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武神)
다그닥, 다그닥.
마차 한 대가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
흔들리는 마차 안에는 잠든 남자와, 그런 남자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한 여자가 있었다.
“그, 남편분께서 3일째 안 일어나는데 정말 괜찮은 겁니까?”
걱정스러운 말투로 앞에 앉은 마부가 물었다.
잠든 남자가 벌써 3일째 눈을 뜨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 괜찮습니다.”
여인이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마부는 어깨를 으쓱했다.
“으음. 뭐, 부인께서 괜찮다면 괜찮은 거겠지요.”
죽은 건 아니니까.
그냥 잠을 좀 많이 자는 양반이구나 싶었다.
숨도 쉬고 있고, 3일 동안 굶는데도 전혀 야위질 않는다.
그리고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참 특이한 부부구만.’
마부는 처음 두 남녀를 만났을 때를 회상했다.
여인이 남자를 등에 업은 채였는데, 거절하기엔 너무 많은 돈을 쥐어주며 위험지역으로 향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남녀 사이가 부부는 맞는 것 같다.
딱히 칭호에 대해 별 말이 없는 걸 보면.
“그나저나··· 파이살메르가 개방됐다는 말은 들었지만, 여행가기엔 아직 위험하지 않습니까?”
사막도시 파이살메르.
현재 그곳은 위험지역이다.
백왕과 흑왕의 전쟁에 큰 영향을 받는 곳.
워프가 개방되었다는 소문은 들었으나 굳이 그곳에 발을 들이려는 간 큰 사람은 없었다.
“친구를······ 찾아야 해요.”
“친구? 아아, 파이살메르에 친구가 있습니까?”
“예.”
“하이고. 어지간히 걱정이 됐나 봅니다. 부디 살아있길 빕니다.”
“이미 죽었습니다.”
“어어······.”
순간 마부는 당황하고 말았다.
이미 죽은 친구를 찾으러 위험지역에 발을 들이다니.
시체라도 수습하려는 걸까?
“확인하러 가는 겁니다. 아직도 그곳에 있는지.”
“그, 그렇군요.”
너무나도 담담한 말투에 마부가 다 곤혹스러울 지경이었다.
감정이 없어서 같은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남자를 바라보는 여자의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고마워요.’
여인, 이자벨라는 자신의 무릎 위에 있는 란돌프의 머리칼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오해도 했고, 원망도 했지만.
전부 풀린 지금, 그 덕분에 알게된 진실이 많았으니.
그래서 지금 란돌프의 상태 역시도 이해하고 있었다.
현재 란돌프는 로그아웃하여 세계의 저편에서 ‘박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현명은 자신과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지구’라는 행성에 존재하며, 자신의 세계를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니 다시 돌아올 때까지 이자벨라가 란돌프를 지켜야만 한다.
물론, 박현명을 만나보고는 싶었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자신의 상상 그대로인지, 너무나도 궁금했으니까.
그러나 그와 자신은 살아가는 세계가 다르다.
··· 둘이 만날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란돌프와 박현명.
둘 다 그녀에겐 같은 위대한 존재이므로.
‘······ 소노라.’
또한, 알게된 진실 중에는 자신의 단짝이자 언니인 ‘소노라’에 대한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자벨라가 신병에 걸린 직후.
박현명은 자신의 몸을 움직여 혼종이 된 소노라와 싸웠다.
그리하여 생존했고, 사막여왕의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소노라’의 처리에 대해선 알 수가 없었다.
‘아직도 그곳에 있는 거니?’
최소한 소노라의 시체라도 수습해주고 싶었으니까.
소노라가 아직도 그 지옥에 남아있다면······ 바깥으로 꺼내주는 게 이자벨라의 사명일 터.
그리고 그녀의 뼈로 검을 만들 것이다.
영원히, 자신의 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소노라도 그걸 바랄테니까.
그리하여 세상이 넓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다.
아침이 오고, 새싹이 자라나며,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려줄 셈이었다.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세계는 아름답노라고······ 그보다도 더 아름답고, 고귀하며 숭결한 사람도 존재한다는 걸.
고작 사막여왕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빛과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걸 소노라도 알았으면 좋겠다.
‘이번엔 내가 널 찾으러 갈게, 소노라.’
빛과 같은 사람과 함께.
너를 그 지옥에서 꺼내줄게, 소노라.
-행복해야 돼, 이자벨라. 꼭. 약속이야.
이번엔 내가 너를 찾을 차례니까.
*
제국으로 돌아온 팔가 기사단의 단장, 라이가는 인상을 찌푸렸다.
‘······ 신의 섬이 나를 포함한 참가자 전원을 튕겨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히 참가한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튕겨나갔다.
자신만이 아니라, 아마도 참가자들 전원이.
