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55화 (255/317)

튜토리얼

현재 세계를 나누는 기준은 단 한가지뿐이다. 

각성자와 비각성자! 

타차원에서 침략해오는 괴물에 대항할 유일한 수단. 

총탄과 핵으로도 타격을 입지 않는 괴물들은, 고작해야 수십만에 이르는 ‘디맨션 워리어’만이 타격을 줄 수 있다. 

하여 사람들은 디맨션 워리어를 ‘영웅’으로 여겼으나······. 

“······ 그건 희망사항, 꿈에 불과했지.” 

박태우는 사무실에 앉아 작게 중얼거렸다. 

항거할 수 없는 강력한 무력을 휘두르는 낯선 존재들. 

전설이나 신화에서나 등장할법한 괴물과 대적자들. 

먼 옛날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미지를 ‘신’이라 불렀다지. 

부디 평범한 사람들을 감싸안아주는 아름다운 존재로 거듭나길 바라면서 말이다. 

“연합장님. 무엇이 희망사항이고 꿈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옆에서 자료를 배포하던 연합원이 묻자 박태우는 고개를 절레절레저었다. 

“자네는 어쩌다가 ‘판게니아’를 접하게됐나?” 

“음. 게임을··· 좋아해서요. 이것저것 찍먹해보다가 하게 됐었습니다. 클리어하면 ‘꿈’을 이뤄준다는 말에 혹해서······.” 

“그래. 나도 그랬다.” 

아닌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모두가 영웅이라 추앙하며 신처럼 떠받드는 존재는, 전직 게임폐인들 많다. 

박태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방구석폐인. 

사회부적응자. 

수많은 게임을 플레이하고 접기를 반복하면서 삶에 무료함을 느끼던 와중. 

―게임을 클리어한 사람에게 한 가지 꿈을 이뤄주겠다. 

신작 게임의 소개치고는 지극히 짧은. 

고작 이 한 줄이 전부인 게임 ‘판게니아’를 만났다. 

꿈을 이뤄주겠단다. 

그게 무엇이든. 

딱히 꿈은 없었지만, 저 도전적인 문구가 마음에 들어서 박태우는 판게니아를 플레이했다. 

예상대로 게임은 말도 안 되는 난이도를 자랑했고, 정신을 차렸을 땐 ‘판게니아’에 소환되어 있었다. 

“··· 난데없이 힘을 얻은 게임중독자들이 과연 정의를 위해 살아갈까?” 

“그래도 사회규범속에서 자라온 사람들이니 어느 정도의 선은 있지 않겠습니까?” 

“처음엔 있었지.” 

박태우는 눈을 감았다. 

초기의 플레이어들은 모두 소극적이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조용히 살아갔다. 

하지만 괴물이 등장한 그날 이후, ‘대체불가’의 영역에 자신이 있다는 걸 알게된 플레이어들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따로없었다. 

그럴 수밖에. 

사회에 대한 불신과 적의로 가득한 플레이어도 많았으니까. 

한데, 제재는커녕 순식간에 플레이어는 법 위에 선 존재가 됐다. 

플레이어가 온갖 범법행위를 저질러도 어느정도는 용인이 되어버린 사회. 

이게 현 지구의 실상이다. 

“한국은 연합장님이 계셔서 괜찮지 않습니까?” 

박태우는 즉시 고개를 저었다. 

“내 힘이 미치는 것도 기껏해야 서울이다.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각성자의 숫자가 너무나도 부족해······.” 

숫자가 적으니, 더 날뛰는 것이다. 

지방 도시들의 상황은 훨씬 심각했다. 

정부 차원에서 애써 은폐하고 있지만 지방 플레이어의 범죄율이 80%가 넘어선다는 통계도 있었다. 

그것도 경범죄는 빼고, 중범죄의 비율만. 

마음만 먹으면 플레이어가 증거를 남기지 않고 범죄를 저지를 방법은 너무나도 많았으므로. 

설령 증거를 남겨도, 그를 처리할 사람이 없다. 

영웅연합의 힘이 미치지 않는 지방은 특히 그랬다. 

패거리에 불과하던 것들이 슬슬 조직화를 이루고 있다는 보고도 들었으나 서울의 인원을 뺄 수는 없는 노릇. 

연합의 힘이 약해지면 놈들은 그 즉시 서울로 치고 들어올 것이다. 

‘무겁군.’ 

박태우. 

그 역시도 흔한 게임폐인에 불과했다.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고, 책임질 수 없던 남자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수천만의 우상이 되었다. 

아무리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지만······ 슬슬 버거운 것도 사실이다. 

‘나는 영웅 같은 게 아닌데.’ 

수많은 기대의 눈초리가 부담스럽다.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긴 했으나 이곳이 자신이 있을 자리가 맞는건지 항상 의구심이 든다. 

영웅은 태어나는 것인가, 만들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우연히 그렇게 되는 것인가. 

