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개벽
부드러움은 강한 것을 이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강함에는 한계가 없지만 부드러움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강한 것을 유지하는 것보다 부드러움을 유지하는데 더 많은 노력과 수고가 들어간다.
빌헬름의 검술이 그랬다.
영역을 지배한 뒤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작용.
‘절대적인 강함은 존재하나, 절대적인 부드러움은 존재치 않는다.’
때리고 부수면 닳는다.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건 작은 힘으로 큰 힘을 상대하는 최상승의 무공이 맞지만, 그 한 번의 반사를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집중력을 사용한다.
또한 비정상적으로 관절을 사용하기에 계속 싸우다보면 결국 무엇이 되었든 닳아 없어지기 마련이었다.
반면 자신은 어떤가.
한계가 없는 강함이다.
때리면 때릴수록 더욱 강해진다.
승리를 확신하는 이유다.
그 외에도.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지 못하는 거다.’
고작 한 합을 겨뤘으나 그 정도면 충분하다.
더 큰 부상을 입힐 수 있는 상황임에도 빌헬름은 그의 가죽을 조금 베어냈을 뿐이다.
상대가 들어오는 면적 의외의 움직임 자체를 자제하고 있다는 방증이리라.
한 마디로.
‘맞받아치는 것. 오로지 그 하나에 모든 신경을 몰고 있다.’
놈은 움직이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랬다.
오로지 들어오는 공격만을 되받아칠 따름.
처음부터 자신의 모든걸 쏟아넣은 산샤는 스스로 죽음을 자처한 셈이다.
한데, 왜일까.
어째서 놈은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그저 ‘받아치기’만 하고 있는 걸까?
“몸을 움직이는게 익숙하지 않은건가?”
“······.”
빌헬름은 답하지 않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박현명의 육체와 온전한 황금률 10개. 그리고 카라스의 신격 등을 담아 움직일 수 있는 10시간을 확보했다지만.
‘부족하군.’
남의 몸을 움직이는 건 제법 어려운 일이었다.
천하의 빌헬름에게도 말이다.
하물며 사용하던 장비 하나 없는 상황.
이건 제대로된 부활이 아니었다.
모든 게 부족하고,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
황금률로 말미암아 빌헬름의 모습으로 변신하긴 했다지만 결국 이 몸조차 자신의 몸이 아닌 게다.
그래서일까.
무엇보다도, 부족했다.
육체가 의지를 따라가지 못한다.
미묘한 신장의 차이, 근육과 신경의 전달속도 등이.
그의 초정밀한 검술을 구사하기에는 기대에 못미치는 것이다.
‘아니, 핑계일 뿐이다.’
허나 빌헬름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 모든건 핑계에 불과하다고.
개 같은 신은 자신의 몸을 마치 본인처럼 움직였다.
단 한번의 실수 없이 오롯이 행하여 수많은 업적을 일궈냈다.
그가 할 수 있다면 자신도 할 수 있다.
개 같은 신의 도움 따윈 없어도 된다.
“적응할 시간을 주마. 나도 그대가 최상의 상태로 싸우길 바라니.”
“필요 없다.”
라이가의 제안을 빌헬름은 단칼에 거절했다.
이 정도의 역경은 역경조차 아니었으므로.
이어 빌헬름은 고개를 들어, 라이가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제국제일검.’
그에 대한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심연을 탐사해 제국의 영토를 넓힌 일등공신이자 최강자로 언제나 자신과 함께 언급되고는 했으니.
그도, 자신도, 이 싸움을 지켜보는 모두가 궁금할 것이다.
누가 더 강한가.
누가 최강인가?
“그럼······ 어쩔 수 없군.”
휘익!
쿠르르르르!
라이가의 전신에 깃든 붉은 기운이 마치 활화산처럼 폭발하듯 튀겨댄다.
“이문(二門) 개방.”
일문은 패도적인 힘을.
이문은 빛과 같은 속도를 낳는다.
허나,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후우우우우웅!
“삼문(三門) 개방.”
활화산처럼 치솟던 기운들이 다시 라이가의 몸에 깃든다.
삼문의 개방은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육체를 만든다.
이 상태의 라이가는 무적에 가깝다.
심연의 주인들마저도 무차별하게 학살할 수 있는 상태였다.
쫘아악!
몸을 접자 근육이 압축되는 듯한 소리와 함께.
피이잉-!
찰나지간 라이가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조차도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쩌엉!
라이가의 검이 빌헬름의 자세를 흩트렸다.
라이가의 검은 고속으로 진동하며 단번에 빌헬름의 목을 노렸다.
시이이익!
검의 면과 면이 맞닿으며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었다.
