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교체
광명이 비춘다.
가장 높은 성취를 이루고, 성과를 낸 10인의 인물에게서.
십만 명의 도전자.
그중 고작 열 명만이 ‘거룩한 별’로 향할 수 있었으니.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경외 어린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이룩한 발걸음 하나하나가 대단치 않은 것이 없었으니까.
기존 지구의 ‘디맨션 워리어’와는 분명하게 다른, 차세대를 이끌어갈 리더(leader)들.
세계는 저 10인에 의해 대격변을 맞이할 것이다.
“아······.”
김부장은 탄식을 내뱉으며 자신의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광명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허하디 허한 찬바람만이 무던하게 지나갈 뿐.
누구보다 앞서 나가 이 시련의 중심이 되겠다는 욕심은 그저 욕심으로 끝나 버렸다.
오른팔이 박살 난 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중심은커녕 천 길 낭떠러지 끝에서 겨우 발만 딛고 서 있을 뿐이었다.
‘내가 저 자리에 섰어야 하는데······.’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김부장은 허공에 떠오른 열 개의 광명을 바라보았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저들이 다음 세대의 주인공이라는 걸.
모든 포커스는 저 10인에게 맞춰질 것이라는 사실을.
‘내가 될 수도 있었는데······!’
분명히 본인에게도 기회가 있었다.
무리를 이끌며 더 높은 위치로 도약할 기회는 몇 번이나 존재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그 모든 게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비켜, 돼지 새끼야. 안 보이잖아.”
쿵!
거구의 남자가 김부장을 발로찼다.
그러자 볼품없이 바닥에 쓰러진 김부장은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꼽냐? 꼬우면 덤비든가. 확 묻어버릴라니까.”
하지만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오른팔이 박살 난 뒤 다른 사람들이 하나, 둘 김부장의 성장을 따라잡자 생긴 일이다.
처음 이틀간 그가 모든 성장요소를 독식한 탓에 김부장에게 원망을 가진 사람은 많았다.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고, 그 위에 서려고 했으니, 아무도 김부장을 동정하지 않았다.
도리어 지금 모습을 보며 꼴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인과응보.
자신이 저지른 업을 그대로 돌려받고 있는 셈이었다.
꽈득!
거구의 남자가 김부장의 머리를 짓밟았다.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다.
그러나 김부장은 땅만 바라보았다.
비록 ‘상위 10위’에는 들지 못했지만, 이 거구의 남자는 그에 거의 근접한 강자였기에.
자칫 잘못했다간 진짜로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나저나, 저분 이름이 뭐라고?”
거구의 남자가 선망 가득한 눈빛으로 한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시선에 닿는 곳엔 빛줄기가 내리고 있었다.
광명을 받는 자.
그리하여 천사에게로 향하고 있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남자!
“바, 박현명······ 입니다.”
꽈아아악!
그 순간 거구의 남자가 김부장의 머리 위에 올려놓은 발에 힘을 주었다.
“아악!”
“‘님’자 붙여야지. 저분이 네 친구냐?”
“바, 박현명 님입니다···!”
“그래, 돼지 새끼야. 박현명 님 아니었으면 너도 뒤졌어. 나도 뒤졌고. 우리 다 뒤졌을걸? 그러니까 앞으로도 꼭 ‘님’ 자 붙이라고.”
“네, 네······! 꼭 붙이겠습니다!”
“쯧.”
거구의 남자가 혀를 작게 찼다.
죽일 가치도 없는 버러지.
하지만 저 남자는 다르다.
박현명.
그가 지난 6일간 보여준 기적은 평생토록 잊지 못할 테니까.
열 명의 괴물.
하지만 나머지 아홉 명을 전부 합쳐도, 박현명 하나만은 못 하리라 확신했다.
그는 기존의 상식을 깨고 뒤흔드는 룰 브레이커였으므로.
‘그 추종자라는 것들도 기세만으로 압도하셨지.’
연이어 나타난 ‘천산신교의 추종자’들은 박현명을 만나는 족족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추종자’들은 하나같이 항거불가의 강자였다.
웬만한 디맨션 워리어와 맞붙어도 모조리 씹어먹을 완성형의 강자를, 이제 막 각성한 풋내기들이 상대하는 건 어불성설 꿈도 못꿀 일.
