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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70화 (270/317)

여신의 사랑을 받는 자

“······.” 

아론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감히 믿을 수가 없었다. 

밧르타슈. 

그가 누구인가. 

아버지인 요한슨 추기경이 보낸 최고 위계의 성기사 중 한 명. 

여신교 내에서도 명망이 드높은 그 이름은 듣기만 해도 든든할 정도였다. 

하물며 자신에게 부여하는 축복의 수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수준. 

대회에서 승리하길 바라는 추기경의 선물과도 같은 호위가, 단 일격에 목숨을 잃었다. 

‘말이 안 되잖아. 말이 안 되잖아!’ 

축복이 지워지는 걸 봤다. 

신언이 먹히지 않고, 성역이 지워지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실시간으로 놈이 딛는 모든 대지가 역으로 놈에게 물들어간 것이다.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다른 성기사들마저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할 말을 잃은 채 떨어진 바닥에 밧르타슈의 머리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들 역시도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으니까. 

‘제아무리 능력치가 하락했대도 정도가 있는 거잖아!’ 

능력치 포인트 300. 

모두가 똑같이 가졌고, 똑같이 분배했다. 

하지만 능력치의 총합만 같을 뿐 나머지는 전부 다르다. 

이 투쟁의 결과는 당연히 ‘여신교’의 승리로 귀결되어야만 했다. 

‘··· 축복으로는 감히 여신교를 따라올 교단이 없어. 없다고!’ 

육체와 정신을 고양시켜주는 수많은 축복들. 

그러한 축복에 한정해선 여신교가 최고다. 

여신의 이름으로 한계를 넘어서게 만드는 힘! 

추가적인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 축복이기에 이곳처럼 능력이 한정된 곳이라면 더욱 더 빛을 발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왜? 

왜 놈 하나를 죽이지 못하는 거지? 

‘왜? 왜? 왜?’ 

이곳에 모인 성기사들은 모두 정예다. 

그런 정예 30명이 모여서 고작 저놈 한 명을 어찌하지 못하고 있다. 

저놈은 괴물인가? 

아니면, 진정으로 악신의 사도라고? 

여신교의 신언과 성역을 무효화시킬 정도의 사도라면 대체 무슨 악신을 따르는 거지? 

투욱. 

더욱 가까워지는 발소리. 

아론의 시선을 들었다. 

아드리움의 현. 

놈이 조금씩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으므로. 

검은 머리칼. 

새까만 눈동자. 

실로 불길하기 그지없는 색깔이다. 

자세히 뜯어보면 생김새도 미묘하게 이질적이다. 

제법 큰 키와 새하얀 피부, 도드라지는 입술, 직선으로 뻗은 코, 약간은 뾰족한 귀······ 성도 아드리움 출신이라는 게 쉬이 믿기지 않는 얼굴. 

무엇보다 기색이 특이하다. 

관심을 주지 않으면 눈에 안 들어올 정도로 일견 평범해 보이나,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으면 눈을 뗄 수 없게끔 홀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조차도 말이다. 

필시 악신의 영향을 받았을 터. 

‘악신은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다른 여타의 신들은 이름을 밝혀서 더 강한 신위를 얻지만 이름이 밝혀지면 약해지는 게 악신이니까.’ 

그러니 알아내야만 한다. 

아드리움의 현. 

놈이 따르는 악신의 이름을! 

그 이름만 입에 담을 수 있다면 상황은 역전되리라. 

여신교는 악신계(惡神界) 또한 연구했으므로. 

‘발락가스, 앙그라 마이뉴, 가즈, 디아블로.’ 

그중 여신교가 정의한 ‘4대 악신’은 이와 같다.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악신들이며 특히 ‘발락가스’는 ‘발로그 교단’의 주신(主神)으로 강력하게 추정되는 이름이다. 

주신은 일반적인 신들보다 한 위계 위의 존재. 

탑이 아닌 세계 그 자체를 다스려 중간계에 직접적인 개입은 할 수 없지만, 대신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에게 힘을 나눠주는 존재가 그들이다. 

여신 또한 주신이었다. 

하지만 현, 저놈은 적어도 4대 악신의 사도는 아니다. 

그들과 저놈이 가진 기질은 너무나도 달랐다. 

한 번에 맞춰야만 한다. 

괜히 떠봤다간 역으로 악신의 저주를 받게 된다. 

“사악한 종자야! 네놈이 따르는 악신의 이름을 밝혀라!” 

결국 추정을 포기한 아론이 기도문을 외웠다. 

여신을 찬양하는 기도문. 

잡신의 사도라면 이 기도문만으로도 제 스스로 이름을 밝힐 터! 

“······.” 

투욱. 

남은 거리는 기껏해야 세 발자국. 

아론의 두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도문도 먹히지 않는다. 

하기야 애초에 기도문이 먹혔다면, 밧르타슈의 신언 역시 먹혔을 것이다. 

“오, 오지 마··· 가까이 오지 말란 말이다!” 

“디바인 소드!” 

“여신이시여!” 

그제야 정신을 차린 성기사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툭! 

······ 그런데. 

