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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63화 (263/317)

히든 탈리스만 큐브

황궁.

연무장에서 검을 쥐고 있던 라이가를 찾아온 황금 가면은 대뜸 욕설을 내뱉었다. 

“라이가, 미친 거냐?” 

“너야말로 미친 거냐? 신성한 연무장에서 욕설이라니?” 

빠득! 

표정 한점 변화없는 라이가의 태도에 황금 가면의 이를 갈았다. 

“······ 왜 대회에 여신교를 참가시킨거지?” 

필시 제국신민만 참가할 수 있도록 하는 대회였다. 

그런데 갑자기 관련규정이 바뀌더니, 참가 가능한 범위도 대폭 늘어났다. 

아무런 상의도 없이. 

판게니아의 인간이라면 모두 참가가 가능하도록 라이가가 손을 쓴 것이다. 

심지어 규모도 배로 커졌다. 

이는 필히 회의를 통해 승인되어야만 하는 안건. 

“내가 적어놓은 모집요강을 잘 읽어보거라. 재능이 있는 쓸만한 인재라면 두루 등용한다. 대회의 취지는 처음부터 그랬다만?”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황금 가면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이놈, 라이가와 대화하면 항상 이야기가 겉돈다. 

매번 혈압이 오르는 기분이다. 

여신교와 사신교는 절대로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사이. 

하물며 제국은 상상이상으로 폐쇄적인 곳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황제는 잠들어있고, 온갖 잔악한 실험도 버젓이 행하고 있으며, 오로지 그들만 알아야하는- 판게니아의 누구도 알아선 안 되는 수많은 비밀들을 품고 있었다. 

당연히 제국과 황궁 내로 다수의 사람이 들어올 경우 비밀이 발각될 수도 있었다. 

그럴진대······ 라이가는 사신교의 간부 대다수가 ‘황금의 정령왕’을 찾으러 제국을 떠난 사이에 이런 사단을 벌일 것이다. 

“말이라고 하는 거다. 도저히 이 제국에는 나를 이을만한 쓸만한 놈이 없으니까.” 

하지만, 라이가도 양보할 수가 없었다. 

양보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가까스로 티는 안 내고 있지만 라이가는 서서히 죽어가는 중이었다. 

‘내상을 치료할 길이 없다.’ 

모든 가호와 오문의 개방으로 인한 부작용. 

필사(必死)의 저주다.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근원지기는 말라만 간다. 

피해갈 길 없는 이 저주로부터 팔가를 계승시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 나라와 종교를 불문하고 팔가의 계승자를 찾겠다? 오로지 재능만 있다면 모든걸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 

“황금 가면. 오랜만에 말이 통하는군.” 

“설령 그게 여신교의 사제라도 말이냐?” 

“아아, 상관없다.” 

빠드득! 

“네놈······ 당장 대회를 중단······.” 

“받아라.” 

툭! 

라이가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황금 가면에게 던졌다. 

순간 던진 것을 받아든 황금 가면의 눈빛이 묘하게 뒤틀렸다. 

“··· 이건?” 

“교만의 심장이다.” 

교만의 악마. 

놈과 내기를 통해 얻은 심장이다. 

교만의 악마를 컨트롤할 수 있는 이 심장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 있는 보물! 

정상적으로 대회를 열려거든 라이가도 소중한 걸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황금 가면도 의아해하며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목이 마르니까.” 

“······?” 

“미치도록 갈증이 난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깨닫는 것도 있는 법이었다. 

생사의 벽. 

그 벽을 넘어서고 싶다는 목마름. 

라이가는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도저히 그 벽을 넘고 길을 뚫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武)를 갈고 닦고자 모든 수련을 해봤으나 딱 한 가지 안 해본 게 있었다. 

‘제자를 키운다.’ 

그건 바로 제자를 키우는 것이다. 

모든 걸 아낌없이 베풀고, 가르치며 다시금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있어야만 한다. 

그러니 누구보다도 뛰어난 제자가 필요했다. 

제자를 키우는 게 라이가의 마지막 ‘한(恨)’인 것이다. 

교만의 심장까지 내놓으며 대회를 강행하려는 이유였다. 

“황금 가면. 여신교가 입상하는 게 싫다면 쓸만한 놈을 대회에 내놓거라. 네놈들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재능만 있다면 품을 터이니.” 

“······ 오냐, 그리하마.” 