확실한 건 자신은 아니다. 

괴물이 등장한 첫째날. 

대원정에서 빌헬름이 사망한 그날. 

판게니아의 모든 ‘게이머’가 마침내 ‘플레이어’가 되었을 때.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들렀다가, 자이언트 맨티스를 우연치않게 사냥했을 따름인데. 

주변의 환호와 칭송에 한순간 취해버렸다. 

유명세에 사람들이 몰렸고, 정신을 차렸을 땐 연합이 만들어져 있었다. 

‘흘러, 흘러, 여기까지 온 것에 불과하지.’ 

그러니 진정으로 영웅이 이 세계에 존재한다면, 그건 자신과 같은 사람이 아닐 것이다. 

박태우가 생각하는 영웅은 한 명뿐이었다. 

팬텀. 

홈페이지에 수많은 공략글을 남긴 자. 

그 정도로 판게니아에 몰두한 이는 애초에 없었다. 

당연히 지금도 그보다 판게니아를 더 잘 아는 사람은 단언하건대 없다. 

몬스터의 공략법, 아이템의 숨겨진 옵션이나 특이한 조합식, 온갖 퀘스트의 진행방법이나 재능 테크트리, 그리고 히든 특성을 가장 먼저 알아내어 공유한 것도 그였다. 

‘메인 퀘스트를 말도 안 되는 점수로 돌파하고 있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만약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대도 자신이 그 점수를 넘어서긴 힘들겠지. 

허나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도전해보고 싶긴 하다. 

더 완전하고 완벽하게. 

그렇게만 된다면, 어쩌다보니 만들어진 영웅이 아니라 진짜 영웅으로 발돋움할 수 있지 않을까? 

이대로면 세계는 머지않아 균형을 잃고 파국을 맞이할 것이다. 

“여, 연합장님······ 저게 뭐죠?” 

그때였다. 

순간 세상이 소란스러워졌다. 

연합원이 가리키는 손가락의 방향을 따라 박태우는 고개를 돌렸다. 

‘섬?’ 

그러자 하늘 위에 떠오른 거대한 섬이 시야에 들어왔다. 

《‘튜토리얼’이 시작되었습니다.》 

《참가를 원하시면 ‘신의 섬’을 바라보고 양손을 합장해주십시오.》 

《‘완성된 자(플레이어)’는 입장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눈앞에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른 문장들. 

각성자와 비각성자의 경계가, 마침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신의 섬’에 입장한 것을 환영합니다.》 

《‘튜토리얼’이 시작되었습니다.》 

《메인 퀘스트 1, ‘생존’에 들어가기 전에 각자 무기를 선택해주십시오.》 

《그리고 ‘요정’의 지시를 따라주십시오.》 

《‘생존’은 30분 뒤 시작합니다.》 

수많은 워프와 함께 나타난 사람들. 

그들은 주변을 둘러보곤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뭐, 뭐야?” 

“여긴 어디야?” 

“신의 섬? 튜토리얼?” 

섬의 해변가. 

족히 수백명은 되어보일법한 사람들이 모여있었으니까. 

-안녕? 나는 아이리스! ‘신의 섬’에 온걸 환영해! 

뾰로롱. 

귀여운 소리를 내며 요정 하나가 허공을 배회했다. 

“여기서 뭘 어쩌라는 거야?” 

“다, 다시 돌려보내 줘!” 

요정의 출현에 몇몇 사람들이 기겁하며 외쳤다. 

하지만 요정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자, 시간이 없어! 나는 너희가 올바른 ‘각성자’가 되도록 이끌 의무가 있단다. 그러니 빨리 무기를 들으렴! ‘혼종 고블린’의 먹이가 되기 싫다면 말이야! 

요정은 해변가 이곳저곳에 널브러져있는 무기들을 가리켰다. 

그곳엔 검과 도, 사슬과 도끼, 활과 창 등등 온갖 종류의 무기가 놓여있었다. 

“혼종 고블린?” 

“설마 싸워야 한다고?” 

“어, 어어······.” 

여전히 당황한 사람들. 

툭.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움직인 사람이 있었다. 

검 한 자루를 든 남자를 보며 요정이 박수를 쳤다. 

-잘했어! 너 제법 보는 눈이 있구나? 가장 좋은 검을 찾아낼 줄이야. 시작이 좋은걸~ 

남자는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어이가 없군.’ 

······ 그냥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설마 내가 ‘비각성자’ 취급을 받으며 튜토리얼을 진행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축복의 천사가 깃들자 신의 섬이 이런 식으로 바뀐거로군.’ 

란돌프와 나를 완전하게 구분지었기 때문일까. 

어쨌든 대충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알겠다. 

신의 섬은 어느덧 ‘비각성자의 각성을 위한 장소’로 변해있었다. 