순간 모든 축복이 무효화됐다. 

항상 달고 다니던, 숨 쉬는 것과 같이 부여했던 축복들이. 

무거운 갑옷의 무게와 거친 심장 박동 소리가 생생하게 피부에 닿기 시작했다. 

“······.” 

“이게 무슨······” 

“정신 차려! 강력한 악신의 사도다! 아론 님을 지켜!” 

재차 검을 들었으나. 

쩌엉! 

꽈아앙! 

“꺼억!” 

“······ 여?” 

“······ 신······!” 

막아서는 성기사들은 모두 육체가 갈기갈기 갈려나갔다. 

검이 부서지고, 갑옷이 파훼되고, 심한 경우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짓뭉개졌다. 

고작, 일격에. 

한데, 이상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성기사들의 단말마. 

그 단말마가 향하는 곳! 

‘대체 왜 죽은 성기사들의 시선이 전부······.’ 

하나같이 놈의 머리 위를 바라보며 죽었다. 

그리곤 경외하고 경악하는 눈빛으로 죽어갔다. 

언뜻 ‘여신’이라는 단어가 완성되었으나,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악신의 사도의 머리 위에 여신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성기사들이, 자신이 느끼지 못했을 리 없다. 

그들은 여신을 따르는 추종자들. 

여신만을 깊게 믿는 

“아······.” 

이제는 진짜로 모르겠다. 

그야말로 불가해(不可解)의 극을 달리는 존재. 

살려달라는 말도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예언한 대로 하나 받아가마.” 

예언? 

무슨 예언? 

‘설마!’ 

아론은 본능적으로 왼쪽 팔을 뒤로 젖혔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촤아악! 

“아악!” 

어깻죽지부터 말끔하게 잘려나간 왼쪽 팔. 

“아, 아파, 아프다고······!” 

바닥을 구르며 아론은 소리를 내질렀다. 

콸콸 흘러대는 피는 어느덧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제발 이 고통을 멈춰줘! 끝내줘!’ 

이내 아론의 몸이 물고기처럼 펄쩍대더니, 새하얀 안색으로 기절하고 말았다. 

고통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기절하기 직전 아론의 귓가엔 환청이 들려왔다. 

-이곳 11층에서 왼쪽 팔 하나가 잘릴 거다. 

-······? 

-12층에선 오른쪽 팔 하나가 잘릴 거고, 13층에서는 왼쪽 다리가, 14층에서는 오른쪽 다리가 하나씩 잘려나갈 거다. 그리고 15층에선······ 그건 가서 생각해 보도록 하지. 

그건 아론의 고통이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라는 내용의 환청이었다. 

《100명의 탈락자가 발생했습니다.》 

《남은 도전자 900명이 투신의 탑 ‘12층’으로 향합니다.》 

《90명이 탈락하면 13층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동등한 투쟁’이 30분 뒤 시작합니다.》 

12층. 

구성도, 구색도 모두 같았다. 

하지만 유일하게 달라진 게 있다면. 

“······.” 

“······.” 

그건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 

처음부터 나는 ‘요주의 인물’이었고, 전원이 내 탈락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은 틀렸다. 

11층에서 내가 탈락시킨 성기사만 열 명에 달했다. 

탈락자의 10%를 나 혼자 만든 셈. 

그 전투를 지켜본 이들이 어디 한, 둘이겠나. 

‘전부.’ 

이곳에 모인 전원이 내 전투를 지켜봤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나를 완전히 배제하기로 했군.’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구태여 먼저 덤벼들진 않겠으나, 틈을 보이면 그 즉시 공격해오리라. 

하지만 다른 적대적인 그룹도 많기에 우선은 배제해놓았다. 

‘가장 유력한 곳은 용병왕의 제자 휴스타 그룹과 데르시안 그룹, 그리고 태양의 기사 한체스의 그룹이로군.’ 

삼파전. 

누가 완전한 승기를 잡았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아직은 내 쪽으로 돌릴 인원이 없다는 말. 

아마도 아론과 성기사들이 나를 배제시켜 주거나, 시간을 끌어주길 은근히 희망하고 있겠지. 

‘그나저나.’ 

아무렴. 

오히려 좋았다. 

어차피 당장은 저들에게 시선을 돌릴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보단 나는 눈앞에 떠오른 다른 글귀에 더 주목했다. 

《‘천마신공-생사록’이 발동해 마력을 흡수합니다.》 

《마력이 5 올랐습니다.》 

천마신공, 생사록. 

‘내가 죽인 자들의 마력을 흡성대법이 흡수했다.’ 

열 명의 성기사를 죽여 5의 마력이 올랐다. 

이는 망자왕의 스킬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죽는다고 전부 망자가 되는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천마신공은 달랐다. 

내가 죽인 자들 전원의 마력을 모조리 흡수한다. 

그리하여 내 마력으로 변환시킨다. 

‘······ 미쳤군.’ 

단순히 따져봐도 망자왕의 스킬보다 고점이 훨씬 높다. 

하물며 내 ‘그릇’은 한계가 없다. 

말인즉, 끝없이 펼쳐져나갈 수 있는 말. 

