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65화 (265/317)

신기술

《‘위협’을 감지했습니다.》 

《‘철혈군주의 심장’이 발동됩니다.》 

시선에 얽힌 기운. 

그저 가만히 바라보는 것조차 ‘위협’으로 간주될 만큼 라이가의 격은 이미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울타리를 한참이나 넘어서고 있었다. 

태고의 존재와도 어깨를 나란히 했던 강자. 

모든 격을 발산했을 땐 한순간 천마조차도 뛰어넘지 않았던가. 

세계관 최강자의 반열에 충분히 들어가는 강자가 바로 라이가다. 

하지만 그의 ‘위협’도 ‘철혈군주의 심장’을 파고들진 못했다. 

말 그대로 철혈의 심장을 지니게 해주는 히든 특성이었으니. 

모든 기운, 기세로부터 보유자의 정신을 지켜주는 절대적인 안전장치 말이다. 

“······?” 

라이가는 일순간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시선을 받아낼 수 있는 자는 극소수다. 

별을 먹고 초월한 자가 아니고선 불가한 일. 

하지만 지금, 자신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낸 남자의 레벨은 결코 ‘초월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4?’ 

머리 위에 떠오른 4라는 숫자. 

이는 저 남자의 레벨이 4라는 의미다. 

이상하지 않은가. 

자신의 시선을 받으면 졸도하거나,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레벨. 

고작 레벨 4에 불과한 놈이 정면에서 자신의 눈빛을 받아내고 있다니! 

‘대천사의 정보가 틀릴 리는 없을진대.’ 

떠오른 수치가 틀릴 일은 없었다. 

사신교의 대천사. 

그 대천사가 지닌 ‘권능’은 오로지 정보를 읽고 수치화하는 것이므로. 

대천사는 진리를 파고드는 기적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다. 

고로, 레벨 4가 맞을 것이다. 

‘정신을 보호하는 장비나, 도구, 혹은 히든 특성.’ 

경우의 수를 떠올려 봤으나 이 역시 마땅치 않았다. 

우선 장비나 도구는 아니다. 

자신의 기세를 완벽하게 튕겨내려거든 최소 유일등급의 장비나 도구가 필요하다. 

어느 왕국에서도 국보급으로 취급될 보물을 고작 레벨 4짜리에게 쥐여 준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남은 건 히든 특성인데······. 

‘철혈군주의 심장을 달성하기 위한 조건은 마찬가지로 레벨 4로 이룩할 수 없지.’ 

압도적인 재능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철혈군주의 심장’을 개화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태어날 때부터 재능을 극한으로 갈고닦은 채 세상에 나오는 인간은 없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인간이며 인간이 아닌 자들. 

‘플레이어.’ 

사신교에선 ‘죄인’이라 부르는 존재.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수많은 재능을 갖는다. 

극소수는 ‘히든 특성’마저 개화시킨 채 세상에 나타난다. 

불공평하지 않은가.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누군가는 평생을 바쳐도 도달할 수 없는 경지를 이룩할 수 있다는 건. 

아무리 라이가가 하늘을 비웃는 재능의 소유자라고 할지라도 그는 노력했다. 

눈을 뜨면 검을 휘둘렀고, 밥을 먹으면서도 검을 휘둘렀으며, 볼일을 볼 때도 검을 휘둘렀다. 

심지어 잠을 자면서도 근력 훈련을 이어나갔다. 

그에 반해 플레이어는 얼마나 불합리한가. 

‘재능이 있다 한들, 플레이어를 팔가의 후계자로 이끌 생각은 없다.’ 

세상의 모든 재능 있는 사람을 보고자 연 대회이지만. 

플레이어만큼은 추호도 제자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애당초 그들은 이 세계의 인간이 아니지 않나. 

후계자에 합당한 사명감과 의무를 부여한들 도망치면 끝. 

‘이곳에 플레이어는 없다.’ 

