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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307화 (307/317)

또 다른 멸망

병기. 

병기란 무릇 용도에 따라 쓰임이 다르다. 

하물며 같은 병기라 할지라도 만들어낸 장인에 따라 약간씩 사용을 다르게 해야한다. 

예컨대 검을 쥔 자가 있다고 치자. 

그는 검의 달인이다. 

그러나 평소에 사용하던 검이 아닌 다른 검을 쓰게 된다면, 당연히 처음부터 달인의 면모를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달인이라 할지라도, 같은 검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모든 검이 같은 검은 아니기 때문이다. 

길이, 검신의 폭, 손잡이의 모양새 따위가 전부 다르기 마련이었다. 

‘분명히 처음 쥐었을 터인데.’ 

이곳 연무장의 무기가 그렇다. 

모두 다르다. 

같은 규격의 무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완벽한 자세를 이끌어내고자 중구난방으로 만들어놓은 것들. 

처음 쥐었다면 적응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터. 

‘그런데도 완벽한 자세와 쓰임을 이끌어냈다······.’ 

바람을 베었다. 

라이가가 베었던 바람을 찾아내, 그 결을 베어냈다. 

찰나와 같은 순간, 완벽한 틈을 노리고. 

무기를 자신의 손과 발처럼 사용해야만 가능한 일. 

당연히 처음 쥔 무기로 그렇게 행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재능인가?’ 

재능(才能). 

재능이란 무엇인가. 

타고난 것. 하늘이 준 선물. 

다른 이보다 능하며 잘하는 것. 

여러 가지 견해가 있으나 재능이란 결국 갈고, 닦을 수 있는 기술의 총아다. 

전부다. 

노력이 중요하다는 말도 있지만 라이가가 보기에 노력 역시 재능이었다. 

고로, 모든 일을 능률적으로 잘하기 위해선 재능이 필요하며, 자신의 적성에 맞는 재능을 빠르게 찾는 자가 성공하는 법이었다. 

처음부터 완성된 것을 ‘재능’으로 치부하진 않는다. 

그러할진대. 

‘완성되었다······.’ 

라이가가 본 아드리움의 현은 완성되어 있었다. 

창을 찌르고 도로 베어내는 일련의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적어도 자신이 선보인 자세 그 이상을 해냈다. 

기초는 완벽했다. 

흠잡을 데 없이. 

‘투신의 탑에서 보았을 땐 이 정도는 아니었거늘.’ 

그러나 투신의 탑에서 진행한 대회에서 본 현은 이 정도는 아니었다. 

낮은 레벨에 비교해 강하긴 했으나, 지금 선보인 기술은 단순히 ‘강하다’는 영역에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 뭔가가 달라졌군.’ 

탑을 오르며 변화가 있었던 게 틀림없다. 

그제야 라이가의 시선이 현의 육체로 닿았다. 

‘미세하지만 근육의 조형 따위가 전체적으로 바뀌었다. 균형미 있게, 더 많은 힘을 저장할 수 있는 형태로. 얼굴도 한층 날렵해진 것 같은데······.’ 

묘한 일이었다. 

근육이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몸은 결코 대칭을 이룰 수 없다. 

무의식 속 습관 등에 의해 몸은 비대칭하기 마련이었으므로. 

아무리 경지가 드높고, 벽을 부순 천외천의 인간이라 할지라도 완벽하게 균형잡힌 몸은 결코 만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아드리움의 현은 다르다. 

놈의 몸은 완전한 대칭이다. 

양쪽 근육 전부 모자라고 더 나은 부분이 없다. 

라이가의 눈썰미로 한참을 살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게다가 현의 얼굴은 한층 더 날렵해지고, 피부가 매끈해졌다. 

피부에 한점 티가 없었다. 

한 마디로 잘생긴 게다. 

‘하녀들이 흘끗흘끗 쳐다본 게 내가 아니라 이놈이었나.’ 

연무장에 오기 전의 상황을 떠올려본다. 

그러고보니, 지나가는 하녀들이 흘끗흘끗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이 있었다. 

그게 라이가 자신이 아니라 이놈 현이었나보다. 

“누구에게 배웠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아드리움의 현이 답했다. 

“······ 가족이자,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자에게 배웠습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말. 

말 속에 담긴 이별의 어투. 

라이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사람이었나보군.” 

“예.” 

“모든 병장기의 쓰임에 대해 배운 건가?” 

“그건 아닙니다.” 

“그럼?” 

“오로지 검만을 배웠습니다.” 

······ 검만 익혔다? 

“창과 도는?” 

“따로 익히진 않았습니다.” 

