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3. 대박청래(大舶請來)(2)
상인들은 인류 역사 대부분의 지역과 시간 모두에서 존경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을 ‘상업의 천시’라는 개념으로 간략하게 요약해서는 곤란하다. 심지어
그러한 관념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고 여겨지는 동양에서도 그렇다.
본디 가게를 두고 매매하는 사람을 고(賈)라 하고, 떠돌아다니며 장사하는 사
람을 상(商)이라 한다. 주로 천대받은 것은 후자였다. 본래 타향살이 서럽고
뜨내기가 푸대접받는 것은 인류가 처음 담장과 집이라는 개념을 생각했을 때
부터 21세기까지 매한가지다.
떠돌아다닌다는 말은 책임질 것이 없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들은 각종 범죄와
질병의 온상으로 의심받았으며 실제로 어느 정도는 그랬다.
하지만 관계는 항상 상호적인 법. ‘장사치’라 멸시받는 그들은 딱 사회가 대
접하는 대로 돌려주었을 뿐이다.
장돌뱅이라 하면 원래가 길바닥에서 헤매다 객사하는 것이 운명인 불효자요,
뜨내기다. 무엇이 두렵겠는가? 수틀리면 남의 뱃가죽에 칼 쑤셔 넣고 달아나
버리면 그걸로 끝이다. 아니면 자기가 그렇게 되든지.
그렇다 하더라도, 창자에 소화도 못 시킬 쇠 칼날 스미는 일은 피하고 싶다.
그 때문에 상인들은 대개 그 자신이 싸움질에 자신이 있거나, 그렇지 못하거
든 손발이나 단도 쓰는 법에 능한 – 최소한 그렇게 보이는 – 자를 대동한다.
시준이 조직폭력배와 연이 있던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 그가 몸담은 조직은 딱
한국의 조폭과 비슷했다. 결국 이 상황에서 중요한 건 실제로 강한가가 아니
라 강해 보이는지의 여부다.
그리고 시준은 홍총각이 그 조건을 상당히 만족시킨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나선 홍총각은 상대가 알아듣건 말건 조선말로 뇌까렸다.
“되놈들의 행태라더니. 자, 너희가 그까짓 부지깽이 몇 자루 믿고 홍삼을 도
적질해 갈 셈이걸랑 일단 이 어르신에게 맞서 보거라.”
당연히 이쪽 초수 패거리 중에서는 조선말을 하는 자들이 많았다. 그중엔 초
수처럼 한인이 대부분이었고, 한인들은 설사 천한 주먹잡이에 장돌뱅이라 할
지라도 만주인 취급을 수치스러워한다.
“저 고려 놈이 지금 눈에 뵈는 게 없구나!”
“지금 여기서 죽고 싶으냐!”
무장한 것은 중국인들만이 아니라 만상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두 패거리는 서
로 욕설만 퍼붓고 있었다.
조직폭력배가 가장 싫어하는 게 싸움이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실제로 행동을
개시하는 순간 둘 중 누구도 원치 않는 격투를 해야 하고, 결국 양측 모두 손
해만 본다.
초수와 차형기는 그래서 상황을 면밀히 제어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치킨 레이
스와 같은 것이다. ‘곧 터질 것 같은’ 분위기를 먼저 만드는 쪽이 이기고, 그
것에 위축되어 먼저 손을 내미는 쪽이 진다.
그 칼날 위를 걷는 것 같은 균형은 지금 조정에서 한창 벌어지고 있는 권력
싸움에도 비견할 만한 것이었다. 결국 사람 사는 데는 다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므로 인생사 다 그렇듯이, 어이없고 황당무계한 일로 그러한 균형이 박살
나는 것도 비슷했다.
꽝!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평생 들어 본 적 없는 소리가 지축을 울렸다. 몇
몇은 재빨리 서쪽을 돌아보았고, 그중 먼저 말로 표현하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축 한두 명이 목소리를 높였다.
