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301화 (301/317)

마지막 수업

보자마자 ‘개 같은 신’이라니. 

천하의 빌헬름도 당황하긴 한 모양이다. 

나는 피식 웃었다. 

“‘개’ 같은 신 아니었나?” 

“······.” 

정곡이라도 찔린 듯 내 물음에 빌헬름은 답하지 않았다. 

무표정하기 그지없는 얼굴. 

현미경 수준으로 관찰하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변화가 있긴 있었다. 

파르르. 

아주 미세하게 눈가가 떨린 것이다. 

하지만 그만하면 충분했다. 

절대로 다른 사람 앞에선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 빌헬름이 충분히 당황했다는 증거였으므로. 

빌헬름이 당황한 모습을 보아하니 왜 이렇게 즐거운 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이렇게 둘이서 마주한 적은 처음이었다. 

빌헬름이 갇혀있거나, 내가 갇혀있거나. 

항상 둘 중 하나였다. 

결코 소통은 불가능한 구조. 

얼굴을 보긴커녕 당연히 제대로된 대화조차 해본 적이 없다. 

그토록 오랜시간을 함께했음에도. 

스릉. 

나는 가볍게 검을 쥐며 말했다. 

“하기야······ 우리가 시시콜콜하게 대화나 나누고 있을 사이는 아니긴 하지.” 

우리가 언제 제대로 말을 주고받아본 적이 있기나 하던가. 

처음부터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서로를 알아가기엔 남은 시간이 너무 적다. 

《‘온전한 황금률’에 의한 남은 변신 시간 7분 32초》 

고작해야 8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이 시간에 나눌 수 있는 제대로된 대화가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하물며 그간 쌓인 케케묵은 감정 따위를 이 시간 안에 해소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검으로 시작했으니, 검으로 끝을 낸다. 

우리 같은 사이는 말 한 마디보단 검으로 나누는 한 합의 대화가 더욱 가치있는 법이니까. 

빌헬름. 

너도 그리 생각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스릉. 

곧이어 빌헬름도 마주한 채 나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이거면 됐다. 

우리 사이는. 

“······ 승리하는 자가, 옳은 것으로 하지.” 

너도, 나도, 전부 털어내보자. 

그리고 확인해보자. 

누가 더 ‘개’ 같은지 말이다. 

라이가는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장면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제국제일검이라 불리며 판게니아의 최강자임을 자처했던 그가. 

“······.” 

지금, 자신보다 더욱 높은 경지의 대결을 목도하고 있었기에. 

물론, 이미 빌헬름을 ‘최강의 사나이’로 인정한 상황이다. 

허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다른 ‘최강’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정상까지 오른 빌헬름은 영원의 신 란돌프와 격돌했다. 

둘의 대결은 라이가마저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으니. 

‘어이가······ 없군.’ 

라이가는 이 상황이 그저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언제나 상황을 주도하고 이끌어갔던 건 그였다. 

누군가가 시련을 대신 해결하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며 숨죽이고 있는 건 살아생전 처음이었다. 

하물며 빌헬름은 자신과 싸웠던 때보다 정상에 오른 현재 몇 단계는 더 진일보한 것 같았다. 

그럴진대. 

그러한 빌헬름과 맞수를 이루는 란돌프라는 자. 

그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란돌프······.’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처음 보는 자다. 

저 정도의 강자라면 자신이 알고 있을 법 한데도 불구하고. 

허나 분명한건 저 ‘란돌프’라는 존재로 인해 투신의 탑이 변형되었다는 것이다. 

변형된 시련과 바알의 출현. 

칼날용신을 소환하고 개미왕을 제몸처럼 부린 ‘영원의 란돌프’도 모두 지금 저 란돌프와 관계가 있을 터였다. 

처음에는 사라진 ‘황금 염소’를 떠올린 것 또한 사실이었다. 

단시간에 사신교의 간부로 오른 그 정체불명의 존재와 란돌프가 깊은 연관이 있으리라고 여겼다. 

‘··· 다르다. 그때의 염소가 아니야.’ 

하지만 염소와는 제국에서 한 차례 손을 섞어봤다. 

지금 빌헬름에게 검을 휘두르는 란돌프는 그때의 염소와는 모든게 달랐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고, 비교자체가 불가할 정도로 딴판이다. 