빌헬름은 이 힘 역시 받아치려고 하나, 초진동으로 움직이는 검을 받아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설령 받아친다고 한들 라이가의 육체를 타격하는 건 더욱이 불가하다.
도리어 자신의 체력만 닳겠지.
허나 받아내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다.
삼문을 개방한 자신의 검을 이 정도로 받아낸 자는 여태껏 없었다.
애초에 자신의 속도를 감당하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라이가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어디까지 버틸 수 있나 보자꾸나, 빌헬름.’
*
-뭐가 보여?
-아니... 아무것도 안 보여
-빌헬름이 밀리고 있는 것 같은데?
-라이가가 진짜 최강이었다고?
커뮤니티는 다시 한 번 난리가 났다.
기사왕과 기사왕의 대결.
도저히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빌헬름이 밀리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러자 몇몇 옹호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빌헬름이 밀리는 게 당연하지. 라이가는 최상의 상태인 반면에 빌헬름은 자기가 착용하던 장비가 하나도 없잖아
-아, 맞다. 전부 분해돼서 황금률 상점에 전시됐었지?
-유일급 모으면 적용되는 컬렉션 효과를 하나도 못 받고 있을 텐데. 약할 수밖에 없음
-그럼 라이가는 유일급을 몇 개나 착용한 거야?
-보이고 알려진 것만 대충 5개? 당연히 더 많을 듯
-와 템빨 살벌하네
-템빨은 어쩔 수 없지
-템빨이 저렇게 차이나는데도 막상막하인 게 오히려 더 대단한 거 아니냐?
유일등급 장비의 유무는 전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하물며 그 차이가 압도적이라면 순수한 실력만으로는 뒤집는데 한계가 있었다.
-뭐가 됐든 나는 빌헬름 응원한다
-다 말리는 대원정 혼자 꾸리고 돌격한 상남자 빌헬름
-솔직히 판게니아에서 빌헬름만큼이나 명예로운 사람 난 본 적 없음
-팬텀 부캐라고 생각했는데... 빌헬름이야말로 팬텀교의 근간 아니었나?
모두가 궁금해하는 존재, 팬텀.
그 팬텀이 전설이 된 중심에는 모두 ‘빌헬름’이 있었다.
만약 대원정이 성공했다면 영원토록 화자되는 전설이 되었으리라.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마계의 원정을 주장하고 실행한 건 빌헬름뿐이었다.
마계의 위험성을 인지하며 용기있게 나선 자.
죽음을 무릅쓰고 돌진했던 그에게 많은 플레이어들이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 될 줄 알았다면.......
-팬텀 찾기, 빌헬름 방해하기를 컨텐츠처럼 여기지 않았을텐데
-미안하다. 빌헬름
지구로 괴물이 소환되고 마족들이 침공해올 줄 알았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짓이다.
팬텀의 부캐로 보이는 캐릭터를 찾아서 죽인다던가.
혹은 빌헬름의 시련을 방해한다던가 하는 짓 따위는 추호도 하지 않았으리라.
도리어 그의 용기있는 도전을 함께하려 했겠지.
하지만 대원정 당시만 하더라도 그들에게 판게니아는 특이한 게임 그 이상의 감각이 아니었다.
모든건 대원정이 끝난 직후 시작되었으니.
-빌헬름! 꼭 이겨라!
-지지마!
그렇게 하나, 둘, 사람들은 빌헬름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
축복이 모인다.
가호가 쌓인다.
조금씩, 조금씩, 밀려오던 물길은 이내 거센 헤일이 되었다.
《‘오늘밤뭐해’님이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50m)’으로 ‘빌헬름’을 응원합니다.》
《‘뚜스딴스’님이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1h)’으로 ‘빌헬름’을 응원합니다.》
《‘나오늘절에안갈래’님이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3h)’으로 ‘빌헬름’을 공양합니다.》
《‘팝핀현준’님이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21m)’으로 ‘빌헬름’을 응원합니다.》
《‘야수의심장’님이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2h)’으로 ‘빌헬름’을 응원합니다.》
······.
······.
끊임없이 도달하는 메시지들.
순식간에 1,000시간 분량의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이 모였다.
그렇게 모이는 시간만큼이나.
《‘영혼의 기억’에 따라 장비의 형상이 잠시간 소환됩니다.》
《1,000시간의 황금률 조각이 모여 ‘빛의 길’을 형상화합니다.》
화아아악!
검의 형상이 바뀐다.
빛의 길.
마왕의 심장에 꽂아넣었던, 빌헬름 자신의 검으로.
잠시나마 황금률의 조각으로 형상을 빚어놓은 것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적어도 탑을 오를 10시간 정도는 유지될 터이니.
