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변화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장본인이 아무래도 라이가인 듯싶었다.
하지만 쓰러져있던 나보다, 라이가의 상태가 훨씬 좋지 않았다.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게 없다.
그야말로 말기의 중환자가 따로 없는 모습이었으니.
‘박현명. 내 몸이다.’
천천히 몸을 살핀 나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나는 박현명이었다.
라이가는 아드리움의 현으로 알고 있는 모습.
그가 나를 발견한 뒤 제국으로 데려온 이유였다.
나는 한차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 꿈이 아니었나.’
모든 시련을 정복하고, 나의 완성을 도우며 결국 그는 여신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빌헬름으로의 강림이 풀린 뒤 온전한 내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허나, 지금의 나는 결코 이전과 같지 않았다.
‘두 번째 탈각.’
천지개벽으로 말미암아 모든걸 다시 재구성했을 때.
마침내 두 번째 탈각이 시작되며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
‘무엇이 바뀐 거지?’
그 생각에 다다르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신의 섬에서 첫 번째 탈각을 완료한 뒤 ‘무한의 그릇’을 얻었다.
뿐만인가.
자연재생력이 대폭 오르고, 경험치 획득률 2배라는 경이로운 상승률을 손에 넣었다.
압도적인 생존과 성장을 가능케하는 배경을 갖게 된 것이다.
처음의 탈각이 이러할진대, 두 번째 탈각은 무슨 변화를 갖다 줄지 예상조차 가지 않았다.
당장 느껴지는 건 몸이 가볍다 정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활력이 넘친다.
‘상태창.’
하지만 보다 확실한 변화의 파악을 위해선 상태창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이윽고 떠오른 창을, 나는 곱씹듯이 천천히 일어내려갔다.
<상태창>
이름 : 박현명
직업(Class) : 무신(武神)
“······.”
상태창의 첫 머리를 보고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클래스, 무신.
신의 이름이 들어가는 클래스는 나도 처음 보았기에.
어떠한 신의 추종자라거나, 계승자 정도는 존재한다 알고 있지만 ‘신’ 그 자체의 이름이 클래스란에 뚜렷이 박혀있는 경우는 듣도보도 못했다.
허나 마냥 좋아할 수가 없었다.
‘클래스가 바뀌었다.’
··· 내 기억과 달랐기 때문이다.
빌헬름의 ‘응원’을 위해 메인 퀘스트를 한꺼번에 밀었을 때.
그 당시 나는 ‘클래스 획득하기’ 역시 끝마쳤다.
위대한 전승으로 말미암아 계속해서 진화했던 히든 클래스의 획득을 마무리했다는 말이다.
‘분명히 내가 얻었던 클래스는 역천의 파멸자였을텐데.’
신의 섬에서 튜토리얼을 완료하자 나타났던 대천사 가브리엘.
가브리엘은 나를 축복하며 ‘위대한 전승’을 건넸고, 그로 인해 나는 끝도 없는 히든 클래스의 진화를 겪었다.
파괴자, 워록, 천마, 성휘를 지우는 자, 디스트로이어, 파멸의 왕······.
그리고 ‘역천의 파멸자’까지.
이름 하나하나가 ‘악’ 성향에 가까웠다.
결코 ‘무신’과는 무관한 이름들이었건만.
갑자기 바뀌었다면, 이유는 하나뿐이다.
‘빌헬름······.’
빌헬름의 도움에 의해 변한 것이리라.
천지개벽을 완성하고 온전하게 분리한 끝에 성향 자체가 달라졌다는 의미다.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나 역시도 어둠에 파묻혔을 터.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내게 이로운 도움만을 주었다.
개 같은 신이라며 욕하고 원망했음에도, 여전히 그는 올곧고 명예로웠다는 뜻이다.
그래서 더욱 아쉽다.
우리의 만남이 너무나도 짧았음에.
‘앞으로는 내가 너를 돕겠다.’
하지만 모든 만남에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내가 녀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예컨대 빌헬름의 기억을 따라 그의 구원을 완성하는 것이라거나.
닿지 않아도, 만나지 못해도 좋다.
그저 빌헬름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는 느릿하게 시선을 옮겼다.
아직, 끝이 아니었으므로.
<능력치>
레벨 : 6
힘 : 120(90+30)
체력 : 84
민첩 : 90
지능 : 84
마력 : 138
투신의 탑을 오르며 2레벨이 상승했다.