“······.” 

정말 따로 익히지 않았다고?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답이다. 

하여, 확인이 필요할 듯했다. 

“······ 다음은 활이다.” 

활은 제법 어려운 기예였다. 

배우지 않았다면 따라하는 것조차 벅차리라. 

쫘아악. 

활을 가져온 라이가가 하늘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그리고. 

툭! 

쉬이이잉! 

허공을 가르고 날아간 화살이. 

푹! 

라이가의 바로 앞 지면에 박혔다. 

조금만 더 가까웠다면 그대로 머리가 꿰뚫렸을 수준으로 가까운 거리. 

“한 번 해보거라.” 

라이가가 쓰던 활을 넘겼다. 

그것을 받아든 현은 어렵지 않게 자세를 취했고. 

쉬이잉! 

푹! 

······ 라이가와 마찬가지로, 정확히 바로앞에 화살이 꽂혔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다. 

라이가는 자신의 발 앞쪽에 화살이 꽂혔으나. 

현의 화살은 발 사이에 꽂혔다. 

하늘을 향해 쏘았다면 절대로 꽂힐 수 없는 각도다. 

라이가보다 가까운 수준이 아니라, 일반적으로는 불가한 각도다. 

라이가의 두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바람을 읽었나? 아니······ 바람을 예측한 건가?” 

“예.” 

“이조차 안 배웠다고?” 

“활은 몇 번 써본 적이 있습니다.” 

······ 몇 번 써본 솜씨가 아니다. 

하늘을 향해 쏜 화살. 

그리고 화살이 수직으로 떨어질 때 불 바람의 강도를 예측해서 쏘아냈다는 뜻이다. 

이는 평생을 연마한 궁수도 흉내내지 못할 기술이었다. 

나중에 불 바람을 예상한다는 건 일반적인 인간은 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뿐만이 아니다. 

도끼도, 단검도, 곤봉도, 그 외의 모든 것들을. 

현은 현존하는 모든 무기를 완벽한 수준으로 펼쳐냈다. 

결국, 라이가는 항복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팔가를 계승하려면 먼저 배워야하는 모든 병장기술. 

그걸 따로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걸. 

“······ 검을 쥐어보거라.” 

그러나 마지막 확인은 남아있었다. 

오로지 검만을 배웠다면, 과연 그 검을 어떻게 쓰는지 봐야겠다. 

늦은 저녁. 

팔가의 언덕. 

전대 팔가의 주인들이 묻혀있는, 황궁 내에 존재하는 비밀의 장소. 

그곳의 신록 밑에 놓인 무덤들을 바라보며 라이가가 말했다. 

“위대한 팔가의 주인들을 뵙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춘 라이가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 저는 이제 곧 죽습니다.” 

무덤덤하게 죽음을 꺼냈다. 

머지않아 이곳에 함께 묻히게 될 것이라고. 

“팔가의 비원, 오문의 죽음을 이 못난 놈은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아무도 극복하지 못했다. 

초대 팔가의 주인조차도 오문을 개방한 끝에 죽었다고 전해진다. 

라이가 자신은 다를 줄 알았으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자신도 다를 게 없다. 

최고라고 믿고, 최강이라 자부했으나. 

··· 라이가는 가장 마지막에 놓인 무덤을 바라보았다. 

전대 팔가의 주인이자 그의 스승이었던 남자의 무덤을. 

“스승님께선 항상 말씀하셨지요. 무신의 그릇을 찾아야만 된다고.” 

라이가는 눈을 감았다. 

자신도 무신의 그릇은 아니었던 게다. 

팔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들여온 그도 비원을 달성하지 못했다. 

이윽고, 라이가가 천천히 눈을 떴다. 

“찾았습니다, 스승님.” 

그의 눈에는 더 이상 울적함과 슬픔이 담겨있지 않았다. 

마침내 찾았으니까. 

무신의 그릇을. 

무신 그 자체인 놈을! 

하지만, 라이가는 주먹을 쥐어보였다. 

너무나도 기쁘다. 

한데, 마냥 기뻐할 수가 없다. 

자신보다 뛰어난 놈을 발견해서? 

아니다. 

이미 라이가는 내려놓았다. 

자신이 최강이 아니라는 걸, 세상은 넓다는 걸 깨달았다. 

빌헬름도, 란돌프도, 어쩌면 그 외의 또 다른 하늘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마음 한켠에서 인정하고 있었다. 

그저. 

“······ 그래서 아쉽습니다. 죽어야만 한다는 게.” 

······ 아쉬운 것이다. 

이대로 죽어야 하는 게.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떠나야하는 것을. 

