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격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김부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괴물들의 침략이 시작되고, 박현명이 한방에 괴물을 박살냈을 때도 놀랍긴 했지만, 지금 이 순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아린.
그녀가 누구던가.
-영웅연합 최연소 부연합장!
-최단기간만에 영웅연합의 두 번째 얼굴이 된 여걸!
-박태우를 뛰어넘는 압도적인 카리스마!
-가능성을 보는 눈, 수많은 강자를 만들어낸 한국의 희망!
등등등.
그녀를 수식하는 단어는 셀 수 없이 많다.
혜성처럼 등장해 모두의 뇌리에 단번에 박혀버린 뜨거운 감자.
하지만 실제로 그녀의 실력을 본 사람은 없다.
그녀는 단지, 키워낼 뿐이다.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가려내고, 그들을 순식간에 강자로 키워내는, 영웅연합 내에서는 이미 ‘대사부’라고 불리는 게 이아린 부연합장이었다.
그런데 이아린은 지금 박현명에게 분명히 말했다.
소질이 있어보이니, 영웅연합에 들어오라고.
‘누군가를 직접 스카우트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는데······!’
김부장이 전신을 떨었다.
한국 영웅연합.
명실상부 한국 최고의 기업이며, 그곳의 2인자라는 건 한국에서 두 번째 권력자라는 의미다.
게다가 박현명이 이아린도 탐낼 재능을 가진 ‘디맨션 워리어’라면······.
그야말로 천룡인(天龍人) 그 자체!
세계 수십억 인구중 고작 수십만밖에 없는 디맨션 워리어.
대체 불가한 그들은 이미 귀족의 취급을 받고 있었다.
기업이 고용하여 붙여준 보디가드는 한없이 격이 낮은 디맨션 워리어뿐.
현재 세계의 계급도를 본다면, 이아린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순간 박현명의 가치와 계급은 아득히 올라간다.
당장 영웅연합 말단 연합원도 그와 비교할 수 없는 계급을 지니거늘.
자신같은 머글(muggle)은 감히 쳐다도 보지 못하는 게 박현명인 것이다.
‘내, 내가 무슨 짓을······.’
김부장의 안색이 하얗다 못해 파랗게 질려버렸다.
일개 기업의 부장 따위, 영웅연합의 입김 한 마디면 줄 잘린 연 신세다.
조금만 힘을 줘도 잘리는 그 얇은 실 하나만을 믿고 박현명에게 치욕을 주었으니, 아무리 충성을 맹세한 기업이라 할지라도 김부장을 감싸안진 않으리라.
잘리기만 하면 다행이다.
없던 죄도 만들어내어 재판을 받게하거나, 변방으로 쫓아내 괴물의 먹이로 던져버릴지도 모른다.
영웅연합에 잘못을 저지른 사원들은 모두 비슷한 결과를 맞이했다.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연합의 도움은 언제든 절실했으므로.
“연락하거라. 기다리고 있으마.”
털썩.
이아린이 박현명에게 명함을 넘기는 모습을 보며 김부장은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싹둑. 싹둑.
연의 실이 잘리는 소리가 귓가에 계속해서 들려왔다.
‘꾸, 꿈이야. 꿈이 분명해. 박현명 따위가 이아린에게 스카웃 제의를 받다니.’
김부장이 기억하는 박현명은 지극히 평범한 평사원이었다.
어느날 돌연히 사표를 내고 나간 괘씸한 녀석.
특출난 능력도 없고, 든든한 백이 있는 것도 아닌 지극히 평범하디 평범한 일반인.
자신이 욕해도 굽신거리고 언제나 무시했던 그 박현명이······.
-연락하거라. 기다리고 있으마.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아린은 그 말을 남기고 떠났다.
박현명은 받은 명함을 주섬주섬 품에 넣었다.
영웅연합의 부연합장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으면 기뻐할만도 하건만, 박현명의 표정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이런 놈이 더 무서운 법이다.
기쁜 일에도 쉽게 들떠하지 않는 사람이.
김부장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사람을 잘못보고······.”
“······?”
김부장은 겨우 자세를 고쳐잡고, 절을 하듯 바닥에 이마를 박았다.
