냐?”

크랭크와 수력 해머를 처음 보는 정약용은 그 기계를 세심히 관찰했다. 이강

회 또한 그 법식을 그림으로 그리며 침세군(沈洗軍, 세초하는 일꾼. 여기에서

는 재생지 만드는 사람) 노릇하는 자들과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등 열

중하는 모습이었다.

적정기술의 지식과 영국 배에서 사들인 비슷한 기기들의 도면, 그리고 시준의

복지 혜택 정도밖에 밑천이 없었던지라 만드는 데에는 꽤 고생했다.

적당한 입지를 찾느라 시간도 오래 걸렸지만, 결국 압록강을 몇 번이나 오르

내린 끝에 그럴싸한 원시적 수력 제지공정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이강회가 이번에도 날카롭게 질문했다.

“물로 방아를 돌린다는 법식은 세종조 때부터 힘써 권하였고 과거 문정공(김

육)도 주창했으나 나라에 널리 행하지는 못한 것인데, 그 까닭은 대개 수차가

물살이 적당한 곳이 아니면 쓸 수 없고 그러한 좁은 하천은 여름에 많이 불었

다가 가을에 마르며 겨울에는 얼어붙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어찌 해결하였습

니까?”

그 말대로 조선에서 개화기 때까지 본격적 대형 수력 방앗간이나 양수용 자전

수차 같은 게 없었던 것은 조선인들이 멍청해서가 아니라 자연환경이 너무 안

좋았던 탓이 컸다. 가성비가 안 나오는 것이다.

머리 좀 쓴다는 사람들은 국초부터 수차의 이점을 알고 있었다. 내가 반드시

이걸 하고야 말겠다고 이를 악문 세종부터 시작해 조선의 역대 제왕도 각자

한 번쯤은 수차 보급에 애써 보았다.

하늘도 땅도 물도, 심지어 사람들도 별로 돕지 않아 성과는 시원찮았지만 이

시기쯤 오면 조선 각지에서 환경에 맞게 개량한 수차가 쓰인다.

그리고 지금 이 의주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유민이 있다. 시준이 아무리

손재주와 지식이 있다고 해도 그런 역사가 없었으면 그 혼자서는 수차를 만들

지 못했을 것이다.

시준도 이미 선험자들이 다 해 본 일은 깔끔하게 포기했다. 조선 천지에 겨울

에 얼지 않는 물은 거의 없다.

“그럴 때는 물 대신 우마를 매어 돌립니다. 특히 이 북방은 매우 추워서 겨울

이면 얼지 않는 개울이 없어 어쩔 수 없습니다. 다만 압록강은 물살이 거세고

지금 보시는 것처럼 급한 골짜기나 물 떨어지는 곳이 많아 늦봄부터 가을까지

는 매우 적당합니다.”

“제가 살던 호남이나 제주에서는 특히 쓸모가 많겠군요. 전라도에는 겨울에도

얼지 않는 강이 몇 군데 있습니다. 다만 물살이 괜찮고 흘러가는 물이 새어

버리지 않는 곳만 찾으면…….”

“이군(李君)의 총명하신 헤아림 그대로입니다. 여기와는 다르게 남쪽에서는

대나무도 많이 자라는데, 그렇다면 재료에 드는 돈도 더욱 아낄 수 있을 터입

니다.”

아직 기후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왕대의 북방한계선은

시준이 학교에서 배우던 대로 충주에서 강릉 정도였다. 시준은 어릴 때 보았

던 역사 만화책에서 홍경래의 반란군이 죽창 들고 있던 모습을 떠올리며 배신

감을 느꼈다.

그래서 조릿대 같은 것도 쓰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아직 품이 많이 들어 가성

비가 떨어졌다. 그리고 이강회나 정약용이 아직 떠올리지 못한 다른 여러 가

지 이유 때문에, 이 종이 공장은 기술 실증 이상의 의미는 크지 않았다.