한 명을 상대하는데 족히 수백명은 죽었으리라.
한데 그러한 강자들이 박현명의 앞에만 서면 모두 같은 태도를 보인 것이다.
심지어 자결(自決)로 끝을 맺었다.
그 광경은 뭐라고 해야할까.
‘······ 경외감, 이라고 해야겠지.’
경악하고, 경외하며, 스스로의 생명을 제물로써 바쳤다.
바친 것이다.
박현명에게.
지금 광명의 빛과 함께 나아가는 저 남자에게!
신에게 공양하는 인간처럼 말이다.
처음에는 지켜보는 이들도 당황했으나······ 같은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자 모두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저 남자, 박현명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결코 평범한 인간일 수 없다.
-우매한 종이 결례를 범했나이다!
-목숨으로 사죄드리겠습니다!
-천세, 천세, 천천세!
······ 추종자들이 추종하는 신과 같은 지고한 존재.
어쩌면 신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발을 한 번 구르고, 눈빛을 쏘아내는 것만으로도 추종자들을 굴복시켰으니까.
그가 보았던 걸 말한다면 그 누가 믿을까.
그러니까 기적이다.
기적을 마주한 것이다.
‘기세만이 아니야.’
허나 박현명의 무서운 점은 추종자들을 자결시킨 기세만이 아니었다.
6일째가 되는 날 진행된 마지막 시련에서.
······ 박현명이 보여준 모습은.
“으음!”
당시의 모습을 떠올리며 거구의 남자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
거룩한 별.
신의 섬과 함께 보상으로 주어진 별.
나는 마침내 그 앞에 섰다.
그리고 깨달았다.
‘성운을 마시는 별······!’
빌헬름이 가지고 있던 별들 중에서도 가장 특출났던 별.
레벨 10을 찍어야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그 별이, 지금 내 눈앞에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별에는 ‘축복의 천사’가 깃들어 있었다.
치아아악!
손을 가까이 대자, 강렬한 통증과 함께 살갗이 타들어갔다.
‘아직 취할 수 없다.’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왜 이 별이 내게 도달하지 않았던 건지.
레벨 10을 찍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레벨 10이 되지 않았기에,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게 ‘거룩한 별’?”
“이 안에 천사가 있다는 건가?”
나를 제외하고도 별의 주변엔 아홉 명의 인물이 더 있었다.
메인 퀘스트 1, 생존에서 상위의 점수를 낸 열 명.
하지만 왜 이곳으로 모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모두가 의아해하고 있던 그 순간이었다.
「반가워요.」
머릿속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른인지, 아이인지 모를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음성으로.
「제 이름은 ‘가브리엘’」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위대한 전사들이여, 부디 투쟁하십시오.」
갑자기 투쟁(鬪爭)하라고?
설마 여기 모인 열 명이 모두 싸우기라도 하라는 말일까?
「가장 위대한 전사에게 가장 위대한 이야기를, ‘전승’을 선물드리겠습니다.」
「또한, 가장 위대한 전사만이 저를 볼 자격이 있습니다.」
······ 맞나보다.
천사 가브리엘의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서로에게서 멀어졌다.
이곳에 모인 건 십만 명 중에서도 가장 특출난 열 명.
그 실력은, 당연히 말이 필요 없으리라.
하물며 그중에서도 최강자를 가리는 자리.
“미안하지만, 다 내 밑밥이 되어줘야겠어.”
“덤벼, 이 새끼들아!”
몇몇 사람들이 자신감 가득한 목소리로 의기롭게 소리쳤다.
‘가장 위대한 전사라.’
오직 나만은 ‘거룩한 별’의 옆에서 발을 떼지 않고 있었다.
최종결산.
이 전투를 끝으로 아마 모든 ‘생존’이 완료될 것이다.
곰곰이 생각한 뒤, 결론을 내렸다.
‘제대로 보여줘야겠군.’
제대로 끝을 봐야겠다고.
*
“신의 섬. 대체 저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최소 수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실종되었습니다!”
“실종된 사람들은 모두 ‘신의 섬’이 강제소환되었다는 이야기가 현재 가장 유력하죠.”