또한 아직 유아기인 페어리 드래곤들이 안내자로 둔갑했다. 

‘페어리 드래곤의 성장 방법.’ 

아마도 이게 페어리 드래곤이 설장할 방법일 터. 

억겁의 시간을 먹고 자라야만하는 페어리 드래곤을 빠르게 육성하고자 ‘축복의 천사’가 선택한 방법이 아닐는지. 

그뿐만이 아니다. 

“섬의 중앙에 있는 저건 뭐지?” 

나는 섬의 중앙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요정 아이리스가 답했다. 

-거룩한 별! 이 섬의 주인이자 우리의 신께서 남겨놓으신 위대하신 발자취란다. 아름답지 않니? 

내가 남겨놨다고? 

섬의 중앙에 우뚝 솟은 채 빛나는 섬광. 

-‘천사’께서 저 안에 잠들어계셔. 튜토리얼에서 가장 훌륭한 점수를 낸 극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만이 ‘천사’님을 뵐 영광의 기회를 얻게 된단다! 혹시 아니? 히든 클래스를 얻을 지도? 

아아. 

신의 섬과 거룩한 별이 하나의 세트로 인식된 모양이다. 

섬에 깃든 ‘축복의 천사’는 그 안에 있던 ‘거룩한 별’에도 함께 깃들어버린 것이다. 

하기야 ‘신의 섬’만으로 이만한 이적(異蹟)은 불가할 터이니. 

-자, 시간이 지나가고 있어요. 똑딱똑딱.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기를 쥐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기마련. 

“나, 난 못해! 안해!” 

“그, 그만둬. 그런 소리 하면 머리를 터트려버린다고!” 

“맞아! 요정은 극악무도한 존재라고······!” 

두려움에 떨며 발악하는 사람을 진정시키려는 사람도 많았다. 

요정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 

판게니아에 대한 지식은 이미 널리 퍼져있었으니. 

특히 ‘요정’은 정말 잔인한 괴물이었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은 죄다 머리를 터트려버린 뒤 나무의 거름으로 만들어버리는 종족. 

한 치의 자비도 존재하지 않는 극악무도의 괴물!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너희 머리를 왜 터트리니? 

그러나 요정 아이리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을 뱉어냈다. 

-나를 지성이 없는 하급 요정과 같은 취급하지 말아줄래? 위대한 ‘페어리 드래곤’을 마주한 걸 영광으로 여기진 못할망정······ 쯧쯧. 

혀를 차곤, 고개를 저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자, 무기를 들었으면 이제 ‘상태창’을 외쳐보렴. 물론 생각만 해도 괜찮지만, 처음엔 입으로 ‘명령어’를 설정하는 게 이미지에 도움이 될 거야! 

그제야 약간의 안정을 되찾은 사람들이 상태창을 떠올리곤 기겁했다. 

“뭐, 뭐야?” 

“설마 ‘각성’한 거야?” 

“미친······ 이건 디맨션 워리어만 할 수 있는 거 아니었어?” 

그들 앞에 떠오른 상태창. 

그건 분명히 각성자인 ‘디맨션 워리어’만 가능한 능력이었으니까. 

“나도 각성자가 된 건가?” 

“마, 만세!” 

“내가 각성자라니······!!!” 

환호를 하는 사람도 많았다. 

각성자라는 사실만으로도 귀족의 취급을 받는다. 

부유하게 살 수 있고, 안전하게 살 수 있다. 

그러한 모습을 일년 넘게 보아왔으니 각성자가 됐다는 사실에 환호할 수밖에. 

“튜토리얼을 클리어하면 나갈 수 있는 거겠지?” 

-그럼! 이곳에서 클래스를 얻을 수도 있단다. 레벨을 올리고, 사냥을 통해 얻은 SP로 재능을 찍고, 더 강한 각성자로 발돋움 할 수도 있고 말이야! 

부르르르! 

요정의 대답을 듣자 남자는 온몸을 떨었다. 

“아아, 역시! 우리형 말이 사실이었어!” 

“그게 무슨 소리야?” 

“타차원 ‘판게니아’가 처음엔 게임이었다는 말! 나는 다 들어서 알고 있거든. 특별한 클래스를 얻기 위한 재능 테크트리나 히든 특성에 관한 것들도 말이야!!” 

남자는 흥분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전해들은 몇몇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판게니아’를 어느정도 파악한 사람들. 

그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보가 힘이 된다.’ 

‘더 많이 아는 자가, 더 많은 것을 얻는다.’ 

이곳은 기회의 땅이다. 

가지지 못했던 자들이 모든 걸 가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이 기회를 결코 놓칠 수는 없었다. 

튜토리얼을 더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해야만 한다. 

모두의 눈에 두려움은 사라졌다. 

이전에는 없던 열정이 솟아난 순간. 

그렇게 30분이 지나자마자. 

-그럼 무운을······ 응? 

요정 아이리스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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