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 초월
“누군가가 막아낸 기술은 다시 도전할 수 없다. 최대 100명의 합격자만이 17층으로 향할 수 있다는 게다.”
산샤는 말했다.
어서 도전에 성공하라는 듯이.
그러자 사람들은 다급함을 느꼈다.
이곳에 모인 인원은 대략 500명 가량.
그중 400명이 탈락한다고?
‘한 번만 막으면 된다.’
‘전혀 어려울 거 없잖아?’
100개의 기술.
그중 하나만을 막으면 되는 시련.
심지어 미리 선보인 기술 중 자신의 상성에 맞는 기술을 고를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산샤는 상대의 수준에 걸맞게 능력치마저 조정해주는 중이었다.
하여 처음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다음층으로 향하고자 하였으나.
“격(格)이 달라, 격이······.”
“보여도 막을 수가 없다. 공간 자체를 지배하고 있는 거다.”
“산샤는 층 전체를 압도하고 있다. 괴물이 따로없군.”
시련이 진행될수록 도전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적어졌다.
굴격 산샤를 파훼하고자 그들은 파별벌로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단순한 기술의 약점을 파고드는 것이라면 그들 모두 가능하다.
여기에 모인 대부분의 이들은 ‘천재’다.
상대의 움직임과 기술의 허점을 단번에 알아볼 정도의 눈은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산샤의 움직임과 기술 자체는 단조롭기 그지없다.
너무 단조로워서, 막지 못하는 게 이상할 정도다.
그런데 막을 수가 없다.
막기는커녕 계속해서 목숨을 내어만 주고 있다.
존재의 격이, 공간의 지배력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사룡의 검. 극독의 기운을 품은 죽음의 검이다. 독의 저항이 강한 사람이 아니면 이 기술은 피하는 게 좋아.”
“천룡각과 멸룡각. 둘 다 중범위 기술이지. 순간적으로 발 끝에 마력을 증폭시켜 상대를 찍어누른다.”
“산샤가 다루는 건 주로 근접기다. 그중 원거리 공격은 고작 두 개. 이 두 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면 필승(必勝)이다. 본래 거리를 두고 사용해야하는 기술은 근접할수록 명중률이 떨어지게 돼 있으니까.”
제각기 연구하며 필승법에 대해 떠들었다.
제아무리 산샤가 괴물이라 할지라도 100가지 기술 전부가 완벽할 수는 없는 노릇.
모든 기술에는 약점이 있기 마련이고, 같은 기술이라도 누군가에게는 통하지 않을 때가 있는 법이었다.
그러니, 분명히 ‘빈틈’이 있을 터.
그 빈틈을 파고든다.
없다면 억지로라도 만들어낸다.
개인전을 표방했으나, 이 대결은 단체전과 다를 게 없다.
서로가 머리를 맞대고 오롯이 산샤에 대해 파악해야하는 시련.
‘이 시련은 100개의 기술 중 가장 약한 한 가지 기술을 골라내는 시련이다.’
‘무작정 덤벼든다고 다가 아니야.’
‘뭐지? 대체 어떤 기술이지?’
팽팽할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는 머리.
하지만 좀처럼 답을 찾기가 쉽지 않던 그때였다.
“··· 찾았다!”
한 파벌의 중심에서 웬 남자가 쾌거의 소리를 내질렀다.
찾았다니, 무엇을?
곧이어 그 남자는 자신있게 산샤의 앞으로 나아갔다.
“무슨 기술을 택하겠나?”
산샤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이처럼 자신있게 도전했다면 필히 나름의 답을 찾았다는 뜻일 테니.
곧이어 남자가 미소짓곤 말했다.
“신검합일.”
“좋다.”
스르르르.
순간 산샤의 손에 검이 쥐어졌다.
이후 검이 짧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산샤는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남자는 도발하듯 말했다.
“나는 발켄트 영지를 이끌 후계자 윌리엄이다. 탑의 끝에 올라, 대회의 우승을 거머쥐는 것 역시 나다. 두 눈 똑똑히 뜨고 봐라!”
윌리엄.
그는 이번 시련의 요지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단순히 힘만 세다고 올라설 수 있는 시련이 아니다. 이 시련은.’
14층에서 모두를 전율시킨 아드리움의 현.
그조차도 포기한 듯 그저 가만히 눈을 감고만 있지 않나.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겠지.
산샤는 그저 무력만으로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걸.
도리어 강하면 강할수록 이 시련은 넘어서기 어렵다.
그러나 윌리엄은 찾아낸 것이다.
필승법.
산샤의 약점을 말이다.
