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312화 (312/317)

재미있는 아이를 주워왔구나.

“······ 재미있는 아이를 주워왔구나.” 

대장로가 흥미롭다는 듯 말문을 열었다. 

라이가가 유일하게 데려온 남자. 

여유롭게 상황을 지켜보던 남자의 기색은 확실히 어릴적 라이가와는 딴판이었다. 

당시의 라이가는 다친 야생동물 같았으니까. 

잔뜩 움크린채 여유없이 살기를 흩뿌려대지 않았나. 

하지만 지금 자신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녀석은 다르다. 

‘여유가 있다.’ 

······ 처음부터 그랬다. 

이곳, 성역에 처음 발을 들인 자들은 하나같이 압도되기 마련이다. 

긴장하며 정신을 놓기 마련이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절경. 

수많은 영물과 신선들의 출현으로 인해 움츠러들어야 정상이다.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예외는 없었다. 

한데······. 

‘진짜로 웃고 있군.’ 

긴장은커녕 이곳으로 자신을 끌고온 라이가보다 더 여유가 넘친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보통 제자가 긴장하고 스승이 여유를 부려야 정상적인 그림일텐데. 

이 둘은 반대다. 

스승이 긴장하고 제자가 여유를 부리고 있다. 

게다가. 

‘확신에 찬 여유. 죽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 

··· 자신감이 넘친다. 

눈을 보니 알겠다. 

대장로. 

그를 도발하는 듯한 눈빛. 

마치 유람이라도 온 것 같았으니까. 

허나 의아한 일이었다. 

머리가 고장난 게 아니라면, 설령 고장났다고 하더라도 대장로의 눈을 이렇게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자는 이 세상에 거의 존재치 않는다. 

그의 눈은 선인(仙人)의 눈. 

마주하면 현기(玄機)에 잠식당해 본인이 얼마나 볼품없는 가치를 지녔는지 절로 깨닫게 만드는 탓이다. 

대자연과 광활한 우주 앞에 한없이 초라한 인간처럼 말이다. 

하여 라이가도 오랜시간 그의 눈을 마주할 순 없었다. 

얼마나 명예롭고, 얼마나 악할지라도. 

어차피 대장로의 존재 앞에선 티끌과도 같았으니. 

그래서 말한 것이다. 

재미있는 아이를 주워왔다고. 

저 자신감의 근원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건 라이가의 어린 시절과는 정반대의 인간상이다. 

그렇다면, 명예 또한 그럴는지. 

“어찌할 생각은 없단다. 그러니, 살기를 거두렴.” 

대장로가 미소를 지으며 라이가를 바라봤다. 

자신의 제자를 잡아먹으리라 생각이라도 한 건지. 

두 눈을 마주하자마자 미친 듯이 살기를 흩뿌려대고 있었다. 

신성한 성역에서 참으로 불신한 행위이나. 

‘가엾은 운명이야.’ 

이 또한 운명이고 인연이다. 

돌고 돌아 원점으로 돌아가려는 세상의 이치였다. 

지금 라이가가 그랬다. 

그의 전 스승처럼, 그 전전대의, 전전전대의 후계자들 또한. 

죽기 직전 결국 이곳으로 모두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이곳은 팔가가 시작된 장소이며, 대장로는 그러한 팔가의 태동과 함께한 인물이었으므로. 

하여 봐주었다. 

그래봤자······ 이제 10일도 채 남지 않은 생명. 

팔가를 이은 자의 마지막 모습을 두 눈에 담는 것 역시 대장로의 역할일 터. 

‘변하는 건 없단다.’ 

성역이 생기고, 명예의 성소가 자격을 판단한 역사는 이루 말할 수 없을만큼 길다. 

그 긴 세월 동안 결과가 바뀐 적은 딱 두 번밖에 없었다. 

성역의 성소는 명예와 영혼의 고귀함을 모두 시험한다. 

고로, 단순히 명예만 쌓는다고 결과가 바뀌진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정말 미친 듯이, 압도적인 명예를 쌓은 경우. 

허나 그 정도의 명예를 쌓는 건 인간의 수명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오랜세월을 산다하여 쌓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명예라는 건 참으로 깎이기 쉽지.’ 

오랜세월을 산다는 건 수많은 실수를 한다는 뜻과 일맥상통했다. 

그리고 작은 실수만으로도 깎여나가는 게 명예다. 

그 힘이 강해지고, 책임이 막중해질수록, 실수의 크기 역시 커지기 마련이었다. 

하여 결과가 바뀐 건 고작 두 번밖에 없었던 것이다. 

성역이 존재한 오랜 세월동안. 

······ 실낱같은 희망에도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게 인간의 습성이긴 하지만. 

앞선 두 번의 이변들은 모두 세상을 바꿨다. 

결과를 스스로 바꿔낸 자들은 영원불멸한 업적을 세계에 새겨놓았다. 

라이가는 어떨까. 

