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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99화 (299/317)

완성

일반적인 신이라면 자신의 품위를 위해서라도 절대 하지 않을 짓이었다. 

십여일간 엉금엉금 바닥을 기어 나벨룽의 숲을 탈출하다니! 

이걸 ‘개’ 같은 신이라 아니한다면 무엇이라 부르겠나. 

물론 그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 하나만큼은 빌헬름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숲을 탈출할 건 시작에 불과했다. 

목검 하나 들고서 도착한 곳은 웬 거대한 산이었다. 

‘뭐 하는 거지?’ 

도시로 가서 생활전반에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해도 모자랄 판국에 숲을 벗어나 왜 대뜸 산으로 들어간단 말인가. 

속세를 벗어나는 공부라도 하려는 걸까? 

하지만 그러기에 이 산은 너무나도 위험한 곳이었다. 

오크들이 득실댔으니까. 

‘··· 또 기어가겠다고? 이 산을?’ 

여기서도 ‘개 같은 신’의 ‘개’ 같은 행위는 반복되었다. 

포복한 채로 산을 오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나마 나벨룽의 숲보다 나은 것이라면 마실 물과 요기할 과일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왜 피하는 거냐?’ 

하지만 이 산의 오크들은 숲의 괴물보다 약하다. 

기습한다면 충분히 한, 두 마리 정도는 죽일 수도 있는 상황. 

그런데 한 마리의 오크도 처치하지 않고 장장 7일간 산만 탔다. 

마침내 산의 정상에 도착한 개 같은 신은, 놀랍게도.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도전’을 실행했다. 

‘······ 제정신인가? 산의 주인과 대결을 펼치겠다니!’ 

산의 주인, 오크들의 왕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여태껏 불살(不殺)하며 숲을 빠져나오고, 산을 오른 게 설마 이 거대한 산의 주인에게 도전하기 위험이었던가? 

이길 가능성은 없다. 

만에 하나 이겨도 살아서 내려가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다. 

“위대한 ‘피뿔산’의 왕이여! ‘전사의 대결’을 신청한다!” 

······ 환장할 노릇이었다. 

정상에서야 겨우 몸을 펴고 나섰지만, 이곳은 오크의 왕이 기거하는 곳. 

수많은 오크들이 몰려들었다. 

하물며 피뿔산의 왕은 목검 한 자루 들고 상대할 수 있는 괴물이 아니었다. 

“··· 재밌는 인간이 나타났군.” 

다른 오크보다 족히 두 배 이상 커다란 체구. 

온 몸에 난 상처는 그가 강한 전사임을 입증했다. 

게다가 대결을 안 받아주면 어떡하려고? 

“피뿔산에 존재하는 수많은 오크의 영혼이 그대를 인정했다. 단 하나의 오크도 죽이지 않고 이 산을 어떻게 오른 건지는 모르겠으나, 명예를 아는 자여! 그대의 대결은 성사됐다!” 

······ 받아줬다.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빌헬름은 어느새 손에 땀을 쥔 채로 둘의 대결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목검으로는 제대로된 싸움을 할 수 없겠지. 받아라!” 

피뿔산의 왕은 허리춤에 매인 검집 중 하나를 던졌다. 

모두 그에게 도전했던 자들에게서 강탈한 것들이다. 

그중에서도 진귀하며 강력한 보검을 넘긴 것이다. 

“이것은 전사의 싸움! 나를 이긴다면 그 검과 함께 그대의 목숨은 보전되리라! 허나, 패배한다면 목숨은 없다.” 

스릉! 

이윽고 전사의 대결이 시작됐다. 

그나마 1:1의 대결이라 다행이지만 여전히 격차는 확연하다. 

개 같은 신은 이 싸움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촤앙! 

검이 흔들린다. 

몸도 같이 흔들렸다. 

아무리 검술을 연마했대도 압도적인 힘의 차이는 어찌할 수 없는 게다. 

빌헬름은 저도 모르게 심상의 늪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살갗을 뚫을 정도의 힘은 없다. 저 힘을 역으로 이용하는 것 외에는!’ 

아무리 좋은 보검이 있어도 힘이 부족하여 타격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게다가 피뿔산의 왕이 지닌 괴력은 혀를 내두를 수준이었다. 

