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77화 (277/317)

까악~!

-까마귀가 되겠다고? 

-크하하하하하! 아이고, 배야! 

흉의 신, 그리고 재의 신이 한껏 비웃었다. 

그들의 힘을 갈망하는 경우는 많지만 스스로 까마귀가 되겠다고 나서는 짐승은 그들도 처음 본 탓이다. 

“설마 어려운 일인가? 가장 위대하다는 까마귀의 신도 불가능한?” 

나는 진정으로 실망했다는 듯이 말했다. 

억겁의 세월 동안 저 두 신이 싸우고 있다. 

그 이유가 정말 ‘누가 더 강하냐’를 판가름하기 위해서라면 ‘가장 위대한 신’이라는 말에 반응하리라 판단한 것이다. 

-내가 가장 위대한 신인 건 맞다. 

-내가 가장 위대한 신인 건 맞다. 

-따라 하지 마라. 

-따라 하지 마라. 

-이 자식이! 

-이 자식이! 

너나 할 것 없이 동시에 둘은 수긍했다. 

그리곤 한참이나 말싸움을 하더니. 

슈우우웅. 

머지않아 눈앞에 두 개의 구(球)가 떠올랐다. 

새까만 구슬과 피처럼 붉은 구슬. 

이게 무엇인지 본 순간 알았다. 

‘핵이다.’ 

이건 괴물의 핵이다. 

핵을 먹고 변신을 하라는 의미였다. 

내가 ‘대식가’의 히든특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걸 저 두 신은 알아차리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일전에 내가 흡수했던 ‘시체 까마귀의 핵’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두 구슬은, 일반적인 종의 핵이 아니다. 

-내 기술을 배우고 싶다면 흉의 일족이 되거라. 

-내 기술을 배우고 싶다면 재의 일족이 되거라. 

······ 흉과 재의 일족이 지닌 핵이었다. 

시체 까마귀와는 비교가 안 되는 최상위의 종. 

탑을 관리하는 관리자의 일족이 되라는 말이었다. 

물론, 강해지기만 한다면 단순 관리자의 차원을 넘어서는 막강한 ‘무력’을 지닐 수 있을 것이었다. 

예컨대. 

‘나는 이미 한 번 끔찍한 흉조를 겪어봤지.’ 

······ ‘끔찍한 흉조’처럼. 

바알을 죽이기 직전까지 몰아붙였던 그 끔찍한 형상의 힘을 나는 한 번 경험해봤다. 

그저 형상과 힘을 빌리는 것이었음에도 그 정도였을진대, 제대로 기술을 갈고 닦아 익히면 얼마나 엄청날지 상상도 안 갈 지경이다. 

재의 일족인 ‘투신 카라스’는 또 어떤가. 

한 번, 란돌프로 덤볐다가 패배한 전적이 있다. 

비록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강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무엇을 고민하느냐? 흉의 힘은 세상을 압도한다. 

-헛소리. 재의 힘이야말로 세계를 전율케 만든다. 

오직 하나만을 택해라. 

둘 다를 얻을 수는 없다. 

흉과 재. 

이제는 선택할 시간이었다. 

“나는······.” 

공지사항을 접한 즉시. 

올리버는 모든 일정을 때려치우고 ‘로그인’했다. 

그리하여 ‘허드슨’의 모습으로 판게니아에 나타난 그는 즉시 미궁도시로 향했다. 

“여러분도 모두 인지하셨겠지만, 상황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습니다.” 

미궁도시엔 이미 란돌프를 따르는 다수의 사람들이 집결해 있었다. 

허드슨은 한차례 그들을 둘러봤다. 

이자벨라, 세렝게티, 세아 성녀, 아이작, 발테. 

이세라, 루카리아, 그리고 엘프 아우릴까지. 

어지간한 왕국 하나쯤은 가볍게 전복시킬 수 있는 최강의 조합.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돌처럼 굳어있었다. 

허드슨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말했다. 

“현재 ‘투신의 탑’ 최상층에 있는 ‘란돌프’는 우리가 아는 그분이 맞습니다.” 

이곳 미궁도시의 주인이자, 그들이 절대적으로 맹신하며 따르는 로드(Lord) 란돌프. 

그가 지금 투신의 탑 30층에 있다. 

하지만 이자벨라는 이해가 도저히 되지 않았다. 

“분명히······ 란돌프 님은 나와 함께 발란 왕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챔피언의 자격으로 강제소환된 것이겠지요.” 

“그런데 왜 란돌프 님께서 ‘도전’이 아닌 ‘토벌’의 대상이 된 거지?” 

본래라면 ‘챔피언’의 자격으로 탑에 오르는 이들의 ‘도전’을 받아줘야 정상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토벌’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예전, 심연미궁이 떠오르며 ‘육각의 영웅 라일리’를 토벌했을 때처럼 말이다. 