라이가의 의지에 황금 가면은 그렇게 말하며 등을 돌렸다. 

강제로 멈추려 든다면 제국이 분열될 것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멈출 수 없다면, 라이가의 말마따나 다른 이들이 입상하지 못하도록 막아서면 그만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사람이 우승하여 팔가의 계승자가 되는 것이었다. 

팔가만 손에 쥘 수 있다면, 제국을 가진 것과 진배 없을 테니까. 

“이 바위에 흠집을 내면 통과다!” 

막사에 모인 수백명의 참가 희망자들을 바라보며 모집관이 외쳤다. 

곧이어 두 남자가 끙끙대며 커다란 바위를 가져왔다. 

일견 평범한 바위로 보이지만 본 즉시 저 바위가 뭔지 알았다. 

‘기천석.’ 

수련자의 산에서 보았던 기천석과 비슷한 바위다. 

저주받은 기천석을 부수며 바알을 부활시키지 않았던가. 

하지만 저주받은 기천석에 흠집을 내려면 ‘관통력’이 필요하다. 

그럼 관통력을 지니고 있는지 시험하는 자리인가? 

곧이어 떠오른 정보를 보며 나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단단한 기천석】 

-일정 능력치 이하의 모든 공격을 무효화시키는 돌. 

-능력치 총합 350 이하의 타격을 무시한다. 

능력치 총합에 따라 흠을 낼 수 있다는 뜻이다. 

힘, 민첩, 체력, 지능, 마력. 

다섯 개의 능력치가 평균 70 이상은 되어야만 합격할 수 있다. 

말인 즉, 능력치를 꽉 채운 7레벨 이상의 참가자를 원한다는 소리. 

7레벨이면 정예기사 수준이었다. 

“이 정도 쯤이야!” 

가장 앞에 선 근육질의 남자가 자신있게 나섰다. 

이어 있는 힘껏 정권을 내질렀다. 

쿵! 

“아악!” 

묵직한 음색과 함께 남자가 바닥을 굴렀다. 

바위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 생각보다 단단한 모양인데?” 

“저놈이 약골인 건 아니고?” 

뒤에 선 사람들은 꼴사납게 바닥을 뒹구는 남자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그리곤 자신있게 나섰지만. 

“커헉!” 

“뭐, 뭐야! 왜 이렇게 단단해!” 

탈락자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애초에 능력치총합 350은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단순하게 계산해도 레벨 7이 필요하지만, 능력치를 꽉 채워서 레벨을 올린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으니까. 

“역시 성도도 별 볼일 없나보군.” 

“오십명에 한 명 정도인가.” 

모집관들이 작게 중얼거렸다. 

이미 실력있는 사람들은 진즉에 참가의사를 밝혔고, 막바지에 모집하는 건 시간떼우기나 다름이 없었다. 

기껏해야 50명 중 한 명 정도만 바위에 흠집을 남겼다. 

“다음!” 

이윽고, 내 차례가 됐다. 

나를 바라보는 모집관들의 눈빛엔 별다른 기대감이 없었다. 

아니, 이곳에 모인 사람들 전부가 비슷한 눈빛이었다. 

“시간 끌지 말고 빨리 비키지.” 

“저렇게 말라서야.” 

“결과는 보나마나군.” 

실패를 확정한 듯한 모습. 

확실히 그럴만 했다. 

‘나도 능력치가 조금 부족하군.’ 

내 능력치 역시 부족했으니까. 

현재 나의 능력치 총합 역시 350이 안 된다. 

신의 섬에서 시련을 통해 올린 레벨은 4. 

능력치 총합은 324였다. 

레벨에 비하면 말도 안 되는 압도적인 능력치지만, 마찬가지로 350에는 미치지 못한다. 

‘순수 능력치가 조금 부족하군.’ 

물론, 어디까지나 레벨에 따른 ‘순수능력치’가 부족하다는 말이었다. 

장비나 도구 따위로 추가적인 능력치가 붙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부족한 능력치 26을 메꿀 장비나 도구. 

웬만한 신화나 유일등급이 아니고선 꿈도 못 꿀 일이다. 

란돌프의 장비는 당연히 공유할 수 없는 상황. 

‘······ 공유 되는 게 있었지.’ 

그런데 공유 된 장비가 하나 있었다. 

바로 이 목걸이. 

‘부서진 롱기누스의 창’을 달고 있는 이 목걸이가 란돌프와 공유하는 장비다. 

