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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315화 (315/317)

진행하지.

명예의 세계수. 

그 자격을 확인받을 때. 

변한 건 세계수가 뿜어내는 빛의 색깔만이 아니었다. 

《‘명예의 세계수’가 당신을 판단합니다.》 

《‘박현명’과 ‘란돌프’가 지닌 명예가 합쳐집니다.》 

《도합 100,200점의 ‘명예’를 지녔습니다.》 

명예가 합산됐다. 

하지만 이상했다. 

몇 번을 봐도 수치가 내 계산과 맞아떨어지지 않았으니까. 

‘10만?’ 

10만은 절대로 될 수 없는 점수였다. 

애초에 합산될 점수도 없었다. 

란돌프와 나는 명예점수를 공유하는 상태였으므로. 

기껏해야 6만 안팎이었던 명예점수. 

혹, ‘찬란한 순혈자의 위상’ 반지 때문일까? 

‘위대한 위상은 명예를 두 배로 올려줄 뿐이지.’ 

특정 업적을 달성했을 때 획득하는 명예를 두 배로 올려주는 것이지, 이미 올랐던 명예마저 두 배로 올려주진 않는다. 

합산된 결과를 두 배로 뻥튀기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빌헬름의 명예가······?’ 

빌헬름의 명예가 합산된 걸까? 

그러면 10만의 명예도 가능은 하다. 

내게 잠재되어있던 빌헬름의 명예를 세계수가 하나로 봐준 것이다. 

나와 빌헬름, 란돌프가 모두 하나의 몸과 다름이 없다는 인증과도 같았다. 

그리고 머지않아. 

《최초로 명예 ‘10만 점’을 돌파했습니다.》 

《‘명예’의 이름이 바뀝니다.》 

《모든 ‘명예’가 ‘성화(聖化)’로 치환됩니다.》 

《명예 10,000점당 1의 성화를 지닙니다.》 

《‘성화’는 신의 상징물에 ‘부여’할 수 있습니다.》 

《‘활성화 된 신의 상징물’을 찾아 성화를 ‘부여’할 경우, 해당 신과 직접 소통하는 ‘교황’의 직위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비활성 상징물’에 더욱 많은 성화를 부여하게 되면 잊혀진 신을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히든 던전의 출현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잊힌 명예의 던전(태고)’이 등장합니다.》 

《그곳에서 잊힌 자들, 잊혀진 자들의 명예를 되찾으십시오.》 

《해당 던전에서 ‘신의 상징물’을 찾을 수 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명예롭고, 성스러우며, 신뢰가 두터운 7인의 파티를 구성하지 않으면, 영원히 던전에 잠겨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던전의 규칙 변환, 파괴를 행하는 모든 것들은 ‘잊힌 명예의 던전’에서 사용불가합니다.》 

《최소 입장조건 : ‘20,000’ 이상의 명예를 지닌 자. 또는 그와 같은 규격의 ‘성스러운 영혼’을 지닌 자. 그리고 ‘박현명’이 동행을 허락한 자.》 

명예의 이름이 ‘성화’로 바뀌었다. 

10만점의 점수가 10으로 치환되며, 쓰임새마저 변경된 것이다. 

그 이후 이어진 내용들도 하나하나 엄청나지 않은 게 없었다. 

‘란돌프는 신의 상징물을 파괴하고, 나는 신의 상징물에 성화를 부여한다. 비활성 상징물을 통해 잊힌 신들마저도 불러올 수 있다······.’ 

명확하게 나뉘었다. 

란돌프는 ‘갓 이터(God Eater)’와 다를 게 없다. 

신을 잡아먹고 죽이는 존재. 

하지만 나는, 박현명은 ‘신을 살리고 신과 소통하는 자’다. 

완전히 반대되는 성향을 지니게 됐다. 

명예마저 전부 가져왔으니. 

‘이제야 균형을 잡을 수 있겠군.’ 

란돌프와 나 사이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방법. 

그것이 이것이리라. 

란돌프로 변신할 때 발생하는 어둠을 현재의 나는 잡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방대하고 강력해서.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균형을 잡지 않으면 원치 않는 온갖 ‘어둠’이 몰려올 것은 자명한 일. 

한데, 신의 상질물들로 말미암아 더욱 성스러워진다면? 

‘가능하다.’ 

··· 가능하다. 

어둠을 잡고, 균형을 잡으며, 보다 완전해지는 게. 

놀라운 점은 그뿐이 아니었다. 

‘······ 태고 레벨의 던전이라니.’ 

가장 놀라운건 역시나 새로이 등장한 히든 던전이다. 

