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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78화 (278/317)

공략불가

플레이어라면 모두가 궁금해하던 화두(話頭)가 하나 있다. 

-란돌프는 얼마나 강할까? 

그건 바로 란돌프의 무력(武力)에 관한 궁금증이다. 

등장한 직후부터 끊임없이 명예의 전당 1위를 탈환한 인물. 

란돌프는 일반적인 사고로는 달성하는게 불가능할 정도의 신화와 점수를 숱하게 이룩하며 이름을 알렸으나. 

정작 그 무력에 관해서는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팬텀은 원래부터 그랬다. 

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분분했다. 

버그성 플레이를 지향해서, 남과 어울리는 걸 싫어해서, 인간이 아니라서, 운영자라서 등등······. 

하지만 정작 제대로 밝혀진 이유는 없다. 

판게니아에서 팬텀은 유일무이한 존재다. 

그가 작성한 수많은 ‘공략’은 아직까지도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진리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뿐만인가. 

팬텀이 키운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레벨 대비 강함’의 정도가 달랐다. 

단순한 컨트롤 차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육성법부터가 남다른 탓이다. 

단 하나의 캐릭터도 허투루 키우지 않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팬텀신’이라고 불리겠나. 

하여, 여태껏 팬텀을 자처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이번엔 진짜다. 

-진짜 ‘팬텀’이다! 

란돌프는 팬텀의 캐릭터다. 

팬텀이 판게니아로 소환되며 빙의한 캐릭터가 란돌프였다. 

당연히 가장 지고지순하게, 열정을 다해 키웠을 터. 

어째서 란돌프가 ‘토벌’의 대상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면. 

-이건 기회다. 

-란돌프의 강함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 

란돌프는 얼마나 강할까? 

그 궁금증을 풀, 절호의 기회였다. 

사흉 바알! 

그 거대하기 짝이없는 괴수를 마주한 순간. 

황금률의 마법사 유니온은 심장이 멎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 페이즈 1? 란돌프가 아니라 바알이라고?’ 

상대를 확인하고자 빠르게 도전했건만 정작 나온 대상은 란돌프가 아니었다. 

란돌프를 상대하기 위해선 바알을 꺾어야만 한다. 

이세라와 함께 지구를 침략했던 유니온. 

그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래, 꼭꼭 숨어 있거라. 내가 곧 가마.’ 

유니온은 자신이 있었다. 

비록 정통에게 속고, 이세라와의 대결에서 무참하게 패배했지만, 이후 절치부심하여 원래의 힘 대부분을 회복해냈다. 

‘감히 내 경험치 물약을 훔쳐가다니······!’ 

그때만 생각하면 이가 갈렸다. 

자신이 약한 게 아니다. 

경험치를 저장해둔 경험치물약을 전부 도둑당해 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약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이세라와의 대결에서 그토록 허망하게 패배하지도 않았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증명해주마. 나의 힘을.’ 

원래의 힘을 되찾은 유니온은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증명하고자 하였다. 

란돌프를 꺾어서, 투신의 탑 챔피언을 홀로 토벌하여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었다. 

투신의 탑은 지구에서도 오를 수 있으니까. 

-구오오오오오-! 

순간 사방으로 강력한 저주가 퍼진다. 

사흉 바알. 

어지간한 이들이라면 바알을 눈앞에 둔것만으로도 피를 토하고 죽을 터이나. 

“한때 지고했던 가련한 짐승이여.” 

휘이이이익! 

유니온은 황금률로 빛나는 지팡이를 들었다. 

“죽어라.” 

그 순간. 

쿠릉! 

콰콰콰콰콰콰쾅! 

사방에서 소환된 ‘운석’이 바알을 향해 떨어졌다. 

《‘황금률의 마법사 유니온’이 패배했습니다.》 

《페이즈 1, ‘사흉(四凶) 바알’의 남은 체력 85.7%》 

《오랜시간 도전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사흉 바알’의 체력이 회복됩니다.》 

《투신의 탑을 오르십시오.》 

《오른 층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높은 층에 오를 수록 ‘챔피언 란돌프’의 공략이 더욱 쉬워집니다.》 

《15일 내로 ‘챔피언 란돌프’를 토벌하지 못할시 ‘투신의 탑’이 지상으로 쓰러집니다.》 

유니온의 패배. 

사람들 대부분이 예상한 대로의 결과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주 소득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혼자서 거의 15%나 깎았네? 

-이세라랑 싸울때는 세상 좆밥이더니 

-그러게. 그라시아가 데리고 다닐만 한데? 

