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8. 바뀌는 물살(1)
시준은 홍경래를 힐끗 쳐다보았다. 겉으로야 태연한 척하고 있으나 입맛이 쓸
게 확실했다.
유민들에 대한 통제가 최대한 적어야 반란을 일으키기 쉬운데, 이래서는 광산
노동자를 반란군으로 육성하기도 마땅찮다. 명부의 작성과 관리를 만상들이
하니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트집을 잡아 이 작업을 방해하기도 명분이 없다. ‘왜 명단 만들어서
제대로 관리하면 안 되는데?’에 대한 답을 제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물론 세상에 무대포 인간들은 많으므로 이 사업에서도 방해자는 있었다. 주로
잠채를 눈감아 주고 이득 챙기던 색리와 하급 이속, 그리고 그들에게 붙은 일
부 어리석은 덕대들이었다.
이제 양지로 나온 금 채굴업의 사세를 파악하지 못하고 음지의 조그마한 이득
만 본 그들의 최후는, 정석대로 역사 속에 묻히는 것이었다. 단, 만상의 방식
대로.
‘우리 총각 아저씨가 처리해 줬으니 다행이지. 걔네도 끌어들여 볼까 했지만
너무 질이 떨어져서 귀찮았던 차에 잘 됐어. 세금 몇 푼이 아까워서 잠채질이
나 계속하겠다는, 장기적 안목이 없는 인간들은 같은 편이면 오히려 걸림돌만
된다.’
그렇다곤 해도 시준은 맹차의 위력을 직접 봤기에 이속들에게 직접 손대는 것
은 주저했다. 하지만 홍경래와 홍총각은 주저하지 않았다.
협상은 협상할 가치가 있는 인간하고만 하면 된다. 어중이떠중이 다 동료로
포섭하는 일은 높은 인덕이 아니라 어리석은 방만이다.
홍경래가 수사를 은폐하고 혼란시키며 한편으로 몰래 사람을 지원해주면 홍총
각이 실제 행동으로 옮겼다. 수령하고만 얘기가 되면 아랫것들은 언제든지 갈
아 끼울 수 있는 부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시준보다는 오히려 조선인들 쪽이
잘 알고 있었다.
그 뒤는 시준이 생각해도 소름 끼치는 수법이었다.
그들은 노름판에서 다투다 우연히 맞아 죽거나, 술 먹고 길 가다 어깨 부딪쳐
서 싸움 끝에 칼에 찔리거나, 밤에 발 헛디뎌 강에 빠져 시체도 못 찾거나 하
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라졌다. 범인은 달아나서 유민 틈에 섞였기 때문에 ‘송
구스럽게도 도저히 잡아내지 못했’다.
관민이 화합하는 아름다운 관서의 풍속은 여기에서도 발휘되었다. 수령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손발을 맞춰 주었다.
“벌써 비명횡사한 사람이 몇 명인가. 유민들이 거취 없이 떠돌아다니니 자연
범죄하는 자가 많다. 당장 땅을 내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므로 부득불 권도를
행하지 않을 수 없다. 홍득주, 이희저 등 여러 부로들이 금점을 개설하였는
데, 나라의 법을 깊이 헤아려 사용인을 다스리는 법도가 엄정하니 되도록 그
쪽 금점이며 은점으로 소속케 하여 그 들고나는 형편을 세세히 밝히라.”
운산 군수 이식(李栻)의 분부였다. 이 사람은 원래 암행어사 이원팔에게 갈려
나갔어야 하지만 이원팔이 의주와 시준에게 집중하느라 다행히 아직 수령 노
릇 하고 있었고, 근문소의 핵심 자문위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수령들이 그저 만상에게 놀아났다고만 볼 수도 없다.
기민이라 하면 다 떨어진 옷으로 굶어 죽어가는 사람을 떠올리지만, 당시 평
안도의 기민 중 적잖은 수는 그저 유리걸식하는 무리가 아니라 일종의 이동식
집단 노동자에 가까웠다.