게다가 6레벨의 능력치라 하기엔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상승폭이었다.
어지간한 10레벨 이상가는 총합이었으니.
‘이 정도면 웬만한 칠대 히든 퀘스트도 해결할 수 있겠군.’
칠대 히든 퀘스트.
칠대 불가사의라고도 불리는 그것들.
그중 하나를 빌헬름일 때 달성했었으니, 남은 건 여섯 개였다.
여전히 아무도 깨지 못하고 남아있는 진정한 불가사의들.
란돌프를 육성할 때도 마찬가지로 엄두도 못 냈는데, 지금이라면 그중 몇 개는 가능할 것도 같다.
칠대 히든 퀘스트는 욕이 절로 나올 정도의 악조건들 속에서 말도 안 되는 시련을 해결하는 게 주 내용이니까.
아예 레벨제한이 있거나, 레벨 대비 말도 안 되는 능력치와 지식을 지녀야만 가능한 것들이었다.
피뿔산의 왕을 1레벨에 격퇴하는 퀘스트처럼.
‘지긋지긋하긴 하지만, 보상 하나는 확실하지.’
그때를 떠올리자 절로 현기증이 일었다.
지금 생각해도 미친짓이었다.
다만, 그만큼 보상도 미친 수준이었다.
‘빌헬름을 넘어선다.’
그를 위해선 반드시 해야만하는 과제였다.
또한.
이번 일로 인해 나는 강렬한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 빌헬름의 육체를 차지한 마왕.’
새삼스럽지만, 빌헬름을 겪자 보다 확실해진 것이다.
빌헬름의 육체를 차지한 마왕이 얼마나 강해졌을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빌헬름 스스로도 ‘대비해야한다’고 말했을 정도이니, 지금 이대로라면 인류는 마왕의 출현과 동시에 멸망할 가능성이 높았다.
‘마왕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지고 있다. 그리고 마계도 마왕과 함께 강화되고 있다.’
예상이 아니라 확신이다.
또 다른 란돌프가 소멸하자 잠시간 엿보았던 진리의 문.
그 안에 담긴 지식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마왕.
그는 착실히 ‘멸망’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나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러한 경각심은 비단 나 혼자만 강해진다고 해결될 게 아니라는 깨달음도 주었다.
인류 전체가 강해져야만 한다.
판게니아도, 지구도.
균열의 탑을 올라 한계레벨을 해제하고, 신의 섬에서 2차 각성자를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격적인 ‘육성’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였다.
게다가 이번 투신의 탑과 같은 이변이 또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
빌헬름이 아니었다면 해결 자체가 불가능했을 터.
그래서다.
내가 강해지는 것만큼, 나를 보조할 다른 이들의 성장도 중요해졌다.
여태까지는 이 정도로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으나 한 번쯤은 충분히 고려해볼 문제인 듯싶었다.
‘······ 다음.’
상념을 지운채 나는 남은 상태창을 확인해나갔다.
<부가 능력치>
자연 재생력 : 21,200%
전체 경험치 획득률 : 300%
<특이사항>
1 : ‘무한의 그릇’ - 능력치 상한 해제, 능력치 상한 해제에 따른 부작용 제거
2 : ‘탈각’ - 자연재생력 대폭 상승, 경험치 획득률 2배
3 : ‘탈마’ - 수화불침(水火不侵), 만독불침(萬毒不侵), 금강불괴지체(金剛不壞之體)
4 : ‘승계’ - ‘란돌프’의 능력치를 레벨에 따라 승계합니다.
5 : ‘공유’ - ‘란돌프’와 경험을 공유합니다. (현재 란돌프의 레벨과 경험치 9Lv, 70%)
6 : ‘자연경’ - 자연의 기운을 이용할 수 있으며 모든 속성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자연 재생력에 영향을 받습니다.
<숙련도>
검 35Lv, 무장 해제(피해량+100%)
<활성화된 히든 특성>
【허무】
【손재주】
【올 마스터】
【웨폰 마스터】
【거인의 항마력】
【드루이드의 자연친화력】
【철혈군주의 심장】
【비스트 로드】
【황금의 은총】
【돌연변이】
【대식가】
【대현자】
【천상(天上)】
【무신(武神) 빌헬름】
<활성화된 신비>
(1) 무신(武神) - 패시브(Passive).
모든 숙련도 효율 1,000% 상승, 모든 숙련도 레벨 제한 +10Lv, 모든 종류의 무기를 가장 높은 숙련도 레벨에 맞춰 사용가능
“······.”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미친 거 아닌가?