-지금 소환된 바알이 약한 걸수도 있지 

-음, 나도 그렇게 생각함 

혼자서 15%가량의 체력을 깎을 정도라면, 해볼만 할지도 모른다고. 

그때였다. 

플레이어 톡을 기준으로, 란돌프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의문이 하나, 둘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란돌프가 어떻게 사흉 바알을 소환한 거지? 

-챔피언 란돌프면 팬텀이 맞잖아. 

-팬텀이 아무리 신화적인 시련을 해결했대도 바알은 이미 소멸했지 않나? 

-오주력 란돌프가 그때 나타난 ‘흉조’가 아니냐는 얘기가 있기는 했었지 

-잘 생각해봐. ‘제주도 소실 사건’때 나타난 ‘검은 알의 신’ 말이야 

-검은 알의 신이 왜? 

-그러고보니까 바알이 흉조를 잡아먹고, 바알의 배가 갈라지면서 ‘검은 알’이 나타났다고 했지? 

-맞아. 그리고 ‘검은 알의 사신’님께서 남은 사람들 전부를 워프로 돌려보내주셨어 

-그럼 란돌프가 그 ‘검은 알의 신’이라는 거야? 

-바알의 배를 가르고 나타난? 그래서 소환도 할 수 있는 건가? 

-검은 알의 신은 제주도 사람들이 신처럼 여기는 존재인데 

-만약 이게 사실이면... 

-와, 나 지금 소름 돋음 

란돌프가 ‘검은 알의 신’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진다. 

그렇다면 동시에 란돌프는 ‘끔찍한 흉조’이기도 하다는 말이었다. 

심연에 갇힌 사람들은 끔찍한 흉조가 바알을 몰아붙이는 걸 모두 보았다. 

그 기기괴괴하기 짝이없는 저주의 힘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그곳에 있던 전원을 얼어붙게 만들었으니. 

그러할진대, 그게 란돌프라니! 

제주도민이 신처럼 따르는 자. 

심지어 이세라가 침략했을 때 ‘검은 알의 사신’은 다시 한 번 나타나 활약했다. 

-검은 알의 사신이 따르는 게 란돌프라면 앞뒤가 맞네 

-심연에 있던 사신이 왜 지구에 나타난건지도 말이야 

-설마 ‘검은 알의 사신’도 보스로 등장하는 거임? 

-페이즈 1이잖아. 그럼 2나 3도 있을 수 있다는 거니까 정말 그럴지도? 

-심연미궁 때 검성 라일리가 페이즈 몇까지 있었지? 

-페이즈 5... 였지 아마? 

-하, 시바. 미치겠네. 나 제주도 사람인데 도저히 탑 못 오르겠다 

-나도. 염치가 있지... 

-그리고 만약 검은 알의 사신이 란돌프를 따르는 게 확실하면, 영웅회가 주장했던 ‘란돌프는 지구일에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도 정면에서 반박됨 

-사실 누구보다도 더 지구를 지키는데 진심이었던 거지, 란돌프는... 아니, 팬텀은 

분위기가 바뀐다. 

단순히 란돌프의 정체가 놀라워서만은 아니다. 

란돌프의 헌신이 하나, 둘 와닿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태껏 란돌프는 혼자서 잘 먹고 잘 산다는 이미지가 없진 않았다. 

이 또한 영웅회의 발언들 탓이었다. 

영웅회는 란돌프와 팬텀의 이미지를 망치는데 진심으로 총력을 다했으니까. 

그들이 내건 슬로건은 실로 간단했다. 

‘팬텀은 혼자다. 절대로 남을 생각하지도, 의식하지도 않는다.’ 

‘지구가 망하든, 말든,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메인 퀘스트를 민 것 말고 그가 한 게 대체 뭔가? 있기는 한가?’ 

신비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이기적임을 부각하는 선전들. 

하지만 전부 틀렸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혼자서 묵묵히 모두를 위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을 구원하고자 진심으로 총력을 다했다. 

모습을 드러내고, 인기를 얻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들을 하고 있었다. 

마왕군의 첫 침략인 망자의 왕을 홀로 공략한 것부터. 

바알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고, 두 번째 침략인 이세라와의 대결에서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팬텀신... 

-나... 팬텀교... 입단할게 

-오늘부터 1일 하자... 

-민초단... 탈퇴한다... 

-그동안 욕해서 미안해... 팬텀신... 

-이게 다 영웅회... 아니다. 내가 곧이곧대로 믿은 잘못이지... 