과연, 세 번째 이변이 될 수 있을까? 

“그럼 성역의 시험을 시작해자꾸나. 전부 나를 따라오거라.” 

라이가는 긴장한 채 대장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문득 어렸을 적, 처음 이곳을 스승과 함께 찾아왔을 때가 떠올랐다. 

장장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같은 모습을 한 대장로. 

그의 스승도, 스승의 스승도, 그보다 더 오랜 세월 전부터 대장로는 저 모습 그대로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팔가의 화석같은 존재라고 해야할까. 

-라이가. 대장로를 적으로 돌리지 말거라. 대장로만은, 결코 적으로 돌려선 안 된다. 그는 세상이 나뉘기 전부터 존재해온 자이니······. 

죽기 직전 라이가의 스승은 신신당부했다. 

절대로 대장로를 적대하지 말라고. 

다른 장로들을 모두 적대하는 한이 있어도, 오직 대장로만은 놔두라고 말이다. 

그 이유를 이제는 확실히 알겠다. 

‘틈이 없다······.’ 

한 치의 틈도 없었으니까. 

대장로. 

그는 완전무결한 존재였다. 

그야말로 무적이었다. 

오문을 개방한들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무엇보다 세상이 나뉘기 전부터 존재했다면, 판게니아가 멸망에 의해 심연과 천공의 대륙으로 나뉘기 전부터 살아있었다는 뜻. 

‘구제국의 팔가와 함께한 자.’ 

구제국. 

그곳을 대표하던 네 거대가문. 

팔가, 데르시안, 아르혼, 그리고 라혼. 

아르혼 황가를 포함한 나머지 세 가문들 모두가 하늘에 닿을 정도로 강성했던 시절. 

그 시절부터, 어쩌면 그 시절보다 더 과거에서부터 존재한 노괴가 대장로라는 말이었다.

허나, 왜 그가 팔가와 함께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대 팔가의 후계자들도 정확한 기원은 몰랐다. 

다만. 

‘성역을 지키는 자. 그리고 성역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 

대장로는 성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허나 성역에 있어서 그가 무적인 것은 아니었다. 

성역을 벗어나는 게 무적이 풀리는 조건이라면 그것도 ‘틈’이다. 

약점이 있는 것 자체가 ‘틈’이었으니 라이가가 결을 통해 읽을 수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틈이 없다. 

성역에 있든 없든 대장로는 약점이 없는 진짜 괴물이라는 의미였다. 

‘······ 허나 대장로가 성역의 의지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역의 의지와 대장로의 존재는 무관하다. 

명예의 성소는 오롯이 진실로 명예를 가리는 곳. 

대장로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고 성역도 마찬가지의 대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그리고 팔가의 진정한 힘은 이곳 성역에서 자격을 획득해야 생긴다고 말한다. 

라이가는 오문개방과 팔가의 기술들은 섭렵했지만, 정작 성역에서 팔가의 자격을 온전히 획득하진 못했다. 

‘지금의 나라면······.’ 

어릴때의 그는 그랬다. 

볼품없이 성역에서 튕겨나갔다. 

기절했고, 눈을 떴을땐 제국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괜찮다. 성역의 허락 없이도 너는 내 제자이니. 

-오직 너만이 나의 제자이니. 

-라이가. 우리가 함께 증명해보자꾸나. 

-성역이 잘못되었다는 걸, 그들이 보는 눈이 없었다는 걸. 

-함께 세상을 바꿔보자꾸나, 라이가! 

그럼에도······ 전대 팔가의 주인은 라이가를 받아들였다.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서. 

하지만 그의 스승은 머지않아 죽었다. 

홀로 남은 라이가는 한평생을 죽음의 바로 옆에서 잠이 들고, 깨어나길 반복해왔다. 

세상을 바꿀 여유 따위는 없었다. 

허나, 라이가는 충분히 명예로웠노라고 생각한다. 

심연을 정화하고, 제국의 영토를 넓히는데 평생을 이바지해왔다. 

기사단을 키우며 제국 최강으로 자리잡았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것이다. 

이게 명예롭지 않다면 그 무엇이 명예로운 일이겠는가. 

“자, 라이가. 이곳이 진짜 ‘명예의 성소’다. 기억이 나느냐?” 

대장로가 멈춰선 곳. 

그 바로 앞에 ‘명예의 성소’가 있었다. 

바깥에 있는 성배는 이곳의 기능을 흉내낸 가짜다. 

진짜 명예의 성소를 숨기고자 만들어낸 허상과도 같다. 

왜 숨겨놓았는가. 

이유는 간단했다. 

······ 거대한 나무. 

빛 한 점 들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빛나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신록보다 더 아름답고 신비한. 

“세계수······.” 

태초의 숲에만 존재한다는 세계수. 

그것이 이곳 성역에 있었기 때문이다. 

대장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명예의 세계수’다. 오로지 명예로운 자만이, 스스로의 자격을 증명한 자만이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나무이지.” 