뿐만이 아니다.
‘단원들 다수가 심연의 늪에 빠져 죽었다. 이해할 수가 없군.’
함께한 팔가 기사단의 기사들 중 상당수가 돌아오지 못했다.
심연에 빠져 죽은 것이겠지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심연이라면 이골이 난 강자들 다수가 한꺼번에 실종됐다?
백보, 천보 양보해도 의아할 수밖에.
하지만 가장 의문인 건.
‘내 몸상태가······ 왜 이런 거지?’
······ 자신의 몸상태였다.
죽어가고 있었다.
그의 육신은 천천히 말라가는 중이다.
마력이 말라붙고, 수많은 가호가 꺼져간다.
이런 경우는 한 가지뿐이었다.
‘오문을 열었다. 내가?’
모든 봉인을 개방했을 때.
그때, 절대적인 ‘죽음’이 동반된다.
하지만 라이가는 오문을 개방한 기억이 없다.
기억이 없는데도 오문을 개방해야만 일어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말인 즉.
‘··· 기억이 조작됐다.’
기억이 조작된 것이다.
신의 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튕겨나갔다는 ‘결과’만 알고 있을 뿐이다.
무엇이 조작되고, 어떤 식으로 왜곡 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의심이 가는 이는 있었다.
‘염소는 어딜 간 거고?’
······ 황금 염소.
분명히 함께 심연으로 향했을텐데, 놈이 없었다.
함께 튕겨나갔다면 틀림없이 그 자리에 있었어야하건만.
제국으로 돌아와 다방면으로 수소문했으나 찾지 못했다.
심지어 ‘황금 가면’조차도 모르는 기색이다.
자신이 죽어간다는 상태 또한.
알았다면, 그 즉시 공격해왔을 터이니.
사신교와 팔가 기사단은 물과 기름같은 사이이니 말이다.
‘아직, 시간은 있다.’
죽음은 멀었다.
신의 섬에서 튕겨나가며 죽음의 저주가 약간이지만 약화된 것이다.
덕분에 후계자를 찾고, 기사단을 보충할 여유가 남았다.
게다가 약화된 ‘죽음’을 무효화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였다.
마음을 먹은 라이가가 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회’의 준비를 서둘러라. 그리고 규모를 확대하겠다. 제국신민만이 아니라, 모든 국가의 훌륭한 인재들이 전부 참가할 수 있도록!”
사신교는 반발하겠지만 개의치 않는다.
놈들과 신경전을 벌일 시간조차도 아까웠으니.
*
《아침이 밝았습니다.》
《‘생존’ 챕터 2가 시작되었습니다.》
《‘혼종 고블린 우두머리’가 출현합니다.》
《‘혼종 고블린 우두머리’를 처치했습니다!》
······.
《저녁이 되었습니다.》
《‘생존’ 챕터 3이 시작됩니다.》
《‘혼종 알바트로스’가 하늘에서 습격해옵니다.》
《‘혼종 알바트로스’를 전멸시켰습니다.》
······.
《3일째 아침이 밝았습니다.》
《다른 ‘무리’와의 합류가 이루어집니다.》
‘신의 섬’이 떠오르고 벌써 3일째.
참가자들 전원이 슬슬 체력의 한계를 맞이하고 있었다.
각성했다지만 밤낮없이 이뤄지는 습격은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하게 만들었으므로.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었다.
“그러니까, 저쪽이 ‘다른 무리’라는 말인가?”
하지만 3일간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강인했다.
선두에 선 남자, 김부장의 무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 400명이었던 인원은 고작 3일만에 250명 가량으로 줄어있었으나, 그만큼 치열하게 싸운 결과 진짜 ‘전사’라 할만한 강심장의 소유자들만 살아남은 것이다.
그리고 3일째 아침을 맞이한 날.
투명한 한쪽의 벽이 허물어지며, 반대편에 있던 ‘무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김부장님. 우리보다 사람이 훨씬 많은데요?”
“처음부터 숫자가 많았던 거 아니야?”
허나, 묘했다.
투명한 벽이 허물어지며 나타난 무리의 인원이 얼추 자신들보다 두 배는 많아보였다.
묘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긴장감이 없어.’
뭐지?
생사를 넘어서 숱하게 전투를 벌인 사람이라면 마땅히 갖고 있어야할 긴장감이 없다.
도리어 표정이 너무나도 편해보인다.
전투를 벌인 흔적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혹시 이제 막 소환된 무리인 걸까?
“제가 말좀 나눠보고 오겠습니다.”
김부장을 따르는 남자가 사신 역할을 자처했다.
그렇게 상대방의 무리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온 남자는 턱을 쓸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 역시 처음부터 우리보다 숫자가 많았던 거냐?”
