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자
응원.
상대가 잘할 수 있도록 힘을 북돋기 위한 격려다.
하지만 살아생전 단 한 번도 ‘개 같은 신’은 자신을 격려한 적이 없었다.
아니, 격려는커녕 한 마디의 언급조차도 없었다.
마치 신은 자신의 존재를 모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무저갱과도 같은 의식의 늪에 빠진 채 허우적대는 자신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언제나 외면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제와서······.’
··· 죽고 나서야.
신은 그의 혼을 불러냈으며.
이제야 그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왜?
그토록 바랄 때는 한 마디도 안하지 않았나.
신의 의지를 받들어 경지를 이룩하고 기사왕의 명예가 드높아질수 있도록 도왔으나, 그럼에도 끝까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던 신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응원을 한다?
설마 란돌프를 토벌하길 바라는 마음에?
‘란돌프라.’
빌헬름은 가만히 고개를 들어 란돌프를 바라보았다.
자신처럼 개 같은 신에 의해 조종당한 육체.
그 위에 덧씌워진 영혼은 틀림없이 육체의 주인일 것이다.
하지만 빌헬름은 영혼의 이상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악(惡)이로구나.’
저 영혼은 악에 물들지 않았다.
그저 ‘악’으로 태어났을 뿐이다.
처음부터 악이었고, 그렇기에 지금도 악일 따름이었다.
허나 의아한 일이었다.
인간은 결코 악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태어났다면.
“너는 반쪽짜리로군.”
그것은 반쪽일 것이다.
제대로된 인간이 아니라.
“······ 내가 반쪽짜리라고?”
빌헬름의 말을 듣자마자 란돌프가 인상을 구겼다.
반쪽짜리라는 말에 결코 동의할 수가 없었다.
비록 신의 섬에서 패배하여 진리의 문에 갇혔으나.
“나야말로 완전체다. 이 몸의 유일무이한 주인!”
본래의 자리를 되찾은 것에 불과하다.
또한, 이번에야말로 완전해지리라.
패배는 한 번이면 족하다.
다시금 ‘진리의 문’에 갇힐 수는 없었다.
그건 정말 진저리처지도록 끔찍한 경험이었으니까.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 절대로!’
떠오른 기억에 란돌프가 한 차례 몸을 떨었다.
허나, 지나간 이상 악몽일 따름이다.
게다가 ‘진리의 문’을 들어갔다가 나온 경험으로 인해 란돌프는 더욱 완전해질 수 있었다.
이제야 비로소 바로선 느낌.
란돌프가 빌헬름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반쪽짜리라고 평한 어리석은 놈을.
제대로 볼 줄도, 느낄 줄도, 사고할 줄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녀석을.
무엇보다도.
“넌······ 아하.”
란돌프가 미소를 지었다.
진리의 문을 들어갔다가 나온 효과일까?
빌헬름을 꿰뚫어 보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타난 그의 진짜 모습은.
“너야말로 반쪽짜리 아니냐?”
누가 누굴보고 반쪽을 운운한단 말인가.
퀭한 눈, 앙상하기 그지 없는 손과 발.
폐인이 따로없는 상태로 동굴에 갇힌 채 울부짖는 어린아이.
란돌프가 쯧쯧 혀를 찼다.
“몸도, 이름도, 명예도, 기억마저도. 무엇하나 너의 것이 없지 않느냐?”
무엇 하나도 그의 것이 아니다.
그의 것이었던 적이 없다.
저것을 과연 ‘존재한다’라고 할 수 있을까.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아.”
그러자 빌헬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도 흔쾌하게.
감명이라도 받은 건가?
빌헬름은 이어서 말했다.
“그래,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반쪽짜리.”
어중간한 반쪽이 될 바엔, 아무것도 아닌 게 낫다는 듯.
그제야 란돌프는 자신이 계속 불편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아무래도 너와는 안 맞는 것 같군.”
눈앞에 선 놈.
저놈과 자신은 상극이라는 걸.
대화는 끝났다.
이제 남은건.
스릉!
아무것도 아닌 자와, 반쪽의 죽고 죽이는 생사결뿐.
*
모두가 숨을 죽인 채.
“······.”
“······.”
그저 가만히, 눈앞에서 재생되는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모든 각성자가 입도 뻥긋 할 수가 없었다.