그리고 이곳에 플레이어는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결국 플레이어는 빙의자다. 

다른 몸에 기생하는 악귀와 다를 게 없다. 

그러한 빙의는 신체와 영혼, 정신에 불균형을 낳는다. 

현재 대천사는 심기체가 불안정한 ‘불균형자’를 잡아내고 있었고, 적어도 지금 이곳 투신의 탑에 플레이어로 짐작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심혈을 기울여 모두 걸러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 남자는 무엇일까. 

레벨 4이며 플레이어도 아니라면. 

‘··· 두고보면 알겠지.’ 

라이가는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과연 얼마나 비범한 놈인지는 대회를 진행하면 알게 될 터이니. 

1레벨에서 5레벨까지 참가하는 ‘워리어’ 등급의 경기는 2층에서 치러졌다. 

가장 낮은 구간의 대회이니만큼 참가자도 적었고, 기대도 적은건 당연지사. 

텅 빈 관람석, 초라하기 짝이 없는 대회장. 

먼지마저 풀풀 날리는 걸 보니 아예 관리가 안 된 것 같았다. 

‘오랜만에 서는군.’ 

그 가운데에서 나는 추억을 회상하고 있었다. 

황제펭귄이 되어 바니걸 엘프 아우릴과 함께 투신의 탑을 올랐던 일. 

정체를 숨기고, 관리자인 산샤의 이목을 끌고자 했던 변장이었으나 결국 산샤는 죽었다.

지고의 검성이 지닌 고유 스킬 ‘지고의 검’을 사용해 내가 죽였다. 

“어이, 죽기 싫으면 기권해라. 난 힘조절 같은 건 못하니까.” 

지근거리에서 들려오는 말소리. 

··· 맞다. 

생각해 보니 지금은 경기중이었다. 

경기가 시작된 지 벌써 십여 초가 지나 있었던 것이다. 

도끼를 든 남자의 눈빛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심신미약자라면 오줌을 지려도 이상할 게 없을 듯했다. 

【Lv.5】 

레벨 역시 ‘워리어 챔프’에선 가장 높은 5. 

보아하니 버프를 받고 능력치를 높여 단단한 기천석에 흠을 낸 모양이었다. 

실시간으로 그에게 ‘버프’를 걸어주는 ‘버프사’가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반칙 아닌가?’ 

음. 

생각해보니, 버프를 걸어 주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다. 

나는 주먹을 쥐어 보였다. 

“죽기 싫으면 기권해라. 나도 힘 조절 같은 건 못하니까.” 

“미친놈. 지금 나를 따라하는 거냐?” 

“진짠데.” 

“오냐, 죽고 나서 후회하지 마라.” 

휘이익! 

남자가 도끼를 들고 죽일 기세로 그대로 내리쳤다. 

꽈앙! 

동시에 남자의 신형이 반대편으로 날아가, 그대로 벽에 내다꽂혔다. 

도끼는 부서졌고, 남자의 가슴은 짓뭉개져 있었다. 

즉사다. 

“뭐,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눈을 깜빡이며 경악을 내질렀다. 

“아드리움 도시의 현, 승리!” 

곧이어 심판이 외치는 소리를 듣곤 가볍게 손을 털며 퇴장했다. 

‘역시 힘 조절이 안 되는군.’ 

태고의 갑옷에 착용한 천축의 고래 탈리스만. 

덕분에 말도 안 되는 능력치를 얻었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정말로 힘 조절이 안 된다. 

나는 천축의 고래 탈리스만의 정보를 떠올렸다. 

【천축의 고래 탈리스만(대흉)】 

-세계의 축을 무너트린 대흉의 괴물, 천축의 고래의 정수 

-태고의 갑옷에 의해 1.5배 증폭된 상태 

-힘+30 

-보유한 힘 능력치의 최대 1.5배에 달하는 무작위 타격이 추가 발동됨 

······ 탈리스만 한 개로 단일 능력치 30 상승이라니. 

