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하죠.
팔가.
그러나 세간에 알려진 이름은 ‘팔가기사단’이다.
라이가가 이끄는 최강의 기사단이며 제국을 대표하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기사단의 이름인 ‘팔가’가 무엇을 뜻하는지, 그러한 가문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또한, 명예의 성소에 팔가의 가문이 봉인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도 없었다.
명예의 성소를 지키는 수호자들의 이야기야 몇 번 들어봤지만.
어지간한 초월자도 명함을 못 내밀 정도로 강력한 괴물들!
‘밝혀지지 않은 히든 퀘스트와 연계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이들의 정체에 대해 설왕설래가 많았다.
그러나 도저히 정체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하여 아직 업데이트가 안 됐거나, 특정 조건을 만족해야만 정체를 밝힐 것이라고 예상할 따름이었다.
나는 명예의 성소에 있는 수호자들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히든 퀘스트’의 줄기라고 여겼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셈이다.
‘이들이 팔가일 것이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으니.’
그러니, 플레이어 중에선 내가 최초일 것이다.
성소의 수호 집단이 사실은 팔가이고, 라이가와 관계되어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게다가······.
‘······ 구름을 탄 인간이라.’
흰색 구름을 타고 나타난 노인.
그가 등장하자 등 뒤로 소름이 좌악 돋는 기분이었다.
단순히 기세 때문에, 마력이 강해서만은 아니다.
손오공의 근두운처럼 구름을 타고 있어서도 아니었다.
물론, 그 또한 특이하긴 했지만 노인에게서 느껴지는 기색은 그보다 더 거대했다.
마치 대자연을 눈앞에 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나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신선이 있다면 딱 저런 모습이겠군.’
자연의 기운이 이토록 농축된 인간은 처음이었다.
드라이어드들보다도 더 자연친화적인 느낌마저 들지 않나.
“이곳이 어딘 줄 알고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라이가.”
구름을 탄 노인이 근엄하게 말했다.
하지만 명백히 라이가를 괄시하는 말투였다.
“이곳이 어딘 줄 아느냐 물었나?”
이에 라이가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리곤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주인인 곳. 하지만 내가 버린 곳. 그러나 이제 다시 되찾을 곳!”
팔가를 되찾겠다.
라이가는 그렇게 선언한 것이다.
그러자 노인의 눈빛이 굳었다.
“······ 처음부터 너는 이곳의 주인이었던 적이 없다. 같은 이유로 버릴 수도 없고, 되찾을 수도 없지. 팔가의 봉문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군.”
쯧.
라이가가 혀를 찼다.
세상 어느 가문이 봉문을 스스로 선택하겠는가.
가문의 이름이 적힌 간판을 내리고, 세간에서 잊혀지는 선택을 제알아서 하는 가문은 어디에도 없다.
전대 팔가의 주인, 라이가의 스승에 의해 강제로 그리 되었을뿐.
그것을 이들은 ‘스스로의 선택’이었다며 자기위안이나 하고 있는 것이다.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꺼지거라. 이곳에 네가 서있을 곳은 없다.”
“일장로. 분명히 말했을 텐데. 되찾겠다고.”
“······ 끝까지 벌주를 마시려 드는구나.”
일장로라 불린 노인이 한차례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휘이이이이이이!
쿠아아아아아앙!
사방에서 돌풍이 몰아닥치기 시작했다.
수십, 수백 가닥의 돌풍이 라이가를 덥치며 이내 태풍으로 돌변했다.
동시에 하늘 위에 결계가 새겨지며 라이가를 태풍과 함께 가둬버렸다.
결계 안에서 압축된 공기압과 거센 태풍의 바람은 그 안에 있는 모든걸 세포단위로 갈아버릴만큼 강력하기 그지없었다.
“강철을 먼지로 만들 정도로 강력한 압을 네가 버틸 수 있겠느냐?”
일장로가 나지막히 말했다.
저 결계 안에 갇히면 단단한 용의 비늘도 찢겨져나간다.
하물며 인간의 얇은 피부 정도는 순식간에 갈아버려 살과 뼈를 분리시킬 것이다.
마력을 둘러 저항한다고 해봤자 소용없다.
광활한 자연의 힘 앞에선 시간문제일 따름이었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빌고 돌아간다면······.”
성히 보내는 주마.
그리 말하려던 일장로의 눈에 순간 이채가 뗬다.
스악!
쩌어억!
······ 결계가 일자로 갈라지며, 라이가가 천천히 걸어나왔기 때문이다.
아무런 타격도 없이.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으로.
“······!”
일장로의 두 눈에 당황과 경악이 담겼다.
인간은 절대로 자연을 이길 수 없다.
자연의 ‘결’을 벨 수 없었다.
한데.
“형편없는 ‘결’이로군.”
