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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67화 (267/317)

999 VS 1

덜덜덜덜! 

이자벨라의 두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안색은 새하얗게 질리고, 눈가엔 경련이 일었다. 

조금전까지만 하더라도 마차 안에 있었는데 없어졌다.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란돌프의 모습이 온데간데 보이질 않는다. 

혹시 일어나신걸까? 

잠시 볼일이 있어 어디를 들리신 것일까. 

온갖 상상이 머릿속을 휘저었지만 결론은 ‘그럴리 없다’였다. 

깨어난 란돌프가 그녀에게 아무런 언질도 없이 굳이 자리를 뜰 이유가 없었으니. 

“정말 못 보신겁니까?” 

“예, 못봤다니까요. 거 참, 귀신이 곡할노릇이네.” 

마부도 당황한 기색이었다. 

거짓말은 아니리라. 

이자벨라가 일을본건 기껏해야 5분도 채 안 되는 시간. 

그 사이에 마부가 란돌프를 옮기고 숨겼다면 티가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부의 숨소리도, 행색도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우기 전과 다르지 않았다. 

표정이나 심장박동 역시 진실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까득! 

이자벨라가 손톱을 깨물었다. 

‘빵을 사오는게 아니었어······.’ 

마차 안에 놓인 식은 빵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후회했다. 

자리를 비우는 게 아니었는데. 

하필이면 란돌프와 처음 도달한 황금의 도시, 아르카나에서 보았던 ‘빵집’이 발란왕국 왕도에 있을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50골드나 하는 미치도록 비싼 금액의 빵. 

가게 이름도 ‘빵집’이었다. 

당시에 그녀가 가진 돈은 300골드였고, 너무 비싼나머지 사먹을 엄두를 내질 못했다. 

그래서 저 ‘빵집’의 간판을 보자마자 반가운 기분이 들어서 마차를 내린 게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돌아온 것이다. 

“설마······ 납치?” 

걸어나간 흔적은 없다. 

마부도 란돌프가 나가는 걸 본적이 없다. 

땅으로 꺼졌거나, 하늘로 솟았거나, 혹은 제 3자에 의해 은밀하게 납치당했다는 의미다. 

쿵! 쿵! 쿵! 

그런 생각이 들자, 이자벨라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만약 누군가가 란돌프님을 납치한 것이라면. 

죽여버린다. 

반드시, 죽여버릴 것이다. 

허나 안좋은 생각은 계속해서 꼬리를 물었다. 

납치를 했다면 대체 누굴까? 

‘··· 의심되는 자가 너무 많다.’ 

8영웅회를 비롯한 플레이어일 수도 있고, 란돌프의 정체를 알아차린 제국일 수도 있으며, 백왕일 가능성도 있다. 

혹은 흑왕이거나, 운영자거나, 그도 아니라면 마족이나 악마들일수도 있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상상이상으로 많다. 

란돌프는 항상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너무나도 많은걸 홀로 짊어지고 있지 않은가. 

휘익! 

이자벨라가 발을 박찼다. 

멀리가진 못했을 터. 

허나 한참을 뒤져도 란돌프는 찾을 수 없었다. 

왕도는 생각보다 넓었으므로. 

‘······ 나 혼자선 찾을 수 없어.’ 

생각을 바꾼 이자벨라가 왕궁으로 향했다. 

“뭐, 뭐냐!” 

“막아!” 

“아아악!” 

휘익! 쿵! 

콰콰콰콰쾅! 

콰아아아아악! 

마치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만 같았다. 

고막을 터트릴 듯 왕궁을 깨운 거친 굉음(轟音). 

‘······ 이게 무슨 소란인지.’ 

점심의 티타임 도중 돌연 들려오는 소리에 발란 왕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이언 왕국의 프리드릭 왕에게 한방 먹여준 게 엊그제 같거늘. 

그리하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와중에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하하. 신경쓰지들 마시오. 그보다 새외에서 새로 들여온 허브인데, 맛이 썩 괜찮지 않소?” 

왕은 신경을 접었다. 

지금은 눈앞에 있는 성녀와 세렝게티가 훨씬 더 중요했으므로. 

“웩. 이게 무슨 개똥같은 맛이야.” 

“음, 마시따!” 

게다가······ 저 두 아이. 

스스로를 이세라와 루카리아라고 밝힌 소년과 소녀. 

극명한 반응을 보이는 저 두 아이의 존재는 왕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강렬한 이질감을 갖고 있었다. 

성녀와 세렝게티마저도 묘하게 어려워하는 기색을 보면, 틀림없이 귀인일 터. 

쿵! 쾅! 콰르릉! 

꽈꽝! 꽈꽈꽝! 

“하하······.” 

