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76화 (276/317)

흉의 신, 재의 신

기적이다! 

아론은 눈물을 흘렸다. 

이건 도저히 기적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었으니까. 

‘역시 여신의 총애를 받으시는 분······!’ 

탑을 붕괴시켰다. 

강제로 산샤를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아론은 그보다 자신에게 들이닥친 ‘기적’에 더욱 감동하는 중이었다. 

‘신성력이··· 한계를 넘어섰다.’ 

화아아악! 

아론을 감싼 강렬한 신성력의 빛. 

한계를 넘어섰다는 증명이다. 

두 번의 자기희생 주문. 

그리고 추앙의 기도문! 

목숨을 바쳐 외웠을 뿐일진대 이런 하해와 같은 은혜라니. 

‘여신의 의지가 내게 닿은 것이다!’ 

여신께서 자신의 기도에 반응하신 게다. 

형용할 수 없는 벅찬 기분에 아론은 온몸을 잘게 떨어댔다. 

그도 그럴 게, 1년이 한참 넘도록 여신교는 정체되어있었다. 

한계를 넘어 더 강한 신성을 획득하는 이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여신의 선택을 받는 아이도 태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여신의 가호가 더 이상 여신교와 함께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신의 총애가 옮겨 갔을 뿐! 가호가 사라진 건 아니었어!’ 

허나 아니었다. 

그저 여신교에서 그분에게로, 아드리움의 ‘현’에게로 옮겨갔을 뿐이다. 

하지만 이 사실은 이 세계에서 오직 자신만이 안다. 

교황조차도 모르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더 많은 총애를! 더 많은 은혜를······!” 

그분의 제1 사도가 되어 더 강한 총애를 얻으리라. 

18층. 

비록 그분께선 자취를 감추셨지만, 괜찮다. 

위로 올라가면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강렬한 예감이 들었으므로. 

대회? 

제국과 여신교의 관계? 

이제는 안중에도 없다. 

그딴 건 일말의 관심조차 없어진 지 오래다. 

“모든 영광을 바치겠나이다!” 

정상에 올라 모든 영광을 오롯이 그분에게 바치리라. 

오직 그것만을 위해 아론은 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황무지.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거친 땅의 위에 마치 탑처럼 솟아있는 두 거대 까마귀. 

-형편없는 놈! 

-모자란 놈! 

-약해빠진 놈! 

-그건 너다! 

쿠웅-! 

두 거대 까마귀는 느닷없이 몸을 부딪히고 육탄전을 시작했다. 

단순히 부딪힌 것만으로도 세계가 흔들린다. 

‘여긴······.’ 

두 까마귀를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17층을 붕괴시키고, 시간의 개념이 사라질 정도로 오랫동안 떨어졌다. 

그리하여 도착한 이곳은 탑도, 판게니아도, 그렇다고 심연도 아닌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완전히 다른 세계라고 확신한 이유는 별 게 아니다. 

‘태양이 두 개다.’ 

태양이 두 개인 세계는 나도 처음 봤으니까. 

게다가 두 태양은 생김새가 완전히 달랐다. 

‘하나는 검은색의 태양, 또 다른 하나는 피처럼 붉은색의 태양.’ 

검은색의 태양은 왜인지 눈에 익었다. 

‘끔찍한 흉조’가 되어 도사 까마귀들을 소환해, 바알을 죽이기 직전까지 몰아붙인 적이 있지 않나. 

그때 ‘도사 까마귀들’과 함께 소환된 태양이 바로 저 ‘검은태양’이었다. 

-죽어라! 

-죽어! 

-같은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존재할 수 없다! 

-가짜 자식! 

-내가 진짜다! 

-개소리! 

-까마귀다! 

-까악! 

···뭐지. 

저 의식의 흐름대로 내뱉는 것만 같은 대화는. 

하지만 도저히 끼어들 수가 없었다. 

꽈아아아아아앙-! 

이 정도로 육중한 대결은 처음 봤다. 

거인이라 하기에도 지나치게 크다. 

구름 너머까지 뻗은 거대 까마귀들은 서로를 죽일 듯이 쉴 새 없이 부딪혔다. 

‘압도적이군.’ 

그렇게 대략 반나절가량. 

태양이 지고, 노을이 지자, 싸움이 멈췄다. 

-오늘은 여기서 봐주마! 

-내일 태양이 뜰 때 다시 싸우자! 

그리곤 익숙한 듯 서로가 등을 돌렸다. 

하지만, 움직이진 않는다. 

등을 돌린 채로 그냥 가만히 있는다. 

“저기.” 

그제야 나는 조용히 둘의 사이로 다가갈 수 있었다. 

