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신
최강(最强).
검을 휘두르는 사내에게 그보다 더 달콤한 단어가 또 어디있을까.
-라이가. 너는 인세에 다시 없을 천재다.
-제가 더 강해질 수 있을까요?
-암. 너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내가 될 거다!
라이가가 눈을 뜬 곳은 노예시장이었다.
전쟁 고아가 향할 장소는 그 외엔 없었으므로.
이곳저곳에 팔리며 전전하다가 전대 팔가의 주인을 만났다.
이후 라이가는 최강이 되고자 단 하루도 빠짐없이 검을 휘둘렀고 마침내 제국제일검으로 인정받았다.
라이가는 자신의 가치를 알아준 그를 위해, 제국을 위해 헌신했다.
심연의 탐사라는, 목숨이 몇 개가 있어도 부족한 일을 그는 숱하게 해내곤 했으니까.
-더러운 피.
-그래봤자 전쟁고아 아니야?
-어딜 근본도 없는 놈이······.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는 것도 끔찍해!
그러나 라이가를 인정하지 않는 무리도 있었다.
하여 ‘성혈’이 필요한 것이다.
황제가 직접 성혈을 하사하거든 누구도 그의 출신을 책잡지 못할테니.
그게 아니라면······ 압도적인 무력이.
감히 대적조차 불가능한 힘만이 그들을 굴복하게 하리라.
그러니 그는 최강이어야만 한다.
‘내가 바라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나는 언제나 최강이어야만 한다.’
오직 재능만 있다면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세상.
출신성분에 관계없이 노력만으로도 성과를 이룰 수 있는 세상!
모두가 그것을 인정하고, 인정 받는 이상적인 제국.
라이가는 제국을 그렇게 바꾸고 싶었다.
그가 ‘최강’이라는 단어에 유난히 집착하는 이유다.
“오문(五門), 개방.”
······ 설령 죽는 한이 있더라도.
슈우우우욱!
붉은 기운이 솟구친다.
송골송골 피부로 올라와 맺힌 피가 증발하며, 마력과 함께 산화하는 과정.
이 상태에서 라이가의 신체능력과 마력의 농도는 수십배 증가한다.
그야말로 폭발적인 힘을 얻는 대신 죽음을 담보로 하는 필살의 기술이었다.
허나, 오문 개방의 유일한 약점은 지속성.
길어야 수분.
상대가 억지로 시간을 끌거나, 그 안에 결판을 내지 못한다면 자신의 패배다.
“도망쳐도 이해하마. 지금의 나는 최강이니.”
“······.”
스릉.
빌헬름이 검을 들었다.
그를 본 라이가의 입가엔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도망치지 않는다.
정면에서 전부를 받아내겠다는 호기다.
‘역시.’
예상했다.
절대로 피하지 않으리라고.
검을 부딪히고 라이가는 빌헬름을 어느정도 알게 됐다.
빌헬름이 자신을 파악한 것처럼, 그도 빌헬름을 파악할 수 있게 된 게다.
‘우리 둘 다 뒤틀려있다.’
빌헬름은 뒤틀려있다.
정상이 아니다.
하지만 그건 라이가도 마찬가지였다.
하여 동질감을 느꼈다.
비정상과 비정상의 대결.
하지만 둘 다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을 전제로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성실을 겸비한 괴물들.
이런 기분을 또 언제 맛보았던가.
더 강한 적을 상대할 때마다 느꼈던 쾌감.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대적할 존재는 사라졌다.
그리고 그럼에도 이런 전율과 쾌감은 처음이었다.
··· 그래, 처음이다.
처음으로 라이가는 자신의 모든 걸 보여주고 싶은 상대를 만났다.
그러니 부디.
‘서로 실망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
-······.
-······.
본격적인 피날레가 시작되자, 플레이어 톡은 끊임없이 점만을 눌러대고 있었다.
다른 내용을 적을 정신이 없었다.
다른 내용 자체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종류의 충격을 받고 있었다.
-저게...
-최강과 최강의 싸움...
-미친. 입이 안 다물어지네......
빌헬름과 라이가.
그 외에도 수십만의 인파가 함께 있는 자리.
하지만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다.
양쪽의 진영은 그저 전율하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둘의 대결은 주변을 모조리 초토화시키고 있었으니.