‘신검합일을 펼칠 때만 유일하게 산샤는 눈을 감는다. 그리고 움직임이 단조로워지지.’
아주 간단한 논리다.
검과 하나가 된다는 건 쉽게 말하면 단순해진다는 것.
눈먼 검 따위를 피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다른 이들보다 윌리엄은 민첩함에 더 자신이 있었으니까.
채엥!
하여, 윌리엄은 검을 버렸다.
툭!
갑옷도 벗었다.
최대한 가볍게.
맞선다는 생각 자체를 버렸다.
윌리엄은 오직 저 검을 한 차례 피해낼 생각뿐이었다.
“허.”
“몸을 가볍게 해서 어떻게든 피해보겠다?”
“필살의 도주라······.”
“음. 나쁘지 않은 선택일지도.”
윌리엄의 모습을 지켜보며 사람들은 작게 감탄했다.
어쨌든 기술을 한 번 시현할 때까지 살아있는 게 이 시험의 중점이다.
막지 않아도, 피하기만 해도 합격으로 인정된다는 의미였다.
‘이 방법은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그야말로 필살기지.’
신검합일을 사용하며 둔해진 검을 피해낸다.
이 방법으로 시련을 합격하면, 다른 사람은 다시 ‘신검합일’에 도전할 수 없다.
“준비는 됐나?”
“··· 다 됐다.”
윌리엄은 미소를 지웠다.
이제 진지하게 시련에 임할 때였으니.
곧이어 산샤가 지근거리까지 다가왔다.
윌리엄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산샤의 어깨와 검 끝에 모든 집중을 털어넣었다.
이윽고 산샤가 검을 펼쳤고.
쉬익!
‘피했······!’
스걱!
······ 윌리엄의 잘린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뭐, 뭐야?”
“분명히 피하지 않았나?”
“설마······ 회피불가의 공격기라고?”
사람들은 당황했다.
누가봐도 윌리엄은 산샤의 검을 피했다.
하지만 정작 윌리엄의 머리는 잘려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산샤가 눈속임을 한 게 아니라면, 이런 경우는 하나뿐이다.
‘회피불가?!’
‘말도 안 돼!’
세상에는 극소수로 존재하는 회피가 불가능한 기술들이 있다.
극한으로 갈고닦은 고유기술.
그중에서도 오직 ‘일격’에만 모든 걸 갈아넣은 달인의 공격!
지금 산샤가 펼쳐낸 ‘신검합일’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다.
회피불가의 공격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건 평생을 일격에만 모든 걸 쏟아넣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절대영역이다.
하지만 산샤는 무려 100가지 기술을 연마했다.
‘그럼 100가지 기술 전부가······ 절대적인 영역에 닿았다는 말인가?’
그렇다는 건.
100가지 기술 전부, 같은 영역이라는 의미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 시련은 전제부터가 잘못됐다.
‘한 명도 합격시키지 않겠다는 거냐?’
산샤는 처음부터 100명의 합격자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산샤는 이곳에 있는 전원을 도륙할 생각이었다.
100가지 기술을 극한으로 연마한 최강자.
‘이걸 두 명이나 전부 막아냈다고?’
‘미친······.’
란돌프, 그리고 빌헬름.
그 둘은 대체 어떻게 저런 괴물의 기술을 전부 막아낸 건가.
한 가지도 아니고 무려 백 가지에 달하는, 절대영역에 이른 고유기술들을.
사람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 찰나.
스릉.
스르르릉.
한 남자가 칼을 바닥에 끌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하나, 둘 그에게 닿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드리움의 현···?”
“설마 도전하는 건가?”
여태껏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던 괴물이 산샤에게 다가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14층의 마왕.
200명을 단 한 번의 손짓으로 도살한 괴수!
하지만, 아드리움의 현은 왜인지 움직임이 무척 둔해진 상태였다.
14층에서 마력을 전부 쏟아부었기 때문일까?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군. 허나, 몸은 정상일진대······.”
산샤마자 한 마디 꺼낼 정도였다.
물론 산샤가 보기에 그의 상태는 괜찮았다.
부자연스러운 움직임과 달리 육체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연기인가?’
설마 아픈척 연기해서 능력치의 조정을 피해보겠다는 발상인지.
내심 혀를 차고 말았다.
정말 멍청한 짓이다.
이곳은 투신의 탑.
시련으로 완성된 산샤는, 상대의 능력을 정확히 꿰뚫어볼 권한을 지녔다.
결코 연기는 통하지 않는다.
“무슨 기술을 택하겠나?”
“신검합일.”
“······ 오호라.”