동시에 두 까마귀가 슬쩍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뭐냐, 너는. 

-너무 작구나. 

-작은 콩벌레 같이 생겼군. 

-하마 아니냐? 

일부러 그러는 건가? 

확실한 건, 둘 다 지능이 높지는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두 까마귀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물었다. 

“여긴 어디지? 투신의 탑 내부인가?” 

-투신의 탑? 그게 뭐냐? 

-먹는 거냐? 

-맛없는 이름이군. 

-맛있을 거 같은데. 

둘 다 투신의 탑을 모른다. 

이곳이 전혀 다른 별개의 장소라는 뜻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재차 말했다. 

“여기서 어떻게 나가지?” 

-못 나간다. 

-우리의 싸움이 끝나기 전에는 아무도 나갈 수 없다. 

“그럼 빨리 싸워서 결판을 내라.” 

-내일 태양이 뜨면 싸울 거다. 

-지금은 밤이다. 

낮에는 싸우고, 밤에는 쉰다. 

둘 사이의 암묵적인 규율인 모양이었다. 

‘빠져나갈 방법이 있겠지.’ 

이 둘은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 

어깨를 으쓱하곤 나는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머지않아 난관에 봉착했다. 

‘··· 다시 돌아왔다.’ 

계속해서 걸어 나가자 다시 까마귀들이 있는 장소로 돌아왔다. 

어느 방향으로 가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귀뚜라미가 잘 돌아다니는군. 

-코끼리 같은 게 체력도 좋구나. 

까마귀들은 그런 나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 

그러다가 서로 눈이 마주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이어 다시 아침이 되고, 태양이 뜨자. 

-죽어라! 

-죽어엇! 

다시금 미친 듯이 싸워대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젓곤 싸움을 지켜봤다. 

‘완전하게 갇혔다.’ 

텔레포트나 워프도 작동하지 않는다. 

로그아웃이나 로그인도 되지 않고, ‘롱기누스의 창’도 먹통이었다. 

완전무결한 별세계에 갇힌 것이다. 

게다가. 

‘몸이··· 굳어간다.’ 

다시 몸이 마비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움직임이 둔해지고, 양팔과 발이 마음대로 뻗어지지 않는다. 

확신할 수 있었다. 

이대로면 머지않아 완전히 육체의 작동이 멈춰버릴 것이다. 

이 사태를 해결하고 이곳을 나가려면, 아무래도 저 둘의 도움이 필요할 듯했다. 

-오늘은 여기서 봐주마. 

-누가 할 소리를. 

밤이 되면 거짓말처럼 싸움이 멈췄다. 

유일하게 정상적으로 대화가 가능한 시간.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둘은 언제부터 싸우고 있는 거지?” 

-8만 7천 년? 

-13만 년이다 멍청아. 

-사실 19만 년이다. 

-아, 맞다. 이제 100만 년쯤 된 것 같군. 

한 마디로 셀 수 없이 오랜 세월 동안 싸우고 있다는 말이다. 

숫자만 들어도 아득해질 정도로 긴 시간을. 

“대체 왜 싸우는 거냐?” 

-내가 더 강하니까! 

-내가 더 강하니까! 

누가 더 강하냐를 겨루고 있다. 

단순무식하기 그지없는 발언. 

오직 그 하나의 증명을 위해 억겁의 세월을 싸우다니? 

이쯤 되자 더욱 궁금해진다. 

“너희 둘은 무슨 신(神)이지?” 

둘 다 신격을 지닌 존재였다. 

그것도 일반적인 신격이 아닌, 주신격의 신격을. 

주신은 한 세계를 주름잡는 중심의 신을 말하는 것. 

한데 그만한 존재들이 왜 티격태격 싸우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윽고 두 까마귀가 말했다. 

-나는 흉(凶)의 신. 

-나는 재(災)의 신. 

그래도 묻는 말에는 잘 대답해줘서 다행이라 해야 할지. 

그나저나, 흉과 재의 신이라. 

‘둘 다 탑을 관리하는 종족이다.’ 

탑 전체를 관리하는 흉의 일족. 

그리고 탑의 시련을 조정하는 재의 일족. 

둘은 완전히 다른 능력을 갖고 있다. 

‘투신 카라스는 재의 일족이지.’ 

엄밀히 따지자면 재의 일족의 왕이다. 

그리고 흉의 일족과 왕은 비석을 남기고 모조리 멸망에게 전멸당했다. 

란돌프의 몸으로 흉의 일족을 되살리는 데 성공은 했으나, 아직 비석 전부를 찾지는 못한 상황. 

한데, 자신을 신으로 떠받드는 종족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음에도 둘은 이곳에서 주 

구장창 싸워만 대고 있는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 결판만 내면 되는 건가?” 

