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95화 (295/317)

빌헬름 VS 란돌프

영원의 란돌프. 

규격 할 수 없는 종류의 ‘신비’는 개미왕 페르몬의 육체를 강제로 점거했다. 

동시에 탈피하며 나온 그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있었다. 

“··· 흑왕의 은혜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되는군.” 

개미왕의 살가죽을 찢어발기며 튀어나온 ‘그’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곤 짧게 감탄을 흘렸다. 

이전과는 비교조차 불가할 정도로 완성되어 있었으니까. 

정교하게 빚어놓은 조각처럼 아름다운 육체. 

새까만 피부와 고밀도로 집약된 근육의 파노라마! 

“페르몬···? 부활한 거냐?” 

그를 바라보는 락투샤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영원의 란돌프에게 당해 지능을 잃고 퇴화한 줄 알았건만. 

허나 페르몬은 고개를 저었다. 

“락투샤. 부활이 아니다. ‘진화’한 거다.” 

그것도 종의 규격을 넘어서는 진화다. 

그야말로 규격 외. 

이 신비는, ‘영원의 란돌프’는 감히 흑왕의 신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완전함을 담고 있었으니. 

힘이 흘러넘친다. 

지금이라면 칼날용신에게도 이길 수 있을 것만 같다. 

뿐만이 아니다. 

자신을 진화시킨 이 ‘신비’의 가장 무서운 점은. 

하여, 페르몬은 자신있게 말했다. 

“흑왕은 이제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 

“······ 페르몬.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흑왕께서 베푸신 은혜를 잊었나?” 

“은혜? 벌레들을 모아놓고 모두 죽고 죽이게 한 은혜 말이냐?” 

락투샤의 말을 페르몬이 가볍게 되받았다. 

그것은 은혜라기보단 원수에 가까웠으므로. 

또한, 흑왕의 은혜는 동시에 족쇄에 가까웠다. 

한순간 신비를 잃은 페르몬이 지능을 잃고 퇴화했듯이. 

흑왕은 자신이 건넨 은혜를 마음대로 거둬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락투샤. 너의 굴레를 내가 벗겨주마.” 

페르몬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뭣······?!” 

락투샤의 동공이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흑왕의 은혜가, 히든 특성이 담긴 ‘신비’가. 

··· 한순간 파괴된 탓이다. 

“아, 안 돼······!” 

락투샤는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파괴된 신비는 히든 특성 ‘손재주’를 담고 있었다. 

손재주는 무엇을 익히든 쉽고 빠르게 달성토록 해주며, 모든 경지의 지수를 한단계 높여준다. 

락투샤가 소드마스터라 불리우게 된 결정적인 역할을 한 히든 특성이었다. 

그것이 고작 손짓 한 번에 파괴된 것이다.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닌가? 진정한 자유를 되찾게 해주었거늘.” 

하지만 페르몬은 락투샤의 반응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흑왕의 지배로부터 완전무결하게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모처럼의 자유를 얻었건만, 좋아하진 못할망정 왜 몸서리를 치는가. 

이윽고 락투샤의 두 눈에 살기가 서렸다. 

“네놈이, 감히······!” 

화아아악! 

락투샤의 흑천검에서 검강이 치솟아올랐다. 

더 이상 페르몬의 만행을 두고볼 수는 없었으므로. 

흑왕의 은혜를 입었으면서, 흑왕을 적대하는 자. 

이는 무조건적으로 멸해야할 존재다. 

콰칭! 

검과 손이 닿는다. 

손쉽게 잘라버리리라 판단했으나, 잘리지 않는다. 

‘경지가 올랐다···?’ 

한 번의 합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개미왕 페르몬. 

단순히 육체와 마력만 강해진 게 아니다. 

경지마저 올랐다. 

검강을 발현하지 않았음에도 검강을 쳐냈다. 

육신 자체에 마력을 입히고 휘두룰 줄 아는 것이다. 

허나 흑천검에 입힌 검강을 맨손으로 받아낼 줄이야! 

그것도 그냥 받아낸 게 아니라, 검신을 그대로 잡아버렸다. 

“······!” 

검을 움직일 수 없다. 

검을 낚아챈 페르몬의 힘이 너무나도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멍청한 락투샤여. 흑왕이 전한 힘은 진정한 히든 특성이 아니다.” 

··· 이젠 알 것 같았다. 

지금 페르몬 자신이 얻은 히든 특성이야말로, 진정한 왕의 힘임을. 

이것은 모든 것의 정점에 있는 신비다. 

한 존재의 증명이자, 진화이고, 초월인 히든 특성이었다. 

애당초, ‘히든 특성’이란 무엇인가. 

“히든 특성은 자신을 증명해낸 자들이 이룩해낸 경지의 이름.” 

종(種)의 정점에 선. 

그리하여 완성된 존재만이, 그 경지에 걸맞은 ‘이름’을 얻을 수 있다. 