광산마다 메뚜기 떼처럼 옮겨 다니며 하루 벌어 하루 먹었는데 이 과정에서
충돌이 없을 리 만무하다.
남의 집에 멋대로 들어가 주인 내쫓는 짓은 물론이요, 강도, 강간, 폭행, 납
치까지 무엇도 거리끼지 않았으며, 심지어 자기들끼리 결사를 이루어 수령에
게 광산 단속을 하지 말라고 위협까지 가하는 실정이었다.
그렇다면 조정에서 왜 이들의 근간인 금은 채굴을 금지해 버리지 못했는가 하
면, 조정도 머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흩어 놓으면 진짜 반란군으로 재집
결하리라는 것 정도야 누구라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20세기 미국처럼 광산 노동자의 소요를 폭격으로 진압해 버리기에는
조선에 비행기는커녕 정예한 지방군도 없다. 장용영마저 사라져 버린 지금의
조선 관군은 수도 방위나 겨우겨우 하고 있을 뿐이다. 전쟁이나 정치범도 아
닌데 출동할 병사는 없는 것이다.
평안도 각지 고을 수령은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 나라가 법을 정해서 아무리
내려보내도 법 자체에 허점이 많고 딱히 단속 수단도 없어 고과 깎일 각오나
해야 했던 차에, 유민의 진정과 사적 금점의 성공적 운영이라는 두 마리 토끼
를 잡게 되었으니 말이다.
새 의주 부윤 조홍진(趙弘鎭)도 뒷짐 지고 나와 배부른 표정으로 지켜보는 사
이, 차형기와 임상옥이 사람들 사이를 바쁘게 돌아다니며 일종의 사전 교육을
실시했다.
“자, 많이 먹고, 이제 나라에서도 허가한 만큼 금점(金店)에서 일만 힘써 하
면 세 끼 밥뿐만 아니라 매일 또 품삯이 나갈 걸세.”
“진짜 그냥 주는 거여?”
“아무렴. 이게 다 의주 사또께서 떠돌이들 불쌍히 여겨 한 끼 베푸시는 거라
니까. 아, 이 사람. 속고만 살았나.”
“그 말대로 속고만 살아놔서 내 믿을 수가 있어야지. 이런 사또만 있었어도
우리 고향 아전바치놈들이 엄한 사람 땅 속여 뺏고 내쫓지는 못했을 텐데…….”
“잘들 먹고 있나? 배부르면 뭐 할 텐가. 어차피 다음 끼니 또 걸러야 할 텐
데, 마침 좋은 품팔이 자리가 있네.”
“여기도 품팔이야? 내가 은갱에서 버력 나르는 일이라면 좀 해 봤소.”
“오호, 그러고 보니 자네 입은 바지가 바로 의주바지로군! 이름이 뭔가?”
의주바지는 이력서 같은 게 있을 리 없는 유민들에게 좋은 신분 보증 역할을
했다.
싸지 않은 의주바지를 굳이 입고 있는 사람은 이게 꼭 필요한 사람, 그러니까
막일꾼 경력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시준은 앞으로도 늘어날 의주바지
판매고에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준은 곧 익숙한 고함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기껏 밥이며 술이며 내어주었더니 이게 무슨 행패야! 상도적놈 같으니!”
지유였다. 홍득주네 집 사람들이 대거 동원되는 행사인 만큼 지유도 빠질 수
는 없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시준과 같이 거두어진 아이들 여럿이 여기서 잡
일을 하고 있었다.
시준이야 서장관이라 불리며 소맷자락에 먹물 묻히고 산다 해도 그건 특출난
사례일 뿐. 다른 아이의 역할은 일반적인 고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요즘은 지유를 볼 일도 많이 없을 정도였다.