“화포다!”
“대선(大船)이다!”
“조선놈들이 관군을 불렀다!”
초수 패거리는 마지막 말에 주목했다. 평안도에, 아니, 조선 전체에 그런 큰
배나 화포가 없다는 사실은 이 중 시준을 빼고 아무도 모른다. 똑같이 범법자
들 처지에 관군을 불렀을 리가 없다는 사실은 알 수도 있었지만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결국 성질 급한 어린 녀석들 몇몇은 자신이 영리하고 민첩한 판단을 했다 여
기고 말았다.
“저놈들을 때려잡아 묶어라!”
조선 관군에 대항해 인질을 잡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조선 사람들도 가만
히 있을 턱이 없었다.
애초에 중국말이라 저들의 생각을 알기 힘들고, 상황이 워낙 급하고 시끄럽다
보니 조선인들도 중국인과 비슷한 오해를 가지기 알맞았다. 천하대국 청이 아
니면 저게 누구의 배라는 말인가?
“저놈들이 자기편이 오니까 믿고 덤비는구나!”
“더러운 되놈들의 대갈통을 쪼개 버려라!”
단연 군계일학은 홍총각이었다. 그는 중국인 한 명이 내려치는 몽둥이를 붙잡
아 빼앗더니 그걸 그대로 되돌려주었다.
뻑!
이 시대에서 살인죄를 두려워해 손에 사정을 두는 사람은 없다. 어차피 죄와
벌이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만큼 때려야 사람이 죽는지, 혹은 불구가 되는지도 모르고 관심 가질 일
도 아니다. 홍총각의 엄청난 완력은 전심전력으로 발휘되어, 단숨에 두개골을
깨고 안구가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끄어어……!”
사람이 단매에 죽어 나자빠지자 기세 좋게 달려들었던 초수 패거리가 아주 잠
깐 흠칫했다. 일 났다며 혀를 차던 차형기도 이쯤 되자 그냥 밀어붙였다.
“이놈들아, 뒤의 놈들은 상자 챙겨서 내빼! 앞에 선 놈들은 칼 뽑아! 남김없
이 죽여! 되놈들은 여기 하나도 오지 않은 거다!”
“비방 어른. 저 배는 어찌할까요?”
차형기는 그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저것이 무엇
인지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비방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견문이라 할 수 있
었다.
“내 들은 적 있지. 저건 이양선(異樣船)이다. 중국 배가 아니야. 요사이 만인
(蠻人)들이 수만 리 남쪽에서 어정거린다고 하더니만 여기까지 올라온 모양이
다. 저건 쳐다보지도 마라. 다만 나중에 관에서 추궁하거든 저 이역인들이 이
놈들을 잡아 죽였다고 하면 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외부 세계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조선인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차형기의 판단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시준은 이 시대 사람들
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겼다.
제임스 딘위디는 별로 의욕 없는 태도로 말했다.
“누군가는 말려야겠으니 제가 말합니다마는, 왜 사격하셨습니까?”
레디 선장은 망원경에서 눈을 뗐다.
“저리 많은 야만족들이 무장하고 모여 있으니 이대로 측심기를 던지고 보트를
내렸다가는 위험하지 않겠소. 나는 세인트헬레나부터 벵골까지 세계의 오지를
돌아다녀서 잘 아오. 대개 야만인은 화약 무기를 보면 모두 놀라 도망치지.
어차피 실탄을 넣은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요? 곧 거미새끼 흩어지듯 달아날
테니 그때 천천히 일하도록 하지요.”
“연안 경비대가 출동할지도 모릅니다. 매카트니 자작께서도 이 나라의 해군을
이용하여 중국과 조선 사이의 바다를 조율하실 생각이었던 것을 보면 해군이
있기는 할 텐데요.”