당연히 그러한 ‘이름’을 얻으려거든 필사의 노력과 천운, 그리고 재능이 필요하다. 

허나 그들이 일반적으로 얻는 히든 특성은 날것이다. 

그보다 상위의 격을 쌓아 완성해야만 비로소 제대로된 ‘히든 특성’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영원의 란돌프처럼. 

그리고 ‘영원의 란돌프’는 그러한 이름들 중에서도 능히 규격 외의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흑왕에게 부여받은 것으로는 결코 ‘극의’를 이룰 수 없다, 락투샤여.” 

흑왕의 은혜. 

그로 인해 발생한 히든 특성은 날것 그대로 끝이다. 

그 이상 진화할 수 없다. 

격을 넘어 한계를 돌파하는 건 불가능하다. 

강해질 순 있지만, ‘극의’를 보는 건 포기해야만 한다. 

이미 한계가 정해진 힘만을 부여받은 탓이다. 

고로. 

“너는 내게 고마워해야하는 게다. ‘극의’를 볼 가능성이 생겼으니까. 신비는 파괴되었으나 이미 한 번 맛보았으니 더 빠르게 달성할 수 있을 테지.” 

“······!” 

신비가 파괴되어 손재주를 잃었다지만. 

다시 얻으면 되는 것이다. 

도리어 본인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다면 그때야말로 끝을 보는 게 가능하리라. 

이미 한 번 경험해봤으니 다시 얻는 건 더 쉬울 터. 

“물론, 다음이 있다면 말이다.” 

콰직! 

흑천검이 부러진다. 

그리고. 

“크흡······!!” 

락투샤의 가슴팍을 페르몬의 손이 꿰뚫었다. 

두근! 두근! 

팔팔하게 뛰는 심장. 

어그적! 어그적! 

페르몬은 강탈한 락투샤의 심장을 그대로 씹어먹었다. 

“페··· 르몬······!” 

“역시 오크의 심장은 맛이없군.” 

퉤! 

반쯤 먹다 만 심장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털썩! 

동시에 락투샤의 신형이 바닥에 쓰러졌다. 

즉사. 

심장을 잃은 락투샤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어 페르몬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락투샤의 심장은 맛이 없었지만. 

빌헬름의 심장은 무척이나 맛있어보였으므로. 

‘내 먹이다.’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은 자신의 사냥감이다. 

탈피를 막 끝낸 자신의 영양을 보충해줄 먹이들. 

무려 수십만이나 모여있으니 이곳을 벗어나면 더 이상 자신을 적대할 수 있는 존재는 존재치 않으리라! 

그중에서도 빌헬름에게선 단연코 가장 달콤한 냄새가 났다. 

놈은 먹이다. 

다른 먹이들과 마찬가지로. 

스슥! 

페르몬의 신형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빌헬름의 지척으로 발걸음하자, 빌헬름이 검을 움직였다. 

‘보인다.’ 

보인다. 그의 검로가. 

동시에 느껴진다. 

그의 검이 어떠한 작용을 하는지.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기술. 

마력 자체가 기름처럼 미끄럽다. 

그렇다면 반대로 빌헬름의 힘을 역이용하면 어떨까? 

다른 이의 힘을 역이용할 줄은 알지만, 자신의 힘을 역이용하려는 존재는 쉬이 경험하지 못했을 터. 

지금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페르몬은 마력의 성질을 변환시켰다. 

더없이 미끄럽고 매끄럽게. 

이 상태에서 부딪힌다면 당연히 서로 빗나가리라. 

빗나간 공격은 엉뚱한 곳을 타격하기 마련이다. 

푸욱! 

‘역시!’ 

페르몬의 손이 빌헬름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예상대로였다. 

무적으로 보이던 이놈의 약점! 

‘빗나감을 전제로 한 무작위 타격. 그게 약점이구나!’ 

바로 부드러움이었다. 

서로 빗나감을 전제로한 공격을 하며 체력을 소모시킨다. 

무작위로 타격하여 재생력의 싸움으로 간다면, 페르몬은 패배할 자신이 없었다. 

이제 남은건 빌헬름의 공격이 어느 지점을 타격하느냐. 

완전히 빗나가거나, 혹은 엉뚱한 곳을 공격할 것이다. 

······ 허나. 

‘음?’ 

페르몬은 자신의 목이 허공으로 띄워진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뭐지? 

처음부터 빌헬름은 자신의 목을 노렸다. 

하지만, 빗나가야 정상이다. 

심장을 노렸으나 가슴팍을 꿰뚫은 것처럼. 

그런데 빗나가지 않았다. 

툭! 

털썩! 

페르몬의 신체가 시체가 되어 바닥을 나뒹굴자. 

“다음.” 

빌헬름이 말했다. 

그와 동시에. 