‘태고의 갑옷.’ 

목걸이로 형태를 바꾼 태고의 갑옷! 

하기야 차원을 넘나드는 ‘부서진 롱기누스의 창’을 지탱하려거든, 태고의 갑옷 정도 되는 장비가 필요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히든 탈리스만 큐브를 비롯한 또 다른 이권들.’ 

수호벽이 공유되듯. 

또 다른 ‘이권’ 역시도 공유되고 있었다. 

황금률 상점이나 이권 상점 같은 상점들. 

탈리스만 큐브는 메인 퀘스트 11에서 얻을 수 있는 이권이기에 공유되는 건 당연지사. 

그리고 ‘태고의 갑옷’과 ‘히든 탈리스만 큐브’가 공유되는 시점에서, 큐브 안에 넣어놨던 ‘탈리스만’역시 함께 연동되고 있었다. 

‘천축의 고래 탈리스만!’ 

메인 퀘스트 11의 보상 중 하나. 

어쩌면 가장 중요한 보상일지도 모르는 천축의 고래 탈리스만! 

태고의 갑옷에 장착하자 1.5배의 증폭한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나는 작게 미소지었다. 

그리곤 바위 앞에 선 채, 가볍게 정권을 내질렀다. 

꽈아아앙! 

라이가는 자신이 쥔 검을 바라보았다. 

숨을 쉬는 것도 괴롭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검을 휘두르는 걸 잊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선 지극히 평범한 일과. 

본래라면 아무런 잡생각도 없는 무념무상의 상태에 빠져야하지만. 

‘기대되는군.’ 

대회의 시작이 머지 않자 좀처럼 잡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떤 인재가 나타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한데, 과연 자신이 만족할 만한 인재가 나타날까? 

여태껏 소위 말하는 천재들을 수없이 봐왔지만 단 한 번도 그 재능에 이끌린 적은 없었다. 

전부 자신보다 못했으므로. 

뛰어난 점은 있었지만 전부 만족하는 완성형 천재는 자신을 제외하곤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판게니아 전체에서 모집하는 이상 약간의 기대가 되는 건 사실이다. 

인재를 위한 조건도 전부 정해두었다. 

예컨대 ‘단단한 기천석’에 흠집을 내는 일. 

‘단단한 기천석에 흠집을 내는 건 쉬운 듯 어려운 일이지.’ 

최저한의 능력치를 본다. 

최저한의 레벨을 본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보이는 조건’에 불과했다. 

‘능력치 총합 350. 혹은 특수한 조건에 따라 흠집을 내는 것도 가능은 하다.’ 

그보다 능력치가 적어도, 레벨이 낮아도, 단단한 기천석에 흠집을 내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특정 관통력을 지녔거나, 반사 능력을 지녔거나, 혹은 땅과 대비되는 물의 속성을 이용하거나······. 

방법은 많다. 

딱히 흠집을 내는 방법에 제한을 두지도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재능이다.’ 

레벨도, 능력치도, 상관 없다. 

조건이 부족하면 문제를 해결하는 유연성을 보이면 된다. 

어떻게든 해결하고자하는 능력 자체가 재능인 게다. 

그 ‘재능’을 찾아내고자 하는 시험. 

대회 또한 마찬가지다. 

단순히 ‘강함’만을 찾는다면 초월자가 무조건 우승할 테니까. 

그가 원하는 기준은 단 하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재능!’ 

정해진 한계를 넘어서는 천재를 원한다. 

그래서 대회도 나누었다. 

특정 레벨에 따라 치루도록. 

레벨은 사신교의 ‘대천사’가 알아서 보고 나눠줄 터이니, 과연 자신이 원하는 재목이 나타날지만 판가름하면 되는 일이었다. 

무력의 강함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다. 

부족한 레벨이나 능력치는 그가 충분히 채워줄 수 있으므로. 

“제자라······.” 

라이가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저릿저릿한 심장. 

비록 죽음이 머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아무나 제자로 받지는 않을 것이다. 

혹여나 마음에 드는 인재가 없다면, 과감하게 팔가의 대를 끊으리라. 

어중간한 놈이 팔가를 잇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전대 팔가의 주인들도 같은 마음일 터였다. 

죽어서도 그 꼴은 볼 수 없다. 

다만. 

자신이 만족할만한 재능을 지닌, 압도적인 천재가 등장한다면. 

‘나의 모든 것을 넘겨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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