워낙 바쁘다 보니 남녀유별을 제대로 지킬 틈이 없다. 그래서 지유와 다른 아
이들도 소매 걷고 찬 담으며 죽 끓여대었는데, 유민 중 술 한잔 들어가니 자
기 처지를 잊어버린 녀석이 나온 것이다.
“고것 목소리 한번 크다. 아, 어차피 이런 데에서 밥 나르는 계집이 팔자 뻔
한 것 아니냐. 어디 보자…….”
촥!
그 지저분한 손이 지유에게 닿기도 전에, 유민은 구정물을 뒤집어썼다. 아무
데서나 흘레붙는 개에게 쓰는 전통적 처방이지만 개와 별로 수준 차이가 없는
인간에게도 유용하다.
하지만 그게 그냥 물이었다면 지유답지 않은 일이다. 설거지하느라 받아놓았
던, 펄펄 끓는 비눗물을 뒤집어쓴 유민 사내는 눈을 감싸쥐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으아악! 이, 이게 뭐야!”
“깨끗이 씻기나 하거라. 흥! 네 주제로 내게 손이나 댈 수 있을 줄 알아?”
눈을 비빌수록 더 고통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그 유민과 같은 패거리였던 여
러 명은 분개해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들이 뭔가 욕설을 뱉거나 이 경사스러운 잔치를 망칠 틈은 없었다.
“이 건방진 게…….” 하며 손을 치켜들었던 장정 하나는 그 손을 다시 쳐내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정이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시준은 소반과 돗자리며 그릇들이 상하지 않도
록 남자를 조심스럽게 등에 졌다. 그러고는 돗자리 바깥 맨바닥에 메쳐 버렸다.
꽝!
상대방의 코뼈를 분지르거나 낭심을 터뜨리는 대신 땅에 내동댕이치는 유도는
얼핏 보기에 신사적인 호신술로 보인다. 경찰 등 공권력에서 선호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히 무술이며, 맨손 타격기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갑옷
착용자를 상대로 발전한 살상 기술이다. 상대가 낙법을 알지 못하고 바닥에
매트조차 없을 경우 그 살상력은 문명인의 순진한 상상을 초월한다.
행사의 목적이 목적이라, 감정 상하지 않고 제압하려 했던 시준도 상대가 거
품만 물 뿐 일어나지 못하자 적잖이 당황했다. 그러나 차형기는 잘했다는 듯
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것들은 원래가 보듬어 주면 더 기어오르게 마련이지. 저런 놈 하나 나올
줄 알고 내가 여기 있었는데 서장관이 잘해 주었구먼.”
마치 자기는 천것이 아니라는 듯이 근엄하게 말한 차형기는 곧 나서서 팔을
벌리고 소리쳤다.
“시끄럽게 웅성거리며 떠들지 마라. 너희가 누군지 안다. 자기 몸뚱어리 팔아
밥 잘 먹다가 좀 힘드니까 도망한 종놈, 투전판에서 빚쟁이에게 쫓기다 야반
도주한 놈, 평안도 가면 제 하고 싶은 대로 아무렇게나 살 수 있다고 듣고 나
선 무뢰한 놈! 여기 태반은 발모가지에 칼집 내어 들여앉혀야 할 망나니 놈이
렷다.”
제 잘못 없이 억울하게 고향 떠나 온 사람도 많았건만, 차형기의 살벌한 눈빛
과 추궁하는 말투는 그들 자신에게마저 내가 뭘 잘못했던가 하는 생각을 떠올
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일단 조선에서는 다른 데 가서 살고 싶다고 제 마음대로 고향 떠나는 것부터
가 경을 칠 일이다. 게다가, 고향에선 죄지은 거 없어도 여기 와서 죄지은 사
람이 실제로 태반이기는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멍하니 입가에 멀건 고깃국물 흘리며 차형기를 쳐다보았다.
차형기는 시준이 써 준 대본을 마치 자기 생각처럼 자연스럽게 호령했다.