“있겠지. 그러나 중국을 압도할 정도의 해군이라면 벌써 이 지역의 판세는 뒤
집히지 않았겠소?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조선의 해군은 중국보다 훨씬 약하
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설사 조선의 전 함대가 몰려온다 하더라도 이 배 한
척만으로 모조리 떠다니는 나뭇조각으로 바꿔 버릴 수 있소. 됐소? 더 이상
트집 잡아 일을 방해하면 아무리 당신이라도 선장의 권한으로 잠시 연금하도
록 하겠소.”
레디 선장의 좀 과도한 위협은 다음 행동을 위한 포석이었다. 제임스 딘위디
는 곧바로 보트를 내려 근처의 고기잡이 쪽배들을 빼앗기 시작하는 동인도 회
사 직원과 수병들을 보고 기가 막혔다.
“이건 해적 행위입니다!”
“거동이 수상한 야만족들을 미리 체포하는 거요. 내 경고를 무시하셨군. 어
이, 거기. 박사님을 선실로 정중히 모셔라!”
제임스 딘위디는 ‘정중한 인도’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딘위디는 이것이 선
장의 배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본국에서 재판이 벌어지
면, 자신은 반대하다 감금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으니까.
정말로,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시준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험악한 환경에서 사람 죽는 일을 한두 번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통 이렇게 현재 진행형은 아니었다.
사극이나 영화처럼 칼을 휘두르면 붉은 줄이 그이면서 쓰러지는 온화한 연출
과는 달랐다. 지금 벌어지는 장면은 정육점에서 얼어붙은 고기를 칼로 두들겨
패는 일에 가까웠다.
사람의 뼈를 일검에 벨 수 있는 달인은 – 그리고 명도(名刀)역시 – 별로 없
다. 육중한 박도는 뼈를 반쯤 부러뜨리면서 살을 헤집어 찍어놓았고, 몽둥이
는 시커먼 이빨들을 강제로 발치하며 피부를 찢어놓았다.
그래서 불행하게도 대부분은 일격에 죽지 못했다.
“크아아악!”
“사, 사람 살려!”
홍총각은 혼자 세 사람 몫을 하는 것 같았다. 그는 발길질을 내질러 눈앞의
한인을 무릎꿇게 한 뒤 빼앗은 칼로 주저 없이 머리통을 찍었다. 뼈가 깨지고
뇌가 드러나자 홍총각은 메져버린 칼을 버리고는 다음 놈을 붙잡아와 목을 부
러뜨렸다.
“한 놈이라도 도망치면 안 된다! 저기 저놈이 물에 뛰어들지 않느냐. 너, 너!
쫓아가!”
지휘 솜씨도 매서웠다. 만상도 몇 명 칼에 찔려 자빠졌지만 홍총각의 맹위하
에 기세가 오른 것은 조선인 쪽이었다. 곧 청나라 상인들이 하나둘 모래톱에
얼굴을 처박았다.
얼굴이 해쓱해진 초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그는 단련된 범죄자의 눈으로
여기서 가장 약자를 순식간에 골라냈다. 장정들이 뒤엉켜 싸우느라 혼란한 틈
을 타서 초수는 재빨리 기듯이 나아갔다.
당장 눈앞의 싸움이 급했기에 모두들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었지만, 시준은
동시에 서쪽 멀리 있는 저 범선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크기는 차치하고라도
저 모양은 절대 동양식 함선이 아니다.
‘서양 함대가 평안도에 나타났던가? 가만 있자, 3년 전에 정조가 죽었으니 제
너럴 셔먼(General Sherman)호 사건은 한참 후 아냐? 내가 모르는 서양 배의
출현이 그 전에 또 있었나?’
시준이 몰랐을 뿐이지 이양선의 출현은 이 시기부터 점점 잦아지고 있었다.
게다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광해군 시절의 황당선(荒唐船)까지 포함하면 벌
써 3백 년이 다 되어간다.