라이가는 베어냈다.
마치 숨쉬듯 자연스럽게 싹둑 잘라버렸다.
그리곤 천천히 일장로를 향해 걸어나갔다.
그 찰나.
“멈추······!”
일장로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다가오는 라이가를 향해 하는 말일까?
그건 아니었다.
일장로의 시선이 향한 곳은 그보다 더 뒤다.
성소를 지키던 수호자.
성배를 향해 검을 뽑아든 남자의 목을 쳐냈던 그가, 라이가를 향해 발도(拔刀)한 것이다.
하지만.
푹!
검을 뽑기도 전에 남자는 거꾸러졌다.
보이지 않는 검 한 자루가 남자의 급소를 찔렀기 때문이다.
그를 본 일장로의 안색이 변했다.
“심검······?”
무형검.
형체가 없는 심검의 공격임을 알아본 탓이다.
이는 전대 팔가의 주인도 도달하지 못했던 영역!
라이가가 스승을 넘어섰다는 의미였다.
“··· 내 자비는 끝났다.”
라이가는 사신과도 같이 말했다.
무표정하게, 그저 명했다.
“모두에게 알려라. 너희의 주인이 돌아왔노라고.”
너희의 주인이 돌아왔으니.
······ 알아서 고개를 조아리라고.
*
성소의 끝, 보이지 않는 결계를 넘어가자 또 다른 세상이 나타났다.
높은 절벽.
폭포가 흐르고 안개가 자욱한 신비한 땅.
그리고 절벽 위에 지어진 전각 하나.
팔가의 표식이 새겨진 전각의 주변에는 수많은 괴생명체가 공존하고 있었다.
‘······ 하나같이 희귀한 영물들이로군.’
다섯가지 색을 가진 뱀, 금색의 두꺼비, 황금빛으로 빛나는 거북이, 인간의 얼굴을 한 거미, 붉은 빛이 감도는 커다란 잉어 등등.
전부 판게니아에서 극히 희박한 확률로 등장하는 영물들이다.
한 마리라도 등장하는 순간 전쟁이 벌어질 정도로 귀하디 귀한 영기(靈氣)의 덩어리들.
영물의 내단은 마력증진 효과가 뛰어나 돈으로도 살 수 없다.
나 역시 거의 본 적조차 없는 영물들이 이곳엔 지천에 널려있었다.
《‘팔가의 성역(???)’에 입장했습니다.》
《업적, ‘최초로 팔가의 성역에 발을 들인 자’를 달성했습니다.》
그야말로 신선의 땅이었다.
처음 보는 장소.
플레이어 중 그 누구도 도달한 적 없는 미지의 영역에 발을 디뎠다.
끼이익!
일장로의 안내를 따라 전각에 다다르자, 전각의 거대한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그 너머엔 일곱 노인과 한 청년이 있었다.
노인들은 일장로를 포함한 팔장로들이었다.
하나같이 자연적인 모습이었다.
불로 된 구름, 물로 만들어진 구름 따위를 타고 있었으니.
허나 유일하게 두 발로 서 있는 나머지 한 청년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청년은 장로들의 중심에서 여유로운 미소로 라이가를 맞이했다.
“40년만이로구나, 라이가.”
“대장로. 오랜만이로군.”
청년은 대장로였다.
모든 장로들을 이끄는 가장 위의 사람.
현재 팔가의 가문을 이끄는 실질적인 주인.
“그 어렸던 아이가 벌써 다 컸구나.”
대장로가 웃어보였다.
그런 대장로를 바라보는 라이가의 눈빛에 약간의 긴장이 어렸다.
다른 장로들은 몰라도, 대장로만은 그에게도 어려운 듯싶었다.
【???】
······ 확실히 다르다.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보이는 것도, 느껴지는 것도 없다.
하지만 분명한건 외관과 달리 그는 어리지 않다는 것이다.
40년 전 라이가를 보았다면, 최소 그 이상의 나이라는 뜻.
“그래. 오랜만에 손님이 왔는데 차라도 한잔 마셔야지.”
“한가로이 차나 마시자고 돌아온 게 아니다. 대장로.”
“후후.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마려무나.”
대장로가 미소짓는 것과 달리, 다른 장로들의 표정은 가히 좋지 않았다.
경멸하며 바라보는 눈빛.
대장로가 손을 휘저었다.
순간.
휘익!
배경이 바뀐다.
어느덧 커다란 탁자가 눈앞에 있었다.
목재 의자와 함께 탁자의 위에는 차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대장로가 차를 홀짝이며 말했다.
“흐음. 40년만에 팔가를 찾은 이유가 있겠지. 어디 한 번 들어보자꾸나.”
“··· 알고 있을 텐데?”