무엇보다 염소는 죄인이 아니다. 

반면에 란돌프는 죄인일 가능성이 높다. 

뿐만인가. 

“빌헬름님······!” 

“아아!” 

이자벨라를 비롯한 그들의 반응으로 보아하건대 저 란돌프는 염소가 아닌 게 확실하다. 

염소였다면 특히 이자벨라가 걱정어린 눈빛을 보냈을터. 

그러나 그들의 시선은 모두 빌헬름에게 향해있었다. 

라이가는 다시 고개를 돌려 빌헬름과 란돌프의 싸움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 우물 안의 개구리는 나였던가?’ 

라이가는 있는 힘껏 주먹을 쥐고, 고개를 숙였다. 

창피하다. 

낯이 뜨겁다. 

그래서 얼굴을 들 수가 없는 게다. 

이 세상에 더 이상 자신보다 강한 자는 존재하지 않으리라고 자신했다. 

하여 심연탐사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하지만 착각이다. 

멍청한 생각일 뿐이었다. 

세상이 이처럼 넓은지 모르고 우물 안에서 최고라 자부하는 꼴이었다. 

그래봤자 우물일 따름이거늘. 

스스로 멈춰있기를 자처한 것과 다를 게 없다. 

‘세계는 넓다. 강자는 많다.’ 

이윽고. 

두근! 두근! 

미칠 듯이 심장이 뛰었다. 

빌헬름과 란돌프의 대결을 바라보고 있자 수십년간 죽어있던 승부욕이라는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닿고 싶다. 

이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우물을 벗어나야만 한다. 

그리고 우물을 벗어날 방법은 눈앞에 있다. 

자신을 넘어선 두 강자의 대결. 

그것을 온전하게 눈에 담고 복기하는 것. 

깊은 우물로 떨어진 밧줄이 바로 저것이었다. 

잡아야한다. 

담아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해야만 했다. 

온전하게 비워내고 다시 채워야 함이다.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군······.’ 

이만한 열망은 무척이나 오랜만이었다.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 어린시절. 

팔가의 후인에게 점지되어 처음 검을 쥐었을 때. 

그때 이런 감정을 느낀 것 같다. 

배우고 싶다고. 

다시는 노예로 돌아가기 싫다고. 

힘을 갖게되면 주도적인 삶을 살겠노라고. 

······ 지금은 어떤가. 

과연 그는 그러한 초심(初心)을 잘 지키고 있었나? 

스으으. 

라이가는 검을 쥐었다. 

저 둘을 따라갈 수 있을까? 

저 둘의 영역에 닿을 수 있을까? 

라이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신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그저 보고 담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검을 쥐었으나 휘두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 

“······.” 

그러한 감정을 느낀 건, 비단 라이가 뿐만이 아니었다. 

지켜보는 이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둘의 대결은,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고 전율이 일었으니까. 

동시에 등이 서늘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탑이 무너진다면? 

-그래서 란돌프가 적으로 등장한다면? 

······ 상상만으로도 끔찍했으니까. 

빌헬름이 실패하면 모든 게 끝이다. 

란돌프. 저 괴물을 아무도 막지 못할 것이기에. 

하지만 란돌프는 플레이어다. 

비록 탑에 의해 상태가 이상해졌다고는 해도 이처럼 차원이 다른 무력이라니! 

-우리는 그동안 뭘 한 거지?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한거야? 

심지어 란돌프가 등장한 시기는 다른 플레이어들에 비해 더욱이 짧다. 

아무리 그가 희귀한 정보를 선점하고, 운이 좋더라 할지라도 그 이상가는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지금의 모습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부정적인 의견을 지닌 사람들도 많았다. 

“너무······ 너무 차원이 다르잖아.” 

“노력하고 말고가 아니야. 저건······ 그냥 다른 존재라고.” 

“대체 대원정은 어떻게 실패한거야?” 

차원이 다른 강함에 포기해버리는 이도 속출했다. 

아무리 자신이 노력한다 한들, 닿을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그야말로 천외천의 경지다. 

어차피 닿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포기하는 것이다. 

“닿을 수 있다.” 

하지만 라이가는 그들의 포기를 일축했다. 

그러자 그의 목소리가 마력을 타고 수십만의 인원 모두의 귓가에 울렸다. 