“치, 침입자입니다!” 

그때 헐레벌떡 달려온 병사가 외쳤다. 

결국 발란 왕은 한숨을 내쉬었다. 

“··· 어떤 간큰 놈이 궁의 입구로 대놓고 침입해온다는 말이냐?” 

“웬 미친여자가······!” 

“미친여자라니?” 

“세렝게티님과 성녀 세아님을 뵈어야겠다고 난동을 피우고 있습니다!” 

세렝게티와 성녀 세아가 이곳에 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엄청난 활약으로 발란 왕국을 지켜내었으니 얼굴 한 번 보려고 난동을 피우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시끄러운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발란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년이로군. 그런데 왜 제압을 못하고 있느냐?” 

“그, 그게······!” 

궁에 있는 병사와 기사들로도 제압이 안 되는 존재. 

순간 옆에서 세렝게티가 고개를 갸웃했다. 

“익숙한 기운이군.” 

“호호. 저는 누군지 알 것 같군요.” 

세아 성녀가 미소짓자 세렝게티는 미간을 모았다. 

“누구지?” 

“기운이 훨씬 더 강해졌네요. 정말 모르겠나요?” 

“으음······ 이 패도적인 기세. 사막처럼 뜨겁고, 야수처럼 날카롭다. 내가 아는 자 중에 이런 기운을 펼쳐내는 건······ 이자벨라?” 

“맞아요.” 

“그런데 이자벨라가 왜 궁을 공격하고 있지?” 

이자벨라. 

세렝게티가 아는 그녀는 누구보다도 신중하다. 

생각이 많고, 조용하며, 그래서 약간 재미는 없지만, 한 번 물면 끝을 보는 뱀과 같은 기질을 갖고 있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궁을 공격할만한 위인은 아니다. 

자신들을 찾는 다급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높은 확률로 란돌프와 관계된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척! 

“가봐야겠군.” 

세렝게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궁의 입구로 향하자. 

족히 수백명이 널브러진 참혹한 현장의 가운데에, 이자벨라가 있었다. 

그것도 악귀와도 같은 굳은 얼굴로. 

이자벨라가 저런 표정을 짓는걸 한 번도 본 적이 없기에 세렝게티는 긴장했다. 

만에 하나의 상황에서 제압을 해야만 할 수도 있었으니. 

“이자벨라. 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 

그러자 이자벨라가 고개를 돌려 세렝게티를 바라봤다. 

하지만 여전히 굳은 기색은 풀리지 않았다. 

그 이유를 세렝게티는 곧 알 수 있었다. 

“······ 란돌프님이 사라졌다.” 

그 한 마디면 충분했으니까. 

발란 왕국이 발칵 뒤집어졌다. 

뒤집어졌다는 표현이 실로 적확했다. 

발란 왕은 무언가 찔렸는지 궁을 공격한 이자벨라를 도리어 극진한 귀인으로 취급했으며, 란돌프를 찾는 일에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왕도와 연결된 입구를 전부 폐쇄하고 수배령까지 내렸지만 끝내 란돌프는 찾을 수 없었다. 

“란돌프님이 사라지셨다고?” 

“······ 저도 도와드리죠.” 

이자벨라와 세렝게티, 성녀 세아, 이세라와 루카리아, 허드슨과 엘프 아우릴까지. 

모두가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란돌프 찾기’에 돌입했다. 

그렇게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발란왕국에서 시작된 작은 돌개바람은, 거대한 태풍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카라스······ 이 빌어먹을 놈이.’ 

팔가 기사단의 단장. 

라이가가 탑의 밖에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투신 카라스가 탑의 주인된 권한으로 라이가를 쫓아냈기 때문이다. 

-적어드릴까요? 

귓가를 아른거리는 그 한 마디. 

생사경의 소실된 부분을 적어주겠다는 말. 

팔가의 염원을 이루어주겠다던 그 녀석은, 지금 탑의 11층에 있다. 

라이가는 안절부절 못했다. 

‘··· 입장할 수 없다. 입장 자체를 막아놓았다. 이 시련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나갈 수도, 들어갈 수도 없다는 말이다.’ 

빌어먹을! 

아드리움의 현. 

아무리 놈이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재정비된 투신의 탑은 미지다. 

11층부터 뭐가 어떻게 돌아갈지 알 수가 없다. 

과연 녀석이 살아돌아올 수 있을까? 

‘제발 살아돌아오기만 해다오······!’ 

그가 누군가를 이토록 간절하게 갈망한 적이 또 있었던가. 

만약 도전자 중 누군가가 아드리움의 ‘현’을 털끝 하나 건드린다면 갈기갈기 찢어발기겠지만 당장 라이가가 손을 쓸 방도가 없다. 