“스승님께선 저를 들이시고자 팔가를 봉문하셨지요. 모든 반대하는 자들의 목을 베어서라도, 그리하여 지탄받고 고립되는 한이 있더라도, 오직 저를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건 엄청난 희생이었다. 

가족을, 친구를, 모든 연을 끊어버리며 라이가 하나만을 보고 그렇게 한 것이다. 

라이가를 팔가의 후계자로 만들고자. 

하지만 팔가는 봉문되고, 라이가는 심연을 돌았다. 

······ 인정받기 위해서. 

제국을 위해 자신이 헌신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게 아니라면 라이가는 심연이 아니라 세상을 돌았을 것이다. 

명예를 떨치고, 유일무이한 기사왕으로 자리잡으며, 어쩌면 대원정을 일으켰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인정받지 못했다. 

“인정하게 만들겠습니다. 제가 죽기 전에, 전부 목을 베는 한이 있더라도. 팔가를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한이 있더라도.” 

의지를 굳힌 채 라이가가 고개를 숙였다. 

“‘명예의 성소’로 가서, 강제로 절차를 밟겠습니다.” 

팔가의 공식 후계자가 되었음을 알리는 절차. 

팔가가 봉문한 장소이며, 모든 ‘명예로운 자’들이 모이는 곳. 

그는 노예였기 때문에 제대로된 절차를 밟지 못했다. 

그리하여 팔가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노예에겐 명예 따윈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허나, 앞으로는 아니다. 

그곳에서 강제로 절차를 밟겠다. 

남이 뭐라고 하든, 이제는 더 이상 상관이 없었으니. 

그 순간이었다. 

“음······?” 

라이가의 표정이 일순간 굳었다. 

고오오오오오- 

어디선가 느껴지는 거대한 기운. 

전율이 일 정도의, 거대한 악! 

투신의 탑에서 겪었던 저주보다 더 끔찍했다. 

‘설마 악신이라도 소환된 건가?’ 

라이가가 급히 등을 돌려 발을 옮겼다. 

주체(主體). 

중심이 되는 건 나다. 

박현명이다. 

하지만 란돌프도 나임은 틀림없었다. 

온전하게 하나가 되었으니. 

그리고 빌헬름 역시 가족이자, 친구이자, 스승이자, ‘또 다른 나’로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존재였다. 

“빛의 길······.” 

정해진 숙소로 돌아와, 진열된 검 한 자루를 바라보았다. 

빛의 길. 

빌헬름이 사용했던 유일등급의 검. 

나는 천천히 진열된 ‘빛의 길’을 꺼내어 쥐어보였다. 

마치 내 손처럼 착 감기는 기분. 

뿐만이 아니다. 

그 옆에 있는 또 다른 무구. 

“거룩한 길.” 

빛의 길과 세트가 되는 붉은 망토였다. 

돌고 돌아, 비로소 내게 돌아왔다. 

이 두 가지가 빌헬름을 상징하던 가장 상징적인 장비들이었으므로. 

마치 빌헬름이 아직 곁에 있는 것만 같다. 

나머지 장비들을 모두 모으면, 다시금 빌헬름이 되살아날 것만 같은 감각. 

나는 한참을 매만지다가,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다. 

‘더이상 지켜보는 자가 없다.’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존재하던 시선이 없었다. 

방치하기로 결정이라도 한 듯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오히려 내게는 잘 된 일이다. 

‘이제야 변신해볼 수 있겠군.’ 

글자로 확인하긴 했지만, 확실함을 위해선 스스로 변신해보는 게 가장 좋다. 

란돌프로. 

또 다른 멸망이자, 원시 천마가 된 란돌프의 모습으로. 

흉의 장갑과 재의 장갑으로 인해 박현명과 란돌프 간의 ‘스위칭’이 가능해졌으니까. 

나는 흉의 장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흉의 장갑’을 사용합니다.》 

《‘란돌프’로 변신합니다.》 

슈아아악! 

짙은 어둠이 피어오르며, 순식간에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외형 변형 물약과는 차원이 다른, 그저 외형만이 아닌 모든 것이 변했다. 

그리하여 란돌프가 되었을 때. 

고오오오오오- 

미칠듯이 쏟아지는 마력.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가공할 마(魔)의 기운! 

클래스 별의 계승자가 사라져,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 본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투신의 탑 정상에서 보았던 ‘또 다른 란돌프’가 지녔던 악의 형상조차도, 지금의 나를 따라올 순 없었다. 

투신의 탑을 오르기 전과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지경. 

하여 나는 절로 한 마디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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