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72화 (272/317)

란돌프, 소환

‘미친 건가?’ 

데르시안 가문의 ‘휴’는 아론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여신교 요한슨 추기경의 아들, 아론. 

놈은 망나니다. 

그것도 그냥 망나니가 아니라 개망나니였다. 

얼마나 막장이면 그 소문이 제국에까지 파다하게 들려올 정도. 

놈이 대회에 참가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여신교에 대한 사신교의 반발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텐데, 굳이 구태여 공식적으로 아론을 보낸 이유가 뭐겠는가. 

‘정치적인 쇼인 줄 알았지.’ 

머리가 꽃밭인 아론은 꿈에도 못 꾸는 기색이었으나 누가 봐도 놈은 여신교의 미끼였다.

대외적으로는 제국과의 교류를 위해서. 

하지만 내적으로는 사신교가 아론을 가만히 놔두지 않으리라 확신했을 터. 

사신교에게 있어서 아론은 너무 예쁘게 포장된 미끼였다. 

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밧르타슈랑 같이 보냈다는 건, 제발 죽여달라는 뜻이니까.’ 

최상위계의 성기사 밧르타슈. 

그는 여신을 믿지 않는 자는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여신교를 믿지 않는 제국민과 사신교의 신도를 무참하게 학살한 전적이 있었다. 

뿐만인가. 

아론도 마찬가지다. 

놈은 여신교의 신도가 아닌 사람만 골라서 개막장 짓을 해왔다. 

그래야만 아버지인 요한슨 추기경이 작정하고 덮어줄 수 있을 테니. 

‘본래라면 내가 죽이려고 했다만······.’ 

그 둘을 함께 포장해서 보낸 저의가 뭐겠는가. 

정말 여신교가 정상적인 교류를 위해 보낸 게 맞다고 생각하는 제국민은 없다. 

그냥, 구실이 필요했겠지. 

제국이 아론을 죽였다는 구실이. 

아무렴. 

상관없었다. 

그래서 죽이려고 했다. 

제발 죽여달라고 보내왔는데, 안 죽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아르혼 제국이 언제부터 여신교의 눈치를 봤다고. 

‘저 괴물에게 붙어먹을 줄이야.’ 

한데, 아론은 어느 순간 같은 성도 출신의 ‘현’에게 붙어먹었다. 

분명히 처음엔 ‘현’이 아론을 죽일 줄 알았다. 

층고를 오를 때마다 사지를 하나씩 절단해서 보는 맛도 있었다. 

같은 도시 출신에게 아론이 죽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서 내버려두었는데. 

하지만 14층 이후 모든 상황과 관계는 뒤바뀌었다. 

‘그 검은색 환······ 그건 분명히 검강으로 이루어진 마력덩어리였다.’ 

무기술이 극한에 다달해야만 발생시킬 수 있는 기운. 

그게 바로 검강이다. 

그 검강을 환의 형태로 거대하게 만들어냈다.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력을 흡수당하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정상적인 힘이 아니다. 

여신교가 배척해야할 이단의 힘이 분명할진대. 

“추앙합니다! 여신의 의지를 잇는 자이시여! 여신의 의지를 세상에 전파하는 거룩한 성자이시여! 오롯이 더 건실하게 오직 여신만을 믿겠나이다!” 

······ 진짜 미쳐버린 게 틀림없었다. 

16층에 도달한 뒤에도 아론의 미친짓은 계속되었다. 

개처럼 네 발로 기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한 남자를 떠받들고 있었다. 

아드리움의 현. 

불과 얼마 전까지만해도 서로 적대하지 않았던가? 

‘저쪽은 도울 생각이 없어 보이는군.’ 

확실한건 아드리움의 현과 아론은 16층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아드리움의 ‘현’은 아예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명상이라도 하듯이. 

휴는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모두의 시선이 향한 곳. 

그곳엔 ‘고대의 악마’가 있었다. 

“인사하마. 나는 ‘전 챔피언’ 산샤다.” 

그는 일견 평범해 보이는 남자였다. 

하지만 그의 ‘몸’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키메라?’ 

육체의 이곳저곳이 잘리고 붙여지며 재조합된 모습. 

실로 얼기설기 연결된 곳도 있을 지경이다. 

보고 있기 역겨울 정도로 끔찍하다. 

전 챔피언 산샤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그러한 몸을 자신있게 드러내고 있었다. 

수백명의 강자들 사이에서 너무나도 여유롭게. 

전 챔피언을 꺾는 게 투신의 탑 16층의 시련일까? 

“전 챔피언······!” 

“아, 몇 년간이나 투신의 탑에서 챔피언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는 그?” 

“최근엔 아예 모습을 안 드러냈다고 하던데.” 

“이름이 산샤였어?” 