“팔가의 진정한 주인이 되겠다? 아서라, 그러기엔 남은 시간이 얼마 없지 않느냐?”
“······.”
라이가가 이맛살을 구겼다.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있음에도 대장로는 라이가의 상태를 단번에 알아봤다.
대장로가 이어서 말했다.
“너의 스승도 오문의 죽음을 이겨내지 못했지. 그리고 지금과 같이, 내 앞에 한 아이를 데려왔단다. 피골이 상접한 어린 소년을.”
대장로의 눈이 내게로 향했다.
라이가가 나를 데려온 이유 또한 정확히 알고 있다는 눈초리였다.
“아이는 노예였지. 그럼에도 성역에 존재하는 진짜 ‘명예의 성소’에서 자격을 확인하기 위해서.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녀석은 너를 그곳에 데려갔단다.”
“······.”
“그래. 안타깝게도 성역은 너를 거부했지. 어릴 적부터 몇 번이나 사람을, 주인을 죽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구나.”
“······ 닥쳐라.”
라이가의 얼굴에 분노가 차올랐다.
허나 대장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는 너의 스승이 두려워서 봉문을 택한 게 아니란다. 어차피 인간의 시간은 짧아. 하물며 녀석의 시간은 더욱 짧았으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지.”
“그래서, 나를 인정하지 않기에 계속 봉문을 택했다?”
“당연한 걸 묻는구나. 라이가, 우리는 성역이 거부한 자를 진정한 팔가의 주인으로 여기지 않는단다.”
“그럼 다 없애고 새로이 만들어야겠군.”
후우우우우!
라이가의 전신에서 짙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곧이어 대장로의 목에 심검을 겨누었다.
“심검이라······ 그러나 아직 조금 얕구나.”
대장로가 손을 뻗어, 심검을 쥐었다.
그러자 심검의 방향이 바뀌었다.
무형에 담긴 의지가 변했다.
······ 라이가에게로.
이윽고 대장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를 상대하려면 이런 얕은 심검이 아니라 오문을 개방해야할 터인데, 다시 개방하면 그 자리에서 너는 즉사할 게야.”
“상관없다. 나를 인정하지 않는 팔가는 필요없으니.”
“흐음. 너의 스승도 나를 적대하진 않았거늘······.”
일촉측발의 상황.
당장 검이 오가도 이상하지 않은 긴장감.
씨익!
그때, 돌연 대장로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꾸나. 라이가, 네가 다시 성역에서 자격을 확인받는 게다.”
순간 라이가의 눈동자가 얕게 떨렸다.
“······ 재확인이 가능한 것이었나?”
“가능하고말고. 결과가 변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아예 없는 건 아니거든.”
툭!
찰나, 라이가의 살기가 사라졌다.
라이가 역시도 성역의 재확인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비록 어렸을 땐 명예롭지 않아 거부당했다지만.
어릴적 성역에 거부당한 기억은 족쇄처럼 라이가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 그러나 지금이라면, 다를 수도 있으니까.
한평생을 쌓아올린 명예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이미 거부당한 상태이니 더 잃을 것도 없지 않은가.
“물론, 여기엔 한 가지 조건이 있단다.”
“무슨 조건이지?”
“그 아이도 함께 받아야 된단다.”
대장로.
그의 눈이 나에게로 향했다.
“둘 다 자격을 확인받는 게야. 팔가의 주인으로 어울리는 존재인지. 그렇게 둘 다 받아들여진다면, 그땐 봉문을 풀고 팔가를 너희의 품에 안겨주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아쉬운 일이 되겠지.”
“······.”
라이가는 침묵한채 고심했다.
다시금 성소에서 자격을 묻는 게 가능하다는 말.
그건 굉장한 유혹이었으니까.
하지만, 둘 다 명예로이 받아들여지는 일은 불가한 일이다.
게다가 대장로도 말하지 않았던가.
결과가 변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그렇다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처음의 계획대로 다 부숴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하죠.”
“······!”
불현 듯 들려온 목소리.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에게서 들려온 목소리에 모두가 시선을 옮겼다.
그곳엔 현이 있었다.
지금껏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녀석.
기세에 눌린 듯싶었으나.
“자격을 확인받겠습니다. 제가 팔가에 어울리는 존재인지. 그것을 위해 40년만에 이 비루한 곳을 찾아온 것 아닙니까? 스승님?”
“······ 비루한 곳?”
“지금 저놈이 뭐라고······!“
장로들이 반발했다.
라이가는 내심 당황하고 말았다.
비루한 곳이라는 표현 때문이 아니다.
‘스승님······?’
스승님이라는 말.
그 말 자체를 처음 들었으니.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도리어 밝게 웃으며 자신감 가득한 모습으로 대장로를 쳐다보았다.
대장로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한 채.
한 치의 망설임 없는 모습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