그래도 분명 돈이 적게 드는 것은 사실. 어떤 것이든 프로토타입은 그 자체로

는 쓸모가 적다. 시준은 지금 격증하고 있는 만상의 규모로 볼 때 번거로움을

감수하고라도 이 종이 공장을 크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책은 아니지만 기랑 또한 탄환 쌀 약포를 만들려고 여러 자투리 종이를 챙기

고 있었다. 이강회나 정약용도 비슷한 생각인 모양이었다.

“종이는 선비의 중한 벗인바 제지하는 일은 어찌 떳떳한 일이라 아니할 수 있

으리. 비록 지금은 일개 상인들의 꾀라 하여도, 이것이 서울이나 삼남에도 설

비된다면 학자의 공부와 조정의 사무에 큰 보탬이 될 터. 지금 이를 비루한

기기, 장인바치의 일이라 하는 사람은 말류에서 대본으로 흐르는 이치를 못

보는 자이다.”

“오성(五星, 임금)이 열수(列宿, 재상과 낭관)를 다스리는 법과 수령이 백성

을 다스리는 법, 가독(家督)이 집안사람을 다스리는 법은 다르지 않은 것. 참

으로 그 말씀이 옳습니다.”

“과연 그렇다. 사물에 이르러 앎에 도달하고 뜻을 성실히 해서 마음을 바루

며, 이로써 몸을 닦고 집안을 경영하여 끝내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케

하는 것[格物致知 誠意正心 修身齊家 治國平天下, 『대학』]은 모두 한 가지

뜻으로 관통하는 일이다. 네가 참으로 나의 가르침을 익숙히 하였구나.”

거창하게 칭찬을 늘어놓은 정약용은 그러면서 시준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지나칠 정도로 환하게 미소지었다. 그냥 고개를 숙이려던 시준은 뭔가 이상한

것을 감지하고 머리를 굴려 보았다. 조선 사람이 쓸데없이 밝게 웃는다면 결

코 좋은 일이 아니다.

시준은 맥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은 여기저기서 기기가 망가져, 이 방아는 올해 봄에야 처음 움직였

습니다. 여기서 첫째로 나오는 새 종이를 써서 깨끗한 백지로 한 권 공책을

묶어 마땅히 선생님께 바쳐 올리겠습니다.”

“허허. 학당에서 아이들 가르치느라 나도 공부할 바가 많았는데 잘 되었구나.

제자가 이리 학문에 열심이니 나도 마땅히 병을 핑계 삼지 말고 정진하여 책

을 더 써야 하겠다. 그러잖아도 마침 새해라서 곧 『역경(易經, 주역)』의 여

러 편명을 뽑아 간추리려 했다.”

교학상장이고 근묵자흑이라. 상도와 근대 의식을 티 안 나게 주입시킨 결과는

정약용이라는 큰선비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시준은 앞으로 정약용이 신나게 써 댈 공책 값이 아까워 죽으려 하다가 곧 마

음을 고쳐먹었다.

‘아니, 아니다. 근대 행정시스템은 인류가 발명한 가장 효율적인 체제. 그리

고 관료제의 시작과 끝은 종이 장부와 보고서다. 정약용이 지금 평가한 것처

럼 조선 정부에까지 이런 일이 보급되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거야. 조그마한

상단 정도야 말할 것도 없지.’

기왕 정약용에게 잘해 준 김에, 시준은 하나 더 물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의 종제(從弟) 되시는 분이 근래 의주에 오셨지요?”

정약용의 배다른 아우 약횡(若鐄)을 말하는 것이다. 정약횡은 본래 서출이므

로 종제라는 표현은 별로 맞지 않으나 시준은 일단 그렇게 얘기해 주었다.

“그렇지. 마침 형이 여기 있으니, 여기에 와서 살림 보살피며 의원을 한다고

하더구나. 제 사는 것도 빠듯할 텐데 뭘 이 멀리까지…….”

실제로도 정약횡은 한의사였다. 정약용은 아들이 의원을 한다고 했을 때는 선

비가 할 일이 아니라며 매우 야단쳤으면서도, 서자라 어쩔 수 없이 의원을 하

고 있는 정약횡에게는 의원이 지켜야 할 도리를 세세하게 편지로 일러주었다.