“요, 용서해주십시오! 유망하신 전사님에게 저 따위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부디 회사에 이야기만은······!”
작금의 세계는 힘의 논리로 돌아간다.
일반인 위에 디맨션 워리어가, 그 위에 자신의 기업을 이룬 일반인이, 다시 그 위에 강한 디맨션 워리어가, 그보다 위엔 더 강한 디맨션 워리어가 존재할 뿐이다.
강자가 밟으면 죽어만하는 게 김부장의 위치였다.
그러자 박현명이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받았던 만원 한 장을 김부장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중에 다시보면 밥 한끼 사주지.”
“······ 여, 연합으로 찾아가면··· 될까요?”
자존심, 버렸다.
지금은 그런걸 찾을 때가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탓이다.
“글세.”
툭, 툭.
어깨를 두어번 두드린 박현명이 천천히 자리를 떠났다.
용서를 해준다는건지, 안 해준다는건지.
“아······ 아아······.”
명확한 대답이 아니어서 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
“······ 그 정도로 뛰어난 자였습니까?”
본사로 돌아가는 길.
이아린을 향해 한 남자가 물었다.
하지만 궁금증을 느낀 건 남자뿐만이 아니다.
주변 모든 이들이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연합에 들고자 면접을 보고, 그들 중에서도 발군의 성적을 내어 이아린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사람들.
미래의 별이라 불리며 빠르게 레벨 10을 달성한 강자들이었다.
개중에는 별을 얻어 초월한 초월자마저 있었건만.
······ 그럼에도, 이아린이 직접 스카우트 제의를 한 적은 없었다.
그녀가 이만한 흥미를 가진 사람은 처음보았다.
하여 그들은 질투 아닌 질투를 느끼는 중이었다.
곧이어 선글라스를 낀 이아린이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두 번째.”
“무엇이······ 두 번째라는 말입니까?”
“내가 본 자들 중 두 번째로 뛰어났다.”
“··· 그럼 첫번째는 누구였습니까?”
“글세.”
이아린.
마계의 칠군주 바사라는, 방금 명함을 준 남자를 두 번째로 뛰어난 자질을 가진 자라고 판단했다.
첫 번째는 당연히 빌헬름이었고.
빌헬름이 찬란한 빛이었다면, 그는 뭐라고 해야할까, 음습한 어둠에 가깝다.
빌헬름은 오롯이 빛나는 존재였다.
반면 그 남자는 마치 심연처럼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천살성.
악신의 기질을 가진 자가 이 지구에 있을 줄이야.
‘물과 기름같군.’
빌헬름과는 너무나도 다른 기질.
절대로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이 따로없다.
그러니, 그 남자가 빌헬름의 본체일 가능성은 결코 없었다.
“부연합장님. 두 번째로 뛰어났다면 왜 명함만 건네주신 겁니까?”
“어차피 찾아올 게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천살성은 힘을 갈구하기 마련이었다.
이 지구에는 천살성의 재능을 가진 자를 키워낼 강자가 없다.
죄다 플레이어뿐.
판게니아의 힘을 빌릴 뿐인 머저리들이었으니.
변신하지 못하면 평범한 인간과 다를 게 없는 반푼이들.
그 남자는 결국 자연스럽게 자신을 찾아오게 될 것이다.
‘어떤 보석으로 완성될지 기대되는군.’
그녀가 눈을 빛냈다.
물론 가장 기대되는 건 역시 ‘빌헬름을 조종한 본체’였다.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고, 비견될 수 없는 찬란한 존재!
과연 그는 지구에서 얼마나 고귀하게 빛나고 있을 것인지가 말이다.
그리고 만날 수만 있다면, 반드시 만나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 너는 내 약점을 어떻게 알아낸 것이냐?’
이세라.
돌연변이 용신의 혈육인 그녀에게도 약점이 있다.
하지만 이세라와 달리, 마왕조차도 그녀의 약점을 알아내진 못했다.
마왕만이 아니다.
그 누구도 몰랐다.
심지어 그녀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빌헬름을 조종한 그 본체는, 누구도 찾아내지 못한··· 심지어 바사라 자신도 몰랐던 약점을 찾아내어 공략했던 것이다.
그래서 묻고 싶었다.