당연히 그를 아는 사람도 있었다. 

재정비 되기 전 투신의 탑에서 오랜시간 챔피언으로 군림했던 자. 

절대적인 무위를 선보여 아무도 꺾지 못했다. 

감히 투신의 탑에서 전설로 불리는 존재. 

그런데 그가 16층에 나타났다. 

그것도 스스로를 ‘전 챔피언’이라고 소개하며. 

“지금부터 너희에게 내가 가진 기술 전부를 보여줄 것이다.” 

하지만 산샤가 한 말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자신을 꺾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건지. 

전 챔피언 산샤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보여준 뒤, 30분간 고민하며 선택해라. 자신이 막을 수 있을 것 같은 기술을. 나는 너희의 수준에 맞춰 진행할 터이니.” 

“한 명씩 대련을 하겠다는 거냐?” 

“맞다.” 

산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천천히 자세를 잡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보여줄 ‘고유기술’은 100가지. 그중 한 개라도 막는다면 너희는 ‘다음층’으로 갈 수 있다.” 

“백 개중 고작 한 개?” 

“그래. 한 번만 막아라. 그럼 16층은 통과다.” 

“너무 쉬운 거 아니야?” 

아무리 전설적인 전 챔피언이라고 해도. 

······ 상대의 수준에 맞춰 펼치는 기술 한 가지만 막으면 된다니. 

11층에서부터 진행된 ‘투쟁’에 비하면 너무 쉬워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피튀기는 전쟁을 하며 뚫고온 층들에 비하면 이런 시련쯤이야. 

그때 한 명이 물었다. 

“혹시 100개의 기술을 전부 막은 사람이 있나?” 

“있다.” 

“몇 명이지?” 

산샤가 오른손으로 손가락 검지와 중지를 폈다. 

“둘.” 

“둘? 그중 한 명은 지금 챔피언 란돌프인가?” 

산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한 명은 란돌프다.” 

“그럼 나머지 한 명은 누구지?” 

순간, 산샤가 미소를 머금었다.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현 챔피언인 란돌프. 

놈이 누구인지는 말해줘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으니까. 

하지만 곧이어 산샤의 입을 통해 나온 이름은, 이곳에 모인 모두가 아는 사람이었다. 

“기사왕, 빌헬름.” 

빌헬름. 

······ 빌헬름이라. 

그 이름은 확실히 전설적이다. 

하지만, 빌헬름의 이름은 천천히 잊혀지고 있었다. 

아무리 빌헬름이 수많은 전설과 신화를 이룩했대도. 

어찌됐든 그는 대원정의 ‘패배자’였다. 

10만이 넘는 병사와 기사들을 몰살시킨. 

하물며 1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세계를 격변하며, 더 많은 강자를 낳는 중이었다. 

라이가, 혹은 아이언 왕국의 프리드릭 왕처럼 숨어있던 강자들이 모습을 보이자 세계는 ‘빌헬름’을 착실하게 잊어갔다. 

그 이름이, 산샤의 입을 통해 나올 줄이야. 

“빌헬름은 기사왕이 아니다.” 

데르시안 가문의 휴가 전면으로 나서며 부정했다. 

이에 산샤가 눈을 돌려 휴를 바라보자, 휴는 검을 뻗었다. 

“진정한 기사왕은 라이가님뿐이시다.” 

“라이가? 그게 누구지?” 

“······.” 

“혹시 여기 있나?” 

“그분은 탑의 참가자가 아니······.” 

“탑에 오르지 않는 겁쟁이의 이름 따윌 내가 알아야하나?” 

“그분은 겁쟁이가 아니다!” 

휴의 거센 반발에, 산샤가 피식 웃어버렸다.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 것 같긴 하군. 한 50년 전쯤에 나를 상대하다 오줌을 지린 녀석의 이름이 분명히 ‘라이가’였던 것 같은데.” 

“이 새끼가······!” 

“화가 난다면 증명해보거라.” 

검을 겨눈 휴를 향해 산샤는 자세를 쥐었다. 

순간. 

후우우웅-! 

산샤를 중심으로 한 마력의 파동이 16층 전역을 집어삼켰다. 

“······!” 

“······ 마, 마력이······!” 

꼼짝할 수 없다. 

속박이라도 당한 듯이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14층에서 보았던 아드리움의 현, 그 괴물의 마력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끈쩍끈적한 게 몸 전체를 뒤덮은 것만 같은 더러운 기분. 

자신의 몸이, 자신의 몸이 아닌 것만 같다. 

마치 자신의 전부를 빼앗기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전부 막은 게 두 명이나 있으면 한 개쯤은 쉽게 막겠군.’ 

‘뭐야. 사실 별 거 아닌 놈 아니야?’ 

······ 그렇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나. 