그냥 히든 던전도 아니고, 무려 ‘태고’ 레벨의 던전! 

내가 지닌 ‘태고의 갑옷’과 동급의 던전이라는 말. 

태고를 보게 된 건 이번이 세 번째다. 

후욱! 후욱! 

숨이 가빠진다. 

미칠 듯이 심장이 뛰었다. 

‘태고의 갑옷 하나로도 말도 안 되는 일들을 해냈지.’ 

태고의 갑옷은 내 한계를 한참이나 뛰어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럼 태고 레벨의 던전은 어떨까. 

확실한건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2만점 이상의 명예 보유자를 어디서 구하지?’ 

문제는 입장조건이었다. 

이렇게 까다로운 입장조건을 지닌 던전을 나는 본 적이 없었다. 

2만의 명예. 

세계에 이름을 떨치는 극소수의 최강자들을 제외하면, 절대로 쌓을 수 없는 점수다. 

하물며 그러한 자들이 오로지 명예롭게 명예만 쌓아야 가능한 수치였다. 

라이가도 1만점이 안되어서 튕겨나갔을 정도이니. 

‘라이가는 악업이 명예를 깎어먹은 경우이긴 한데.’ 

신의 섬, 그리고 투신의 탑. 

그 둘을 오가며 라이가의 명예는 깎여나갔을 것이다. 

특히 신의 섬에서. 

‘천마와 악신은 상대의 명예를 더럽힌다.’ 

그리고 라이가는 오문을 개방하며 천마와 맞섰다. 

압도하기까지 하였으나, 그로인해 명예가 더럽혀졌을 터. 

라이가는 신의 섬에서 벌어진 일을 기억하지 못하니, 자신의 명예가 1만점도 안 된다고 여기며 절망한 것이다. 

허나 라이가가 고작 1만점의 명예조차 보유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저 깎여나갔을 뿐. 

당연히 복구할 방법은 있었다. 

‘······ 앤드류 사제.’ 

바로 ‘면죄부 복사기’ 앤드류 사제! 

현재 ‘태초의 숲’에 있는 앤드류 사제라면 라이가의 명예도 복구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라이가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 

기껏해야······ 10일 안팎. 

어떻게 해야할까. 

다행히 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팔가의 성역. 

전각의 안으로 수많은 이들이 모여들었다. 

건장한 십대에서 삼십대까지로 보이는 남성과 여성들이. 

하나같이 뛰어난 기세를 지닌 1,000여명의 강자들! 

“갑자기 팔가의 계승 의식을 진행하신다고?” 

“말도안돼. 아직 정식의 계승은 멀었던 거 아니었어?” 

“그러니까. ‘가주’의 자리는 수십년동안 비어있었잖아!” 

너나 할 것 없이 당황스러움으로 가득한 대화들. 

수십년째 공석인 ‘가주’의 자리에 어울리는 자가 나타났다는 것이었으니 그들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의식을 통해 ‘가주’가 나타난다는 건 여러 가지 의미를 시사했다. 

“어쨌든 ‘봉문’이 풀린다는 뜻이잖아?” 

“드디어 세상에 나가는 거야?” 

“누굴까? 역시 각주님들 중에 한 명이겠지?” 

“각주님들은 수련에 바빠서 얼굴 보기도 힘든데······.” 

팔장로의 아래에 존재하는 십육각주(十六閣主)들. 

하나같이 고명한 실력의 강자로, 팔가의 비기를 계승할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이들이다. 

뿐만 아니라 대장로가 직접 가르치는 최정예였다. 

만약 가주를 뽑는다면, 당연히 십육각주 중 한 명일 것이다. 

하지만 누가 나올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수백년을 수련한 분도 계시다던데. 그 소문이 사실일까?” 

“일각주부터 팔각주님까지 난 얼굴도 본 적이 없어. 50년이나 이곳에 있었는데 말이야.”

“그나마 십육각주님만 성소의 수호자로 얼굴을 보이시니까. 70년 동안 나머지 각주님들은 나도 거의 본 적이 없는 거 같은데.” 

“이번에 전부 나타나시겠지?” 

“아닐걸. 상위 각주님들께선 이전 팔가의 가주가 나왔을 때도 보이지 않으셨다는데.” 

“진짜 존재하긴 하는 걸까?” 

웅성거림은 더욱 커졌다. 

십육각주들 전부가 한자리에 모인 적은 한 번도 없다. 

심지어 이전 팔가의 ‘가주’들이 등장했을 때조차도, 마찬가지로 얼굴을 보이지 않은 각주마저 있을 지경이다. 

각주는 마음대로 해도 되기 때문이다. 