《페이즈 3, ‘영원의 란돌프’가 ‘빌헬름’에 의해 토벌되었습니다.》 

마침내 토벌되었다는 메시지. 

모두를 공포로 몰아넣은 페이즈 3가 막을 내렸다. 

그러자 사람들은 몸을 떨며 입을 열었다. 

“끄, 끝인가?” 

“설마 페이즈가 더 있는 건 아니겠지?” 

“으으으!” 

제발 이게 끝이길. 

모두가 빌고 빌었으나. 

《챔피언, ‘영원의 신 란돌프’가 등장합니다.》 

《탑을 오르십시오.》 

《30층에 도달하면 챔피언의 권좌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모든 과정의 끝. 

투신의 탑을 정복한 챔피언이자. 

완전체인 진짜 란돌프가 남아있었다. 

빌헬름은 탑을 올랐다. 

26층. 

그곳에 등장한 건 ‘천마’였다. 

하지만 천마는 란돌프와 관련되어 분열된 존재가 아니다. 

흉의 신, 그리고 재의 신이 만들어놓은 합작이었다. 

더 이상 빌헬름이 탑을 오르지 못하게끔. 

그리하여 30층에 도달하지 못하게 방해하고자 만들어낸 괴물. 

“다음.” 

하지만 빌헬름은 그조차도 이겨냈다. 

왼쪽 어깨에 큰 부상을 입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27층. 

기사단이 등장했다. 

빌헬름을 따르던 원탁의 기사단. 

“어째서 저희를 버리셨습니까?” 

“단장님······!” 

그들은 빌헬름을 원망하며 검을 휘둘렀다. 

허나 허상이다. 

빌헬름의 죄책감을 유도하려는 허튼 수작. 

빌헬름은 그들을 베었다. 

옆구리에서 피가 철철 흘렀지만 이 역시 개의치 않았다. 

28층. 

마왕이 등장했다. 

자신이 죽였던, 하지만 패했던. 

“이제 너는 잊혀지리라. 영원토록. 패배의 역사를 끌어안은 채.” 

빌헬름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가 바라는 건 명예, 혹은 승리의 역사와는 거리가 멀었으므로. 

잊혀져도 좋다. 

사라져도 괜찮다. 

단 한 명. 

개 같은 신에게 자신을 제대로 선보일 수만 있다면. 

놈과의 내기에서 승리하고, 놈에게 복수할 수만 있다면. 

오른쪽 귀가 날아가고, 온몸이 너덜너덜해졌지만. 

빌헬름은 계속해서 탑을 올랐다. 

29층. 

흉의 신, 그리고 재의 신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왜 포기하지 않는 거냐, 까악?” 

“네가 탑을 오른들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을진대, 까악?” 

변하는 건 없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빌헬름은 검을 들었다. 

신들을 상대로. 

앞을 막아선다면, 설령 신이라 할지라도 베어버리리. 

“너는 오를 수 없다, 까악.” 

“이곳은 너에게 허락된 장소가 아니다, 까악.” 

곧이어 그들의 앞으로 그림자가 솟아올랐다. 

끔찍한 흉조, 그리고 카라스! 

두 존재의 그림자를 그들이 직접 조종하기 시작했다. 

오랜 격돌이었다. 

하지만 결국 끝에 남은 건 빌헬름이었다. 

비록 온 몸이 너덜너덜해졌으나. 

“그 상태로 올라봤자 이기지 못할 것이다, 까악.” 

“패한 순간 너는 영원토록 소멸한다, 까악.” 

“영광된 아이야. 왜 다른 이의 시련에 혼을 불사르느냐, 까악?” 

“너의 혼을 바칠만한 일이 아니다, 까악.” 

30층에 오르지 못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은 걱정하고 있었다. 

빌헬름의 행위. 

그의 도전은 영혼을 불사르는 짓이다. 

패배한다면 기껏 여신이 남겨둔 영혼의 불씨는 소멸할 것이고, 승리한다 해도 그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전혀 없다. 

하여 스스로 포기하도록 방해했으나. 

“··· 다음.” 

빌헬름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챔피언, ‘영원의 신 란돌프’에게 ‘빌헬름’이 도전합니다.》 

······ 30층. 

그곳에서 ‘란돌프’를 마주한 순간. 

‘으음.’ 

빌헬름의 신형이 휘청거렸다. 

남은 시간은 기껏해야 한시간 남짓. 

시련도 이제 끝을 보이고 있건만. 

‘한계로군.’ 

몸이 더는 움직이지 않는다. 

도리어 온전치 않은 상태로 여기까지 온 게 대단한 일이지만 빌헬름은 아쉬웠다. 

자신의 몸이었다면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을텐데. 

허나,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숨이 멈추는 그 순간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때였다. 

《‘박현명’님이 ‘빌헬름’을 응원합니다.》 

······ 개 같은 신이 자신을 응원하기 시작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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