추가된 것들 하나하나가 주옥(珠玉) 같지 않은 게 없었다.
자연재생능력과 경험치 획득률이 크게 상승했고, 천마신공이 사라지고 ‘탈마’로 대체되었으며, 아예 ‘자연경’이라 불리는 특이사항마저도 생성됐다.
‘자연 재생력이 20,000%를 넘길 줄이야······.’
어쩐지 몸이 너무 쌩쌩하더라니.
이 정도면 팔을 잘라도 재생이 될 수준이다.
꼬리를 자르면 재생되는 도마뱀 이상가는 재생능력을 갖게 됐다.
‘자연경. 자연의 마력을 사용할 수 있다. 주변 마력을 끌어 사용하던 천마처럼.’
게다가 가진바 이상의 마력을 사용하는 게 가능해졌다.
자연재생력에 영향을 받는다고 하니, 그 효율은 틀림없이 상상을 초월할 터.
그야말로 마르지 않은 샘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마력이 높아질수록 더 말도 안 되는 짓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고등급 파괴 스킬을 하나쯤 익히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단순히 검강을 피어내고 검환을 펼쳐내는 걸 넘어서서, 아예 강력한 고등급 파괴 스킬을 제대로 익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것들은 마력의 소모가 너무 커서 효율이 떨어진다 생각했는데, 지금이라면 이야기가 아예 다르다.
하지만.
‘무신······ 허. 이게 제일 어이가 없군.’
가장 경이로운 건 다름아닌 규격외의 신비 ‘무신’이다.
숙련도 효율 1,000%상승과 레벨제한 해제를 10이나 해주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모든 종류의 무기를 가장 높은 숙련도 레벨에 맞춰 사용할 수 있게 되다니!
‘진짜 무신이로군.’
··· 이는 검의 숙련도 레벨에 맞춰, 다른 무기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으므로.
활을 사용하든, 창을 쥐든 간에 모두 35Lv의 숙련도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숙련도 레벨 제한이 있는 모든 무기의 사용도 가능해진다는 것이었다.
무신.
모든 무(武)의 신이라 불리우는 이름 다운 능력이다.
‘만류귀종. 끝에 다다르면 결국 같다는 게 이런 건가.’
검만 익혀도 다른 무기를 연습할 필요가 없다.
오로지 검 하나가 모든 장비와 연결되는 것이다.
솔직히 다른 장비의 숙련도가 부실한 게 그동안 옥의 티로 작용했다.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이리라.
그러나 다른 장비를 사용할 여유가 없었다.
검만을 익히기에도 바쁜 시간이었으므로.
‘다른 칠대 히든퀘스트들. 그중 한 개는 확실하게 깰 수 있다.’
이로써 더욱이 강렬한 확신이 생겼다.
불가해한 퀘스트.
그중 하나는 확실하게 도달하리라는 확신이.
만약 검의 숙련도 레벨만 높았다면 불가능했을 터이나, 무신의 신비 덕분에 모든 무기의 압도적인 사용이 가능해진 지금이라면 깨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한데, 이마저도 끝이 아니었다.
‘흉과 재의 장갑.’
태고 등급으로 책정된 그것들.
라이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듯하지만, 지금 그 두 장갑이 내 손에 이미 착용된 상태였다.
나는 가만히 그것들을 들여다보았고.
“······ 어디 아픈가? 안색이 많이 안 좋다만.”
그런 내 얼굴을 본 라이가가 한 마디 보탰다.
어지간한 일에는 요동조차 없는 내 얼굴이 하얗게 새어버렸으니까.
앞선 변화들 역시 하나하나가 천외천에 가깝지만.
지금 내가 놀란 이유는 단순히 장갑의 능력이 출중해서만은 아니었다.
‘변신할 수 있다. 란돌프로.’
장갑의 능력 중 하나가 유독 눈에 들어온 탓이다.
란돌프와 내가, 합쳐졌다.
나뉘지 않고 하나가 되어 언제든지 변신할 수 있다.
흉과 재의 신이 말한 ‘합치’라는 게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흉의 장갑에는 란돌프가, 재의 장갑에는 바로 내가.
나는 흉의 장갑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그러자.
<상태창>
이름 : 란돌프
직업(Class) : 또 다른 멸망
······ 란돌프의 상태창이 떠올랐다.
그것도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상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