특히 상위의 여덟 각주는 가주의 영향에서 유일하게 벗어난 존재들이었으니. 

이곳 성역에서 수백년을 오로지 수련만 한 자들. 

그들은 세상 바깥의 일에 아예 관심이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상위의 각주가 모습을 드러낼 일은 없을 것이었다. 

“······ 각주님들이다!” 

“뭐야, 무슨 일이야?” 

“십육각주님들 전원이 모였어!” 

“와······!” 

전각을 열고 들어온 열여섯명의 사람들. 

그들이 바로 십육각주 전원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굳어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이들도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십육각주님들이 전부 이곳에 계신다는 건······.” 

“설마 ‘가주’가 각주님들이 아니라는 말인가?” 

모두의 예상을 빗나가는 결과였다. 

이번 팔가의 가주 자리는 그들 중 한 명일 것이라고 확신했거늘. 

세속에 관심이 없다고 할지라도, ‘가주’의 자리는 그들도 제법 탐나는 것이었다. 

가주가 되면 팔가의 정수를 탐할 수 있으며 대장로에게 직접 모든 비기를 가르침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전원이 모인 건 이례적이다. 

“대체 누가 ‘가주’가 된 거야?” 

궁금증은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끼이이익! 

1층의 중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나타났다. 

“대장로님과 장로님들······?” 

“그런데 모습이······!” 

뿔이 돋아난 대장로와 장로들이. 

그리고 대장로의 옆에 선 한 남자. 

“대장로님. 그 사람입니까? ‘완전한 명예’를 달성한 자가?” 

그를 바라보며 더벅머리의 일각주가 말했다. 

명예의 끝. 모든 명예를 완성한 존재가 라이가냐 묻는 것이다. 

진짜 팔가의 가주이며 성역의 주인이 될 자격을 그가 달성했냐는 물음이었다. 

대장로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 전부 모였군.” 

“예. 그리고 가주의 의식에는 모인 각주들과의 대련도 포함되어있지요. ‘완성된 명예’를 달성한 자와 겨뤄보고 싶어서 모두 근질근질한 상태입니다.” 

의식을 행할 때 모인 각주들과의 대련. 

가주가 되기 위해선 필수로 거쳐가야하는 관문이다. 

만약 패한다면, 가주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십육각주가 모두 모인 적은 없었다. 

세계수가 일곱 색을 모두 보인 적이 없었던 탓이다. 

그러나 대장로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 가주는 내가 선택했다. 팔가의 주인으로 그보다 더 어울리는 자는 없음에.” 

“의식을 건너뛰겠다는 소리입니까?” 

“확정사안이다. 그러니······.” 

그 순간, 라이가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진행하지.” 

“······ 라이가. 십육각주 전원을 이기는 건 전부를 개방해도 힘든 일이다.” 

대장로가 급히 말려세웠다. 

설령 라이가가 오문을 개방해도, 십육각주 전원과 싸워서 이기는 건 어렵다. 

한데 오문개방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하지만 라이가는 고개를 저었다. 

동시에. 

화아아아악! 

“······!” 

라이가의 전신으로 황금의 빛이 일렁거렸다. 

그것을 본 모두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저 황금의 빛이 가리키는 건 하나뿐이었으므로. 

5문의 개방! 

이어 라이가가 십육각주들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모두 덤비도록. 오늘 팔가의 기강을 제대로 잡겠으니.” 

결(結). 

맺는 것, 그리고 끊는 것. 

라이가는 오로지 끊는 것밖에 배우지 않았다. 

평생을 끊어가며 살았다. 

사람을, 관계를, 세상을. 

하지만 처음으로 이어졌다. 

맺어졌다. 

그렇게 하라는 말. 

마음이 가는 대로 행하라는 녀석의 그 한 마디가. 

제자의 명예가 곧 스승의 명예라는 그 구원이. 

현을 향한 라이가의 마음을 완전하게 열어젖혔다. 

‘맺는다. 그리하여 순환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깨달음을 주었다. 

하지만 이번의 깨달음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이니까. 

그저,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뿐. 

깨달으려 하지 않고 있었을뿐. 

그러나 이대로 멈춰서 있으면, 끊기만 해서는 제자에게 어울리는 스승이 될 수 없다. 

제자의 발목을 잡는 스승이 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살아생전 처음으로. 

라이가는 모든걸 받아들였다. 

그러자 세상이 달라졌다. 

바라보는 시선도, 느껴지는 기운도. 

죽음과 삶의 경계조차도. 

모든 것들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벅차올랐다. 

그렇게 라이가는. 

‘완성했다.’ 

오문(五門)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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