빌헬름이 탑을 오르는 모습은 가히 충격 그 자체였으니까.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절대로 쓰러지지 않았다.
어떤 역경이 다가와도, 어떠한 비바람이 몰아쳐도.
그는 묵묵하게 앞으로 나아갈 따름이었다.
그들이 상상한 것 이상으로 빌헬름은 강했다.
올곧았고, 묵직하며 부드러웠다.
가히 기사왕이라는 칭호에 누구보다도 걸맞은 존재.
라이가가 인정한 최강의 남자!
‘강하다······.’
‘저렇게까지 해야 강해질 수 있는 건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일고 심장이 뛴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고, 본 적조차 없는 강함에.
하지만 그의 압도적인 무력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만약 같은 상황이 주어졌다면 자신은 저 탑을 오를 수 있었을까?
몸과 마음의 상처 따윈 도외시한 채 성난 무소처럼 앞으로만 나아가는 게 과연 가능할까?
‘나는 못해.’
‘불가능.’
불가하다.
안다고 해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빌헬름의 도전을 바라보는 모두의 마음에 작은 불씨 하나가 지펴졌다.
강해지고 싶다는 불씨가.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그와 함께 세상을 걷고, 그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다는 욕구가 일었다.
그러나 아직 클라이막스에는 닿지 못했다.
마침내 30층.
빌헬름이 투신의 탑 정상에 닿았을 때.
“저게······.”
“란돌프!”
영원의 신 란돌프가 등장했다.
등장부터 ‘명예의 전당’을 휩쓸며 1등을 독차지한 최강자.
지금 투신의 탑에 소란을 만든 장본인이고, 동시에.
········· 저자야 말로 ‘팬텀’이다.
하지만 란돌프와 달리 빌헬름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불굴의 의지로 30층에 닿았으나 그간 누적된 상처는 도저히 눈을 뜨곤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무엇 하나 성한 곳이 없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미 골백번은 죽었으리라.
“··· 여기까지인가?”
“안 돼!”
“··· 빌헬름!”
“빌헬름!”
그들은 목놓아 외쳤다.
어느덧 그들은 빌헬름에게 동화되어 있었다.
자신이 소리를 내지르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로 그의 이름을 울부짖었다.
그러한 응원과 격려가 그에게 닿은 걸까?
《‘개 같은 신’님이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20,000h)을 사용해 ‘빌헬름’을 응원합니다.》
누군가가 무려 2만 시간에 달하는 분량의 조각을 사용해 빌헬름을 응원한 것이다.
2만 시간.
여태껏 수많은 각성자가 응원한 조각은 고작 2천시간 수준에 그쳤다.
그런데 그에 열 배에 달하는 조각을 아낌없이 퍼부은 것이다.
“이, 이만 시간?”
“뭐야?”
“개 같은 신?”
“그게 누구야?”
“신이 빌헬름을 응원하는 거야?”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당황했다.
2만 시간 분량의 조각.
절대로 한 명이 가질 수 없는 수준의 양이었으니까.
설령 그게 신이라고 한들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은 벌어졌고.
빌헬름은 ‘완성’되었다.
“기사왕이시여······.”
성녀 세아의 두 눈망울이 크게 흔들렸다.
빌헬름의 도전을 보고 있는 건 각성자들만이 아니다.
탑에 오른 50만명이 넘는 이들도 함께 빌헬름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완성된 빌헬름의 늠름한 자태는, 성녀 세아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대원정의 빌헬름과 흡사했다.
저 모습의 빌헬름은 무적이다.
마왕조차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던, 인류의 상징과도 같은 남자.
아이러니하게도 그 반대편에 선 란돌프는 마치 그때의 마왕과 같았다.
한없이 두렵고 두려운 존재.
그리고 곧이어.
“아······!”
두 존재가, 격돌했다.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비록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지라도.
빌헬름은 분명히 존재했고, 존재하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제법이군, 빌헬름.”
촤아아아앙!
··· 검을 휘두르며.
검과 검을 맞댈 때마다 느껴지는 진동에 영혼까지 흔들린다.
란돌프의 공격은 영역 자체를 파훼하는 힘.
신비를 파괴하고, 존재를 파괴시킨다.
놈은 파괴자다.
실로 그러한 이름에 어울리는 자였다.
“‘신의 섬’에서조차도 나를 이토록 흥분시킨 자는 없었거늘!”