둘의 제대로된 무력을 모두가 처음 목도하고 있었던 탓이다.
-누가 빌헬름이 라이가보다 약하다고 했냐?
그 순간 든 의문 하나.
빌헬름이 얼마나 강한지에 대한 논의는 항상 있어왔다.
어떤 이는 감히 비교 대상이 없는 최강자라 하였으나.
또 어떤 이는 생각보다 고평가 받고 있다며 허풍선이라 주장했다.
빌헬름이 제대로 검을 휘두르는 걸 본 이가 거의 없는 탓이다.
오직 시련과 승부할 때만 빌헬름은 전력을 다했으므로.
-8영웅회 애들 때문에 과소평가 된 감이 있지
-대원정 실패를 그렇게 선전했으니까
하지만 그뿐만은 아니었다.
처음, 판게니아에 빙의한 플레이어들은 의도적으로 정보를 은폐하고 독점했다.
때로는 왜곡하며 수많은 공작을 해왔다.
정보는 힘이었고, 독점할수록 더 많은 이윤을 취할 수 있었으니까.
당연히 그 과정에서 빌헬름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팬텀으로 추정되는 그는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홈페이지에 풀었고, 수많은 이들이 그 정보로 말미암아 벽을 허물었다.
그래서다.
8영웅회를 비롯한 몇몇 힘있는 플레이어들이 은연중 ‘팬텀 찾기’와 ‘빌헬름 방해하기’를 컨텐츠로 내세운 것은.
그리고 빌헬름의 업적을 축소하며 과소평가하게 만들었다.
누구도 그를 우상하지 않도록.
하지만 그러한 공작들도 현실 앞에, 진실 앞에 무력했다.
-빌헬름!
-빌헬름!
모두가 하나되어 빌헬름의 이름을 외쳤다.
이제는 알겠으니까.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 누가 최강인지.
*
전쟁이었다.
둘로 구성된 대결은 가히 대규모 전쟁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둘의 싸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순간.
지금, 모두의 눈앞에서.
“······.”
“······.”
빌헬름의 검이-
라이가를, 무너트렸다.
투욱.
바닥을 향해 던져진 검.
제국 최강이라 일컬어지며 모두를 압도하였던.
도저히 대적자가 없을 것만 같던 라이가가 스스로 검을 바닥에 던졌다.
전신을 웃돌던 피처럼 붉은 기운은 어느덧 사그라졌다.
모든걸 바쳐 전부를 보였으나 끝내 닿지 못한 것이다.
“······ 어이가 없군.”
라이가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터질 듯 부풀어올랐던 몸은 쪼그라들고, 목소리는 천길로 갈라지며 쇄약해졌다.
그는 지금 죽음의 문턱 앞에 있었다.
그럼에도, 닿지 못했다.
··· 이러한 괴물을 라이가는 일찍이 만나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하나만 물으마. 마왕은 그대보다 강한가?”
마왕의 무력에 대해.
저런 빌헬름도 패배시킨 괴물이 존재했으므로.
대원정의 실패, 그리고 빌헬름을 죽인 장본인이 아직 이 세상에 남아있지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최강에게 패한 게 아니게 된다.
하여 긴장한 채 묻자.
빌헬름이 답했다.
“약하다.”
“······!”
마왕이 그보다 약하다고?
그렇다면 왜 패배한 것인가.
혹, 발란왕국에서 발표한 것처럼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는지.
그래도 다행이다.
라이가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허나.”
하지만 더욱 중요한 사실이 있다는 듯.
빌헬름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곧이어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비해야할 것이다. 앞으로의 마왕은 이전과는 다를 터이니.”
······ 무슨 말일까.
빌헬름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충분하다.
라이가는 표정을 굳힌 채 가슴을 폈다.
“팔가 기사단의 단장이자 제국제일검이라 불리우던 나, 라이가가.”
··· 비록 자신의 꿈은 이루지 못했으나.
이런 비틀린 놈을 만나서, 최후를 함께해서 다행이다.
어쩌면 이런 날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뛰어넘는 압도적인 천재를 만나, 패배를 인정하게 되는 날을.
어깨가 가벼워진 기분.
도리어 홀가분했다.
이런 놈이라면 분명히 바꿀 수 있을 테니까.