그리고 성장한 건 내 마력만이 아니었다. 

《‘초월지검’이 피를 머금고 한 단계 강화됩니다.》 

《‘진 초월지검’으로 강화되었습니다.》 

초월지검. 

스스로 성장하는 검. 

4단계의 성장을 마치면, 성장한 환경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초월한다. 

그리고. 

《‘위대한 전승’에 의해 히든클래스 ‘성휘를 지우는 자’가 연성되었습니다.》 

《‘성휘를 지우는 자’ 히든클래스를 계승하시겠습니까?》 

······ 성기사들을 죽였더니 또 다른 히든클래스가 연성됐다. 

성휘를 지우는 자. 

내 행동이 곧 히든클래스로 연결된다.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끝까지 올라, 기록을 갱신한다.’ 

그래서 목적도 바뀌었다. 

아무래도 끝까지 올라야겠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끝을 봐야겠노라고. 

그러면 지금까지 떠오른 히든클래스를 넘어서는 ‘전승’이 완성되리라 확신했다. 

나는 천천히 몸을 풀었다. 

이윽고. 

《30분이 경과했습니다.》 

《12층, ‘동등한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30분이 경과했습니다.》 

《14층, ‘동등한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12층이 지나, 13층을 넘어, 14층에 다다르자 남은 도전자 전원은 같은 생각을 했다. 

‘저놈은 위험하다.’ 

‘아드리움의 현!’ 

‘놈부터 탈락시켜야만 한다.’ 

그가 보여준 무력은 너무나도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층을 거듭할수록 더욱 강해지는 것만 같았다. 

하나, 둘, 남은 그룹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그들끼리 싸울 때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탓이다. 

“저, 정신이 드십니까, 아론 님?” 

성기사 한 명이 기절한 아론을 바라보며 외쳤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투쟁이 시작되면 아론은 강제로 깨어났고, ‘예언’대로 사지를 하나씩 잃어갔다. 

그건,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였다. 

“왜······.” 

투쟁이 시작되자 아론의 정신은 다시 깨어났다. 

어느덧 남은 성기사는 고작 세 명. 

모두가 자신을 치료하는데 모든 성력을 쏟아넣고 있었지만. 

‘왜 기권할 수가 없는 거야······.’ 

아론의 표정은 절망 그 자체였다. 

기권할 수 없다. 

기권한들, 기권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투신의 탑은 처음부터 이들을 살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아론은 모든 전의(戰意)를 상실했다. 

떨어진 사지는 붙지도 않았다. 

놈의 마력이 너무 높아서, 베인 부위에 신성력이 먹혀들지 않는 것이다. 

남은 건 오른쪽 다리 하나뿐. 

이제는 걸을 수도 없었다. 

동시에 짙은 후회감이 밀려들었다. 

아드리움의 현. 

그를 도발한 걸 후회한다. 

툭. 

투욱. 

투쟁이 시작되고, 그는 다가오고 있었다. 

“아, 아론 님?” 

“비··· 켜라.” 

아론은 바닥을 기었다. 

이게 마지막 방법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남은 다리 한쪽과 몸통과 머리를 이용해 필사적으로 바닥을 기고, 기고, 또 긴다. 

그리하여 남자의 앞에 멈춰섰다. 

“기, 기겠습니다. 제,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멈춰선 건 단순히 ‘도발’에 대한 잘못을 빌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아론은 머리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 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은 아, 아, 악신의 사도 따위가 아닙니다. 당신은······.” 

처음에는 몰랐다. 

왜 성기사들이 그의 머리 위를 바라보며 죽어갔는지. 

그러나 이제는 알겠다.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죽음의 경계에 발을 밀어넣을수록. 

······ 느껴진 것이다. 

그리고 보인 것이다. 

심지어 그때도 믿지 못했으나, 이제는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론은 머리를 움직여 허공에 여신교의 성호를 그었다. 

“당신은······ 여신께서······ 가장 사랑하는 분이셨군요······.” 

남자는 여신의 사도였다. 

아니, 사도 따위가 아니다. 

사도라는 말로는 감히 정의할 수 없는. 

여신의 ‘사랑’을 받는 자다. 

성녀보다도, 교황 성하보다도, 더욱이 여신과 가까운 자였다. 

그것을 뭐라 칭해야할까. 

감히 자신 따위는 정의할 수 없다. 

“······.” 

남자는 물끄러미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툭. 

그리곤 아론을 지나쳐갔다. 

“아드리움의 현! 우리가 잘못 생각했음을 인정하마.” 

“미안하지만 너부터 죽여야겠다.” 

그룹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모두가 아드리움의 현을 잡고자 뭉쳤다. 

그 숫자가 어림잡아 이백을 넘어간다. 

아론은 다급히 남은 성기사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들은······ 저분을 도와······.” 

이미 늦었지만. 

아무리 그라도, 저만한 숫자를 혼자 상대할 순 없을 테니까. 

그때였다. 

화르르륵! 

그의 전신이 까만 불에 타오르기 시작한 건. 

-천마강림. 

천마신공-생사록의 진정한 힘. 

천마가, 강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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