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81화 (281/317)

란돌프 일대기

힌트. 

답을 쉽게 풀 수 있게끔 도와주는 요소. 

탑을 오른 모두가 기대했다. 

칼날용신의 약점을 ‘힌트’로 말미암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적어도 유추는 가능하리라고. 

하지만 나타난 힌트는 그들의 기대를 정면에서 박살내버렸다. 

“힌트가 란돌프야?” 

“아니, 그야, 탑의 정상에 란돌프가 있으니까 관계가 있기는 하겠지.” 

“사흉 바알, 이번엔 칼날용신? 둘 다 란돌프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야?”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저 ‘란돌프’라는 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하여, 탑을 올랐던 사람들은 정확한 유추를 위해 힌트를 유포했다. 

그렇게 몇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세계 전역의 사람들이 힌트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지구와 판게니아를 불문하고. 

“자, 타임라인대로 정리해보자.” 

“그러니까 칼날용신이 언제 나타났지?” 

“이세라가 침략했을 때. 처음부터 나타난 건 아니야. 갑자기 한국에 용맥이 생기더니 그곳을 지키라고 월드 메시지가 떴어.” 

“그 다음은?” 

“지키고 있는 와중에 유니온과 ‘검은 알의 사신님’이 나타났지. 마왕군은 워프로 강제 이동됐고.” 

“그리고 우리는 용맥이 완성될 때까지 마왕군과 격전을 벌였다······ 이세라가 본래 존재했던 지구의 용신 ‘루카리아’를 흡수했는데도 칼날용신이 이세라를 격퇴했지.” 

“문제는 폭주했다는 거야. 그리고 폭주한 칼날용신을 무언가가 제압하고 용맥으로 데려갔어.” 

“맞아. 그게 아마 ‘검은 알의 신’일 거다.” 

“‘검은 알의 신’은 사흉 바알을 죽인 장본인이기도 하지.” 

“그 ‘검은 알의 신’이 란돌프라면?” 

이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적어도 지금껏 나타난 바알과 칼날용신은 ‘검은 알의 신’과 깊게 관여되어 있다. 

물론 ‘검은 알의 신’이 ‘란돌프’라는 확신은 없었다. 

그러나 탑의 챔피언이자, 현재 토벌의 대상이 된 라스트 보스 란돌프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제야 사람들의 눈에 이채가 뗬다. 

“설마 지금 나타나고 있는 ‘중간보스’들이······ 란돌프가 격퇴하거나, 깊게 관여한 것들이라는 건가?” 

“그럴 수도 있지.” 

“우리가 지금 ‘란돌프 일대기’를 체험하고 있는 거라고?” 

란돌프의 일대기! 

탑 자체가 그의 일대기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 둘, 의견이 모아졌다. 

하지만 의아한 부분들도 분명히 있었다. 

“갑자기 크람델에 있는 ‘신비의 탑’의 시련이 나타난건 어떻게 설명하지? 그것도 란돌프와 관계된 시련일까?” 

“백왕 산하에 새롭게 나타난 오주력 란돌프. 이름이 같아서 설마 하기는 했지만······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 오주력 란돌프가 신비의 관을 끝까지 돌파한 최초의 까마귀라더군.” 

“오주력, 신비의 탑, 흉조, 바알, 칼날용신. ······이게 전부 란돌프. 아니, ‘팬텀’과 관계가 있다고?” 

“그게 전부겠어? 더 있겠지.”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팬텀은 신이겠군.” 

팬텀은 신이다. 

그런 결론밖에 나질 않는다. 

인간이라면 저것들 전부와 관계되어있을 수 없는 탓이다. 

하물며 팬텀은 등장한지 몇 년이 지나지도 않았다. 

그 사이에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압도적인 무력과, 신화를 이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추측들이 전부 사실일 경우. 

“대체······ 란돌프는 그럼 얼마나 강한 거야?” 

꿀꺽! 

사람들은 침을 삼켰다. 

가늠이 안 됐으니까. 

그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으니까. 

란돌프는 단순히 별 다섯 개를 거머쥔 자가 아니었다. 

동시에 그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서 탑이 무너지면 어떻게 되는거지?” 

“저주가 방출된다. 탑의 모든 것들이 튀어나온다는 뜻이지.” 

“설마 란돌프도?” 

“그래, 란돌프도. 하지만 우리가 아는 란돌프는 아니겠지.” 

“······ 란돌프가 탑의 저주에 잠식되어 있다는 말인가?” 

“아아. 그러니 탑을 뛰쳐나오기 전에 저주를 정화해야만 해. 탑을 오르고, 페이즈를 높여서 란돌프에게 닿아야만 뭐가 됐든 답이 나올 거다.” 

“닿았는데, 해결이 안 되면?” 

“······ 그럼 진짜로 토벌해야겠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최후의 상황까지 염두에 뒀다. 

당연히 멈춰있을 수는 없는 노릇. 

거대 길드와 연합들이 앞다투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해나갔다. 

“란돌프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 조사한 것들, 전부 가져와!” 

“다른 길드랑도 연락을 취하고! 특히 한국에 있는 영웅연합! 그들이라면 무언가를 더 알고 있을 거다!” 