‘다시 봐도 미쳤군.’ 

단일 능력치를 이정도로 올려주는 물건은 판게니아를 하며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최대 1.5배의 무작위 추가 타격도 마찬가지다. 

메인 퀘스트 11을 통해 얻은 보상 중 가장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탈리스만이라 할 수 있다. 

덕분에 능력치 상승이 어마어마했으니까. 

‘이걸 레벨 4의 능력치라 할 수가 있나.’ 

나는 상태창 중 ‘능력치’에 적힌 수치를 확인하곤 혀를 찼다. 

<능력치> 

레벨 : 4 

힘 : 90(60+30) 

체력 : 56 

민첩 : 60 

지능 : 56 

마력 : 92 

‘능력치 총합 354······.’ 

웬만한 9레벨에 버금간다. 

하물며 힘과 마력은 자리수가 다르다. 

‘힘 능력치 135 이내의 무작위 추가 타격이 들어간다는 말이지.’ 

천축의 고래 탈리스만이 가진 옵션. 

최소 1에서 최대 135에 이르기까지, 무작위 타격이 ‘추가’된다. 

오로지 ‘힘’의 능력치만을 따져서 말이다. 

이는 내가 제대로 타격을 하지 못했더라도, ‘타격’으로 인정되면 그 순간 발동되는 것이다. 

‘최대치로 발동되면 저놈은 가루가 됐겠지.’ 

다소 잔인하긴 하지만, 어차피 살인도 허용되는 대회다. 

진심을 다하지 않으면 자신은 죽는 그런 자리. 

나는 조용히 경기장을 나섰다. 

3일이 지나자, 대회의 윤곽이 드러났다. 

슬슬 누가 우승할지에 대한 이야기가 분분해진 것이다. 

그중 모두의 이목이 쏠린 건 두 대회에 관해서였다. 

나이트 챔프와 킹 챔프. 

레벨이 높은 만큼 보는 재미도 있었고, 우승후보로 여겨지는 강자들은 모두 한결같이 유명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 보고는 이게 전부인가?” 

보고서를 받아든 라이가가 기사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예. 여신교 요한슨 추기경의 자제 아론, 용병왕의 제자 휴스타가 현재 ‘나이트’ 규격의 대회 우승후보자로 유력합니다.” 

“‘킹’ 규격의 대회 우승후보자로는 데르시안 가문의 휴, 다르칸 가문의 생존자 아르칸, 태양의 기사 한체스가 접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툭. 

라이가가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세계 곳곳에서 쟁쟁한 이들이 모였고,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사람도 꽤 많았다. 

하지만 라이가를 완전하게 ‘만족’시킬 만한 이는 없었다. 

“‘워리어’ 대회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그게······ 별게 없습니다.” 

기사들이 당황한 기색을 지었다. 

워리어 대회는 말 그대로 ‘떨거지들’이 모인 대회. 

우승후보자로 거론되는 이가 있기는 하지만, 앞서 말한 이름들에 비하면 솔직히 별게 없었던 탓이다. 

“말해봐라. 보고서에도 누락된 듯한데.” 

“아드리움의 ‘현’이라는 남자가 유일한 우승후보로 거론되고는 있습니다.” 

“현?” 

“예, 이 남자입니다. 하지만······.” 

굳이 보이지 않은 보고서를 슬쩍 건넸다. 

그곳엔 ‘현’의 전적이 적혀 있었다. 

10승 0무 0패. 

3패를 하면 자동탈락되는 구조인데도 불구하고 완벽한 전적이다. 

왜 그런데도 거론하지 않은 걸까. 

“10승 중 7승은 모두 ‘기권패’로 얻은 성적입니다.” 

“일곱 명이 기권했다?” 

“예, 기권하지 않은 상대는 모두 잔인하게 죽였다고······ 겁을 먹고 기권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기록만 보면 그렇다. 