-당연하다마다. 

-하늘 아래 태양은 오직 하나만 뜰 수 있는 법. 

검은태양을 다루는 흉의 신. 

그리고 붉은태양을 다루는 재의 신. 

둘 다 막상막하다. 

누가 더 강하다고 할 수가 없다. 

잠시의 고민 끝에, 나는 묘안을 냈다. 

“너희 둘의 기술을 내게 가르쳐라. 그럼 판단해주마. 누가 더 강한 무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뭐라는 거냐, 저 하루살이가. 

-우리의 기술은 오직 일족만이 배울 수 있노라. 

-까마귀도 아닌 녀석이 죽고 싶어 안달이 났군. 

-다른 짐승은 까마귀의 우월함을 절대로 따라올 수 없다. 

둘 다 코웃음을 쳤다. 

일족도 배우기 힘든 기술. 

하지만 나는 이미 한 차례 ‘시체 까마귀’가 되어본 적이 있다. 

게다가 란돌프의 몸으로 검은태양을 소환한 적도 있었다. 

흉왕의 의지를 이어받고, 카라스의 인정을 받은 자. 

그게 나다. 

“그럼 나를 까마귀로 만들면 되지 않나?” 

하여 도박수를 걸었다. 

어차피 이대로면 여기서 나는 고립된 채 죽는다. 

사지가 마비되고, 심장도 멈추리라. 

내 발언을 들은 흉의 신과 재의 신이 동시에 눈을 깜빡거렸다. 

-까악? 

-까악? 

까악! 

까아악! 

재의 일족 까마귀들이 난장을 피웠다. 

층의 틈 사이에 누군가를 들이는 건 금기다. 

그곳을 들여다보는 것조차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였다. 

“까, 까악···.” 

흉의 일족 까마귀도 당황하긴 매한가지였다. 

카라스 님은 어디 가신 거야? 

이 사태를 정상화하기 위해선 투신 카라스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지경까지 왔음에도 카라스는 온데간데 보이지 않았다. 

란돌프의 소환에 이상을 느낀 그는 30층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후의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30층. 

탑의 정상이자 챔피언의 성역은 까마귀들도 들여다보는 게 허락되지 않은 곳. 

“까악!” 

어쩔 수 없다. 

흉의 일족 까마귀는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자신의 능력으로 이 상황을 해결해보려는 의지를 피워낸 것이다. 

까악! 

까아악! 

어이어이, 괜찮겠냐! 

우리도 도와줄게! 

재의 일족 까마귀들과 흉의 일족 까마귀가 의기투합했다. 

탑을 관리하는 두 종족이 힘을 합친 이상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으리라. 

문제는 두 쪽 다 ‘층의 틈’이 벌어졌을 때의 상황에 무지하다는 것이었다. 

흉의 일족 까마귀가 틈새를 찾고, 재의 일족 까마귀들이 시련을 조정하며 탑을 마구 휘저을수록. 

《탑의 구조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탑의 시련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탑의 구조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탑의 시련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탑의 구조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탑의 시련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 

······. 

《도전자들이 이동합니다.》 

《새로운 도전자들이 유입됩니다.》 

《챔피언의 권좌에 도전하는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공지사항이 업데이트 됩니다.》 

《‘투신의 탑’이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챔피언 란돌프’를 제거하십시오!》 

까, 까아악! 

까악! 까악! 

까마귀들은 정신이 나간 채 울부짖었다. 

이제는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까마귀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제대로 망한 것 같다고. 

《공지사항이 업데이트 됩니다.》 

“······ 업데이트?” 

“뭐야, 갑자기?” 

“투신의 탑에 뭐가 업데이트 됐다는 거야?” 

“란돌프······를 제거하라니?” 

사람들의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들. 

모든 각성자가 공지사항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관련된 내용을 파악한 건 각성자만이 아니다. 

“예언이 내렸습니다!” 

“별이 말했다! 투신의 탑을 오르라고!” 

“수호자들이여, 탑을 오르자!” 

“로드께서 명하신다. 탑을 오르라!” 

··· 판게니아의 종족을 불문한 수많은 이들이 알 수 있었다. 

탑을 올라야하는 이유와 함께. 

그리고 탑을 오르려는 이들 중에는. 

“락투샤.” 

“예, 흑왕 님.” 

“다크엘프, 그리고 개미왕 페르몬과 함께 투신의 탑을 올라 란돌프를 죽이고, 반드시 ‘그것’을 회수하도록.” 

“명을 받듭니다.” 

남부의 지배자, 흑왕의 명을 따르는 소드마스터 락투샤와 그의 동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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