그 힘을 이용할 수만 있다면, 저 단단한 살갗을 파고드는 것도 가능할 터. 

그때부터였다. 

《특수 능력치 ‘회피력’의 수준이 일정단계를 넘어섰습니다.》 

《‘검 흘리기’ 스킬을 익혔습니다.》 

빌헬름의 의지가 스킬로 만들어졌다. 

물론 오롯이 빌헬름의 의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말 쉬지 않고 ‘개’ 같이 기어다닌 덕분에 스킬을 만들기 위한 회피력이 충분했던 것이다. 

후아아아아앙! 

그 순간,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피뿔산의 왕이 내지르는 일격이 눈에 보인다. 

《‘검 흘리기’를 사용했습니다.》 

정확한 순간에 검을 흘렸다. 

허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완벽한 타이밍! ‘반격’을 사용합니다!》 

그 힘을 이용한다. 

곧이어 피뿔산의 왕이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피하고, 흘리며, 무릎으로 쏠린 무게중심을 공격해 반격에 성공한 것이다. 

쓰러진 피뿔산의 왕의 두 눈가가 거칠게 흔들렸다. 

하지만 입가엔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대단······!” 

푸욱! 

목을 찌른 뒤 그대로 베어냈다. 

‘아······!’ 

동시에 느껴지는 쾌감. 

빌헬름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살아있다. 

이것이, 살아있다는 감각이다! 

허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히든 퀘스트 완료!》 

《1레벨로 ‘피뿔산의 왕 사냥하기’가 완료되었습니다.》 

《경이롭습니다.》 

《여태껏 단 한 명도 달성하지 못한 유일무이한 업적입니다.》 

《‘1레벨에 피뿔산의 왕을 사냥한’ 칭호를 획득합니다.》 

《히든 클래스 ‘불굴의 도전자’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발란 왕국’으로 향하여 현상금을 받으십시오.》 

《명예 500과 SP 500이 부여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피뿔산의 왕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뒤. 

빌헬름은 생전 처음으로 강렬한 희열을 느꼈다. 

불가능한 시련에 도전하여 승리하는 것. 

그 순간의 쾌락은 빌헬름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 것이다. 

하지만 모든 상황의 중심에는 빌헬름이 아닌 ‘개 같은 신’이 있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군.’ 

숲을 빠져나온 것도, 피뿔산을 오른 것도. 

모두 ‘죽음’이 확정되다시피 한 일들이다. 

그럼에도 그는 도전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결국 달성해냈다. 

왜? 

자신의 몸이 아닐진대, 그저 조종하는 것에 불과함에도 어째서 이렇게 처절하다 싶을 정도로 몰두하며 도전하는가. 

도저히 빌헬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음 행보도 마찬가지였다. 

‘항만도시?’ 

개 같은 신이 향한 곳은 발란 왕국이 아니었다. 

바로 ‘야숨’이라 불리는 항만도시. 

수많은 선박이 출입하고 정박하는 곳. 

물자 교류의 중심에 선 도시이기에 그만큼 번영했으며, 세상의 진귀한 온갖 것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살······ 려줘······.” 

“으으······.” 

“빨리빨리 움직여라!” 

찰싹!또한, ‘노예’의 거래도 활성화되어 있었다. 

사슬에 묶인 채 일렬로 배에서 내려오는 노예들. 

남녀노소를 구분치않고 하나같이 뼈가 보일 정도로 앙상하게 말라있다. 

이곳에서 노예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물건이고 소모품일 따름이다. 

그래서 채찍을 휘두르거나 매질을 하는 것에 대해 전혀 죄의식이 없었다. 

‘여기서 뭘 어쩌려는 거지?’ 

하필이면 왜 이곳으로 왔나. 

당연히 발란 왕국으로 향하여 현상금을 받을 줄 알았건만. 

설마 노예라도 구하려고? 

‘······ 구하긴 구했군.’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노예를 구하긴 했다. 

노예를 산 게 아니라, 노예들을 아예 해방시킨 것이다. 

덕분에 수많은 병사들로부터 쫓기게 되는 신세가 되었으나,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야숨에서 모든 노예를 해방시켰다. 

‘대체 왜?’ 

개 같은 신은 대체 왜 이런 쓸데없는 짓을 자처하는 걸까. 

아무런 이득도 없고, 손해만 가득한 짓을. 