바깥에 있는 가짜 성배따윈 세계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어떠한 신들도 이보다 더 존엄하진 못하리라. 

“다시금 증명해보거라. 네가 팔가에 어울리는 자격을 지녔는지.” 

대장로가 미소를 머금었다. 

마지막 기회. 

투욱- 

라이가가 천천히, 발을 옮겼다. 

신중에 신중을 가하며.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 어릴때의 내가 아니다.’ 

라이가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강하게 쥔 두 손에선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저 명예의 나무는, 세계수는 라이가의 트라우마와도 같다. 

팔가의 계승을 허락받지 못했고, 그의 스승은 쓸쓸하게 죽어갔다. 

가장 외롭게 죽었다. 

이곳 성역에서 세계수의 축복을 받으며 묻히는 게 팔가의 정통이고 예의이거늘, 그조차도 허락받지 못한 것이다. 

라이가. 

성역이 불허한 자신을 제자로 받아들였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스승님.’ 

떠올려보면, 제대로 스승이라는 말도 못해봤다. 

어릴 때의 라이가는 세상을 향한 적의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몇 번이나 팔려가고, 자신을 산 사람을 죽였다. 

온갖 고문. 입에 담지 못할 일들을 계속해서 당해왔으니. 

인간불신이 생긴 건 당연한 일. 

그의 스승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어떠한 불순한 의도가 있어서 자신을 키우고 있는 것이라고 여겼다. 

······ 그게 아니라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자신의 가치를 온전하게 봐준 유일한 사람이 그의 스승임을 스승이 죽고나서야 알았다. 

그래서다. 

현. 

녀석이 자신을 ‘스승님’이라고 불렀을 때, 마음이 격동(激動)한 것은. 

왜 더 빨리 찾지 못했을까. 

하루라도 더 빨리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왜 이렇게 삐딱하게 그는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나. 

‘스승님께서도 저와 같은 마음이셨겠지요.’ 

죽기 직전에야 깨달은 것이다. 

그의 스승도, 자신도. 

너무 편협하게만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없다는 걸. 

하기야, 그래서 인간이겠지. 

허나 어릴때의 라이가와 지금의 라이가는 다른 사람이다. 

지금의 그는 명예를 안다. 

자신에게 창피하지 않기 위해 살아왔다. 

지금이라면, 그의 스승도 자신을 보며 만족하지 않을까. 

투욱- 

라이가는 마침내 세계수의 영역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쉼호흡을 하며, 말했다. 

“나, 라이가가 ‘팔가’의 주인된 자격으로 이곳에 왔으니. 내 자격을 인정하거라, 명예의 세계수여!” 

인정해라. 

지금이라도, 스승님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자신이 팔가의 이름에 적합한 후계자이며 주인임을. 

······ 인정하란 말이다. 

스으으으으! 

그 순간이었다. 

세계수의 나뭇잎이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쿵! 

무언가가 가슴을 때렸다. 

동시에 라이가의 신형이, 영역 바깥으로 튕겨져나갔다. 

“······.” 

전과 달리 기절하진 않았다. 

그러나 라이가의 얼굴엔 형용할 수 없는 분노의 감정이 떠올랐다. 

분명히 달라졌다 생각했다. 

이번에야말로 받아들여지리라 여겼다. 

그런데.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게냐······?’ 

어릴 때와 같다. 

결국,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그는 영원토록 팔가의 주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 아쉽게 되었구나.” 

대장로가 고개를 저었다. 

역시나 예상대로의 결과긴 했지만. 

하여간 이로써 이야기는 없던 것이 됐다. 

“얌전히 돌아가거라. 이곳은 너의 무덤이 아니다, 라이가.” 

또한, 이곳에서 라이가가 죽는걸 허락하지 않겠다. 

성역의 허락을 받지 못한 이가, 성역의 축복 속에서 죽는걸 놔둘 수는 없는 노릇. 

그가 죽을 장소는 제국이 딱이다. 

제자와 함께 떠나라. 

“역시 근본은 어쩔 수 없나보군.” 

“쯧쯧, 40년 전 처음 보았을 때부터 나는 알고 있었지.” 

“얼마나 많은 세상의 오물을 묻히고 다닌 건지.” 

“선계(仙界)와는 맞지 않는 인물이로다.” 

장로들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명예롭지 못한 자. 

팔가를 이을 자격이 없는 이. 

스으으으으으으! 

그때였다. 

“음······?” 

“세계수가?” 

“이게 무슨······?” 

세계수의 잎이 다시금 파르르 떨린다.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가파르게.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억겁의 세월을 살아온 대장로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수의 잎이······!’ 

······ 느닷없이, 만개(滿開)했기 때문이다. 

잎사귀에서 꽃이 활짝 피어난다. 

후우우우웅-! 

동시에 세계수가 푸르러지며, 성역 전체를 가득 채울 정도의 찬란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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