그러니까 지금 조선 해안에 유럽 선박이 출현하는 것도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까지는 아니었다. 다만, 최소한 이 용천부 장자도 바닷가에는 온 적이 없다.
시대와 자연을 초월한 일을 겪었던 시준이라 할지라도 이 일이 자신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차형기의 생각대로, 곧 관군이 올 거다. 그러나 지금 조선의 해군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마 문정(問情) 정도. 저들이 그저 개항을 요구하러 온 외교관이
라면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도 있겠지만 만약 제너럴 셔먼호 같은 해적선이라
면…… 응?’
콱!
시준은 무언가에 의해 붙들려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억센 팔이 시준의 목을
휘감고 아직 어린 그의 몸을 통째로 들어올렸다. 시준이 상황을 채 파악하기
도 전에 그의 목에는 칼날이 들이대어졌다.
조금 어눌한 조선말이 시준의 머리 위에서 쩌렁쩌렁 울렸다.
“애새끼가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전부 멈춰라! 저 배도 멈추게 해!”
아직 싸우느라 정신없는 홍총각은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곳을 보고
혀를 찬 사람은 비방 차형기였다.
“저런 멍청한 아이놈을 보았나. 진작 달아나라고 일렀거늘!”
물론 이 시대에 딱히 아이는 죽여선 안 된다는 사고방식 같은 것은 없다. 그
러나 초수는 혹시 이 아이가 패거리 중요 인물의 조카쯤 되지 않을까 하는 실
낱같은 희망을 품은 상태였다.
크게 틀린 생각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실제로 홍득주가 꽤나 아끼는 아이였
으니까. 시준이 죽는다 해도 차형기가 지위를 잃지는 않겠지만 신용을 잃을
각오는 해야 한다.
하지만 당분간 차형기가 자기 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시준은 겁먹
거나 울부짖지 않았다. 다만 속으로 한숨을 쉬었을 뿐이다.
‘별로 눈에 띄고 싶지는 않았는데.’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사치스러운 생각을 할 수는 없다. 시준은 입을 벌렸다.
아직 나이가 어리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부지런히 관리해서 시준의
치아는 시대 상황상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깨끗했다. 그리고 그만큼 튼튼했다.
그래서 초수는 말 그대로 팔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에 몸부림치게 되었다.
“으, 으아아악! 이, 이 거북이 새끼 같은 놈이!”
시준은 사정 봐주거나 하지 않았다. 지금 놓아 주면 자기가 문 팔에 들려있는
칼이 시준을 내려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시준이라도 목숨을 장담하지
못한다.
대신 시준은 초수의 손을 붙잡은 채 비틀었다. 사람은 의외로 교합력(咬合力)
이 약하지 않은 동물이며, 나면서부터 강건한 신체를 가진 시준의 경우에는
더하다. 마치 맹견에게 물렸을 때처럼 초수의 살점이 뜯겨져나갔다.
시준은 한국에서 시종 평화롭게 살아온 자신이, 의외로 폭력을 행사하는 데에
거부감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쟁터의 군인 같은 건가. 하긴 내가 죽을 판인데 뭘 가리겠어.’
칼은 이미 예전에 땅으로 떨어졌다. 시준은 초수의 살점을 내뱉은 다음 정신
못 차리는 그의 뒷덜미를 휘감았다.
분쟁지역이나 저개발국가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던 끝에 선택한 혜
택 중 하나였다. 인류에게 알려진 격투 기술의 숙련된 습득. 두 자리 햇수의
단련이 필요한 능력을 죽음의 대가로 얻은 시준의 조르기는 완벽했다.
그리고 이론적으로, 흠 없이 들어간 조르기를 풀어낼 수 있는 기술은 존재하
지 않는다.
경동맥의 혈류가 차단된 초수는 10초도 되지 않아 축 늘어졌다. 차형기는 물
론이고 벌써 중국인들을 다 처리한 홍총각마저도 놀랄 솜씨였다.