그라시아를 비롯한 수많은 플레이어와 제국, 그리고 사주력 중 하나인 사왕마저 동원되었지만 실패했던 일. 

결국 란돌프가 토벌에 성공했으나, 그랬던 그가 왜 이번엔 반대로 토벌의 대상이 된 건지 아무리 고민해봐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 보통 모두에게 고지되는 ‘토벌’은 ‘막고 있는 존재’들에게 해당됩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쉽게 설명해봐라.” 

세렝게티가 묻자 허드슨이 나름대로의 결론을 입에 담았다. 

“심연 미궁에서 마주했던 구제국 육각의 영웅 라일리와, 균열의 탑 1층의 군주 솔바렌. 이 둘은 모두에게 고지된 ‘토벌의 대상’이었습니다.” 

플레이어만이 아닌 판게니아 전원이 알고 있는 토벌의 대상들. 

플레이어는 ‘공지사항’을 통해, 판게니아의 주민들은 온갖 방법을 통해 전해지는 시련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란돌프. 

플레이어와 판게니아의 주민 모두에게 그의 토벌이 ‘고지’되었다. 

“그래서?” 

“무슨 공통점이 있는거지?” 

허드슨은 자신의 생각을 풀어서 설명했다. 

“라일리는 이곳 심연미궁이 대륙으로 편입되는 걸 막고 있었습니다. 군주 솔바렌은 종족마다 설정된 ‘한계’를 막고 있었지요. 하지만, 그뿐만이 아닙니다.” 

“······?” 

“터지기 직전. 그들은 토벌하지 않으면 엄청난 위험을 대륙 전역에 안겨주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지고룡 라일리는 폭주하고 있었다. 

솔바렌은? 

오랜 시간 잠들어있던 그가 균열의 탑에서 깨어났다. 

1층의 정복에 실패했다면, 그는 다시 ‘부활’했을 것이다. 

군주라는 이름처럼 대륙 정복을 시작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란돌프에게 허드슨이 전해들은 이야기는 그러했다. 

세렝게티가 재차 물었다. 

“그럼 란돌프 님께서 폭주하기 직전의 상태란 말이냐?” 

“아마도······ 원인은 모르겠습니다만, 토벌의 보상이 ‘다섯개의 별’인 걸 보면 보통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섯개의 별? 설마?” 

“예. 란돌프 님이 소유하신 별들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별들. 

멸망의 파편과 여신의 파편 4개를 말하는 것이다. 

신의 섬에 존재하는 ‘거룩한 별’을 포함한 모든 별의 소유권이 양도된다는 뜻이었다. 

“별은··· 소유자가 죽으면 대륙 전역으로 흩어지는 게 아니었나?” 

세렝게티의 말마따나 이는 별에 대한 기본상식이다. 

하지만 허드슨은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게······ 란돌프 님은 엄밀히 말하자면 온전한 소유자라 칭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무리가 있다니?” 

“별을 먹고 ‘초월’한 게 아니시니까요.” 

소유했을 뿐이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소유는 아니다. 

별을 통해 초월한 자들만이 제대로 된 소유자라 할 수 있는데, 란돌프는 오직 별을 갖고만 있었다. 

“······ 초월한 게 아니라고? 그 상태가?” 

세렝게티가 경악한 표정으로 두 눈을 치켜떴다. 

하기야 란돌프는 어지간한 초월자보다 강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란돌프는 아직 초월하지 않은 상태다. 

레벨 10에 이르지 못했으니까. 

균열의 탑을 통해 한계레벨이 올라갔다고 해도, 초월할 수 있는 레벨은 10으로 여전히 고정되어 있었다. 

“어쨌든, 무려 다섯 개의 별을 한꺼번에 주는 토벌입니다. 당연히 종족을 불문하고 엄청난 인파가 투신의 탑으로 몰려들 건 자명한 일.” 

“우리도 올라야겠군.” 

“예. 게다가··· 앞선 ‘토벌’들을 보았을 때, 분명히 란돌프님을 ‘약화’시키는 장치들이 존재할 겁니다. 우리는 그 ‘장치’들을 없애야만 합니다.” 

심연미궁에서 라일리를 토벌할 땐 ‘황금 티켓’에 의해 약화됐다. 

솔바렌도 점수를 통해 약화되는 조건이 붙어있었다. 

마찬가지로 란돌프의 토벌도 그를 약화시키는 무언가가 존재할 것이다. 

허드슨은 처음부터 토벌에 관심이 없었다. 

‘어떻게든, 무슨 방법을 써서든, 란돌프 님을 지켜야만 한다.’ 

란돌프가 폭주하여 세상에 화를 가져다주는 존재라고? 

아서라. 

그럴 리가 없지 않나. 

설혹 그게 사실이라 해도, 허드슨은 상관없었다. 