대체, 어떻게 자신의 약점을 찾아낸 것이냐고.
어떻게 약점을 공략한 것이냐고.
그 약점은 다름아닌.
‘··· 내게, 사랑을 느끼게 하다니.’
살면서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사랑’이었으니.
*
“너희들은 진짜 영웅이 아니다!”
“거짓말로 점철된 가짜 영웅들은 물러가라!”
세계연합인 영웅회의 건물들 앞에선 기습적인 시위가 연달아 일어났다.
이미 그들은 과거 찬란했던 영웅이 아니었다.
거짓된 영웅들.
오로지 거짓말로 올라선 위선자들!
그들을 향한 시위는 세계 전역에서 날마다 계속되고 있었다.
‘김하나······!’
그 사옥 안에서, 시위대의 외침을 들으며 루시퍼가 이를 갈았다.
원래 이 정도로 적대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김하나가 ‘영웅회’와 관련된 기밀이나 비밀 따위를 폭로하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다크스타. 이 개새끼가 기밀을 죄다 넘겼다.’
놈의 별명이 왜 ‘런크스타’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메인퀘스트 11이 완료된 즉시, 명예의 전당 순위가 뒤바뀌자 다크스타는 한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김하나를 만나고 기밀문서들을 전해준 게 틀림없었다.
덕분에 영웅회는 와해되고 있었다.
판게니아에서도, 이곳 지구에서도.
하지만 판게니아보단 상황이 낫다.
“어차피 너희들은 우리를, 나를 외면할 수 없다. 대체할 수 없다.”
플레이어는 한정된 자원이다.
그들의 지구를 지켜주는 영웅이어야만 한다.
이렇게 욕하고 삳대질해도, 어차피 대체는 불가능하다.
지금은 비록 시기가 좋지 않아 욕을 먹을지언정 침략한 괴물들만 잘 처리해주면 언제 욕했냐는 듯 돌아설 것이다.
‘영웅회는 무너지지 않는다.’
그가 만든 자부심이다.
결코 이대로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이 세계의 정점에 서겠다는 다짐은 아직도 유효했다.
어찌해야할까.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까.
‘침략의 시기를 당기는 방법······.’
침략이 시작되면 대중은 다시금 자신의 힘을 바라겠지.
제발 도와달라고 울부짖을 것이다.
플레이어는 절대로 대체가 불가능한, 한정된 자원.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빌고 또 빌 것이 분명했다.
그때였다.
《‘신의 섬’이 떠오릅니다.》
《‘튜토리얼’이 시작되었습니다.》
루시퍼는 고개를 들어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 위에, 거대한 섬이 공중을 부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튜토리얼?’
··· 무언가가 잘못됐다.
여태껏 멈춰있던 일들이 마침내 시작된 것이다.
‘란돌프······ 네놈, 설마······.’
루시퍼는 단번에 눈치챘다.
저 변화의 중심부엔 란돌프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거기······ 있는 것이냐?”
축복의 천사가······ 저곳에 있다는 것이다.
느낄 수 있다.
알 수 있다.
저곳에 그녀가 있음을.
루시퍼는 신의 섬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완성된 자(플레이어)’는 출입할 수 없습니다.》
*
지면을 뚫고 나온 혼종.
심연의 괴물이 왜 침략을 했는지 알아보고자 한창 지하를 살폈던 게 유효했다.
‘심연과 연결되어있다.’
지하수도에서 심연과 연결된 워프를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워프는 비활성화 상태였다.
지이이잉!
내가 손을 대자, 비로소 활성화를 시작했다.
동시에.
《‘관리자(란돌프)’를 확인했습니다.》
《연동을 허가하시겠습니까?》
나를 확인했다는 말.
아마도 내가 촉매가 된 모양이다.
양쪽 세계를 이어주는 중개자.
또한, 내 허가 없이는 연동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허나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내 모든 의문을 해소하려면 연동시킬 수밖에 없다.
《허가되었습니다.》
《‘신의 섬’의 연동이 시작됩니다.》
《연동이 완료되었습니다!》
《‘튜토리얼’이 시작됩니다.》
《‘완성되지 못한 자(박현명)’가 ‘신의 섬’으로 입장합니다.》
쉬이잉!