시준으로서도 정약용의 가족을 여기 정착시키는 게 좋았다. 순조가 정약용을

나중에 부른다면, 가족이 있는 의주에 뭐 하나 해 주지 않겠는가 말이다. 역

사 지식이 부족한 시준의 헛된 기대였지만 말이다.

그래서 시준은 비밀히 말했다.

“제가 근래 방서(方書, 의서)를 얻었는데 단지 볼품없이 너덜너덜한 책이지만

그 적혀 있는 글이 신묘합니다. 일단 거기 나온 화타(華佗)의 마비산(麻沸散)

을 제가 만들어 보니 실로 특효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약을 앞으로 제씨(弟

氏)께 싼값에 드린다면 또한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설마 『청낭서(靑囊書)』가 불타 없어지지 않았다는 말이냐? 허, 너는 그런

책을 잘도 얻는구나. 방서야 가짜가 워낙 많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차후로 유

리창 같은 곳에서 진귀한 책을 보거든 꼭 내게도 보이도록 해라.”

그냥 그 방서를 내놓으라고 하기에는 정약용도 제자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정

약용은 제자에게 에둘러서 말했다. 시준도 알아듣고 빙긋 웃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선생님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른 곳에는 팔지 않

을 것이니 오직 그 약방만이 명의로 소문날 것입니다.”

“내 너에게 면구스러울 뿐이다.”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오신 뒤로 이 변경 의주의 학문이 나날이 흥성하니 제

자로서 어찌 아무것도 하지 않겠습니까.”

정약횡과 사이가 좋았던 정약용은 그저 제자로 하여금 동생 약방에만 독점 공

급하도록 하는 것으로 형의 체면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약의 위험성이나 효능에 대해서는 정약용도 묻지 않았다. 이 시대, 약이란 건

먹고 죽지만 않으면 되고 약효라는 것도 대충 플라시보 효과가 절반을 차지하

는 물건이다.

그리고 이 마비산의 효과는 확실하기까지 하다. 정약횡의 번창은 보장된 일이

었다.

시준이 이 ‘마비산’, 그러니까 모르핀을 개발한 것은 작년의 일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두세 해 전 독일에서 최초 분리되었으니, 얼마 안 있어 현대의

알약 진통제만큼이나 흔히 쓰이게 되는 물건이다.

아편을 좀 좋은 쪽으로 활용해 보자고 결심했던 시준은 당시 홍득주를 찾아갔

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영국인들이 양귀비로 만드는 약을 가르쳐

주었다며 입을 털었지만 홍득주는 그리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네가 이미 다 알고 온 게로구나. 이제 산남이 일도 있고 하여 호랑이 등에

탄 것이나 다름없는데 부자간에 거리낄 것 없다. 그래, 너도 여기 한 다리 끼

고 싶은 게냐?”

홍경래와 불안한 연합전선을 형성한 일에서 홍득주도 영감을 얻었다. 배제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같이 엮어서 한 배를 타게 만드는 게 낫다. 그리고 홍득

주는 이제 시준을 버릴 수 없다.

시준이 무안해하며 대답했다.

“어쭙잖은 말재간을 부려 죄송합니다. 앵속은 전에 말씀대로 사람을 해치는

독이 될 수 있으나, 독과 약은 종이 한 장 차이로 통하는 법이라. 영길리국

사람들이 일러 준 대로 한다면 필시 비싸게 팔 좋은 약을 만들 수 있습니다.”

시준의 설명을 들은 홍득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일단 저 멀리 무산(영변)에 돌밭인 체하고 만들어 놓았는데, 담배 밭

값으로 쳐서 밭째로 두어 마지기 주마. 대신 약 판 돈의 1할은 이 아비의 것

이다.”

상인에게 효가 없으니 애(愛) 또한 있을 턱이 없다. 부자간의 냉정한 거래를

마친 시준과 홍득주는 서로 만족했다.