“빌헬름을 최강으로 인정한다.”
······ 지금의 빌어먹을 세상을.
*
라이가가 패배선언을 함과 동시에.
털썩-!
그는 쓰러졌다.
빠르게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중이다.
스아아아아!
곧이어 거대한 절망의 그림자가 전역에 펼쳐졌다.
그림자는 이내 빌헬름과 라이가의 앞에 멈춰섰다.
빌헬름은 그런 절망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 착한 아이로구나.”
인자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림자 속에서 울고있는 루카리아를 빌헬름은 알아차린 것이다.
빌헬름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모두를 지키려고 한 것이었느냐?”
뻗은 손이 그림자에 닿았다.
동시에 수많은 검은 손들이 움찔대며 멈춰섰다.
절망을 피워내어 수십만의 인파를 지배한 것.
이곳까지 따라온 것도 라이가로부터 모두를 지키기 위함이었음을 그는 눈치챈 것이다.
빌헬름은 루카리아의 그림자를 토닥이듯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다. 너를 울게한 나쁜 아저씨는 내가 쓰러트렸으니. 이제 이 앞은 내게 맡겨다오.”
스으으으으······.
순간, 검은손이 연기가 되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탑 전체를 감싸던 연기가 거짓말처럼 증발해간다.
“역시 착한 아이로구나.”
빌헬름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모두를 절망케하고, 전율케 하였던 그림자.
하지만 빌헬름에겐 귀여운 투정처럼 보일 따름이었다.
“뭐, 뭐야?”
“여긴 어디야?”
동시에 지배되었던 이들이 하나, 둘 정신을 차렸다.
족히 오십만에 이르는 인파가 당황해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저건······.”
“저건 또 뭐야?”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영원의 란돌프’가 탈피를 완료했습니다.》
쩌적!
개미의 표피가 갈라지며 무언가가 튀어나온다.
영원의 란돌프!
개 같은 신이 자신보다도 더욱 큰 공을 들여 키웠다는 존재.
어디 한 번 이겨보라며 도발했던 그 존재가 자신의 앞에 있다.
‘비틀려있군.’
또한, 저 영원의 란돌프라는 녀석도 상당히 비틀려 있는 듯싶었다.
하지만, 익숙하다.
같은 아픔을 공유했다는 생각 때문일까?
그도 아니라면 자신처럼 미치도록 뒤틀려있어서인지.
빌헬름은 숨을 가다듬으며 검을 쥐었다.
‘지켜보아라. 개 같은 신이여.’
*
어둠 속이었다.
너무나도 어두워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곳.
늪에 빠진 듯 허우적대지만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나는 그곳에서 저 멀리 있는 빌헬름을 지켜보았다.
‘이런 느낌이었나.’
육체를 조종당한다는 게.
빌헬름이 내게 조종 당할 때의 느낌을 이제는 알겠다.
한없이 무력한 이 상태에서 빌헬름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무력감만이 아니다.
끊임없이 몰려드는 불쾌한 기분들.
모든걸 포기하게끔 만드는, 그리하여 다 잊어버리고 싶게끔 만드는 우물 같은 곳이었다.
‘내가 사용하던 천지개벽과는 궤가 달라.’
그래서 나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가만히 빌헬름의 일대기를 지켜보고자 하였다.
그의 움직임을 보고, 깨달으며, 더 단단한 기반을 만들고자 했다.
“······ 대단하군.”
하지만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단순히 기억속에 존재하던 검술과는 격이 달랐다.
빌헬름이 온전히 사용하는 빌헬름의 검술은.
직접 이렇게 본 것은 처음이다.
하여, 알겠다.
이곳에서도 그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또 다 했는지를.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었음에도 포기하지 않은 건 바로 나 때문이다.
닿지 않는 목소리를 내게 닿게 하기 위해 부던하게 애를 쓴 것이다.
그럼에도 알아주지 않았으니 개 같은 신이라 불리며 욕을 먹을 수밖에.
“한 번 날뛰어봐라. 제대로 봐줄 테니.”
나는 집중했다.
그의 움직임 하나, 숨결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서.
온전하게 ‘빌헬름’이라는 존재를 마주하기 위해서.
서로가 처음으로 서로를 마주할 수 있는 순간.
······ 이제야 비로소 빌헬름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