‘이제 좀 움직일만하군.’
손에 익은 검을 쥐자 마침내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진다.
몸을 제어하는게 더욱 쉬워지고 있다.
의지와 육체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이다.
물론, 이 현상이 어쩌면 단순한 축복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저들은 온전하게 자신을, ‘빌헬름’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된 검술을 펼칠 수 있을 것 같다.
‘천.’
천지개벽의 천(天).
영역을 지배하여 상대를 제어하는 검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는 곧 상대를 읽고 상대가 되는 것과 다름이 없는 능력이다.
‘지.’
천지개벽의 지(地).
모든 공격을 공명하여 파훼하는 검술.
하지만 이 역시 그저 공격을 무효화하는 게 전부인 검술은 아니었다.
상대가 되고, 상대의 모든 것과 공명하며 이해하는 것.
그게 골자인 기술이다.
‘개.’
천지개벽의 개(開).
세상을 여는 검.
상대의 공간과 모든 걸 넘어서서 마침내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 권능이다.
이 단계부터는 주변 모든 만물과 소통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신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벽.’
다시금, 세상을 창조한다.
*
‘빛의 길’이 형상화한 순간부터.
빌헬름의 움직임이, 기세가, 그를 포함한 모든 것들이 달라졌다.
하지만 가장 확고하게 변한 것은.
‘검술.’
검을 움직이는 길.
허나, 검로는 그대로일 터인데.
검에 담긴 위세가 달라졌다.
검의 격이, 빌헬름의 존재 전부가.
‘······ 뭐냐, 이건.’
틈은 사라지고, 어떠한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
읽히고 있다.
전부 읽히고 있는 것이다.
밝은 대낯에 발가벗겨진 기분이 이러할까.
마치 미래를 보듯이 자신이 움직일 경로를 모조리 예측해낸다.
하지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빌헬름은 정확히 자신과 공명하고 있었다.
‘미친놈인가?’
절로 욕지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상대와 공명한다는 건, 상대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 치 물길도 모르는 게 세상이랬다.
다른 인간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파악하는 건 신조차도 불가능하다.
자신을 포기하고, 모든 정신을 항상 주변을 이해하는데 사용하는 게 아니라면······.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초월적인 정신력이 소모되는 일.
오로지 ‘정신’으로만 구성된 존재가 아닌 이상에야!
육체가 없는, 혹은 바위처럼 스스로 몸을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그저 평생을 주변을 이해하고 파악하며 살아온 존재가 아닌 이상에야 시도 자체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고로, 이놈은 정상이 아니다.
이놈은······.
“끄으윽!”
압도된다.
압도되고 있다.
제국제일검이라 불리는 자신이.
역대 팔가의 전인들 중 가장 뛰어나다 평가받던 그가.
검을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벽을 느끼고 있었다.
있을 수 없다.
평생을 검만을 갈고 닦으며 살아온 자신의 검술을, 어찌하여 남이 이해하고 파훼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게 가능하다면 그건 천재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자신 이상의 노력을 해온 자만이 가능할 터.
하지만 그만한 노력을 해왔다면 스스로에게 애착이 있어야 정상이었다.
다른 것과 완전하고 완벽하게 공명하는 일 따윈 절대로 할 수 없는 게 맞다.
··· 비틀려 있다.
이놈은, 빌헬름은 심각할 정도로 비틀려 있었다.
‘사문 개방.’
결국, 라이가는 네 번째 문을 열었다.
여기서부턴 자칫 잘못하면 자멸할만큼 위험한 단계.
신조차 죽일 수 있는 힘!
상단전을 개방하면 신력과 함께 비로소 모든 현상을 읽는 관찰력을 지니게 된다.
하지만.
‘내가 이길 수······ 없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둠이다.
이미 그는 빌헬름에게 잡아먹힌 뒤였다.
전혀 눈치못챈 사이에, 그저 검을 부딪히던 그 찰나와 같은 순간에.
허나 아직 끝이 아니다.
마지막 문이 남았다.
오문.
그것을 열면, 비록 생명은 대폭 단축되겠지만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라이가는 내심 고개를 저었다.
온몸이 떨린다.
라이가는 고개를 올려, 자신을 가로막은 거대한 벽을 바라보았다.
이 검술은······.
빌헬름의 검은.
아직 전부를 펼쳐낸 게 아니다.
놈의 전부가 담겨있는 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의 검을 뛰어넘었다.’
······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을 듯했다.
이자벨라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누가 더 강하느냐 물었을 때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이유를 이제는 알겠다.
기사왕 빌헬름.
이놈이야말로 최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