“지금부터라도 사람답게 살도록 하여라. 이제부터 십장(什長)이니 계원(契員)
이니 하여 작당하고 품삯 빼돌리는 일, 노름하는 일, 일하다 술 처먹고 민가
쳐들어가 계집 업어오는 일 따위는 꿈도 꾸지 마라. 들키면 나라의 법을 적용
할 것도 없이 이 어르신이 친히 착착 깎아다가 돼지 여물로 던져 주겠다. 너
희들 지금 처먹는 고깃국물이 다 어디서 나오는지는 알기나 한다는 말이냐!”
여기에서 요즘 청에서 들여와 기르고 있는 돼지들을 떠올릴 수 있는 자는 아
마 시준 하나뿐일 것이다. 홍경래마저도 당혹한 얼굴이 되었다.
손 잘못 놀렸다가 돼지 먹이가 되느니 나는 빠지겠다는 생각이 유민들 몇 명
의 표정으로 떠올랐다. 그럴 줄 알았던 차형기는 그 파문이 더 번지기 전에
재빠르게 말했다.
“하지만 성실히 일하기만 하면 너희 같은 놈들에게도 나라의 은혜는 미치느니
라. 네놈들의 눈깔에는 여기 나와 계신 사또 나리가 도대체 뵈지를 않느냐?
존귀하신 분이 친히 발걸음하셨는데 너희가 감히 어디서 소란이냐?”
의주 부윤 조홍진이 갑자기 허리를 펴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과연 목민관이라
할 만했다. 사또 앞에서 사람을 돼지밥으로 어쩌고 했던 차형기가 전혀 그렇
지 않은 듯이 당당하게 외쳤다.
“나랏님 명 받으신 사또는 물론, 고을의 명망 높은 여러 어른들이 근문소에서
다아 잘 논의하셔서 품처하신 일이다. 일봉이 하루에 두 전(錢)이요, 한 달간
말썽 없이 일하면 거기에서 다시 닷 전을 더 쳐 주마. 갱마다 집을 지어 놓고
솥도 걸어 놓았으니 밥 굶을 걱정은 아니 하여도 된다. 조선 천지 어딜 가도
너희 같은 것들을 이리 따뜻하게 받아 주는 곳은 없느니라.”
일봉이 후하기는 해도 파격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노동자 숙소와 식
사가 제공된다는 점은 확실히 좋은 조건이었다. 그때를 기다려 별감 이재우
(李裁禹)가 나서서 말했다.
“압록강가 축동답 부근에 버려진 집이 많다. 너희가 떠돌이 생활 청산하고 떳
떳하게 밭 갈아 먹고살려거들랑 돈푼이나 모아 내면 여기 의주에서 혼인하고
자손 보아 남부러울 것 없이 살 수 있다. 어찌 큰 은혜가 아니겠느냐?”
물론 소작이니 자기 먹을 것 정도를 제외하면 다 바쳐야겠지만 그런 걸 여기
서 말하는 짓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둔전 갈 백성들(말이 좀 이상하지만
둔전까지 할 만한 군인이 지금 없다) 모집하는 일은 항상 의주 행정의 중대사
였기에 사또가 여기까지 나온 것이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자기가 무슨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나 안 하겠소 하며 빠질
사람은 별로 없다. 의주뿐만 아니라 삭주, 운산 등 평안도 여러 고을에서 동
시다발적으로 같은 일이 진행되었다.
홍경래와 홍득주의 연합 자본은 노동자의 고정 고용이라는 파격으로 수령들과
협상하고 대신 평안도 거의 전역의 금점 개설을 독점했다.
다른 곳에 비해 후한 일봉도 다 생각이 있어서 한 짓이었다. 시준은 양심을
잠깐 죽여 놓은 다음 악랄한 장사를 시작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하지만 의주바지는 변하지 않는다! 단돈 두 냥하고도 아
홉 전 아홉 푼! 언제까지 돈 들여서 새 바지 계속 사 댈 텐가?’