양귀비는 그렇게 구했다 치더라도 분리가 일이었다. 당시 화학으로도 최첨단

지식이다. 그러나 시준이 홍득주에게 한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몇 해 전 레디 선장과 같이 왔던 외과의 조수 윌리엄 자딘은 그 후 조선으로

오는 밀무역마다 두 번에 한 번은 꼭 따라왔다. 그는 만상에게, 정확히 말하

면 시준에게 부담스럽게 친한 척하며 이것저것 가르쳐 주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어려운 학문도 대충 알아듣는 이 동양인 꼬마가 신기했을 것

이다. 그래서 시준은 그간 수입한 책들과 윌리엄 자딘의 자문 및 최신 논문의

도움을 받아 모르핀 제법을 습득했다.

정작 모르핀의 제법 자체는 생각보다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다. 양귀비에서 모

르핀이 나온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 차이이기에 19세기 초에

나 개발되었을 뿐이지 현대인과 재료만 있다면 중세 시대에도 만들 수는 있다.

양귀비를 끓여다가 석회, 염화암모늄 및 강산으로 처리하면 마취약으로 현대

에도 쓰이는 모르핀이 된다. 모두 19세기 아니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쓰이던

물건이다.

그러나 근대교육을 받은 현대인이 흔히 그렇듯이, 시준 역시 그게 이 시대에

뭐라고 불리는지를 몰랐다는 게 문제였다.

‘아이고, 뭔 연금술 같은 말로 쓰여 있어서 몰랐는데 이거 염화암모늄이잖아.

그냥 포기할까? 이걸 어떻게 구해?’

강산은 어차피 지금 조선에서 구하기도 어렵고, 정제용이라서 순도를 포기하

면 없어도 큰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분리와 침전을 담당하는 석회 및 염화암

모늄인데, 석회야 손쉽게 얻을 수 있지만 염화암모늄이 문제였다.

시준 역시 고등학교 화학은 배웠다. 척 봐도 암모니아와 염소, 그러니까 염산

이 필요할 것 같은 이름이다. 그러나 그 두 물질을 조선에서 쉽게 구할 수 있

었으면 조선에 흉년이 없었을 것이다.

‘오줌에 암모니아가 들어 있다 하지 않았던가? 일단 끓여 봐? 아니, 그건 인

(燐) 같은데. 약 만들려다가 백린탄 만들 수는 없잖아.’

의외로 그 단서를 제공해 준 것은 정약용이었다. 시준도 괜히 호의를 베푸는

것은 아닌 셈이다.

정약횡이 아직 서울 있을 시절, 정약용은 동생의 편지를 받고 의원 개설을 위

한 여러 준비를 해 주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약재였다.

정약용은 시준에게 부탁하였고, 시준은 만상을 움직였다. 정약용의 요청대로

중국에서 망사(硭砂, 북정사. 화산지대에서 채취하는 광물 약재)를 수입한 시

준은 그 표본을 가지고 학당으로 갔다.

정약용이 표본을 꼼꼼히 검사하는 와중에도 시준은 모르핀 생각뿐이었다.

‘염화암모늄…… 염화암모늄…… 그 맛 이상한 핀란드 목캔디에 들어 있었던 거

같은데. 짜고 매운 그거…….’

정약용은 망사를 조금 핥아 보고 내려놓았다.

“의서에 말하기를 망사는 뜨거운 온천이나 불타는 산 근처에서 나며 맛이 짜

고 맵고 시다 하는데,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내가 늙어서 혀가 둔

하여졌는지 아니면 이 약이 가짜인지 알기가 어렵구나. 너도 한번 맛이나 보

겠느냐?”

평소 같으면 ‘내가 돌을 왜 핥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준은 정약

용의 표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화산! 유황온천! 암모니아! 짜고 맵다!’

정약용은 망사를 씹어먹을 듯 달려드는 제자에게 독한 약재이니 주의하라고

말려야 했다.

기분 탓인지 전생에 유학생 친구의 장난으로 먹었던 그 캔디와 비슷한 맛이

나는 것 같았다. 시준은 시침 뚝 떼고 말했다.

“제자도 애매하여 확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 망사를 도로 가져가서 아는 의

원들에게 보게 하겠습니다. 물론 가짜라도 값은 제가 다 치를 터이니 걱정하

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 고맙구나.”