“박태우와 연락이 안 된다고? 그럼 직접 가서라도 만나봐!” 

“젠장할. 내가 직접 간다!” 

빗발치는 연락. 

하지만 한국 영웅연합의 수장인 박태우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 

툭, 툭. 

손가락으로 책상을 치며 그는 곰곰이 상념에 잠겨있었다. 

‘허드슨은 답을 알고 있다.’ 

박태우는 이 모든 힌트와 추론의 끝에, 허드슨이 있다고 생각했다. 

용맥이 나타날 당시. 

용신 루카리아를 데려오라며 자신과 마주했던 허드슨. 

본래 오주력 란돌프가 주인으로 있었던 유적도시 룬델라를 그 대가로 넘겨주지 않았던가. 

‘허드슨의 지구 신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그것이다. 

허드슨은 강림체다. 

지구인의 모습이 아닌, 황금률의 조각을 사용해 변신한 모습. 

아무도 허드슨의 진짜 정체를 모른다. 

그리고 그건 란돌프 역시 마찬가지. 

‘허드슨은 란돌프에 대해 알고 있다. 어쩌면 지구의 신분까지도 알고 있을지도 몰라.’ 

한때 소문이 돌기는 했다. 

영국의 새로 나타난 ‘올리버’가 란돌프라는 소문이. 

하지만 그 또한 실체를 확인한 사람은 없었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가. 

지금 갖고 있는 정보로는 파악이 불가하다. 

허드슨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그 외에도 한 가지 짚이는 건 있었다. 

‘칼날용신의 약점에 대한 힌트가 란돌프라면······.’ 

이세라가 침략했을 당시. 

다크스타를 비롯한 모두가 도망칠 때, 박태우만은 끝까지 남았다. 

끝까지 남아서 싸웠다. 

마침내 칼날용신이 폭주하며 이세라를 죽였을 때도 그는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본 것이다. 

물론 직접 본 건 아니지만, 루카리아를 데려온 장본인이라서일까. 

아니면 자신의 클래스 ‘용령사’ 때문일지도 모른다. 

··· 느껴진 것이다. 

폭주한 칼날용신의 가슴팍에서 번지던 고통이. 

“란돌프······ 자체가 약점이다.” 

칼날용신이 ‘검은 알의 신’을 공격했고, 그 고통이 공유되었음을. 

오직 박태우만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걸 말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박태우는 또한 알고 있었다. 

“란돌프를 만나려면 칼날용신을 토벌해야하고, 칼날용신을 토벌하려면 란돌프를 만나야만 한다······.” 

힌트 그 자체가 답이었다. 

그야말로 오픈북 시험인 셈이다. 

그런데 답을 알려줬는데, 정작 풀 수가 없다. 

이게 말이 되나? 

답을 아는데도 풀 수 없는 문제라니! 

그래서다. 

알려줘봤자 소용이 없다는 건. 

“하아······.” 

박태우는 깊은 시름에 빠졌다. 

라이가. 

그는 탑을 올랐다. 

20층을 돌파하고, 21층에 도달했다. 

“······.” 

하지만 그의 표정은 좀처럼 펴질 줄을 몰랐다. 

‘사흉 바알이 소환되고 토벌됐다.’ 

도저히 연유를 알 수가 없는 까닭이다. 

왜 바알이 투신의 탑에 소환됐나.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다. 

소환된 바알은 진짜니까. 

“구현계······.” 

달그락. 

달그락. 

눈앞에 놓인 수많은 해골병사들. 

허나, 개의치 않는다. 

그보단 지금 이곳 탑 자체가 더욱 흥미를 끌었다. 

구현계(具現界). 

심연의 영역에서도 몇 번 경험해보았던, 특이한 현상을 일으키는 영역. 

상상이나 생각 따위를 구현시켜놓은 독특한 세계. 

그게 바로 구현계다. 

구현계에서 형상화된 것들은 모두 진짜다. 

진짜와 다를게 없다. 

하지만 그렇게 소환되고 형상화된 것들은 모두 구현계를 다스리는 ‘주인’의 한계를 넘어서진 못한다. 

고로, 지금 탑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란돌프’의 한계 안에 있다는 뜻이다. 

더불어 ‘란돌프’가 구체화할 수 있을 정도로 직접 경험해본 것들이라는 의미였다. 

단순한 망상만으로는 구현계에서도 실체화 시키는데 한계가 있으니까. 

말인 즉슨. 

“이곳은 란돌프의 꿈속이로군.” 

란돌프가 겪은 일을 되돌아보는 꿈의 내부다. 

그렇다면 당연한 의문이 생긴다. 

란돌프. 

놈은 누구인가? 

누구기에, 이처럼 다양하고 방대한 경험을 실체화했는가. 

간혹 ‘죄인’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화자되는 인물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바알을 소환한 게 못내 마음에 걸린다. 

최근 그 역시 바알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황금 염소.’ 

그의 정통이 사신으로 소환해낸 사흉 바알. 

황금염소는 당당하게 사신교의 간부로 자리매김했다. 

허나, 사라졌다. 