숙연해진 게시판의 분위기. 

하지만 마냥 숙연해하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오우거 로드’가 ‘챔피언 란돌프’에게 도전합니다.》 

《페이즈 1, ‘사흉(四凶) 바알’이 출현합니다.》 

《‘바알’의 남은 체력 81%》 

《‘레드 드래곤’이 ‘챔피언 란돌프’에게 도전합니다.》 

《페이즈 1, ‘사흉(四凶) 바알’이 출현합니다.》 

《‘바알’의 남은 체력 75%》 

《‘뱀파이어 로드’가 ‘챔피언 란돌프’에게 도전합니다.》 

《페이즈 1, ‘사흉(四凶) 바알’이 출현합니다.》 

《‘바알’의 남은 체력 69%》 

······. 

판게니아에 존재하는 로드(Lord) 급의 괴물들. 

그중에는 드래곤이나 뱀파이어 로드마저 섞여 있었다. 

마치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계속해서 쉬지 않고 도전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바알의 체력은 더 이상 낮아지지 않았다. 

-남은 체력 54%? 

-끝난건가? 

-러쉬야 뭐야? 

-와, 기겁했네. 도시 하나는 가볍게 찜쪄먹을 괴물들이 왜 이렇게 많아? 

흔히 말하는 네임드. 

만약 발견했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쳐야만 하는 괴물들이 이토록 많이 출현할 줄이야. 

하지만 괴물들도 힘의 격차를 느꼈는지 도전이 뜸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더 이상 이렇다 할 도전자가 나타나지 않아서 안심하고 있던 그때였다. 

《‘소드마스터 락투샤’가 ‘챔피언 란돌프’에게 도전합니다.》 

《페이즈 1, ‘사흉(四凶) 바알’이 출현합니다.》 

······. 

···. 

《‘소드마스터 락투샤’가 바알을 토벌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한순간에 바알이 토벌됐다. 

그것도 단 한 명에게. 

남은 체력을 순식간에 깎아먹은 것이다. 

플레이어 톡 게시판은 다시금 난리가 났다. 

-????? 

-미친, 뭐야? 

-54%를 한방에 깎았다고? 

-락투샤가 누군데? 

-흑왕 측근 중 하나인데... 이상하네 락투샤가 바알을 이길 정도로 강하진 않을텐데? 

-호들갑 떨지말자. 아직 페이즈 1일 뿐이잖아. 다음 페이즈도 있겠지 

-페이즈 2는 뭐야? 뭐가 나타나는 거야? 

모두의 관심이 모아졌다. 

페이즈 1에서 나타난 게 무려 사흉 바알이다. 

페이즈 2는 보다 강한 개체가 나타날 터. 

플레이어만이 아닌, 탑에 오르는 모든 이들이 락투샤의 다음 도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후욱······.” 

락투샤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떨리는 양손을 한 차례 털어냈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으니까. 

사흉 바알. 

놈의 강함은 예전 그대로였다. 

수련자의 산에서 굴욕을 당했던 그 기억은 아직도 락투샤의 머리에 남아있었다. 

‘바알은 그대로지만, 나는 더 강해졌지.’ 

허나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바알은 그대로인 반면에, 자신은 강해졌기 때문이다.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흑왕에게 검과 은혜를 더 받고, 개미왕 페로몬과의 대련으로 벽을 넘었다. 

그럼에도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역시 사흉은 사흉인가? 

비록 껍데기뿐인 사흉이라 할지언정, 그 강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절망이 더 강하군.’ 

확실한건 바알보단 절망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사흉 절망은 껍데기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 

“다음은 뭐냐?” 

페이즈 1. 

어쨌든 이제 첫 번째 시련을 통과했을 뿐이다. 

끝까지 도달해, 바알의 파편을 회수하는 게 그의 목적.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래도 바알과 같은 수준이라면, 가능성은 있다. 

그 찰나. 

지이이이익! 

곧이어 그의 앞으로 황금색의 워프가 열리며, 누군가가 나타났다. 

척. 

발길을 내디디며 나타난 여자. 

인간의 형태이나, 인간은 아니다. 

순간 락투샤의 사고가 정지했다. 

‘이게 무슨······.’ 

정지할 수밖에 없었다. 

바알과는 차원이 다르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바알은 그저 체력이 높고 힘이 강한 무식한 괴물일 뿐이었다. 

준비 여하에 따라서 충분히 공략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반면에 눈앞의 여자는······. 

《페이즈 2, ‘칼날용신’이 출현합니다.》 

······ 약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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