그제야 탑의 도전자들은 생각을 바꾸었다. 

허나, 경악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청룡각, 사룡의 검, 신검합일.” 

하나씩. 

기술이 시전될 때마다. 

그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모든 기술이 압도적이다. 

이미 존재했던 기술보다 더욱 완성도가 높았다. 

한 존재가 이 정도로 많은 기술을 완성하고, 초월시켰다니! 

‘저걸 막으라고?’ 

‘저딴걸 어떻게 막아?’ 

그들은 전 챔피언, 고대의 악마 산샤에게 영혼을 빼앗겼다. 

투신 카라스. 

그는 산샤의 등장을 기꺼워했다. 

‘질투의 악마 산샤는 먹혔다. 란돌프에게.’ 

먹힌 다음 탐욕의 악마를 깨웠다. 

하여 산샤는 존재할 수 없는 이름이다. 

그럼에도 지금 탑에서 그는 존재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던 걸까. 

‘허나 전부 먹힌 것은 아니었지.’ 

질투의 악마 산샤는 먹힌 게 맞다. 

하지만 챔피언으로서의 산샤는 남아있었다. 

본래부터 둘은 자아가 나뉘어 있었으므로. 

질투의 악마로서의 존재와 자아는 먹혔지만, 챔피언으로서의 존재와 자아는 먹히지 않은 것이다. 

물론 가만히 놔뒀다면 챔피언의 존재도 사라졌을 터. 

그것을 투신 카라스가 살려냈다. 

탑의 ‘시련’으로 말이다. 

‘탑의 시련으로 되살린 챔피언 산샤. 녀석은 모든 기억을 떠올리고 더 강해졌다.’ 

챔피언 산샤는 투신의 탑에 귀속됐다. 

그는 여기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 

하지만 덕분에 그는 더욱 완성되었다. 

우선 질투의 악마가 봉인시켰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또한 란돌프와의 대결, 그 패배를 곱씹으며 한 발자국 진일보했다. 

과연 완성된 ‘산샤’의 시련을 몇 명이나 통과할지. 

‘그나저나······.’ 

투신 카라스는 시선을 올려 탑의 정상을 바라보았다. 

챔피언의 역할 수행을 위하여 탑이 ‘챔피언’을 소환했다. 

챔피언 란돌프를. 

문제는 소환된 란돌프의 행동거지였다. 

“··· 왜 저러고 있는 거지?” 

······ X됐다. 

아무래도 X된 것 같다. 

‘로그인이 안 돼.’ 

란돌프가 탑에 있다. 

탑이 강제로 란돌프의 육체를 소환한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30층, 탑의 정상에 있을 터. 

그런데 로그인이 안 된다. 

내가 여기 있기 때문일까? 

설마 같은 탑 내에 있어서? 

‘탑을 나갈 수도 없다.’ 

문제는 기권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가려면 죽어야한다. 

그렇다고 탑을 오르면 내 존재감은 완전히 지워질 것이었다. 

외통수다. 

설마 탑이 강제로 란돌프의 육체를 소환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어떻게 그게 가능했던 거지?’ 

용신 아인하사르도 소환하지 못한 게 란돌프다. 

메인 퀘스트 10에 이르면 강제로 소환되는 시스템이었으나, 란돌프의 격이 너무 높아서 결국 용신 아인하사르가 직접 등에 태워서 이동했다. 

그때보다 지금 란돌프의 격은 더 높아지면 높아졌지 낮아지진 않았다. 

그럴진대, 투신 카라스와 탑은 어떻게 란돌프의 육체를 강제로 소환한 걸까. 

‘젠장할.’ 

운명의 역설. 

판게니아에서 란돌프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박현명의 존재감은 희미해진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이제는 확실히 알겠다. 

‘왼팔이 안움직여.’ 

육체가 강제로 마비되어 간다. 

특히 왼쪽팔이 아예 움직이질 않았다. 

“아악!” 

“커헉!” 

고대의 악마 산샤. 

전 챔피언이 살아난 것도 신기하지만, 확실히 전보다 더 강해진 것 같았다. 

대부분이 일격에 즉사하고 있었다. 

게다가 놈이 펼치는 기술들······. 

묘하게 눈에 거슬린다. 

빌헬름의 검술, 천지개벽의 묘리를 마음대로 재해석하여 담아내고 있었다. 

과연 오른팔만으로 산샤를 맞상대할 수 있을까? 

설령 맞상대한들 탑을 오르는 것도 문제였다. 

그야말로. 

“아아, 믿습니다! 지고한 절대자시여! 여신의 말씀을 전파해주소서! 여신의 의지를 알려주시옵소서! 진실로! 참된 마음으로! 미천한 종이 목숨을 바쳐 따르겠나이다!!”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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