빌헬름으로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앞선 도전들과 달리, 사서 고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을 계속해서 연거푸 일어났다. 

약자를 구하고, 선행을 베풀고, 힘있는 자들에게 굴복하지 않으며, 마침내 발란 왕국에 도착하여 기사의 작위를 수여받았다. 

설마 기사가 되기 위해 계산적으로 행했던 일들인가 싶었지만, 이후로도 그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 그리고. 

어느덧 빌헬름은 그의 행보를 함께하고 있었다. 

‘질 수 없다.’ 

치기어린 마음의 발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왜인지 지고 싶지가 않았다. 

목적이 있다면 개 같이 기어서라도 달성해내는 근성. 

절대로 굽히지 않는 자신감. 

그래서일 것이다. 

빌헬름은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단 하나, 개 같은 신보다 잘난 게 있다면 바로 그건 자신의 ‘검’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끊임없이 검을 휘두르다보면, 개 같은 신에게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너를 알고 싶다. 나를 알리고 싶다.’ 

··· 그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빌헬름은 ‘기사왕’이라 불리었다. 

모두의 추앙을 받는 명예로운 존재. 

천지개벽의 검술을 만들고, 모두가 말리던 대원정을 일으켰지만. 

······ 그럼에도 닿지 못했다. 

개 같은 신에게. 

욕을 하고 원망도 했지만. 

하지만, 이제는 확실하게 알겠다. 

‘이제야 비로소······ 나를 알았다.’ 

나라는 인간에 대해, 나라는 존재에 대해. 

돌고 돌아, 죽음 이후에 이르러서야. 

허나 또 다시 죽음의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이 모든 기억은 죽음 직전의 주마등과 같다. 

깨닫고 나아가기엔 많이 늦었다. 

허나, 그래도 충분하다. 

‘보아라. 이게 내가 너에게 보내는 마지막 물음이니.’ 

마지막 물음이자, 그에게 내리는 마지막 숙제였다. 

빌헬름은 검을 쥐었다. 

드디어 ‘완성’했으니까. 

나를 알고, 나를 연다. 

천지개벽의 벽. 

허나, 애초에 이 검술은 천지개벽 중 하나를 떼어와 따로 사용하기 위한 검술이 아니었다. 

전부가 하나가 되어 마침내 완성되는 검술. 

《‘천지개벽’을 사용합니다.》 

그렇게 너에게 닿겠다. 

··· 개 같은 신이여.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지고의 검이 지면에 닿자, 가공할 파공음과 함께 죽음을 불러왔다. 

절대적인 죽음의 명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이 검의 죽음을 감당할 수 없을지니. 

“······ 뭐?” 

하지만 란돌프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지고의 검이, 완전히 지면에 닿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지고의 검을 막았다. 

빌헬름. 그가. 

“넌······.” 

하지만 이상했다. 

지고의 검은 절대로 막을 수 없는 검이다. 

규격외의 검을 막을 수 있는 건 오직 규격외뿐이다. 

그러나 빌헬름은 ‘규격외’의 검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스스로가 규격외가 되었다······.’ 

규격외. 

스스로 신이 되는 것! 

허나 이 역시 이상한 일이다. 

그 누가 되었든, 깨달아 초월하여 신의 격을 지닐 수는 있다. 

하지만 신 자체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 

신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신은 세계와 함께 태동하며 탄생하는 존재이니. 

당장 히든 특성 ‘영원의 신’과 ‘마혈종의 신’을 보유한 란돌프지만, 그렇다고 란돌프가 진짜 신이 된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저 신과 같은 자격을 지닌 것이다. 

비슷한 말 같지만 절대로 같은 말이 아닌 게다. 

그런데. 

······ 그럴진대. 

란돌프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진리의 문에도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한 정보는 없었기 때문이다. 

빌헬름의 검술은 현상을 조종하는 것. 

끝에 다다라서는 ‘현상’ 그 자체가 될 줄이야! 

먼지가 가라앉으며 나타난 빌헬름의 모습은. 

“스스로 신이 되었다······ 고?” 

지고의 검을 검이 아닌 손으로 잡아냈다. 

스스로 ‘죽음’의 운명을 ‘삶’으로 바꿔낸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지을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었다. 

그 모습은, 틀림없이. 

가히 ‘신’ 그 자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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