라이가는 표정을 굳힌 채 연이어 말했다. 

“닿아야만 한다.” 

절실하게. 

더없는 절박함이 느껴지는 어조로. 

······ 고작 두 마디 뿐이었으나, 그거면 됐다. 

라이가의 말에 담긴 뜻을 모르는 이는 없었으니까. 

빌헬름과 란돌프가 나누는 검의 경지. 

저 둘의 대결은 그들에게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더 높은 하늘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현재에 안주해 더욱 치열해지지 못하면 세계는, 인류는 멸망하리라. 

그러니 닿아야만 한다. 

닿지 못하면, 어차피 멸망할 터이니. 

그때였다. 

“뭐, 뭐야 저 ‘검’은······?” 

란돌프가 소환한 검. 

세계를 삼킬 정도로 거대한 검이 빌헬름을 향해 휘둘러졌다. 

절대적인 ‘죽음’을 달고서. 

지고의 검이 빌헬름에게 닿는 순간.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동시에 거대한 폭발이 일며 탑 전체가 흔들렸다. 

구르르르르릉! 

그들이 있는 장소도 균형을 잡지 못할 정도로 흔들려댔다. 

그러나. 

바닥에 엎드려서라도, 다른 사람을 부여잡고서라도. 

모두가 중계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연기가 걷혔을 때. 

“아······!”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마치 신의 검과도 같은 그것을 빌헬름이 맨손으로 잡고 있었으니. 

그리고 이어진 빌헬름의 검격은- 

“······?” 

“······ 어?” 

순간, 사람들은 당황하고 말았다. 

느닷없이 화면의 중개가 끊겼기 때문이다. 

“하, 하필 이 순간에!”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거야?” 

이리보고, 저리봐도 화면은 더 이상 송출되지 않았다.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며 의문을 피우고 있을 때. 

그 사이에서 유일하게 표정을 굳힌 남자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빌헬름이 휘두른 검을 보며, 몸을 떠는 이가 있었다. 

라이가. 

그가 나지막히,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저건······ 못닿겠군.” 

······ 저 마지막 ‘검’만은 도저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았기에. 

“난잡하다.” 

몇 합의 검을 나누었을 때, 처음으로 빌헬름이 한 말이다. 

난잡하다고. 

내 검이. 

나의 기술이. 

아니, 아니다. 

검에 한정된 말이 아니었다. 

빌헬름은 나의 전체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정확한 정체성에 대해서. 

지금 나는 어느때보다도 난잡한 상태였다. 

가지가 획일화 되지 않고 중구난방으로 뻗어있다. 

탑을 오르며, 흉과 재의 신을 만나면서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 

하여 말하는 것이다. 

난잡하다고. 

이토록 난잡할 수가 없노라고! 

“하나로 합쳐라. 일부러 안 하는 건가?” 

묘하게 신경을 긁는 말이었다. 

하지만 하나로 합치라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중구난방으로 뻗어있는 가지를 치는 게 아니라, 하나로 합치라니. 

그런 나를 보며 빌헬름이 피식 웃고 말았다. 

“아니면 못하는 건가? ‘개’ 같은 신이여?” 

······ 이 자식이. 

‘개’를 강조하며 마치 나를 놀리듯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놀리듯이? 

아니다. 

나를 놀리고 있는 게 확실했다. 

신이면서 왜 그것도 못하느냐며 면박을 주고 있는 것이다. 

허나······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빌헬름. 

녀석이 하는 말이 맞았으니까. 

너무 난잡해진 탓에 어떻게 해야될지를 모르겠다. 

무엇을 쥐고 무엇을 휘두르며 어떻게 나아가야할지 좀처럼 감히 잡히지 않았다. 

심상의 늪에서 검을 휘두를 때 보다 확실해졌다. 

이대로는 빌헬름에게, 이 개 같은 놈에게 닿을 수 없으리라는 게. 

하지만 나는 녀석이 이끄는 검로에 어느덧 매료되어 있었다. 

또한, 그는 검으로써 내게 말하고 있었다.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간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알 수 없었던 것들을. 

한 마디로. 

“잘 따라와라. 지금부터 더 어려워질 터이니.” 

이건 빌헬름이 나를 가르치는 마지막 수업이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