란돌프 역시 놀라워하는 중이었다.
신의 섬에서 맞붙은 심연의 주인들과 태고의 존재들은 하나같이 강했다.
그러나 자신을 만족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다들 나사가 하나 빠진 듯이 결여되어 있었으므로.
그나마 ‘천축의 고래’나 ‘태어나지 않은 존재’, ‘가라앉은 황제’는 제법 싸울 맛이 났다.
특히 ‘가라앉은 황제’는 그중에서도 가장 재밌는 놈이었다.
작은 벌레와 같은 것들을 이용해서 진리에 다다른 자신을 위협했으니까.
태어나지 않은 존재는 어떠했나.
솔직히 놀랐다.
그런 불균형한 것과 싸운 경험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천축의 고래는 별반 싸울 의지가 없는 듯 보여서 재미는 없었지만, 그녀의 힘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다 기대 이하였다.
반면에 이놈은, 빌헬름은 어떤가.
‘아무 것도 아닌 주제에 그들보다 낫군.’
빌헬름이야말로 결격품이다.
모든 게 결여된 ‘아무것도 아닌 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자신을 흥분시키고 있었다.
어찌하여?
‘완벽하다.’
바로 검이다.
빌헬름에겐 오로지 검뿐이었다.
하여, 그의 검엔 흠이 없다.
빌헬름의 검은 자신이 바라는 이상에 가까웠다.
완전무결한 정의를 담고 있었다.
그렇기에 탐이 난다.
하지만 이상했다.
‘이토록 완전하면서도 처음보는 종류의 검술이라니.’
진리의 문.
그 안에는 모든 완성품들이 존재한다.
저 정도의 완성도라면 진리의 문에 있을 법 하건만, 란돌프는 그 안에서도 빌헬름의 검술을 본 적이 없다.
‘하물며 이건 검술이라기보단··· 어떠한 종류의 현상에 더 가깝다.’
흠 없이 완전하나, 이건 검술이 아니다.
검술의 탈을 쓴 무언가다.
저 검술 자체에 무언가가 담겨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가당키나 한가?
검술이라는 기술에 다른 어떠한 게 담길 수 있다니.
평범한 게 담겨있다면 이처럼 놀라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챙! 채에엥!
검을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그러한 생각은 확신이 되었다.
‘··· 내가 밀리고 있다고?’
······ 조금씩 자신이 밀리고 있었으니까.
믿기지가 않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신의 섬에서부터 감히 대적자가 없던 자신이다.
그야말로 최강이라는 단어에 걸맞은 완전체인 것이다.
그런데 밀리고 있다.
빌헬름이 휘두르는 검.
그 검술에 의해.
‘검술 자체에 밀리고 있는 거다. 나라는 존재를 넘어서는 무언가에 의해!’
이건, 어떠한 위대한 격이 빌헬름과 만나 검술 자체로 승화한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위대한 격이라면 그 역시 진리의 문에 포함되어 있어야 함이다.
본 순간 자신이 알아차렸어야만 했다.
한데, 모르겠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알 수가 없다.
이제 막 진리의 문을 나온 그라면 모든 걸 알수 있을진대.
물론, 딱 한 가지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는 했다.
자신이 알 수 없고, 그곳에 없는 것이라면.
순간 란돌프의 두 눈이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넌······ 누구에게서 그 검술을 배운 것이냐?”
······ 왠지 알 것 같았으니까.
저건 빌헬름이 만든 검술이 아니다.
빌헬름이 만든 검술일 수가 없다.
아무 것도 아닌 그가, 영원토록 검술만을 연마한다고 한들, 이러한 검에 다다를 수는 없다.
“어디서, 어떻게? ‘그’를 만난 것이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잘못 생각했다.
만일 지금 자신의 예상이 맞는다면.
이놈은, 빌헬름은 아무것도 아닌 자가 아니다.
곧이어, 빌헬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벨룽의 숲에서.”
······ 그곳에서, 만났노라고.
나벨룽의 숲에 갇힌 한 달.
오로지 살기 위해 검만을 휘둘렀던 그 때에.
스스로를 깨닫고 몸부림 치던 그 당시에.
‘먼 옛날 천상을 위협했던, 그리하여 없는 것이 되어버린 자.’
진정으로 아무 것도 아닌 자.
······ 그를 만났노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