“하하! 그저 반지빠르고 뺀질뺀질한 꼬맹이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사내로구나!”
차형기는 시준의 등을 두드려 주며 치하했다. 홍총각 또한 해맑게 시준을 칭
찬하면서 쓰러진 초수의 목을 밟아 그대로 부러뜨렸다. 바퀴벌레를 짓이길 때
도 그것보단 더 집중할 것 같았다.
“이놈이 마지막이로구려, 비방 어른.”
시준은 말리지 않았다. 사람의 도덕은 때로 위대한 일을 성취할 만큼 굳건하
지만 때로는 말 한 마디에 쉽게 나풀거릴 만큼 얄팍하기도 하다. 시준은 자기
를 죽이려 한 사람을 위해 한솥밥 먹는 식구들과 굳이 어색해질 이유를 찾지
못했다.
게다가 시준은 이제 본격적으로 꾸물대고 있는 서양 함선에 집중하느라 여유
가 없기도 했다.
그들은 여기서 벌어진 싸움을 지켜보았으며,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떠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차형기도 그쪽을 쳐다보았다.
“저놈들이 덤비지 않는다면 말이지. 바삐 자리를 정리하지 못하겠느냐?”
“다친 놈도 있고 혼절한 놈도 있어서 얼른은 안 되겠소이다. 이미 저놈들은
거룻배를 내린 모양이니, 차라리 비방 어른께서 좀 붙들어 놓는 게 낫겠소이
다. 그 사이 소인이 애들을 좀 닦달해 보지요.”
차형기는 재수 옴 붙었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를 정돈했다. 여기에서 달아나기
에는 너무 늦었다. 결국 저 도깨비 같은 놈들과 대거리를 해야 할 모양이었다.
동인도 회사군(軍) 포병 장교 헨리 윌리엄 패리시(Henry William Parish) 또
한 차형기와 비슷한 심정이었다.
패리시 역시 10년 전 매카트니의 중국 사절단에 동행한 스케치 전문가다. 중
국의 수로와 성곽을 묘사한 그의 정교한 그림은 오늘날까지 잘 전해져 내려온
다. 역사대로라면 3년 전 요절했어야 하지만 매카트니 자작이 꺾어놓은 항로
덕인지 아직까지 살아 있었다.
“일이 끝난 모양이군. 준비해. 1개 분대는 착검하고 나머지 1개 분대는 내 명
령이 있으면 즉시 발포할 준비를.”
“아무리 봐도 무법자들입니다. 굳이 충돌할 필요가 있을까요?”
하사관 하나가 묻자 패리시는 시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입장상 패리시는
부하들에게 ‘내 생각도 그래.’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군인은 명령을 평가하지 않는다.”
패리시는 그렇게만 말하고 부하들을 몰아댔다. 떨떠름하게나마 무장하고 내린
동인도 회사군은 곧 이 수수께끼의 야만족들 – 방금 그들의 눈앞에서 사람 여
럿을 죽인 살인자들이기도 했다 – 과 말이 들릴 만한 거리에 서게 되었다.
작가의 말
1. 작중에서도 언급됩니다만 19세기 초 홍삼의 공식 국내 매매가는 1근당 은 100냥이었습니다. 청에 판매될 때는 300~750냥 정도가 보통이었지요. 의외로 조선 후기의 물가는 쌀값에 대비해 볼 때 현대와 큰 차이가 안 나지만, 약재나 의료비는 어마어마하게 비쌌는데 아시다시피 의료보험이 없는 게 크죠.
2. 동인도 회사는 세금을 피하기 위해 명의만 빌리는 방식으로 대규모의 선박을 운용했습니다. 또한 외지에 파견 나갈 경우 선장은 항해마다 자주 바뀌었지요. 어디 갈 땐 A선장, 올 때는 B선장 하는 식입니다.
3. 대박청래(大舶請來)(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