자기가 미래를 내다본다고 생각하고 바지를 외상으로 산 유민들은 보름 치 품
삯을 그냥 날리게 되었다.
물론 그뿐만이 아니었다. 세 끼 거친 밥이 나오기는 하여도 강도 높은 육체노
동을 버티기에는 아무래도 모자란 연료였고, 배고픈 광부들 사이로 만상들이
돌아다니며 악마의 유혹을 뿌렸다.
“이게 그 의주감자인데 간식거리로 그만이야. 얼마나 든든한지 아나? 내가 두
전만 받음세.”
“먼지 마시고 일했으니 뱃속을 깨끗이 하여야지 않겠는가. 원래 목구멍에 먼
지 껴 텁텁한 데에는 돼지기름만 한 게 없다 하네. 지금 요 앞에서 기름 둥둥
뜬 돼지국물에다 뜨끈하게 밥까지 말아서 딱 넉 전이던데……. 나랑 같이 가면
말 잘 해서 탁주도 한 잔 얻어먹을 수 있네그려.”
“배부르니 입이 심심할 테지. 담배 안 먹을 텐가? 어허, 곰방대 같은 건 없어
도 돼. 이게 바로 요즘 나오는 권연(卷煙, 궐련)인데 일단 잡숴봐. 자. 여기
이 발화철도 처음 본다고?”
광부들의 복지는 좋아졌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또 간사하기 마련이다. 슬슬
자신들이 사실상 무임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 유민들 중에는 그만 떠나
고 싶다는 자들이 나왔다.
하지만 의주 만상이 그렇게 만만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자네 이름이……. 옳아. 해주에서 온 김개동이라. 갈 때 가더라도 장부 좀 봅
세. 어이쿠, 이것 보게. 다 까닭이 있었구먼. 지금까지 잘 처먹고 잘 빨아댄
주전부리며 담뱃값이 벌써 일곱 냥인걸. 어림없지. 이봐, 개똥이. 내 자네가
조카 같아서 얘기해 주는데, 감히 돈 떼먹고 달아났다가는 우리 구사대(求社
隊) 장정들이 십 리도 못 가서 잡아올 게야. 그다음에는 뭐, 내 입으로 말해
야 하나? 우리 돼지들만 포식하겠지. 잘 알아서 처신하게.”
현대에서 회사(會社)의 번견 노릇 하는 그 구사대가 절대 아니고 모리배들을
척결해 사직(社稷)을 구한다[求] 해서 구사대다. 나라 위해 목숨 바칠 열혈
청년들은 당연히 품삯도 좀 올려 받고 이런저런 특전이 있었다.
그 구사대는 어디 따로 모여 놀고먹는 게 아니었다. 평소에는 보통 일꾼인 그
들은 이 시대 조선 광부들의 특기인 집단 결성과 쟁의 조짐을 감시하여 고발
하거나 자기 손에서 처리했다. 지금 사측에 찍혀서 시달리던 개똥이도 건장한
청년이라, 얼마 안 가서 구사대에 들게 되었다.
저 먼 서양국은 전쟁 통에 혼란하였다. 산업혁명이 지펴낸 미쳐버린 속도의
불길은 역사 그 자체도 가속시키는 모양이었다. 유럽 전역에서 영웅과 패자,
비극과 서사시가 전례 없는 속도로 생산되었다.
천 년을 이어 온 로마 제국도 성자필쇠의 이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드디어 끝
을 고하였다.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버마재비가 낫으로 매미 찍듯 베를
린에 군홧발을 딛고, 역사적인 칙령을 발표하여 유럽 대륙과 영국과의 통상을
봉쇄했다.
그러나 매미 잡는 사마귀 뒤에는 참새가 노린다 하였던가. 정약용이 예견한
나폴레옹의 몰락 또한 그 추락을 위한 비상의 정점으로 치닫는 중이었다.
물론 조선에서는 별 관계 없는 일이었다.