란돌프와 세렝게티만 지킬 수 있다면 허드슨에겐 그 어떤 세상이라도 멸망해도 좋았다. 

그리고 그건. 

“좋다. 나도 함께하지.” 

“······ 반드시 지킬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음, 아무래도 빠질 수는 없겠군.” 

이곳에 모인 모두가 같았다. 

란돌프. 

그는 이들에게 따라야할 주군이자, 절대적인 은인이었다. 

란돌프에게 칼을 겨누는 자야말로 토벌할 대상이다. 

또한, 여태껏 지켜져 왔으니, 이번엔 반대로 그들이 란돌프를 지킬 차례였다. 

-공지사항 봤냐? 

-란돌프를 토벌하라는 게 대체 무슨 의미야? 

-오주력 란돌프를 말하는 건가? 

-아니야, 투신의 탑 앞에 세워진 동상 봤지? 팬텀 란돌프 말하는 거 같은데? 

플레이어 톡. 

이용자들 모두가 난데없이 떠오른 ‘공지사항’에 떠들썩해졌다. 

이야기의 중심은 당연히 ‘란돌프’에 관한 것이었다. 

-와, 근데 대박이다. 별을 다섯 개나 모았었어? 

-그럼 5성 초월자라는 말? 

-진짜 개미쳤네... 

-팬텀신은 영원하라! 

-너무 빨리 강해져서 토벌 대상이 된 건가? 

-그럴 리가. 다음 메인 퀘스트 진행 중인 거 아니겠냐? 

-그러고 보니 메인퀘스트 12 밀 차례지? 12가 뭐였더라? 

-무슨 토벌 관련이었던 것 같은데······ 메인퀘스트 11부터는 알려진 게 거의 없어서 

-엥? 그럼 토벌 대상이 되는 게 내용이라고? 

-메인 퀘 말고 다른 거 진행 중인 듯 

하지만 돌연 듯 토벌의 대상이 된 란돌프의 행보는 그들도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란돌프가 자처하여 토벌이 대상이 되었다는 게 중론. 

메인 퀘스트가 아닌 다른 ‘신화의 완성’을 위한 행보라는 의견으로 이야기가 모아졌다. 

-그런데 너무 위험한 거 아님? 

-자신있겠지. 5성 초월자를 누가 이기냐 

-팬텀신! 팬텀신! 팬텀신! 

-5성 초월자 상대하려면 진짜 라이가 정도는 돼야 할 것 같은데 

-제국제일검? 

-그러고보니 라이가가 투신의 탑에서 대회 열고 있지 않았나? 

-헐, 그럼 대회 어떻게 되는 거임 

-설마 라이가도 도전하나? 

-라이가만 도전하겠냐. 은둔고수들 죄다 출동할 듯ㅋㅋㅋ 

-그런데 그라시아는 뭐하냐, 요즘 

-그러게. 영웅회 박살나곤 통 안 보이네 

-그라시아도 투신의 탑 오르는 건 아니겠지? 

한때 인류의 최강자였던 그라시아. 

하지만 영웅회의 몰락 이후, 그의 행보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였다. 

-그라시아 투신의 탑 오르는 중 

-뭐? 진짜? 

-황금률 마법사 유니온이랑 같이 오르던데 

-뭐하고 있나 했더니... 

-유니온이면 걔 아니야? 그 이세라가 침략해왔을 때 

-맞음 

-와, 둘이 파티라고? 묘한 조합이네 

-오크들도 대거 이동중 

-다크엘프들도 떼거지로 움직이던데 

-로드급 괴물들이 갑자기 탑으로 들이닥쳐서 들어갈 엄두가 안난다 

-진짜 미쳤다 미쳤어... 

-란돌프 죽는 거 아님? 

-에이, 설마 

-지금 유일신인 팬텀신을 모욕하는 거냐?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그야말로 초유의 사태. 

그 찰나였다. 

모두의 눈앞으로 또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황금률의 마법사 유니온’이 ‘챔피언 란돌프’에게 도전합니다.》 

《페이즈 1, ‘사흉(四凶) 바알’이 출현합니다.》 

느닷없이 떠오른 글귀의 내용에 모두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바알? 

-바알이 왜...? 

-오주력 란돌프가 바알을 다룬다는 소문이 있기는 했는데... 

-그럼 팬텀 란돌프랑 오주력 란돌프가 동일인물이라고?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거야? 

이미 한 번 겪어본 일. 

하지만 이전과는 분명히 다르다. 

-호오. 

-이건··· 상상이상이로군. 

내 모습을 바라보며, 흉의 신과 재의 신이 감탄을 흘렸다. 

나의 변신은 그들의 상상을 웃돌고 있었으니. 

나는 까만색 깃털로 가득한 양 손을 넓게 펼치곤 세상을 향해 크게 외쳤다. 

“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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