한 방에 때려죽이고, 그 모습이 실로 처참했다는 기록. 

이에 겁을 먹은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기권했다는 것이다. 

워리어 대회는 레벨이 낮은 만큼 투쟁심이 없는 자들도 수두룩할 터. 

하여 제대로 된 ‘우승 후보’로 언급하기 애매하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라이가는 달랐다. 

‘그놈이로군.’ 

자신의 시선을 그대로 받아내던 놈. 

확실하게 좌중을 제압할 줄 아는 놈이다. 

쓸데없는 전투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장 확실하게 ‘위협’을 주는 것이니까. 

앞선 세 명을 잔인하다 할 정도로 묵사발 내어 일곱 번의 기권을 받아내지 않았는가. 

하물며, 상대했던 세 명 전부 ‘한 방에’ 죽을 수준은 아니었다. 

‘······ 무언가가 있다.’ 

자신도 파악하지 못한 무언가가. 

생각을 정리한 라이가가 말했다. 

“10승을 달성한 참가자는 모두 10층으로 올리도록.” 

“모두, 말입니까?” 

“모두.” 

“알겠습니다.”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곤 방을 나섰다. 

이 대회는, 단순히 무력만을 따지는 그런 대회가 아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는 대회였다. 

‘0에서 시작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그간 배운 게 전혀 쓸모없어지는 상황에서 얼마나 잘 헤쳐나갈 수 있을지를 보는 시험. 

과연 몇 명이나 제대로 통과할 수 있을지. 

아니, 한 명이라도 제대로 깨우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어쩌면 한 명도 합격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이번 시험은, 자신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그야말로 극악(極惡)의 난이도니까. 

탑의 10층에 들어서자, 눈앞에 놓인 건 한 권의 책이었다. 

“이것을 읽고 익혀라.” 

팔가 기사단의 기사단원 중 한 명이 말했다. 

10층에 모인 사람은 대략 천명가량. 

동시에 모두가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생사경.’ 

삶과 죽음의 경계. 

묘한 이름의 서적이다.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기사들의 옆에 놓인 거대하기 짝이 없는 마정석. 

저건 왜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익히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그래.” 

한 남자의 물음에 기사가 긍정했다. 

그저 익히기만 하라. 

이 또한 이상한 주문이지만, 보고 익히기만 하면 되는 쉬운 일이다. 

그러나 곧이어 모든 이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야, 이건?” 

“내용이 없잖아?” 

“대체 뭘 익히라는 거야?” 

책을 넘기자 아무런 글자도 적혀있지 않았다. 

당연히 보고, 익힐 수 있는 것도 없었다. 

하지만 기사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숨겨진 글자가 있는 건가?’ 

‘책을 보는 방법이 따로 있는 건가?’ 

생각나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봤지만 마찬가지다. 

한 글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내로라하는 사람들 모두가 당황했다. 

사기가 아니냐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다. 

‘으음.’ 

‘내용이 뭐 이따구야?’ 

극소수의 몇 명만이 무언가를 발견한 듯 읽어나갈 뿐이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애를 먹고 있었다. 

첫번째 장을 넘기는 사람이 아예 없었다. 

툭. 

단 한 명. 

한 남자가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까지는. 

시작한지 10분이 채 되지 않았을 때의 일. 

“······ 아드리움의 현.” 

“익히지 않았는데도 자리에서 일어나면 탈락이다.” 

탈락을 자처하는 걸까? 

뚜벅, 뚜벅. 

모두의 시선 가운데에, 나는 기사들의 중심부로 천천히 다가갔다. 

이후 그들의 옆에 있는 마정석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휘아아앙! 

마정석의 마력이 손가락 끝으로 빨려들어간다. 

《‘천마신공’의 묘리를 이용해 ‘흡성대법’을 익혔습니다.》 

《‘마정석(특대)’의 마력을 전부 흡수했습니다.》 

《마력이 92에서 95로 상승합니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