여느 때 그랬듯이 선비들이 책잡혀 귀양 가고, 그중 또 몇 명이 먼 길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김조순은 벽파의 잔존 세력을 꾸준히 쓸어내고 노론 시파, 사
실상 김조순 세도 체제를 구축했다. 독재가 다 그렇듯이 겉보기에는 아무 말
썽이 없어 보이는 체제였다.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도 맑은 법. 조정이 평온하기 그지없으므로 백성들도 한
가롭게 살았다. 금광과 인삼으로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홍득주는 의주
만상을 반년 만에 거의 통합했다.
홍경래가 자꾸 구사대를 여기저기 쓴다며 데리고 다니기는 하는데, 직접적 지
휘권이 차형기와 홍총각에게 있으니 당장 뭘 어쩌긴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시준도 요즈음은 문화생활에 매진하는 중이었다.
가경 12년(1807년)도 만춘에 접어들어 꽃향기 가득하고 처녀들 까닭 없이 설
레는 어느 날, 정약용은 강하던 책을 덮었다.
“오늘 내가 가르칠 것은 여기까지다.”
정약용의 문하생은 어느새 여남은 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서장관의 일에 지쳐
버린 시준이 도필리(刀筆吏, 실무자) 일 떠넘길 학동을 모집한 탓이다. 학문
의 큰 뜻 품고 먼 길 마다않은 채 달려온 이강회 역시 불쌍하게도 거기 끼어
있었다.
시준의 교묘한 유도와 압박으로, 정약용은 효제충신의 고아한 뜻 대신 고전에
서 행정과 사무관리에 연관된 구절들을 뽑아 강의하게 되었다. 귀양살이하는
선비가 무에 돈벌이를 하겠는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다 제자들, 그중에서도
괘씸한 수제자에게서 나오는데 정약용도 별수가 없었다.
“너희들은 이따 차강(次講)이 끝나거든 돌아가서 오늘 강한 ‘백관을 잘 다스
리면 여러 공적이 모두 밝게 드러난다[允釐百工 庶績咸熙, 『상서(尙書)』]’
는 말의 뜻을 깊이 생각하도록 해라.”
유교는 단지 윤리만 늘어놓는 학문이 아니라 당시 국가를 경륜하기 위한 고민
의 결과물이다. 시준도 학문이 좀 깊어지고 나서 깨달은 바이지만, 텍스트의
독해 방법이 다른 현대인들이 얼른 봐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을 뿐이었다.
정약용이 인용한 상서 요전(堯典)의 구절도 얼핏 보면 너희가 알아서 덕으로
잘 다스리라는 유교 꼰대스러운 말로 보이지만, 그 앞뒤 맥락과 숨겨진 뜻을
깊이 보자면 요임금이 신하들에게 제시한 일종의 인적자원 활용론이다.
말만 좀 바꿔 놓으면 현대 행정학에도 빠지지 않는 각론인 것이다. 하지만 이
걸로는 시준에게 부족하다. 사무직에 제대로 써먹으려면 실무적인 강의가 필
요하다.
시준은 차강, 그러니까 자기 순서인 다음 강의에서 그 부분을 보충했다.
“퇴계(退溪) 선생이 성학십도(聖學十圖)에서 이른바, ‘한 가지라도 태만하고
소홀하여 방종이 뒤따르면 마치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들끓는 것과 같으니 이
를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하였으니 이는 진실로 옳은 말입니다.”
이번에는 자릴 바꿔 학생으로 앉아 있는 정약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준은
그렇게 옛 선비의 글을 인용하는 척하더니 자기 하고 싶은 얘기를 시작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 괘도(掛圖)에 나와 있는 여러 문건과 증서는 단 한 가지
라도 귀찮고 번거롭다고 하여 빼놓으면 안 됩니다. 보십시오. 날짜가 빠지면
언제 매매했는지 알 수가 없고, 번호가 빠지면 이것이 제대로 수결 받고 만든
문건인지 아니면 보릿섬 빼돌리고 그 도적질 벌충하고자 나중에 슬쩍 만들어
끼워 넣은 물건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발을 떼도 결재! 숨을 쉬어도 보고!