하지만 그 선택은 산샤도 제법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에 ‘회피불가’의 기술임을 보았을 텐데도 자신있게 도전하다니.
그 의기 하나는 인정해줘야겠다.
아드리움의 현.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마찬가지로 강렬한 궁금증이 담겼다.
“저런 엉거주춤한 자세로 ‘신검합일’의 일격을 막아내겠다는 건가?”
“··· 14층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거리가 있군.”
다르다.
14층에서 보여준 그 패도적인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별다른 자세도 취하지 않은 채, 그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스르르르.
다시 산샤의 검이 짧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산샤는 눈을 감았다.
그럼에도 아드리움의 현은, 멀뚱히 있었다.
막을 생각도, 피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회피 불가의 공격이라 하여, 가만히 있으면 살 수 있다는 건 정말 어리석은 발상이었다.
“음······?”
“뭐지?”
하지만 이내 사람들은 무언가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신검합일을 펼쳐낸 산샤.
그리고 아드리움의 현.
“왜 둘 다 안 움직이고 있는거야?”
“산샤는 왜 가만히 있는 거지?”
둘 다, 움직이지 않는다.
여태껏 먼저 선공을 펼친 산샤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머지 않아 변화는 일어났다.
산샤의 미간이, 조금씩 좁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곧이어 산샤는 눈을 떴다.
그는 몸을 떨고, 무언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재차 말했다.
“······ 합격이다.”
*
결국, 선택해야만 했다.
이대로 가만히 이곳에 표류할 것이냐.
아니면 죽이되든 밥이 되든 일단 올라볼 것이냐.
사실 선택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오른다.’
오르기로 했다.
이 탑의 정상에.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의도치 않은, 장애물 아닌 장애물이 나타났을 따름이었다.
란돌프의 육체가 30층에 있다.
탑이 란돌프를 강제로 소환한 것이다.
그리고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아마도 ‘나’에 의한 문제일 터였다.
‘내가 여기 있기 때문에.’
지금은 용신이 된 그 녀석.
광룡 아인하사르가 란돌프를 소환하지 못한건 어찌됐든 ‘나의 영혼’이 그곳에 머물러 있었던 탓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나는 나를, 박현명을 움직이고 있다.
내 영혼은 하나다.
반면 움직일 수 있는 몸은 두 개였다.
하나를 움직이면 하나가 비게 되어있고, 영혼이 깃들지 않은 육체는 무방비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수호벽과 같은 이권으로 누군가의 공격은 막을 수 있지만, 챔피언의 의무를 위한 탑의 소환까지 막아주진 못하는 이유다.
머리가 터질 정도로 고민해봐도 그 이유 외엔 도저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 이 시련 자체는 너무나도 쉽지.’
그리고 산샤가 내린 시련은, 내게 너무나도 쉬운 문제였다.
특히 ‘신검합일’을 선택하면 더욱 쉬워졌다.
회피불가의 공격.
말인 즉, 무조건 상대에게 ‘타격’을 입히는 기술.
‘나를 죽이면 산샤도 죽는다.’
하지만 내게는 그러한 ‘타격’을 반사하는 절대적인 능력이 있었다.
바로.
‘태고의 갑옷을 착용하고 있는 한, 산샤는 신검합일로 나를 공격하지 못해.’
태고의 갑옷에 새겨진 물리 내성 50%와 함께 물리 피해를 210% 반사하는 옵션.
신검합일로 나를 공격하는 순간, 산샤는 죽는다.
그것을 ‘신검합일’을 사용하자마자 본능적으로 깨닫고 산샤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한 것이다.
시련을, 사명을 이어가야만 하는 존재가 다른 도전자들을 남겨두고 같이 동귀어진 할 수는 없지 않나.
그렇게 16층의 시련을 완료하고 17층으로 올라선 순간이었다.
《투신의 탑 16층 ‘산샤의 시련(1)’을 완료했습니다.》
《업적 ‘고대의 악마 산샤의 시련을 최초로 이겨낸 자’를 달성했습니다.》
《전승의 규격이 일정 수치를 넘어 한 단계 초월합니다.》
《‘위대한 전승’이 완전히 새로운 전승을 만들어냅니다.》
《‘파괴자’, ‘워록’, ‘천마’, ‘성휘를 지우는 자’, ‘디스트로이어’의 히든 클래스가 조합되고 초월하며 ‘파멸의 왕’으로 격상했습니다.》
《히든클래스 ‘파멸의 왕’을 계승하시겠습니까?》
위대한 전승에 의한 히든 클래스의 계승!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일이건만.
‘······ 히든 클래스가 초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