“몇몇 전문가들은 저 신의 섬에서 ‘각성’이 이루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각종 매스컴은 난리가 났다.
신의 섬이 출현한 이후 사라진 사람들을 조명하며 온갖 기사를 쏟아냈다.
본래라면 플레이어만 볼 수 있는 ‘메시지’를 그들 모두 보았기 때문이다.
튜토리얼이 시작되었다는 말.
신의 섬에 입장하겠느냐는 그 선택창을.
“만약 일반인도 각성이 가능하다면, 현재 ‘디맨션 워리어’는 대체될 수도 있을까요?”
“······ 가능하다고 봅니다. 오로지 비각성자, 그러니까 ‘디맨션 워리어’는 ‘신의 섬’에 입장할 수 없는 걸 보면 세대의 완전한 교체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여겨지고요.”
“그럼 ‘디맨션 워리어’의 입지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겠군요!”
“사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그들이 부리는 행패를 우리는 눈감아줬습니다. 하지만 지구인의 각성은 앞으로 많은 변화를 야기할 겁니다.”
“단발성 이벤트 같은 것일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어찌 됐든 2세대 각성자가 등장한다면 그 자체로 엄청난 가능성입니다. 그간 1세대 각성자들이 누렸던 혜택들에 대해서도 다시 점검해 봐야 하겠지요.”
소위 ‘전문가’라 칭하는 사람들이 등장해 쉴 새 없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마치 그간 쌓인 울분을 풀어내듯이.
디맨션 워리어.
그들을 벌써 1세대 각성자라 칭하며, 신의 섬에 입장한 사람들을 2세대 각성자로 구분 짓기 시작한 것이다.
확실한 건 1세대 각성자 중에 ‘신의 섬’에 입장한 자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게 무엇을 뜻하겠는가.
세대를 교체하라는 신의 계시가 아니겠나.
그래서일까.
1세대 각성자, 디맨션 워리어에게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연히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어느덧 신의 섬에 도전한 사람들은 눈엣가시가 되어버렸다.
‘어차피 막 각성한 놈들이 뭘 할 수 있겠어.’
‘그래봤자 판게니아를 경험한 우리보단 약할 거다.’
‘플레이어를 대체한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쯧쯧.’
설령 진짜 각성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제 막 시작하는 초보자일 뿐이다.
판게니아를 접하지 못한 그들과 자신들간의 차이만 명확하게 비출 터.
그래서 비웃는 플레이어들도 많았다.
이후 신의 섬이 등장한지 7일차가 된 시점, 또 다른 변화가 시작됐다.
《튜토리얼이 완료되었습니다.》
신의 섬.
그곳의 튜토리얼이 끝난 순간.
모든 플레이어의 앞에 튜토리얼이 끝났다는 ‘메시지’가 떠오른 것이다.
《도전자들이 귀환합니다.》
《2차 튜토리얼의 개시까지 앞으로 720시간》
감쪽같이 사라졌던 사람들이 하나, 둘 재등장했다.
다만, 예전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각성(覺醒).
디맨션 워리워와 같은 괴력을 지닌 상태로 그들은 귀환했다.
그것도 변신을 통해 힘을 얻는 1세대 각성자와는 사뭇 다른, 본인 스스로가 각성한 채로.
놀라운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명예의 전당’ 순위에 변동이 생겼습니다.》
전당의 순위에 변화가 생겼다.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닌 대량의 변화가.
대체 왜?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어째서 신의 섬에서 이제 막 시련을 겪은 저들과 자신들이 같은 명예의 전당을 공유하는지 알 길이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그러한 당황은 곧 더욱 큰 경악으로 변해버렸다.
명예의 전당을 공유하며, 순위가 변한 것들 모두가 별거 아닌 것처럼 여겨질 정도의 일이 생긴 것이다.
“뭐, 뭐야?”
“미친!”
“란돌프의 기록이 깨졌어······?!”
메인 퀘스트 1에서부터 11까지.
모든 전당의 1위를 거머쥐었던 란돌프.
등장한 이래 단 한 번도 1위를 놓친 적 없던 그 이름이, 처음으로 2위로 밀려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