제가 누누이 말씀드린 여섯 개의 근본 원칙[六何原則]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올바른 선비를 키워내는 것인지 상사 사환 꿈나무를 육성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던 정약용이 급하게 바른 도리를 끼워 넣었다.
“여기 있는 학동 자제들 중에는 나중에 과거 보아 방백과 수령의 인수를 찰
재목도 있을 것이건만, 살핌에 구간(苟簡, 거칠고 엉성함)이 있으면 필시 세
곡과 돈의 누락이 되어 성은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겠구나. 글 읽던 선비들은
명심하여야 할 일이다.”
그 노릇을 보고 있던 이강회가 손을 들었다.
작가의 말
1. 미국이 폭격으로 광산 노동운동을 진압했다는 것은 1910~20년대 웨스트버지니아와 콜로라도 등지의 광산 전쟁을 말합니다.
부당 해고와 저임금, 불합리한 수익구조 등등 때문에 광부들이 무장하고 들고일어났는데 회사가 군대에서 폭격기와 기관총을 빌려와서 광부들의 노동쟁의를 학살로 진압했습니다. 나중에는 주방위군까지 동원되었고요. 워런 하딩 당시 미 대통령은 이 '진압'을 공식적으로 승인하였으며, 학살이 꽤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콜로라도에서는 아동이 여럿 대피해 있는 천막촌에 불을 지르고 기관총을 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에서 유죄 판결은 광산 노동자들만이 받았습니다.
딱히 무장을 하지 않더라도, 구미에서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파업하면 그냥 실탄 사격을 퍼붓는 일이 흔했습니다. 파업은 아니지만 나폴레옹도 젊은 시절 시위대에 산탄포를 쏴버리는 진압으로 당대 위정자들에게 인상을 남겼죠.
사실, 작중에서 만상이 운영하는 여러 금광의 운영 방식도, 원시적이긴 합니다만 당시 악덕 광산주들과 거의 유사합니다. 광산 인근의 여러 생필품 매장을 자기 계열사로 채워 인건비를 고스란히 다시 뽑아먹는 일이죠. 뭐, 그때처럼 일종의 상품권을 월급으로 지급해(현대에도 대규모 종교단체나 회사에서는 이런 일이 종종 있죠) 철저하게 자기들 이익 챙기는 식은 아닙니다만.
2. 별감 이재우는 가상 인물입니다. 다만 작중 시점으로부터 30년 전쯤 동명이인으로 의주 별감 하던 사람이 있기는 합니다.
3. 차형기의 대사 중 '들여 앉힌다' 는 표현은 아마 지금은 노인분들이 알고 계실 텐데... 옛날 관청의 치안이 미비했던 시절에는 동네, 혹은 집안에서 범죄자를 사적으로 처벌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멍석말이라든가) 딱히 전과자가 불편할 시대도 아니고 하니 망나니는 아무리 달래고 몇 번 패도 계속 망나니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손쓸 도리 없는 개고기(이것도 옛날 표현이죠)의 경우 문중에서 어른들이 모여 가족회의 한 번 하고 안되겠다 싶으면 꽁꽁 묶어다가 칼로 뒤꿈치, 다시 말해 아킬레스건을 찍어서 절름발이로 만들어 못 나가게 했습니다. 이걸 옛날에 '들여 앉힌다' 고들 했죠.
4. 상서라는 책은 익히 아시는 '서경'을 말합니다. 상고시대의 여러 정치 문헌 기록들을 공자가 모아놓은 책입니다. 본래는 그냥 글이라는 뜻의 '서'라고만 불렀죠. 대부분 최초이기에 다른 것들과 변별할 필요가 없는, 고대의 심플한 네이밍은 꽤 고고한 멋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8. 바뀌는 물살(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