그리고 자신의 희망과는 달리 녀석이 살아돌아오긴 힘들 것이다. 

탑에 함께 갇힌 천재 천명과 경쟁하기엔, 아드리움의 현은 아직 너무 약했으니. 

《투신의 탑 11층에 입장한 것을 환영합니다.》 

《11층부터 15층까지 ‘동등한 투쟁’이 시작됩니다.》 

《도전자 모두가 능력치 포인트 300을 얻습니다.》 

《포인트는 자신이 원하는 능력치(힘, 민첩, 체력, 지능, 마력)에 투자할 수 있으며, 한 번 투자한 포인트는 번복할 수 없습니다.》 

《능력치를 제외한 모든 ‘능력’은 유지됩니다.》 

《도전자 1,000명 전체가 겨루어 그중 100명이 탈락, 혹은 항복하면 다음 층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30분 후 시작됩니다.》 

탑의 11층. 

강제적으로 이동된 천명은 모두가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바라봤다. 

“재밌군.” 

“뭐야, 이 규칙들은.” 

“다 죽이면 내가 우승자가 되는 건가?” 

완전히 바뀌어버린 판. 

하지만 크게 당황하는 사람은 몇 없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모두 천재로 추앙받던 이들. 

변화에 대한 적응 역시 빠른 게 당연했다. 

‘재정비된 탑, 재정비된 규율.’ 

란돌프로 탑을 오를 때와 백팔십도 다르다. 

그땐 이런 규칙 따윈 없었으니까. 

동등한 투쟁. 

표현은 동등하다 했지만, 엄청나게 불합리한 조건이었다. 

결국 동등한 건 능력치 포인트 300뿐. 

‘클래스나 스킬, 장비나 도구, 혹은 인맥··· 그 모든걸 이용해야만 하는 구조로군.’ 

자신이 가진 것을 잘 활용하기 위한 능력치 분배가 필요하다.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했으며, 갑작스럽게 약해지거나 강해졌을 때 신체가 어떻게 움직이고 적응할지도 잘 생각해야만 한다. 

뿐만인가. 

모든걸 준비하고 대비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게 있었다. 

바로 혼자 있지 않는 것. 

‘······ 천명이 한꺼번에 격전을 벌인다.’ 

그 외에 규칙은 없다. 

백 명이 탈락할 때까지 싸움은 무한히 계속된다. 

각축전이 시작되기 전에, ‘내 편’을 만드는 게임이다. 

더 많이, 더 강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자가 승리한다. 

15층까지 이 싸움은 계속해서 진행될 테니까. 

“카르텔의 용병들은 모두 모여라!” 

“태양의 후예들이여! 함께하도록 하지!” 

“데르시안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눈치빠른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시별로, 나라별로, 혹은 단체별로. 

최대한 목소리를 높여 한 명이라도 더 끌어들이고자 발버둥을 쳤다. 

이건 전쟁이었다. 

천명이 벌이는 수많은 전쟁의 축소판. 

도시별로, 혹은 나라별로 서로 사이가 좋거나, 좋지 않거나, 힘이 세거나, 세지 않거나 등등, 그 모든 것들이 적용되는 아귀다툼이었다. 

‘뭉쳐야 산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이미 ‘도시’에 따라 사람을 구분하고 모아놓지 않았던가. 

뭉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저 누가 더 빨리 뭉치냐의 싸움. 

비슷한 능력치를 가진 이상 30분 안에 한명이라도 더 끌어들이는 게 가장 중요했다. 

숫자가 적은 곳부터 잡아먹힐 테니까. 

고립되면, 먹잇감이 될뿐이다. 

그리고 가장 고립되기 좋은 건 ‘나’였다. 

“······.” 

“······.” 

주변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 

나는 이미 너무 많은 주목을 받아버렸다. 

워리어 대회의 유일한 참가자이며, 생사경을 가장 먼저 습득하여 라이가의 총애를 받기 직전까지 가지 않았던가. 

‘고작 레벨 4밖에 안 되는 놈이 나를 넘어서?’ 

‘아드리움의 현? 지위도, 계급도 별볼일 없어보이는 놈이 감히 나를 재치고 라이가님의 눈에 들다니.’ 

‘저놈만 사라지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저딴게 나보다 뛰어난 천재라고?’ 

······ 저 살벌한 눈빛들만 봐도, 나에 대한 적의를 알 수 있다. 

대놓고 살기를 드러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 나를 받아줄 곳은 어디에도 없다. 

받아줬다간 다른 그룹으로부터 그 즉시 공격당할 터. 

시작도 전에 어느 한곳에도 속하지 못한 채 표류하는 중이다. 

나는, 고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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