“아니요.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어?”
“그게······.”
“죽기 싫으면 빨리 말해봐, 뭔데?”
“처음 소환된 게 400명이고 습격받은 횟수도 저희와 같습니다. 그런데 저 무리에서 그동안 죽은 사람은 한명뿐이라고 합니다.”
“뭐? 그게 가능해?”
김부장은 인상을 찌푸렸다.
밤낮없이 이루어진 습격이다.
사망자가 수십, 수백 단위로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습격이 이틀 내내 이루어졌는데 고작 한 명이 죽었다고?
“전부 ‘무신님’ 덕분이라고······.”
“무신(武神)?”
“예. 엄청나게 잘 싸우는 사람이 한 명 있나봅니다.”
“······ 그래?”
김부장은 내심 긴장했다.
그간 어쨌든 무리의 리더로 활동했는데, 다른 무리와 합쳐지면 충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데 다른 무리의 리더가 ‘무신’이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놈이라니.
‘그래도 내가 더 강할 거다.’
김부장은 강하게 부정했다.
이틀간 사람들이 모은 특전을 거의 몰빵하다시피 갈취했으니까.
뿐만인가.
‘나는 성좌의 선택을 받았다고!’
SP로 수많은 재능을 찍고, 시크릿 클래스 ‘검투사’를 개화시켰으며, 위대한 성좌의 선택을 받아 그 누구보다도 앞서나가고 있었다.
이게 가능했던 건 김부장이 원래부터 ‘판게니아’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기업의 임원만이 접속할 수 있는 ‘타차원 커뮤니티’의 VIP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우연찮게 알게되었고, 거기서 엄청난 정보들을 접할 수 있었다.
당연히 ‘검투사’가 되기 위한 ‘재능 테크트리’도 숙지한 상태.
지구로 돌아가면 영웅연합에서 안달나서 모셔가려는 귀인이 될 게 틀림없었다.
또한, 무력의 척도인 레벨도 벌써 5였다.
힘 능력치만 50을 찍은 괴력의 사나이!
“그 무신이라는 놈이 누군데?”
다시 침착함을 되찾은 김부장이 물었다.
그러자 그를 따르던 남자가 손가락을 가리켰다.
“저기······.”
“저기? 어디? 하늘?”
남자가 가리킨 곳은 하늘 위였다.
이에 김부장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곧 알 수 있었다.
하늘 위에 무언가가 떠 있다는 것.
“······ 알바트로스?”
분명히 반나절 전에 자신들을 습격한 새 종류의 괴물, 혼종 알바트로스다.
아직 사냥하지 않은 게 남아있던 걸까?
‘아니, 누군가가 타고 있군.’
어이가 없었다.
혼종 알바트로스를 타고 날아다니는 놈이 있을 줄이야.
머지않아, 혼종 알바트로스가 지상으로 천천히 내려왔다.
“······.”
그리고 김부장은 여느 때보다도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혼종 알바트로스를 타고 나타난 남자.
“······ 박현명?”
얼마전 보았던 박현명이었기 때문이다.
퇴사한 예전 직장 동료이자, 영웅연합 부연합장인 이아린이 직접 스카우트했던.
‘그때 각성한 상태가 아니었다고?’
혼종을 한방에 날려버렸던 그놈.
정말로 각성하지 않았던 상태였나보다.
지금 이곳에서 마주한 걸 보면 말이다.
‘··· 이놈이 무신이란 말이지.’
얼추 이해는 되었다.
그 상태에서 각성까지 했으니 ‘무신’이라 불려도 이상할 게 없긴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
김부장이 어깨를 폈다.
예전의 힘없고 볼품없던 자신이 아니다.
“반갑다.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면 힘의 차이를 느끼게 해줄 생각으로.
작금의 세계는 강자존이다.
비록 이전에는 자신이 힘이 없어서 숙였지만, 이번엔 놈이 조아릴 차례였다.
기껏해야 테이머 계열.
알바트로스를 길들인 걸 보면 전사계열의 클래스를 얻진 않은 것 같았으니까.
“세상 참 좁아. 그렇지 않나?”
김부장의 입가가 비틀렸다.
비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필 골라도 테이머 계열이라니.
뭘 몰라도 저렇게 몰라서야.
이게 바로 정보의 차이다.
아는 자와 모르는 자.
재능이 특출나도 아는 게 없으면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도 그럴 게 테이머는 최악으로 분류되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클래스였다.
시크릿 클래스인 검투사와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무능력함 그 자체의 부류 말이다!
“······.”
박현명이 손을 마주잡았다.
김부장은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다시 만난 것도 인연인데, 앞으로 잘 지내보자고.”
‘어디 한 번 죽어봐라.’
꽈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