자신과 함께 심연에 들어갔다가 자취를 감추었다. 

어쩌면, 자신의 ‘사라진 기억’과도 깊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는 그 녀석이. 

그래서 궁금한 것이다. 

‘란돌프와 황금 염소. 둘은 무슨 관계지?’ 

란돌프는 죄인이다. 

플레이어다. 

하지만 황금 염소는 아니다. 

사신교가 간부를 들이는데 죄인 하나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무능하진 않다. 

무엇보다 ‘대천사’가 있는 이상, 궁 내부에서 죄인이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그러니··· 둘이 동일인물은 아닐 터. 

그보단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는지. 

‘란돌프. 누구냐, 넌.’ 

······ 한 번, 알아봐야겠다. 

《‘박현명’이 투신의 탑 21층을 클리어했습니다!》 

《‘박현명’이 투신의 탑 22층을 클리어했습니다!》 

눈앞에 느닷없이 나타난 메시지. 

라이가의 표정이 더욱 굳었다. 

‘동시에 클리어했다?’ 

21층을 클리어하자마자, 22층이 클리어됐다. 

라이가조차도 이 현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란돌프가 누구인지, 황금 염소는 어디 있는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프건만. 

박현명이라. 

순간 아드리움의 ‘현’이 떠올랐으나, 아무리 그래도 동레벨 규격의 계속해서 강해지는 해골병사들 1만 구를 상대하는 일이다. 

그리고 동시에 두 개의 층을 클리어하려면 어떻게해야하지? 

수많은 경험을 한 라이가도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변칙이자 이적. 

라이가의 미간에 생긴 골이 더욱 깊어졌다. 

쿵! 

쿠르르릉! 

쾅! 쾅! 콰아아앙! 

“······.” 

나는 가만히 눈앞에서 도미노처럼 쓰러져가는 해골병사들을 바라봤다. 

신장만 10m에 다다를 만큼 거대하기 짝이 없는 거인의 해골병사들. 

놈들이 손을 휘두르고 빛의 화살을 쏘아내면 도저히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거인 해골병사들이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맨 앞의 해골병사가 쓰러지자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도미노마냥 주르르륵 넘어지고 부서진다. 

22층에 도달한 즉시 벌어진 현상. 

‘여기도 그대로군.’ 

거인의 특성을 지닌 해골병사들의 레벨은 ‘4’였다. 

저 거대한 몸을 유지하기 위한 능력치로는 턱없이 부족한 레벨. 

저 비대한 거체를 유지하고 움직이기엔 턱없이 부족했겠지. 

앞에서 쓰러지는 거체를 받아내고 버텨낼 힘은 더더욱 없을 테니. 

쾅! 쾅! 쾅! 콰아아앙! 

-이건 사기다, 까악! 

그 기가막힌 광경을 지켜보던 재의 신이 쓰게 한 마디 뱉어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사기라고. 

하지만 현실이다. 

내 레벨이 낮은걸 어떡하나. 

앞서 몇만 구의 해골병사들을 사냥해도, 내 레벨은 여전히 ‘4’였다. 

‘극도로 레벨이 안 오르는 체질이라 미안하군.’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보너스 스테이지. 

하지만 보상은 여전히 달콤했다. 

《‘재의 시련(4)’를 극복했습니다!》 

《보상으로 유일급 신비 ‘재의 왕’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획득하지 않을시, 다음 시련으로 넘어갑니다.》 

《갓포인트(GP) 15,000점이 수여됩니다.》 

《갓포인트를 사용해 ‘재의 상급 까마귀 소환술’의 레벨을 10으로 격상시킵니다.》 

《‘재의 상급 까마귀 소환술’의 레벨이 최대치(10Lv)에 도달했습니다.》 

《‘재의 상급 까마귀 소환술’ 스킬이 ‘재앙의 까마귀 소환술(1Lv)’로 초월합니다.》 

가만히 지켜보던 흉의 신조차도 한 마디 내뱉었다. 

-너무 퍼주는 거 아닌가? 

-운도 실력이다. 결국 우리 아이가 대단해서 일어난 일이지, 까악! 

-방금 사기라고 하지 않았나? 

-닥쳐라, 흉한 놈아. 난 그런 말 한 적 없다, 까악! 

-그나저나 상상이상의 속도로군. 나도 슬슬 ‘다른 쪽’을 준비해야겠어. 

-크하하! 무엇을 내놓든 우리 ‘재의 아이’를 상대할 순 없노라! 

-대단한 자신감이로군. 까악. 

흉의 신이 껄껄대며 웃었다. 

과연 그 자신감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지켜보겠다는 듯. 

고오오오오. 

그 찰나. 

눈앞에, 거대한 무언가가 소환됐다. 

“······.” 

그것을 본 나는 잠시 할 말을 잃고말았다. 

해골병사가 아니다. 

그러한 시련과는 비교가 안 된다. 

눈 앞에 나타난 거구의 괴물. 

그건 어딘가 익숙했지만, 무척이나 살벌하기 짝이 없는 진짜 괴물 중에 괴물이었으니까.

《‘재의 시련(5)’, ‘끔찍한 흉조’가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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