염화암모늄은 약재 분리뿐만 아니라 기폭약 제조에도 쓰이는 유용한 물건이

나, 약재로서는 담을 삭이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하는 정도라 삼이나 우황 같은

귀한 물건에 비할 바는 아니다.

시준은 아쉽지만 가짜 같다고 통보한 다음 그 망사를 모르핀 제조에 써먹었

다. 꽤 많은 양의 양귀비를 날려먹은 끝에 시준은 드디어 약간 순도 떨어지는

모르핀을 뽑아낼 수 있었다.

그러니 정약용에게 공책 좀 대어 주는 정도는 아깝지 않은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종이 공장을 견학하던 학동들이 해산하고 나자, 시준도 집으로

돌아갔다. 시준의 방 한편 시렁에는 재생지에 곱게 싸인 유리병이 늘어서 있었다.

‘원래 직접 판매하려고 했지만, 내가 그리 한가한 사람도 아니고 정약용 동생

이 이 동네에서 의원 한다는 마당에 내가 옆에서 이런 거 팔고 있으면 상도의

가 아니지. 그러잖아도 열네 살짜리 애송이가 운영하는 의원에 누가 올지도

의문이었는데 잘 됐어. 납품처만 잡으면 이쪽이 알짜다.’

물론 시준이 만든 약이 마약 친구들만은 아니며, 시준이 받은 복지 혜택에도

싸움질의 지식만 있는 게 아니다. 저개발국가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시준

은 다양한 생존주의 의료 지식을 습득했다.

거기에 서울에서 구해 온 동의보감에다 유럽 서적까지 합쳐지자 시준은 여러

유용한 약을 제조할 수 있었다. 대개는 이 시대 사람들도 알고 있는 처방을

간략화하거나 효율화한 물건이라 모르핀을 따라올 약은 거의 없었지만 좋은

약임에는 틀림없다.

‘약도 약이거니와 유리병 자체도 여기서는 귀한 물건이지. 따로따로 잘 팔아

먹어야겠어.’

이걸 준 윌리엄 자딘과 조금 더 친밀감을 쌓아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흐

뭇해하는 시준은 뒤에서 방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를 미처 듣지 못했다.

“어라. 너 거기서 뭘 해? 일찍 왔네?”

작가의 말

1. 작중 나온 것처럼 피지는 저급의 종이인데, 적어도 조정급 정도 되면 이걸로 문서를 쓰는 일이 그리 많지는 않았고(종계변무 당시에 중국에서 피지에 뭘 적어서 준 일 때문에 조선 사신이 '이건 공적인 뜻이 아니다. 우릴 뭘로 보는 거냐.' 하는 식의 반응을 보인 일이 있었습니다) 갑옷을 만들거나 뭘 포장하는 데 주로 썼습니다.

2. 세초를 거친 재생지는 조지서로 다시 보내졌다는 게 기존의 학설이나 최근의 연구로는 호조로 이송된 것으로 보입니다. (조계영, '조선후기 실록의 세초 기록물과 절차', 2014, 고문서연구 제44호) 이 재생지는 바로 문서에 쓴 건 아니고 실록 편찬할 당시 인쇄용의 활자를 정렬하는 과정에서 그 빈틈을 메우는 데 주로 썼다고 합니다. 교수청에서 종이 달라 하고 호조에선 우리 종이 없다고 버티다가 왕에게 일러바칠 것 같으니까 숨겨놨던 비축분 내어주는 등 재미있는 일도 있었습니다.

3. 정약용이 어째 남의 책 베껴다 엮는 서술만 자주 보이는데 이 시대 선비들의 저술이란 게 다 그런 것이라;;; 정약용 하면 본인의 저서가 많이 알려져 있긴 하지만, 정약용의 저술에도 이런 식의 발췌 편집이 더 많았습니다. 논어에도 '술이부작' 이라 하여 자기가 지어내는 것은 하품으로 쳤죠.

4. 윌리엄 자딘이 간만에 다시 등장했군요. 종종 나올 겁니다. 이 시대 아시아 밀무역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이니..

8. 바뀌는 물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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